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처럼 스러지는 사랑의 모든 챕터: 챕터 1 - 챕터 10

27 챕터

제1화

“아빠, 전에 저에게 정혼자가 있다고 하셨죠? 그 사람한테 연락해서 다음 달 초하루에 결혼할 건데 신랑 자리가 비었으니 오고 싶으면 오라고 전해주세요.” 딸의 갑작스러운 연락에 전화기 너머로 아버지 강정빈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딸아, 지금 유겸이랑 결혼 준비하느라 정신없다며? 혹시 걔가 너한테 뭐 잘못했니?] “아빠, 그냥 물어봐 주세요!” [알겠어. 우리 딸만 좋다면 아빤 그걸로 됐다. 아빤 우리 딸만 행복하면 그걸로 됐다.]채이는 눈가가 붉어진 채로 대답했다. “그럴게요!” ...강채이는 진심으로 신유겸을 사랑했다. 너무도 깊이, 뜨겁게...그리고 신유겸이 자신의 운명이라 믿었다. 결혼 날짜까지 잡고 난 후, 채이는 행복한 신부가 될 날만 기다렸다. 그런데 조금 전, 그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1시간 전.채이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드레스 덕분에 그녀의 우아한 몸매가 더욱 돋보였다. “채이 씨, 신랑분이 특별히 주문 제작한 드레스라니 정말 아름다워요. 신랑 신부 두 분 꼭 행복하실 거예요.” 직원의 칭찬을 들었지만, 채이는 도무지 웃을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다 창가 구석에서 자신의 예비 신랑, 신유겸을 발견했다. 유겸은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고, 얼굴에는 다정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 순간, 직원이 채이의 시야를 가로막으며 핸드폰을 건넸다. “채이 씨, 전화 왔어요.” 웨딩 플래너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채이 씨... 신랑 측에서 실수로 신부 이름을 잘못 기재했다고 연락이 왔는데요. 신부 이름을 ‘서루나’로 바꿔야 한다고 하시네요. 혹시 알고 계셨나요?]말로 다할 수 없는 슬픔이 채이의 마음을 순식간에 덮쳤다. 채이의 눈에서 눈물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유겸의 배신을 이미 눈치챘던 채이였지만, 남자의 뻔뻔함은 예상 밖이었다. 한 달 전.해외에 있던 신유겸의 첫사랑 서루나가 귀국했을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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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집에 돌아온 채이는 곧바로 자신의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짐을 절반쯤 정리했을 때, 유겸이 집으로 돌아왔다. “자기야, 회사 일이 끝나자마자 바로 왔어. 나 보고 싶었어?” 그는 붉은 장미꽃 한 다발을 내밀며 말했다. “이거 내가 자기 주려고 일부러 샀어. 아까 웨딩숍에서 끝까지 함께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우리 공주님, 이걸로 용서해줄래?” 물을 제대로 주지 않아 시들기 시작한 장미를 보며 채이는 너무 화가 나서 도리어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건 분명 서루나한테 프러포즈할 때 썼던 걸 그대로 가져온 거잖아.’ ‘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는 그저 쓰고 버리는 소품 같은 존재야?’ “뭘 웃어?” 채이가 웃자 유겸은 어딘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는 꽃다발을 받아들며 눈가에 비친 남자의 셔츠 카라를 힐끗 보았는데, 거기에 선명한 립스틱 자국이 있었다. ‘선명한 빨간색 립스틱 자국... 너무도 뻔뻔하네.’ 채이는 손을 들어 유겸의 셔츠 카라를 가리켰다. “옷 더러워졌네.” 유겸은 고개를 숙여 보더니, 루나가 입을 맞출 때 묻은 자국을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아... 아마 어딘가에서 실수로 묻었나 봐.” “그래.” 채이는 굳이 드러내지 않고 대답했다. “벗어, 내가 빨아줄게.” “집에 가사도우미 있잖아. 내가 어떻게 자기한테 이런 걸 시켜?” “가사도우미 손이 너무 거칠어. 내가 직접 할게.” 유겸은 또 한 번 위기를 모면했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볼에 입을 맞췄다. “우리 자기 정말 최고야.” 채이는 그의 셔츠를 받아 들고, 립스틱 자국을 보며 피식 웃었다. ‘최고라... 그래, 네가 가장 속이기 쉬운 상대가 나라는 뜻이겠지.’ 채이가 셔츠를 세탁할 때 얼룩을 지우는 데에 너무 힘을 줬던지 유겸의 셔츠는 결국 찢어졌다. 하지만 유겸은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채이를 안으며 다정히 말했다. “괜찮아. 찢어진 건 버리면 되지. 새로 하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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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간신히 눈물을 멈춘 채이를 본 유겸은 평소처럼 그녀의 입에 키스하려고 다가갔지만, 채이는 그를 밀어냈다. 유겸은 어색하게 헛기침하며 채이를 놓아주고는 손을 내밀며 물었다. “아 맞다, 내 선물은? 약속한 거 있잖아.” 채이는 잠깐 기다리라며 방으로 올라갔다. 방 안에서 유겸과 함께 골랐던 결혼식 청첩장을 꺼내더니, 펜을 들어 신랑과 신부 이름을 고쳐 썼다. [신부: 강채이, 신랑: 고성준.] 그렇게 수정된 청첩장을 상자에 넣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채이는 상자를 유겸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유겸은 호기심에 상자를 열어보려 했지만, 채이가 손으로 막아섰다. “다음 달 1일에 열어봐.” 그 말을 듣는 순간, 유겸의 손이 잠시 떨렸다. ‘다음 달 1일...?’ 그건 바로 그가 서루나와 결혼식을 올릴 날이었다. “왜?” 유겸은 애써 태연하게 물었다. “우리 원래 그날 결혼하려고 했던 날이잖아. 좋은 날인데 그냥 넘어갈 수 없지.” 채이는 미소를 지으며 상자에 테이프를 붙였다. “결혼이 미뤄진 김에, 내가 너한테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어. 그날 열어보면 깜짝 놀랄 거야.” “좋아! 나 깜짝선물 진짜 좋아하잖아.” 유겸은 채이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며 웃더니,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 “자기야, 나 오늘 정말 행복해.” ‘행복?’ 채이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마치 창가에 놓인 장미처럼, 채이는 조용히 시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유겸은 그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행복하다니... 대체 뭐가 그렇게 행복한 걸까?’ ‘이 사람이 행복한 이유는 분명하지... 다른 여자에게 프러포즈를 성공적으로 마치고도, 내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니까.’...밤이 되자 유겸은 욕실로 들어가 샤워했다. 채이는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다가 우연히 유겸의 친구가 올린 SNS 게시물을 발견했다. 그 내용은 바로 유겸이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하는 영상이었다. 영상과 함께 적힌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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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유겸이 채이에게 어떤 핑계를 대고 나가나 고민하고 있을 때, 채이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누구랑 통화 중이야?” “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진호랑 애들. 오늘 밤에 한잔하자고 해서.” “그래? 나도 진호랑 진짜 오랜만이다. 나도 같이 갈게. 나도 술 한잔하고 싶네.” 채이는 일부러 유겸과 친한 동생들의 만남에 동석하기로 했다. ‘내가 같이 가면, 얼마나 잘 숨기는지 한 번 봐야겠어.’ 유겸은 계속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끝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친한 동생들에게 서둘러 상황을 알리기 시작했다. 술집의 VIP 룸에 도착했을 때, 채이는 유겸과 친한 동생들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사람들은 마치 대기라도 하고 있었던 듯 모두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다들 조용히 술잔만 기울이고 있었고, 심지어 분위기를 돋우는 노래도 부르지 않고 직원도 없었다.채이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다들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형수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무도 없어요. 그냥 우리 남자들끼리만 모이는 모임입니다.” 채이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 “그럼, 내가 여자라서 오면 안 되는 자리라는 뜻이네?” 다들 잠시 멍해졌다. 그러자 유겸이 서둘러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야. 그냥 너 지루할까 봐 그러는 거지.” 채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오랜만에 봤으니, 나도 한 잔 마시고 갈게. 오늘은 남자들끼리 모이는 자리니까, 마시고 바로 나갈게.” 그녀는 테이블 위의 잔을 들고 가볍게 비워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얼굴에 안도하는 미소가 스쳤지만, 채이는 애써 모르는 척하며 돌아섰다. 유겸은 아쉬운 척 채이를 끌어안으며 이마에 키스했다. “그래, 내가 빨리 들어갈게. 너 먼저 자고 있어. 늦을 거니까 기다리지 말고.” 채이는 방을 나와 복도의 모퉁이를 향해 내려갔다. 그녀는 조용히 그림자 속에 몸을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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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도와주세요! 사람이 계단에서 굴렀어요!” 채이의 귓가에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곧이어 많은 사람이 채이 주위로 몰려들었다. 눈을 감기 전, 그녀는 유겸 일행이 옆에서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유겸 일행은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힐끗 보기만 하고는 아무 일도 없는 듯 그대로 자리를 떴다. 사람들 틈에 쓰러져 있던 이가 바로 자신들과의 인연에서 이미 멀어진 채이인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채이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병원에 있었다. 한 간호사가 약을 발라주며 말했다. “환자분, 깨어나셨네요?” “제가 왜 여기 있죠?” “저혈당으로 쓰러지셨더라고요. 한 남자분이 병원까지 데려다주셨어요. 그분은 이미 가셨고요. 혹시 가족분 연락처 좀 알려주실래요? 제가 대신 연락해 드릴게요.” “괜찮아요, 필요 없어요.” 채이는 고개를 저었다. ‘신유겸이라는 이름은 듣기만 해도 역겨우니까...’ 그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실을 나와 병원비를 납부하러 가려고 했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채이는 간호사들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야, 오늘 새벽에 실려 온 남녀 얘기 들었어? 술집에서 뭐 하다가 소파에서 굴러떨어졌다더라. 맥주병 깨져서 온몸이 난리였다던데.” “봤지! 와, 전투력이 엄청나던데? 요즘 젊은 애들 진짜 대단하다니까.” “근데 그 남자, 어디서 많이 본 얼굴 같더라? TV에도 나왔던 사람 같아.” “맞아, 익숙하더라. 이름이 뭐더라? 성이 신 씨였던 것 같긴 한데...” 채이의 발걸음이 멈췄다.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멀리서 다가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쩖은 간호사가 두 사람을 보자 고개를 푹 숙이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저 사람들이야! 생긴 건 말짱하던데, 도대체 뭘 어쨌길래 그렇게 난리가 난 거야?” 채이는 점점 가까워지는 두 사람을 보며, 마치 다리에 납덩이를 단 것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순간, 유겸도 채이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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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유겸이 놀라서 긴장한 모습을 보며, 채이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차분히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몸이 안 좋아서 그런가 헛소리가 나오네. 그날 나 바쁠 것 같아.” 채이가 돌아서자, 유겸은 급히 따라가려는 듯 발을 옮겼지만, 채이가 그를 막아섰다. “친구 병원에 데려왔으면 끝까지 챙겨줘야지. 루나 씨를 혼자 두고 가면 안 되잖아. 난 먼저 갈게. 신경 쓰지 마.” 유겸은 채이가 뒤돌아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자 가슴이 무거워졌다. 남자의 불안한 마음을 눈치챈 루나는 억지로 유겸의 주의를 끌며 몸을 숙였다. “유겸아, 나 너무 아파... 온몸이 다 쑤셔. 나를 집에 데려다주면 안 돼?” 채이가 남긴 여운과 태도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유겸은 갑자기 짜증이 폭발했다. 그는 루나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말했다. “네 입장 제대로 파악해. 그리고 더 이상 채이를 도발하지 마.” 집으로 돌아온 채이는 곧바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더 이상 머무는 건 고통스러웠지만, 다행히 짐은 많지 않아, 금방 한 개의 캐리어에 자신의 물건들을 다 담을 수 있었다. 짐을 다 챙긴 후, 그녀는 캐리어를 끌고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전날 유겸이 건넸던 장미꽃을 보았다. ‘이게 네 방식의 사과야? 웃기지도 않아.’ 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장미꽃을 한 줌으로 뽑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 모습을 본 가사도우미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사모님, 이 꽃은 대표님께서 주신 거잖아요. 왜 버리시는 거예요?” 채이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다른 사람이 쓰다 남은 건 저도 필요 없어요. 역겹기만 해요.” “이 꽃 멀쩡해 보이는데, 왜 남이 쓴 거라고 하시는 건지...” 가사도우미는 의아해하며 그녀를 바라봤지만, 채이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채이는 2층으로 올라가 유겸이 그동안 선물했던 가방과 옷을 전부 큰 가방에 쑤셔 넣은 후, 가사도우미에게 그것을 건넸다. “이거 다 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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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채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유겸의 뺨을 올려붙였다. 유겸은 예상치 못한 채이의 손찌검에 놀랐지만, 오히려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마음이 풀리지 않으면 더 때려도 돼. 난 괜찮아. 네 화만 풀린다면 그걸로 돼.” ‘얼마나 다정한 척을 하는 거야. 정말 역겹네.’ 채이는 다시 한번 유겸의 뺨을 힘껏 쳤다. ‘네가 네 입으로 말했어. 나한테 때리라고.’ 채이는 차분히 말했다. “내가 예전에 말했던 거 기억나? 다른 건 다 참아도, 네가 날 배신하면 난 반드시 다른 남자와 결혼할 거라고.” 유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자기야,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선택한 사람은 자기야. 평생을 함께할 사람도 자기고. 내가 자길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런 일은 절대 없어. 나는 변하지 않아, 절대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면서, 다른 여자와 얽혀 병원에 실려 갔다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면서, 다른 여자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 결혼식을 미루고, 나를 그저 ‘대체품’으로 만들었잖아?!’ 채이는 유겸의 위선적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들어 유겸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의 마음속엔 대체 무슨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걸까?!!’ 그녀는 한참 유겸을 응시하다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유겸은 다시 채이를 꼭 끌어안았다. 하지만 채이는 남자의 품에서 벗어나며 유겸을 밀쳐냈다. 그 순간 유겸의 시선이 채이 옆에 놓인 커다란 캐리어에 닿았다. 아까 잠시 내려놓았던 그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다급히 채이의 팔을 붙잡으며 물었다. “이 캐리어 누구 거야? 어디 가려고?” 채이는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우리 엄마가 결혼이 다가오니 한 번 집에 들러야 하지 않겠냐고 하셔서.” “정말 그거야?” 유겸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어. 결혼 전에 신랑과 신부가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게 전통인 집안도 있잖아. 비록 결혼식이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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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채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함께 한 지 5년이나 됐는데, 신유겸이랑 헤어질 줄은 정말 몰랐어. 더군다나 내가 다른 남자랑 결혼하게 될 줄은 더더욱... 며칠 사이에 모든 게 달라져 버렸어...’채이의 옆에 놓인 핸드폰이 몇 번 울리더니 몇 개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강채이, 내가 어디 있는지 맞혀봐!] 루나가 보낸 메시지였다. 이 메시지와 함께 몇 장의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채이와 유겸의 집이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건, 사진 속의 루나와 유겸이 침대 위에 둘이 엉켜 있었다. 그 침대는 바로 채이가 직접 골랐던 신혼 침대였다. [네가 떠나자마자 유겸이 날 여기로 데려와 살게 해줬어. 심지어 모든 가사도우미에게도 절대 너한테 말하지 말라고 지시했더라. 네가 직접 고른 침대, 진짜 편하더라. 네가 골라둔 이불, 우리 둘과 너무 잘 어울리지 않아?] 루나가 보낸 도발적인 말들과 사진들. 채이는 더 이상 그런 것들에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조용히 사진을 넘겨보다가 핸드폰을 꺼버렸다. ‘이제 상관없어. 어차피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테니까.’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채이의 부모님은 딸의 결혼 준비로 바빴다. 채이 역시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드레스 피팅에, 물건을 고르고 사느라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유겸의 소식은 대부분 루나가 전해주는 것이었다. 루나는 매일 사진과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녀는 자신과 유겸에게 있었던 일들을 일일이 전하며 자랑이라도 하듯 꾸준히 보내왔다. 채이는 그저 웃음거리로 생각하며 사진을 하나씩 저장하고, 메시지를 캡처해 두었다. 유겸도 매일 채이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고, 채이를 위한 선물을 보내기도 했지만 채이는 한 번도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선물은 열어보지도 않고 전부 버렸다. 그러던 중, 마침내 결혼식 전날이 되자 유겸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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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유겸은 얼어붙은 듯 멍하니 중얼거렸다. “뭐라고? 채이가 오늘 결혼한다고 SNS에 올렸다고?” 그는 재빨리 친구의 핸드폰을 낚아채 확인했다. 채이의 게시물을 보는 순간, 유겸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말도 안 돼. 채이가 결혼한다고? 대체 누구랑?’ 이와 동시에 도로 옆에 한 대의 차가 멈추더니, 누군가 차에서 내렸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이였다. 유겸은 그녀를 보자 얼굴빛이 확 변했다. 그는 그대로 굳은 채,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채이... 너 여기 왜 온 거야?” 채이는 차에서 내려 유겸을 바라보며 입가에 비웃음을 띠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네. 너야말로 여기 왜 있는 거야?” 그녀의 시선은 유겸 옆에 서 있는 루나에게로 향했다. 루나는 채이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채이의 부케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채이의 자리에서 서 있었다. 채이를 본 루나의 얼굴은 금세 새파랗게 질렸다. ‘설마... 강채이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여기까지 올 줄 몰랐네!’ 루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채이 씨! 제가 오늘 유겸이랑 결혼하는 거 알고 이러는 거죠? 그래서 일부러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거죠? 유겸이 빼앗아 가려고요?” 여자의 눈에서는 금세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발, 제 결혼식 망치지 말아줘요. 부탁할게요. 저... 저 얼마 못 살아요. 곧 죽을 거라고요. 제가 죽고 나면, 그때는 채이 씨가 유겸이 가져요. 그러니까 지금은 제 결혼식 좀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두라고요!” 루나는 울며 애원했지만, 채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루나는 감정이 폭발한 듯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제발... 부탁이에요!!” 유겸은 루나와 채이를 번갈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채이가 여기 온 거지? 이건 말도 안 돼...’구경꾼들이 점점 모여들었고, 사람들은 눈앞의 상황을 보며 채이를 ‘불청객’ 혹은 ‘세컨드’로 여기는 듯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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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사람들은 루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랐다. 여자의 이마에서 흐른 붉은 피가 흘러내리며 하얀 웨딩드레스를 물들이고 있었다. “서루나!” 유겸은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치며 루나에게 달려갔다. 루나의 행동은 유겸의 마음속 남아 있던 망설임과 죄책감을 모두 사라지게 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루나를 안아 들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물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어? 왜 이런 짓을 해?” 루나는 흐느끼며 말했다. “유겸이 너도 알잖아. 내가 평생 가장 바랐던 건 너와 결혼하는 거였어. 그런데 채이 씨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니, 차라리 지금 여기서 죽는 게 낫겠어. 괜찮아. 너 원망 안 해. 채이 씨도 원망하지 않고. 이 모든 게 내 운명이니까.” 말을 마친 루나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그 모습을 본 유겸의 눈빛은 서서히 차가워졌다. 그는 고개를 들어 채이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루나가 이렇게까지 해야만 네 비난이 멈출까? 언제부터 이렇게 잔인하고 냉정한 사람이 된 거지?” 남자의 차가운 비난에 채이는 마음 한구석이 쿡 하고 아팠다. ‘그래, 결국 네 눈에 비친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됐어. 이쯤에서 끝내자. 이 연극, 진짜 지긋지긋해.’ 채이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유겸, 이제 곧 결혼식 시작해야지? 시간 낭비 말고 얼른 들어가.” 유겸은 대답 대신 루나를 품에 안고 채이를 한 번 쳐다보았다. 이제 그의 시선엔 연민도,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채이에게 다가와 위로하는 척하며 말을 건넸다. “채이야, 이제 그만해. 유겸이도 말했잖아? 루나 얼마 못 산다고. 괜히 여기서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망신당하지 말고 돌아가.” 채이는 이들의 말에 냉소를 머금으며 차분히 말했다. “내가 아까 말했잖아. 난 오늘 여기 신유겸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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