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호는 확실한 루트를 통해 배신한 이사 세 명이 곧 밀항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성연과 무진, 양측 모두 정보망을 통해 단서를 찾았다. 하지만 성연 측은 상대편에서 고의로 흘린 가짜 장소로 갔다.무진 일행은 성연이 갔던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차를 세우고 주위를 살폈다.항구에는 화물선과 바삐 움직이는 인부들로 가득했다.무진이 수하들을 데리고 직접 뛰어들어 수색하기 시작했다.인부들은 응당 평범한 노동자일 터.무진 일행이 들이닥치자 인부들은 바로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서 한쪽에 꿇어 앉았다.손건호가 사진을 들고 일일이 확인했지만 임원들은 보이지 않았다.설마 세 명의 이사들이 벌써 밀항을 했단 말인가?분명히 여기에는 평범한 인부들만 남아 있었다.달아난 이사 세 명이 위험에 처한다면 속수무책일 터.‘만약 강명재, 강명기가 진짜 이 세 이사들을 흡족하게 생각한다면 사람을 보호하려 하겠지?’무진은 뭔가 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쩌면 강명재가 이미 세 이사가 빠져나가도록 안배했을지도 모른다.무진은 갑판 위에 서서 한쪽에 모여 있는 인부들을 힐끗 훑어본 후에 말했다.“좀 더 찾아봐.”여기에서 찾지 못한다면, 그 세 명이 여기에 있을 리가 없으니 철수할 수밖에 없다.무진이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수하들이 화물선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손건호가 사람들을 데리고 계속해서 뒤졌으나, 한쪽 구석을 놓치고 말았다.몇 명은 갑판 위에 선 무진을 보호했다.사실 세 이사는 일반 인부로 위장해 그 무리 속에 숨어 있었다.그럴듯하게 위장한 데다가 이미 해가 진 뒤라, 무진 일행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다.세 이사 중 하나가 다른 이사 하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역시 수가 높으시군요. 아무리 강무진이 똑똑하다 해도 우리가 이런 방법을 쓸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겁니다.”치켜세워진 정 이사가 곧 득의양양하게 웃기 시작했다.“김 이사님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 오랜 세월 WS그룹에서 괜히 자리 차
무진 일행이 배에서 내리자, 화물선은 곧 바로 시동을 걸었다.무진은 움직이지 않고 배에서 내린 자리에 그대로 서서 생각했다.‘도대체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걸까? 어째서 그들을 찾을 수 없었지?’화물선이 움직이며 무진이 선 곳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자, 그렇게 찾았던 세 사람이 어둠 속에서 나와 뱃머리에 섰다.그들은 오만한 표정으로 무진을 바라보며 소리쳤다.“강무진, 생각지도 못했지? 우리가 이런 방법을 쓸 줄은?”무진이 눈을 가느다랗게 한 채 새카맣게 변한 저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 배에서 저들을 찾아내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갔다.냉소를 지은 무진이 의기양양한 세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그렇게 많은 공금을 횡령하면 어떤 댓가를 치러야 할지 당신들도 잘 알 것이다. 만약 지금이라도 알아서 먼저 자백한다면 선처해 줄 수도 있다.”“우리는 바보가 아니야. 북성을 떠난 우리를 어떻게 찾을 거야?”배 위의 한 명이 비웃으며 소리쳤다.“나를 배신하고 강명재에게 붙었지만, 강명재가 당신들에게 뭘 해 줬나? 어차피 당신들은 떠날 테니, 지금 말해도 당신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거다.”무진이 상투적인 말을 하려고 했다.세 사람에 대한 자료를 보면 전혀 자신을 배신할 사람들 같지가 않았다.그런데 이렇게 마주하고 싸우게 되다니.무진은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았다.WS그룹의 복지는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저들에게 대한 회사의 대우도 박하지 않았다.열심히 일하기만 한다면 원하는 것들 다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신을 배신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그렇게 알고 싶다면 말해 주지. 사실 우리는 WS그룹에 잠입해 있은 지 오래 되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강명재와 강명기의 사람들이었어. 두 사람은 우리의 은인이야. 이 일은 우리가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어. 목숨을 구해준 두 사람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다른 한 명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강 대표, 너무 원망하지 마라. 우리도 이럴 수밖에
이사 세 사람이 자신들은 이미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이, 배는 점점 멀어졌다.무진은 저들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저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은 무진의 수하들이 곧바로 쾌속정을 타고 쫓아갔다는 사실.무진은 조금 전 일부러 멀어지는 그들과 소리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시간을 끄는 동안 손건호에게 쾌속정으로 쫓아가게 한 것.다행히 그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 사람을 또 놓쳤을 것이다.모터 보트 몇 척이 금세 화물선을 포위하자, 이사 세 명은 거의 죽을 듯이 놀랐다.정말이지 강무진이 대책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다소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다.만약 지금 붙잡혀간다면 자신들을 기다리는 건 아마도 죽음보다 못한 고통밖에 없을 터.세 이사는 서로 쳐다보며 서로의 얼굴에 어린 당혹스러움과 망연자실한 빛을 읽었다.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다.그저 일반인들에 불과한 이사들은 신변을 보호해 주는 사람도 없어서 바로 무진의 수하들에 의해 붙잡혔다.화물선 또한 배에 오른 무진의 수하에게 키를 빼앗긴 채 해안가에 멈추었다.다시 배에 오른 무진은 조금 전까지 오만하게 소리치던 세 사람이 지금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벌벌 떠는 모습을 보니 웃기지도 않았다.조금 전 자신들이 한 말을 생각하던 세 이사도 후회막급이었다.만약 강무진이 이렇게 대책을 만들어 두고 있으리라는 걸 진작 알았다면, 절대 그런 말로 강무진을 자극하지 않았을 것이다.이제 끝났다. 붙잡혔으니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세 사람 앞으로 다가간 무진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그 돈, 어디로 빼돌렸어?”이렇게 되자 세 사람도 사실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그들은“돈은 벌써 강명재와 강명기에게 주었다. 우리한테는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아. 강 대표, 우리를 보내 줘.”무진이 냉소를 지으며 한 마디 했다.“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얌전히 회사에서 일이나 할 걸 그랬지? 그런데 그 결과는? 계산을 많이 했겠지만, 강명재와 강명기
세 사람 모두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무진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그러나 지금 자신들의 목숨이 무진의 손에 달려 있었다. 더 이상 무진에게 함부로 말하지도 못한 채 침묵으로 자신들의 달갑지 않은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무진은 저들의 표정을 통해 지금 저들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무진이 입을 열었다.“못 믿겠으면 강명재에게 전화를 걸어서 확인해 보든지. 나한테 곧 잡힐 것 같다고 연기를 해서 당신들을 지킬 사람들을 더 보내 달라고 해봐라. 그리고 강명재가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든지.”세 사람도 강무진이 말한 대로인지 아닌지 알아보고 싶었다.자신들의 기억에 따르면, 강명재와 강명기는 절대 저들이 말한 것처럼 하지 않을 것이다.강명재와 강명기가 자신들을 구해 주었으니, 두 사람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그들이 WS그룹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받은 것도 충분히 많았다.마지막에 강명재가 제시한 조건이 아니었다면 그들도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다.세 사람 중 리더 격인 박 이사가 강명재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는 강명재에게 무진이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초조한 음성으로 말했다.“강 사장님, 지금 빨리 사람을 보내 우리를 구해 줄 수 없습니까? 만약 강무진의 손에 잡히면 살아나지 못할 겁니다.”수중에 이미 돈이 들어왔는데 강명재가 저들의 목숨을 책임질 리가 없었다.그러자 전화기 저편에서 강명재가 말했다.[그렇게 된 이상 당신들 스스로 살 길을 찾아라. 절대 강무진에 잡히지 않도록 해라.]강명재의 말을 듣던 박 이사의 동공이 수축했다. 강명재가 이렇게 반응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강, 강 사장님, 사람을 보내서 우리를 지원하지 않을 겁니까?” 박 이사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한 음성으로 물었다.[내가 어디서 사람을 찾아 보내? 게다가 달아나고 아니고는 전부 당신들 운명이지,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그래?]그리고 강명재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강명재는 흡사 세 사람을 버린 자
해가 기울어지며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할 무렵. 고개를 숙인 황금 빛 논자락이 오랜 역사를 품은 이 시골 마을에 색채감을 더하고 있다.마침 하교 시간이라 삼삼오오 짝을 지어 길을 따라 늘어선 교복 차림의 아이들로 소란스러웠다.책가방을 손에 든 송성연이 아이들 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 다소 나른한 듯한 표정에 몸을 더 작아 보이게 하는 헐거운 교복, 개성을 드러내는 길이가 다른 바지자락. 개구장이처럼 묶은 포니테일의 머리가 발걸음에 따라 흔들거리며, 흠잡을 데 없이 예쁜 얼굴이 더욱 시선을 끌게 한다.길가 느티나무 아래 앉아 더위를 식히던 할아버지가 성연을 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성연이 학교 다녀오는 거냐?”“네. 학교 다녀왔어요.”성연이 웃으며 대답하고는 주머니에서 초콜릿 한 알을 꺼내 건넸다.“새로 나온 맛이에요. 드셔 보세요. 무척 달아요.”“그래.”‘허허’웃으며 받은 할아버지는 잠시 뭔가 생각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참, 네 아버지가 또 왔었다. 너를 도시에서 지내게 하려고 데리러 온 걸게야.”그 말을 듣던 성연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웃음이 사라지며, 어두워진 눈동자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집 쪽을 바라보았다.그곳에는 고급스러운 벤츠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하…… 그렇다면 좋겠네요!”성연의 입가에 한 줄기 조소가 걸렸다.성연의 부모는 어렸을 때 이미 이혼했다. 3개월도 안 되어 새가정을 꾸린 아버지는 그녀보다 한 살 어린 여동생도 데려왔다.계모는 그녀를 키울 수 없다며 집에서 쫓아냈다.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성연의 친엄마 역시 그녀를 키우려 하지 않았다.결국 성연을 불쌍하게 생각한 외할머니가 데려와 여태까지 키웠다.하지만 몇 달 전 외할머니가 돌아 가시자, 할 수 없이 엄마가 성연을 떠맡았다. 그런데 지금 남자친구와 결혼하려 안달이 난 엄마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그녀를 아버지에게 버릴 생각인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아버지 역시 성연을 키울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아니나 다를까 성연이 막 집 입
남자는 거의 1미터 90에 육박하는 키와 체중이었다.묵직한 체중에 눌린 성연이 지탱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넘어졌다.“윽, 아파!”성연에게서 숨이 터져 나왔다.등이 바닥에 완전히 닿을 정도로 넘어진 데다 위에서 누르고 있는 남자때문에 몸이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이중으로 전해지는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그러다 성연은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심하게 잘 생긴 이목구비는 성별이 모호할 만큼 정교해서 천사와 요괴 중간쯤 되는 것 같았다. 길게 뻗은 속눈썹과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 반듯한 미간을 쓸어 올리니 정신을 잃고 있는 와중에도 냉랭한 포스가 배어 나온다.꽉 다문 얇은 입술은 서늘한 호선을 그리고 있었고, 도자기 같은 피부는 병적일만큼 창백해 보였다.그때,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머리카락 사이로 남자의 이마 위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약하고 가쁜 호흡이 그녀의 얼굴 위에 뿌려졌다.몹시 초조해진 성연이 속으로 생각했다.‘아니, 이게 다 뭐람?’그러나 남자가 이미 몸을 누르고 있는 이상,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젖 먹던 힘까지 짜내 간신히 일어난 성연은 남자를 끌며 근처의 폐창고로 갔다.이 폐창고는 평소 달리 오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 성연이 망설이지 않고 피로 물든 비싼 양복과 셔츠를 재빨리 풀어헤쳤다.상처가 드러났다!복부에 위치한 새끼손가락 길이의 상처는 칼에 찔린 자상이었다. 흘린 피의 양을 봤을 때, 확실히 가벼운 상처가 아니었다.이 상황이라면 병원에 보내는 게 맞겠지만, 이 작은 마을엔 제대로 된 병원이라고는 없었다.유일하게 진료하는 보건소에서도 이 상처를 제대로 처치하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성연에게는 이 정도 상처 치료쯤 일도 아니었다. 성연은 손을 재게 놀리며 책가방을 열고 안에서 잡다한 병이랑 용기들을 꺼내었다. 남자의 상처를 깨끗이 씻고 소독한 다음 지혈을 시키고, 약을 발랐다!치료하는 모든 과정들이 아주 깔끔한 것이 매우 숙련되어 보였다.모든 처치를 끝낸 성연은 다
반쯤 눈을 뜬 채 생각하던 강무진은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이 기억나기 시작했다.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적의 흉계에 걸려 이 작은 마을까지 오게 되었다.당시 골목에서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를 만나 구조를 요청했었다.결국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의식을 잃었고!“목숨은 건졌나 보군!”고요한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임무 중 상대의 계략에 빠졌던 것은 팀 내의 스파이가 적에게 정보를 팔아먹었기 때문이다.기억을 떠올리던 강무진의 얼굴이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손목시계의 버튼을 눌러 구조 신호를 보냈다.약 20분 뒤, 창고 밖에서 일사불란한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곧이어 검은 옷의 한 무리가 우르르 들어왔다.강무진을 본 수석비서 손건호는 다소 감정이 격해지면서 바짝 긴장했다.“보스, 괜찮으십니까? 제가 애들을 데리고 보스를 한참 찾고 있었습니다! 보스 상처는 어떻습니까?”“괜찮아, 이미 처치했어!”잔뜩 잠긴 음성은 무심한 듯 냉담함이 배어 있는 어조였다. 미간에는 타고난 위압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그는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자, 상태를 살표보고 있던 손건호가 얼른 부축했다.강무진의 상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창백했던 얼굴에 혈색도 약간 돌아와 있었다.“보스, 보스 상처는…… 누가 처치했습니까?”손건호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강씨 집안 후계자 강무진은 오랫동안 수면장애를 앓아 왔다. 집안에서는 세계 명의들은 모두 찾아 모셔왔지만, 근본적인 치료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부상을 당한 강무진이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상처로 인해 반 송장이 되어 있지는 않을까 걱정하던 차였다.그런데 이렇게 기운이 생생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질문을 받은 무진도 잠시 멍하다가 곧바로 기억을 되살렸다. 정신을 잃기 직전, 희미한 약 냄새를 맡았던 같았다. 그러다가 바로 의식을 잃었고.막 대답하려던 그는 ‘어'하는 손건호의 음성을 들었다.“이건 뭐지?”그리고 허리를 굽힌 손건호가 건초 더미에서 향낭을 하나 집어 올렸다.은은한 약향이
당시에는 나이가 어려서 쫓겨나도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다 자란 지금은 다르다. 누구도 자신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성연의 말을 들은 송종철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너…… 너는 정말 싹수가 없구나!”성연은 그 말에도 아랑곳없이 몸을 돌려 자신의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트렁크를 끌고 집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제 방은 어디예요? 피곤해서 좀 쉬고 싶네요!”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송종철은 이 큰딸이 더 싫어졌다.그런데도 데려왔다. 그리고…… 지금 송씨 집안은 성연을 이용해 위기를 넘겨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거실에서 마스크 팩을 쓴 채 피부관리를 하고 있는 계모 임수정과 피아노를 치고 있는 의붓 여동생 송아연이 눈에 들어왔다.이 두 모녀는 예쁘장한 외모가 무척 닮았다.특히 송아연은 상큼한 얼굴에 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 덕택에 고상한 분위기를 지녔다.작은딸을 보는 송종철의 눈에 자랑스러운 빛이 가득했다.성연을 돌아보니, 낡아빠진 교복을 입고 온몸에 말로 표현 안되는 거친 기운이 넘실거렸다. 건들건들 책가방을 들고 저쪽에 서 있는 폼이 아주 비딱해 보였다.둘을 비교해 보려던 송종철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을 느꼈다.앞에 걸어가던 성연의 뒤에서 송종철이 소리쳤다.“나 왔어.” “아빠, 오셨어요?”건반을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춘 송아연이 먼저 반가운 기색으로 고개를 들었다.임수정 역시 돌아보며 말했다.“어떻게 이제 왔어요? 나는 당신이 또 진미선 그 여자를 못 잊어서 못 오나 했는데…….”말을 막 끝내며 돌아보던 그녀의 눈에 뒤편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성연이 보였다. 순간 표정이 돌변한 임수정이 손으로 마스크 팩을 뜯어내며 노발대발했다.“송종철, 당신 무슨 짓이야? 내가 말했지? 데려오면 안 된다고. 당신 뭐 때문에 얠 데려온 거야? 우리집에 얘가 들어와도 된다고 생각해?”눈살을 찌푸린 송아연도 일어서며 불만스럽게 말했다.“그래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