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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작가: 새벽눈
승마장의 공기는 한층 상쾌했고, 시야를 가득 채우는 탁 트인 풍경이 채이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주었다.

“여기로 와요.”

멀지 않은 곳에서 성준이 손짓하며 채이를 불렀다.

채이는 잠시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 정말 잘생겼네.’

말끔한 승마복을 입은 성준은 작은 말 한 마리를 끌고 있었고, 입가에 번진 미소에 더욱 환하게 빛났다.

남자의 우아하고 당당한 태도는 주변의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끌고 있었다.

성준을 본 근처의 여자들은 숨을 삼키며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심지어 몇몇은 다가가서 성준의 번호를 물어보거나, 톡에 친구로 추가하고 싶어 했다.

채이는 그 광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뭐 하는 거야? 왜 저렇게 들이대는 거야?’

기분이 언짢아진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중 한 여자의 손에서 핸드폰을 받아들고는 빠르게 번호를 입력했다.

“번호 여기요.”

“감사합니다!”

그 여자는 보물을 얻은 듯 기뻐하며 돌아갔다.

성준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진짜 줬어요?”

“네. 내 번호 줬어요.”

채이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말했다.

“왜요? 성준 씨는 자기 번호 주고 싶었어요?”

성준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채이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

채이의 반응에 성준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그는 채이를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더니 옆에 서 있던 말을 가리켰다.

“마음에 들어요?”

“네, 예뻐요.”

채이는 말을 쓰다듬었다.

말은 기분이 좋은 듯 머리를 살짝 흔들며 반응했다.

“이름 지어 줄래요?”

“내가 지어도 돼요?”

채이는 잠시 망설였다.

‘승마장의 말인데 내가 이름을 붙여도 되는 거야?’

“내 말이에요. 당신에게 줄게요.”

“진짜요?”

성준이 자기 말이라고 하자, 채이는 깜짝 놀라며 기뻐했다.

“그러면 ‘채하’이라고 부를래요. 내 남동생으로 삼아도 될까요?”

“얘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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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채이가 나와서 날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채이는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해.” “그건 불가능해.” 성준은 핸드폰을 꺼내 들며 차분히 말했다. “계속 이러면 신고할 거야.” “신고해! 해보라고! 채이는 내가 경찰서에 가는 걸 보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분명히 날 구하러 올 거라고!” “그래? 그러면 어디 한번 볼까.” 성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경찰을 불렀다. 곧 경찰이 도착해 유겸을 끌고 갔고, 유겸은 차에 실려 가면서도 채이의 이름을 계속해서 외쳤다. “채이! 강채이! 나와 봐! 내가 잘못했어! 제발 한 번만 나와 줘!” 하지만 채이는 유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성준의 어머니와 함께 거실 소파에 앉아 한참 드라마를 보며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막장 드라마 속 삼각관계를 두고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 채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경찰서에서 걸려 온 것이었다. [강채이 씨, 혹시 신유경 씨를 아십니까? 신유겸 씨가 술에 취해 계속 소란을 피우고 있어서요. 가능하시면 경찰서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채이는 고개를 들며 성준을 바라보며 이 전화가 성준의 신고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깊은숨을 내쉰 뒤,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한데요, 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전화를 끊은 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성준의 어머니와 대화를 이어갔다. ...경찰서에서 유겸은 여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채이가 날 이렇게 내버려둘 리가 없어. 분명 날 구하러 올 거야.’ “채이가 올 거예요! 날 모른다고 할 리 없을 거예요. 제발 다시 채이를 불러와요. 나는 강채이를 만나야 해요!” 그는 절박하게 외쳤다. 예전에는 언제나 채이가 가장 먼저 유겸을 찾아왔다. 한 번은 유겸이 다른 사람을 위해 싸우다 경찰서에 끌려갔을 때도, 채이는 유겸을 위해 누구보다 먼저 경찰서로 달려왔었다. 그녀는 유겸을

  • 안개처럼 스러지는 사랑   제25화

    성준은 결국 충동을 억누르고 차를 몰아 근처 약국으로 갔다. 잠시 후, 그는 약국에서 나온 뒤 조수석 문을 열고 앉은 후, 채이의 양말을 벗기기 시작했다. 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하는 거예요?” “발 좀 봅시다. 발목 삔 거 아니에요? 혹시라도 붓거나 멍들면 골치 아파지니까.” 성준의 말에 채이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그녀는 성준의 세심한 행동을 지켜보며,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채이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숙여 남자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뭐야... 지금 나한테 뽀뽀한 거야?’ 채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성준의 얼굴은 귀까지 빨개졌다. 항상 채이를 놀리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던 성준이었지만, 막상 그녀가 이렇게 다가오자 성준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계속 ‘내 와이프’를 흔들어보려고 했는데... 나는 가벼운 뽀뽀 한 번에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 거야?’채이는 남자의 귀까지 빨개진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사령관님도 얼굴이 빨개질 때가 있네요?” 성준은 당황한 듯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누가 얼굴이 빨개졌대요?” 그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채이의 발목을 살피고 조심스럽게 마사지해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채이가 조그맣게 비명을 질렀다. “아!” 성준은 깜짝 놀라 손을 급히 떼며 물었다. “아파요?” “아니요, 안 아파요.” 채이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지만,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유겸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예전에 내가 발목을 삐었을 때도 신유겸도 약을 사서 이렇게 발라줬지...’ ‘내가 아프다고 소리 지르면, 똑같이 놀라서 손을 뗀 다음 아프냐고 물었는데...’ 과거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지만, 지금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야. 그때는 신유겸을 사랑했지만, 지금은... 다 끝났어.’ 채이는 마음속에서 떠오르던 유겸의 그림자를 떨쳐내고, 다

  • 안개처럼 스러지는 사랑   제24화

    이 광경을 본 유겸은 속이 터질 듯한 분노로 가득 찼다. “고성준!! 채이를 내려놔!! 다른 사람이 채이를 건드리는 걸 난 절대 허락하지 않아!” 그는 성준과 채이를 떼어놓으려고 몸을 던지듯 달려들었다. 그러나 성준은 살짝 몸을 비틀어 유겸을 피했고, 유겸은 중심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땅바닥에 구르고 나서야 멈춘 유겸의 모습은 한없이 초라하고 처참해 보였다.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흥미롭게 유겸을 지켜보며 웅성거렸다. “딱 천벌 받은 거지. 남에게 상처를 줄 땐 몰랐겠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잖아.” “늦은 후회는 제일 값싸다던데, 딱 그 꼴이네. 애초에 그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성준은 그런 유겸을 내려다보며 냉소를 지었다. “신유겸 씨,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다시는 채이 씨와 나를 괴롭히지 마세요. 채이 씨는 이제 내 아내고, 앞으로도 평생 내 아내일 겁니다. 당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녀는 당신에게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유겸은 이를 악물고 바닥에서 간신히 일어섰다. “결혼? 결혼했어도 이혼할 수 있어! 고성준, 너무 자만하지 마. 채이는 날 사랑해!” 성준은 유겸을 비웃으며 차갑게 말했다. “혹시 모르셨나 본데, 군인의 결혼은 법적으로 특별히 보호받는다는 거 아세요? 지금 당신 행동은 군사 혼인 방해죄로 간주할 수 있고, 그게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아십니까? 자칫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어요.”채이는 성준의 말을 듣고 참다못해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대단하다. 이 사람의 머리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거야?’ 유겸은 더 이상 성준과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절박한 눈빛으로 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채이야, 정말 나한테 아무런 미련도 없는 거야?” 채이는 성준의 팔을 살짝 밀어 자신을 내려달라고 한 후, 똑바로 선 채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유겸, 마지막으로 말할게. 우린 끝났어. 완전히 끝났다고. 서루나가

  • 안개처럼 스러지는 사랑   제23화

    승마장의 공기는 한층 상쾌했고, 시야를 가득 채우는 탁 트인 풍경이 채이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주었다.“여기로 와요.” 멀지 않은 곳에서 성준이 손짓하며 채이를 불렀다. 채이는 잠시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 정말 잘생겼네.’ 말끔한 승마복을 입은 성준은 작은 말 한 마리를 끌고 있었고, 입가에 번진 미소에 더욱 환하게 빛났다. 남자의 우아하고 당당한 태도는 주변의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끌고 있었다. 성준을 본 근처의 여자들은 숨을 삼키며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심지어 몇몇은 다가가서 성준의 번호를 물어보거나, 톡에 친구로 추가하고 싶어 했다. 채이는 그 광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뭐 하는 거야? 왜 저렇게 들이대는 거야?’ 기분이 언짢아진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중 한 여자의 손에서 핸드폰을 받아들고는 빠르게 번호를 입력했다. “번호 여기요.” “감사합니다!” 그 여자는 보물을 얻은 듯 기뻐하며 돌아갔다. 성준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진짜 줬어요?” “네. 내 번호 줬어요.” 채이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말했다. “왜요? 성준 씨는 자기 번호 주고 싶었어요?” 성준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채이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 채이의 반응에 성준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그는 채이를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더니 옆에 서 있던 말을 가리켰다. “마음에 들어요?” “네, 예뻐요.” 채이는 말을 쓰다듬었다. 말은 기분이 좋은 듯 머리를 살짝 흔들며 반응했다. “이름 지어 줄래요?” “내가 지어도 돼요?” 채이는 잠시 망설였다. ‘승마장의 말인데 내가 이름을 붙여도 되는 거야?’ “내 말이에요. 당신에게 줄게요.” “진짜요?” 성준이 자기 말이라고 하자, 채이는 깜짝 놀라며 기뻐했다. “그러면 ‘채하’이라고 부를래요. 내 남동생으로 삼아도 될까요?” “얘 암

  • 안개처럼 스러지는 사랑   제22화

    루나가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일반 병실로 옮겨져 있었다. 손으로 배를 만져보니, 텅 빈 느낌뿐이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그때 병실 문이 열리더니 유겸이 보낸 부하가 들어왔다. 그는 루나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이 안에 5억이 들어 있습니다. 신 대표님께서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루나는 그 말을 듣고 카드로 시선을 옮겼다. ‘5억? 전에는 1억이었는데, 애를 지우고 나니까 내 몸값이 올랐네.’ 그녀는 카드를 보며 속이 서늘해졌다. 그 부하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 비행기 표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늘 오후?” 루나는 쓰게 웃었다. ‘그 사람이 나를 이렇게까지 증오하다니. 수술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날 당장 내보내려고 하다니.’ 그녀는 고개를 들어 단호하게 말했다. “나, 그 사람을 만나야겠어요.” “죄송하지만, 신 대표님께서 절대 만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남자는 말을 끝내고 병실 문을 잠갔다. “시간이 되면 제가 공항까지 모시겠습니다.” 루나는 손에 든 카드를 보며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웃음은 곧 울음으로 바뀌었다. “내가 왜 돌아왔지? 왜 다시 돌아왔을까! 내가 이 꼴 당하려고 돌아온 거야?!!” ...루나 문제를 정리한 후, 유겸은 지친 몸을 이끌고 자신과 채이의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텅 비어 있었고, 차가운 공기만 가득했다. ‘채이는 없고, 썼던 물건도 하나도 남지 않았어.’ 그의 가슴이 점점 더 아파졌다. ‘내가 얼마나 채이를 잃고 싶지 않았는지 이제야 깨달았어. 채이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었는지...’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둘러보았는데, 갑자기 연애 5주년 기념일을 떠올리면서 채이가 그날 자신에게 준 선물이 생각났다. 유겸은 급히 계단을 올라가 그 선물을 찾았다. 그는 침대 옆 서랍에 놓여 있던 그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그 상자는 아직 열리지 않은 채로 그대로 남

  • 안개처럼 스러지는 사랑   제21화

    “신유겸,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 내 배 속에 있는 건 네 아이야! 네 친자식이라고! 그런데 그걸 지우라고?” 유겸은 감정 없는 차가운 눈빛으로 루나를 바라봤다. 마치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아이가 아니야. 한 달도 안 된, 그냥 핏덩어리일 뿐이야.” 얇은 입술이 열렸지만, 거기서 나온 말은 끔찍할 정도로 냉혹했다. “핏덩어리라고? 네가 지금 뭐라고 했는지 알아?” 루나는 유겸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이건 네 아이야. 어떻게 네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아이? 무슨 아이?” 그때 유겸의 친구들이 병문안을 왔다.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루나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상황을 대강 짐작했다. “야, 유겸아. 너 루나랑 애까지 생겼어?” 루나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듯, 한 친구의 손을 붙잡고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제발 도와줘!!!” 그녀의 행동에 모두 당황해 눈이 커졌다. “루나야, 일단 일어나. 나한테 무릎 꿇으면 곤란하잖아!” “유겸이가 우리 아이를 지우라고 했어!!” 루나는 울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제발, 도와줘. 유겸이를 설득해 줘. 너희들이 말리면 유겸이가 듣지 않겠어?” “야, 유겸아. 너 진짜 미쳤냐?” 한 친구가 침대 쪽으로 다가가며 유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채이는 이미 결혼했잖아. 너희 둘은 이제 끝났다고. 지금 루나도 임신했다는데, 너 빨리 책임지고 결혼해서 아이 낳아. 네 할아버지께서 손주 기다리시는 거 알잖아. 그리고 네가 애를 얼마나 좋아하냐.” “내가 좋아하는 건 나랑 채이 사이의 아이야. 이 여자랑은 아니고.” 유겸은 얼굴이 잔뜩 어두워졌고, 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너희도 진짜 내 친구라면 내 일에 끼어들지 마.” “그래도...” 유겸의 친구들이 말을 잇지 못하고 주춤했다. 친구들은 루나를 보며 잠시 안쓰러운 마음이

  • 안개처럼 스러지는 사랑   제20화

    채이가 떠난 후, 유겸은 생지옥에 빠진 것처럼 괴로워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간호사가 그를 막았다. “환자분, 아직 상처도 다 낫지 않았고 몸 상태도 안 좋습니다. 계속 침대에 누워 계셔야 합니다.” “아니요, 채이를 찾아야겠어요. 나 좀 내버려둬요!” “어젯밤에 환자분을 간호하던 그 여자분 말씀하시는 거죠? 그분은 이미 남편이랑 차 타고 떠나셨어요.” 간호사의 한마디에 유겸은 순간 멍해졌다. ‘남편? 채이의 남편?’ 채이가 결혼했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진짜로 결혼했단 말이야? 채이가 다른 남자랑...’ 유겸의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아니야. 혼인신고만 안 했으면, 아직 결혼한 게 아니야. 그 남자도 채이의 남편이 아니야. 내가 채이의 남편이야!’ 유겸의 감정이 격해지자, 간호사도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루나가 병실로 다급하게 들어왔다. “유겸아! 나 임신했어!”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유겸은 침대에 멍하니 앉아 꼼짝도 하지 못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루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라고...?” “나 임신했다고! 우리 아기를 가졌어!” 루나는 흥분하며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랐다. ‘드디어 임신했어!!’ “말도 안 돼. 분명히 약 먹으라고 했잖아!” 유겸은 루나의 팔을 꽉 잡으며 얼굴에 음산한 표정을 지었다. 루나는 입술을 꽉 물며 고개를 숙이면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 깜빡하고 안 먹은 적이 있었어. 근데 아무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진짜로 아기가 생겼어. 유겸아, 들었지? 나 임신했어!” 남자의 손에 잡힌 팔이 아플 정도였지만, 루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애원하듯 말했다. “우리 다시 결혼식 하자, 응? 나 지금 임신했잖아. 배도 점점 불러올 텐데, 빨리 결혼하자, 제발!!” 루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겸은 그녀를 거칠게 밀쳐냈다. “안 돼. 난 너랑 결혼할 생각 없어

  • 안개처럼 스러지는 사랑   제19화

    성준을 본 유겸의 얼굴이 단번에 어두워졌다. “당신은 여기 왜 있죠?” “모르겠어요?” 성준은 두 팔을 가슴 앞에 교차해서 팔짱을 낀 채 차가운 시선으로 유겸을 노려봤다. “신유겸 씨, 맞죠? 채이 씨가 당신 때문에 우리 집안의 청혼을 몇 번이나 거절한 거, 정말 몰랐어요?” “채이가 나 때문에 고씨 집안의 청혼을 거절했다고요?” 유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죄책감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늘 생각했다. ‘채이 주변에 다른 남자가 없는 걸 보니, 나 말고는 아무도 채이를 원하지 않겠지.’ 그러나 그는 완전히 틀렸었다. 채이에게는 이미 혼담이 있었고, 상대는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군인이었다. ‘내가 얼마나 잘못 생각해 왔는지 이제야 알겠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절대로 루나와 결혼하겠다고 하지 않았을 텐데...’ 그는 속으로 뼈아프게 후회하고 있었다. “됐어요. 당신도 정신 차렸으니 이제 가야겠네요. 나랑 채이 씨도 집에 가서 좀 쉬어야죠.” 성준은 유겸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마침 채이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걸 보자, 성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단호하게 말했다. “가요. 집에 가서 쉽시다. 너무 피곤하니까요.” 채이도 더 이상 병실에 머물고 싶지 않았고, 성준과 함께 나가려 했다. “안 돼, 채이야, 가지 마! 떠나지 마, 제발!” 유겸은 다급해져서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온몸에 힘이 없는 그는 도저히 걸을 수 없었고, 바닥에 엎드린 채 채이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유겸의 이런 모습에 채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신유겸,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채이야, 가지 마. 제발. 내가 정말 잘못했어. 나를 떠나지 말아 줘. 부탁이야.” 성준은 그 모습을 보고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는 곧장 걸어가 유겸을 바닥에서 한 손으로 들어 올린 뒤, 침대 위에 던지듯 내려놨다. “당신이 남자라면 이렇게 질척거리지 마요. 내가 경고하는데, 채이 씨는 이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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