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유겸의 뺨을 올려붙였다. 유겸은 예상치 못한 채이의 손찌검에 놀랐지만, 오히려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마음이 풀리지 않으면 더 때려도 돼. 난 괜찮아. 네 화만 풀린다면 그걸로 돼.” ‘얼마나 다정한 척을 하는 거야. 정말 역겹네.’ 채이는 다시 한번 유겸의 뺨을 힘껏 쳤다. ‘네가 네 입으로 말했어. 나한테 때리라고.’ 채이는 차분히 말했다. “내가 예전에 말했던 거 기억나? 다른 건 다 참아도, 네가 날 배신하면 난 반드시 다른 남자와 결혼할 거라고.” 유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자기야,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선택한 사람은 자기야. 평생을 함께할 사람도 자기고. 내가 자길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런 일은 절대 없어. 나는 변하지 않아, 절대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면서, 다른 여자와 얽혀 병원에 실려 갔다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면서, 다른 여자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 결혼식을 미루고, 나를 그저 ‘대체품’으로 만들었잖아?!’ 채이는 유겸의 위선적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들어 유겸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의 마음속엔 대체 무슨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걸까?!!’ 그녀는 한참 유겸을 응시하다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유겸은 다시 채이를 꼭 끌어안았다. 하지만 채이는 남자의 품에서 벗어나며 유겸을 밀쳐냈다. 그 순간 유겸의 시선이 채이 옆에 놓인 커다란 캐리어에 닿았다. 아까 잠시 내려놓았던 그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다급히 채이의 팔을 붙잡으며 물었다. “이 캐리어 누구 거야? 어디 가려고?” 채이는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우리 엄마가 결혼이 다가오니 한 번 집에 들러야 하지 않겠냐고 하셔서.” “정말 그거야?” 유겸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어. 결혼 전에 신랑과 신부가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게 전통인 집안도 있잖아. 비록 결혼식이 연기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채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함께 한 지 5년이나 됐는데, 신유겸이랑 헤어질 줄은 정말 몰랐어. 더군다나 내가 다른 남자랑 결혼하게 될 줄은 더더욱... 며칠 사이에 모든 게 달라져 버렸어...’채이의 옆에 놓인 핸드폰이 몇 번 울리더니 몇 개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강채이, 내가 어디 있는지 맞혀봐!] 루나가 보낸 메시지였다. 이 메시지와 함께 몇 장의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채이와 유겸의 집이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건, 사진 속의 루나와 유겸이 침대 위에 둘이 엉켜 있었다. 그 침대는 바로 채이가 직접 골랐던 신혼 침대였다. [네가 떠나자마자 유겸이 날 여기로 데려와 살게 해줬어. 심지어 모든 가사도우미에게도 절대 너한테 말하지 말라고 지시했더라. 네가 직접 고른 침대, 진짜 편하더라. 네가 골라둔 이불, 우리 둘과 너무 잘 어울리지 않아?] 루나가 보낸 도발적인 말들과 사진들. 채이는 더 이상 그런 것들에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조용히 사진을 넘겨보다가 핸드폰을 꺼버렸다. ‘이제 상관없어. 어차피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테니까.’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채이의 부모님은 딸의 결혼 준비로 바빴다. 채이 역시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드레스 피팅에, 물건을 고르고 사느라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유겸의 소식은 대부분 루나가 전해주는 것이었다. 루나는 매일 사진과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녀는 자신과 유겸에게 있었던 일들을 일일이 전하며 자랑이라도 하듯 꾸준히 보내왔다. 채이는 그저 웃음거리로 생각하며 사진을 하나씩 저장하고, 메시지를 캡처해 두었다. 유겸도 매일 채이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고, 채이를 위한 선물을 보내기도 했지만 채이는 한 번도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선물은 열어보지도 않고 전부 버렸다. 그러던 중, 마침내 결혼식 전날이 되자 유겸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유겸은 얼어붙은 듯 멍하니 중얼거렸다. “뭐라고? 채이가 오늘 결혼한다고 SNS에 올렸다고?” 그는 재빨리 친구의 핸드폰을 낚아채 확인했다. 채이의 게시물을 보는 순간, 유겸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말도 안 돼. 채이가 결혼한다고? 대체 누구랑?’ 이와 동시에 도로 옆에 한 대의 차가 멈추더니, 누군가 차에서 내렸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이였다. 유겸은 그녀를 보자 얼굴빛이 확 변했다. 그는 그대로 굳은 채,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채이... 너 여기 왜 온 거야?” 채이는 차에서 내려 유겸을 바라보며 입가에 비웃음을 띠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네. 너야말로 여기 왜 있는 거야?” 그녀의 시선은 유겸 옆에 서 있는 루나에게로 향했다. 루나는 채이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채이의 부케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채이의 자리에서 서 있었다. 채이를 본 루나의 얼굴은 금세 새파랗게 질렸다. ‘설마... 강채이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여기까지 올 줄 몰랐네!’ 루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채이 씨! 제가 오늘 유겸이랑 결혼하는 거 알고 이러는 거죠? 그래서 일부러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거죠? 유겸이 빼앗아 가려고요?” 여자의 눈에서는 금세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발, 제 결혼식 망치지 말아줘요. 부탁할게요. 저... 저 얼마 못 살아요. 곧 죽을 거라고요. 제가 죽고 나면, 그때는 채이 씨가 유겸이 가져요. 그러니까 지금은 제 결혼식 좀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두라고요!” 루나는 울며 애원했지만, 채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루나는 감정이 폭발한 듯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제발... 부탁이에요!!” 유겸은 루나와 채이를 번갈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채이가 여기 온 거지? 이건 말도 안 돼...’구경꾼들이 점점 모여들었고, 사람들은 눈앞의 상황을 보며 채이를 ‘불청객’ 혹은 ‘세컨드’로 여기는 듯한 분
사람들은 루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랐다. 여자의 이마에서 흐른 붉은 피가 흘러내리며 하얀 웨딩드레스를 물들이고 있었다. “서루나!” 유겸은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치며 루나에게 달려갔다. 루나의 행동은 유겸의 마음속 남아 있던 망설임과 죄책감을 모두 사라지게 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루나를 안아 들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물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어? 왜 이런 짓을 해?” 루나는 흐느끼며 말했다. “유겸이 너도 알잖아. 내가 평생 가장 바랐던 건 너와 결혼하는 거였어. 그런데 채이 씨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니, 차라리 지금 여기서 죽는 게 낫겠어. 괜찮아. 너 원망 안 해. 채이 씨도 원망하지 않고. 이 모든 게 내 운명이니까.” 말을 마친 루나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그 모습을 본 유겸의 눈빛은 서서히 차가워졌다. 그는 고개를 들어 채이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루나가 이렇게까지 해야만 네 비난이 멈출까? 언제부터 이렇게 잔인하고 냉정한 사람이 된 거지?” 남자의 차가운 비난에 채이는 마음 한구석이 쿡 하고 아팠다. ‘그래, 결국 네 눈에 비친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됐어. 이쯤에서 끝내자. 이 연극, 진짜 지긋지긋해.’ 채이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유겸, 이제 곧 결혼식 시작해야지? 시간 낭비 말고 얼른 들어가.” 유겸은 대답 대신 루나를 품에 안고 채이를 한 번 쳐다보았다. 이제 그의 시선엔 연민도,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채이에게 다가와 위로하는 척하며 말을 건넸다. “채이야, 이제 그만해. 유겸이도 말했잖아? 루나 얼마 못 산다고. 괜히 여기서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망신당하지 말고 돌아가.” 채이는 이들의 말에 냉소를 머금으며 차분히 말했다. “내가 아까 말했잖아. 난 오늘 여기 신유겸 때문
유겸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사람들을 따라가려 했다. 그러나 루나가 유겸의 팔을 붙잡으며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 “유겸아, 가지 마. 오늘은 우리 결혼식 날이야. 이렇게 많은 친척과 친구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네가 날 버리고 가버리면 나는 정말 창피해서 죽고 싶어질 거야.” 유겸은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고 말했다. “잠깐만 다녀올게. 채이는 항상 침착한 사람이잖아. 그런데 오늘 왜 갑자기 저러는지 너무 걱정돼.” 루나는 남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흐느꼈다. “그럼 나는? 넌 내 걱정은 안 해? 나 죽어가고 있잖아!” 말을 마친 그녀는 갑자기 격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겸은 루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단호히 말했다. “미안해. 하지만 이건 꼭 가서 확인해야겠어.” ‘혹시라도 채이가 정말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면, 그땐 나는 평생 후회할 거야.’ “나도 같이 갈게!” 루나는 유겸을 따라 무대에서 내려왔고, 유겸과 루나가 동시에 움직이자 하객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터졌다. 사회자 역시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한 얼굴로 멈춰 섰다. ‘이게 뭐야? 결혼식장에서 신랑과 신부가 동시에 사라지다니,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한편, 채이 쪽에서는 예식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신랑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성준이 곧 도착할 겁니다.”“죄송합니다.”“...”고씨 집안사람들은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말들을 반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 사이의 수군거림은 점점 커져 갔다. “설마 유겸이 맞는 말을 한 건가? 이 결혼식 진짜 그냥 쇼야? 채이가 일부러 유겸을 자극하려고 꾸민 거라면?” “아니, 그런데 우리는 대체 어디서 밥을 먹어야 하지? 여기 계속 있어도 되는 거야?” “난 그냥 유겸이 쪽으로 갈래. 저쪽이 훨씬 더 확실해 보인다. 여긴 신랑도 없잖아.” 그 말을 들은 루나는 안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신랑이 나타나지
“죄송합니다, 장모님, 장인어른. 늦었습니다.” 성준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지만, 입에서 변명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루나가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웬 상거지예요?! 채이 씨, 정말 저런 넝마나 걸친 거지랑 결혼하겠다는 거예요?!!” 여자의 목소리는 너무 컸고, 하객들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유겸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강채이, 아무리 나를 자극하고 싶어도 그렇지, 설마 진짜로 이런 사람을 데려와? 이런 식으로 나를 놀리겠다는 거야? 이게 재미있어?” 성준은 찌푸린 눈썹 사이로 자신을 아래위로 살폈다. 그는 조금 전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할머니를 구하려다 차 밑에 기어들어 갔다가 이렇게 엉망이 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사람들이 자신을 거지 취급하는 건 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했다. ‘설명할 필요도 없어.’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채이를 바라보았다. ‘우아한 몸매, 단정한 자세, 출중한 외모까지...’ 하지만 동시에 ‘사람 됨됨이’는 어떨지 아직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지라도 상관없어. 오늘 난 이 사람과 결혼할 거니까.” 채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성준 옆으로 걸어가 그의 팔을 끼며 말했다. “신유겸, 소개할게. 이 사람이 내 남편, 고성준이라고 해.” “고성준?” 유겸은 순간 멍해졌다. 채이가 예전에 이야기했던 약혼남 이름이 떠올랐다. ‘맞아, 그때 그녀가 어릴 때 집안끼리 약속한 정혼자가 있다고 했었지. 이름이 고성준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그때 유겸은 채이가 영원히 자신 곁에 있을 거라고 믿었기에,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흘려들었다. 그런데 지금, 채이가 정말로 고성준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강채이, 이제 그만해. 충분히 웃겼으니까, 나랑 같이 가자.” 유겸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채이의 손목을 잡았다. “가자. 여긴 너랑 어울리지 않아.” 그러나 채이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
“너도 말했잖아. 평생 나만 아내로 삼겠다고.” 채이는 무기력하게 눈을 들어 유겸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 “기억 안 나? 내가 했던 맹세. 언젠가 네가 날 배신하면, 나도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신유겸, 이건 우리의 약속이었어, 안 그래?” 유겸은 완전히 멘붕 상태에 빠졌다. 그제야 그는 채이가 장난을 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미안해, 자기야. 정말 미안해. 제발 날 용서해 줘. 루나랑 결혼식 같은 거 안 할게. 다시는 루나 만나지도 않을게. 이번 한 번만, 딱 한 번만 기회를 줘, 응?” “이 사람 끌어내.” 성준의 단호한 목소리가 울리자 그의 부하들이 앞으로 다가와 유겸을 둘러쌌다. 성준은 옆에 서 있는 아내를 의식한 듯 채이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여보, 어떻게 할까요?” ‘여보?’ 이 말에 채이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 채이는 고개를 돌려 성준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뜨겁고 깊은 눈빛은 채이의 마음을 순식간에 흔들어 놓았다. ‘이 사람... 진심인가?’ 그러나 채이는 곧 정신을 차렸다. “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준의 의견에 동의했다. ‘신유겸은 더 이상 신경 쓸 것도 없어. 이 말도 안 되는 소동을 빨리 끝내고 싶어.’ “채이야! 제발! 내가 정말 잘못했어. 날 용서해 줘!!!” 유겸은 발버둥 치며 채이의 손을 붙잡았다. 절대 놓지 않으려는 듯 채이를 잡은 유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자기야! 정말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하려는 거야? 네가 사랑한 건 나잖아! 우리 5년 동안 사랑했잖아. 그걸 잊은 거야?” 채이는 유겸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속으로 되뇌었다. ‘사랑? 그래, 널 사랑했지. 꼬박 5년 동안... 수많은 날과 밤을 너와 함께하며 사랑했지.’ ‘서루나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우리 사이에는 어떤 틈도 없었고, 늘 행복했지.’ ‘하지만 이 선택은... 신유겸 네가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어.’ ‘나는 그동안 충분히 신유겸에게
“이봐, 이보세요. 여기서 더 이상 소란을 피우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유겸은 그들의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한 채 버텼다. 그때 강정빈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더니, 유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신유겸! 내가 자네를 얼마나 오래 참았는지 아나? 우리 딸과 5년이나 연애해 놓고, 결혼은커녕 채이를 속이고, 결혼식을 미룬다더니, 알고 보니 채이의 예식장을 자네가 다른 여자랑 결혼하려고 가로챈 거였어!” “우리 딸이 자네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데, 자네는 뻔뻔스럽게 채이를 속이고 또 속였어. 더 이상 이러면 내 딸 대신 내가 자네를 죽여버릴 거야!” 강정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겸의 뺨이 부어올랐지만, 여전히 자리를 떠나지 않고 버텼다. “안 갑니다! 절대 안 가요! 아버님, 저 채이랑 결혼할게요. 오늘 당장 결혼하겠습니다. 제발 허락만 해주세요. 평생 채이만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유겸의 고집은 끝이 없었다. 이때 성준의 아버지가 조용히 시선을 주자, 주변에 서 있던 몇몇 남자들이 유겸에게 다가가 그를 붙잡고는 주먹질을 시작했다. 남자들은 거침없었고, 유겸은 금세 입에서 피를 토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떠나지 않았다. 루나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강채이, 넌 이렇게 유겸이 맞는 걸 보고만 있을 거야? 유겸이는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너 지금 속 시원하니?” 채이는 피투성이가 된 유겸을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지만, 곧 무표정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다가가려 하자, 성준이 채이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내가 대신 처리할까요?”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괜찮아요. 내가 직접 해요.” 채이가 가까이 다가가자, 유겸은 피투성이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간신히 미소를 지었다. “채이야... 나랑 결혼하자. 지금 당장, 응?” 그러나 그녀는 남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 “신유겸, 그만해. 난 이제 널 사랑하
채이가 떠난 뒤, 남자는 천천히 기둥 뒤에서 걸어 나왔다.눈앞에서 그녀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유겸의 가슴은 철저히 무너져 내렸다.‘나... 정말 사랑했는데... 정말 잊을 수 없었는데...’ ‘하지만 채이는 이제 나를 미워하고, 다시는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아...’ 하지만 유겸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채이를 기다리기로 결심했다.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유겸에게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그리고 마침내, 채이가 돌아왔다.그 소식을 듣자마자, 유겸은 지체 없이 공항으로 달려갔다.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채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한 달이 넘도록 보지 못한 그녀가, 유겸은 너무도 보고 싶었다....채이가 비행기에서 내린 후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병원이었다. 유겸은 급히 차를 몰아 병원으로 갔고, 도착하자마자 채이가 성준과 함께 진료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성준이 채이의 손을 가볍게 잡고, 다정한 눈빛으로 말했다.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이제부터 아이스크림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들었지?” “알겠어! 그냥 몇 개 더 먹은 것뿐인데, 당신은 또 오버하네.” 채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여자의 손이 자연스럽게 배 위에 올려졌다. “있잖아, 아기가 나중에 크면, 당신을 더 닮을까? 나를 더 닮을까?” ‘...아기?’ 그 말이 들리는 순간, 유겸의 온몸이 굳어버렸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단 한 달 남짓이었는데, 채이가 벌써 성준과 아이를 가졌어?’ 그는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은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채이는... 이미 다른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채이... 분명 아픈 거 싫다고 하지 않았나? 당분간 아이 가질 생각 없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거지?’...“아들이면 나 닮아서 잘생기고, 딸이면 당신 닮아서 예쁠 거야.” “자기 너무 자기 중심적인 거 아니야?” 채이가 웃으며 성준의 등을 가볍게 쳤다. “몰랐어? 나
“난 채이가 나와서 날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채이는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해.” “그건 불가능해.” 성준은 핸드폰을 꺼내 들며 차분히 말했다. “계속 이러면 신고할 거야.” “신고해! 해보라고! 채이는 내가 경찰서에 가는 걸 보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분명히 날 구하러 올 거라고!” “그래? 그러면 어디 한번 볼까.” 성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경찰을 불렀다. 곧 경찰이 도착해 유겸을 끌고 갔고, 유겸은 차에 실려 가면서도 채이의 이름을 계속해서 외쳤다. “채이! 강채이! 나와 봐! 내가 잘못했어! 제발 한 번만 나와 줘!” 하지만 채이는 유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성준의 어머니와 함께 거실 소파에 앉아 한참 드라마를 보며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막장 드라마 속 삼각관계를 두고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 채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경찰서에서 걸려 온 것이었다. [강채이 씨, 혹시 신유경 씨를 아십니까? 신유겸 씨가 술에 취해 계속 소란을 피우고 있어서요. 가능하시면 경찰서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채이는 고개를 들며 성준을 바라보며 이 전화가 성준의 신고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깊은숨을 내쉰 뒤,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한데요, 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전화를 끊은 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성준의 어머니와 대화를 이어갔다. ...경찰서에서 유겸은 여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채이가 날 이렇게 내버려둘 리가 없어. 분명 날 구하러 올 거야.’ “채이가 올 거예요! 날 모른다고 할 리 없을 거예요. 제발 다시 채이를 불러와요. 나는 강채이를 만나야 해요!” 그는 절박하게 외쳤다. 예전에는 언제나 채이가 가장 먼저 유겸을 찾아왔다. 한 번은 유겸이 다른 사람을 위해 싸우다 경찰서에 끌려갔을 때도, 채이는 유겸을 위해 누구보다 먼저 경찰서로 달려왔었다. 그녀는 유겸을
성준은 결국 충동을 억누르고 차를 몰아 근처 약국으로 갔다. 잠시 후, 그는 약국에서 나온 뒤 조수석 문을 열고 앉은 후, 채이의 양말을 벗기기 시작했다. 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하는 거예요?” “발 좀 봅시다. 발목 삔 거 아니에요? 혹시라도 붓거나 멍들면 골치 아파지니까.” 성준의 말에 채이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그녀는 성준의 세심한 행동을 지켜보며,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채이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숙여 남자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뭐야... 지금 나한테 뽀뽀한 거야?’ 채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성준의 얼굴은 귀까지 빨개졌다. 항상 채이를 놀리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던 성준이었지만, 막상 그녀가 이렇게 다가오자 성준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계속 ‘내 와이프’를 흔들어보려고 했는데... 나는 가벼운 뽀뽀 한 번에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 거야?’채이는 남자의 귀까지 빨개진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사령관님도 얼굴이 빨개질 때가 있네요?” 성준은 당황한 듯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누가 얼굴이 빨개졌대요?” 그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채이의 발목을 살피고 조심스럽게 마사지해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채이가 조그맣게 비명을 질렀다. “아!” 성준은 깜짝 놀라 손을 급히 떼며 물었다. “아파요?” “아니요, 안 아파요.” 채이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지만,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유겸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예전에 내가 발목을 삐었을 때도 신유겸도 약을 사서 이렇게 발라줬지...’ ‘내가 아프다고 소리 지르면, 똑같이 놀라서 손을 뗀 다음 아프냐고 물었는데...’ 과거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지만, 지금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야. 그때는 신유겸을 사랑했지만, 지금은... 다 끝났어.’ 채이는 마음속에서 떠오르던 유겸의 그림자를 떨쳐내고, 다
이 광경을 본 유겸은 속이 터질 듯한 분노로 가득 찼다. “고성준!! 채이를 내려놔!! 다른 사람이 채이를 건드리는 걸 난 절대 허락하지 않아!” 그는 성준과 채이를 떼어놓으려고 몸을 던지듯 달려들었다. 그러나 성준은 살짝 몸을 비틀어 유겸을 피했고, 유겸은 중심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땅바닥에 구르고 나서야 멈춘 유겸의 모습은 한없이 초라하고 처참해 보였다.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흥미롭게 유겸을 지켜보며 웅성거렸다. “딱 천벌 받은 거지. 남에게 상처를 줄 땐 몰랐겠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잖아.” “늦은 후회는 제일 값싸다던데, 딱 그 꼴이네. 애초에 그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성준은 그런 유겸을 내려다보며 냉소를 지었다. “신유겸 씨,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다시는 채이 씨와 나를 괴롭히지 마세요. 채이 씨는 이제 내 아내고, 앞으로도 평생 내 아내일 겁니다. 당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녀는 당신에게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유겸은 이를 악물고 바닥에서 간신히 일어섰다. “결혼? 결혼했어도 이혼할 수 있어! 고성준, 너무 자만하지 마. 채이는 날 사랑해!” 성준은 유겸을 비웃으며 차갑게 말했다. “혹시 모르셨나 본데, 군인의 결혼은 법적으로 특별히 보호받는다는 거 아세요? 지금 당신 행동은 군사 혼인 방해죄로 간주할 수 있고, 그게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아십니까? 자칫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어요.”채이는 성준의 말을 듣고 참다못해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대단하다. 이 사람의 머리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거야?’ 유겸은 더 이상 성준과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절박한 눈빛으로 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채이야, 정말 나한테 아무런 미련도 없는 거야?” 채이는 성준의 팔을 살짝 밀어 자신을 내려달라고 한 후, 똑바로 선 채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유겸, 마지막으로 말할게. 우린 끝났어. 완전히 끝났다고. 서루나가
승마장의 공기는 한층 상쾌했고, 시야를 가득 채우는 탁 트인 풍경이 채이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주었다.“여기로 와요.” 멀지 않은 곳에서 성준이 손짓하며 채이를 불렀다. 채이는 잠시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 정말 잘생겼네.’ 말끔한 승마복을 입은 성준은 작은 말 한 마리를 끌고 있었고, 입가에 번진 미소에 더욱 환하게 빛났다. 남자의 우아하고 당당한 태도는 주변의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끌고 있었다. 성준을 본 근처의 여자들은 숨을 삼키며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심지어 몇몇은 다가가서 성준의 번호를 물어보거나, 톡에 친구로 추가하고 싶어 했다. 채이는 그 광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뭐 하는 거야? 왜 저렇게 들이대는 거야?’ 기분이 언짢아진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중 한 여자의 손에서 핸드폰을 받아들고는 빠르게 번호를 입력했다. “번호 여기요.” “감사합니다!” 그 여자는 보물을 얻은 듯 기뻐하며 돌아갔다. 성준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진짜 줬어요?” “네. 내 번호 줬어요.” 채이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말했다. “왜요? 성준 씨는 자기 번호 주고 싶었어요?” 성준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채이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 채이의 반응에 성준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그는 채이를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더니 옆에 서 있던 말을 가리켰다. “마음에 들어요?” “네, 예뻐요.” 채이는 말을 쓰다듬었다. 말은 기분이 좋은 듯 머리를 살짝 흔들며 반응했다. “이름 지어 줄래요?” “내가 지어도 돼요?” 채이는 잠시 망설였다. ‘승마장의 말인데 내가 이름을 붙여도 되는 거야?’ “내 말이에요. 당신에게 줄게요.” “진짜요?” 성준이 자기 말이라고 하자, 채이는 깜짝 놀라며 기뻐했다. “그러면 ‘채하’이라고 부를래요. 내 남동생으로 삼아도 될까요?” “얘 암
루나가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일반 병실로 옮겨져 있었다. 손으로 배를 만져보니, 텅 빈 느낌뿐이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그때 병실 문이 열리더니 유겸이 보낸 부하가 들어왔다. 그는 루나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이 안에 5억이 들어 있습니다. 신 대표님께서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루나는 그 말을 듣고 카드로 시선을 옮겼다. ‘5억? 전에는 1억이었는데, 애를 지우고 나니까 내 몸값이 올랐네.’ 그녀는 카드를 보며 속이 서늘해졌다. 그 부하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 비행기 표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늘 오후?” 루나는 쓰게 웃었다. ‘그 사람이 나를 이렇게까지 증오하다니. 수술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날 당장 내보내려고 하다니.’ 그녀는 고개를 들어 단호하게 말했다. “나, 그 사람을 만나야겠어요.” “죄송하지만, 신 대표님께서 절대 만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남자는 말을 끝내고 병실 문을 잠갔다. “시간이 되면 제가 공항까지 모시겠습니다.” 루나는 손에 든 카드를 보며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웃음은 곧 울음으로 바뀌었다. “내가 왜 돌아왔지? 왜 다시 돌아왔을까! 내가 이 꼴 당하려고 돌아온 거야?!!” ...루나 문제를 정리한 후, 유겸은 지친 몸을 이끌고 자신과 채이의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텅 비어 있었고, 차가운 공기만 가득했다. ‘채이는 없고, 썼던 물건도 하나도 남지 않았어.’ 그의 가슴이 점점 더 아파졌다. ‘내가 얼마나 채이를 잃고 싶지 않았는지 이제야 깨달았어. 채이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었는지...’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둘러보았는데, 갑자기 연애 5주년 기념일을 떠올리면서 채이가 그날 자신에게 준 선물이 생각났다. 유겸은 급히 계단을 올라가 그 선물을 찾았다. 그는 침대 옆 서랍에 놓여 있던 그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그 상자는 아직 열리지 않은 채로 그대로 남
“신유겸,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 내 배 속에 있는 건 네 아이야! 네 친자식이라고! 그런데 그걸 지우라고?” 유겸은 감정 없는 차가운 눈빛으로 루나를 바라봤다. 마치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아이가 아니야. 한 달도 안 된, 그냥 핏덩어리일 뿐이야.” 얇은 입술이 열렸지만, 거기서 나온 말은 끔찍할 정도로 냉혹했다. “핏덩어리라고? 네가 지금 뭐라고 했는지 알아?” 루나는 유겸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이건 네 아이야. 어떻게 네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아이? 무슨 아이?” 그때 유겸의 친구들이 병문안을 왔다.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루나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상황을 대강 짐작했다. “야, 유겸아. 너 루나랑 애까지 생겼어?” 루나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듯, 한 친구의 손을 붙잡고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제발 도와줘!!!” 그녀의 행동에 모두 당황해 눈이 커졌다. “루나야, 일단 일어나. 나한테 무릎 꿇으면 곤란하잖아!” “유겸이가 우리 아이를 지우라고 했어!!” 루나는 울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제발, 도와줘. 유겸이를 설득해 줘. 너희들이 말리면 유겸이가 듣지 않겠어?” “야, 유겸아. 너 진짜 미쳤냐?” 한 친구가 침대 쪽으로 다가가며 유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채이는 이미 결혼했잖아. 너희 둘은 이제 끝났다고. 지금 루나도 임신했다는데, 너 빨리 책임지고 결혼해서 아이 낳아. 네 할아버지께서 손주 기다리시는 거 알잖아. 그리고 네가 애를 얼마나 좋아하냐.” “내가 좋아하는 건 나랑 채이 사이의 아이야. 이 여자랑은 아니고.” 유겸은 얼굴이 잔뜩 어두워졌고, 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너희도 진짜 내 친구라면 내 일에 끼어들지 마.” “그래도...” 유겸의 친구들이 말을 잇지 못하고 주춤했다. 친구들은 루나를 보며 잠시 안쓰러운 마음이
채이가 떠난 후, 유겸은 생지옥에 빠진 것처럼 괴로워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간호사가 그를 막았다. “환자분, 아직 상처도 다 낫지 않았고 몸 상태도 안 좋습니다. 계속 침대에 누워 계셔야 합니다.” “아니요, 채이를 찾아야겠어요. 나 좀 내버려둬요!” “어젯밤에 환자분을 간호하던 그 여자분 말씀하시는 거죠? 그분은 이미 남편이랑 차 타고 떠나셨어요.” 간호사의 한마디에 유겸은 순간 멍해졌다. ‘남편? 채이의 남편?’ 채이가 결혼했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진짜로 결혼했단 말이야? 채이가 다른 남자랑...’ 유겸의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아니야. 혼인신고만 안 했으면, 아직 결혼한 게 아니야. 그 남자도 채이의 남편이 아니야. 내가 채이의 남편이야!’ 유겸의 감정이 격해지자, 간호사도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루나가 병실로 다급하게 들어왔다. “유겸아! 나 임신했어!”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유겸은 침대에 멍하니 앉아 꼼짝도 하지 못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루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라고...?” “나 임신했다고! 우리 아기를 가졌어!” 루나는 흥분하며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랐다. ‘드디어 임신했어!!’ “말도 안 돼. 분명히 약 먹으라고 했잖아!” 유겸은 루나의 팔을 꽉 잡으며 얼굴에 음산한 표정을 지었다. 루나는 입술을 꽉 물며 고개를 숙이면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 깜빡하고 안 먹은 적이 있었어. 근데 아무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진짜로 아기가 생겼어. 유겸아, 들었지? 나 임신했어!” 남자의 손에 잡힌 팔이 아플 정도였지만, 루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애원하듯 말했다. “우리 다시 결혼식 하자, 응? 나 지금 임신했잖아. 배도 점점 불러올 텐데, 빨리 결혼하자, 제발!!” 루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겸은 그녀를 거칠게 밀쳐냈다. “안 돼. 난 너랑 결혼할 생각 없어
성준을 본 유겸의 얼굴이 단번에 어두워졌다. “당신은 여기 왜 있죠?” “모르겠어요?” 성준은 두 팔을 가슴 앞에 교차해서 팔짱을 낀 채 차가운 시선으로 유겸을 노려봤다. “신유겸 씨, 맞죠? 채이 씨가 당신 때문에 우리 집안의 청혼을 몇 번이나 거절한 거, 정말 몰랐어요?” “채이가 나 때문에 고씨 집안의 청혼을 거절했다고요?” 유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죄책감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늘 생각했다. ‘채이 주변에 다른 남자가 없는 걸 보니, 나 말고는 아무도 채이를 원하지 않겠지.’ 그러나 그는 완전히 틀렸었다. 채이에게는 이미 혼담이 있었고, 상대는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군인이었다. ‘내가 얼마나 잘못 생각해 왔는지 이제야 알겠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절대로 루나와 결혼하겠다고 하지 않았을 텐데...’ 그는 속으로 뼈아프게 후회하고 있었다. “됐어요. 당신도 정신 차렸으니 이제 가야겠네요. 나랑 채이 씨도 집에 가서 좀 쉬어야죠.” 성준은 유겸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마침 채이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걸 보자, 성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단호하게 말했다. “가요. 집에 가서 쉽시다. 너무 피곤하니까요.” 채이도 더 이상 병실에 머물고 싶지 않았고, 성준과 함께 나가려 했다. “안 돼, 채이야, 가지 마! 떠나지 마, 제발!” 유겸은 다급해져서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온몸에 힘이 없는 그는 도저히 걸을 수 없었고, 바닥에 엎드린 채 채이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유겸의 이런 모습에 채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신유겸,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채이야, 가지 마. 제발. 내가 정말 잘못했어. 나를 떠나지 말아 줘. 부탁이야.” 성준은 그 모습을 보고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는 곧장 걸어가 유겸을 바닥에서 한 손으로 들어 올린 뒤, 침대 위에 던지듯 내려놨다. “당신이 남자라면 이렇게 질척거리지 마요. 내가 경고하는데, 채이 씨는 이제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