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65화

Author: 류한나
고은서가 말했다.

“곽승재가 사인한 이혼서류를 저한테 전해주라고 안 하던가요?”

“그런 명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주민기는 아주 담담해 보였다.

“그럼 직접 구청으로 가겠단 뜻인가요?”

고은서가 캐물었다.

주민기는 여전히 표정 한 번 변하지 않고 아주 담담하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대표님의 결정은 저도 잘 모릅니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이런 모욕을 느낀 적이 없는 곽승재가 흔쾌히 이혼해줄 리가 없다는 것을 고은서는 이내 깨달았다.

“실장님!”

고은서가 주민기에게 무언갈 부탁하려고 할 때 간병인 같은 사람 한 명이 달려오면서 그를 찾았다.

“백유미 씨께서 상처가 너무 아프다면서 실수로 아침을 엎어버렸어요. 그리고 지금은 진통제를 달라고 하시는데 제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물어보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역시 곽승재가 아줌마한테 내 아침까지 부탁할 리가 없지. 백유미 아침을 준비하면서 겸사겸사 내 아침까지 준비한 거였네.’

고은서는 헛웃음을 쳤다.

방금전까지 담담하던 주민기가 얼굴빛이 확 변하더니 간병인을 질책하기 시작했다.

“일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했잖아요. 왜 직접 찾아오고 난리세요.”

간병인이 황급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실장님. 백유미 씨가 계속 재촉하시고 또 폰 배터리가 다 나가는 바람에 간호사한테 물어보고 직접 찾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볼 일이 있으시면 먼저 가보세요. 그리고 아침도 필요 없으니까 가져가세요.”

고은서가 말했다.

주민기는 고은서가 오해했다는 걸 알고 황급히 설명했다.

“사모님, 아침은 대표님께서 직접 아주머니한테 부탁하셔서 준비한 거예요. 게다가 다 사모님께서 좋아하시는 거로...”

“알겠으니까 더는 이런 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전해주세요. 제가 어떻게 감히 이런 아침을 먹겠어요.”

어떤 설명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주민기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편히 쉬세요”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간병인과 함께 병실에서 나갔다.

...

GS 그룹 대표 사무실.

주민기는 어두운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어게인, 비긴   제336화

    “어제저녁에 병원은 왜 안 온 거야? 곽승재가 너한테 아이에 관해서 물어봤어?”고은서가 물었다.민시후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화를 냈다.“나도 너 따라 병원에 가려고 했어. 그런데 곽승재가 사람 시켜서 내 차를 막아서 못 간 거라고. 내가 가서 설명하려고 할 때 어떤 눈치 없는 사람이 우리 둘 소문을 퍼뜨리는 바람에 주가가 영향받을까 봐 밤새 그 일을 처리하고 왔어.”고은서는 어리둥절했다.“우리 둘 소문?”“네가 직접 봐.”민시후는 폰을 고은서에게 던져주면서 말했다.폰 화면에는 “ZY 그룹 민시후가 GS 그룹 사모님을 탐내다”라는 애매한 제목을 가진 기사가 떠 있었다.밑에는 클럽에서 나오는 세 사람의 모습이 찍힌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사진 속 민시후는 정신을 잃은 고은서를 안고 가는 곽승재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기사를 퍼뜨린 사람은 민시후가 고은서를 빼앗으려다가 곽승재한테 맞았다면서 그의 얼굴에 있는 상처를 특별히 강조했다.더 어이가 없었던 건 전에 민시후랑 함께 호텔 로비로 들어가는 사진까지 공개가 되었다. 기사에서는 두 사람이 바람도 당당하게 피울 만큼 다정하다고 지껄였다.민시후가 제때 처리하지 않았더라면 해성 사람들 전체가 알게 되었을 것이다.‘곽승재가 화를 낸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 그리고 호텔에서 있었던 일도 민시후가 말한 게 아니라 기사를 보고 알았던 거네.’“이 기사를 퍼뜨린 사람이 누군지는 찾았어?”고은서가 물었다.클럽에서 찍힌 사진은 우연이라고 해도 호텔에서 찍힌 사진은 무려 두세 주일이나 지났는데 갑자기 함께 퍼뜨렸다는 게 너무 수상했다. 게다가 하필 곽승재가 고은서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타이밍에 말이다.민시후는 눈살을 찌푸리고 답했다.“아직 못 찾았어.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퍼뜨린 거라 IP 추적도 불가능해.”고은서는 이 모든 일이 백유미가 꾸민 짓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백유미도 그날 심하게 다친 탓에 이 모든 걸 혼자 했을 리는 없어. 꼭 조력자가 따로 있는 게 분명해.’“송민아한

  • 어게인, 비긴   제367화

    비록 고은서도 백유미에게 함정을 파놓긴 했지만 그녀가 또 다른 일을 꾸미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고은서는 자신의 자유와 배 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빠른 시간 내에 이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그러나 곽승재의 태도를 보아서는 평화롭게 이혼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고 이혼 소송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곽승재라는 이름만 들어도 겁을 먹고 거절했겠지만 민시후는 달랐다.민시후는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도와주는 건 되는데 계속 그 조건이야. 나랑 함께 내 혼사를 막아주는 거.”“민시후, 지금 송민아 앞에서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온 해성에 소문 날 정도로 일이 커졌는데 네 혼사까지 책임져 달라고? 지금 내가 덜 비참해 보여서 그러는 거야?”민시후는 피식 웃으면서 반박했다.“설마 아무런 조건도 없이 도와달라는 건 아니지? 곽승재가 그렇게 건드리기 쉬운 사람도 아니고 지금쯤 날 어떻게 엿먹일지 계획 중일 수도 있어.”“두 사람 내가 아니어도 원래부터 사이가 안 좋았잖아. 변호사 한 명만 소개해달라는데 너한텐 엄청 쉬운 일이잖아. 이번 한 번만 도와줘.”고은서는 사실을 콕 짚어 말했다.“그렇게 쉬운 일이면 네가 직접 찾을 것이지 왜 나한테 부탁하는 건데.”민시후가 되물었다.고은서는 민시후가 자신의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네 혼사를 막아주는 건 못하겠지만 송민아 앞에서 연기하는 게 노력해서 계속해줄 수 있어.”“고은서, 굳이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어?”민시후는 건들건들하게 말했다.“아무튼 지금 네 배 속의 아이가 다 내 아이라고 믿는 있는 상황이잖아. 이 기회를 잡고 윈윈하면 되는 거야.”그러나 고은서는 자신이 이 일에 참여하는 순간 민씨 가문과 송씨 가문의 분노가 자신을 향해 타오를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이혼만 하고 싶었을 뿐, 더 큰 곤경에 빠지고는 싶지 않았기에 단연코 거절했다.“못하겠어.”민시후도 따라 그녀의 부탁을 거절했다.“나

  • 어게인, 비긴   제368화

    무방비 상태에서 곽승재에게 한 방 맞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이마에도 상처가 있었던지라 민시후는 곽승재에게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얼마 후, 곽승재는 있는 힘껏 민시후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민시후는 뒤걸음을 치다가 끝내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민시후의 입가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는데 곽승재는 전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가 계속 다가가 민시후를 때리려고 할 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고은서가 마지못해 일어나서 그를 말렸다.“그만해!”그녀는 소리를 지르면서 민시후 앞에 막아섰다.“곽승재, 너 미쳤어? 왜 갑자기 사람을 때리고 난리야!”두 팔을 벌리고 민시후를 지키려고 하는 고은서를 본 곽승재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몇 주 전까지만 해도 그가 다칠까 봐 대신 술병을 막아주던 고은서가 그를 두고 민시후를 먼저 지키려고 한다는 걸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그는 술병을 대신 막아준 일로 고은서가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렸었다.비록 고은서가 다른 사람이었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했었지만 그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그러나 고은서가 현재 민시후를 위해 그를 비난하다니. 전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곽승재는 가슴이 큰 돌덩이에 깔리기라도 한 듯 답답하고 숨이 막혀왔다.“고은서, 나랑 이혼하고 이 자식이랑 결혼할 생각인 거야? 꿈도 꾸지 마. 절대 그렇게 될 일은 없을 테니까!”곽승재는 말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땅에 팽개치고 화를 내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고은서는 곽승재를 관심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녀는 땅에 넘어진 민시후를 일으키며 물었다.“괜찮아?”민시후는 감각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파오는 얼굴을 부여잡고 입가의 피를 닦으면서 화를 냈다.“그걸 말이라고 물어보는 거야? 지금 이 모습이 괜찮은 사람 같아? 이번 일 책임은 너희 부부 두 사람 중 누구 몫이야?”고은서는 평소 쉽게 화를 내지 않던 곽승재가 갑자기 뛰어 들어와 민시후를 팰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었다.‘세컨드의 위력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 어게인, 비긴   제369화

    오후에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은 박지연은 깜짝 놀랐다.“곽승재랑 민시후가 싸웠다고? 아내를 보내주기 싫어서 화낸 건가?”“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고은서가 박지연을 째려보면서 말했다.“민시후가 변호사를 찾아준다고 했으니까 요 며칠 필요한 절차를 확인한 후에 정식으로 이혼 소송을 걸 거야.”“진짜 소송까지 가야겠어? 소송을 걸면 법원에서 만나는 사이가 되잖아.”박지연이 조심스레 물었다.고은서는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대답했다.“나도 소송까지는 가고 싶지 않았어. 전에는 얼마 지나지 않으면 쉽게 이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도 이혼서류에 사인해주지 않잖아. 나도 더는 끌고 싶지 않아.”이어 고은서는 출국하려는 결정을 박지연에게 알려줬다.“갑자기 우리 엄마가 이해되더라. 아무튼 재혼할 생각도 없는데 스스로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것도 딱히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할아버지께선 동의하셔?”박지연이 물었다. 그녀의 물음을 들은 고은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엄마가 싱글맘으로 어렵게 살아온 걸 직접 목격한 고준석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의 손녀딸까지 똑같은 힘든 길을 선택했다고 속상해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날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이해해주실 거야.”고은서는 스스로를 위안하듯 혼자 중얼거렸다.“고은서, 지금이라도 모든 걸 사실대로 곽승재에게 말하면 지금처럼 힘들게 이혼할 필요도 없고 고민할 필요도 없어. 현재 곽승재도 너에게 감정이 생겼다고 하지, 또 미자 할머니도 널 무척 아끼시잖아. 당당하게 아이를 낳고 키우면 되는 거야.”고은서는 박지연의 말이 도리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전미자가 비록 아이를 빨리 가지라고 재촉한 적은 없지만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면 무척 기뻐할 게 분명했다. 고준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이 모든 일이 전생에 일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을까.’고은서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지연아, 나 더는 주눅이 들어 살고 싶지 않아. 나도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

  • 어게인, 비긴   제370화

    아무 대답도 얻지 못한 육현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형, 나 술 가지러 갔다 올게.”육현석은 말하고 가만히 구석진 곳에 가서 고은서의 일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박지연에게 연락했다.박지연도 이내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세요, 육현석 씨?”“박지연 씨, 혹시 형이랑 형수님 다투었어요? 오늘 형이 같이 술 마시러 가자고 해서 왔는데 형이 엄청 불쾌해 보이는데 또 물어보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박지연은 한참 생각하다가 요 며칠 있었던 일을 간단명료하게 그에게 전했다.“그러니까 형수님이 임신했는데 아이 아빠가 형이 아니란 말이에요?”육현석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네, 그냥 예상치 못한 사고였던 거 같아요. 곽 대표님 잘 달래보세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면 이혼하면 되는 거고요.”박지연은 당연하게도 고은서를 배신하지 않았다.“...”육현석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는 이혼하라고 곽승재를 달랠 담이 없었다.통화를 마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보니 그 짧은 사이에 테이블은 이미 술병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곽승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끊임없이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그 모습을 육현석이 용기를 내어 그의 술잔을 빼앗으려 했다.“형, 그만 마셔. 이러다 형 쓰러져!”그러나 곽승재는 술잔에 한이라도 맺힌 듯 뚫어지라 쳐다보면서 전혀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육현석도 차마 강제로 술잔을 빼앗을 엄두가 나지 않아 손을 놓았다.그러나 손을 놓는 순간, 팍하는 소리와 함께 곽승재가 손으로 술잔을 깨뜨렸다.“형, 손 괜찮아?”육현석이 황급히 곽승재의 손을 확인해 보니 그의 손바닥은 이미 수많은 유리 조각들이 박혀있었고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형, 얼른 병원으로 가자!”육현석이 당황해하며 곽승재를 일으키려고 할 때 곽승재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의 손을 뿌리치고 새 술잔을 들고 또 술을 마셨다.곽승재의 주변의 분위기가 한 층 더 살벌해진 것 같았다. 육현석은 그를 끌고 병원으로 가기는커녕 그를 설득할 용기도 없었다.한참 고민 끝에

  • 어게인, 비긴   제371화

    오늘의 운세를 확인했던 걸 하며 후회하는 육현석이었다.특별히 주문 제작한 핸드폰은 곽승재로 인해 폐기되는 결말을 맞이했다.유심 카드를 꺼낸 육현석이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형, 아무리 화가 나도 형수님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진짜인 줄 오해한단 말이야.”곽승재는 정말 폭발 직전에 놓여 있었다.“내가 한 말 모두 진심이야!”“그래, 그래. 진심이야.”육현석은 더 이상 곽승재에게 따지지 않고 그의 말에 맞장구치며 웨이터에게 지혈제와 반창고를 가져오게 했다.다양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술집답게 기본적인 약물은 모두 갖춰져 있었다.곽승재의 비협조 속에서 육현석은 그의 손바닥에 지혈제를 발라주고 반창고 몇 개를 겨우 붙여 지혈할 수 있었다.한바탕 고군분투 끝에 곽승재는 드디어 조용해졌다. 그는 피곤한 듯 의자에 기대어 있었는데 검은 눈동자는 심연처럼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고 손에는 여전히 술잔을 든채 기울이고 있었다.“형, 확실히 조사한 거 맞아? 형수님이 임신한 아이 정말 형 아이는 아니야?”육현석이 말을 이었다.“형수님이 그렇게 방탕한 사람은 아니잖아.”곽승재의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본인이 인정했어.”육현석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형수님이 혹시...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닐까?”“내가 직접 민시후가 자신의 아이이니 고은서한테 결혼하자고 하는 말을 들었어!”여기까지 말을 마친 곽승재는 화가 치밀어 올라 고은서를 죽여버리고 싶었다.‘내가 민시후와 사이좋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 그 새끼랑 어울리면서 아이까지 만들다니!’“사람 시켜서 민시후 다리 분질러버려.”곽승재의 눈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남은 생은 휠체어를 타게 만들어야 누굴 건드렸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앞으로 다른 사람도 건드리지 못하겠지.”육현석은 곽승재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는 지금 평소와는 달리 엄격하고 이성적인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육현석은 어쩔 수 없이 인내심을 가지고 설득했다.“형, 민시후 다

  • 어게인, 비긴   제372화

    민시후가 싸늘히 웃으며 답했다.“다른 이유가 있겠어? 송민아를 위해 나서서 나한테 경고하는 거 아니야?”송민준도 웃었다.“너희들을 소란스럽게 만들어서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민아는 그냥 너랑 결혼하고 싶은 거야. 그러면 우리 가족들도 그걸 고려하지 않을까?”민시후는 송민준의 말에 넋이 나갔다.송민준이 송민아의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나서서 소란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송민준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은 믿지 않았다.송민준은 감추는 게 많았고 평소 일 처리 방식도 독특했다.그는 아무 이유 없이 클럽에 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공교롭게 고은서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송민준의 말이 사실이라면 임철원이 그렇게 빨리 사람을 데리고 복수하고 도망친 건 누가 뒤에서 도와준 거지?’“넌 내가 갑자기 찾아온 게 의아하지 않은 가 보네? 어젯밤 일에 대해서도 훤히 꿰뚫고 있고.”민시후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송민준은 평소처럼 여유로운 표정으로 답했다.“나도 관련 게시물을 봤거든. 네가 보면 오해할 것 같았어. 어제 클럽에 간 건 단순히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야. 그런데 그 친구가 갑자기 일이 생겨 먼저 갔는데 나도 더 이상 거기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지. 시후야, 오히려 내가 묻고 싶어.”송민준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민시후는 긴장을 풀고 다른 의자에 다리를 걸치며 답했다.“물을 필요 없어. 고은서가 임신한 건 사실이야.”송민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애야?”“그럼?”“민아 쪽은 어떻게 할 예정이야?”“어차피 혼사는 너희들이 멋대로 결정한 거니 나랑은 상관없어. 나는 단 한 번도 민아랑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시후 오빠!”송민준이 뭐라 하기도 전에 화가 난 송민아가 찻집 병풍 뒤에서 뛰쳐나왔다.“고은서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그 여자 때문에 나랑 파혼하겠다는 거예요?”갑자기 나타난 송민아였음에도 민시후는 그저 놀란 표정을 지었을 뿐 이내 평소의 모습으로 되

  • 어게인, 비긴   제373화

    민시후는 지긋지긋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민아가 스스로 혼나기를 자초한다면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야.”송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찻집 문으로 향하며 나서기 전 고개를 돌렸다.“시후야, 고은서 씨의 아이가 너랑 관련이 있든 없든 무리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 아저씨 쪽에서는 나만큼 말이 잘 통하지 않을 거야.”“지금 협박하는 거야?”민시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송민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답했다.“그저 충고야.”말을 마친 송민준이 긴 다리로 자리를 떴다.민시후는 멀어지는 송민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늦은 밤 간병인을 돌려보낸 고은서는 침대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병실은 아무리 좋아도 병실이었다.지워지지 않는 소독약 냄새는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고은서는 핸드폰을 꺼내 주의를 분산시키려고 했다.동영상을 보고 있을 때 고은서는 주인혁이 참가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송 중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편집한 영상에는 인기 많은 멤버가 몇 명 있었는데 주인혁도 그중에 포함되었다.주인혁은 제작인이 일률로 나눠준 훈련복을 입고 있었는데도 남들보다 훨씬 더 밝고 멋져 보였다.노래할 때 주인혁의 우월한 비주얼과 독특한 무대 매너는 더 눈에 띄었다.댓글에서도 주인혁의 정보를 묻는 사람이 많았고 또한 순정 만화 주인공과 같은 동시에 묘한 야성미가 느껴져 설렌다는 댓글들도 보였다.그러한 댓글에 고은서는 진심으로 주인혁을 위해 기뻐했다. 마치 친동생이 철들고 출세해서 느끼는 자부심과 우월감도 느꼈다.요즘 주인혁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아마 훈련으로 바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30위 안에 든 사람들을 위해 주최 측에서 축하 파티를 한다더니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고은서는 굳이 주인혁에게 메시지를 보내 방해하지 않고 앱에 들어가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다.전생에도 핫했던 오디션 프로그램답게 화질과 편집은 확실히 좋았고 참여자들도 저마다의 특색이 있었다.연속 두 편

Latest chapter

  • 어게인, 비긴   제1088화

    “곽 대표님은 제가 그렇게 싫으세요? 병뚜껑 열어주는 것조차 꺼릴 만큼?”여시은의 말투에는 약간의 유감과 억지로 짜낸 서운함이 섞여 있었다.곽승재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시은 씨가 원하는 건 물을 마시는 결과가 아닌가요? 물을 마실 수 있으면 되지, 누가 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잖아요.”“왜 중요하지 않아요?”여시은은 눈을 깜박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저는 곽 대표님이 열어준 병의 물만 마시고 싶은데요.”노골적인 애정 공세에 곽승재는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여시은은 전혀 민망한 기색이 없이 여전히 공세를 이어갔다.“솔직히 말할게요.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 집안 어른의 뜻대로 조금씩 알아가면 안 될까요?”곽승재는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우리 집안에서 할머니와 어머니는 정략결혼을 반대하세요. 아버지의 일방적인 희망 사항일 뿐이죠.”“그리고 이미 말씀드렸듯이 저는 재혼 계획이 없습니다.”여시은은 여전히 달콤한 미소를 유지했다.“당장 결혼하자는 뜻은 아니에요. 어쩌면 만나다가 전혀 안 맞는다는 걸 깨달을 수도 있잖아요?”“그럴 필요 없어요. 저는 시은 씨와 맞지 않아요.”곽승재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고은서는 원래 활발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저와 결혼한 후 시들어버렸고,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방법을 다해 저한테서 도망쳤어요. 이혼한 후 그 여자는 다시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됐죠. 그러니 저는 남편으로 자격 미달이에요.”“시은 씨는 여 회장님께서 애지중지하는 따님이고 조건이 우월하니 더 나은 남자를 만나셔야죠.”여시은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저는 고은서와 달라요. 고은서는 완전한 사랑을 원했지만 저는 조건이 맞는 파트너면 돼요.”“사랑이 있으면 금상첨화이고 없어도 상관없어요.”그녀는 돌직구를 날렸다.“제가 고은서보다 승재 씨에게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고은서 만큼 똑똑하거나 유능하지는 않지만, 이게 남자들에게는 장

  • 어게인, 비긴   제1087화

    “아니, 유일 투자은행 개업식에서 여재훈 씨가 테이프 커팅에 참석했었잖아. 그때 외할아버지와 삼촌도 있었는데 서로 아는 눈치가 아니었어.”고은서는 말을 이어갔다.“당신도 우리 삼촌을 알잖아. 조금이라도 연줄이 될 만한 사람이라면 절대 놓치지 않지. 여재훈 씨와 단 한 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었다면 당장 달려가서 인사하고 관계를 맺으려고 했을 거야.”사실 그날 삼촌은 여재훈과 안면을 트려고 했지만, 여재훈 주변에 중요 인물들이 너무 많아 접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외할아버지가 말리는 바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여시은이 오직 당신 때문에 나를 저격하는 거라고 생각해.”“당신들 둘이 Y국에서 만난 적 있잖아. 여시은은 그때 당신에게 첫눈에 반했을 거야.”고은서의 분석이 정확할 수도 있다.곽승재는 이전에 곽현수에게 왜 백유미를 귀국시켜 그와 고은서의 결혼 생활을 망쳤냐고 따진 적이 있었다.그때 곽현수는 고씨 가문이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여시은이 적합한 상대라고 말했었다.곽현수는 단지 할머니 때문에, 그리고 여씨 가문이 입방아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아서 이혼을 강요하지 않았을 뿐이다.여시은도 Y국의 파티에서 만난 두 집안 어른들이 둘을 만나게 하려 했고, 그녀도 그와의 정략결혼에 긍정적인 태도였다고 인정한 바 있다.고은서의 분석이 맞았지만 곽승재는 마음이 전혀 홀가분하지 않았다.그녀의 말투가 너무나 차분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말하는 것처럼.곽승재는 고은서의 태도에서 자신을 향한 감정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가슴 속에서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다.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입을 열려는 순간, 회의실 방향에서 여시은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곽승재는 일이 있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그 사이 눈앞까지 다가온 여시은이 배려심 있게 말했다.“곽 대표님, 일이 있으면 먼저 처리하세요. 10분 쉬고 회의를 계속한다고 전할게요.”여시은은 말하면서 생수 한 병을 곽승재에게 건넸다.곽승재는 거절의 뜻으로 고개를 저

  • 어게인, 비긴   제1086화

    “외할아버지, 숙모 말로는 엄마가 북성에 있을 때 가슴 아픈 연애사가 있었던 것 같대요. 제 생부는 아닐 거라고 하는데, 외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고은서는 돌직구를 날렸다.“그럴 리 없어. 네 엄마는 활발하고 낭만적인 성격이었지만 고집스러운 면도 있었어. 쉽게 마음을 주지 않지만 한번 주면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어.”고준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 점에서는 네가 엄마를 똑 닮았어. 그래서 그때 곽승재와의 결혼을 허락했던 건데...”‘왜 갑자기 내 얘기로 넘어간 거지?’“북성에 연인이 없었거나, 있었다면 제 생부란 말씀인가요?”고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생부일 가능성이 낮아. 북성에서 돌아왔을 때 다른 곳에서 돌아왔을 때와 별다른 정서 변화가 없었거든.”고준석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엄마가 유부남과 엮였을 리 없어. 송민준 부모의 이혼이 엄마와 상관없을 거야.’“오히려 해외에 머물던 어느 날 전화가 와서 깜짝선물을 준비했다며 신난 목소리로 말한 적이 있어.”말을 이어가던 고준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연애하는 줄 알고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렇게 될 줄은...”“은서야, 네 엄마가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네 생부 때문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알아.”고준석은 외손녀의 손을 꼭 잡았다.“그때 네 엄마는 치료가 안 되는 불치병을 앓은 것도 아니었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가슴에 품고 너무 지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지...”목이 멘 듯한 외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은서도 코끝이 찡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노인의 아픔을 다시 건드린 자신이 미웠다.고은서는 고준석의 손을 꼭 잡았다.“외할아버지,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엄마는 외할아버지같이 이해심이 넘치는 분을 아버지로 두어 너무 행복했을 거예요.”하지만 고준석은 더 슬퍼 보였다.“가끔은 내가 너무 자유를 준 것은 아닌지 생각할 때도 있어. 조금 구속했으면 사랑 때문에 큰 상처를 받을 일도 없지 않았을까?”

  • 어게인, 비긴   제1085화

    고은서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엄마가 미혼모 신분으로 나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북성에 첫사랑까지 있었다고? 이렇게 복잡한 연애사가 있었다니.’“내가 그냥 제멋대로 추측한 거야. 연인 관계가 아니라 형님 마음을 아프게 한 친구일 수도 있지.”단은숙은 가방을 손에 들고 고은서에게 주의를 주었다.“이 얘기를 외할아버지나 삼촌한테 절대 하지 마. 내가 또 쓸데없는 소리 했다고 나무랄 거야.”외할아버지는 고은서의 엄마를 각별히 아꼈다. 미혼모가 됐어도 한 마디 비난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슴 아파하며 그녀의 과거를 캐묻지 않았다.외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집은 따뜻한 피난처였고, 엄마는 그 안에서 조용히 상처를 치유했다. 말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털어놓을 것이고, 입을 다물고 있다면 아픈 기억일 테니 가족들이 상처를 건드릴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고은서의 엄마는 조향사로서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 MQ의 베스트셀러 향수가 바로 그녀의 작품이었고, 이는 MQ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래서 삼촌 부부도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니 주변 사람들도 무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은서는 지금까지 아버지가 없는 것이 큰 결핍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씨 가문을 노리는 세력이 나타나서 진상을 파헤쳐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다면, 평생 엄마의 과거를 캐지 않았을 것이다.단은숙은 가방을 부인들 단톡방에서 자랑하기 위해 급히 방으로 들어갔다.고은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엄마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엄마는 북성에서 무슨 일을 겪었을까? 정말 첫사랑이 있을까? 혹시 송씨 집안 사람?’문득 송민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송민준과 송민아는 이복남매였다.‘그렇다면 송민준의 친모가 아버지와 이혼하셨다는 건데, 설마 엄마가 두 분 사이에 끼어든 건 아니겠지?’이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고은서는 등골이 오싹해졌다.만약 송민준이 정말 C선생이라면, 그가 고씨 가문을 증오하는 이유는 충분하다.하지만 고은서는 엄마

  • 어게인, 비긴   제1084화

    “네 엄마는 아는 사람이 많지만 송씨 집안 사람과 안면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고준석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은서야, 왜 갑자기 송씨 집안 사람을 아는지 묻는 거야? 무슨 일이라도 생겼니?”아직 모든 게 오리무중이라 고은서는 외할아버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제가 그 집안 따님이랑 친한 친구이고 아드님과도 아는 사이라 인연이 있는 것 같아서 혹시 어른끼리 아는 사이가 아닌지 여쭤본 거예요.”“집안 어른까지 알아보면서 결혼 생각이 없다고?”단은숙이 다시 흥분했다.“은서야, 솔직히 말해봐. 그 송민준이라는 청년이 너를 좋아하지? 너를 쫓아다니지?”고은서는 황당해하며 부인했다.“아니에요. 절대 그럴 일이 없어요. 저와 송민준은 그냥 친구예요. 그리고 제가 만약 결혼할 마음이 생기면 반드시 숙모께 첫 번째로 말씀드릴게요.”“여보, 자꾸 결혼 얘기로 애를 못살게 굴지 마. 우리 은서는 능력도 뛰어난데 시집가지 않아도 괜찮아.”고국성이 뜻밖에 그녀 편을 들어주었다. 영악하고 연줄을 대기 좋아하는 삼촌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더 놀라운 것은, 숙모가 화내거나 반박하지 않고 그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것이다.“당장 결혼하라고 닦달한 것도 아니잖아요. 곽승재와 비슷한 조건의 남자가 있다면 놓치지 말아야죠...”“괜찮아요. 숙모도 저를 걱정해서 그러시는 거죠.”고은서는 적당히 무마한 후 넉살스럽게 단은숙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숙모, 제가 최근에 G브랜드 핸드백을 샀는데 디자인이 예뻐요. 한번 보실래요? 마음에 드시면 드릴게요.”이렇게 좋은 일을 마다할 리 없는 단은숙은 급히 일어섰다.“아이고, 은서가 숙모 생각도 해주고! 은혜 그 계집애보다 백배 낫네.”“엄마, 다 들려!”멀지 않은 곳에 있던 고은혜가 기분 상한 듯 소리쳤다.“들리든 말든. 내가 틀린 말 했나?”단은숙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은서와 함께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고은서는 차에서 포장

  • 어게인, 비긴   제1083화

    고준석과 고국성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해성의 곽씨 일가, 북성의 송씨 가문, 민씨 가문은 모두 명문가였다.“당연히 알지.”남편과 시아버지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단은숙이 먼저 입을 열었다.“송씨 집안의 가주가 훈훈한 외모를 가진, 유명한 독신남이라는 것도 알아.”“은서야, 송씨 가문은 왜 물어?”단은숙이 갑자기 소리 질렀다.“너 설마 송씨 가문에 시집가려고?”“맞네! 송씨 가문이 해성에 지사를 세웠다더니 너와 사업 거래가 있었구나.”단은숙은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 집안 아드님이 우리 은서 얼굴을 보고 첫눈에 반한 게 틀림없어.”“...”그녀가 한 마디 물었을 뿐인데, 숙모는 기관총 쏘듯 수십 마디를 내뱉었다. ‘첫눈에 반했다’, ‘결혼한다’, 이런 말까지 나오니 고은서는 어느 것부터 반박해야 할지 난감했다.“바쁜 애가 언제 연애할 시간이 있겠어? 넘겨짚지 말고 은서 말을 들어보자꾸나.”단은숙은 화내지 않고 고은서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정확한 소식을 기다렸다.명문가와의 혼인, 이에 대한 숙모의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 고은서는 알고 있었다.“숙모, 너무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어떻게 아무 남자나 저를 좋아하고 저와 결혼하려고 하겠어요? 저는 그저 우리가 과거에 송씨 가문과 무슨 거래가 없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이 말을 듣고 순식간에 흥미를 잃은 단은숙은 모른다고 했다.고준석과 고국성도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고씨 가문은 줄곧 북성에 있었던 송씨 가문과 거래할 기회가 없었다.“사업 거래도 없었어요? 송씨 가문에서 향료와 관련된 사업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고은서는 꼬치꼬치 캐물었다.“아니면 두 분이 사업차 북성에 갔다가 송씨 가문 사람과 마주친 적도 없으세요?”고국성이 입을 열었다.“송씨 가문은 줄곧 부동산 사업을 해왔고 송민준이 개척한 새로운 사업도 향료와는 무관한데, 우리와 무슨 사업 거래가 있었겠어?”고준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예상했던 결과였다.‘하지만 두 가문이 아예 모르는 사이

  • 어게인, 비긴   제1082화

    건전복 상자를 들고 주방에서 나오던 단은숙이 고은서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은서 왔어?”그녀가 고국성의 일을 도와준 뒤로 단은숙은 그녀를 훨씬 살갑게 대했다. 얼마나 진심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를 존중하고 예의를 차리기 시작했다.단은숙의 목소리를 들은 다른 사람들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은서야, 거기 서서 뭐 해? 얼른 외할아버지 곁으로 와.”고준석이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고은서는 미소 띤 얼굴로 모두에게 인사하면서 고준석 곁으로 갔다.아내의 부름을 받은 고국성은 식재료를 손질하러 주방에 갔고, 고은서는 외할아버지 곁에 앉았다.“은서야, 너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요즘 밥은 잘 챙겨 먹니?”외할아버지는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일이 바빠도 쉴 때는 제대로 쉬어야지.”“할아버지 너무 해요.”고은혜가 입을 삐죽거리며 끼어들었다.“저한테는 살이 찐 게 아니냐고 하시더니 언니한테는 살이 빠졌다고 하시고. 언니만 일이 바쁜 게 아니라 저도 바쁘거든요.”고준석이 자애롭게 웃으며 그녀를 놀렸다.“일이 바쁜지는 모르겠지만, 군턱이 진 것을 보니 끼니는 굶지 않은 것 같구나.”“할아버지, 저 군턱이 지지 않았어요.”오기가 생긴 고은혜는 증명해 보이려고 목을 쭉 빼 들었다.“보세요. 전혀 안... 콜록!”목을 너무 세게 빼든 탓에 말이 끝나기 전에 사레가 들렸다.그녀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연거푸 기침했다. 유성준이 어이없는 듯한 표정으로 물과 휴지를 건넸다.“회사에서 센 척하더니 집에서도 이러네.”“콜록콜록! 제가 언제 센 척했다고 그래요? 저는 그런 적이 없어요. 콜록!”고은혜는 기침하면서도 발끈했다.이 정겨운 모습을 보고, 고은서는 문득 유성준과 고은혜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은 부드럽고 세심한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덜렁대는 성격이다.다만 숙모 단은숙이 동의할지 모르겠다. 고은혜가 명문가에 시집가 상류층에 진입하기를 바라는 그녀였다.유성준도 집안이나 능력이 빠지지 않았지만,

  • 어게인, 비긴   제1081화

    고은서가 이미 생각을 정했다는 것을 확인한 곽승재는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고 단지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할 말을 다 한 고은서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늦었는데 일찍 들어가 쉬어.”곽승재는 좀 더 있고 싶었지만, 억지로 머물 핑계를 찾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났다.때마침 영상전화가 걸려 오자, 고은서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영상전화를 받았다.문 쪽으로 걸어가던 곽승재가 무심결에 돌아보니, 그녀는 어느새 소파에 벌러덩 누워 한쪽 발을 다른쪽 무릎에 올리고 흔들거리고 있었다. 진지하고 엄숙했던 조금 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이었다.곽승재는 이혼하기 전의 일이 문득 떠올랐다. 한번은 그가 외할아버지 댁에 같이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은서가 삐진 적이 있었다. 그녀가 며칠째 외할아버지 댁에 머물며 집에 돌아오지 않자, 이 일을 알게 된 할머니가 그를 고씨 가문으로 보냈다.그때의 고은서도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편안한 실내복 차림으로 소파에 엎드려 두 발을 흔들거리며 아이패드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맨발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곽승재는 그 순간 모든 불쾌감이 사라졌다. 원래 불만 가득했던 그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고은서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도우미가 말을 걸어서야 정신을 차렸다.다시 모습을 드러낸 고은서는 흠 잡을 데 없이 단정한 차림에 화장도 완벽하게 끝낸 상태였다.그와 함께 마구 뛰던 곽승재의 심장도 평온을 찾았다. 고은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해서 잠깐 넋을 잃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그것이 실은 설렘의 순간이었다는 것을 끝내 깨닫지 못했다...고은서와 이야기하던 중, 고은혜가 문 쪽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언니, 저기 혹시... 형부?”고은서가 몸을 뒤로 젖힌 채, 고개를 돌려보니 곽승재는 여전히 문어귀에 서 있었다.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잘생긴 얼굴에서 고통스러운 기색이 언뜻 보였다.‘갑자기 왜 저런 표정이지?’고은서가 자세히 보려고 일어났을 때는 그가

  • 어게인, 비긴   제1080화

    “당시 시은이가 부상당한 쿠아를 쫓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에 대한 기억이 전부 시은이가 쿠아를 구해 준 그 따뜻한 장면으로만 남아있어. 시은이가 왜 거기에 있었을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고은서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곽승재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고은서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두려워하지 마, 자책하지도 마.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할 거야.”곽승재가 부드럽게 위로했다. “내가 민기 씨에게 송민준과 시은 씨사이의 관계를 조사해 보라고 시켰어.”고은서는 살며시 손을 빼냈다. “그럼 부탁할게.”곽승재는 살짝 실망한 표정을 애써 숨기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시은이가 당신과 결혼을 하려 하기에 날 싫어하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가. 하지만 송민준은 왜 나를 미워할까?” 고은서가 의문을 제기했다.비록 그녀가 예전에 민시후와 가까웠다고 해도 고씨 가문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게다가 유미 씨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귀국한 것은 곽 회장님의 뜻뿐만 아니라 이 C 선생의 지시도 있었다고 했다. 그 시절 자신은 민시후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었다.‘고씨 가문이 송민준에게 크게 잘못한 거라도 있나?’고은서는 머리가 터질 정도로 생각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곽승재도 이 일의 전후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우리의 추측일 뿐이야. 증거 없이는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으니 서두르지 마.”고은서는 급할 수밖에 없었다. 뒤에 숨은 검은 손을 잡아내지 못하면 그녀와 고씨 가문은 영원히 불안에 떨어야 했다.전생의 비극적 결말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범인을 색출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곽승재는 고은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MQ에 관련된 일은 내가 사람을 시켜 주의 깊게 보고 있어. 무슨 움직임이 생기면 바로 나에게 보고할 거야.”고은서는 곽승재가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곽승재를 바라보았다.거실의 하얀 색 조명 아래서 그의 각진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