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은 데스크 위의 기밀 서류를 전부 금고에 넣고 잠갔다.막 퇴근하려고 하는데 조수경이 방금 말한 게 생각났다. 소지한의 콘서트라니 그도 흥미가 일었다.손건호를 불러서 상황을 물어보려고 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휴대폰의 화면을 터치하는 순간 할머니의 전화라는 것을 알았다.“할머니, 무슨 일이세요?”“수경이가 나한테 함께 콘서트를 보러 가자고 하는구나. 네가 빨리 준비를 좀 해 다오.” 안금여는 소파에 앉아서 조수경이 준비한 화차를 즐겼다.안금여의 말을 듣는 무진의 마음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그는 다시 의자에 앉아서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너무 나서는 거 아닌가? 콘서트는 분명 시끄럽고 사람들도 많을 텐데, 만약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할머니의 건강이 원래 그다지 좋은 편도 아닌데, 밖에 나갔다가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면 누가 그 책임을 진다는 말인가?무진이 마음속으로 조수경을 은근히 책망했다. ‘이거 나이든 할머니에게 무슨 유치한 잔꾀를 부리는 거야?’“할머니, 콘서트는 너무 시끄러워요. 그리고 콘서트 같은 행사를 좋아하실 것 같지도 않은 데요. 연세도 많으신 데 그런 곳에 가시는 건 권하고 싶지 않아요.” 무진은 적당히 절제하며 말하면서, 할머니가 생각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랐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안금여는 불만이었다.“콘서트를 보러 가는데 뭐가 안 어울린다는 거야? 내가 나이가 많은 건 맞지만 마음은 아직 젊어. 나는 평생 콘서트를 본 적이 없어. 이제 나가서 세상을 좀 구경하려는데 왜 그러는 거냐?”안금여의 목소리에는 옅은 분노가 섞여 있었다. 들고 있던 찻잔의 차를 마시지도 않았다.“할머니, 우선 화를 가라앉히시고요. 제가 먼저 자리가 있는지 한 번 알아볼 게요. 있으면 가고 없으면 집에 계시는 거예요?안금여는 마지못한 듯이 대답했다.“그럼 빨리 알아봐,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 버릴 거야.”안금여가 전화를 끊었다.조수경이 옆에서 수시로 안금여의 찻잔에 차를 채워주었다.그들의 대화를 들으니 그
무진은 직접 운전해서 할머니 안금여를 데리러 고택으로 향했다.조수경은 무진이 온다는 소식에 속으로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얼른 위층 침실로 올라가서 입고 있던 평상복에서 흰색 원피스로 갈아입었다.허리 부분에 펀칭이 들어간 원피스는 일견 청순해 보이면서도 맨살이 살짝 비칠 때면 섹시함을 더했다. 순수한 듯 요염한 자태가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조수경이 야심만만하게 준비한 원피스였다.마지막으로 입술에 립스틱을 바른 후에 아래층으로 내려간 조수경은 다소곳하니 안금여의 앞에 앉았다.조수경의 분위기가 조금 바뀐 것 같다고 생각하는 안금여. 하지만 젊은 여자아이들이야 예쁘게 꾸미는 걸 좋아하는 게 정상이니까 하며 조수경을 놀렸다.“수경아, 갑자기 왜 이렇게 예쁘게 치장한 거야?”침실에서 나올 때 이미 말을 할 준비해 두었던 조수경은 조금도 긴장한 기색도 없이, 하지만 좀 부끄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할머니, 스타를 만나러 가는데 당연히 예쁘게 보이도록 하고 가야죠.”안금여가 웃으며 동의했다. “그건 또 그렇네.”현관문 바깥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안금여가 반응하기도 전에 먼저 일어나 현관을 나서는 조수경의 동작에 감추지 못한 조급함이 묻어났다.“제가 가서 무진 오빠가 도착한 건지 살펴볼게요.”안금여 또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우상을 만난다는 생각에 무척 흥분했나 보다 여겼을 뿐.무진이 맞았다. 출근할 때 입었던 슈트 차림의 무진은 금욕적이면서 시크해 보였다.보는 순간 강렬한 정복욕을 불러일으켰다. 조수경은 마음속으로 무진에게 어울리는 여자는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스커트 밑단을 쥔 채 무진 앞으로 총총 뛰어간 조수경은 애교가 똑똑 떨어질 듯한 음성으로 무진을 맞았다.“무진 오빠, 왔군요.”조수경을 한 차례 일별한 무진은 바로 시선을 돌리며 그녀를 지나쳐 거실 안으로 들어갔다.“할머니는?”조수경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 공들여 치장을 했는데, 강무진은 자신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강 대표님, 오셨습니까? 이쪽으로 오시죠.” 백스테이지에 있던 사람이 강무진이 표를 예매해서 입장했다는 소식에 특별히 사람을 보내 안내했다.무진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비켜섰다.“할머니, 고모, 고모부, 먼저 들어가시죠.”조수경이 안금여를 부축해서 먼저 지나간 후에 강운경과 조승호가 뒤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무진이 마지막으로 공연장에 들어섰다.공연장에 들어서자 귀청이 터질 듯한 함성이 귓가를 울렸다.“소지한!”“소지한!”“와아아!!!”엄청난 함성에 무대가 떠나갈 것 같았다.이렇게 소란스러운 장소를 좋아하지 않았던 무진은 눈살을 찌푸린 채 할머니 안금여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안금여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보이지 않자 안심했다.공연장을 꽉 채운 팬들이 화려한 LED 조명으로 빛나는 응원봉을 무대 아래에서 열정적으로 흔들어댔다.무진이 예매한 좌석은 VIP석.무대와 가깝고 시야가 가장 좋은 위치였다. 주위의 일반 관객들과 따로 구분된 위치가 아주 눈에 띄었다.무진 일행이 착석하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북성에서 너무나 잘 알려진 무진이다 보니 곧바로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다.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고 무진 일행을 촬영하기 시작했다.관객들 속에서 놀라 숨을 들이켜는 소리와 감탄의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와, 북성 제일의 셀럽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역시 우리 스타야.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세상에 강무진도 공연 보러 왔어.”“...”대형 음향기기에서 울리는 소리, 관객들의 함성 등으로 인해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하지만 이런 장소에 오게 되면 대중의 시선에 노출되는 건 불가피한 일.차분한 표정을 한 무진은 안금여의 곁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살짝 굽히며 말했다.“할머니, 조용한 발라드만 들을 수 있어요. 뒤로 가면 모두 템포가 빠른 곡들이라 격렬한 안무에 맞춰 공연할 거예요. 그 전에 우리는 돌아가도록 하죠. 음향이 너무 세서 할머니
강운경과 조승호도 안금여의 옆 자리에 앉았다. 강운경 역시 공연장 내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조금씩 흥분되기 시작했다.온 가족이 함께 이런 공연을 관람하고, 이것도 꽤 신기한 경험인 것 같았다.조승호도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띈 채 시시때때로 강운경이 건네는 말을 받아주고 있었다.“당신과 결혼하고 그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당신 날 콘서트에 초대한 적은 없었어요. 오늘 관람도 수경이 덕분이에요.” 강운경이 조승호에게 투덜대기 시작했다.조승호가 계면쩍게 웃으며 변명했다.“그 동안 일이 바빴잖아? 봐 줘.”강운경이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자 조승호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어렸다. 옆에 있던 조수경이 얼른 조승호를 거들며 끼어들었다.“고모님, 마음에 드시면 앞으로 우리 자주 와요.”구명줄이 내려왔다 싶은 조승호는 감동한 눈빛으로 조수경을 쳐다본 후 맞장구를 쳤다.“그래, 우리 가족 앞으로 자주 오도록 하자.”두 사람의 맞장구에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지만, 강운경의 얼굴 표정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강운경의 호감을 산 조수경은 일부러 안금여의 곁에 앉았다.자리에 앉은 후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무진에게 말했다.“무진 오빠, 매일 업무로 바쁘니 공연을 보며 좀 쉬도록 해요. 공연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줄일 수도 있잖아요. 내가 여기서 할머니를 돌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요.”모든 사람들의 감정을 하나하나 살피는 듯한 모습이 조수경을 아주 세심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조금전까지 무진은 속으로 할머니를 이곳까지 데려온 조수경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들을 생각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무진은 조수경을 냉담하게 대하기가 힘들었다.그다지 친절한 음성은 아니었지만 무진은 예의상 말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군.”조수경이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했다.“번거롭지 않아요. 할머니가 즐거우시면 돼요.”무진과 이야기를 끝낸 조수경은 다시 고개를 돌려 안금여와 대화를 나누며 음성을 살짝 키워 무진이 들을 수 있게 했다.“할머니, 불
콘서트가 막 시작되려던 참에 성연도 공연이 열리는 경기장에 도착했다.비교적 앞에 위치한 성연의 자리는 소지한이 준비한 것. 당연히 공연 관람하기 아주 좋은 위치였다.자리에 앉던 성연의 눈에 VIP석에 앉아 있는 무진을 비롯한 강씨 집안 사람들과 조수경이 들어왔다.그 순간 그들 뒤에 앉아 있는 자신이 마치 외부인처럼 느껴졌다.순식간에 성연의 마음이 온갖 감정들로 들끓었다.속으로 오만 생각들이 들었다.‘무진 씨는 왜 자신과는 같이 콘서트를 보러 오지 않았지? 그리고 저 두 사람 왜 저렇게 가까이 앉은 건데?’성연은 즐거웠던 마음이 순식간에 산산이 찢어졌다.혼자 속으로 어떻게 무진 씨를 놀라게 해줄까 생각하며 천리길을 달려왔던 성연. 수업을 조기 이수하며 제일 먼저 생각한 이도 무진이었다.그런데 지금 저런 장면을 눈에 담게 되다니.입술을 꽉 깨문 성연은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강인하다고 해도 성연은 아직 어린 여자아이일 뿐이었다.이렇게 좋아하게 된 사람은 처음이었다.가슴 가득 기쁜 마음을 품고 왔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괜찮을 수 있겠는가?성연은 돌연 가슴이 답답해졌다. 서로 완전히 믿기만 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그러나 자신도 결국은 보통 사람이었다. 이런 상황을 대범하게 넘길 수가 없는.두 사람 사이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면서도 저런 모습을 보는 순간 무심히 넘길 수가 없었다.공연장 내 여기저기서 갑자기 비명이 울렸다.성연이 앞을 쳐다보니 소지한이 등장했다.화이트 셔츠에 품이 넉넉한 슬랙스 차림의 소지한. 어린 나이도 아니었지만 아주 보이시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스타일링이다.몸을 살짝 굽힌 소지한이 무대 아래의 관중들을 향해 양쪽 발을 꼰 채 한 팔은 허리 뒤로 한 팔은 넓게 벌리며 인사했다.“여러분, 반가워요!”“와아, 반가워요...”성연을 둘러싼 어린 여자 팬들이 거의 고함을 지르다시피 하며 함성을 외쳤다. 성연은 그들의 목이 상하지나 않을까 진심으
소지한이 이 멘트를 날리며 웃는 표정을 짓자, 무대 아래의 팬들이 바로 웃음을 터뜨리며 고조되었던 분위기가 다소 느슨하게 바뀌었다.무진도 자리에서 일어나 가벼운 목례로 소지한에게 화답했다.이때 소지한은 무진의 곁에 앉아 있는 여자를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컹했다.자신이 성연을 위해 준비한 좌석에서는 사람들 시선을 끄는 강무진 일행을 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큰일 났군.’자신이 사고를 친 것 같았다.강무진이 오늘 자신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성연이 아닌 여자도 데리고 올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초조한 마음이 들었지만, 공연 중에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결국 아무 일도 없는 척 공연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소지한이다.첫 번째 곡은 부드러운 발라드. 데뷔 이후 늘 함께 해 준 팬들을 위해 소지한 본인이 직접 작곡한 곡이었다.소지한이 무진의 이름을 언급하자, 조수경은 그걸로 무진과 대화를 나눌 화제를 삼았다.“무진 오빠, 소지한이 오빠를 알고 있네요.”아주 편안한 자세로 좌석에 앉아 있는 무진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기운을 풍겼다.“예전에 같이 컬래버한 적이 있어.”조수경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몹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아, 아쉽네요. 좀더 일찍 WS그룹에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내 우상을 가까이서 만나볼 수도 있었을 텐데.”조수경이 방금 한 이 말은 거짓말이었다.소지한,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번 콘서트를 이용해서 무진과의 거리를 좁히고 싶었을 뿐.“기회가 있겠지.”간단히 대답한 무진이 무대를 향해 바라보자, 더 이상 말을 잇기 어려웠던 조수경 역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열심히 공연을 보는 척했다.그들 뒤에 앉아 있던 성연은 무진 쪽의 상황을 잊지 않고 관찰했다.무진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대화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성연의 눈에 들어왔다.가까이 앉은 두 사람, 아주 다정해 보였다.그때, 성연의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자신의 자리에 앉은 무진의 몸은 전혀 움직임이 없다
콘서트가 끝날 때까지 무진은 가까이서 콘서트를 관람하고 있던 성연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가까이 있었음에도.공연이 끝나고 여운이 남았던 안금여 일행은 기회가 되면 다시 이런 시간을 함께 가지자고 말했다.무진은 할머니 안금여와 조수경, 고모 강운경과 고모부 조승호를 고택까지 배웅했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평소 아주 규칙적인 일과 시간을 보내다가 오늘 늦은 시간까지 깨어 있었던 안금여는 이미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즉시 강운경의 부축 하에 안금여가 침실로 들어가자 조승호도 자신의 침실로 올라갔다.거실에는 곧 무진과 조수경 두 사람만 남았다.조수경은 무진의 맞은편에 앉았다.“무진 오빠,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소지한의 콘서트를 직접 보게 되다니. 너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무진 오빠, 정말 고마워요. 제 꿈을 이루어 줘서.”조수경의 눈이 감동의 빛으로 가득했다. 이어 새까만 두 눈이 무진을 담았다.조수경은 남자의 마음을 제대로 주무를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손민철이 그녀 주변을 뱅뱅 맴돌지 않을 것이다.남자는 자고로 남성성이 강한 존재라, 여자가 숭배와 의존의 감정을 조금만 드러내도 쉽게 동정했다.그러나 강무진은 예외였다.무진이 다소 무덤덤하게 대답했다.“별 대단한 일도 아니야. 할머니가 즐거워하셨으니 됐어.”무진의 뜻은 아주 명확하다. 가족을 위해서였지, 조수경과는 관계가 없다는 의미.무진의 말에 조수경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며 미소 또한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다음 계획을 생각하는 조수경의 눈동자가 잠시 어두운 빛을 띄었다. 그리고 금세 평소의 표정으로 되돌아왔다.조수경이 고개를 숙였다. 조명을 받은 그녀의 옆얼굴은 더 연약해 보였다.“가족을 제외하고, 이 집안 분들이 저에게 가장 좋은 분들이에요. 집에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잠시 말을 멈추고 무진을 바라보는 조수경의 눈에 물빛이 어른거렸다.“제가 따뜻함을 느낀 유일한 분들이에요. 정말 고맙습니다, 무진 오빠.”무진은 조수경이 상당히 여
조수경은 대화를 통해 자신에 대한 무진의 호감도를 한 단계 더 높이려 시도했다.그러나 무진의 마음을 차지한 사람이 있음을, 그래서 무진이 다른 마음을 품을 여지가 없음을 생각지 못했다.조수경에 대해 가진 감정은 기껏해야 동정심, 또 할머니 옛 지인의 손녀에 대한 존중일 뿐이었다.말이 별로 없는 무진은 조수경과 대화를 할 때에도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었다.늘 조수경이 서너 마디 하면 무진은 겨우 한마디 하는 정도.당연히 조수경 역시 무진이 아무런 관심이 없음을 눈치챘지만 전혀 상관없었다.그녀의 주 목적은 대화가 아니라, 무진이 와인을 마시게 하는 것이었으니까.조수경이 준비한 와인은 처음 마실 때는 아무렇지 않지만, 마시고 난 후의 뒤끝이 강했다. 머리가 어지러워지며 심하면 사고 능력을 잃거나 의식을 잃을 수도 있었다.미리 준비된 조수경의 계획이었다.아직 의식이 명료한 무진을 본 조수경이 무진의 잔에 다시 와인을 부었다.“무진 오빠, 모처럼 스트레스도 풀 겸 좀 더 마셔요. 와인에는 수면을 돕는 작용도 있대요.”와인 몇 잔에 취할 무진이 아니었기에 조수경의 속셈을 모른 채 와인을 마셨다.조수경은 재빨리 무진의 잔을 다시 채웠다.와인 병 절반 정도를 비웠다. 그 중 대부분이 무진의 식도로 넘어갔고, 조수경은 거의 마시지 않은 채 시늉만 했다.조수경은 속으로 몰래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이 정도 마셨으면 됐겠지?’‘강무진의 주량이 아무리 세도 이 와인을 이기지는 못할 거야.’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조수경은 드디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무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그러나 무진의 몸에 점점 가까이 다가갈 때, 갑자기 무진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지금 무슨 짓이야?”무진의 음성에서 매서운 한기가 느껴졌고, 얼굴 표정도 굳어 있었다.만약 조수경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면 좋았을 터. 하지만 조수경의 동작과 행동은 정말이지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 딱 좋았다.성연 외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호의를 표시해 오면 무진은 자동적으로 반감을 느꼈다
꼭두새벽에 손건호가 별장에 도착했다.성연이 코디한 무진의 정장이 후리후리한 체형에 잘 매치되자, 성연의 두 눈에는 그야말로 하트가 가득했다.‘정말 멋있어, 너무 멋있어!’손건호가 다급한 표정으로 초대장을 건네주었다.“보스, 운성시의 상공회의소에서 보낸 초대장인데, 오늘 저녁 8시에 유니버설 호텔에서의 파티입니다.”무진은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이런 초대는 매일 몇 개나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오늘 스케줄에 이건 없지?” 말을 하면서 회사로 출발할 발걸음을 재촉했다.“없습니다.” 손건호는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더듬었다.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고 손건호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 있으면 빨리 말해. 빙빙 돌리지 말고!”“예!” 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이겁니다. 오늘 밤 이 파티의 주최자가 연계진의 연운그룹입니다. 그리고 진씨 가문도 참석한다고 합니다!”무진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진씨 가문은 정말 연계진과 같은 길을 가려고 하는 모양이네. 진 백부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진교철 한 명 때문에?’“손 비서, 곧바로 진교철의 국외에서의 모든 이력을 샅샅이 조사해줘! 그리고 파티에 참석하는 걸로 저녁 일정을 바꿔!”무진의 눈빛이 변했고, 그윽하게 빛나는 눈빛에는 형언할 수 없는 예리함이 가득했다.“보스, 왜 참석하시려는 겁니까? 그러면 연계진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닙니까? 보스, 가지 마세요. 연계진에게 보스는 쉽게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손건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무진이 가볍게 웃으면서 손건호의 어깨를 토닥였다.“너는 아직 좀 어려. 연계진 그 인간이 이렇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왜 굳이 보냈겠어?”“그럼 이건 연계진이 고의로 도발한 겁니까?”고개를 끄덕이며 거실에서 나온 무진은 벤틀리를 향해 걸어갔다.손건호가 얼른 차문을 열어준 뒤 바로 운전석에 올랐다.2층 안방에서 남편이 떠나는 모습
연운그룹 빌딩 회장실.연계진은 명문가의 두 자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가문은 모두 WS그룹 자회사에 납품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전 선생님과 임 선생님께서 가문의 사람들을 설득해서 상품을 우리 연운그룹에 조달할 수 있다면, WS그룹의 가격보다 30%를 더 쳐서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전혀 이익을 보지 않고 모두 당신들에게 양보하는 거나 한가지입니다.”연계진의 가늘고 긴 두 눈이 웃는 듯 마는 듯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두 부잣집 도련님들은 크게 동요한 게 분명했다. 30%의 이윤이라면 대충 계산해도 1년에 20억 원이 넘는 이익이 더 생길 것이다.이런 이익이라면 그들은 당연히 집안 어른들 앞에서 내세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기만 한다고 자신들을 욕하지 못할 것이다.“연 회장님,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분명히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며칠의 시간을 더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일단 좋은 소식이 있으면 즉시 회장님께 연락 드리겠습니다.”두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연계진이 이렇게 좋은 조건을 제시한 것은 WS그룹과 한 판 겨뤄보겠다는 게 분명했다. 만약 WS그룹과 등을 돌리게 된다면 결과는 아주 심각할 것이다.“그렇게 하세요. 가문의 발전에 관한 큰일이니까 두 분은 돌아가서 잘 협상해 보세요. 절대 가족들의 화목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연계진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여유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그의 온몸에는 제왕의 기세가 가득해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연계진을 믿게 되었다.두 부잣집 도련님이 나가자, 조수경의 마음은 크게 동요하면서 연계진을 대하는 눈빛은 반작거렸다.‘과거에 강무진에게 꽂혔을 때는 강무진이야말로 비즈니스의 제왕이라고 생각했어.’그러나 이제는 연계진도 이렇게 사람을 매혹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강무진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라서 원한을 풀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 돕고 싶었다.‘물론 송성
이른 아침, 샤넬의 전화를 받은 성연은 임신기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연이 전통 지식들을 가르쳐 주자, 샤넬은 어리둥절하게 들으면서 목현수에게 받아 적도록 했다.“샤넬, 이건 현수 사형도 다 알아요. 사실 당신이 직접 물어보면 되는데 굳이 내게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성연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샤넬이 크게 웃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샤넬이 뽐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무진은 최근 양대 조직의 부하들을 모두 모은 뒤에 훈련을 실시했다.손건호와 서한기는 서로 팀장 자리를 놓고 한바탕 겨뤘다.서로 치열하게 경합하자 결국 무진이 나서서 두 사람이 교대로 팀장을 맡고 한 달에 한 번 교대하도록 조치했다. 이번 달에는 서한기가 팀장을 맡도록 하자, 부팀장이 된 손건호는 불만이 가득했다.최종적으로 합친 조직의 이름은 무진과 성연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진성’으로 정했다.성연은 이 명칭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진성의 이름은 곧 전국, 나아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해외의 수많은 조직에서는 보스들이 분분히 부하들에게 앞으로 ‘진성’을 만나면 처벌하지 않을 테니까 임무를 바로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이렇게 많은 준비를 한 진성의 첫 임무는 당연히 연계진을 전방위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다.“무진 씨, 이건 너무 사소한 일에 조직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거 아니에요? 한 가문에 불과한 연씨 가문이 대단한 무력을 보유할 정도는 아니잖아요?”성연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무진에게 물었다.“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적은 드러나지 않았고 우리는 드러난 상태야.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어떤 위험도 없기를 원해. 그래서 안전을 확보하려고 조사하는 거야.”최근 한동안 무진은 운성시 전체에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전개되었고, 중견 기업의 기업가들과 일부 가문들도 연계진의 포섭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약속한 이익이 매혹적이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매수되었다.물론 거절하는 쪽이 더 많았다. 그들은 모두WS그룹의 든든한 지원군으
이른 아침, 연계진은 최근에 구입한 운성의 저택 침실에 있었다.잠에서 깬 조수경은 손에 시가를 든 연계진이 창문 앞에 선 채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헐렁하고 섹시한 잠옷 차림의 조수경이 고양이처럼 가볍게 남자의 뒤로 다가가서 껴안았다.조수경은 이 남자의 능력은 무진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이 남자는 성연에게 복수하겠다는 내 소원을 반드시 실현시킬 수 있을 거야.’고개를 숙여 자신을 껴안은 두 손을 보는 연계진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일어났네!”“계진 씨, 정말로 진혜선과 결혼할 거예요?”이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소원을 이루기만 하면 된다고 일찌감치 자신에게 다짐했지만, 스킨십이 있게 되자 조수경도 다소 감성적이게 되었다.몸을 돌린 연계진의 두 눈에는 순식간에 따뜻함이 가득했다. 손에 든 시가를 끄고는 돌아서서 활짝 웃으면서 조수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이건 반드시 해야 해. 진씨 가문의 실력은 WS그룹의 모든 지지 세력 중에서 가장 강력해. 진씨 가문과 혼인할 수만 있다면, 연씨 가문이 강씨 가문을 이겨서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야!”남자는 마치 7, 8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위로하는 것처럼 천천히 완곡하게 말했다.조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당신 말을 따를 테니까 나를 잊지만 않으면 돼요!”연계진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그럴 리가. 내 가장 큰 조력자인 당신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내가 왜 가장 먼저 당신을 찾았겠어?”약속을 받자 조수경은 흡족했다.오늘이 계획 실행을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송성연, 결혼했다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너에게 가장 심각한 일격을 날려 줄게!”옷을 갈아입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조수경이 총총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연계진의 비서 서진아가 조수경을 그 감옥으로 안내하는 일을 책임질 것이다.한 시간 남짓 달려서 운성시 북쪽의 한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조수경은 절차에 따라서 접견실에서 송아연
“혜선 언니는 승낙했어요?”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진혜선의 눈빛에 걱정이 드러났지만 곧바로 웃으면서 숨겼다.“아직 승낙하지 않았어. 하지만 무진이도 알겠지만 나는 집안의 결정을 거역할 수 없어. 당연히 두 사람의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야.”“무진 씨보고 이 모든 걸 막아달라는 말이에요?”성연은 갑자기 뭔가 불편한 느낌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이건 결국 진혜선 자신의 혼사야. 내 남편이 다른 여자의 혼사에 간섭하는 건 어쨌든 좀 이상한 걸.’무진은 줄곧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진씨 가문에서 뜻밖에도 연씨 가문과 가깝게 지내기로 결정할 줄은 몰랐어. 연계진은 도대체 어떤 좋은 점을 약속한 걸까?’‘두 집안이 이미 이렇게 오랫동안 연합하면서, 진씨 가문은 줄곧 기꺼이 강씨 가문의 거대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어. 원래 진상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자립해서 가문을 이끌 수 있었지. 아니면 WS그룹에서 나오는 진씨 가문의 이익을 차단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 진씨 가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걸 선택하지 않았어.’‘지금 갑자기 태도를 바꾸다니, 이건 정말 너무 이상한데.’무진의 마음을 한순간에 간파한 듯 진혜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무진아, 진씨 가문에는 두 일가가 있다는 걸 잊지 마. 우리 장남 일가는 과거에 줄곧 차남 일가를 눌렀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강씨 가문과 함께 할 수 있었어. 그러나 최근 차남 일가에서 진교철이라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 나왔어. 진교철이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해외에서 돌아왔는데, 이번에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 일가와 관계를 끊겠다는 거야.”“형제 간의 반목으로 가문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우리 아버지는, 진교철의 요구에 동의하고는 나보고 연계진과 혼인하라고 하셨어. 아무튼 이번에는 정말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어.”이렇게 직접적인 진혜선의 SOS 요청에 무진은 다소 놀란 듯했다. ‘진혜선은 평소에 성숙하고 침착한 여장부의 모습을 보였어. 정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렇게 먼저 내게 도
진혜선이 고른 식당은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탄 뒤에야 도착했다.남쪽에서는 흔치 않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한옥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공기 중에는 은은한 풀내음이 났고, 개울가의 작은 다리와 고풍스러운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상쾌한 환경에 아주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진혜선이 성연을 보자 웃으면서 인사했다.“성연 씨 오늘 이 옷은 정말 운치가 있네. 과연 결혼한 여자야말로 진정한 매력이 넘치는 모양이야.”“혜선 언니 놀리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 언니하고 여자의 운치를 비교할 수 있겠어요?” 성연은 진혜선의 옷차림을 관찰했다. 오늘은 오히려 캐주얼한 옷차림인데, 이전에 몇 번 봤던 화려한 옷차림과는 전혀 달랐다.‘정말 아름다워. 이렇게 간단하게 꾸몄는데도 막 대학을 졸업한듯한 모습이야.’하지만 성연은 진혜선이 무진보다 두 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성연은 마음 속으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혜선 언니와 무진 씨는 자연스럽게 친근한 관계야. 그리고 탁월한 능력에 저런 미모라면 내가 남자라도 마음이 움직일 거야.’“가자, 이 식당은 예약제야. 매일 여덟 테이블의 손님만 받아.” 진혜선은 두 사람을 데리고 청룡각이라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 여덟 테이블 중에서 청룡각이 제일 먼저 공략 대상이 될 게 분명해. 예약한 사람도 아마 더 많을 것 같은데.”무진은 진혜선을 바라보았다.진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어렵긴 했어. 하지만 오늘 WS그룹 대표께서 오셨으니 이 사람들 복이기도 해!”고전적인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메뉴를 건네주자 지배인이 공손하게 말했다.“강 대표님과 사모님, 두 분께서 메뉴를 좀 봐주세요. 고르기 어려우시면 제가 메뉴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무진은 성연에게 메뉴를 건네주었다.“좋아하는 게 있는지 한번 봐.” 성연이 메뉴를 보니 요리 이름도 ‘안개비 내리는 숲’ ‘눈 덮인 호숫가’ ‘호수의 기억’처럼 남쪽 지방의 정취가 가득한 독특한
무진이 일어나려고 할 때 갑자기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자리에 앉은 무진이 손건호에게 눈빛을 보냈다.“들어오세요!”손건호가 대답했다.문이 열리자 잘생긴 젊은 남자가 들어와서 무진을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들어온 사람은 바로 소지연의 먼 친척이자 유럽지역 본부장인 소태경이다.“괜찮아요. 무슨 보고할 게 있습니까?” 무진은 평온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다소 어색해하면서 몇 초 동안 망설이던 소태경이 결국 입을 열었다.“대표님, 바로 이 얘기인데요. 제가 사전에 상황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연계진 씨의 초청에 잘못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연씨 가문과 우리 WS그룹이 아주 직접적인 경쟁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잘못된 처신을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무진은 소태경이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사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원래 그 일이었군요! 괜찮아요,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당신을 유럽 지역의 본부장으로 임명한 건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작은 일을 가지고 어떻게 소 본부장을 의심할 수 있겠어요?”무진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지만, 소태경은 무진의 동작 하나 하나가 책략을 세우는 듯한 느낌이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소태경은 조금도 기쁜 기색이 없이 계속 말했다.“다음번에는 반드시 명심하고 절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 귀국한 것도 사촌누님의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예전에 농촌에 있던 저를 데리고 나와 주셨기 때문입니다.”“효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나도 이 점을 굳게 믿습니다!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일이 마무리되면 빨리 유럽으로 가서 진두지휘하세요. 지금 MS 가문은 이미 몰락했으니 소 본부장이 실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무진의 간단한 몇 마디에 사기가 고무된 소태경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빛을 빛냈다.“제가 반드시 우리 WS그룹을 유럽에서 3위 안에 들게 만들겠습니다!”소태경이 나가
WS그룹 대표 사무실.“보스, 보스가 안 계시던 요 며칠 동안 연계진은 파티를 크게 열었습니다. 북성의 명사들을 참석하도록 초청했는데 아주 떠들썩했습니다.”“뿐만 아니라 연계진은 비밀리에 우리 회사의 두 지역 본부장을 만났습니다. 유럽 본부장으로 새로 부임한 소태경과 북미 본부장 진상철입니다.”손건호도 유럽으로 따라갔지만, 북성에 배치된 모든 정보망은 끊임없이 계속 운영되고 있었다. 돌아오자마자 바로 모든 정보를 정리해서 가장 빠르게 무진에게 보고했다.소태경, 무진은 그 이름이 익숙했다. 소지연의 먼 사촌동생으로서 전에는 소지연을 도와서 유럽 업무를 처리했다. 소지연이 잘린 뒤에도 소태경은 계속 위로 올라갔다.진상철, 이 사람도 오랜 지인이었다. 진씨 가문과 강씨 가문은 수십 년 동안 친밀한 관계를 이어 왔다. 무진이 둘째, 셋째 일가를 정리할 때 진씨 가문은 더욱 확고부동하게 무진의 모든 결정을 지지하였다. 물론 진상철은 바로 진혜선의 오빠라는 또 하나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 성격이 침착하고 업무 처리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북미 지역의 최근 2년 동안의 실적은 대단히 빠르게 늘어났다.연계진이 왜 하필 이 두 사람을 찾은 것인지 무진은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소태경만 찾았다면 오히려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결국 앞서 소지연의 일로 격노한 무진은 소씨 가문에 아주 쓰라린 교훈을 안겨주었다. 소씨 가문의 일맥인 소태경이 소지연의 복수를 생각하거나, 쉽게 모반을 획책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그러나 진상철 그는 무진보다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진상철은 이미 북미 지역에 7년을 머물렀지만 돌아온 적이 없었다. 평소에 화상회의 외에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고, 무진도 기본적으로 진상철의 어떤 일에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업적을 올릴 생각만 하는 순수한 사람이었다.“그래서 네 말은 진상철이 최근에 귀국했다는 거야?” 이 핵심을 떠올린 무진의 입꼬리가 절로 떠올랐다.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습니다. 돌아온 지 며칠
북성, 이씨 가문의 저택.눈앞의 연계진을 살펴보는 이상효의 마음이 한바탕 복잡해졌다.유난히 얌전하게 홍차를 우려낸 소지연이 이상효 앞에 공손하게 차를 들고 왔고, 곧바로 손님에게도 차를 내주었다.마치 노예처럼 마음속으로 무수한 괴로움을 겪었지만, 소지연은 발버둥칠 수도 없었다.입덧을 꾹 참은 채, 언제든지 차를 추가할 수 있도록 찻주전자를 들고 옆에서 조심스럽게 기다려야 했다.‘나를 이렇게 쓰라린 처지로 만든 건 바로 송성연이야.’ 소지연은 수없이 분노하고 저주하면서 성연이 일찍 죽기만을 기원했다.“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기회만 있다면 독사처럼 목덜미를 물어뜯겠어.”소지연의 마음은 이미 완전히 비뚤어졌다. 만약 뱃속의 아이가 아니었다면, 성연과 함께 죽을 생각도 수없이 많이 했다.지금 이상효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느꼈다. 당대에는 견줄 만한 바가 없던 결혼식에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강씨 가문의 넓은 인맥과 막강한 권세였다.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이상효가 강씨 가문을 번거롭게 만드는 걸 반대하고 나섰다.그러나 이상효는 강력한 적일수록 베어 먹는 이익은 더욱 감동적이라면서 반박하는 의견을 제기하였다.이씨 가문의 세력은 너무 작아서 이렇게 큰 운성시에서는 전혀 주류를 이루지 못했다. 그의 야심은 반드시 강력한 세력에 의지해야만 실현될 수 있었다.의심의 여지없이 지금의 연계진은 아주 좋은 기댈 만한 세력이다.연씨 가문이 이번에 남방에서 손을 썼는데,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연씨 가문이 이미 재정비하고 일어섰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아주 명확한 태도를 취했다. 물론 연씨 가문이 생각처럼 그렇게 약하지 않아서, 함께 협력하면 강씨 가문을 상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이상효에게도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연계진이 그렇게 준수하고 깨끗하게 생기지 않았다면, 이상효는 좀 더 신임했을 것이다.“연계진 씨, 예전에 강씨 가문에 내분이 일어나서 죽기 살기로 싸웠을 때, 당신은 왜 그 기회를 틈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