성연은 목현수와 밥을 먹고 학교로 돌아왔다.이때 소지한이 성연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대스타가 오늘 어떻게 나한테 전화할 시간이 다 있었을까?” 성연과 소지한은 여전히 아주 친한 사이이기에 매번 연락할 때마다 농담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소지한이 웃으며 말했다.“너는 유럽에서 학교 다니지? 유럽 쪽은 어때, 재미있어?”성연은 유럽의 풍경을 보면서, 이곳에 온 지 겨우 몇 달 만에 떠나게 될 줄은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어디를 가든 그래도 우리 나라가 제일 좋아.’“나 곧 귀국할 거야.” 성연은 길을 걸으면서 소지한과 이야기했다.소지한이 물었다.“왜 갑자기 돌아오려는 거야? 그쪽은 안 좋아?”성연은 자신이 학점을 미리 많이 이수한 사실을 소지한에게 말했다.“여기는 그런대로 괜찮아. 다만 집이 좀 그리워.”소지한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정말 딱 맞춰서 전화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의 말투에서 즐거워하는 기색이 뚜렷하게 드러났다.“정말 잘됐네. 마침 내가 너에게 해줄 말이 있어.”성연이 물었다.“무슨 일?”소지한은 성연에게 자신이 전화한 이유를 설명했다.“너를 내 콘서트에 초대하고 싶어. 아마도 내 마지막 콘서트가 될 거야.”성연은 다소 놀랐다. 그러나 소지한이 이렇게 하는 데에는 틀림없이 까닭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캐묻지 않고 농담하듯이 말했다.“돈은 충분히 벌었어?”소지한도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물론 충분할 만큼. 앞으로 나는 사업에 전념할 생각이야. 나에게 강무진 대표를 좀 소개해 줄 수 있어? 아니면 강무진 대표 비서로 날 좀 추천해 주든지.”얼마 전에 일어난 일은 소지한도 알고 있다. ‘사업에 있어서는 강무진의 수완이 정말 대단해.’자신이 성연에게 한 말도 농담이 아니었다.‘강무진의 업무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대단해. 강무진의 옆에 있다 보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야.성연도 흔쾌히 대답했다.“당연히 되지.”무진이 소지한을 자신의 곁에 두게 할지 아닐지는
시간은 곧 지나갔다. 이틀이 지나면 콘서트가 곧 시작된다. 시간에 맞춰서 소지한이 예약해 준 항공권을 가지고 공항에 간 성연은 비행기에 탑승했다.원래 성연은 앨리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앨리스는 어디로 갔는지 모습도 보이지 않고 전화도 연결되지 않았다.성연은 국내로 돌아가서 앨리스에게 전화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시간이 늦을까 봐 먼저 공항으로 갔다. 그녀 혼자 트렁크를 들고 공항에 도착했다.“성연아, 성연아...”누군가 어렴풋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성연은 자신이 환청을 들은 줄 알았다.유럽에서 자신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성연이 고개를 돌리자 멀리서 저 앨리스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앨리스, 왜 왔어?” 성연의 눈에는 놀라운 기색이 뚜렷했다.앨리스는 헐레벌떡 성연 앞으로 뛰어왔다.“나는 따라잡지 못할 줄 알았어.”“너는 어디 가?” 성연은 앨리스에게 땀을 닦을 휴지를 건네주었다.앨리스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네가 귀국한다고 해서 어머니에게 유럽의 특산품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 자, 줄게.”성연은 그녀가 들고 있는 선물 상자 주머니를 보면서, 이 선물에는 앨리스의 마음이 가득 차 있어서 묵직할 거라고 느꼈다.“그러니까 네가 아침부터 기숙사에 없었던 게 내게 이걸 갖다 주려고 집에 갔던 거야?”성연이 선물을 손에 들어 보니 꽤 무거웠다.“그래, 다행히 시간을 맞출 수 있었어. 길이 막혀서 시간은 좀 지체됐지만.” 앨리스는 휴지로 땀을 닦았다. 얼마나 힘들게 이 길을 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성연은 마음속으로 무척 감동했다.“앨리스, 고마워.”머리를 만지작거리던 앨리스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천만에. 이렇게 떠나면 다음에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몰라. 나를 기억해 줘.”“그럴게.” 성연은 먼저 앨리스를 꼭 안았다.앨리스도 따라서 그녀를 꼭 안았다.앨리스가 좀 늦게 왔기에 두 사람이 잠시 대화를 나누자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이 울렸다. 잠시 후에 앨리스는 손을 놓
오후 퇴근 시간이 되었다.사람들이 모두 퇴근을 하고 사무실이 텅 비었을 때, 조수경이 갑자기 무진의 사무실로 찾아왔다.무진의 방 문 앞에서 조수경이 손을 들어 살짝 노크했다.“무진 오빠, 아직 있어요?”조수경의 음성을 들은 무진이 이마를 찡그렸지만, 이내 대답했다.“들어와.”조수경이 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무진이 창가를 등진 데스크에 앉아 있었다. 석양의 빛을 받은 그의 모습은 마치 천신처럼 아름다웠다.조수경이 천천히 눈길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무진 오빠, 제가 콘서트 표 두 장을 샀어요. 소지한의 고별 콘서트라서 이런 기회가 앞으로 오기 힘들 거예요. 무진 오빠, 오빠와 함께 가고 싶어요.”무진은 소지한이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성연을 생각했다. 은근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조수경과 함께는 아니었다.그래서 무진이 바로 거절했다.“아니, 갈 생각이 들면 내가 표를 사면돼. 다른 사람에게 같이 가자고 해.”그 말은 조수경과 동행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 분명했다. 조수경은 속으로 무척 실망했다.자신이 강씨 집안에 온 이후, 무진은 이처럼 분명하게 자신을 거절한 것은 처음이었다.그러나 눈치가 빨라 상황 판단이 빠른 조수경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물러섰다.“네, 그럼 나 혼자 가면 되죠, 뭐.”무진이 냉담하게 대답했다. “그래.”무진의 사무실을 나온 조수경은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눈주위가 이미 불그레했다.자존심이 무척 강한 조수경은 무진이 콘서트에 같이 가자는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줄은 정말 몰랐다.더 이상 남아서 창피를 당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손에 표를 쥔 채 황급히 자리를 떴다.조수경이 난감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보았지만 무진은 개의치 않았다.자신이 조수경과 단둘이 함께 콘서트를 보러 간다면 그것이야 말로 비정상적인 일일 터.조수경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택으로 돌아온 후에 곧바로 안금여를 찾아갔다.이 집안에서 안금여야 말로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임을 잘 알고 있었다.안금여는 이 강씨 집안에서
무진은 데스크 위의 기밀 서류를 전부 금고에 넣고 잠갔다.막 퇴근하려고 하는데 조수경이 방금 말한 게 생각났다. 소지한의 콘서트라니 그도 흥미가 일었다.손건호를 불러서 상황을 물어보려고 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휴대폰의 화면을 터치하는 순간 할머니의 전화라는 것을 알았다.“할머니, 무슨 일이세요?”“수경이가 나한테 함께 콘서트를 보러 가자고 하는구나. 네가 빨리 준비를 좀 해 다오.” 안금여는 소파에 앉아서 조수경이 준비한 화차를 즐겼다.안금여의 말을 듣는 무진의 마음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그는 다시 의자에 앉아서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너무 나서는 거 아닌가? 콘서트는 분명 시끄럽고 사람들도 많을 텐데, 만약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할머니의 건강이 원래 그다지 좋은 편도 아닌데, 밖에 나갔다가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면 누가 그 책임을 진다는 말인가?무진이 마음속으로 조수경을 은근히 책망했다. ‘이거 나이든 할머니에게 무슨 유치한 잔꾀를 부리는 거야?’“할머니, 콘서트는 너무 시끄러워요. 그리고 콘서트 같은 행사를 좋아하실 것 같지도 않은 데요. 연세도 많으신 데 그런 곳에 가시는 건 권하고 싶지 않아요.” 무진은 적당히 절제하며 말하면서, 할머니가 생각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랐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안금여는 불만이었다.“콘서트를 보러 가는데 뭐가 안 어울린다는 거야? 내가 나이가 많은 건 맞지만 마음은 아직 젊어. 나는 평생 콘서트를 본 적이 없어. 이제 나가서 세상을 좀 구경하려는데 왜 그러는 거냐?”안금여의 목소리에는 옅은 분노가 섞여 있었다. 들고 있던 찻잔의 차를 마시지도 않았다.“할머니, 우선 화를 가라앉히시고요. 제가 먼저 자리가 있는지 한 번 알아볼 게요. 있으면 가고 없으면 집에 계시는 거예요?안금여는 마지못한 듯이 대답했다.“그럼 빨리 알아봐,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 버릴 거야.”안금여가 전화를 끊었다.조수경이 옆에서 수시로 안금여의 찻잔에 차를 채워주었다.그들의 대화를 들으니 그
무진은 직접 운전해서 할머니 안금여를 데리러 고택으로 향했다.조수경은 무진이 온다는 소식에 속으로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얼른 위층 침실로 올라가서 입고 있던 평상복에서 흰색 원피스로 갈아입었다.허리 부분에 펀칭이 들어간 원피스는 일견 청순해 보이면서도 맨살이 살짝 비칠 때면 섹시함을 더했다. 순수한 듯 요염한 자태가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조수경이 야심만만하게 준비한 원피스였다.마지막으로 입술에 립스틱을 바른 후에 아래층으로 내려간 조수경은 다소곳하니 안금여의 앞에 앉았다.조수경의 분위기가 조금 바뀐 것 같다고 생각하는 안금여. 하지만 젊은 여자아이들이야 예쁘게 꾸미는 걸 좋아하는 게 정상이니까 하며 조수경을 놀렸다.“수경아, 갑자기 왜 이렇게 예쁘게 치장한 거야?”침실에서 나올 때 이미 말을 할 준비해 두었던 조수경은 조금도 긴장한 기색도 없이, 하지만 좀 부끄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할머니, 스타를 만나러 가는데 당연히 예쁘게 보이도록 하고 가야죠.”안금여가 웃으며 동의했다. “그건 또 그렇네.”현관문 바깥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안금여가 반응하기도 전에 먼저 일어나 현관을 나서는 조수경의 동작에 감추지 못한 조급함이 묻어났다.“제가 가서 무진 오빠가 도착한 건지 살펴볼게요.”안금여 또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우상을 만난다는 생각에 무척 흥분했나 보다 여겼을 뿐.무진이 맞았다. 출근할 때 입었던 슈트 차림의 무진은 금욕적이면서 시크해 보였다.보는 순간 강렬한 정복욕을 불러일으켰다. 조수경은 마음속으로 무진에게 어울리는 여자는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스커트 밑단을 쥔 채 무진 앞으로 총총 뛰어간 조수경은 애교가 똑똑 떨어질 듯한 음성으로 무진을 맞았다.“무진 오빠, 왔군요.”조수경을 한 차례 일별한 무진은 바로 시선을 돌리며 그녀를 지나쳐 거실 안으로 들어갔다.“할머니는?”조수경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 공들여 치장을 했는데, 강무진은 자신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강 대표님, 오셨습니까? 이쪽으로 오시죠.” 백스테이지에 있던 사람이 강무진이 표를 예매해서 입장했다는 소식에 특별히 사람을 보내 안내했다.무진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비켜섰다.“할머니, 고모, 고모부, 먼저 들어가시죠.”조수경이 안금여를 부축해서 먼저 지나간 후에 강운경과 조승호가 뒤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무진이 마지막으로 공연장에 들어섰다.공연장에 들어서자 귀청이 터질 듯한 함성이 귓가를 울렸다.“소지한!”“소지한!”“와아아!!!”엄청난 함성에 무대가 떠나갈 것 같았다.이렇게 소란스러운 장소를 좋아하지 않았던 무진은 눈살을 찌푸린 채 할머니 안금여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안금여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보이지 않자 안심했다.공연장을 꽉 채운 팬들이 화려한 LED 조명으로 빛나는 응원봉을 무대 아래에서 열정적으로 흔들어댔다.무진이 예매한 좌석은 VIP석.무대와 가깝고 시야가 가장 좋은 위치였다. 주위의 일반 관객들과 따로 구분된 위치가 아주 눈에 띄었다.무진 일행이 착석하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북성에서 너무나 잘 알려진 무진이다 보니 곧바로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다.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고 무진 일행을 촬영하기 시작했다.관객들 속에서 놀라 숨을 들이켜는 소리와 감탄의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와, 북성 제일의 셀럽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역시 우리 스타야.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세상에 강무진도 공연 보러 왔어.”“...”대형 음향기기에서 울리는 소리, 관객들의 함성 등으로 인해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하지만 이런 장소에 오게 되면 대중의 시선에 노출되는 건 불가피한 일.차분한 표정을 한 무진은 안금여의 곁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살짝 굽히며 말했다.“할머니, 조용한 발라드만 들을 수 있어요. 뒤로 가면 모두 템포가 빠른 곡들이라 격렬한 안무에 맞춰 공연할 거예요. 그 전에 우리는 돌아가도록 하죠. 음향이 너무 세서 할머니
강운경과 조승호도 안금여의 옆 자리에 앉았다. 강운경 역시 공연장 내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조금씩 흥분되기 시작했다.온 가족이 함께 이런 공연을 관람하고, 이것도 꽤 신기한 경험인 것 같았다.조승호도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띈 채 시시때때로 강운경이 건네는 말을 받아주고 있었다.“당신과 결혼하고 그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당신 날 콘서트에 초대한 적은 없었어요. 오늘 관람도 수경이 덕분이에요.” 강운경이 조승호에게 투덜대기 시작했다.조승호가 계면쩍게 웃으며 변명했다.“그 동안 일이 바빴잖아? 봐 줘.”강운경이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자 조승호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어렸다. 옆에 있던 조수경이 얼른 조승호를 거들며 끼어들었다.“고모님, 마음에 드시면 앞으로 우리 자주 와요.”구명줄이 내려왔다 싶은 조승호는 감동한 눈빛으로 조수경을 쳐다본 후 맞장구를 쳤다.“그래, 우리 가족 앞으로 자주 오도록 하자.”두 사람의 맞장구에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지만, 강운경의 얼굴 표정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강운경의 호감을 산 조수경은 일부러 안금여의 곁에 앉았다.자리에 앉은 후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무진에게 말했다.“무진 오빠, 매일 업무로 바쁘니 공연을 보며 좀 쉬도록 해요. 공연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줄일 수도 있잖아요. 내가 여기서 할머니를 돌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요.”모든 사람들의 감정을 하나하나 살피는 듯한 모습이 조수경을 아주 세심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조금전까지 무진은 속으로 할머니를 이곳까지 데려온 조수경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들을 생각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무진은 조수경을 냉담하게 대하기가 힘들었다.그다지 친절한 음성은 아니었지만 무진은 예의상 말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군.”조수경이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했다.“번거롭지 않아요. 할머니가 즐거우시면 돼요.”무진과 이야기를 끝낸 조수경은 다시 고개를 돌려 안금여와 대화를 나누며 음성을 살짝 키워 무진이 들을 수 있게 했다.“할머니, 불
콘서트가 막 시작되려던 참에 성연도 공연이 열리는 경기장에 도착했다.비교적 앞에 위치한 성연의 자리는 소지한이 준비한 것. 당연히 공연 관람하기 아주 좋은 위치였다.자리에 앉던 성연의 눈에 VIP석에 앉아 있는 무진을 비롯한 강씨 집안 사람들과 조수경이 들어왔다.그 순간 그들 뒤에 앉아 있는 자신이 마치 외부인처럼 느껴졌다.순식간에 성연의 마음이 온갖 감정들로 들끓었다.속으로 오만 생각들이 들었다.‘무진 씨는 왜 자신과는 같이 콘서트를 보러 오지 않았지? 그리고 저 두 사람 왜 저렇게 가까이 앉은 건데?’성연은 즐거웠던 마음이 순식간에 산산이 찢어졌다.혼자 속으로 어떻게 무진 씨를 놀라게 해줄까 생각하며 천리길을 달려왔던 성연. 수업을 조기 이수하며 제일 먼저 생각한 이도 무진이었다.그런데 지금 저런 장면을 눈에 담게 되다니.입술을 꽉 깨문 성연은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강인하다고 해도 성연은 아직 어린 여자아이일 뿐이었다.이렇게 좋아하게 된 사람은 처음이었다.가슴 가득 기쁜 마음을 품고 왔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괜찮을 수 있겠는가?성연은 돌연 가슴이 답답해졌다. 서로 완전히 믿기만 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그러나 자신도 결국은 보통 사람이었다. 이런 상황을 대범하게 넘길 수가 없는.두 사람 사이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면서도 저런 모습을 보는 순간 무심히 넘길 수가 없었다.공연장 내 여기저기서 갑자기 비명이 울렸다.성연이 앞을 쳐다보니 소지한이 등장했다.화이트 셔츠에 품이 넉넉한 슬랙스 차림의 소지한. 어린 나이도 아니었지만 아주 보이시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스타일링이다.몸을 살짝 굽힌 소지한이 무대 아래의 관중들을 향해 양쪽 발을 꼰 채 한 팔은 허리 뒤로 한 팔은 넓게 벌리며 인사했다.“여러분, 반가워요!”“와아, 반가워요...”성연을 둘러싼 어린 여자 팬들이 거의 고함을 지르다시피 하며 함성을 외쳤다. 성연은 그들의 목이 상하지나 않을까 진심으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