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4 화

Author: 찹쌀몽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는 한 달 동안, 나는 가만히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나와 ‘내 법적’인 남편, 그리고 소아연 사이의 관계를 샅샅이 조사했다.

나는 심사언과 연애 끝에 결혼했고, 줄곧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믿어왔다.

그리고 심사언을 위해 가진 것을 다 쏟아부으며 창업을 도왔고, 남편의 건강을 더 잘 돌보겠다는 이유로 학업까지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런데 심사언은 날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했을 뿐이었다. 그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내 의붓동생, 소아연이었다.

소아연이 돌아온 뒤, 심사언은 우리 결혼기념일에 그녀와 함께 북극으로 오로라를 보러 갔고, 내 생일에는 그녀와 함께 D국으로 가서 낭만적인 벚꽃비를 맞았다.

심사언은 발런타인데이에 소아연에게 장미꽃이 가득한 저택과 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면서, 내게는 생색내며 그녀의 선물 살 때 받은 사은품을 던져줬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늘 하는 말은, ‘헛소리하지 마’였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나는 여전히 사랑에 눈이 멀어, 이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속이 다 문드러지면서도 여전히 남편을 위해 애쓰고, 차를 따라 주고, 물을 떠다 주고, 온갖 시중을 다 들면서, 그저 이 결혼을 지키려 했다.

결국 이번 납치도, 심사언을 해치려는 적들에게 내가 대신 붙잡힌 것이었다.

나는 남편을 지키려 목숨까지 내던졌지만, 그는 소아연을 위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날 죽음으로 내몰았다.

간신히 목숨을 건져서 돌아왔는데도, 심사언이 한 말은 ‘아연이에게 사과해’였다.

그는 진짜 인간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철저한 쓰레기였다.

그런 사람을 목숨 바쳐 사랑하던 어리석은 예전의 나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 남자를 위해 바닥까지 기고, 목숨과 존엄성마저 내팽개쳤다니...’

‘하지만 이제 와서 내가 저지른 바보 같은 짓을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

‘이제 저 걸레 같은 놈은 내다 버려야지.’

‘두 사람, 하나는 천하의 개쓰레기이고, 하나는 천하의 꽃뱀인 거야...’

‘진정 하늘이 내린 천생연분이니까 부디 영원히 함께해라.’

심사언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고이설, 또 헛소리야? 스스로 반성하라고 말한 지 석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감히 그딴소리를 내뱉다니!”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한 남자를 위해 모든 걸 바치고, 죽을 뻔하기도 했는데, 돌아온 게 고작 이런 대접이라니.

‘내가 아직도 반성할 줄 모른다고?’

“반성은 다 했어. 그러니까 직접 축하해 주려고 온 거잖아?”

그 순간, 심사언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었다. 조금 전까지의 다정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사랑과 무관심이 이토록 극명하게 대비되다니. 인제 그만 이 사람들을 놓아주자.’

이상하게도, 내가 심사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지금 당장 이 쓰레기 같은 남자를 버리고 싶을 뿐이었는데, 그 싸늘한 눈빛과 마주친 순간, 가슴이 또다시 아려왔다.

“언니, 제발 오해하지 마세요. 나랑 사언 오빠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방금은 그냥... 진실게임에서 진 거예요. 그냥 장난이라고요...!”

바람에 날아갈 듯 연약해 보이는 여자가 다급하면서도 나약한 모습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그 다급한 표정은 마치 내가 진짜 둘 사이를 오해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소아연이 내게 닿기 직전,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틀어 피했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나는 내 몸속에 있는 철판이랑 나사로 지탱하며 겨우 버티고 있다고.’

‘퇴원할 때, 병원에서도 신신당부했잖아. 완전히 회복되기 전까진 조심 또 조심하라고. 뼈를 한 번 더 다치면,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소아연, 지금 유리보다도 약해진 나를, 네가 그 ‘여리여리한’ 몸으로 들이받겠다고?’

입원하는 동안, 내 부모도, 오빠도, 남편도 한 번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지만, 이 의붓동생만큼은 자주 찾아왔다.

즉, 내가 어떤 상태인지 소아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언니, 내가 그렇게 싫어요?”

허공을 향해 던져진 소아연이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당장이라도 눈에서 뚝 떨어질 듯한 그 눈물은, 사람 마음을 애타게 했다.

‘아주 완벽한 연출이야.’

‘눈물 연기 하나는 기가 막히네.’

내 남편 심사언은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여자가 눈물을 흘리는 걸 보자, 원래부터 차갑던 얼굴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고이설, 오늘 아연이한테 사과하러 온 게 아니라면, 당장 나가!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남자의 목소리는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상위 포식자로서 살아온 자의 아우라가 단순한 말 한마디에 숨이 턱 막히는 압박감을 더했다.

‘이게 무슨 꿀 같은 소리야?’

‘사과 안 해도 되고, 앞으로 이 더러운 인간들을 안 봐도 된다고?’

고개를 들고,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와, 어쩜 이렇게 공교롭지? 마침 나도 사과하러 온 게 아니었거든. 그럼 난 간다.”

‘완벽해! 고이설, 잘했어!’

말을 끝내자마자 나는 바로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온 방이 순식간에 시체 안치실처럼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아쉬운 게 있다면, 딱 한 걸음을 내디딘 순간, 팔을 거칠게 움켜쥐는 손길이 나를 붙잡았다는 것이었다.

그 강한 힘에, 내 뼛속까지 파고드는 통증이 퍼졌다.

그리고 순간,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 씨... 이거 진짜 아프다고!’

“고이설,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

“아무리 그래도 정도를 알아야지!”

석 달 넘게 지속된 나의 ‘행패’에, 그리고 점점 더 도를 넘는 나의 태도에, 심사언의 말에는 본능적으로 짜증이 묻어났다.

나는 그런 심사언을 가만히 바라봤다.

‘아니, 내가 이 정도까지 말했는데도, 이 인간은 여전히 내가 떼쓴다고 생각하는 거야?'

‘진짜 머리가 나쁜 거야, 아니면 머리가 제대로 고장 난 거야?'

“그래? 내가 지금 그냥 떼쓰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한번 볼래?”

“뭘?”

심사언은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고이설이 하려는 말이,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절대 아닐 것 같아.’

나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지금 이혼해. 이래도 내가 장난치는 거 같아?”

그 말이 떨어지자, 룸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충격에 휩싸여 눈을 크게 떴다.

사람들이 내게 보내는 시선은, 마치 외계인이 내 몸을 점령한 것이 아닌지 묻는 듯했다.

‘뭐, 이해는 돼.'

‘예전의 나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심사언한테 이혼하자는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았을 테니까.’

찰나의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른 뒤, 곧이어 곳곳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고이설, 그렇게 말하면 사언 형은 진짜 너랑 이혼할 수도 있어!”

“정말로 가정법원 앞에 서게 되면, 무릎 꿇고 울면서 빌지나 마!”

“형, 저 여자가 저렇게 나오는데 뭐 하러 참아? 그냥 이혼해.”

“맞아! 사언 형, 그냥 끝내! 저 여자가 감히 먼저 이혼 운운하다니!”

“형이랑 헤어지면, 쟤는 다시는 형 같은 남자를 만날 수 없을 거야!”

“아니, 뭐 형 같은 남자는커녕, 나가서 몸을 팔아도 거들떠볼 남자나 있을까 모르겠네.”

“자기가 무슨 대단한 존재라고! 감히 이혼으로 협박을 해?”

“3개월이나 병원에 처박혀 있는 동안, 사언 형이 한 번도 병문안을 안 갔으면, 뭔가 깨닫는 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명인아, 웃기지 좀 마. 쟤 같은 애가 ‘자기 수준’을 알 리가 있냐?”

심사언이 나를 좋아하지 않으니, 그의 친구들도 당연히 나를 싫어했다.

나를 그저 심사언에게 달라붙어 질질 끌려다니는 하찮은 존재로 보며, 최소한의 존중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조롱 속에서, 심사언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고이설, 장난도 정도껏 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심사언처럼 생각했을 것이었다.

내가 이혼을 운운하는 것은 결국 단순한 심술과 투정이라고.

왜냐하면 내가 심사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 인간들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심사언이 단 하룻밤이라도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나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과호흡이 올 정도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매달렸다.

그런 내가 ‘이혼’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이 사람들이 비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 중에서, 오직 한 사람, 내 쌍둥이 오빠만은 나를 이해하고 있었다.

나와 함께 태어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에, 오빠는 다른 사람들처럼 비웃지 않은 채, 그저 믿을 수 없다는 듯 충격에 휩싸인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이설아, 너 왜 그래? 그 사람... 심사언이야.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잖아!”

오빠의 목소리에는 강한 불신과 당혹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목숨처럼 여기던 내가, 이제 와서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나는 오빠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심사언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 팔을 놓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심사언이 갑자기 비웃음을 터뜨렸다.

화가 나서 웃는 건지, 아니면 이제야 날 떨쳐낼 수 있어서 기쁜 건지 알 수 없었다.

“좋아, 아주 좋아.”

“고이설, 드디어 철들었네?”

“이혼? 그래, 하자.”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럼 이제 떠나면 되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서려는 찰나, 소아연이 또다시 울면서 내게 매달렸다.

“언니...! 사언 오빠...! 이러지 마요! 제발 이러지 마요!”

“언니, 나랑 사언 오빠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방금도 진짜 게임일 뿐이었어요!”

“제발, 이 일 때문에 이혼하지는 마요. 만약 언니가... 정말 날 믿지 못하겠다면...”

순간, 그녀는 테이블 위에 있던 과일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단숨에 그 칼을 자기 목에 들이댔다.

“내가... 죽어서 증명할게요!”

그 순간, 방 안의 모든 사람이 소아연에게 몰려들었다.

“아연아, 안 돼! 제발 그러지 마!”

“너 미쳤어?! 칼 내려놔!”

“저런 애한테 신경 쓰지 마. 패악질을 해도 정도껏 해야지!”

다들 소아연을 걱정하고, 말리고, 애원했다.

오직 한 사람... 나만이,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차갑게 내뱉었다.

“그래, 죽어.”

“네가 죽으면, 믿어줄게.”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5 화

    그 순간, 모든 사람이 나를 냉혈한이라고 욕했다. 사람들의 비난 속에서, 나는 나를 도발하는 소아연의 의기양양한 눈빛과 마주쳤다. 소아연이 우리 집에 들어온 이후로, 나는 그녀의 저 연약한 선량함 앞에서 번번이 패배했다. 소아연은 원래 자신에게조차 잔인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과거 나를 모함하기 위해 내 손을 붙잡고 스스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한 달 넘게 병원에 입원했을 때처럼.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쥔 칼로 자기 목을 그으려 했다. 만약 심사언이 빠르게 반응하여 소아연의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6 화

    나에게 뭔가 더 모진 말을 말하려던 엄마는, 내 말을 들은 순간 놀라 입을 다물었다. 내가 이렇게 엄마의 이야기를 순순히 받아들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엄마와 함께 나에게 벌컥 화를 내려던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의 나였다면 때려죽인다 해도 절대 이혼하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을 것이었다. 나의 뜻밖의 반응에 놀라 충격에 빠진 부모님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하지만 아직은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아서 움직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굳이 병원으로 가서 사과하라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7 화

    나는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 사람, 술에 취한 척하면서 나에게 무슨 수작을 걸 생각인가?’ 그런데 그의 반응은 그것보다 더 위험했다. “여보, 나 왔어...” 남자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곧장 나를 향해 몸을 던졌다. ‘미쳤어? 이 덩치가 나를 덮치면, 나는 진짜 뼈도 못 추릴 텐데!’ 나는 본능적으로 옆으로 몸을 틀어 피했다. 쿵! 허공을 가른 심사언의 거대한 몸은 바닥에 그대로 처박혔다. 충격에 바닥이 울렸다. “여보...” 비틀거리며 나를 향해 손을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8 화

    심사언도 속으로 아침마다 먹던 해장국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쯤이면, 고이설에게 적당한 퇴로를 열어줄 때도 될 것 같아.’ ‘그래, 너무 몰아붙이면 안 돼. 한 번쯤은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한참을 손을 뻗어 기다렸는데,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심사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리고 뭔가 이상해서 눈을 뜨자 깜짝 놀랐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내가... 왜?!’ 심사언이 손을 들여다보니, 유리 파편이 박힌 자국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내가... 왜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9 화

    그런데도, 그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내가 움직이길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 싸대기라도 한 대 후려쳐야 정신을 차리려나?’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꽉 쥐었다. 결국 심사언이 내 밥그릇을 빼앗는 순간, 나도 진짜로 그 위에 반찬을 다 엎어 버릴까 고민했다.하지만 나는 고민에서 그치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나는 접시를 들어 그대로 심사언에게 던졌다. 휙! 그가 빠르게 몸을 틀며 피했다. 밥그릇은 허공을 가르며 벽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다. 심사언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봤다.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10 화

    “나 당신한테 여러 번 말했어. 나랑 아연이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이혼으로 날 협박하지 마. 당신이 아무리 이혼을 들먹인다고 해도, 나는 절대 아연이를 해외로 보내지 않을 거야!” ‘똑같은 말을 또 하다니.’ ‘이제야 겨우 내가 진짜로 이혼하고 싶다는 걸 알았나 했더니, 결국 또 내 잘못이라고? 내가 이혼을 무기 삼아 협박하는 거라고?’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듣고 있자니, 나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참기 힘들었다. 나는 다시 한번, 아주 진지하게 심사언을 바라보았다. “심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11 화

    심사언의 격앙된 반응에 나는 비웃음만 나왔다. “됐어. 너희 둘, 그날 룸에서 키스까지 할 뻔했으면서, 아직도 아무 사이 아니라는 소리가 나와?”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심사언, 사실 당신은 이혼을 원하지 않는 게 아니야. 내가 준 재산의 반을 나눠 갖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코웃음을 쳤다. “너무 욕심부리면 안 되지. 당신은 여자랑 돈을 둘 다 갖고 싶어서 이러는 거잖아?” “게다가 이 회사는 당신 혼자 만든 게 아니야. 우리 둘이 함께 키운 거라고. 아니, 애초에 처음에는 내가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12 화

    “별거 아니야, 그냥 작은 상처야.” 심사언은 조용히 손을 빼고 소아연에게 선을 그었다. 소아연의 눈에 스치는 싸늘한 기운. 하지만 그건 한순간뿐이었다. 다시 심사언을 바라보는 소아연의 눈에는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걱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오빠, 우선 가서 손부터 치료해야겠어요.” “괜찮아. 널 먼저 송 교수님께 데려다줄게.” 내 부모님은 심사언이 소아연을 이렇게까지 챙기는 모습을 보고 묘한 감정이 스쳤다. 자신의 상처는 뒷전이고, 오직 소아연만 챙기는 모습. ‘하아... 그 일만 아니었으면, 사언이가

Latest chapter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111 화

    세상에는 친딸에게도 아랑곳하지 않는 엄마도 있지만,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 감수할 수 있는 엄마도 있었다.나는 박만화처럼 솔직한 엄마가 좋았다. 그리고 박만화 같은 엄마를 둔 딸이 부러웠다.“언니, 걱정 마세요. 제가 여기서 나가든 못 나가든, 언니가 딸과 평생 편하게 살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내 말이 끝나자, 박만화의 눈가가 붉어지며 울컥한 감정을 애써 참는 듯했다.박만화는 정말 좋은 엄마였다. 간신히 지켜낸 딸과 함께 정말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그래서 나에게 한가지 약속했다.“사모님, 여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110 화

    엄기준 변호사가 보석 절차를 처리하러 나간 후, 나는 다시 구치소 안의 생활실로 돌아왔다. 챙길 것도 딱히 없었고,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던 터라 그냥 자리에서 눈이라도 붙이려는 순간, 누군가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내 뒤엔 금속으로 된 수납장이 있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부딪치면 그 충격에 크게 다칠 수밖에 없는 거리. 하물며 온몸에 철심이 박힌 내 몸은, 한 번만 잘못 넘어져도 반신불수는 각오해야 했다.‘이대로 밀리면 끝이야.’나는 전혀 방심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나는 생각에 잠겨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109 화

    심사언은 내가 갑자기 그와 소아연을 이어주려는 듯한 말을 하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불쾌하게 말했다.“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나랑 아연이는 그런 사이 아니라고. 앞으로도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왜 자꾸 나랑 아연이를 엮는 건데?”‘왜냐하면, 당신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그 애니까.’‘그렇게까지 아끼고 지키는 모습이, 도대체 사랑이 아니면 뭔데?’‘우리 엄마 말대로, 사랑에 ‘과거’가 그렇게 중요하면, 이 세상에 다시 시작할 사랑은 하나도 없지. 옛날 황제도 새어머니랑 결혼했다는데, 너는 왜 못 해?’‘나더러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108 화

    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 심사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럴 수밖에 없었다.심사언이 말한 내가 소아연을 해친 ‘그 일’ 말고는, 나는 단 한 번도 누굴 해치거나, 도덕적으로 선을 넘은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내가 계속 물었다. “심사언, 우리는 8년이나 알고 지냈어. 사귄 건 7년이고. 그런데 당신은... 단 한 번도 내 됨됨이를 믿어주지 않았어.” “누가 영상 하나 들이밀자, 아무 확인도 없이,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했지. 그걸 보고 ‘이설이가 그랬을 거야’라고 확신했잖아.”“그렇게 쉽게, 나를 믿는 대신 의심을 택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107 화

    다음 날 아침, 구치소 직원이 와서 내 이름을 불렀다. 면회가 있다는 말에 나는 당연히 엄기준 변호사가 보석 절차를 준비해서 왔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면회실 유리창 너머로 나타난 사람은... 심사언이었다.심사언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눈가엔 온통 핏줄이 터져 있었고, 밤새 단 한숨도 못 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상태는 오히려 구치소에서 불안과 두려움 속에 밤을 보낸 나보다도 더 초라해 보였다.그는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잠시 망설이더니 곧 익숙한 목소리로 말했다.“하룻밤 지났으니까, 이제 생각 좀 정리됐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106 화

    엄마의 눈빛은 잠시나마 흔들렸다. 그제야 문득 떠올린 듯했다. 내가 엄마가 열 달 동안 품에 안고 세상에 낳은, 그 누구보다 가까운 ‘친딸’이라는 사실을.오빠의 시선은 그보다 훨씬 복잡했지만, 그 복잡함 속에 가장 도드라진 건 묘한 안도감이었다. 내가 구속되어 수년간 살아야 한다면, 그 순간부터 나는 그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인생이 된다. 완전히 다른 길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오빠는 그 사실에... 속으로 안심하고 있었다.결국, 나를 감옥에 넣은 건 내 친부모, 피 한 방울 다르지 않은 오빠, 그리고... 함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105 화

    아까까지만 해도 나를 감싸며 ‘공식 사과만 하면 된다’고 말하던 심사언조차 더는 그런 태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남자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지금이 마지막이야. 이 기회마저 놓치면, 감옥에서 나올 수 없을지도 몰라.”심사언이 그렇게 말했을 때는 이미 마음을 정한 듯했다. 내가 계속 버티고, 끝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나를 직접 법정에 세울 것이다. 소아연이 심사언의 아버지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을 때의 나이는 겨우 열아홉이었다. 한참 아름다워야 할 나이에, 인생이 무너졌다. 그 뒤로도 소아연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104 화

    “당신, 진짜 감옥 가고 싶어?!”나는 더 또박또박 말했다. “감옥에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는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어. 나는 법이 가장 공정한 판단을 해줄 거라고 믿어.”심사언은 내 말에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당신 정말 대단해. 증거가 눈앞에 이렇게 뻔히 있는데도, 아직도 아니라고 잡아떼?” 나는 냉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리고 당신... 혹시... 내가 한 짓이 아닐 가능성은 생각해 봤어?” “안 했다고? 그럼 영상 속 여자는 뭐야? 그게 본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영상 속 사람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103 화

    정말 모두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심사언과 나 사이의 상황이 한순간에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예전의 심사언은 성공한 뒤 백마 탄 공주 같은 첫사랑에게 잘해주고, 그와 함께 바닥부터 올라온 조강지처인 나를 무시하던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가진 거 다 내던지며 심사언을 도왔는데, 결국 돌아온 건 냉대와 외면이었다.그런데 지금? 심사언은 나를 미친 듯이 사랑하고, 내가 뭘 하든 무조건 감싸주고, 보호하는 남편이 되었다. 그렇게까지 망가뜨린 소꿉친구 여동생을 두고도, 나를 감싸겠다며 날 감옥에 안 보내려고 했다. ‘그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