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을 벗긴 포도를 받아든 이연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초설 씨는 나랑 습관 같은 게 되게 비슷해요.”“이상할 것도 없잖아요, 우리는 친한 친구니까.” 원아는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포도 껍질을 계속 벗겨 주었다.병실 밖.송현욱과 문소남의 손에는 각각 담배 한 개비가 들려 있었다.“일은 어떻게 처리되었어?”소남이 먼저 물었다. 만약 현욱이 송재훈을 상대하려 한다면 소남은 반드시 도와줄 것이다.송재훈은 아직 크게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야망이 얼마나 큰지 소남과 현욱은 다 잘 알고 있었다. 송재훈이 섣불리 움직일
현욱은 의심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소남은 병실 입구를 힐끗 보았지만 원아는 나오지 않았다.“원아는 줄곧 이연 씨를 걱정했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아가 이연을 찾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썼다는 것을 알았다.“줄곧 원아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은 배후에 세력이 원아에게 압력을 가했기 때문에 분명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의심해왔지. 그리고 아마 주변에서도 누군가가 원아를 감시하고 있었을 거야.”소남은 말했다. 어제 알렉세이가 돌아왔고 오늘 익명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에 소남은 원아가 알렉세이에게
이연은 현욱의 눈에 비친 걱정을 눈치채고 부드럽게 물었다.“지금 내 일로 고민하는 거죠?”송현욱은 이연을 바라보았다. 이연은 구출되고부터 자신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다 사라진 듯하다. 이 상냥함은 힘들게 얻은 것이다. 대신 그 대가로 그녀가 그런 힘든 일들을 겪어야 했다.현욱은 차라리 이연이 그런 경험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그저 자신이 그녀에게 조금씩 분명히 마음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면, 그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현욱은 손으로 그녀의 이마를 짚어 살펴보고 열이 없는 걸 확
소남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원아가 거리를 두기를 원했으니 자신도 계속 강요할 수 없었고, 제가 너무 다가가도 오히려 원아가 완전히 자신을 거절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핸드폰 벨이 울리자 그는 한 번 보고 옆에 있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에요?”원아는 그의 말투에서 아이들이 건 전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문소남은 상대방에 따라 전화를 받는 말투가 다르다. 원아의 전화를 받을 때는 온유하고 애정이 느껴지며, 아이들의 전화를 받을 때도 비록 엄격하지만 여전히 온유하고 다정하다. 문현만의 전
지금 채은서와 장인숙은 마치 시장에서 욕을 퍼부으며 싸우는 억센 아줌마들 같았다.장인숙은 문소남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순간 자신의 편이 돌아왔다고 느꼈다. 채은서가 입을 열기도 전에 울면서 하소연하기 시작했다.“소남아, 지금 이 집에 내 자리가 어디 있기는 한 거니? 나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차라리 이럴 거면 죽었으면 좋겠어.”장인숙은 자신의 불쌍함을 울며 하소연했다. 딱 봐도 소남에게 도움을 청할 태세였다.그러나 소남은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친분에 따라 편들지 않는 사람이라 바로 장인숙의 편을 들지 않고 먼저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채은서의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다. 만약 장인숙이 문씨 고택에 없다면 자기 마음은 더욱 편안해질 것이다.“채은서! 내가 진료 끝나고 나서 너의 그 입을 찢어버릴 거야!”장인숙이 악랄하게 외치면서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소남은 원아에게 눈짓을 했다.원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채은서는 계속 비웃었다.“이미 그렇게 망가진 얼굴을 진료받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그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들도 그 얼굴은 아예 회복할 방법이 없다고 했어. 지금 계속 진료받아봤자 시간 낭비 아닌가? 그럴 시간이
예성은 즉시 채은서를 끌고 위로 올라갔다.“됐어요, 엄마도 이제 좀 그만 하세요. 별장 쪽은 이미 인테리어가 거의 다 됐어요. 그때 되면 우리와 함께 이사 가시면 되잖아요.”채은서는 이 말을 듣고 버럭 화를 냈다.“야, 내가 이사 안 가겠다고 했잖아. 너도 가지 마. 여기가 네 집인데 어딜 가니!”예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직접 자기 어머니를 위층으로 끌고 데려갔다.아래층에 서 있는 소남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자기 어머니와 채은서는 원래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사이이고 오늘처럼 이렇게 소란을 피울 거라는 것도
소남도 바로 원아를 거들었다.“염 교수가 지금 어머니에게 하는 제안은 다 어머니를 위해서예요. 그러니까, 약은 염 교수가 처방해 드리지만, 드시든 안 드시든 그건 어머니의 선택이에요.”장인숙은 소남을 노려보았다. 불만스러웠다. 자기 아들인데 항상 남의 편이었다.“알았어, 약 잘 먹을게. 효과 없으면 그만 먹을 거야. 됐지?” 장인숙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소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원아 역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장인숙은 두 사람 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문득 한 가지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