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64화

Author: 류한나
민시후에게 여러 번이고 연락해보았지만 잠잠무소식이었다.

고은서는 그에게 할 말이 있다고 시간이 되면 병원에 들르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폰을 내려놓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박지연이 아침을 들고 들어왔다.

“공주님, 아침 드세요.”

박지연은 아이를 달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고은서는 박지연이 행여나 자신이 또 흥분해 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박지연을 달랬다.

“나 진짜 괜찮아. 밤새 당직 서면서 힘들었을 텐데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서 쉬어.”

박지연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럼 오후에 다시 보러 올게. 너 대신 괜찮은 간병인 한 명 청했으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수시로 말하면 돼.”

“내가 움직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간병인까지 청할 필요 없어.”

“그냥 내 말 들어.”

박지연이 고집부렸다.

“여자는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너도 계속 말했었잖아.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라 생각하고 그냥 받아들여.”

“네네, 아름다운 미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아침 식사 후, 박지연이 청한 간병인이 도착했다.

고은서는 간병인에게 일상용품 구매를 부탁한 뒤 창가에 가서 바람이라도 쐴 생각이었다. 너무 오래 누워있은 탓에 몸이 뻐근해서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싶었다.

그러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어젯밤에 다친 발등이 아파왔다. 양말을 벗어보니 발등에는 큰 멍이 들어 있었다.

“사모님, 발등도 다치셨어요?”

바로 이때, 주민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은서는 어제저녁 제때 나타난 주민기에게 은근히 고마웠다. 그래서 그를 대하는 태도도 저도 모르게 온화해졌다.

“괜찮아요. 나중에 약 바르면 돼요.”

주민기는 손에 있던 도시락통을 상 위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사모님, 이건 아줌마가 사모님을 위해 끓인 죽과 디저트들이에요.”

고은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 화내면서 문을 박차고 나간 사람이 오늘 아줌마한테 이런 걸 부탁한다고?’

“아줌마가 다 사모님께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어게인, 비긴   제365화

    고은서가 말했다.“곽승재가 사인한 이혼서류를 저한테 전해주라고 안 하던가요?”“그런 명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주민기는 아주 담담해 보였다.“그럼 직접 구청으로 가겠단 뜻인가요?”고은서가 캐물었다.주민기는 여전히 표정 한 번 변하지 않고 아주 담담하게 대답했다.“죄송합니다, 사모님. 대표님의 결정은 저도 잘 모릅니다.”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이런 모욕을 느낀 적이 없는 곽승재가 흔쾌히 이혼해줄 리가 없다는 것을 고은서는 이내 깨달았다.“실장님!”고은서가 주민기에게 무언갈 부탁하려고 할 때 간병인 같은 사람 한 명이 달려오면서 그를 찾았다.“백유미 씨께서 상처가 너무 아프다면서 실수로 아침을 엎어버렸어요. 그리고 지금은 진통제를 달라고 하시는데 제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물어보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역시 곽승재가 아줌마한테 내 아침까지 부탁할 리가 없지. 백유미 아침을 준비하면서 겸사겸사 내 아침까지 준비한 거였네.’고은서는 헛웃음을 쳤다.방금전까지 담담하던 주민기가 얼굴빛이 확 변하더니 간병인을 질책하기 시작했다.“일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했잖아요. 왜 직접 찾아오고 난리세요.”간병인이 황급히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실장님. 백유미 씨가 계속 재촉하시고 또 폰 배터리가 다 나가는 바람에 간호사한테 물어보고 직접 찾아올 수밖에 없었어요.”“볼 일이 있으시면 먼저 가보세요. 그리고 아침도 필요 없으니까 가져가세요.”고은서가 말했다.주민기는 고은서가 오해했다는 걸 알고 황급히 설명했다.“사모님, 아침은 대표님께서 직접 아주머니한테 부탁하셔서 준비한 거예요. 게다가 다 사모님께서 좋아하시는 거로...”“알겠으니까 더는 이런 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전해주세요. 제가 어떻게 감히 이런 아침을 먹겠어요.”어떤 설명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주민기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편히 쉬세요”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간병인과 함께 병실에서 나갔다....GS 그룹 대표 사무실.주민기는 어두운

  • 어게인, 비긴   제336화

    “어제저녁에 병원은 왜 안 온 거야? 곽승재가 너한테 아이에 관해서 물어봤어?”고은서가 물었다.민시후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화를 냈다.“나도 너 따라 병원에 가려고 했어. 그런데 곽승재가 사람 시켜서 내 차를 막아서 못 간 거라고. 내가 가서 설명하려고 할 때 어떤 눈치 없는 사람이 우리 둘 소문을 퍼뜨리는 바람에 주가가 영향받을까 봐 밤새 그 일을 처리하고 왔어.”고은서는 어리둥절했다.“우리 둘 소문?”“네가 직접 봐.”민시후는 폰을 고은서에게 던져주면서 말했다.폰 화면에는 “ZY 그룹 민시후가 GS 그룹 사모님을 탐내다”라는 애매한 제목을 가진 기사가 떠 있었다.밑에는 클럽에서 나오는 세 사람의 모습이 찍힌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사진 속 민시후는 정신을 잃은 고은서를 안고 가는 곽승재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기사를 퍼뜨린 사람은 민시후가 고은서를 빼앗으려다가 곽승재한테 맞았다면서 그의 얼굴에 있는 상처를 특별히 강조했다.더 어이가 없었던 건 전에 민시후랑 함께 호텔 로비로 들어가는 사진까지 공개가 되었다. 기사에서는 두 사람이 바람도 당당하게 피울 만큼 다정하다고 지껄였다.민시후가 제때 처리하지 않았더라면 해성 사람들 전체가 알게 되었을 것이다.‘곽승재가 화를 낸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 그리고 호텔에서 있었던 일도 민시후가 말한 게 아니라 기사를 보고 알았던 거네.’“이 기사를 퍼뜨린 사람이 누군지는 찾았어?”고은서가 물었다.클럽에서 찍힌 사진은 우연이라고 해도 호텔에서 찍힌 사진은 무려 두세 주일이나 지났는데 갑자기 함께 퍼뜨렸다는 게 너무 수상했다. 게다가 하필 곽승재가 고은서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타이밍에 말이다.민시후는 눈살을 찌푸리고 답했다.“아직 못 찾았어.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퍼뜨린 거라 IP 추적도 불가능해.”고은서는 이 모든 일이 백유미가 꾸민 짓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백유미도 그날 심하게 다친 탓에 이 모든 걸 혼자 했을 리는 없어. 꼭 조력자가 따로 있는 게 분명해.’“송민아한

  • 어게인, 비긴   제367화

    비록 고은서도 백유미에게 함정을 파놓긴 했지만 그녀가 또 다른 일을 꾸미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고은서는 자신의 자유와 배 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빠른 시간 내에 이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그러나 곽승재의 태도를 보아서는 평화롭게 이혼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고 이혼 소송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곽승재라는 이름만 들어도 겁을 먹고 거절했겠지만 민시후는 달랐다.민시후는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도와주는 건 되는데 계속 그 조건이야. 나랑 함께 내 혼사를 막아주는 거.”“민시후, 지금 송민아 앞에서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온 해성에 소문 날 정도로 일이 커졌는데 네 혼사까지 책임져 달라고? 지금 내가 덜 비참해 보여서 그러는 거야?”민시후는 피식 웃으면서 반박했다.“설마 아무런 조건도 없이 도와달라는 건 아니지? 곽승재가 그렇게 건드리기 쉬운 사람도 아니고 지금쯤 날 어떻게 엿먹일지 계획 중일 수도 있어.”“두 사람 내가 아니어도 원래부터 사이가 안 좋았잖아. 변호사 한 명만 소개해달라는데 너한텐 엄청 쉬운 일이잖아. 이번 한 번만 도와줘.”고은서는 사실을 콕 짚어 말했다.“그렇게 쉬운 일이면 네가 직접 찾을 것이지 왜 나한테 부탁하는 건데.”민시후가 되물었다.고은서는 민시후가 자신의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네 혼사를 막아주는 건 못하겠지만 송민아 앞에서 연기하는 게 노력해서 계속해줄 수 있어.”“고은서, 굳이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어?”민시후는 건들건들하게 말했다.“아무튼 지금 네 배 속의 아이가 다 내 아이라고 믿는 있는 상황이잖아. 이 기회를 잡고 윈윈하면 되는 거야.”그러나 고은서는 자신이 이 일에 참여하는 순간 민씨 가문과 송씨 가문의 분노가 자신을 향해 타오를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이혼만 하고 싶었을 뿐, 더 큰 곤경에 빠지고는 싶지 않았기에 단연코 거절했다.“못하겠어.”민시후도 따라 그녀의 부탁을 거절했다.“나

  • 어게인, 비긴   제368화

    무방비 상태에서 곽승재에게 한 방 맞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이마에도 상처가 있었던지라 민시후는 곽승재에게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얼마 후, 곽승재는 있는 힘껏 민시후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민시후는 뒤걸음을 치다가 끝내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민시후의 입가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는데 곽승재는 전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가 계속 다가가 민시후를 때리려고 할 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고은서가 마지못해 일어나서 그를 말렸다.“그만해!”그녀는 소리를 지르면서 민시후 앞에 막아섰다.“곽승재, 너 미쳤어? 왜 갑자기 사람을 때리고 난리야!”두 팔을 벌리고 민시후를 지키려고 하는 고은서를 본 곽승재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몇 주 전까지만 해도 그가 다칠까 봐 대신 술병을 막아주던 고은서가 그를 두고 민시후를 먼저 지키려고 한다는 걸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그는 술병을 대신 막아준 일로 고은서가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렸었다.비록 고은서가 다른 사람이었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했었지만 그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그러나 고은서가 현재 민시후를 위해 그를 비난하다니. 전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곽승재는 가슴이 큰 돌덩이에 깔리기라도 한 듯 답답하고 숨이 막혀왔다.“고은서, 나랑 이혼하고 이 자식이랑 결혼할 생각인 거야? 꿈도 꾸지 마. 절대 그렇게 될 일은 없을 테니까!”곽승재는 말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땅에 팽개치고 화를 내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고은서는 곽승재를 관심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녀는 땅에 넘어진 민시후를 일으키며 물었다.“괜찮아?”민시후는 감각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파오는 얼굴을 부여잡고 입가의 피를 닦으면서 화를 냈다.“그걸 말이라고 물어보는 거야? 지금 이 모습이 괜찮은 사람 같아? 이번 일 책임은 너희 부부 두 사람 중 누구 몫이야?”고은서는 평소 쉽게 화를 내지 않던 곽승재가 갑자기 뛰어 들어와 민시후를 팰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었다.‘세컨드의 위력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 어게인, 비긴   제369화

    오후에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은 박지연은 깜짝 놀랐다.“곽승재랑 민시후가 싸웠다고? 아내를 보내주기 싫어서 화낸 건가?”“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고은서가 박지연을 째려보면서 말했다.“민시후가 변호사를 찾아준다고 했으니까 요 며칠 필요한 절차를 확인한 후에 정식으로 이혼 소송을 걸 거야.”“진짜 소송까지 가야겠어? 소송을 걸면 법원에서 만나는 사이가 되잖아.”박지연이 조심스레 물었다.고은서는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대답했다.“나도 소송까지는 가고 싶지 않았어. 전에는 얼마 지나지 않으면 쉽게 이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도 이혼서류에 사인해주지 않잖아. 나도 더는 끌고 싶지 않아.”이어 고은서는 출국하려는 결정을 박지연에게 알려줬다.“갑자기 우리 엄마가 이해되더라. 아무튼 재혼할 생각도 없는데 스스로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것도 딱히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할아버지께선 동의하셔?”박지연이 물었다. 그녀의 물음을 들은 고은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엄마가 싱글맘으로 어렵게 살아온 걸 직접 목격한 고준석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의 손녀딸까지 똑같은 힘든 길을 선택했다고 속상해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날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이해해주실 거야.”고은서는 스스로를 위안하듯 혼자 중얼거렸다.“고은서, 지금이라도 모든 걸 사실대로 곽승재에게 말하면 지금처럼 힘들게 이혼할 필요도 없고 고민할 필요도 없어. 현재 곽승재도 너에게 감정이 생겼다고 하지, 또 미자 할머니도 널 무척 아끼시잖아. 당당하게 아이를 낳고 키우면 되는 거야.”고은서는 박지연의 말이 도리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전미자가 비록 아이를 빨리 가지라고 재촉한 적은 없지만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면 무척 기뻐할 게 분명했다. 고준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이 모든 일이 전생에 일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을까.’고은서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지연아, 나 더는 주눅이 들어 살고 싶지 않아. 나도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

  • 어게인, 비긴   제370화

    아무 대답도 얻지 못한 육현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형, 나 술 가지러 갔다 올게.”육현석은 말하고 가만히 구석진 곳에 가서 고은서의 일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박지연에게 연락했다.박지연도 이내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세요, 육현석 씨?”“박지연 씨, 혹시 형이랑 형수님 다투었어요? 오늘 형이 같이 술 마시러 가자고 해서 왔는데 형이 엄청 불쾌해 보이는데 또 물어보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박지연은 한참 생각하다가 요 며칠 있었던 일을 간단명료하게 그에게 전했다.“그러니까 형수님이 임신했는데 아이 아빠가 형이 아니란 말이에요?”육현석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네, 그냥 예상치 못한 사고였던 거 같아요. 곽 대표님 잘 달래보세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면 이혼하면 되는 거고요.”박지연은 당연하게도 고은서를 배신하지 않았다.“...”육현석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는 이혼하라고 곽승재를 달랠 담이 없었다.통화를 마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보니 그 짧은 사이에 테이블은 이미 술병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곽승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끊임없이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그 모습을 육현석이 용기를 내어 그의 술잔을 빼앗으려 했다.“형, 그만 마셔. 이러다 형 쓰러져!”그러나 곽승재는 술잔에 한이라도 맺힌 듯 뚫어지라 쳐다보면서 전혀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육현석도 차마 강제로 술잔을 빼앗을 엄두가 나지 않아 손을 놓았다.그러나 손을 놓는 순간, 팍하는 소리와 함께 곽승재가 손으로 술잔을 깨뜨렸다.“형, 손 괜찮아?”육현석이 황급히 곽승재의 손을 확인해 보니 그의 손바닥은 이미 수많은 유리 조각들이 박혀있었고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형, 얼른 병원으로 가자!”육현석이 당황해하며 곽승재를 일으키려고 할 때 곽승재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의 손을 뿌리치고 새 술잔을 들고 또 술을 마셨다.곽승재의 주변의 분위기가 한 층 더 살벌해진 것 같았다. 육현석은 그를 끌고 병원으로 가기는커녕 그를 설득할 용기도 없었다.한참 고민 끝에

  • 어게인, 비긴   제371화

    오늘의 운세를 확인했던 걸 하며 후회하는 육현석이었다.특별히 주문 제작한 핸드폰은 곽승재로 인해 폐기되는 결말을 맞이했다.유심 카드를 꺼낸 육현석이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형, 아무리 화가 나도 형수님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진짜인 줄 오해한단 말이야.”곽승재는 정말 폭발 직전에 놓여 있었다.“내가 한 말 모두 진심이야!”“그래, 그래. 진심이야.”육현석은 더 이상 곽승재에게 따지지 않고 그의 말에 맞장구치며 웨이터에게 지혈제와 반창고를 가져오게 했다.다양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술집답게 기본적인 약물은 모두 갖춰져 있었다.곽승재의 비협조 속에서 육현석은 그의 손바닥에 지혈제를 발라주고 반창고 몇 개를 겨우 붙여 지혈할 수 있었다.한바탕 고군분투 끝에 곽승재는 드디어 조용해졌다. 그는 피곤한 듯 의자에 기대어 있었는데 검은 눈동자는 심연처럼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고 손에는 여전히 술잔을 든채 기울이고 있었다.“형, 확실히 조사한 거 맞아? 형수님이 임신한 아이 정말 형 아이는 아니야?”육현석이 말을 이었다.“형수님이 그렇게 방탕한 사람은 아니잖아.”곽승재의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본인이 인정했어.”육현석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형수님이 혹시...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닐까?”“내가 직접 민시후가 자신의 아이이니 고은서한테 결혼하자고 하는 말을 들었어!”여기까지 말을 마친 곽승재는 화가 치밀어 올라 고은서를 죽여버리고 싶었다.‘내가 민시후와 사이좋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 그 새끼랑 어울리면서 아이까지 만들다니!’“사람 시켜서 민시후 다리 분질러버려.”곽승재의 눈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남은 생은 휠체어를 타게 만들어야 누굴 건드렸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앞으로 다른 사람도 건드리지 못하겠지.”육현석은 곽승재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는 지금 평소와는 달리 엄격하고 이성적인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육현석은 어쩔 수 없이 인내심을 가지고 설득했다.“형, 민시후 다

  • 어게인, 비긴   제372화

    민시후가 싸늘히 웃으며 답했다.“다른 이유가 있겠어? 송민아를 위해 나서서 나한테 경고하는 거 아니야?”송민준도 웃었다.“너희들을 소란스럽게 만들어서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민아는 그냥 너랑 결혼하고 싶은 거야. 그러면 우리 가족들도 그걸 고려하지 않을까?”민시후는 송민준의 말에 넋이 나갔다.송민준이 송민아의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나서서 소란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송민준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은 믿지 않았다.송민준은 감추는 게 많았고 평소 일 처리 방식도 독특했다.그는 아무 이유 없이 클럽에 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공교롭게 고은서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송민준의 말이 사실이라면 임철원이 그렇게 빨리 사람을 데리고 복수하고 도망친 건 누가 뒤에서 도와준 거지?’“넌 내가 갑자기 찾아온 게 의아하지 않은 가 보네? 어젯밤 일에 대해서도 훤히 꿰뚫고 있고.”민시후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송민준은 평소처럼 여유로운 표정으로 답했다.“나도 관련 게시물을 봤거든. 네가 보면 오해할 것 같았어. 어제 클럽에 간 건 단순히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야. 그런데 그 친구가 갑자기 일이 생겨 먼저 갔는데 나도 더 이상 거기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지. 시후야, 오히려 내가 묻고 싶어.”송민준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민시후는 긴장을 풀고 다른 의자에 다리를 걸치며 답했다.“물을 필요 없어. 고은서가 임신한 건 사실이야.”송민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애야?”“그럼?”“민아 쪽은 어떻게 할 예정이야?”“어차피 혼사는 너희들이 멋대로 결정한 거니 나랑은 상관없어. 나는 단 한 번도 민아랑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시후 오빠!”송민준이 뭐라 하기도 전에 화가 난 송민아가 찻집 병풍 뒤에서 뛰쳐나왔다.“고은서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그 여자 때문에 나랑 파혼하겠다는 거예요?”갑자기 나타난 송민아였음에도 민시후는 그저 놀란 표정을 지었을 뿐 이내 평소의 모습으로 되

Latest chapter

  • 어게인, 비긴   제936화

    “뻔뻔한 건 너지.”고은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날 용서한다고 해? 나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었잖아. 그냥 내가 이혼 얘기를 꺼내니 갑자기 사랑에 빠진 척 후회하는 척하면서 나를 붙잡고 늘어진 거잖아. 네가 그렇게 끝까지 매달리지 않았으면 내가 왜 이런 일까지 했겠어!”“너...”“곽 대표님, 은서야.”곽승재가 분노로 말을 잇지 못할 때 갑자기 밖에서 여시은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가 시선을 돌리자 서류를 품에 안은 여시은이 차 밖에 서 있었다.그녀는 평소처럼 단아하고 사랑스러운 복장 대신 정장에 가까운 오피스룩을 입고 있었고 여전히 검은 생머리를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있었다.고은서가 바라보자 여시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은서야, 아빠가 나를 판주 투자은행 쪽에 보내서 곽 대표님 비서를 하게 됐어. 보고 배우라고 보내신 거지. 오늘도 회의가 있어서 내려와서 일정 조율하려고 곽 대표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직 할 얘기가 남았으면 먼저 올라가서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알릴게.”여시은은 배려 깊은 척 말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고은서가 거절할 틈도 없이 곽승재가 차갑게 말했다.“일이 우선이죠. 좌천된 몸인데 일이라도 제대로 해야죠.”곽승재의 말에 고은서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곽승재가 판주 투자은행으로 온 건가?’판주 투자은행은 GS 그룹에서 인수한 투자은행에 불과했다.그룹 대표였던 그가 여기로 왔다는 건 단순한 강등이 아니라 사실상 유배당한 거나 다름없었다.방금까지 곽승재에게 쏟아냈던 분노가 가라앉고 죄책감이 밀려왔다.곽승재는 GS 그룹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그런데 이제 본사에 남을 수도 없게 됐다면 그 심정이 어떨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곽승재는 이미 차에서 내려 로비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여시은은 바로 따라가지 않고 고은서를 향해 미안한 듯 미소 지었다.“은서야, 우리도 오래 못 봤네. 요즘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고 들었어. 오늘은 일이 있어

  • 어게인, 비긴   제935화

    사람을 부르려던 곽승재가 고은서의 말에 그녀를 바라보았다.곽승재의 새까만 눈동자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고 날렵한 얼굴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고은서는 갑자기 사과할 용기가 사라졌다.“못 들은...”“판주 투자은행.”못 들은 걸로 하라던 고은서의 말에 목구멍에서 맴도는 사이 곽승재는 무심한 어조로 목적지를 말했다.이미 태워주겠다고 말한 이상 고은서도 이제 와서 무를 수 없었다.“타.”고은서는 운전석에 탔고 곽승재는 뒷좌석에 탔다.‘날 대놓고 기사 취급하네?’고은서는 앵두 같은 입술을 꼭 다물고 차를 출발시켰다.차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고은서는 운전에 집중했고 곽승재는 핸드폰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뀐 순간 고은서는 무심코 백미러를 바라보았다가 마침 곽승재의 시선과 맞닥뜨렸다.그의 눈동자 속에는 뭔가 반짝이고 있는 듯했지만 차 안이 어두워서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흐린 조명 덕분에 그의 이목구비가 더욱 깊고 뚜렷하게 드러났고 그의 모습은 마치 신이 직접 조각한 완벽한 작품 같았다.그런 곽승재를 오래 봤던 탓에 고은서는 낯설지 않았다.하지만 볼 때마다 신의 불공평함을 새삼 느끼곤 했다.빵!신호등이 바뀌었고 뒤에서 경적이 울렸다.고은서는 황급히 시선을 거두고 액셀을 밟았다.“회사 일은 지연에게서 들었어. 미안해.”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고은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곽승재는 코웃음을 흘리듯 낮고 냉소적인 소리를 냈을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고은서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차 안의 공기는 다시 싸늘해졌다.그렇게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판주 투자은행 빌딩 앞에 도착했다.고은서는 차를 건물 앞에 세웠다.“재경이가 비록 인플루언서이긴 하지만 계략 있는 애는 아니야. 생각하는 대로 내뱉는 것뿐이니 지연 씨한테 괜히 건드리지 말라고 해줘.”곽승재의 차가운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고은서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곽승재를 돌아보았다.“지연이가 왜 재경 씨를 곤란하게 해?”곽

  • 어게인, 비긴   제934화

    도아름은 씩 웃으며 말했다.“그만큼 진지해졌다는 뜻이겠지. 지연이 육현석 부모님 만나본 적 있어?”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현석이는 데려가고 싶어 했지만 지연이가 자꾸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 안 가고 있어요. 제 생각에는 지연이가 육현석 부모님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아요.”도아름은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생각이 많은가 보네. 이럴 때는 누가 설득해도 소용없을 거야.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자신감을 찾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이야.”고은서는 도아름의 말에 공감했다.박지연은 이미 한 번 시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결혼을 경험한 적이 있어 육현석이 아무리 안심시켜도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확실히 서두를 일이 아니었다.“은서야, 곽 대표랑 무슨 일 있었어? 오늘 뭔가 평소랑 다르네.”도아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잠시 침묵하던 고은서가 입을 열었다.“아름 언니, 이유는 말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곽승재가 GS 그룹에서 쫓겨난 건 나 때문이에요.”곽승재와 관련된 일은 도아름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너무 자책하지 마. 곽 대표도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나름의 계획이 있을 거야. 그리고 네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는 걸 믿어.”도아름의 말에 고은서는 오히려 더 죄책감을 느꼈다.사실 고국성의 일은 그리 급한 상황이 아니었다.하지만 하루라도 미루면 더 큰 문제가 생길까 봐 곽현수의 계획을 따른 것이었다.결론적으로 곽승재에게 가장 큰 죄를 지은 건 그녀였다.“물론 마음이 정 불편하면 곽 대표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사과하며 오해 풀어.”고은서는 고민스러웠다.사과는 할 수 있었지만 결국 그녀가 직접 함정을 만들고 약까지 먹인 후 여자를 들여보냈으니 오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박지연이 육현석에게 연락했던 탓인지 자리를 마칠 때쯤 육현석이 데리러 왔다.고은서는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박지연과 육현석만 남겨두고 떠났다.도아름도 기사가

  • 어게인, 비긴   제933화

    여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당연히 알죠. 곽 대표님 전 부인이 아주 아름답다는 소문은 늘 들었는데 오늘 직접 뵈니 그 말이 헛되지 않았네요.”고은서는 예의 바르게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마재경은 말을 마친 후 조금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이런 부탁을 드리는 게 조금 갑작스러울 수도 있지만 곽 대표님의 습관과 취향을 좀 더 알고 싶어서요. 은서 씨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고은서는 여자가 이렇게까지 직설적이고 적극적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곽승재가 가만히 놔두니까 자신감을 얻은 걸까?’“죄송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네요.”고은서는 단호하게 거절했다.“저도 곽 대표님의 습관이나 취향을 잘 모르거든요.”여자는 난처한 기색을 표했고 곽승재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돼. 궁금한 게 있으면 나한테 직접 물어봐.”곽승재의 말에 그녀의 목소리에는 다시 생기가 되살아났다.“정말요? 곽 대표님, 저한테 너무 다정하신 거 아니에요?”그녀의 목소리는 애교가 넘쳤고 딱 적당한 정도의 달콤함이 섞여 있어 듣는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듯했다.곽승재도 예외는 아니듯 그의 시선이 마재경을 향했다.“넌 착하고 얌전하잖아.”여자는 더욱 부끄러워하며 웃었다.반면 고은서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티 나지 않게 시선을 돌렸다.“진짜 구역질 나네.”박지연이 참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여긴 여성 요가 회원 클럽인데 저 역겨운 남자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박지연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마재경은 바로 곽승재를 감싸며 말했다.“곽 대표님은 저 때문에 들어온 거예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게다가 예약할 때 이미 물어봤고 남성 동반도 가능하다고 했어요.”박지연이 반박하려 하자 고은서가 급히 그녀를 말렸다.“지연아, 우리 그냥 가자.”도아름도 적절한 타이밍에 곽승재에게 실례할게요라고 한 마디 남긴 후 세 사람은 화단 근처 테이블로 이동했다.곽승재는 마재경을 데리고

  • 어게인, 비긴   제932화

    송민아에게 회의 준비를 하라고 지시한 고은서는 책상에 앉아 진형서가 준 자료를 펼쳤다.대충 훑어보니 그 안에는 여시은의 기본 정보가 담겨 있었다.여시은은 해외에서 태어났으며 그녀의 어머니는 출산 중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이후 그녀의 아버지인 여재훈이 그녀를 데리고 귀국해 어린 시절부터 각별한 사랑을 쏟았다.여시은은 오랜 시간 강성에서 생활했으며 가끔 여재훈과 Y 국에 머물기도 했다.생활 반경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었고 친구나 동료들 외에도 어머니의 오랜 친구였던 한 여성이 자주 찾아와 돌봐주곤 했다.여시은과 곽승재가 처음 만난 건 한 사교회 자리였으나 이후 별다른 교류는 없었다. 하지만 여재훈과 곽현수가 Y 국에서 사업적 거래가 있어 여시은은 이미 오래전부터 곽현수를 알고 있었다.자료에서 보면 여시은은 연애 경험이 별로 없었다.대학 시절 가볍게 만난 두 사람이 있었지만 성격 차이로 인해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헤어졌다.‘그렇다면 여시은이 전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은 단순한 핑계였던 걸까? 그녀가 곽승재와의 결혼을 거부하지 않는 이유는 곽현수 때문일까?’고은서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송민아가 와서 재촉했고 그녀는 자료를 서랍에 넣고 열쇠를 잠궜다....저녁 무렵 고은서는 업무를 마치고 박지연을 픽업해 도아름을 만나러 갔다.오늘은 세 여자의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명운 주류가 상장된 이후 도아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오랜만에 시간을 비워 나온 만큼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세 사람은 함께 여성 전용 요가 센터로 향했다.센터에서는 요가뿐만 아니라 커피를 마시거나 꽃을 감상하며 여유를 즐길 수도 있었다.세 사람은 옷을 갈아입고 명상 요가를 한 세션 진행했다.몸을 충분히 이완시킨 후 개방형 라운지에서 음료를 마시려던 차에 멀리서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곽승재와 최근 그와 열애설이 난 인플루언서였다.곽승재는 검은색 캐주얼 셔츠를 입고 있었고 외투는 한쪽 팔에 무심하게 걸쳐 있었다.소매를 걷어 올린 덕분에

  • 어게인, 비긴   제931화

    진형서가 말했다.“민 대표님께서 사고를 당하시기 전 여시은이 해성에 오기 전의 상황을 조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현재 대표님은 해외에 계시고 여시은이 누군지 기억도 못 하고 계십니다. 해성의 일에도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이 조사 결과를 전해드리지 않았습니다. 고 대표님, 비록 저희 대표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이 자료는 고 대표님을 위해 조사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거듭한 끝에 이 서류를 고대표님께 드리기로 했습니다.”고은서는 기억을 되살렸다.두 사람이 사고를 당하기 전날 민시후는 정말로 여시은을 계속 조사하겠다고 말했었다.하지만 다음날 두 사람은 교통사고를 당했고 고은서는 민시후가 아직 조사를 시작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최근에 다른 머리 아픈 일들로 인해 여시은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그녀는 민시후가 조사를 시작하고 진형서가 그 자료를 그녀에게 가져다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대표님, 이렇게 오래 끌어서 죄송합니다.”진형서가 사과의 말을 전했다.“제 처지도 좀 곤란한 상황이라서...”고은서는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진형서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진형서는 파일을 그녀에게 건네고 더 이상 머물지 않고 자리를 떴다.사무실로 올라가려던 고은서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송민아를 만났다.“너 출장 가지 않았어? 오늘 돌아온 거야?”송민아는 대답 대신 고은서의 팔을 잡고 사무실로 향했다.문을 닫은 송민아는 다급하게 물었다.“지금 인터넷에서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야? 곽 대표님이 인플루언서와 밤을 보내고 이제는 결혼하려고 한다던데?”곽승재와 인플루언서의 스캔들이 알려진 후 그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고 GS 그룹에서도 소문을 막지 않았다.네티즌들은 곽승재가 인플루언서에게 반해 연인 관계로 발전하려 한다고 생각했고 이는 최근 인터넷에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다.“이미 여러 날 된 소식인데 이제야 물어보는 거야?”고은서는 일부러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조금만 더 늦었으면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문까지 나왔겠어

  • 어게인, 비긴   제930화

    “은서야, 지금 곽승재 편을 든 거야?”박지연은 뒤늦게 반응하며 물었다.“육현석 말로는 엊그제 같이 곽승재를 만나러 갔었다며? 걔는 네가 아직도 곽승재한테 미련이 있다고 생각하더라. 아니다. 곽승재가 인플루언서와 호텔에 있었다는 말을 듣고도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으니 미련은 없겠다.”박지연은 바로 스스로 부정했다.박지연에게 설명할 시간이 없었던 고은서가 입을 열었다.“볼일 봐. 퇴근 후에 다시 얘기하자.”박지연은 알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고은서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지연아.”“왜?”고은서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말하기 부끄러워 입을 열지 못했다.“아니야. 그냥 밖에 나간 지 오래된 것 같아서. 이제 시간 나면 우리 같이 놀러 가자.”“그게 다야? 깜짝 놀랐잖아.”박지연이 투덜댔다.“됐어. 가서 일해.”고은서는 전화를 끊고 동네 약국에서 긴급 피임약을 주문했다.비록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안전을 위해 약을 먹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니라고 해도 놓치는 것보다는 낫겠지. 예상치 못한 상황은 한 번으로 충분해.’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다른 약품들도 몇 가지 골랐다.약을 고르던 중 이미숙이 노크했다.“사모님, 배 안 고프세요? 뭐 좀 만들어 드릴까요?”고은서는 승낙했다.세수하고 간단히 식사를 마치니 고국성에게서 연락이 왔다.“오미나가 수술비와 위자료를 요구하며 돈만 주면 수술을 받을 거라고 하더구나.”‘그래도 약속은 지키네.’“은서야, 승재가 GS 그룹에서 쫓겨났다던데 사실이야?”두 사람 사이를 이어주기를 좋아하던 고국성은 곽승재의 상황을 알고 걱정했다.고은서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삼촌, 사실이든 아니든 저랑 다시는 곽승재를 찾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요. 그 약속 어기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거예요.”고국성은 그녀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약속은 지키겠다고 다짐했다.고국성은 고은서가 능력도 갖추고 오미나처럼 까다로운 사람도 해결했으니 이제 그녀의

  • 어게인, 비긴   제929화

    곽승재의 손아귀 힘은 절대 가볍지 않았고 그의 표정도 매우 차가웠다.잠을 잘 자지 못한 탓인지 분노로 가득 찬 그의 눈에는 뚜렷한 핏발이 서려 있었다.고은서는 잠시 멍해졌다.어젯밤의 희미한 장면들 속에서 그녀의 눈앞을 스쳤던 것도 이렇게 광적이고 핏빛이 감도는 눈이었던 것 같다“왜 말이 없어?”곽승재는 맹수처럼 그녀를 노려보았다.고은서는 턱이 마비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알고 싶은 건 다 알았잖아. 내가 뭘 더 말해야 해?”“사무실까지 찾아와서 저녁을 먹자고 한 게 날 함정에 빠뜨리고 여자를 침대에 보내려고 그랬던 거야?”곽승재는 어두워진 얼굴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턱 통증은 완화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곽승재의 시선을 마주한 그녀의 눈동자가 떨렸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맞아.”“그래서 내가 다른 여자랑 잔 걸 알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거야?”고은서는 마음을 다잡고 냉소를 지었다.“아니면?”그녀의 대답에 곽승재의 안색은 눈에 띄게 어두워지고 그의 눈가에는 실망으로 가득 찼다. 고은서의 마음속에는 쓸쓸함이 차올랐다.곽현수에게 이 일을 하겠다고 약속했을 때 그녀는 이미 곽승재가 이런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었다.만약 곽승재가 그녀를 떼어내기 위해 비슷한 일을 꾸몄다면 그녀 역시 충격을 쉽사리 떨칠 수 없었을 것이었다.“곽승재, 여러 번 말했잖아. 난 이미 너를 내려놓았다고. 이쯤이면 그만 믿을 때도 되지 않았어?”고은서는 불난 집에 다시 한번 기름을 부었다.‘끝내려면 완전히 끝내야 해. 이러면 곽현수도 더 안심하겠지.’곽승재는 싸늘하게 웃었고 눈가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고은서까지 태워버릴 듯했다.“알았어. 고은서, 후회하지 마.”말을 마친 곽승재는 그녀를 내팽개친 채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자리를 떴다.주위는 순식간에 고요해졌다.제자리에 멈춰선 고은서는 머릿속도 텅 비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얼마나 지났을까 고은서는 지친 몸을 이끌고

  • 어게인, 비긴   제928화

    고은서는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남자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혹시 누군가 들어왔던 것은 아닐까 싶어 호텔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지만 직원은 그녀의 객실 문은 밤새 열리지 않았다고 확답했다.‘곽승재는 취한 상태에서 약까지 먹었으니 이 방에 올 리가 없지.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물에다 약을 너무 많이 타서 약효가 강해서 그런 꿈을 꾼 건가? 목에 남은 자국은 병 자국에 눌린 흔적일까? 사지의 뻐근함은 단순한 숙취의 후유증?’충분히 말이 되는 설명이긴 했지만 고은서는 여전히 기분이 찝찝했다.고은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경험이 한 번 있었지만 그때도 몸의 감각은 확실했다.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정말 꿈이라고? 아니면... 그 남자는 곽승재였을까? 어떻게 이 방에 들어온 거지? 갈 때는 어떻게 나가고? 줄곧 날 잡고 싶다고 말했으니 우리 사이에 관계가 있었다면 계속 남아있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머리가 복잡해진 고은서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그때 갑자기 방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순간적으로 자신의 계획을 떠올린 고은서는 재빨리 옷을 걸쳐 입고 문 쪽으로 다가가 밖의 상황을 살폈다.아니나 다를까 복도에는 수많은 연예부 기자가 곽승재의 객실 앞을 둘러싸고 있었다.그들은 사진을 찍고 질문을 퍼부으며 발 디딜 틈 없이 몰려들고 있었다.주민기가 경호원들과 함께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끈질긴 기자들은 계속해서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그 혼란 속에서 어두운 표정을 한 곽승재가 고은서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그가 안쪽을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곽승재는 이미 어젯밤 일이 그녀의 계획이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그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고은서는 마음을 다잡으며 방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꺼내 곽현수에게 문자를 보냈다.[원하시는 대로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은 끌어들이지 마세요.]답장은 오지 않았다.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어떻게 곽승재를 상대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