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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온완유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2-24 14:27:50
은하는 마음속 깊이 합의를 원치 않았다.

이 문제는 그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재욱의 새아버지인 윤빈은 예상한 대로 재욱을 위해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했으며, 여러 차례 은하와 합의를 시도했다.

은하 역시 지인을 통해 변호사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부세준이 이 사건에 대해 듣고는 은하에게 최종 인터뷰 원고를 보여주는 자리에서 말했다.

“심 기자님은 변호사가 필요하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세준은 따뜻한 미소와 함께 온화하고 품격 있는 태도로 말했다.

은하도 남자의 이런 호의는 거절하기 힘들 만큼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세준의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살짝 미소 지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부 대표님. 필요할 때 제가 직접 부탁드릴게요.”

은하의 눈빛은 살짝 부드러워졌고, 평소의 차가운 분위기보다 다소 여유로워 보였다.

세준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심 기자님의 이런 모습이 더 보기 좋아요. 젊은 사람들은 너무 많은 걱정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은하는 잠시 멍해졌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

양쪽 모두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지만, 은하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 줄은 몰랐다. 즉, 임재욱의 사건이 심찬호에게까지 전달된 것이었다.

심찬호는 임씨 가문으로부터 돈을 받은 후, 합의에 동의했고 아들 태하에게 합의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태하와 재욱은 둘 다 어린애들이다. 이런 일로 소란을 피우는 건 보기 좋지 않아! 더군다나, 제현이도 재욱에게 사과하게 하고 태하에게 3억의 보상금까지 챙겨줬잖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니?”

심찬호는 병실 문 앞에서 엄숙한 표정으로 은하를 설득했다.

‘제현 씨?’

그 이름이 들리자, 은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차가운 기운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스며들며 가슴이 얼어붙었다.

‘역시 첫사랑이 제일 중요하겠지. 제현 씨도 끝끝내 임수아가 조금만 불편해도 참지 않았으니까.’

‘결국, 우리 태하의 일을 이렇게밖에 끝낼 수 없나.’

은하는 눈을 감고 잠시 침묵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 태하에게 보상금은 태하의 계좌로 입금해주세요. 태하가 나으면 제가 데리고 나가 살겠습니다.”

심찬호는 눈을 크게 뜨고 차갑게 비웃었다.

“태하는 네 동생이자 내 아들이다. 내가 내 아들을 함부로 할 거라고 생각하니?”

은하는 냉소하며 답했다.

“몇 년 전, 아버지 막내아드님에게 우리 태하가 맞다가 고열로 쓰러졌을 때, 아버지가 태하에게 한 번이라도 자상한 아버지로 대한 적 있던가요?”

그녀는 한숨을 쉬고 나직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동의하지 않으시면, 제가 직접 진강산 회장님께 말씀드릴게요. 아버지께서도 아시잖아요. 그분은 태하를 특별히 아끼세요.”

심찬호는 딸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은하는 태하의 상태를 확인한 후 병원을 떠났는데, 병원을 나오며 문 앞에서 마주친 건 임수아였다.

수아는 환한 미소로 은하에게 인사했다.

“은하 씨, 이번 일은 우리 집안에서 많이 양보한 거예요. 두 집안이 원만하게 해결한 셈이네요. 참, 보상으로 저와 제 동생을 위해 제현이가 제 생일에 맞춰 팔찌까지 선물해줬답니다.”

은하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가슴 한구석이 예리한 칼에 베인 양 쓰렸다.

‘그 팔찌... 나도 알아. 내가 좋아했던 디자인이니까.’

‘그리고 그 팔찌는... 우리 엄마가 생전에 끼신 거니까.’

‘전에 나도 한 번은 제현 씨에게 말한 적이 있었지. 그런데, 그 팔찌가 지금 임수아의 손목에 있다니!’

은하는 시선을 차갑게 고정한 채 차분히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요. 남의 남자가 주는 선물이라 얼마나 더 특별하겠어요?”

수아는 가볍게 웃으며 받아쳤다.

“은하 씨,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저와 제현의 사랑은 그런 어설픈 결혼생활보다 훨씬 더 단단하답니다.”

은하는 고개를 살짝 들며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말인데요, 7년 전 임수아 씨는 왜 내 남편의 배우자가 되지 못했을까요?”

수아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그러나 은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등을 돌려 걸어갔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며 차분히 말했다.

“당분간 임재욱을 잘 지켜봐 주세요.”

임재욱은 문제를 일으키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단순히 싸움뿐만 아니라 사소한 시빗거리들도 잦았다.

비록 심찬호가 임씨 가문과 합의로 마무리 지었지만, 은하는 동생을 위해 이 일을 이렇게 쉽게 넘길 생각이 없었다.

태하의 사건 이후 원래도 차갑던 은하와 제현의 결혼 생활에 더 큰 골이 생겼다.

며칠간의 냉전은 집안에 냉랭한 분위기를 더했고, 심지어 아연마저 오빠와 새언니 사이에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

오늘 저녁은 은하가 근무하는 미디어 그룹의 축하 연회가 있었다.

이번 부세준과의 인터뷰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잡지 모두에서 높은 조회수와 판매량을 기록했다.

심지어 부세준은 이번 인터뷰 덕분에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일이 잘 풀린 덕분에 은하의 마음속에 쌓였던 답답함도 조금은 풀렸다.

진아연은 은하를 위해 정성껏 메이크업을 해주고, 드레스까지 골라주었다.

은하가 집을 나서자, 아연은 몰래 사진을 찍어 핸드폰으로 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큰일이야. 새언니가 나갔는데 엄청 예쁘게 꾸몄어. 확실히 남자 만나는 거 같은데!]

JS 그룹 대표실.

제현은 핸드폰 속 사진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씁쓸하게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저렇게 꾸미고 누구를 유혹하려는 거지?”

...

은하가 연회장에 도착했을 때, 뜻밖에도 부세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잠시 놀랐지만, 곧 미소를 띠며 공손히 인사했다.

“부 대표님도 오셨네요?”

세준은 장난스러운 미소로 답했다.

“협력 관계니까요. 더군다나 심 기자님 덕분에 제가 꽤 주목받게 되었잖아요.”

세준의 시선이 은하에게 잠시 멈추더니, 온화하게 말했다.

“오늘 심 기자님 정말 아름답습니다.”

은하는 그 말에 가볍게 미소로 답했다.

그녀는 세준과도 여전히 거리를 두는 사이였다.

은하는 연회가 열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동료들과 대화하며 보냈다.

설령 그녀가 가끔 세준과 대화를 나누며 예의를 지켰지만,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은하와 사이가 좋지 않은 동료가 일부러 그녀에게 술을 권하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세준이 자연스럽게 은하의 술잔을 대신 받아주며 막아주었다.

누군가 농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부 대표님은 정말 ‘꽃’을 아끼시네요.”

은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세준이 먼저 웃으며 답했다.

“심 기자님 덕분에 우리 회사가 이렇게 주목받았으니,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이죠.”

그 장면은 멀리서 지켜보던 제현의 눈에 들어왔다.

제현의 시선은 차가웠고, 억누르기 힘든 분노가 그 안에 서려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은하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쪽으로 와.]

은하는 메시지를 보고 잠시 당황해서 멍해졌지만, 고개를 들자마자 제현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 뒤 제현의 곁으로 다가갔다.

“집에 가자.”

제현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두 사람은 이미 며칠째 냉전 중이었고, 제현의 태도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은하는 비꼬듯 대꾸했다.

“진 대표님이 이렇게 시간 내는 건 참 드문 일인데요.”

그녀는 냉소를 흘리며 결국 제현과 함께 차에 올랐다.

차는 얼마 가지 않아 인적이 드문 교외의 다리 근처에 멈췄다.

제현은 브레이크를 밟더니 차에서 내렸다.

그는 차 문을 열고 은하를 향해 서늘한 시선을 던졌다.

제현의 시선이 은하의 손목으로 향했다. 거기엔 여전히 ‘평안 기도 팔찌’가 있었다.

그는 손목을 움켜쥐고 차갑게 물었다.

“당신 그렇게 남자가 필요해? 이 팔찌도 그렇게 소중한 거야?”

‘항상 그걸 끼고 다니면서?’

이 팔찌는 전에 부나희가 특별히 은하에게 건넨 선물이었다.

은하도 생사의 기로를 넘나드는 일을 겪은 뒤라, 누군가가 자신의 평안을 빌어주는 마음이 얼마나 귀한지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 팔찌만큼은 계속 곁에 두고 계속 차고 있었다.

은하는 제현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수아가 끼고 있던 팔찌가 떠오르는 순간, 은하의 마음은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갔다.

‘이 남자... 지금 나를 완전히 하찮게 여기고 있는 거야!’

은하는 차가운 눈빛으로 제현을 쏘아보며 입가에 냉소를 띄었다.

“맞아요, 이 팔찌... 나한테는 아주 소중한 물건이에요. 물론 진 대표님이 좋아하는 여자들에게 사주는 그런 값비싼 선물만큼은 아니겠지만요. 진 대표님 곁에 예쁜 여자들이 그렇게 많은데, 나는 누구를 만나면 안 돼요?”

은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현은 손을 뻗어 그녀의 팔찌를 강제로 끊어버렸다.

차갑게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나, 상관있어.”

제현은 허리를 숙여 은하의 입술에 거칠게 입맞추었다.

은하는 본능적으로 그의 가슴을 밀어냈지만, 제현의 압도적인 힘 앞에 그런 저항은 공허한 몸짓일 뿐이었다.

고통의 자극에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해 그의 입술을 깨무는 순간, 그제야 제현은 그녀를 놓아주었다.

눈물 맺힌 은하의 시선은 끊겨나간 팔찌, 그리고 흩어져버린 ‘평안’이라는 글자 위에 머물렀다.

분노와 실망이 폭풍처럼 그녀의 가슴 속을 휘몰아쳤다.

은하는 이를 악물었다. 단단히 엉긴 매듭을 단숨에 끊어내듯,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우리 이혼해요. 당신이 임수아 씨든, 그 누구를 만나든 이젠 상관없어요. 더 이상 당신과 얽히고 싶지 않아요.”

속으론 절규하듯 애써 울부짖었다.

‘제발 그만해, 나 이제 정말 한계야.’

‘진제현! 당신이 임수아와 어떤 관계를 맺든, 나는 지금까지 전혀 간섭한 적도 없었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잖아.’

‘그런데 왜, 하필 내가 나희에게서 받은 이 작은 위로마저도 처참히 짓밟혀야 하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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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은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떠나는 조경민을 바라보던 제현이 앞으로 한 발 내디뎠다. 제현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고,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앞으로도 저희 할아버지 잘 부탁드립니다.” 조경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집사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섰다. 장예정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조용히 은하 앞으로 다가간 후, 며느리의 손을 잡고 눈가가 붉어진 채로 말했다. “은하야, 혹시 모르니 제현이랑 너희 둘 당분간 집으로 들어와 사는 게 어때? 할아버지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장예정의 뜻을 알아차렸다. “알겠습니다. 들어오겠습니다.” 은하는 잠시 고민한 뒤 시어머니의 눈빛을 안심시키듯 부드럽게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분명 괜찮으실 거예요.” 은하의 확신 어린 말에도 불구하고, 장예정의 눈에는 미묘한 불안감이 어려 있었다. “그러면 방을 준비하라고 사람들에게 말해두마.” 장예정은 이 말을 남기고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 뒷모습에는 빨리 자리를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서재로 와라.” 진우성이 아들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할 말이 있다. 아연이가 은하와 잠깐 같이 있고.” 제현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지만, 아버지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서재로 조용히 따라 들어갔다. 은하는 서재 문이 닫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딘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 순간, 아연이 말을 꺼내 은하의 생각을 끊었다. “언니, 우리 먼저 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게 어때요?” 아연은 진우성이 제현을 서재로 부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만약 그 문제가 아니라면, 자신들이 이런 연극을 벌이며 은하를 집으로 데려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니까. 서재 안에서, 제현은 들어오자마자 진우성의 날 선 질문을 받았다. “오늘 가정법원에 갔던 이유가 뭐냐?” 진우성은 싸늘한 눈빛으로 아들에게 차갑게 물었다. “은하와 이

    Last Updated : 2024-12-24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13화

    은하는 문가에 멈춰 섰다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어색하지 않게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태하 이사 도와주고 왔어요.” 그녀는 외투를 문가의 바구니에 벗어 던지며 말했다. “오늘 밤에는 내가 소파에서 잘 테니, 당신이 침대에서 자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그녀는 화장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몇 발짝 걷기도 전에,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와 함께 은하는 순식간에 벽으로 밀쳐졌다.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나무 향, 그 안에 달콤하면서도 끈적한 과일 향이 은근히 섞여 있었다. 미묘하지만 뚜렷한 그 향기는 임수아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것이었다.“심은하, 우리 아직 이혼하지 않았어.” 제현은 은하의 얼굴에 나타난 미세한 변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들어 그녀의 턱을 움켜잡았다. 그는 짙은 어둠을 띤 눈과 이가 갈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는 날 죽은 사람 취급하는 거야?” 조금 전 수아가 보여준 사진이 머릿속을 스치자, 제현은 눈앞에 서 있는 여자를 당장이라도 목 조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심은하, 당신 정말로 나에 대해 눈곱만큼도 신경 안 쓰는 거야?’은하는 그의 말에 황당함과 분노가 솟구쳤다. 제현의 손을 단호히 뿌리치며 차가운 목소리로 제현에게 말했다. “우리 이혼은 이미 정해진 결말이잖아요! 지금 와서 또 왜 이러는 건데요?!” “할아버지도 신경 쓰지 않는 거야?” 제현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조 선생이 한 말 잊었어? 만약 할아버지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당신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어?” 그의 말은 노골적인 도덕적 압력이었다. 진강산의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제현은 은하가 한발 물러서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당신과 함께 여기에서 지내겠다고 했잖아요!!” 은하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제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 “오늘 부모님 앞에서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은 이유도 할아버지 때문이었

    Last Updated : 202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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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40화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유미수의 얼굴에는 거의 주름이나 기미 하나 없었다. 다만, 말 할 때마다 가끔 드러나는 그 음흉함은 숨길 수 없었다. 은하는 유미수의 위협을 충분히 이해했지만, 감정을 억누른 채 의연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곧은 자세는 마치 꺾이지 않는 소나무처럼 강인해 보였다. “사모님, 이런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나 통하겠죠. 하지만 저는 여전히 제 동생이 잘못한 게 없다고 믿습니다. 반대로 아드님은 어땠나요?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며 학교 내에서 폭력을 저질렀죠. 사모님께서 아드님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다면, 우리 시에도 소년 보호시설은 있습니다.” 은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미수의 평온했던 표정이 일순간 깨지는 것을 보자, 은하는 차분히 차에서 내렸다. 이번 대화는 겉으로 보기에 은하가 이긴 듯했다. 그로부터 30분 후 태하가 나오자, 은하는 동생과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요즘 학교에서 누가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어?” 태하는 책가방을 옆으로 던지고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요즘 완전 평화롭다니까. 지난번 대회는 놓쳤지만, 선생님이 다른 시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가라고 추천해 주셨어. 요즘 그거 준비하느라 바빠.” 태하의 성적은 늘 우수했으니, 은하도 동생에 대해 별다른 걱정은 필요 없었다. 게다가 얼마 전 태하가 학교에서 뛰어내린 일이 있었던 탓에, 선생님들은 혹시 또 다른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태하를 각별히 신경 쓰고 있었다. 그 덕분에 임재욱 역시 함부로 태하를 건드릴 틈을 찾지 못했다. 태하의 최근 학교생활을 전해 들으며, 은하는 잠시나마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유미수의 경고는 여전히 은하의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설령 자신이 협박과 위협에 시달린다 해도 상관없지만, 태하만큼은 결코 잃을 수 없는 존재였다. 태하는 은하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었으니까.“태하야, 물리 공부에 그렇게 관심 많으면, J 시에 있는 전문 학원에 다녀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9화

    일에 대한 걱정 외에도, 은하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일이 떠올랐다. 카메라 앞에서는 오늘 수아가 일부러 넘어진 상황이 수아의 자작극이고 자신은 결백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었다. 지금은 회사 직원들만 오늘의 일을 알고 있지만, 만약 그 영상이 유출된다면 은하의 커리어는 이대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은하는 바로 광수에게 물었다. “카메라 메모리 카드 좀 볼 수 있을까요? 안에 유용한 자료가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요.” 광수는 그녀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즉시 장비를 찾아 메모리 카드를 가져오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광수가 가져간 여러 대의 카메라를 모두 확인했지만, 오전에 녹화된 영상이 들어 있는 메모리 카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은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간 편집장이 자신을 배제하고 해당 칼럼 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 한다는 점이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퇴근 후, 은하는 기운이 없었다. 그때 동생 태하의 전화가 걸려 왔다. [누나, 오늘 저녁에 집에 와서 나 밥 좀 해줄 수 있어?] 며칠간 정신없이 바빠 동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탓에, 태하는 주로 밖에서 끼니를 때우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태하의 외로운 모습을 상상하자 은하는 동생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스며들었다. 어차피 지금 회사에 남아 있어봐야 할 일은커녕, 밤낮없이 준비한 자료가 다른 이의 공로로 돌아갈 게 뻔한 상황이었다. 그런 판에 굳이 붙잡혀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은하는 시계를 확인했다. 마침 태하가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대라는 걸 깨닫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동생을 데리러 직접 나서기로 마음먹었다.학교 앞에는 이미 많은 학부모가 차를 세우고 자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고급 차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은하는 조용히 길가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차창이 반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8화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은하의 가슴은 여전히 미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가득했다. ‘수년간의 내 진심이 진제현에게는 그저 한낱 거품이었구나.’ 현장 분위기가 점점 심상치 않게 흐르자, 한 직원이 다가와 은하를 조심스레 붙잡으며 설득했다. “은하 씨, 오늘 우리 여기 일로 온 거잖아요. 절대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안 돼요.” 그 말에 은하는 속으로 씁쓸히 동의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일을 하면서 억울한 일이 생겨도, 결국 이를 악물고 참아내야 하는 게 현실이니까.’ 깊은 한숨을 내쉰 은하는 이 모든 감정을 꾹 눌러 담으며, 차분히 참아내기로 결심했다.그런데도 제현의 눈빛은 그녀에게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은하가 더 이상 경찰에 신고할 기색이 없자, 제현은 그녀의 핸드폰을 돌려주며 수아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남겨진 회사 직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머뭇거렸다. “그냥 우리도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라이브로 예정되었던 인터뷰가 모두 녹화로 바뀌어 있었고, 회사로 돌아온 뒤에는 편집장이 모든 팀원을 편집장실로 소집했다. 편집장실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고, 이번 인터뷰 실패에 대한 편집장의 분노는 가라앉을 기미가 없었다. “심은하 씨!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을 이렇게 만든 거예요? 잘 진행되던 인터뷰를 엉망으로 만들다니!” 편집장은 두꺼운 기획서를 책상 위에 내던지며 큰소리 쳤다. 주변 직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꾸중을 듣는 분위기였다. 촬영을 맡은 광수도 꾸중을 면치 못했다. 그가 라이브를 녹화로 전환했던 사실이 밝혀졌고, 연말 보너스 절반이 삭감되는 징계까지 받았다. 큰 사건을 수습한 후, 주간 편집장의 사무실을 나오는 직원들의 분위기는 한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은하는 맨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며 진광수를 불렀다. 은하는 오늘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제안 때문에 징계를 받게 된 진광수에게만큼은 사과하고 싶었다. “광수 씨, 오늘 일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7화

    은하는 이런 비난과 지적에 냉담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임수아 씨, 참 대단한 연기네요. 아카데미상에 도전하지 않는 게 아쉬울 정도예요.” 상황을 자작극으로 해결하려는 수아의 의도는 완전히 빗나갔다. 아무리 누명을 씌우려 해도, 은하는 절대 이런 수아에게 사과하지 않을 것이었다. 은하는 주위에서 구경하는 동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위에서 바닥에 넘어져 있는 수아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아까 본인이 일부러 넘어진 것도, 커피를 자신에게 부은 것도 모두 당신이 한 일이잖아요. 저에게 덮어씌우려면 확실한 증거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수아는 억울한 척하며 말했다. “방금 그 장면 다 촬영됐어요. 라이브로 본 관객들이 다 지켜보고 있었을 거예요.” 그 말이 힌트라도 된 듯, 주변 사람들이 놀라며 말했다. “우리 장비 아직 켜져 있었던 거 아니야?” 이런 일이 라이브로 나갔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스태프들이 급히 촬영 장비를 점검했다. 수아는 그런 상황을 보고 입꼬리를 올리며 은하를 바라봤다. 그러나 이내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라이브 장비가 꺼져 있잖아?” “이건 라이브가 아니라 녹화였어!” 수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미 라이브 형식 인터뷰가 수아의 제안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은하는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 함께 일하며 친분이 있는 카메라 감독 진광에게 부탁해, 라이브를 녹화로 전환해 놓았다. 은하는 담담하게 말했다. “방금 촬영된 화면은 임수아 씨가 넘어지는 장면만 찍혔을 텐데, 그게 제가 당신을 밀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그 순간, 카페 직원 한 명이 나서며 은하를 겨냥했다. “촬영이 안 됐다는 것이 당신이 안 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잖아요. 우리 사장님을 질투해서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라고 보는데요?” 그때, 전화를 끝내고 돌아오던 제현이 이 상황을 목격했다. “무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6화

    “죄, 죄송합니다. 방금 한 말은 그냥 농담이었어요.” ‘다분히 고의적인 악담이 이런 사과 한마디로 끝나는 거야?’ 은하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이 오늘 처음 배치돼서 제 업무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은 거 알아요. 하지만 괜찮아요. 앞으로 함께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익숙해질 겁니다.” 그 말에 험담하던 직원들은 은하가 정말 화해를 뜻하는 건지, 아니면 속으로 가만두지 않겠다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 수아는 그런 상황을 오히려 속으로 즐기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단순한 오해였던 것 같네요. 심 기자님, 절대 화내지 마세요.” 은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수아가 건넨 커피를 받아 들며 말했다. “그럼 감사히 마실게요. 고맙습니다, 임수아 씨.” 그녀는 커피를 들고 촬영 장비가 있는 자리로 걸어갔다. 하지만 수아가 이렇게 쉽게 물러설 리 없었다. 그녀는 은하의 뒤를 따라오며 한마디 던지려고 했다. 수아는 녹화 장비의 빨간불이 깜박이는 것을 힐끗 보더니, 눈빛이 살짝 변했다. “심 기자님, 방금 동료들의 말이 저는 아주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예쁘게 하고 다니니 남자들이 마음을 뺏기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은하는 수아가 숨긴 의도를 바로 알아채고, 손에 든 커피를 한쪽에 내려놓으며 비웃었다. “혹시 임수아 씨는 자기 외모에 별로 자신감이 없어서 남자의 마음을 붙잡지 못하는 건가요?” 수아는 외모에 대한 지적을 듣고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녀는 원래 자기 외모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자, 수아도 더 이상 온화한 척하지 않고 본색을 드러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와 제현이는 오랜 시간 알고 지냈어. 당신 말 몇 마디로 뺏을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야. 당신도 남자들의 관심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 왜 꼭 진제현이어야 해? 지난번에 날 죽음으로 몰아넣지 못해 아쉬웠나?” 수아는 눈물까지 글썽이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5화

    은하의 반응에 오히려 제현은 은근한 즐거움을 느끼는 듯했다. 그의 입가에 비뚤어진 웃음기가 살짝 번지며, 눈가에 희미한 장난기가 어렸다. “물론이죠. 나도 심 기자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테라스는 습지 공원에 자리 잡고 있었고, 은하 팀의 팀원들이 목재 산책로 위에 유럽풍의 심플한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해 마주 앉았다. 은하는 카메라를 잡고 있는 동료에게 손짓을 보냈고,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일할 때 은하는 프로답게 누구보다도 집중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최근 제현이 진행한 여러 사업을 중심으로 꼼꼼히 질문하며 제현의 답변을 끌어냈다. 초반에 제현은 성실히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제현의 대답은 묘하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서구 상권 개발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다양한 시설이 통합된 쇼핑몰을 갖출 예정이니, 그때 심 기자도 한 번 체험해 보시면 좋을 겁니다.” 은하는 순간 미세하게 멈칫했지만, 제현의 말 뒤에 덧붙여진 문장은 무시한 채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인터뷰 내내 제현은 질문에 성실히 답하는 듯했으나, 끝에는 꼭 대화를 은하와 연결하려 했다. 그런 제현의 모습은 수아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멀찍이 서서 대기하던 수아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은하도 승자의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자신은 결혼 생활에서도 승자가 아니었다. 촬영 담당 스텝이 손짓을 보내며 중간 휴식 시간을 알렸다. 수아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다가와 직원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 카페에서 준비한 커피와 디저트 드시러 카페로 가세요. 편히 쉬면서 마음껏 드시면 좋겠습니다.” 무료로 다과를 대접받은 직원들은 고마워하며 카페로 이동했다. 누군가 은하에게 함께 가자고 권했으나, 그녀는 부드럽게 거절했다. “인터뷰 내용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해서요.” 제현은 인터뷰를 마치자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4화

    은하는 죽 그릇을 건네기 전에 고개를 들어 제현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은은한 빛이 번졌다. “왜 갑자기 라이브 형식의 인터뷰를 하겠다는 거야? 평소 당신 스타일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데.” 제현은 오랜만에 맡는 죽의 익숙한 향기에 약간 안정감을 느꼈다. 그러나 죽을 먹기도 전에 그는 은하의 말을 듣고 이마를 찌푸렸다. “남편으로서, 네 인터뷰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면 안 돼?” 은하는 냉소를 지으며, 뜨거운 죽이 담긴 그릇을 제현의 손에 직접 쥐여주었다. “임수아가 시킨 게 아니라면, 당신이 이런 형식을 생각해 낼 리 없지. 또 무슨 의도가 있는 거야?” 제현은 죽의 뜨거운 온도에 손을 뎄지만, 은하가 일부러 그러는 것을 알면서도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제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이미 경고했잖아. 윤씨 가문은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왜 말을 안 들어?” ‘이 남자는 늘 이런 식이야!’또다시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제현의 태도에 은하의 눈빛이 점차 어두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됐어. 더 할 얘기 없어.” 은하는 말을 마치자마자 제현을 지나쳐 주방을 나섰다. 밤은 점점 깊어져 갔고, 주방의 적막함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제현은 식은 죽을 바라보며 손도 대지 않았다. ...은하는 항상 일에서는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제현의 인터뷰가 예정된 날, 은하의 팀 스텝들은 제현과 사전 조율을 마치고 인터뷰 장소를 카페의 뒤편 테라스로 정했다. 적당한 온도와 날씨에 녹음이 가득한 카페의 테라스는 원래 딱딱한 경제 인터뷰를 보다 부드럽고 흥미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배경이었다. 은하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사전에 현장을 직접 둘러보았다. 하지만 조사를 마친 뒤, 그 카페의 투자자 목록 중 한 사람이 임수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은하는 이번 인터뷰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임수아가 무언가 음흉한 계획을 세우고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3화

    은하는 집 안에서 걷기 힘든 태하가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정리한 뒤, 그를 방에 두고 나왔다. 거실에 나와 보니 제현과 세준 둘 다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핸드폰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아래층 주차장에서 기다릴게.] 제현 특유의 간결한 문장이었다. 오늘 은하는 몇 차례 제현을 도발했고, 결국 태운 갈치를 억지로 먹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은하에게 이렇게 호락호락 넘어갈 리 없을 것이다. 은하는 메시지를 무시한 채 1층으로 내려가, 단지 입구에서 택시를 잡으려 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근처에서는 택시를 잡기 쉽지 않았다. 은하가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호출 앱에서도 택시를 찾지 못했다. 잠시 후, 검은색 차 한 대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가더니, 제현의 옆모습이 드러났다. 날카롭고 단정한 그의 이목구비는 지금 약간 느긋해 보였다. “내가 보낸 메시지 못 봤어?” 그의 목소리는 평온해 보였지만, 그 속에는 은하만 느낄 수 있는 불만이 감춰져 있었다. 은하는 남자의 기색을 읽고 경계심을 품었고, 마치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메시지? 못 봤네.” 제현은 냉소를 지으며, 그녀의 변명을 굳이 따지려 들지 않았다. “타.” 은하는 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가까이서 보니, 제현의 얼굴이 창백했다. 은하는 방금 제현이가 억지로 먹었던 그 갈치를 떠올리며, 속으로 짐작했다. ‘설마 그 갈치구이 때문에 속이 안 좋아진 건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는 마음으로, 은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병원에 가는 게 어때? 상태가 안 좋아 보여.” 제현은 사실 속이 몹시 불편했다. 몇 년간 힘들게 회복된 위장에 다시 탈이 난 것 같았다. 아까 그는 은하 집에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고, 지금도 통증을 참느라 이마에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제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병원에 갈 필요 없어.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2화

    태하는 방에서 나와 이어폰을 귀에서 빼며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거실에 앉아 있는 제현을 발견하자마자, 본능적으로 누나를 찾았다. 태하는 제현이 집에 온 것이 몹시 불쾌했다. ‘매형이 여기 웬일이지?’ 은하는 태하에게 제현이 온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동생과 시선을 잠시 마주치며 안심시키려 했다. ‘신경 쓰지 마.’ 은하는 제현이 가장 좋아하는 갈치구이를 그의 앞에 놓았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평소에 비해 지나치게 온화하고,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다. “이거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갈치 요리예요. 근데 주방에서 다른 요리에 정신이 팔려 깜빡하는 바람에 조금 오래 구워졌어요. 그래도 괜찮죠?” 모두의 시선이 그 새까맣게 탄 요리에 쏠렸다. ‘이게 갈치야?’ 그녀가 말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제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비웃는 듯 말했다. 은하의 이런 반항적인 행동은 처음이 아니었다. 제현은 곧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괜찮아. 네가 만든 요리는 뭐든 좋으니까.” 그의 대답에 말을 잘 하지 않던 태하조차 경외의 눈빛을 보냈다. ‘저걸 먹고도 탈이 안 나면 이상한 거지.’ 네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갈치구이를 제외한 다른 요리는 모두 맛있어 보였고, 향도 좋았다. 은하는 일부러 제현에게 갈치 한 조각을 집어주며 말했다. “한번 먹어봐요. 생각보다 맛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제현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은하의 겉모습은 부드럽고 온화했지만, 그 눈빛 속에는 교묘한 장난기가 숨어 있었다. 제현은 잠시 주저하더니 결국 그 갈치를 입에 넣었다. 모두가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제현은 옆에 놓인 물 한 컵을 들어 천천히 반쯤 마셨다. 그러나 입안에 퍼지는 짠맛에 그만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도저히 입에 넣고 삼킬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짠맛이었다. 그는 속으로 확신했다. ‘이건 분명 날 위해 ‘특별히 준비한 요리’군.’ 순간 떠오른 생각에 제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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