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의 두사람은 무대 아래의 사람들을 의식이라도 한 듯 더 애틋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2년 전 우리 공주 생일, 나와 공주의 가족들은 부산에서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죠. 하지만, 작년에는 공주도 나도 너무 바빠서 서로 떨어져 있는 바람에 공주의 생일을 함께 할 수 없어 너무 슬펐어요. 하지만 올해는 공주와 함께 이 대구에서 성대한 생일 파티를 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정재하는 심연희의 허리를 감싸고는 뜨거운 눈빛으로 심연희를 바라보았다.“공주야, 내가 준비한 이 모든게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심연희는 고개를 돌려 그를 돌아보았다.“너무 마음에 들어!”그 순간 관중들은 격하게 외쳤다.“키스해! 키스해!”정재하는 얼굴을 붉히며 심연희를 바라보았지만 끝끝내 입을 맞추지는 않았다.한참 뒤 그는 손사래를 치며 관중들에게 말했다.“부끄러우니 그만하시지요~”그의 말에 여기저기서 야유가 쏟아졌다.“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사람들은 연신 웃어댔고, 정재하도 머쓱하게 웃었다.“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애정 행각은 좋지 않죠~?”정재하는 말을 마치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 마이크를 심연희에게 주었다.심연희는 마이크를 받고는 우아하게 무대 아래를 향해 인사를 하였다.“여러분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참석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그녀의 귀엽고 다정한 목소리는 그녀의 외모와 잘 맞아 떨어졌다.정재하는 그런 심연희를 귀엽다는 표정으로 지켜보았다.심연희는 갑자기 정재하를 바라보더니 그의 두 볼을 잡고 가볍게 입을 맞췄다.연회장 안의 분위기는 심연희의 대담한 행동으로 인해 후끈해졌다.모두들 두 사람을 축하하는 분위기였지만, 심유진은 그녀의 행동에 적지않게 놀랐다.그녀의 머릿속에 심연희는 아직도 중학생에 머물러있었기 때문이었다.‘어떻게 저런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지? 내가 기억하는 부모님은 저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교육했을 텐데……’심연희는 심유진과 같은 엄격한 가정교육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
심유진은 두사람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홀을 돌아다니는 관리인이 음식을 테이블마다 배치했고 사람들은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고 모두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정재하와 심연희의 자리는 허태준과 심유진의 맞은편에 위치했다.정재하는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허태준에게 달려왔다.“허 대표님!”그의 얼굴은 조금 전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허태준을 보고 너무 기뻐서인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다.그에 의해 뒤에서 심연희는 그런 정재하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쓴 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정재하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기뻐 허태준에게 연신 인사를 했다.정재하가 오는 것을 본 허태준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정재하와 심연희에게 미소를 지으며 온화하게 인사했다.“심연희 씨 오늘 생일 축하해요.”심연희는 허태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호명이 되자 의례적인 미소를 지었다.사실 심연희 역시도 허태준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이 처음이라 그의 조각 같은 외모에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정재하는 그제서야 심연희가 떠오른 듯 뒤를 돌았다.“연희야! 연희야! 이리와! 여기 내가 가장 존경하는 허 대표 님이라고 잘 알지?”“응. 잘 알지.”“대표님 이렇게 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정재하는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허태준에게 악수를 청했고,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스타를 만난 소녀 팬 같았다.심유진은 그런 정재하의 모습이 살짝 의심스러웠다.“저는 대표님이 오늘 못 오시는 줄 알았어요! 부산에 길게 출장을 가셨다고 전해 들어서…… 사실 기대 안하고 자리를 준비한 건데,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하기 이를 데 없네요!”“저도 하마터면 못 올 뻔했네요. 파티만 참석하고 다시 부산으로 가봐야 합니다.”“어이쿠, 그러셨군요.”정재하는 허태준이 바쁜 와중에도 파티에 와줬다는 것이 정말 믿기지 않았다.그의 뒤에 서있던 심연희가 허태준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허 대표님은 정말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시네요.”허태준
“심 매니저?”정재하는 놀라서 크게 소리쳤다.“심 매니저가 허 대표님을 여기에 모시고 온 장본인이라고요?”심유진은 정재하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에이, 제가 무슨 힘이 있어서 대표님을 모시고 왔겠어요. 호호.”“무슨 소리예요! 심 매니저 보통이 아닌 건 알았지만, 허 대표님을 움직이게 할 줄 이야!”“……”“아 내 정신 좀 봐! 연희야 여기는 로열 호텔에 매니저 겸, 허 대표님과 만나고 계신 심유진 씨야…… 어 그러고보니 너랑 같은 심 씨?”정재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연희가 말을 꺼냈다.“설마 유진 언니?”심연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떨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심유진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심연희는 그녀의 친어머니 사영은이 재혼한 남자의 친딸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이다.사실 심연희는 심유진에게 별 감정이 없을 수도 있었다. 두 사람은 한집에 살았지만 다섯 살 차이가 나서 같은 학교에 다닌 적도 없었고, 집에서도 같은 층에서 생활한 적이 없으며 심지어 밥도 따로 먹었기 때문이다.어쩌면 심연희는 심유진이 같은 집에 살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유년기를 보냈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심유진에게 심연희는 늘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그녀의 어머니는 항상 심유진을 보며 “연희 반만 닮아라.” 라고 했으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심유진은 심연희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녀가 점점 커가면서 심연희의 존재가 방해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영은과 새아버지인 심훈 모두 심유진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사영은에게 심유진은 마치 잊고 싶은 과거에 혹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심유진은 심연희를 향했던 질투심과 분노가 모두 자신의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안 이후 심연희를 그렇게 미워하지는 않게 되었다. 하지만 오래 연락하지 않고 지냈으니 만나도 별로 반갑지는 않았다.이왕 이렇게 된 이상 심유진도 더는 숨길 필요가 없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심연희를 보았다.“그래 오랜
정재하는 두사람의 대화를 듣고 낌새를 챘다.“연희야, 혹시 유진 씨가 네 언니라는 거야? 그럼 둘이 자매사이라는 거야? 어? 이렇게 보니 분위기가 닮은 것 같기도 하고?”정재하가 떠들든 말든 심유진과 심연희는 그를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연희야, 이리와. 유진 씨 편하게 해드려야지. 그렇게 안고 있으면 네 옷도 망가지고 유진 씨도 난처해하시는 거 안 보여? 이리 와서 밥 먹자.”정재하는 심연희를 심유진에게서 떼어내려고 했지만 심연희는 꼼짝하지 않았다.“나 그럼 언니랑 같이 앉을래!”그녀는 심유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교태를 부리며 말했다.“그럴 필요……”심유진이 말을 하기도 전에 심연희가 허태준에게 다가가 자리를 바꿔달라고 했다.“허 대표님 자리 좀 양보해 주세요~”심유진은 허태준을 보며 제발 도와달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허태준은 웃으며 심연희와 자리를 바꿔주었다.심유진은 한숨을 내쉬며 심연희와 허태준이 자리를 바꾸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내심 정재하가 나서서 심연희를 데리고 가주길 바랬다. 하지만 정재하는 눈치를 어디에 뒀는지 그저 허태준 옆에 앉는다는 생각에 들떠서 심연희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아…… 오늘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심연희는 파티 내내 심유진 옆에 앉아 자신의 지난 얘기를 떠들었다. 심유진은 그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몇 년 묵은 얘기까지 토해냈다.심유진은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을 이 지옥 속에서 꺼내 줄 사람을 찾았지만, 아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근데 언니 방금 허 대표님이 언니보고 여자친구라고 한 거 말이야. 그거 사실이야?”심유진은 심연희의 물음에 무의식적으로 맞은편에 있는 허태준을 바라보았다.그는 우아하게 시선을 아래로 두고는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고, 그 옆에는 심연희 못지않게 재잘거리는 정재하가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심연희와 정재하가 같이 지내면 오디오 끊길 일은 없겠네.’멍하니 정재하를 보고 있던 심유진은 심연희가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이
심유진의 질문에 심연희는 입을 삐죽이더니 대답했다.“재하 오빠는 유학 때 만났어. 대학교에 소규모 클럽이 있었는데, 그 중에 나랑 재하 오빠 그리고 어떤 언니만 한국인이었거든 그래서 급속도로 친해졌지. 우리는 늘 함께 놀았고, 당시에는 호감만 있었지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어. 시간이 흘러 둘 다 졸업했고, 우연히 어느 술자리에서 오빠를 만나게 된 거야. 그때 운명이라고 느끼고 양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교제를 시작했어.” 심연희는 준비된 문장을 읽든 아무 감정없이 후루룩 정재하와의 이야기를 뱉어 냈다.‘뭐야 무표정으로 연예사를 읊다니? 설마 심연희는 정재하를 좋아하지 않는 건가?’말을 마친 심연희는 심유진을 뚫어져라 보았다.“언니, 이제 언니 차례 아냐?”심유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연회장에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도 꽤 컸을 뿐 아니라, 테이블도 넓었기에 허태준은 그녀와 심연희가 대화하는 내용을 듣지 못할 것이다.심유진은 열심히 식사를 하는 허태준을 보며 “아무 말이나 해도 되겠다” 하고 안심했다.“태준 씨가 우리 호텔을 시찰하러 왔을 때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옆에서 호텔 소개를 했어. 당시에 나도 결혼 생활 마치고 솔로였고…… 힘든 와중에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태준 씨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던지…… 그래서 내가 막 들이댔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마음으로 대시를 했지. 그도 내 진심을 알아봤는지 만나보자고 하더라고.”심유진은 꾸며낸 이야기라도 허태준의 체면을 살려주고 싶었다.“그래?” 심연희는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 다시 허태준 쪽을 한번 흘겨보았다.“허 대표님 그렇게 안 봤는데, 꽤 쉬운 사람이네?”심연희에 말에 심유진은 위기감을 느꼈다.“쉬운 사람 아니야. 얼마나 힘들었는데, 내가 얼마나 열심히 대시를 했는지 알면 아마 너도 놀랄 걸?”심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웃음을 지었다.“아무튼 언니는 참 운이 좋네~”**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이 얼추 밥을 다 먹고 일어났다.심
심유진과 허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본 심연희는 심유진의 팔을 껴안고 초롱초롱한 큰 눈을 깜박이며 기대에 찬 얼굴로 심유진을 바라보았다.“언니~ 오늘밤 같이 있어줘~ 나 이 호텔에서 묵을 게~”심유진의 모든 감각이 허태준이 감고 있는 손에 집중되어 있어서 심연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정재하는 심유진에게 심연희의 제안을 거절하라는 눈짓을 계속해서 줬다. 그의 눈짓을 읽은 심유진은 조용히 팔을 뺐다.“아냐, 모처럼 대구에 왔는데 남자친구랑 보내야지.”“아 왜~ 오늘 내 생일이니까 내 소원 들어준다고 생각하고 들어주면 안 돼?”그녀는 볼에 바람을 넣고 두 눈을 부라리며 토라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러나 심유진은 그녀의 뻔한 수법에 넘어가지 않았다.“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심유진이 아무런 동요가 없자 심연희는 또 눈물을 글썽이며 심유진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아 언니 제발~ 한 번만!”심연희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리려고 하자 정재하가 태도를 바꾸었다.“유진 씨, 연희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한번만 들어줘요. 시간 잠깐 낼 수 있잖아요? 연희랑 시간 좀 보내줘요~”“누구 마음대로?”허태준의 언짢은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심연희 씨, 미안하지만 지금부터 심유진 씨는 나와 시간을 보낼 겁니다.”허태준이 심유진의 허리를 힘주어 감쌌다.심연희는 허태준과 심유진을 쳐다보면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 그래요. 어쩔 수 없죠.”심유진은 그녀의 손에서 팔을 빼 정재하에게 팔짱을 꼈다.심연희는 떠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안녕, 언니~” 라고 마지못해 말했다.**연회장 밖의 공기가 안과 다르게 선선했다.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 둘러 쌓였다가 해방이 되어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고마워요.”심유진은 고개를 쳐들고 허태준에게 말했다.“고맙긴?”“나 민망하지 않게 해준 것도, 그리고 이렇게 나올 수 있게 도와준 것도……”“이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닌
“맞아요. 부산에서 나고 부산에서 자랐죠. 하지만 대학을 대구로 와서 여기서 일도 구하고 정착한 거예요. 그 후로는 부산에 갈 이유도 갈 필요도 없었고요.”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평소답지 않게 단호한 그녀의 모습에 허태준은 잠시 멈칫했다.“그럼 대학 입학 이후에는 가족들과 연락하지 않고 산 거야? 아까 심연희 씨가 당신을 찾았다고 하던데.”심유진은 한참 후에 대답했다.“맞아요.”“왜?”허태준은 사실 그녀가 가족들과 연락하지 않은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녀가 직접 말하는 것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심유진은 입을 열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심유진은 어색한 침묵을 견디기 힘들어 호텔 밖으로 나왔다.“근데 허태준 씨 부산으로 출장 간 거 아니었나요? 설마 정재하 씨 파티 때문에 온 거예요?” “맞아.”그녀는 허태준이 정재하에게 그녀를 위해서 돌아온 것이라고 말한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 대구에 볼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온 거야.”심유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약간의 실의에 빠졌다.**허태준은 심유진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그가 모는 차는 여전히 원래의 그 마세라티였다. 그가 그녀를 위해 산 롤스로이스는 장식품처럼 한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심유진은 매번 그 롤스로이스를 지나칠 때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허태준도 그녀가 불편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불편해할 필요 없어. 여형민 주면 되니까.”“……”“앞으로 네가 원하지 않는 건 강요하지 않을 게.”‘그게 내 마음이라고 할 지라도 말이야.’**다음날.객실을 확인하던 심유진은 우연히 심연희와 마주쳤다.심연희는 즉시 그녀의 팔을 껴안으며 “언니~” 라고 말했다.심유진은 심연희가 살갑게 다가올수록 마음이 불편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심연희는 턱을 그녀의 어깨에 대고 계속 눈을 깜박거렸다.“언니 시간 있으면 대구 좀 구경 시켜줘!”심연희의 말에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녀는 심연희가 빨리 돌아가길 바라
오후에 심유진은 총 지배인의 호출을 받고 사무실에 들어갔다.뜻밖에도 심연희도 그곳에 있었다.이번에 심연희는 심유진을 보고도 그녀를 '언니' 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살갑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정숙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총 지배인은 그 두 사람의 관계가 자매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심 매니저, 여기는 심연희 씨라고 해요.”“아……”“심 매니저, 여기 심연희 씨가 대구에 놀러왔는데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셔서 내 생각엔 심 매니저가 심연희 씨를 데리고 여기저기 구경을 다니면 좋을 것 같은데요?”심유진은 총 지배인의 말을 듣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심연희…… 보기보다 영악하구나. 그때 그 어리고 멍청하던 중학생이 아니야.’심유진은 심연희의 기묘한 미소를 보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총 지배인이 저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심유진이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그럼 심 매니저? 저랑 같이 구경하려면 카카오톡 추가해야 겠네요?”심연희는 자신의 카카오톡 아이디를 그녀에게 알려주었다.“아, 그래야 겠네요.”심유진은 어쩔 수 없이 심연희의 카카오톡을 추가했다.**심유진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심연희의 앞에서 걷고 있었다.“언니 화났어?”심유진은 뒤를 돌아 심연희를 쳐다보더니 이내 다시 앞만 보고 걸었다. “언니, 나 다른 뜻이 있었던 건 아니야! 난 그저 언니랑 시간을 좀 보내고 싶어서 그랬어. 내가 무례했다면 미안해.”“응 맞다. 무례했지. 내 직장에서 지배인님까지 끌어드려서……”“미안 미안! 언니 용서해줘……”심유진은 심연희에 사과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심연희는 그녀에게 카톡을 보내기 시작했다.[언니 화 풀어라ㅠㅠ][난 언니가 좋단 말이야!][내가 잘못 했어 언니!]끊임없이 울리는 진동에 심유진은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두드렸다.[화 안 났어.]그러자 심연희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방방 뛰었다.“언니 그럼 화 안내는 거지?”“응 그래.”“야호!”“그럼 어디 갈래? 어디 가고 싶은데?”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