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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작가: 온완유

제1화

작가: 온완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2-24 14:27:50
“참 대단한 배짱이십니다.”

경찰서 안, 한 여경이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상처에 약을 바르는 여자에게 감탄 섞인 말을 건넸다.

“그 사람은 지금 정신 상태가 몹시 불안정합니다. 피해자분이 그 사람 여동생과 닮아서 다행히 무사할 수 있었던 겁니다.”

심은하는 충격으로 멍하니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약간 쉰 목소리로 답했다.

“상황이 갑작스러웠어요. 그땐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은하의 가슴이 다시 조여왔다.

기자로 일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환자의 가족이 치료 실패를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칼로 위협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은하는 재빠르게 움직여 아이를 구했지만 결국 남자에게 붙잡혔고, 칼날이 목을 스칠 뻔한 아슬아슬한 상황까지 몰렸다.

다행히 경찰이 빠르게 도착해 위기는 넘겼지만, 그 순간의 긴장감은 아직도 그녀의 손바닥을 땀으로 적시고 있었다.

부상은 크지 않았지만, 다리에 약간 찰과상을 입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공포감이었다.

‘만약 내가 정말 그 사람의 칼에 쓰러졌다면, 제현 씨는...’

은하는 문득 떠오른 생각을 떨쳐내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방금 스쳐 간 상념은 한낱 허공에 흩어진 잔물결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시간이 늦어지자 여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편분과 아직 연락이 안 되세요?”

은하는 열두 번째 걸어도 연결되지 않은 전화 화면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바쁜가 봅니다.”

하지만 은하는 이미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진씨 가문의 절대적 권력을 쥐고 있는 JS 그룹의 총수, 진제현.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도 아내의 전화를 받을 시간조차 없을 리 없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핸드폰에서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화면 속 사진에는 부상을 입은 여자가 병실에서 쉬고 있는 모습과, 차가운 이미지를 풍기는 남자가 과일을 깎아주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천생연분 같은 부부처럼 보였다.

[은하 씨, 미안해요.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 제현이가 저를 병원으로 데려다줬어요. 아마 은하 씨를 만날 시간은 없을 거예요.]

곧이어 임수아의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리고 은하 씨, 사랑받지 못하는 쪽이 ‘진짜 세컨드’라던데, 그런 말 들어봤어요?]

깊은 밤,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은하는 임수아가 보낸 메시지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공포와 혼란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은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는 그 순간, 은하의 마음은 서서히 차갑게 얼어붙어 갔다.

‘제현 씨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7년. 우리가 결혼한 지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제현 씨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임수아밖에 없어.’

은하는 여경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홀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

은하가 택시 안에 타고 집으로 향하던 길, 제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무심하고 냉담했다.

[무슨 일이야?]

사건이 발생한 이후, 환자 가족의 폭력 사건은 이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TV 뉴스에서도 실명이 가려진 채 보도될 만큼 큰 이슈가 되었지만, 정작 사건의 당사자인 은하의 남편, 진제현은 아내가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은하는 핸드폰을 꼭 쥐며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냥 언제 돌아올지 물어보려고요.”

제현은 그녀가 자신의 일정을 캐묻는다고 오해했는지 불쾌한 내색을 감추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

[안심해, 난 바람 피우는 취미는 없으니까.]

그 말에 은하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제현이 여전히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 7년 동안 아내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런데도 제현 씨는 내가 욕심 많고, 자신을 붙잡고 놓지 못하는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하지만 내가 처음부터 원했던 건 단지 제현 씨의 사랑뿐이었는데...’

은하는 한숨을 삼키고 손을 꼭 쥐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일찍 들어와요. 내가 할 얘기가 있어요.”

[알았어.]

제현은 짧게 대답하더니, 툭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

은하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었다.

제현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 가정부 진순미는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뉴스를 보다가 은하의 다리에 난 상처를 발견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진순미는 조심스럽게 은하에게 약을 다시 발라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모님, 근무 환경이 너무 위험해요. 오늘 경찰이 제때 도착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잖아요.”

진순미는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한 듯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은하는 미소를 띠며 가볍게 말했다.

“맞아요. 그래도 제가 운이 좋았던 거죠.”

운이 좋았던 건 사실이었다.

감정이 격앙된 환자가 칼을 들고 아이를 인질로 잡았던 상황에서 은하는 순간적인 판단으로 기지를 발휘해 아이를 구했지만, 그 대가로 칼날이 목덜미를 스치며 생과 사의 경계에 설 뻔했다.

그럼에도 은하는 이번 사건을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담담하게 말했다.

진순미는 그 말을 듣고 더 깊은 걱정을 담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사모님, 그래도 마음을 좀 남편분께 여세요. 그러지 않으면 밖의 여자들이 냄새 맡고 달려들어요. 차라리 아이를 가져보는 게 좋겠어요. 회장님도 손주를 보고 싶어 하시잖아요.”

은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진순미도 알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임수아가 돌아온 후, 제현과 수아가 다시 옛정을 되새기고 있다는 것은 집안 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은하가 진씨 가문에 시집올 당시, 이미 제현에게 잊지 못할 ‘첫사랑’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임씨 가문이 몰락한 후, 진강산 회장은 임씨 가문의 가풍을 싫어했고, 임수아라는 아가씨 자체도 탐탁지 않아 하며 제현과 수아의 관계를 강제로 끝내게 했다.

...

진제현은 반항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임수아 대신 배경은 초라하지만 외모는 비슷한 심은하를 선택한 이유는 진강산에게 반기를 들기 위해서였다.

그때 모두가 은하를 두고 권력을 탐내며 제현에게 기대어 살아갈 여자라고 뒤에서 수군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은하는 단지 제현과 결혼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시작된 결혼 생활... 진제현과 심은하가 함께한 7년의 세월은, 결국 임수아가 돌아옴 앞에서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

은하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속눈썹을 살짝 떨었다. 자신과 제현의 결혼이 결국 한낱 웃음거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약을 바른 뒤에도 늦은 시간까지 잠들지 못한 그녀는 제현을 위해 닭곰탕을 끓이기로 했다.

제현의 위장이 좋지 않다는 걸 알기에, 은하는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며 그의 건강을 챙겨왔다.

닭곰탕이 푹 익어가는 동안 은하는 샤워를 하며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려 했다.

제현이 집에 돌아왔을 때는 딱 닭곰탕이 완성될 시간이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불안감에 시달린 은하는 결국 지친 몸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들고 말았다.

‘제현 씨에게 닭곰탕을 끓여줄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 생각에 잠긴 은하는 진순미에게 닭곰탕을 꼭 챙겨주라고 당부한 뒤 방으로 돌아와 조용히 몸을 뉘었다.

깊은 피로감 탓에 은하는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반쯤 깨어난 은하의 귓가에 뜨거운 숨결이 스쳤다.

그녀는 눈을 비비며 천천히 눈을 떴다.

“깼어?”

저음의 낮고 모호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질였다. 눈앞에는 셔츠 소매를 무심히 걷고 단추 몇 개를 푼 채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제현의 완벽한 이목구비는 고급스러움과 날카로운 차가움을 동시에 띠고 있었다.

제현은 은하에게 천천히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이 은하의 옷자락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며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은하는 본능적으로 몸을 떨며 그 순간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제현의 몸에서 희미하게 풍기는 소독약 냄새가 은하의 정신을 서서히 깨우기 시작했다.

다리에 난 상처가 떠올랐다. 은하는 제현의 가슴을 손으로 막으며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좀 불편해서...”

제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은하를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은하의 몸 아래로 손을 가져갔지만 특별한 이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생리 중도 아니고... 뭐가 불편하다는 거지?’

제현은 잠시 더 미간을 찌푸리다가 그녀를 풀어주었다.

깊은 밤, 제현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은은한 불빛이 그의 날카롭고 반항적인 얼굴을 스치며 어둠 속에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은하를 내려다보았다. 입가에는 흥미롭다는 듯한, 비아냥 섞인 미소가 떠올랐다.

“오늘 나를 부른 이유가 나랑 하고 싶은 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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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8화

    은하는 장예정이 수아을 호되게 꾸짖는 모습을 보자 그동안 꽉 막혔던 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제현은 옆에서 희희낙락 구경만 하는 은하를 힐끗 보고, 입가를 살짝 비틀며 속으로 은하의 표정을 기억해 두었다.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장예정을 부축하며 설명했다. “어머니, 너무 과하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수아는 자기 어머니께 드릴 원피스를 고르러 온 것뿐이에요. 저희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어요.” 은하는 고개를 숙였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냉소가 서서히 피어올랐다. ‘나와 어머니를 위해선 단 한 번도 쇼핑하러 나선 적이 없으면서...’ “그래, 네 말대로 정말 아무 일도 없어야지.”장예정은 아들에게 한 마디 타박을 하며 옆에 서 있는 은하를 슬쩍 보았다. 그녀는 속으로 결심했다. ‘기회가 되면 이 녀석에게 알아듣게 말해야겠어. 은하가 임수아 같은 여자보다 훨씬 나은데, 어째서 수아에게 더 끌리는 거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장예정은 은하에게 가방과 옷을 몇 가지 골라주었고, 제현이 계산했다. 그 틈에 장예정은 느긋하게 은하에게 말했다. “남자가 돈을 버는 이유는 아내를 위해 쓰기 위해서야. 네가 안 쓰면, 밖에 떠도는 고양이나 개들이 그 돈을 쓰게 되는 거라고.” 은하는 말없이 간단히 미소만 지어보였다. 도중에 제현은 업무가 있어 자리를 떠났다. 장예정은 은하에게 저녁에 본가로 와서 함께 식사하자고 권했지만, 은하는 저녁에 일이 있다며 부드럽게 거절했다. 은하가 떠난 뒤, 장예정은 아연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곧 제현에게 명령조로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밤, 당장 본가로 와.] ...저녁. 제현은 장예정에게 불려 본가로 갔다. 장예정은 아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화가 잔뜩 난 얼굴로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너, 설마 은하랑 이혼할 생각이야?!” 제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음울한 눈빛으로 물었다. “은하가 그렇게 말했나요?” 장예정은 화가 치밀어 아들의 말을 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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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9화

    은하는 손으로 제현의 가슴을 밀어내며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여자의 힘은 너무나 보잘것없었고, 특히 남자 앞에서는 더욱 그랬다. 제현은 그녀의 종아리를 따라 손을 천천히 위로 올렸다. 은하는 더욱 분개하며 그의 혀를 깨물었다. “진제현 씨, 내가 왜 여기 왔는지 잊었어요? 이혼 얘기하러 온 거잖아요!” 제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은하의 눈을 깊이 응시하며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나랑 이혼하려는 이유가 그 사람 때문이야?” ‘그 사람? 설마 임수아를 말하는 거야?’“이유는 많죠. 그건 그중 하나일 뿐이에요.” 은하는 냉랭하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진 대표님, 어차피 이혼할 사이인데 더 이상 할 말도 없어요. 협의서 봤으면 내일 오후 가정법원에서 보죠.” 그녀는 발목을 절뚝거리며 방을 나섰다. 제현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마치 큰돈을 잃은 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은하는 다친 다리 때문에 더 움직이기 힘들어서, 집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그녀가 깨어났을 때, 진순미는 이혼 이야기를 전혀 못들은 듯 웃으며 말했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방에서 넥타이를 찾고 계시는데, 한번 가보시겠어요?” 은하는 본능적으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지난 몇 년간 제현의 물건은 늘 그녀가 챙겼기 때문에 물건의 위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녀였다. 어차피 곧 이혼할 사이인데 괜히 트집 잡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다이닝 룸에서 나와 안방으로 향했다. 안방 앞에 선 은하가 문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 막 열려던 순간, 안에서 들려오는 낮고 낮은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수영 거리에 있는 그 집, 수아한테 넘겨줘.” 그 말에 은하는 온몸이 굳어버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 화가 들끓기 시작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재산 분할 문제를 걱정하며 이혼 협의서에 서명도 미루더니, 이제 와서 집을 그렇게 쉽게 임수아에게 넘겨준다고?’그녀는 헛웃음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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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챕터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40화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유미수의 얼굴에는 거의 주름이나 기미 하나 없었다. 다만, 말 할 때마다 가끔 드러나는 그 음흉함은 숨길 수 없었다. 은하는 유미수의 위협을 충분히 이해했지만, 감정을 억누른 채 의연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곧은 자세는 마치 꺾이지 않는 소나무처럼 강인해 보였다. “사모님, 이런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나 통하겠죠. 하지만 저는 여전히 제 동생이 잘못한 게 없다고 믿습니다. 반대로 아드님은 어땠나요?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며 학교 내에서 폭력을 저질렀죠. 사모님께서 아드님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다면, 우리 시에도 소년 보호시설은 있습니다.” 은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미수의 평온했던 표정이 일순간 깨지는 것을 보자, 은하는 차분히 차에서 내렸다. 이번 대화는 겉으로 보기에 은하가 이긴 듯했다. 그로부터 30분 후 태하가 나오자, 은하는 동생과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요즘 학교에서 누가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어?” 태하는 책가방을 옆으로 던지고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요즘 완전 평화롭다니까. 지난번 대회는 놓쳤지만, 선생님이 다른 시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가라고 추천해 주셨어. 요즘 그거 준비하느라 바빠.” 태하의 성적은 늘 우수했으니, 은하도 동생에 대해 별다른 걱정은 필요 없었다. 게다가 얼마 전 태하가 학교에서 뛰어내린 일이 있었던 탓에, 선생님들은 혹시 또 다른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태하를 각별히 신경 쓰고 있었다. 그 덕분에 임재욱 역시 함부로 태하를 건드릴 틈을 찾지 못했다. 태하의 최근 학교생활을 전해 들으며, 은하는 잠시나마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유미수의 경고는 여전히 은하의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설령 자신이 협박과 위협에 시달린다 해도 상관없지만, 태하만큼은 결코 잃을 수 없는 존재였다. 태하는 은하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었으니까.“태하야, 물리 공부에 그렇게 관심 많으면, J 시에 있는 전문 학원에 다녀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9화

    일에 대한 걱정 외에도, 은하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일이 떠올랐다. 카메라 앞에서는 오늘 수아가 일부러 넘어진 상황이 수아의 자작극이고 자신은 결백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었다. 지금은 회사 직원들만 오늘의 일을 알고 있지만, 만약 그 영상이 유출된다면 은하의 커리어는 이대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은하는 바로 광수에게 물었다. “카메라 메모리 카드 좀 볼 수 있을까요? 안에 유용한 자료가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요.” 광수는 그녀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즉시 장비를 찾아 메모리 카드를 가져오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광수가 가져간 여러 대의 카메라를 모두 확인했지만, 오전에 녹화된 영상이 들어 있는 메모리 카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은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간 편집장이 자신을 배제하고 해당 칼럼 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 한다는 점이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퇴근 후, 은하는 기운이 없었다. 그때 동생 태하의 전화가 걸려 왔다. [누나, 오늘 저녁에 집에 와서 나 밥 좀 해줄 수 있어?] 며칠간 정신없이 바빠 동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탓에, 태하는 주로 밖에서 끼니를 때우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태하의 외로운 모습을 상상하자 은하는 동생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스며들었다. 어차피 지금 회사에 남아 있어봐야 할 일은커녕, 밤낮없이 준비한 자료가 다른 이의 공로로 돌아갈 게 뻔한 상황이었다. 그런 판에 굳이 붙잡혀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은하는 시계를 확인했다. 마침 태하가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대라는 걸 깨닫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동생을 데리러 직접 나서기로 마음먹었다.학교 앞에는 이미 많은 학부모가 차를 세우고 자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고급 차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은하는 조용히 길가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차창이 반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8화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은하의 가슴은 여전히 미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가득했다. ‘수년간의 내 진심이 진제현에게는 그저 한낱 거품이었구나.’ 현장 분위기가 점점 심상치 않게 흐르자, 한 직원이 다가와 은하를 조심스레 붙잡으며 설득했다. “은하 씨, 오늘 우리 여기 일로 온 거잖아요. 절대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안 돼요.” 그 말에 은하는 속으로 씁쓸히 동의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일을 하면서 억울한 일이 생겨도, 결국 이를 악물고 참아내야 하는 게 현실이니까.’ 깊은 한숨을 내쉰 은하는 이 모든 감정을 꾹 눌러 담으며, 차분히 참아내기로 결심했다.그런데도 제현의 눈빛은 그녀에게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은하가 더 이상 경찰에 신고할 기색이 없자, 제현은 그녀의 핸드폰을 돌려주며 수아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남겨진 회사 직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머뭇거렸다. “그냥 우리도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라이브로 예정되었던 인터뷰가 모두 녹화로 바뀌어 있었고, 회사로 돌아온 뒤에는 편집장이 모든 팀원을 편집장실로 소집했다. 편집장실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고, 이번 인터뷰 실패에 대한 편집장의 분노는 가라앉을 기미가 없었다. “심은하 씨!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을 이렇게 만든 거예요? 잘 진행되던 인터뷰를 엉망으로 만들다니!” 편집장은 두꺼운 기획서를 책상 위에 내던지며 큰소리 쳤다. 주변 직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꾸중을 듣는 분위기였다. 촬영을 맡은 광수도 꾸중을 면치 못했다. 그가 라이브를 녹화로 전환했던 사실이 밝혀졌고, 연말 보너스 절반이 삭감되는 징계까지 받았다. 큰 사건을 수습한 후, 주간 편집장의 사무실을 나오는 직원들의 분위기는 한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은하는 맨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며 진광수를 불렀다. 은하는 오늘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제안 때문에 징계를 받게 된 진광수에게만큼은 사과하고 싶었다. “광수 씨, 오늘 일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7화

    은하는 이런 비난과 지적에 냉담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임수아 씨, 참 대단한 연기네요. 아카데미상에 도전하지 않는 게 아쉬울 정도예요.” 상황을 자작극으로 해결하려는 수아의 의도는 완전히 빗나갔다. 아무리 누명을 씌우려 해도, 은하는 절대 이런 수아에게 사과하지 않을 것이었다. 은하는 주위에서 구경하는 동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위에서 바닥에 넘어져 있는 수아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아까 본인이 일부러 넘어진 것도, 커피를 자신에게 부은 것도 모두 당신이 한 일이잖아요. 저에게 덮어씌우려면 확실한 증거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수아는 억울한 척하며 말했다. “방금 그 장면 다 촬영됐어요. 라이브로 본 관객들이 다 지켜보고 있었을 거예요.” 그 말이 힌트라도 된 듯, 주변 사람들이 놀라며 말했다. “우리 장비 아직 켜져 있었던 거 아니야?” 이런 일이 라이브로 나갔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스태프들이 급히 촬영 장비를 점검했다. 수아는 그런 상황을 보고 입꼬리를 올리며 은하를 바라봤다. 그러나 이내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라이브 장비가 꺼져 있잖아?” “이건 라이브가 아니라 녹화였어!” 수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미 라이브 형식 인터뷰가 수아의 제안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은하는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 함께 일하며 친분이 있는 카메라 감독 진광에게 부탁해, 라이브를 녹화로 전환해 놓았다. 은하는 담담하게 말했다. “방금 촬영된 화면은 임수아 씨가 넘어지는 장면만 찍혔을 텐데, 그게 제가 당신을 밀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그 순간, 카페 직원 한 명이 나서며 은하를 겨냥했다. “촬영이 안 됐다는 것이 당신이 안 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잖아요. 우리 사장님을 질투해서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라고 보는데요?” 그때, 전화를 끝내고 돌아오던 제현이 이 상황을 목격했다. “무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6화

    “죄, 죄송합니다. 방금 한 말은 그냥 농담이었어요.” ‘다분히 고의적인 악담이 이런 사과 한마디로 끝나는 거야?’ 은하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이 오늘 처음 배치돼서 제 업무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은 거 알아요. 하지만 괜찮아요. 앞으로 함께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익숙해질 겁니다.” 그 말에 험담하던 직원들은 은하가 정말 화해를 뜻하는 건지, 아니면 속으로 가만두지 않겠다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 수아는 그런 상황을 오히려 속으로 즐기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단순한 오해였던 것 같네요. 심 기자님, 절대 화내지 마세요.” 은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수아가 건넨 커피를 받아 들며 말했다. “그럼 감사히 마실게요. 고맙습니다, 임수아 씨.” 그녀는 커피를 들고 촬영 장비가 있는 자리로 걸어갔다. 하지만 수아가 이렇게 쉽게 물러설 리 없었다. 그녀는 은하의 뒤를 따라오며 한마디 던지려고 했다. 수아는 녹화 장비의 빨간불이 깜박이는 것을 힐끗 보더니, 눈빛이 살짝 변했다. “심 기자님, 방금 동료들의 말이 저는 아주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예쁘게 하고 다니니 남자들이 마음을 뺏기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은하는 수아가 숨긴 의도를 바로 알아채고, 손에 든 커피를 한쪽에 내려놓으며 비웃었다. “혹시 임수아 씨는 자기 외모에 별로 자신감이 없어서 남자의 마음을 붙잡지 못하는 건가요?” 수아는 외모에 대한 지적을 듣고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녀는 원래 자기 외모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자, 수아도 더 이상 온화한 척하지 않고 본색을 드러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와 제현이는 오랜 시간 알고 지냈어. 당신 말 몇 마디로 뺏을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야. 당신도 남자들의 관심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 왜 꼭 진제현이어야 해? 지난번에 날 죽음으로 몰아넣지 못해 아쉬웠나?” 수아는 눈물까지 글썽이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5화

    은하의 반응에 오히려 제현은 은근한 즐거움을 느끼는 듯했다. 그의 입가에 비뚤어진 웃음기가 살짝 번지며, 눈가에 희미한 장난기가 어렸다. “물론이죠. 나도 심 기자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테라스는 습지 공원에 자리 잡고 있었고, 은하 팀의 팀원들이 목재 산책로 위에 유럽풍의 심플한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해 마주 앉았다. 은하는 카메라를 잡고 있는 동료에게 손짓을 보냈고,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일할 때 은하는 프로답게 누구보다도 집중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최근 제현이 진행한 여러 사업을 중심으로 꼼꼼히 질문하며 제현의 답변을 끌어냈다. 초반에 제현은 성실히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제현의 대답은 묘하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서구 상권 개발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다양한 시설이 통합된 쇼핑몰을 갖출 예정이니, 그때 심 기자도 한 번 체험해 보시면 좋을 겁니다.” 은하는 순간 미세하게 멈칫했지만, 제현의 말 뒤에 덧붙여진 문장은 무시한 채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인터뷰 내내 제현은 질문에 성실히 답하는 듯했으나, 끝에는 꼭 대화를 은하와 연결하려 했다. 그런 제현의 모습은 수아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멀찍이 서서 대기하던 수아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은하도 승자의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자신은 결혼 생활에서도 승자가 아니었다. 촬영 담당 스텝이 손짓을 보내며 중간 휴식 시간을 알렸다. 수아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다가와 직원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 카페에서 준비한 커피와 디저트 드시러 카페로 가세요. 편히 쉬면서 마음껏 드시면 좋겠습니다.” 무료로 다과를 대접받은 직원들은 고마워하며 카페로 이동했다. 누군가 은하에게 함께 가자고 권했으나, 그녀는 부드럽게 거절했다. “인터뷰 내용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해서요.” 제현은 인터뷰를 마치자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4화

    은하는 죽 그릇을 건네기 전에 고개를 들어 제현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은은한 빛이 번졌다. “왜 갑자기 라이브 형식의 인터뷰를 하겠다는 거야? 평소 당신 스타일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데.” 제현은 오랜만에 맡는 죽의 익숙한 향기에 약간 안정감을 느꼈다. 그러나 죽을 먹기도 전에 그는 은하의 말을 듣고 이마를 찌푸렸다. “남편으로서, 네 인터뷰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면 안 돼?” 은하는 냉소를 지으며, 뜨거운 죽이 담긴 그릇을 제현의 손에 직접 쥐여주었다. “임수아가 시킨 게 아니라면, 당신이 이런 형식을 생각해 낼 리 없지. 또 무슨 의도가 있는 거야?” 제현은 죽의 뜨거운 온도에 손을 뎄지만, 은하가 일부러 그러는 것을 알면서도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제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이미 경고했잖아. 윤씨 가문은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왜 말을 안 들어?” ‘이 남자는 늘 이런 식이야!’또다시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제현의 태도에 은하의 눈빛이 점차 어두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됐어. 더 할 얘기 없어.” 은하는 말을 마치자마자 제현을 지나쳐 주방을 나섰다. 밤은 점점 깊어져 갔고, 주방의 적막함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제현은 식은 죽을 바라보며 손도 대지 않았다. ...은하는 항상 일에서는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제현의 인터뷰가 예정된 날, 은하의 팀 스텝들은 제현과 사전 조율을 마치고 인터뷰 장소를 카페의 뒤편 테라스로 정했다. 적당한 온도와 날씨에 녹음이 가득한 카페의 테라스는 원래 딱딱한 경제 인터뷰를 보다 부드럽고 흥미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배경이었다. 은하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사전에 현장을 직접 둘러보았다. 하지만 조사를 마친 뒤, 그 카페의 투자자 목록 중 한 사람이 임수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은하는 이번 인터뷰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임수아가 무언가 음흉한 계획을 세우고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3화

    은하는 집 안에서 걷기 힘든 태하가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정리한 뒤, 그를 방에 두고 나왔다. 거실에 나와 보니 제현과 세준 둘 다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핸드폰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아래층 주차장에서 기다릴게.] 제현 특유의 간결한 문장이었다. 오늘 은하는 몇 차례 제현을 도발했고, 결국 태운 갈치를 억지로 먹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은하에게 이렇게 호락호락 넘어갈 리 없을 것이다. 은하는 메시지를 무시한 채 1층으로 내려가, 단지 입구에서 택시를 잡으려 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근처에서는 택시를 잡기 쉽지 않았다. 은하가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호출 앱에서도 택시를 찾지 못했다. 잠시 후, 검은색 차 한 대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가더니, 제현의 옆모습이 드러났다. 날카롭고 단정한 그의 이목구비는 지금 약간 느긋해 보였다. “내가 보낸 메시지 못 봤어?” 그의 목소리는 평온해 보였지만, 그 속에는 은하만 느낄 수 있는 불만이 감춰져 있었다. 은하는 남자의 기색을 읽고 경계심을 품었고, 마치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메시지? 못 봤네.” 제현은 냉소를 지으며, 그녀의 변명을 굳이 따지려 들지 않았다. “타.” 은하는 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가까이서 보니, 제현의 얼굴이 창백했다. 은하는 방금 제현이가 억지로 먹었던 그 갈치를 떠올리며, 속으로 짐작했다. ‘설마 그 갈치구이 때문에 속이 안 좋아진 건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는 마음으로, 은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병원에 가는 게 어때? 상태가 안 좋아 보여.” 제현은 사실 속이 몹시 불편했다. 몇 년간 힘들게 회복된 위장에 다시 탈이 난 것 같았다. 아까 그는 은하 집에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고, 지금도 통증을 참느라 이마에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제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병원에 갈 필요 없어.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2화

    태하는 방에서 나와 이어폰을 귀에서 빼며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거실에 앉아 있는 제현을 발견하자마자, 본능적으로 누나를 찾았다. 태하는 제현이 집에 온 것이 몹시 불쾌했다. ‘매형이 여기 웬일이지?’ 은하는 태하에게 제현이 온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동생과 시선을 잠시 마주치며 안심시키려 했다. ‘신경 쓰지 마.’ 은하는 제현이 가장 좋아하는 갈치구이를 그의 앞에 놓았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평소에 비해 지나치게 온화하고,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다. “이거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갈치 요리예요. 근데 주방에서 다른 요리에 정신이 팔려 깜빡하는 바람에 조금 오래 구워졌어요. 그래도 괜찮죠?” 모두의 시선이 그 새까맣게 탄 요리에 쏠렸다. ‘이게 갈치야?’ 그녀가 말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제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비웃는 듯 말했다. 은하의 이런 반항적인 행동은 처음이 아니었다. 제현은 곧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괜찮아. 네가 만든 요리는 뭐든 좋으니까.” 그의 대답에 말을 잘 하지 않던 태하조차 경외의 눈빛을 보냈다. ‘저걸 먹고도 탈이 안 나면 이상한 거지.’ 네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갈치구이를 제외한 다른 요리는 모두 맛있어 보였고, 향도 좋았다. 은하는 일부러 제현에게 갈치 한 조각을 집어주며 말했다. “한번 먹어봐요. 생각보다 맛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제현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은하의 겉모습은 부드럽고 온화했지만, 그 눈빛 속에는 교묘한 장난기가 숨어 있었다. 제현은 잠시 주저하더니 결국 그 갈치를 입에 넣었다. 모두가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제현은 옆에 놓인 물 한 컵을 들어 천천히 반쯤 마셨다. 그러나 입안에 퍼지는 짠맛에 그만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도저히 입에 넣고 삼킬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짠맛이었다. 그는 속으로 확신했다. ‘이건 분명 날 위해 ‘특별히 준비한 요리’군.’ 순간 떠오른 생각에 제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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