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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안개처럼 스러지는 사랑: Chapter 11 - Chapter 20

27 Chapters

제11화

유겸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사람들을 따라가려 했다. 그러나 루나가 유겸의 팔을 붙잡으며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 “유겸아, 가지 마. 오늘은 우리 결혼식 날이야. 이렇게 많은 친척과 친구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네가 날 버리고 가버리면 나는 정말 창피해서 죽고 싶어질 거야.” 유겸은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고 말했다. “잠깐만 다녀올게. 채이는 항상 침착한 사람이잖아. 그런데 오늘 왜 갑자기 저러는지 너무 걱정돼.” 루나는 남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흐느꼈다. “그럼 나는? 넌 내 걱정은 안 해? 나 죽어가고 있잖아!” 말을 마친 그녀는 갑자기 격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겸은 루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단호히 말했다. “미안해. 하지만 이건 꼭 가서 확인해야겠어.” ‘혹시라도 채이가 정말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면, 그땐 나는 평생 후회할 거야.’ “나도 같이 갈게!” 루나는 유겸을 따라 무대에서 내려왔고, 유겸과 루나가 동시에 움직이자 하객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터졌다. 사회자 역시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한 얼굴로 멈춰 섰다. ‘이게 뭐야? 결혼식장에서 신랑과 신부가 동시에 사라지다니,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한편, 채이 쪽에서는 예식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신랑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성준이 곧 도착할 겁니다.”“죄송합니다.”“...”고씨 집안사람들은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말들을 반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 사이의 수군거림은 점점 커져 갔다. “설마 유겸이 맞는 말을 한 건가? 이 결혼식 진짜 그냥 쇼야? 채이가 일부러 유겸을 자극하려고 꾸민 거라면?” “아니, 그런데 우리는 대체 어디서 밥을 먹어야 하지? 여기 계속 있어도 되는 거야?” “난 그냥 유겸이 쪽으로 갈래. 저쪽이 훨씬 더 확실해 보인다. 여긴 신랑도 없잖아.” 그 말을 들은 루나는 안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신랑이 나타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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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죄송합니다, 장모님, 장인어른. 늦었습니다.” 성준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지만, 입에서 변명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루나가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웬 상거지예요?! 채이 씨, 정말 저런 넝마나 걸친 거지랑 결혼하겠다는 거예요?!!” 여자의 목소리는 너무 컸고, 하객들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유겸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강채이, 아무리 나를 자극하고 싶어도 그렇지, 설마 진짜로 이런 사람을 데려와? 이런 식으로 나를 놀리겠다는 거야? 이게 재미있어?” 성준은 찌푸린 눈썹 사이로 자신을 아래위로 살폈다. 그는 조금 전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할머니를 구하려다 차 밑에 기어들어 갔다가 이렇게 엉망이 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사람들이 자신을 거지 취급하는 건 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했다. ‘설명할 필요도 없어.’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채이를 바라보았다. ‘우아한 몸매, 단정한 자세, 출중한 외모까지...’ 하지만 동시에 ‘사람 됨됨이’는 어떨지 아직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지라도 상관없어. 오늘 난 이 사람과 결혼할 거니까.” 채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성준 옆으로 걸어가 그의 팔을 끼며 말했다. “신유겸, 소개할게. 이 사람이 내 남편, 고성준이라고 해.” “고성준?” 유겸은 순간 멍해졌다. 채이가 예전에 이야기했던 약혼남 이름이 떠올랐다. ‘맞아, 그때 그녀가 어릴 때 집안끼리 약속한 정혼자가 있다고 했었지. 이름이 고성준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그때 유겸은 채이가 영원히 자신 곁에 있을 거라고 믿었기에,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흘려들었다. 그런데 지금, 채이가 정말로 고성준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강채이, 이제 그만해. 충분히 웃겼으니까, 나랑 같이 가자.” 유겸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채이의 손목을 잡았다. “가자. 여긴 너랑 어울리지 않아.” 그러나 채이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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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너도 말했잖아. 평생 나만 아내로 삼겠다고.” 채이는 무기력하게 눈을 들어 유겸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 “기억 안 나? 내가 했던 맹세. 언젠가 네가 날 배신하면, 나도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신유겸, 이건 우리의 약속이었어, 안 그래?” 유겸은 완전히 멘붕 상태에 빠졌다. 그제야 그는 채이가 장난을 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미안해, 자기야. 정말 미안해. 제발 날 용서해 줘. 루나랑 결혼식 같은 거 안 할게. 다시는 루나 만나지도 않을게. 이번 한 번만, 딱 한 번만 기회를 줘, 응?” “이 사람 끌어내.” 성준의 단호한 목소리가 울리자 그의 부하들이 앞으로 다가와 유겸을 둘러쌌다. 성준은 옆에 서 있는 아내를 의식한 듯 채이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여보, 어떻게 할까요?” ‘여보?’ 이 말에 채이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 채이는 고개를 돌려 성준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뜨겁고 깊은 눈빛은 채이의 마음을 순식간에 흔들어 놓았다. ‘이 사람... 진심인가?’ 그러나 채이는 곧 정신을 차렸다. “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준의 의견에 동의했다. ‘신유겸은 더 이상 신경 쓸 것도 없어. 이 말도 안 되는 소동을 빨리 끝내고 싶어.’ “채이야! 제발! 내가 정말 잘못했어. 날 용서해 줘!!!” 유겸은 발버둥 치며 채이의 손을 붙잡았다. 절대 놓지 않으려는 듯 채이를 잡은 유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자기야! 정말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하려는 거야? 네가 사랑한 건 나잖아! 우리 5년 동안 사랑했잖아. 그걸 잊은 거야?” 채이는 유겸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속으로 되뇌었다. ‘사랑? 그래, 널 사랑했지. 꼬박 5년 동안... 수많은 날과 밤을 너와 함께하며 사랑했지.’ ‘서루나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우리 사이에는 어떤 틈도 없었고, 늘 행복했지.’ ‘하지만 이 선택은... 신유겸 네가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어.’ ‘나는 그동안 충분히 신유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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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이봐, 이보세요. 여기서 더 이상 소란을 피우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유겸은 그들의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한 채 버텼다. 그때 강정빈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더니, 유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신유겸! 내가 자네를 얼마나 오래 참았는지 아나? 우리 딸과 5년이나 연애해 놓고, 결혼은커녕 채이를 속이고, 결혼식을 미룬다더니, 알고 보니 채이의 예식장을 자네가 다른 여자랑 결혼하려고 가로챈 거였어!” “우리 딸이 자네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데, 자네는 뻔뻔스럽게 채이를 속이고 또 속였어. 더 이상 이러면 내 딸 대신 내가 자네를 죽여버릴 거야!” 강정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겸의 뺨이 부어올랐지만, 여전히 자리를 떠나지 않고 버텼다. “안 갑니다! 절대 안 가요! 아버님, 저 채이랑 결혼할게요. 오늘 당장 결혼하겠습니다. 제발 허락만 해주세요. 평생 채이만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유겸의 고집은 끝이 없었다. 이때 성준의 아버지가 조용히 시선을 주자, 주변에 서 있던 몇몇 남자들이 유겸에게 다가가 그를 붙잡고는 주먹질을 시작했다. 남자들은 거침없었고, 유겸은 금세 입에서 피를 토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떠나지 않았다. 루나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강채이, 넌 이렇게 유겸이 맞는 걸 보고만 있을 거야? 유겸이는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너 지금 속 시원하니?” 채이는 피투성이가 된 유겸을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지만, 곧 무표정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다가가려 하자, 성준이 채이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내가 대신 처리할까요?”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괜찮아요. 내가 직접 해요.” 채이가 가까이 다가가자, 유겸은 피투성이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간신히 미소를 지었다. “채이야... 나랑 결혼하자. 지금 당장, 응?” 그러나 그녀는 남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 “신유겸, 그만해. 난 이제 널 사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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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성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란에 한발도 끼어들지 않았다. 채이가 성준을 다시 본 건, 그가 이미 예식용 흰색 턱시도로 갈아입고 깨끗이 단장한 뒤였다. 그제야 채이는 자기 남편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잘생겼네.’ 성준은 채이 앞에 서 있었다. 똑바로 선 남자의 자세는 마치 늘 훈련받은 군인처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고, 성준의 얼굴에는 자연스러운 강인함이 묻어났다. 채이를 향한 남자의 눈빛은 차분했지만, 단단했다. ‘참 괜찮은 남자인 것 같아.’ 성준 역시 채이에 대한 인상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었다. 특히 아까 그녀가 사진과 문자 증거를 대형 스크린에 띄웠던 순간.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장면, 정말 사이다였어.’ 성준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제 소음은 다 사라졌으니, 우리 예식은 계속 진행해도 되겠죠?” 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손을 남자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성준의 손은 유겸과는 달랐다. 이 손은 넓고 거칠며, 손바닥에 굳은살이 많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손은 채이에게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성준이 그녀를 슬쩍 보며 물었다. “나랑 결혼해서 후회하지 않을 거죠?” 남자의 입가에 살짝 번진 미소는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겼다. 채이는 성준을 올려다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후회하지 않을게요. 이건 내 선택이니까요.” 성준은 그녀의 답변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나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분위기가 차분해졌을 때, 문밖에서 갑자기 요란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말했다. “유겸이가 아직도 밖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어. 이제야 채이가 정말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게 실감 나나 봐.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 안으로 들어오려 하고 있어.” 하지만 성준의 부하들이 단단히 막고 있어서 유겸은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채이와 성준의 결혼식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예식이 끝난 후, 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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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유겸의 뒤에는 루나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녀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비참한 모습으로 남자를 쫓아가고 있었다. “유겸아, 기다려! 나 더는 못 뛰겠어!” 성준은 채이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기다렸다가 태워줄까...?” “그럴 필요 없어요.” 성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채이가 냉정하게 말을 끊었다. 그녀는 무표정하게 시선을 거두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출발해요.” 성준은 망설임 없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고, 차는 금세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유겸은 결국 따라잡지 못하고 그대로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으며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헐레벌떡 뛰어온 루나가 숨을 몰아쉬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유겸아, 강채이는 이미 결혼했어. 인제 그만 포기해, 응? 우리 돌아가자.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어. 우리 결혼해야 하잖아!” “결혼? 무슨 결혼?” 유겸은 냉소를 흘리며 비웃었다. “안 보여? 채이는 떠났어. 다른 남자랑 갔잖아.” “그래, 강채이는 떠났어. 하지만 내가 있잖아. 너도 오늘 나랑 결혼하겠다고 약속했잖아.” 루나는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지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돌아가자. 지금 당장 결혼하자.” “가. 나는 너랑 결혼 안 해.” 유겸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눈은 초점 없이 공허하게 텅 비어있었다. 그런 남자의 모습에 루나는 놀라며 당황했다. “제발 이러지 마, 응? 강채이는 너를 원하지 않아도, 나는 널 원해! 유겸아, 기억 안 나? 나 곧 죽어. 내 마지막 소원이잖아. 죽기 전에 너와 결혼하고 싶다고!”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나는 채이를 사랑해. 결혼할 거라면 채이와 할 거야.”유겸은 눈을 한 번 깜빡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채이가 없으면 나도 죽을 거야.’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그대로 땅에 쓰러져 의식을 잃고 말았다. 루나는 놀라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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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집에 돌아오자마자, 채이는 성준의 방을 새롭게 꾸미기 시작했다. 침구 세트부터 욕실에 있는 칫솔, 수건까지 하나하나 전부 바꿨다. 성준이 오래 신던 슬리퍼도 그녀의 손에서 쓰레기통으로 직행했고, 대신 분홍색과 하늘색 커플 슬리퍼로 바꾸었다. 심지어 세면도구까지 모조리 커플용으로 채워졌다.채이는 방 안에서 정신없이 움직였고, 성준은 그저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늘 혼자 살다가 갑자기 여자가 생기다니, 그것도 내 아내라니... 진짜 어색하네.’ 그는 복잡한 마음으로 채이를 바라봤다. 아버지가 빨리 결혼 준비하라고 전화했을 때만 해도, 사실 성준은 망설이고 있었다. ‘본 적도 없고, 듣기로는 남친이랑 5년이나 만났다잖아. 그 정도면 결혼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다 갑자기 채이가 자신과 결혼하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성준은 어이없으면서도 묘하게 흥미가 생겼다. ‘솔직히 나보고 ‘대리 신랑’ 하라는 건가 싶었는데...’ 그런데 아버지가 오늘 채이가 남자 친구랑 같은 날 결혼하겠다고 했다며 웃으면서 말씀하셨을 때, 뭔가 재미있을 것 같아 바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막상 만나 보니, 채이는 성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사람이었다.“다 됐어요!” 채이가 방 정리를 끝냈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성준은 하품을 크게 하더니 바로 침대에 누웠다. “그럼 자자.” 채이는 그가 침대에 누운 걸 보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이제 결혼했으니까 남편과 한침대에서 자는 게 당연한데... 너무 어색하잖아.’ 낯선 남자와 한침대에서 자야 한다는 게 도저히 익숙하지 않았다. “성준 씨, 먼저 자요. 난 아직 안 졸려요.” 채이는 소파로 가서 책을 읽는 척했다. 성준은 채이의 속내를 이미 다 간파하고 있었다. 성준은 가볍게 웃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알았어요. 놀리려던 건 아니에요. 당신은 오늘도 엄청나게 피곤했잖아요. 얼른 자요.”그는 손님방으로 가버렸다. 채이는 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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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두 사람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유겸은 막 수술실에서 나오던 참이었다. 그는 아직 의식이 없었다. 루나는 아직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침대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채이를 보자마자 루나는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달려들었고, 날카로운 손톱이 하마터면 채이의 얼굴을 긁을 뻔했다. “왜! 왜 굳이 내 결혼식을 망쳐야 했어?” 루나는 성준에게 제지당하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강채이, 유겸이가 너 때문에 이렇게 쓰러져 있는 거, 나랑 결혼 안 하겠다고 한 거, 아직도 너만 생각하는 거 보고 기분 좋지? 아주 우쭐하겠지?” 루나의 이런 행패에도 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간을 찌푸린 채 유겸의 침대로 다가갔다. 유겸의 안색은 창백했고, 눈은 굳게 감겨 있었다. 그는 정말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수술이 성공했다면 이제 괜찮아지는 걸까...?’ “채이, 채이야...” 유겸은 눈을 감은 채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남자의 표정은 고통스러워 보였고, 두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무언가를 붙잡으려 하는 것 같았다. 루나는 감격한 듯 유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유겸아, 나 여기 있어. 나야, 루나야.” “채이... 넌 채이가 아니야!” 유겸은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고,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때 간호사가 방으로 들어와 말했다. “환자분이 계속 ‘채이’를 부르잖아요! 여기 채이 씨 없어요? 빨리 다가가서 환자분을 안정시키세요. 환자분 상태 안 보여요? 진짜로 죽게 만들고 싶어요?” 채이는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이 유겸의 곁으로 다가간 후,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 말했다. “나 여기 있어.” 그 순간 유겸은 채이의 손을 꽉 붙잡았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이 모습을 본 루나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웨딩드레스 자락을 질질 끌며 무겁게 걸음을 옮겼다.병실에는 셋만 남아 있었다. 유겸은 채이의 손을 꼭 붙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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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성준을 본 유겸의 얼굴이 단번에 어두워졌다. “당신은 여기 왜 있죠?” “모르겠어요?” 성준은 두 팔을 가슴 앞에 교차해서 팔짱을 낀 채 차가운 시선으로 유겸을 노려봤다. “신유겸 씨, 맞죠? 채이 씨가 당신 때문에 우리 집안의 청혼을 몇 번이나 거절한 거, 정말 몰랐어요?” “채이가 나 때문에 고씨 집안의 청혼을 거절했다고요?” 유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죄책감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늘 생각했다. ‘채이 주변에 다른 남자가 없는 걸 보니, 나 말고는 아무도 채이를 원하지 않겠지.’ 그러나 그는 완전히 틀렸었다. 채이에게는 이미 혼담이 있었고, 상대는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군인이었다. ‘내가 얼마나 잘못 생각해 왔는지 이제야 알겠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절대로 루나와 결혼하겠다고 하지 않았을 텐데...’ 그는 속으로 뼈아프게 후회하고 있었다. “됐어요. 당신도 정신 차렸으니 이제 가야겠네요. 나랑 채이 씨도 집에 가서 좀 쉬어야죠.” 성준은 유겸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마침 채이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걸 보자, 성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단호하게 말했다. “가요. 집에 가서 쉽시다. 너무 피곤하니까요.” 채이도 더 이상 병실에 머물고 싶지 않았고, 성준과 함께 나가려 했다. “안 돼, 채이야, 가지 마! 떠나지 마, 제발!” 유겸은 다급해져서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온몸에 힘이 없는 그는 도저히 걸을 수 없었고, 바닥에 엎드린 채 채이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유겸의 이런 모습에 채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신유겸,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채이야, 가지 마. 제발. 내가 정말 잘못했어. 나를 떠나지 말아 줘. 부탁이야.” 성준은 그 모습을 보고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는 곧장 걸어가 유겸을 바닥에서 한 손으로 들어 올린 뒤, 침대 위에 던지듯 내려놨다. “당신이 남자라면 이렇게 질척거리지 마요. 내가 경고하는데, 채이 씨는 이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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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채이가 떠난 후, 유겸은 생지옥에 빠진 것처럼 괴로워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간호사가 그를 막았다. “환자분, 아직 상처도 다 낫지 않았고 몸 상태도 안 좋습니다. 계속 침대에 누워 계셔야 합니다.” “아니요, 채이를 찾아야겠어요. 나 좀 내버려둬요!” “어젯밤에 환자분을 간호하던 그 여자분 말씀하시는 거죠? 그분은 이미 남편이랑 차 타고 떠나셨어요.” 간호사의 한마디에 유겸은 순간 멍해졌다. ‘남편? 채이의 남편?’ 채이가 결혼했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진짜로 결혼했단 말이야? 채이가 다른 남자랑...’ 유겸의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아니야. 혼인신고만 안 했으면, 아직 결혼한 게 아니야. 그 남자도 채이의 남편이 아니야. 내가 채이의 남편이야!’ 유겸의 감정이 격해지자, 간호사도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루나가 병실로 다급하게 들어왔다. “유겸아! 나 임신했어!”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유겸은 침대에 멍하니 앉아 꼼짝도 하지 못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루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라고...?” “나 임신했다고! 우리 아기를 가졌어!” 루나는 흥분하며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랐다. ‘드디어 임신했어!!’ “말도 안 돼. 분명히 약 먹으라고 했잖아!” 유겸은 루나의 팔을 꽉 잡으며 얼굴에 음산한 표정을 지었다. 루나는 입술을 꽉 물며 고개를 숙이면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 깜빡하고 안 먹은 적이 있었어. 근데 아무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진짜로 아기가 생겼어. 유겸아, 들었지? 나 임신했어!” 남자의 손에 잡힌 팔이 아플 정도였지만, 루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애원하듯 말했다. “우리 다시 결혼식 하자, 응? 나 지금 임신했잖아. 배도 점점 불러올 텐데, 빨리 결혼하자, 제발!!” 루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겸은 그녀를 거칠게 밀쳐냈다. “안 돼. 난 너랑 결혼할 생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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