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은 북쪽의 작은 도시로 향했고, 성연은 해변 도시로 향했다.성연은 수하들을 데리고 멀지 않은 곳에 잠복해 있었다.화물선 한 척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달빛 아래서 사람의 그림자만 몇 개 보일 뿐이다.달아난 임원 세 명이 저 안에 있는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다만 현재 몇 명밖에 보이지 않으니 자신들이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성연은 수하들 앞에서 먼저 배에 올랐다.분명히 눈앞에 몇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배에 오르자 사람들이 창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 몇 명은 그들 가운데에 에워싸였다.이 상황을 본 성연은 자신들이 매복당했음을 알아차렸다.그러나 성연은 당황하지 않았다. 일이 이런 상황에 이른 지금 최선을 다해 대처할 수밖에 없다.인사 한 마디 없이 양측 모두 바로 움직였다.성연 쪽은 모두 최고의 고수들이다.그러나 상대방도 잘 훈련된 전문 킬러들이었다. 처음에는 성연이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 성연 쪽의 사람들이 힘에 부치는 게 분명했다.성연은 채찍을 힘껏 휘두르며 길을 뚫으려 했다.수하가 다가와 성연의 귓가에 속삭였다.“보스, 저 사람들 수가 너무 많습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성연이 왔을 때, 행적이 이미 드러났다.이 사람들은 분명히 여기에서 작정하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지금은 진퇴양난.“최대한 빠져나가야 해.” 성연은 이를 악물고는 맞은편의 검은 옷 차림의 사람을 향해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양측이 격렬하게 싸웠다.성연의 수하 하나가 힘에 밀리더니 검은 옷의 사람이 든 칼에 복부를 찔려 바다에 던져졌다.바다에 떨어지는 수하를 본 성연의 눈에 붉은 물이 들었다.‘정말이지 한 사람의 목숨이야!’성연은 계속해서 채찍을 휘둘렀다. 수하 하나를 잃은 후 성연은 무의식 중에 수하들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했다.그녀 앞의 사람들이 한 무더기로 쓰러졌다.그런데 맞은편에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몰려왔다.성연도 점차 힘을 잃었다.손도 저리기 시작했다.‘어쩌면 오늘 밤 여기
철저하게 안전을 확보한 후 차에 올라탄 성연은 간신히 냉정을 되찾고 곰곰이 생각했다.분명 자신의 정보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해 누군가가 고의로 단서를 흘린 게 분명했다.집안에 내부자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자신의 행방을 이처럼 정확하게 알고 있었겠는가?너무나 공교롭게도 말이다.성연의 정보망은 여태껏 놓친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누군가 가짜 정보를 흘린 것이 분명했다.이번 실수로 수하가 목숨을 잃었다는 생각에 성연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이쪽 일을 하는 한 늘 칼끝에 서 있는 것과 같다고 하나 그렇다고 누가 죽고 싶겠는가?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너무나 충동적으로 여기에 옴으로써 수하를 잃었다는 사실에 성연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성연의 안색이 좋지 않자 서한기가 옆에서 위로했다.“보스, 죽고 사는 문제는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게다가 이 일은 보스 책임이 아네요. 정보가 잘못되었을 줄 보스가 어떻게 알았겠어요?”성연의 눈에 냉기가 들어찼다.“배후에 있는 놈, 내가 반드시 찾아낸다. 뼈를 갈아서라도 반드시.”수하들이 자신을 둘러싸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은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을 것이다.바다에 떨어져 시산도 찾을 수 없었다.“네, 보스. 다음에는 제가 직접 정보를 확인한 후에 보고하도록 할게요.” 서한기도 얼굴 가득 미안한 표정이다.만약 이번 일로 성연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겼더라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빈 유골함으로 죽은 이를 대신해서 아수라문 내에 안장해 줘. 고향이 있는 곳을 바라보게 해서. 가족이 있으면 충분한 보상금을 지불해서 녀석이 안심하고 저승 갈 수 있게 해줘.”성연의 음성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애가 실렸다.자신들과 같은 일을 하게 되면 정말이지 목숨을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어쩌면 바로 다음 순간에 이 세상을 하직할 지도 모르는 것이다.“네, 보스.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서한기가 즉시 대답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성연은 속으로
손건호는 확실한 루트를 통해 배신한 이사 세 명이 곧 밀항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성연과 무진, 양측 모두 정보망을 통해 단서를 찾았다. 하지만 성연 측은 상대편에서 고의로 흘린 가짜 장소로 갔다.무진 일행은 성연이 갔던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차를 세우고 주위를 살폈다.항구에는 화물선과 바삐 움직이는 인부들로 가득했다.무진이 수하들을 데리고 직접 뛰어들어 수색하기 시작했다.인부들은 응당 평범한 노동자일 터.무진 일행이 들이닥치자 인부들은 바로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서 한쪽에 꿇어 앉았다.손건호가 사진을 들고 일일이 확인했지만 임원들은 보이지 않았다.설마 세 명의 이사들이 벌써 밀항을 했단 말인가?분명히 여기에는 평범한 인부들만 남아 있었다.달아난 이사 세 명이 위험에 처한다면 속수무책일 터.‘만약 강명재, 강명기가 진짜 이 세 이사들을 흡족하게 생각한다면 사람을 보호하려 하겠지?’무진은 뭔가 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쩌면 강명재가 이미 세 이사가 빠져나가도록 안배했을지도 모른다.무진은 갑판 위에 서서 한쪽에 모여 있는 인부들을 힐끗 훑어본 후에 말했다.“좀 더 찾아봐.”여기에서 찾지 못한다면, 그 세 명이 여기에 있을 리가 없으니 철수할 수밖에 없다.무진이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수하들이 화물선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손건호가 사람들을 데리고 계속해서 뒤졌으나, 한쪽 구석을 놓치고 말았다.몇 명은 갑판 위에 선 무진을 보호했다.사실 세 이사는 일반 인부로 위장해 그 무리 속에 숨어 있었다.그럴듯하게 위장한 데다가 이미 해가 진 뒤라, 무진 일행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다.세 이사 중 하나가 다른 이사 하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역시 수가 높으시군요. 아무리 강무진이 똑똑하다 해도 우리가 이런 방법을 쓸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겁니다.”치켜세워진 정 이사가 곧 득의양양하게 웃기 시작했다.“김 이사님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 오랜 세월 WS그룹에서 괜히 자리 차
무진 일행이 배에서 내리자, 화물선은 곧 바로 시동을 걸었다.무진은 움직이지 않고 배에서 내린 자리에 그대로 서서 생각했다.‘도대체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걸까? 어째서 그들을 찾을 수 없었지?’화물선이 움직이며 무진이 선 곳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자, 그렇게 찾았던 세 사람이 어둠 속에서 나와 뱃머리에 섰다.그들은 오만한 표정으로 무진을 바라보며 소리쳤다.“강무진, 생각지도 못했지? 우리가 이런 방법을 쓸 줄은?”무진이 눈을 가느다랗게 한 채 새카맣게 변한 저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 배에서 저들을 찾아내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갔다.냉소를 지은 무진이 의기양양한 세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그렇게 많은 공금을 횡령하면 어떤 댓가를 치러야 할지 당신들도 잘 알 것이다. 만약 지금이라도 알아서 먼저 자백한다면 선처해 줄 수도 있다.”“우리는 바보가 아니야. 북성을 떠난 우리를 어떻게 찾을 거야?”배 위의 한 명이 비웃으며 소리쳤다.“나를 배신하고 강명재에게 붙었지만, 강명재가 당신들에게 뭘 해 줬나? 어차피 당신들은 떠날 테니, 지금 말해도 당신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거다.”무진이 상투적인 말을 하려고 했다.세 사람에 대한 자료를 보면 전혀 자신을 배신할 사람들 같지가 않았다.그런데 이렇게 마주하고 싸우게 되다니.무진은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았다.WS그룹의 복지는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저들에게 대한 회사의 대우도 박하지 않았다.열심히 일하기만 한다면 원하는 것들 다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신을 배신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그렇게 알고 싶다면 말해 주지. 사실 우리는 WS그룹에 잠입해 있은 지 오래 되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강명재와 강명기의 사람들이었어. 두 사람은 우리의 은인이야. 이 일은 우리가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어. 목숨을 구해준 두 사람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다른 한 명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강 대표, 너무 원망하지 마라. 우리도 이럴 수밖에
이사 세 사람이 자신들은 이미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이, 배는 점점 멀어졌다.무진은 저들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저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은 무진의 수하들이 곧바로 쾌속정을 타고 쫓아갔다는 사실.무진은 조금 전 일부러 멀어지는 그들과 소리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시간을 끄는 동안 손건호에게 쾌속정으로 쫓아가게 한 것.다행히 그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 사람을 또 놓쳤을 것이다.모터 보트 몇 척이 금세 화물선을 포위하자, 이사 세 명은 거의 죽을 듯이 놀랐다.정말이지 강무진이 대책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다소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다.만약 지금 붙잡혀간다면 자신들을 기다리는 건 아마도 죽음보다 못한 고통밖에 없을 터.세 이사는 서로 쳐다보며 서로의 얼굴에 어린 당혹스러움과 망연자실한 빛을 읽었다.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다.그저 일반인들에 불과한 이사들은 신변을 보호해 주는 사람도 없어서 바로 무진의 수하들에 의해 붙잡혔다.화물선 또한 배에 오른 무진의 수하에게 키를 빼앗긴 채 해안가에 멈추었다.다시 배에 오른 무진은 조금 전까지 오만하게 소리치던 세 사람이 지금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벌벌 떠는 모습을 보니 웃기지도 않았다.조금 전 자신들이 한 말을 생각하던 세 이사도 후회막급이었다.만약 강무진이 이렇게 대책을 만들어 두고 있으리라는 걸 진작 알았다면, 절대 그런 말로 강무진을 자극하지 않았을 것이다.이제 끝났다. 붙잡혔으니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세 사람 앞으로 다가간 무진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그 돈, 어디로 빼돌렸어?”이렇게 되자 세 사람도 사실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그들은“돈은 벌써 강명재와 강명기에게 주었다. 우리한테는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아. 강 대표, 우리를 보내 줘.”무진이 냉소를 지으며 한 마디 했다.“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얌전히 회사에서 일이나 할 걸 그랬지? 그런데 그 결과는? 계산을 많이 했겠지만, 강명재와 강명기
세 사람 모두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무진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그러나 지금 자신들의 목숨이 무진의 손에 달려 있었다. 더 이상 무진에게 함부로 말하지도 못한 채 침묵으로 자신들의 달갑지 않은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무진은 저들의 표정을 통해 지금 저들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무진이 입을 열었다.“못 믿겠으면 강명재에게 전화를 걸어서 확인해 보든지. 나한테 곧 잡힐 것 같다고 연기를 해서 당신들을 지킬 사람들을 더 보내 달라고 해봐라. 그리고 강명재가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든지.”세 사람도 강무진이 말한 대로인지 아닌지 알아보고 싶었다.자신들의 기억에 따르면, 강명재와 강명기는 절대 저들이 말한 것처럼 하지 않을 것이다.강명재와 강명기가 자신들을 구해 주었으니, 두 사람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그들이 WS그룹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받은 것도 충분히 많았다.마지막에 강명재가 제시한 조건이 아니었다면 그들도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다.세 사람 중 리더 격인 박 이사가 강명재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는 강명재에게 무진이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초조한 음성으로 말했다.“강 사장님, 지금 빨리 사람을 보내 우리를 구해 줄 수 없습니까? 만약 강무진의 손에 잡히면 살아나지 못할 겁니다.”수중에 이미 돈이 들어왔는데 강명재가 저들의 목숨을 책임질 리가 없었다.그러자 전화기 저편에서 강명재가 말했다.[그렇게 된 이상 당신들 스스로 살 길을 찾아라. 절대 강무진에 잡히지 않도록 해라.]강명재의 말을 듣던 박 이사의 동공이 수축했다. 강명재가 이렇게 반응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강, 강 사장님, 사람을 보내서 우리를 지원하지 않을 겁니까?” 박 이사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한 음성으로 물었다.[내가 어디서 사람을 찾아 보내? 게다가 달아나고 아니고는 전부 당신들 운명이지,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그래?]그리고 강명재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강명재는 흡사 세 사람을 버린 자
해가 기울어지며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할 무렵. 고개를 숙인 황금 빛 논자락이 오랜 역사를 품은 이 시골 마을에 색채감을 더하고 있다.마침 하교 시간이라 삼삼오오 짝을 지어 길을 따라 늘어선 교복 차림의 아이들로 소란스러웠다.책가방을 손에 든 송성연이 아이들 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 다소 나른한 듯한 표정에 몸을 더 작아 보이게 하는 헐거운 교복, 개성을 드러내는 길이가 다른 바지자락. 개구장이처럼 묶은 포니테일의 머리가 발걸음에 따라 흔들거리며, 흠잡을 데 없이 예쁜 얼굴이 더욱 시선을 끌게 한다.길가 느티나무 아래 앉아 더위를 식히던 할아버지가 성연을 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성연이 학교 다녀오는 거냐?”“네. 학교 다녀왔어요.”성연이 웃으며 대답하고는 주머니에서 초콜릿 한 알을 꺼내 건넸다.“새로 나온 맛이에요. 드셔 보세요. 무척 달아요.”“그래.”‘허허’웃으며 받은 할아버지는 잠시 뭔가 생각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참, 네 아버지가 또 왔었다. 너를 도시에서 지내게 하려고 데리러 온 걸게야.”그 말을 듣던 성연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웃음이 사라지며, 어두워진 눈동자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집 쪽을 바라보았다.그곳에는 고급스러운 벤츠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하…… 그렇다면 좋겠네요!”성연의 입가에 한 줄기 조소가 걸렸다.성연의 부모는 어렸을 때 이미 이혼했다. 3개월도 안 되어 새가정을 꾸린 아버지는 그녀보다 한 살 어린 여동생도 데려왔다.계모는 그녀를 키울 수 없다며 집에서 쫓아냈다.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성연의 친엄마 역시 그녀를 키우려 하지 않았다.결국 성연을 불쌍하게 생각한 외할머니가 데려와 여태까지 키웠다.하지만 몇 달 전 외할머니가 돌아 가시자, 할 수 없이 엄마가 성연을 떠맡았다. 그런데 지금 남자친구와 결혼하려 안달이 난 엄마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그녀를 아버지에게 버릴 생각인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아버지 역시 성연을 키울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아니나 다를까 성연이 막 집 입
남자는 거의 1미터 90에 육박하는 키와 체중이었다.묵직한 체중에 눌린 성연이 지탱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넘어졌다.“윽, 아파!”성연에게서 숨이 터져 나왔다.등이 바닥에 완전히 닿을 정도로 넘어진 데다 위에서 누르고 있는 남자때문에 몸이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이중으로 전해지는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그러다 성연은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심하게 잘 생긴 이목구비는 성별이 모호할 만큼 정교해서 천사와 요괴 중간쯤 되는 것 같았다. 길게 뻗은 속눈썹과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 반듯한 미간을 쓸어 올리니 정신을 잃고 있는 와중에도 냉랭한 포스가 배어 나온다.꽉 다문 얇은 입술은 서늘한 호선을 그리고 있었고, 도자기 같은 피부는 병적일만큼 창백해 보였다.그때,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머리카락 사이로 남자의 이마 위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약하고 가쁜 호흡이 그녀의 얼굴 위에 뿌려졌다.몹시 초조해진 성연이 속으로 생각했다.‘아니, 이게 다 뭐람?’그러나 남자가 이미 몸을 누르고 있는 이상,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젖 먹던 힘까지 짜내 간신히 일어난 성연은 남자를 끌며 근처의 폐창고로 갔다.이 폐창고는 평소 달리 오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 성연이 망설이지 않고 피로 물든 비싼 양복과 셔츠를 재빨리 풀어헤쳤다.상처가 드러났다!복부에 위치한 새끼손가락 길이의 상처는 칼에 찔린 자상이었다. 흘린 피의 양을 봤을 때, 확실히 가벼운 상처가 아니었다.이 상황이라면 병원에 보내는 게 맞겠지만, 이 작은 마을엔 제대로 된 병원이라고는 없었다.유일하게 진료하는 보건소에서도 이 상처를 제대로 처치하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성연에게는 이 정도 상처 치료쯤 일도 아니었다. 성연은 손을 재게 놀리며 책가방을 열고 안에서 잡다한 병이랑 용기들을 꺼내었다. 남자의 상처를 깨끗이 씻고 소독한 다음 지혈을 시키고, 약을 발랐다!치료하는 모든 과정들이 아주 깔끔한 것이 매우 숙련되어 보였다.모든 처치를 끝낸 성연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