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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 화

작가: 찹쌀몽
바닥에 흩어져 깨진 유리 조각을 본 남자는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조용하던 병실 분위기는 한층 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병원에서까지 화풀이한다고 물건을 던지고 부수고... 도대체 언제쯤 철이 들 거야?”

‘화풀이? 이 사람이 지금 누구 얘기를 하는 거지?’

그가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문득 무엇인가 떠올린 듯 입술을 다문다.

한숨과 함께 터져나온 말이었다.

“아연이가 네 생떼 때문에 퇴원도 못 하고 있어. 오늘 안으로 사과하려 가지 않으면 그녀가 완전히 떠난다니까.”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나를 침대에서 끌어내리려 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손길을 피하며 외쳤다.

“누구세요?! 당신 같은 사람 모른다고요! 손대지 마!”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상처 부위가 다시 찢어질 것 같은 예리한 통증이 밀려왔다.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이설, 또 새로운 연기법이야?”

“연기라니요! 경찰 부를 거예요! 나가 주세요!”

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는 갑자기 내 어깨를 세게 움켜쥐었다.

“고이설, 더 이상 이러지 마. 진짜 화낸다!”

그의 손아귀 힘이 너무 강했다.

순간, 아직 다 붙지도 않은 내 뼈가 다시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통증에 극도로 예민한 체질이었다. 골절의 고통을 떠올리는 것조차 끔찍한데, 또다시 그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공포가 몰려왔다.

‘너무 무서워.’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하자, 내 입에서 제어할 수 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는 내 반응에 놀랐는지, 순간 움찔하며 손을 놓았다.

그 틈을 놓칠 수 없었다.

나는 침대 옆 간호사 호출 버튼을 미친 듯이 눌러댔다.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의사와 간호사들이 급히 병실로 뛰어왔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그들 뒤로 몸을 숨기고,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제발... 경찰 좀 불러 주세요.”

내 말을 듣자마자 남자의 눈썹이 짙게 찌푸려졌다.

“고이설,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도, 나를 아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이 위험한 남자를 경찰이 끌고 가는 것이었다.

나는 의사를 향해 거듭 경찰을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남자의 눈빛이 점점 짜증으로 물들었다.

“고이설, 제발 그만 좀 해.”

그는 한숨을 쉬며 의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집사람이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저는 법적으로 이 사람 남편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이 말도 안 되는 소란 좀 멈춰주세요.”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뭐? 저 남자가 내 남편이라고?’

너무 황당해서 머리가 하얘졌다.

‘대체 무슨 헛소리야?’

경찰이 와서 신원을 확인한 결과, 그 남자는 진짜로 내 법적 남편이었다.

나는 경찰에게 다시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몇 번이고 확인해도 경찰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눈앞의 그 남자는 법적으로 분명 내 남편이었다.

나는 얼어붙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새하얘지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문득 내가 두 번째로 깨어났을 때부터 느껴졌던 ‘뭔가를 잊은 것 같은 느낌'이 떠올랐다.

난 세 살 때의 일까지도 다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결혼한 걸 모를 수 있지? 그럴 리 없잖아.

의사조차도 내 상태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워했다.

“다 기억하면서, 오직 나만 잊었다고?”

남자는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에는 우월감과 조소가 가득했다. 마치 내가 이 모든 걸 일부러 연기하고 있다는 듯이.

그 태도에 몹시 불쾌해졌다.

나는 그가 진짜 내 남편이든 아니든 일단 나가달라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내더니, 내 침대 위에 거칠게 던졌다.

“고이설, 진짜 대단해졌네!”

“병원 기록까지 위조해서 입원하더니, 이제는 아예 기억상실까지 연기하는 거야?”

그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아연이가 돌아온 뒤로 별의별 짓을 다 하더니, 이제는 기억상실까지 연극을 하는 건가?”

‘병원 기록을 위조해? 내가 꾀병을 부린다고?’

나는 어이가 없어 입을 열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언했다.

“분명히 말했잖아. 당신이 어떻게 굴어도,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다고.”

“그러니까, 헛수작 좀 그만 부려!”

“오늘 밤, 늦어도 오늘 밤까지야. 퇴원해서 아연이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시는 집에 돌아올 생각 따윈 하지 마!”

그렇게 말한 후, 그는 단 한 번도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은 채 병실을 나갔다.

그가 떠난 뒤, 의사는 나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빛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연민이 서려 있었다.

나는 두 달 넘게 사경을 헤매며 병상에 누워 있었지만, 법적 남편이라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나를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꾀병을 부린다고 몰아세우다니.

심지어 내가 병원 기록까지 위조했다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나는 의사의 동정 어린 시선을 외면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방금 전, 나는 처음으로 ‘내게 법적 남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 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그보다도 이해되지 않는 게 한둘이 아니다.

‘나는 세 살 때의 일까지 또렷이 기억하는데, 어떻게 내가 결혼한 사실을 모를 수 있지?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돼.’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생각할수록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아픈 걸 가장 싫어했다. 그래서 더 이상 고민하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아마도,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니어서 잊어버린 걸 거야.'

어릴 때부터 내 머릿속에는 나에게 중요한 사람만 저장되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나 일들은 애초에 기억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 시간이나 에너지를 쓸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그 ‘법적 남편'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가 중요한 건, 내 아픈 몸을 회복하기 위해 재활 치료에 집중하는 것뿐이니까.

하루 종일 재활에 몰두하던 저녁,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

[고이설,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와. 더 늦으면...]

수화기 너머 들려온 목소리는 다름 아닌 내 명목상의 남편이었다.

나는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뭐? 당장 돌아오라고?’

‘이제 와서 무슨 황제처럼 군다고?’

내가 사고를 당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죽든 살든 전혀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나에게 명령한다고?

처음부터 알았지만, 이 결혼은 애정과는 거리사 먼 철저한 '사업적 결합'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날 부리듯이 명령한다고?’

‘진짜 우습네.’

다시는 이런 쓸데없는 전화를 받기 싫었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순식간에 그의 번호를 차단 목록에 추가했다.

그리고 나서, 이제 막 내 손으로 물을 따르며 기분 좋게 컵을 들고 물을 마셨다.

반면, 심사언은...

내가 전화를 끊은 화면을 보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는 태어나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항상 그가 먼저 전화를 끊었지, 내가 먼저 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나는 처음부터 전화를 끊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언제나 심사언에게 애걸하며 매달리는 것은 내 쪽이었다.

[전화 끊지 말아 줘.]

[제발 내 얘기 좀 들어줘.]

[한 번만이라도 나를 보러 와줘.]

[...]

그러던 사람이 이번에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심사언이 직접 걸었던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심지어 그의 번호까지 차단해 버렸다.

심사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침에 병원에서 본 내 눈빛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정말로 나를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어하는 눈빛이었어...’

‘그리고, 그 여자의 병실에 놓여 있던 모든 병원 기록들...’

심사언은 괜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때,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언니는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요?”

남자를 바라보며, 소아연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어떡하죠? 내가 직접 가서 언니한테 다시 빌어볼까요?”

“다 내 잘못이에요. 내가 더 오래 버티고, 기절하지 않고, 언니가 맘껏 날 때리게 놔뒀다면, 언니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진 않았을 거예요...”

소아연의 죄책감 어린 목소리는 모든 책임을 자기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심사언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때릴 힘도 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야?'

“신경 쓰지 마.”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사람은 지금 제멋대로 날뛰는 중일 뿐이야. 지쳐서 더 이상 쇼를 못하게 되면, 스스로 돌아올 거야.”

“하지만...”

“하지만 같은 건 없어.”

심사언은 차갑게 말을 잘랐다.

“잘못한 건 네가 아니야. 다 고이설이 잘못한 거야.”

‘고이설, 끝까지 돌아오지 않을 배짱이라면, 어디 한번 끝까지 해보자고.”

소아연은 심사언의 눈빛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그의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오빠... 그럼, 그럼 제가 그냥 떠날까요?”

“제가 떠나면, 언니도 화를 덜 내고, 서로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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