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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온완유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2-24 14:27:50
은하는 제현의 말에 잠시 멍해졌다.

‘하긴. 제현 씨 눈에는 내가 그저 남편을 붙잡아두려는 속셈으로 가득 찬 여자로 보이겠지.’

그리고 한숨을 삼킨 그녀는 고개를 들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네, 내가 원했어요.”

은하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이어갔다.

“아이를 갖고 싶어졌어요.”

제현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그의 어두운 눈동자 속에는 은하를 향한 비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이게 네가 오늘 밤 계획한 거야?”

은하는 무의식적으로 소매를 움켜쥐었다.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제현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단호하게 맞받아쳤다.

“우리는 법적으로 부부예요. 난 당신의 섹스 파트너가 아니에요. 잠자리 끝나면 아무 사이도 아닌 것처럼 너랑 거래하는 여자가 아니라고요.”

잠시 숨을 고른 그녀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을 이어갔다.

“임수아 씨가 돌아왔다면서요. 나를 원하지 않지만 참을 수 없다면 그 사람을 찾아가면 되겠네요.”

제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은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담뱃재를 가볍게 털며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이런 소동을 부린 거야?”

그 말에 은하는 고개를 떨군 채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소동이라니... 내가 아이를 원하는 것조차 그저 하찮은 소동으로 보이는 건가?’

빛 아래 은하의 눈매는 흐릿하면서도 차분했다. 그 안에 깃든 서늘한 기운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묘한 긴장감을 더하며 한층 더 매혹적으로 보였다.

제현은 자신도 모르게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마음 한구석이 부드럽게 풀어지는 듯한 낯선 느낌이 스쳤다.

그는 손끝으로 은하의 입술을 천천히 스치며 담담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산수원의 그 집, 너 줄게. 하지만 이런 말,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아.”

‘또 이러네. 결혼 후, 임수아와 관련된 일이 있을 때마다 제현 씨는 늘 이렇게 입막음용으로 뭔가를 주려고 했으니까...’

은하의 마음 한구석이 따끔하게 찔렸다. 얇은 바늘 끝에 살짝 긁힌 듯, 아릿한 고통이 스며들었다.

‘이 오랜 세월 동안 난... 제현 씨에게 회장님께 반항하고, 임수아를 지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구나...’

그러나 제현은 이미 은하의 뒷머리를 움켜쥐고 거칠게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춰왔다.

침대 위에서 그는 언제나 강압적이고 주도적이었다. 은하의 미약한 저항조차 제현의 세계에선 허용되지 않았다.

그는 은하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고 마치 묶어놓은 듯 자기 뜻대로 끌고 갔다.

거리낌 없는 제현의 행동은 결국 은하를 완전히 그의 것으로 만들었다.

제현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멈출 줄 모르는, 끝을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모든 것이 끝난 뒤, 은하는 온몸이 욱신거리고 지친 채 침대 위에 힘없이 누워 잠들었다.

오늘 하루가 너무 지쳐 정신을 잃은 듯 잠들었던 은하가 눈을 떴을 땐 이미 다음 날 아침이었다.

제현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은하는 아픈 허리를 문지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가슴속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얽혀 있었다.

‘남자들에게 사랑과 육체의 관계는 분리된 것일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어!!’

‘제현 씨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면서도 나와 부부로서의 관계를 아무렇지 않게 즐길 수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언제나 나에게는 수치심만 남았어.’

그러나 은하에게는 더 이상 그런 생각에 잠길 여유조차 없었다. 그녀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 다음 비즈니스 관련 인터뷰 준비를 맡아야 했다.

흥미로운 점은,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절했던 사업가 부세준 대표가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는 것이다.

동료들이 어제 있었던 환자 가족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듣고, 은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은하야, 너 기막히게 운 좋다. 네가 어제 구한 그 여자아이가 부세준 대표의 조카딸이래. 덕분에 우리가 그 인터뷰 따낸 거야.”

“부세준 대표,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더라? 젊고 유능하고, 거기다 얼굴도 잘 생겼대. JS 그룹의 진제현 대표랑, 그리고 진 대표의 연인이었던 임수아랑 모두 A대의 자랑이었다더라.”

‘진제현 대표...’

그 말을 듣고 은하의 손이 잠시 멈췄다.

동료는 멈추지 않고 말을 덧붙였다.

“참, 며칠 전에 임수아가 돌아왔다던데, 진제현 대표가 직접 공항까지 마중 나갔대. 심지어 그걸 숨기려고 실시간 검색어까지 조작했다더라고. 어제는 임수아가 발목을 삐끗했는데 진제현 대표가 직접 병원까지 데려다줬대!”

그 이후, 계속 호들갑을 떨던 동료의 말은 더 이상 은하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은하의 가슴은 무엇인가에 눌린 듯 답답하고 무거웠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치는 비참함과 아픔이 그녀의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눈가가 축축해지자, 은하는 스스로를 비웃듯 자조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런데 어떻게 내가 진제현 대표의 아내라고 할 수 있겠어? 그 사람 마음속에 내 자리는 하나도 없는데.’

‘진제현이라는 남자를 사랑한 7년동안... 내가 얻은 건 도대체 뭘까?’

“근데 어젯밤엔 정말 아찔했다더라. 경찰이 조금만 더 늦었어도, 사람들 구경하느라 통제가 안 됐다면, 그 환자 가족이 정말 사고를 쳤을 거라던데. 은하야, 너 다친 상처는 정말 괜찮아?”

동료의 말에 은하는 정신을 차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쓰라림을 억누르며,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운이 좋았죠.”

‘만약 운이 조금이라도 나빴다면, 나는 이미 칼 맞고 쓰러져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어...’

하지만 이런 말을 해봤자, 상대방에게 불쾌함만 줄 뿐, 누구의 공감도 얻을 수 없다는 걸 은하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은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편집장이 들어오자 직원들은 모두 제자리로 흩어졌다.

아마도 어제 사건 때문인지, 편집장은 평소보다 훨씬 부드러운 어조로 은하에게 말을 건넸다.

“은하 씨, 조금 있다가 부세준 대표 인터뷰를 맡아줘요.”

그렇게 해서, 은하는 곧 젊고 유능한 부세준 대표를 만나게 되었다.

부세준은 단정한 외모에, 온화한 품격과 여유가 넘쳤다. 말과 행동에서 묻어나는 따뜻함이 옆에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은하의 인터뷰는 놀라울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거의 끝나갈 무렵, 세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어제 일을 언급했다.

“심 기자님, 어젯밤에 우리 나희를 구해 주셨다고 들었어요. 우리 나희가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다네요.”

은하는 잠시 망설였다.

세준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직접 우리 나희 목숨도 구해주셨는데, 거절하지 않을 거죠?”

그의 말투는 가벼운 농담처럼 들렸지만, 악의는 전혀 없었다.

어젯밤 만난 어린 소녀를 떠올리며, 은하는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세준의 집안은 교양이 남달랐고, 부나희도 얌전하고 착한 아이였다. 특히 은하를 만나고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감사의 마음을 예의 있게 표했다.

나희는 직접 만든 ‘평안 기도 팔찌’까지 선물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세 사람의 저녁 식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끝이 났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은하가 발목을 삐끗하는 작은 사고가 일어났다.

세준이 무심코 넘어질 뻔한 은하의 팔을 잡았다.

“언니, 혼자 다니는 건 위험해요. 우리 삼촌이 집까지 데려다줄 거예요!”

어린 소녀의 천진난만한 배려에 세준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하는 거절하려 했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은하 씨, 정말 우연이네요.”

은하가 고개를 들자, 임수아가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제현이 있었다.

수아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은하와 세준에게 고정했다.

“제현이가 저를 퇴원시키러 와줬어요. 잠깐 산책 겸 나온 건데, 이렇게 은하 씨와 부 대표님을 만나다니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제현은 말없이 세준의 손길이 닿은 은하의 팔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왠지 몹시 거슬렸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부 대표님, 제 아내를 아시는 겁니까?”

세준은 손을 놓으며 미소로 답했다.

“심 기자님은 우리 나희를 구해주셨고, 방금 제 인터뷰도 맡아서 하셨어요.”

“정말 기막힌 우연이네요.”

제현의 어조는 점점 더 냉담해졌다.

그는 은하를 힐끔 쳐다보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인터뷰를 위해 이렇게 친밀해질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요? 뭐랄까... 결혼한 유부녀인데 말이죠.”

그 말에 은하는 본능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이 사람은 또 뭘 그렇게 음흉하게 비꼬는 거야?’

‘본인이 임수아와 얽히고설킨 관계는 괜찮고, 내가 다른 남자와 조금이라도 엮일까 봐 의심하는 건가?’

제현의 이런 태도에 은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머금고 날카롭게 받아쳤다.

“자기 하반신도 제대로 관리 못 하는 남자가 아내부터 의심하더라고요. 부 대표님은 단지 호의를 베푸신 것뿐이에요. 그런데 진 대표님은 정말 여자들한테 인기 많으신가 봐요. 대단한 능력자시네요!”

제현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당혹감으로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은하는 그런 제현을 바라보며 더 이상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나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희야, 아까 언니 회사로 데려다준다고 했지? 가자.”

은하가 보기엔 어차피 제현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집에 데려다주느라 바쁠 테니,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쓸 여유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겁날 것도 없다는 생각에, 은하는 마음에 있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은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돌아섰고, 세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제현은 세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의 눈빛은 어두웠고, 얼굴에는 불쾌감이 가득했다.

우연히 은하를 마주친 일 때문인지, 회사로 복귀한 제현의 기분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었다.

제현의 차가운 분위기로 그의 주변 공기는 더욱 얼어붙었고, 직원들은 잔뜩 긴장한 채 하루를 숨죽이며 보내야 했다.

...

한편, 은하는 오랜만에 마음껏 자신을 내려놓았다.

인터뷰도 무사히 마쳤고, 회사로 돌아온 그녀의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비록 사랑과 결혼은 실패로 끝났지만, 적어도 자기 일에서만큼은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그녀는 굳게 다짐했다.

은하는 그날 오후 내내 힘이 넘쳤다.

하지만 저녁에 진씨 가문의 본가에 들르기 위해 집을 나서려던 찰나, 제현이 차를 몰고 나타나 그녀를 데리러 왔다.

차에 오르자마자, 제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왜 나를 불렀어? 부세준 대표한테 부탁하지 그래?”

‘이 사람이 진짜 제대로 미쳤나?’

은하는 속으로 울컥하는 욕을 참지 못하며 이를 악물었다.

‘제정신이라면 내가 다른 남자한테 시댁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겠어?’

그녀는 제현을 애써 참아주는 대신,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응시하며 날카롭게 받아쳤다.

“그럼, 당신은 왜 임수아 씨 데리고 본가로 가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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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하는 장예정이 수아을 호되게 꾸짖는 모습을 보자 그동안 꽉 막혔던 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제현은 옆에서 희희낙락 구경만 하는 은하를 힐끗 보고, 입가를 살짝 비틀며 속으로 은하의 표정을 기억해 두었다.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장예정을 부축하며 설명했다. “어머니, 너무 과하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수아는 자기 어머니께 드릴 원피스를 고르러 온 것뿐이에요. 저희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어요.” 은하는 고개를 숙였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냉소가 서서히 피어올랐다. ‘나와 어머니를 위해선 단 한 번도 쇼핑하러 나선 적이 없으면서...’ “그래, 네 말대로 정말 아무 일도 없어야지.”장예정은 아들에게 한 마디 타박을 하며 옆에 서 있는 은하를 슬쩍 보았다. 그녀는 속으로 결심했다. ‘기회가 되면 이 녀석에게 알아듣게 말해야겠어. 은하가 임수아 같은 여자보다 훨씬 나은데, 어째서 수아에게 더 끌리는 거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장예정은 은하에게 가방과 옷을 몇 가지 골라주었고, 제현이 계산했다. 그 틈에 장예정은 느긋하게 은하에게 말했다. “남자가 돈을 버는 이유는 아내를 위해 쓰기 위해서야. 네가 안 쓰면, 밖에 떠도는 고양이나 개들이 그 돈을 쓰게 되는 거라고.” 은하는 말없이 간단히 미소만 지어보였다. 도중에 제현은 업무가 있어 자리를 떠났다. 장예정은 은하에게 저녁에 본가로 와서 함께 식사하자고 권했지만, 은하는 저녁에 일이 있다며 부드럽게 거절했다. 은하가 떠난 뒤, 장예정은 아연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곧 제현에게 명령조로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밤, 당장 본가로 와.] ...저녁. 제현은 장예정에게 불려 본가로 갔다. 장예정은 아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화가 잔뜩 난 얼굴로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너, 설마 은하랑 이혼할 생각이야?!” 제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음울한 눈빛으로 물었다. “은하가 그렇게 말했나요?” 장예정은 화가 치밀어 아들의 말을 듣지

    Last Updated : 2024-12-24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9화

    은하는 손으로 제현의 가슴을 밀어내며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여자의 힘은 너무나 보잘것없었고, 특히 남자 앞에서는 더욱 그랬다. 제현은 그녀의 종아리를 따라 손을 천천히 위로 올렸다. 은하는 더욱 분개하며 그의 혀를 깨물었다. “진제현 씨, 내가 왜 여기 왔는지 잊었어요? 이혼 얘기하러 온 거잖아요!” 제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은하의 눈을 깊이 응시하며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나랑 이혼하려는 이유가 그 사람 때문이야?” ‘그 사람? 설마 임수아를 말하는 거야?’“이유는 많죠. 그건 그중 하나일 뿐이에요.” 은하는 냉랭하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진 대표님, 어차피 이혼할 사이인데 더 이상 할 말도 없어요. 협의서 봤으면 내일 오후 가정법원에서 보죠.” 그녀는 발목을 절뚝거리며 방을 나섰다. 제현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마치 큰돈을 잃은 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은하는 다친 다리 때문에 더 움직이기 힘들어서, 집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그녀가 깨어났을 때, 진순미는 이혼 이야기를 전혀 못들은 듯 웃으며 말했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방에서 넥타이를 찾고 계시는데, 한번 가보시겠어요?” 은하는 본능적으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지난 몇 년간 제현의 물건은 늘 그녀가 챙겼기 때문에 물건의 위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녀였다. 어차피 곧 이혼할 사이인데 괜히 트집 잡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다이닝 룸에서 나와 안방으로 향했다. 안방 앞에 선 은하가 문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 막 열려던 순간, 안에서 들려오는 낮고 낮은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수영 거리에 있는 그 집, 수아한테 넘겨줘.” 그 말에 은하는 온몸이 굳어버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 화가 들끓기 시작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재산 분할 문제를 걱정하며 이혼 협의서에 서명도 미루더니, 이제 와서 집을 그렇게 쉽게 임수아에게 넘겨준다고?’그녀는 헛웃음을 터

    Last Updated : 2024-12-24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10화

    은하는 입을 꾹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당시, 그녀는 나이가 어렸고, 유산 분배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SS 그룹은 은하의 어머니가 창립한 회사였고, 그룹 산하의 많은 자회사들 역시 어머니가 심혈을 기울여 세운 것들이었다. ‘아버지는 무시할 수 있지만, 어머니의 피와 땀이 어린 회사는...’ 은하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동생 태하를 임시로 머무는 아파트에 데려다 놓았다. 그리고 최근 심찬호가 벌이는 일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일을 마친 후, 은하는 가정법원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때 편집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은하 씨, 사무실에 잠깐 들러줄래요?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요. 은하 씨가 나 대신 스펙트럼에서 온 손님 좀 접대해줘요.] 은하는 잠시 고민하다가 거절하려 했지만, 편집장의 말투가 점점 더 간절해졌다.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우리 회사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이번에 오실 분은 스펙트럼의 편집장이에요.] 은하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편집장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오후 2시, 가정법원 앞. [어디야?] 제현은 시간을 확인하며 짜증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는 은하와 만나서 이혼 서류를 제출하기로 약속했지만,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야 은하는 제현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떠올리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해요, 오늘 좀 일이 있어서요. 아마 못 갈 것 같아요. 날짜를 다시 잡을 수 있을까요?” 제현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비꼬듯 말했다. [참 바쁘시네. 그런데 앞으로 나도 시간이 날지 모르겠어.]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먼저 뚝 끊었다. 차에 오르자, 비서는 조심스레 제현의 얼굴빛을 살피며 물었다. “대표님, 다음 일정도 회의로 진행하시겠습니까?”제현은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다들 고생 많았으니 잠시 쉬게 해줘. 그리고 스펙트럼의 편집장에게 특별한 선물을 보내도록 준비해.” 비서는 잠시 멈칫

    Last Updated : 202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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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40화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유미수의 얼굴에는 거의 주름이나 기미 하나 없었다. 다만, 말 할 때마다 가끔 드러나는 그 음흉함은 숨길 수 없었다. 은하는 유미수의 위협을 충분히 이해했지만, 감정을 억누른 채 의연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곧은 자세는 마치 꺾이지 않는 소나무처럼 강인해 보였다. “사모님, 이런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나 통하겠죠. 하지만 저는 여전히 제 동생이 잘못한 게 없다고 믿습니다. 반대로 아드님은 어땠나요?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며 학교 내에서 폭력을 저질렀죠. 사모님께서 아드님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다면, 우리 시에도 소년 보호시설은 있습니다.” 은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미수의 평온했던 표정이 일순간 깨지는 것을 보자, 은하는 차분히 차에서 내렸다. 이번 대화는 겉으로 보기에 은하가 이긴 듯했다. 그로부터 30분 후 태하가 나오자, 은하는 동생과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요즘 학교에서 누가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어?” 태하는 책가방을 옆으로 던지고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요즘 완전 평화롭다니까. 지난번 대회는 놓쳤지만, 선생님이 다른 시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가라고 추천해 주셨어. 요즘 그거 준비하느라 바빠.” 태하의 성적은 늘 우수했으니, 은하도 동생에 대해 별다른 걱정은 필요 없었다. 게다가 얼마 전 태하가 학교에서 뛰어내린 일이 있었던 탓에, 선생님들은 혹시 또 다른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태하를 각별히 신경 쓰고 있었다. 그 덕분에 임재욱 역시 함부로 태하를 건드릴 틈을 찾지 못했다. 태하의 최근 학교생활을 전해 들으며, 은하는 잠시나마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유미수의 경고는 여전히 은하의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설령 자신이 협박과 위협에 시달린다 해도 상관없지만, 태하만큼은 결코 잃을 수 없는 존재였다. 태하는 은하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었으니까.“태하야, 물리 공부에 그렇게 관심 많으면, J 시에 있는 전문 학원에 다녀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9화

    일에 대한 걱정 외에도, 은하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일이 떠올랐다. 카메라 앞에서는 오늘 수아가 일부러 넘어진 상황이 수아의 자작극이고 자신은 결백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었다. 지금은 회사 직원들만 오늘의 일을 알고 있지만, 만약 그 영상이 유출된다면 은하의 커리어는 이대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은하는 바로 광수에게 물었다. “카메라 메모리 카드 좀 볼 수 있을까요? 안에 유용한 자료가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요.” 광수는 그녀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즉시 장비를 찾아 메모리 카드를 가져오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광수가 가져간 여러 대의 카메라를 모두 확인했지만, 오전에 녹화된 영상이 들어 있는 메모리 카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은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간 편집장이 자신을 배제하고 해당 칼럼 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 한다는 점이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퇴근 후, 은하는 기운이 없었다. 그때 동생 태하의 전화가 걸려 왔다. [누나, 오늘 저녁에 집에 와서 나 밥 좀 해줄 수 있어?] 며칠간 정신없이 바빠 동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탓에, 태하는 주로 밖에서 끼니를 때우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태하의 외로운 모습을 상상하자 은하는 동생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스며들었다. 어차피 지금 회사에 남아 있어봐야 할 일은커녕, 밤낮없이 준비한 자료가 다른 이의 공로로 돌아갈 게 뻔한 상황이었다. 그런 판에 굳이 붙잡혀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은하는 시계를 확인했다. 마침 태하가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대라는 걸 깨닫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동생을 데리러 직접 나서기로 마음먹었다.학교 앞에는 이미 많은 학부모가 차를 세우고 자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고급 차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은하는 조용히 길가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차창이 반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8화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은하의 가슴은 여전히 미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가득했다. ‘수년간의 내 진심이 진제현에게는 그저 한낱 거품이었구나.’ 현장 분위기가 점점 심상치 않게 흐르자, 한 직원이 다가와 은하를 조심스레 붙잡으며 설득했다. “은하 씨, 오늘 우리 여기 일로 온 거잖아요. 절대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안 돼요.” 그 말에 은하는 속으로 씁쓸히 동의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일을 하면서 억울한 일이 생겨도, 결국 이를 악물고 참아내야 하는 게 현실이니까.’ 깊은 한숨을 내쉰 은하는 이 모든 감정을 꾹 눌러 담으며, 차분히 참아내기로 결심했다.그런데도 제현의 눈빛은 그녀에게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은하가 더 이상 경찰에 신고할 기색이 없자, 제현은 그녀의 핸드폰을 돌려주며 수아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남겨진 회사 직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머뭇거렸다. “그냥 우리도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라이브로 예정되었던 인터뷰가 모두 녹화로 바뀌어 있었고, 회사로 돌아온 뒤에는 편집장이 모든 팀원을 편집장실로 소집했다. 편집장실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고, 이번 인터뷰 실패에 대한 편집장의 분노는 가라앉을 기미가 없었다. “심은하 씨!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을 이렇게 만든 거예요? 잘 진행되던 인터뷰를 엉망으로 만들다니!” 편집장은 두꺼운 기획서를 책상 위에 내던지며 큰소리 쳤다. 주변 직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꾸중을 듣는 분위기였다. 촬영을 맡은 광수도 꾸중을 면치 못했다. 그가 라이브를 녹화로 전환했던 사실이 밝혀졌고, 연말 보너스 절반이 삭감되는 징계까지 받았다. 큰 사건을 수습한 후, 주간 편집장의 사무실을 나오는 직원들의 분위기는 한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은하는 맨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며 진광수를 불렀다. 은하는 오늘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제안 때문에 징계를 받게 된 진광수에게만큼은 사과하고 싶었다. “광수 씨, 오늘 일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7화

    은하는 이런 비난과 지적에 냉담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임수아 씨, 참 대단한 연기네요. 아카데미상에 도전하지 않는 게 아쉬울 정도예요.” 상황을 자작극으로 해결하려는 수아의 의도는 완전히 빗나갔다. 아무리 누명을 씌우려 해도, 은하는 절대 이런 수아에게 사과하지 않을 것이었다. 은하는 주위에서 구경하는 동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위에서 바닥에 넘어져 있는 수아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아까 본인이 일부러 넘어진 것도, 커피를 자신에게 부은 것도 모두 당신이 한 일이잖아요. 저에게 덮어씌우려면 확실한 증거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수아는 억울한 척하며 말했다. “방금 그 장면 다 촬영됐어요. 라이브로 본 관객들이 다 지켜보고 있었을 거예요.” 그 말이 힌트라도 된 듯, 주변 사람들이 놀라며 말했다. “우리 장비 아직 켜져 있었던 거 아니야?” 이런 일이 라이브로 나갔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스태프들이 급히 촬영 장비를 점검했다. 수아는 그런 상황을 보고 입꼬리를 올리며 은하를 바라봤다. 그러나 이내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라이브 장비가 꺼져 있잖아?” “이건 라이브가 아니라 녹화였어!” 수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미 라이브 형식 인터뷰가 수아의 제안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은하는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 함께 일하며 친분이 있는 카메라 감독 진광에게 부탁해, 라이브를 녹화로 전환해 놓았다. 은하는 담담하게 말했다. “방금 촬영된 화면은 임수아 씨가 넘어지는 장면만 찍혔을 텐데, 그게 제가 당신을 밀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그 순간, 카페 직원 한 명이 나서며 은하를 겨냥했다. “촬영이 안 됐다는 것이 당신이 안 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잖아요. 우리 사장님을 질투해서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라고 보는데요?” 그때, 전화를 끝내고 돌아오던 제현이 이 상황을 목격했다. “무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6화

    “죄, 죄송합니다. 방금 한 말은 그냥 농담이었어요.” ‘다분히 고의적인 악담이 이런 사과 한마디로 끝나는 거야?’ 은하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이 오늘 처음 배치돼서 제 업무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은 거 알아요. 하지만 괜찮아요. 앞으로 함께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익숙해질 겁니다.” 그 말에 험담하던 직원들은 은하가 정말 화해를 뜻하는 건지, 아니면 속으로 가만두지 않겠다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 수아는 그런 상황을 오히려 속으로 즐기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단순한 오해였던 것 같네요. 심 기자님, 절대 화내지 마세요.” 은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수아가 건넨 커피를 받아 들며 말했다. “그럼 감사히 마실게요. 고맙습니다, 임수아 씨.” 그녀는 커피를 들고 촬영 장비가 있는 자리로 걸어갔다. 하지만 수아가 이렇게 쉽게 물러설 리 없었다. 그녀는 은하의 뒤를 따라오며 한마디 던지려고 했다. 수아는 녹화 장비의 빨간불이 깜박이는 것을 힐끗 보더니, 눈빛이 살짝 변했다. “심 기자님, 방금 동료들의 말이 저는 아주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예쁘게 하고 다니니 남자들이 마음을 뺏기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은하는 수아가 숨긴 의도를 바로 알아채고, 손에 든 커피를 한쪽에 내려놓으며 비웃었다. “혹시 임수아 씨는 자기 외모에 별로 자신감이 없어서 남자의 마음을 붙잡지 못하는 건가요?” 수아는 외모에 대한 지적을 듣고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녀는 원래 자기 외모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자, 수아도 더 이상 온화한 척하지 않고 본색을 드러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와 제현이는 오랜 시간 알고 지냈어. 당신 말 몇 마디로 뺏을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야. 당신도 남자들의 관심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 왜 꼭 진제현이어야 해? 지난번에 날 죽음으로 몰아넣지 못해 아쉬웠나?” 수아는 눈물까지 글썽이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5화

    은하의 반응에 오히려 제현은 은근한 즐거움을 느끼는 듯했다. 그의 입가에 비뚤어진 웃음기가 살짝 번지며, 눈가에 희미한 장난기가 어렸다. “물론이죠. 나도 심 기자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테라스는 습지 공원에 자리 잡고 있었고, 은하 팀의 팀원들이 목재 산책로 위에 유럽풍의 심플한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해 마주 앉았다. 은하는 카메라를 잡고 있는 동료에게 손짓을 보냈고,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일할 때 은하는 프로답게 누구보다도 집중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최근 제현이 진행한 여러 사업을 중심으로 꼼꼼히 질문하며 제현의 답변을 끌어냈다. 초반에 제현은 성실히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제현의 대답은 묘하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서구 상권 개발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다양한 시설이 통합된 쇼핑몰을 갖출 예정이니, 그때 심 기자도 한 번 체험해 보시면 좋을 겁니다.” 은하는 순간 미세하게 멈칫했지만, 제현의 말 뒤에 덧붙여진 문장은 무시한 채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인터뷰 내내 제현은 질문에 성실히 답하는 듯했으나, 끝에는 꼭 대화를 은하와 연결하려 했다. 그런 제현의 모습은 수아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멀찍이 서서 대기하던 수아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은하도 승자의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자신은 결혼 생활에서도 승자가 아니었다. 촬영 담당 스텝이 손짓을 보내며 중간 휴식 시간을 알렸다. 수아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다가와 직원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 카페에서 준비한 커피와 디저트 드시러 카페로 가세요. 편히 쉬면서 마음껏 드시면 좋겠습니다.” 무료로 다과를 대접받은 직원들은 고마워하며 카페로 이동했다. 누군가 은하에게 함께 가자고 권했으나, 그녀는 부드럽게 거절했다. “인터뷰 내용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해서요.” 제현은 인터뷰를 마치자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4화

    은하는 죽 그릇을 건네기 전에 고개를 들어 제현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은은한 빛이 번졌다. “왜 갑자기 라이브 형식의 인터뷰를 하겠다는 거야? 평소 당신 스타일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데.” 제현은 오랜만에 맡는 죽의 익숙한 향기에 약간 안정감을 느꼈다. 그러나 죽을 먹기도 전에 그는 은하의 말을 듣고 이마를 찌푸렸다. “남편으로서, 네 인터뷰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면 안 돼?” 은하는 냉소를 지으며, 뜨거운 죽이 담긴 그릇을 제현의 손에 직접 쥐여주었다. “임수아가 시킨 게 아니라면, 당신이 이런 형식을 생각해 낼 리 없지. 또 무슨 의도가 있는 거야?” 제현은 죽의 뜨거운 온도에 손을 뎄지만, 은하가 일부러 그러는 것을 알면서도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제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이미 경고했잖아. 윤씨 가문은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왜 말을 안 들어?” ‘이 남자는 늘 이런 식이야!’또다시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제현의 태도에 은하의 눈빛이 점차 어두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됐어. 더 할 얘기 없어.” 은하는 말을 마치자마자 제현을 지나쳐 주방을 나섰다. 밤은 점점 깊어져 갔고, 주방의 적막함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제현은 식은 죽을 바라보며 손도 대지 않았다. ...은하는 항상 일에서는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제현의 인터뷰가 예정된 날, 은하의 팀 스텝들은 제현과 사전 조율을 마치고 인터뷰 장소를 카페의 뒤편 테라스로 정했다. 적당한 온도와 날씨에 녹음이 가득한 카페의 테라스는 원래 딱딱한 경제 인터뷰를 보다 부드럽고 흥미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배경이었다. 은하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사전에 현장을 직접 둘러보았다. 하지만 조사를 마친 뒤, 그 카페의 투자자 목록 중 한 사람이 임수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은하는 이번 인터뷰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임수아가 무언가 음흉한 계획을 세우고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3화

    은하는 집 안에서 걷기 힘든 태하가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정리한 뒤, 그를 방에 두고 나왔다. 거실에 나와 보니 제현과 세준 둘 다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핸드폰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아래층 주차장에서 기다릴게.] 제현 특유의 간결한 문장이었다. 오늘 은하는 몇 차례 제현을 도발했고, 결국 태운 갈치를 억지로 먹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은하에게 이렇게 호락호락 넘어갈 리 없을 것이다. 은하는 메시지를 무시한 채 1층으로 내려가, 단지 입구에서 택시를 잡으려 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근처에서는 택시를 잡기 쉽지 않았다. 은하가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호출 앱에서도 택시를 찾지 못했다. 잠시 후, 검은색 차 한 대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가더니, 제현의 옆모습이 드러났다. 날카롭고 단정한 그의 이목구비는 지금 약간 느긋해 보였다. “내가 보낸 메시지 못 봤어?” 그의 목소리는 평온해 보였지만, 그 속에는 은하만 느낄 수 있는 불만이 감춰져 있었다. 은하는 남자의 기색을 읽고 경계심을 품었고, 마치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메시지? 못 봤네.” 제현은 냉소를 지으며, 그녀의 변명을 굳이 따지려 들지 않았다. “타.” 은하는 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가까이서 보니, 제현의 얼굴이 창백했다. 은하는 방금 제현이가 억지로 먹었던 그 갈치를 떠올리며, 속으로 짐작했다. ‘설마 그 갈치구이 때문에 속이 안 좋아진 건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는 마음으로, 은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병원에 가는 게 어때? 상태가 안 좋아 보여.” 제현은 사실 속이 몹시 불편했다. 몇 년간 힘들게 회복된 위장에 다시 탈이 난 것 같았다. 아까 그는 은하 집에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고, 지금도 통증을 참느라 이마에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제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병원에 갈 필요 없어.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2화

    태하는 방에서 나와 이어폰을 귀에서 빼며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거실에 앉아 있는 제현을 발견하자마자, 본능적으로 누나를 찾았다. 태하는 제현이 집에 온 것이 몹시 불쾌했다. ‘매형이 여기 웬일이지?’ 은하는 태하에게 제현이 온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동생과 시선을 잠시 마주치며 안심시키려 했다. ‘신경 쓰지 마.’ 은하는 제현이 가장 좋아하는 갈치구이를 그의 앞에 놓았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평소에 비해 지나치게 온화하고,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다. “이거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갈치 요리예요. 근데 주방에서 다른 요리에 정신이 팔려 깜빡하는 바람에 조금 오래 구워졌어요. 그래도 괜찮죠?” 모두의 시선이 그 새까맣게 탄 요리에 쏠렸다. ‘이게 갈치야?’ 그녀가 말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제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비웃는 듯 말했다. 은하의 이런 반항적인 행동은 처음이 아니었다. 제현은 곧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괜찮아. 네가 만든 요리는 뭐든 좋으니까.” 그의 대답에 말을 잘 하지 않던 태하조차 경외의 눈빛을 보냈다. ‘저걸 먹고도 탈이 안 나면 이상한 거지.’ 네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갈치구이를 제외한 다른 요리는 모두 맛있어 보였고, 향도 좋았다. 은하는 일부러 제현에게 갈치 한 조각을 집어주며 말했다. “한번 먹어봐요. 생각보다 맛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제현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은하의 겉모습은 부드럽고 온화했지만, 그 눈빛 속에는 교묘한 장난기가 숨어 있었다. 제현은 잠시 주저하더니 결국 그 갈치를 입에 넣었다. 모두가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제현은 옆에 놓인 물 한 컵을 들어 천천히 반쯤 마셨다. 그러나 입안에 퍼지는 짠맛에 그만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도저히 입에 넣고 삼킬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짠맛이었다. 그는 속으로 확신했다. ‘이건 분명 날 위해 ‘특별히 준비한 요리’군.’ 순간 떠오른 생각에 제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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