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겠어?” 안드레이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도 몇 마디 말로 문소남과 원아의 관계를 이간질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더 할 말없으면, 먼저 돌아갈게요.” 원아는 몸을 돌려 방으로 향했다.안드레이는 자기 말 때문에 절대 낙담하지 않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독사처럼 음험하고 매서운 눈빛으로, 나중에 장나라가 사진을 보내왔을 때도 지금처럼 그렇게 도도한 모습일지, 지켜보기로 작정했다. 방으로 돌아온 원아는, 온몸의 힘이 빠지며 그대로 침대로 쓰러졌다.‘소남 씨…….’안드레이의 입에서, 그의 이름을 들
알리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방금 너무 무서웠는데, 다닐 선생님이 도와줘서 다행이에요…….”원아는 평온한 얼굴로 생각했다. ‘봐, 알리사가 또 다닐을 언급했어.’원아는 알리사의 속마음을 알고 있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 스며 있는 수줍음은, 열 아홉 살 소녀가, 다른 사람을 짝사랑할 때 나타나는 모습이었다.알리사는 더는 비밀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아가씨, 저보다 식견이 더 많으시니 물어볼게요. 다닐 선생님이,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
원아는 원래 그렇게 많은 말을 할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 남매를 아무도 인도하지 않으면, 밑도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뻔했다.그래서 그녀는 알렉세이가, 사각지대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이곳을 탈출하려면, 현재 상태로는 부족했다.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아가씨, 알겠습니다.”원아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알리사를 보면서 말했다.“너 먼저, 밥 먹으러 가. 시간을 놓치면 안돼.”알렉세이 역시, 아직도 울고 있는 알리사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아가씨와 누나의
원아는 너무 야윈 까닭에 조금만 자극이나 정신적 충격을 받아도 유산 가능성이 있었다. 때문에 다닐은 그녀를 신중하게 진료했다. 하지만, 안드레이는 뱃속 아이가 위험하다는 말을 듣고도 걱정하기는커녕 벽에 기대어 휘파람을 불었다.“얼마나 약하면 그만한 충격에도 견디지 못하지?”다닐은 무표정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는 원아를 바라보았다.“아이를 지키고 싶은 게 맞아?”“그럼, 당연하지!”안드레이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아이를 지키는 건 번거로운 일이 될 거야. 유산방지 치료를 자주 받게 되면, 산모의 몸도
문소남은 매서운 눈빛으로 장나라를 노려봤다. 장나라는 그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자신을 죽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 두려웠지만, 후회는 없었다.전날 밤, 그녀는 기회를 틈 타 안드레이가 준 약을 소남의 술에 탔다. 모든 일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소남은 술은 마신 후,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장나라는 소남을 호텔로 데려가, 안드레이가 원하는 사진을 찍고, 자신도 보관해 두었다. 그녀가 일부러 이런 일을 꾸몄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깨어난 소남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치 그녀
그녀는 자신이 피해자인 척했다. “정말로 내가 저지른 일이라면, 반드시 책임을 질 거야.”소남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당당히 말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 넌 더 확실한 증거들을 내놓아야 해.”“지금 오빠 말은, 제가 임신이라도 해야 믿겠다는 뜻이예요?”장나라는 소남이 이렇게 다루기 어려운 사람인 줄 몰랐다. 만약,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날 사진만 찍고, 바로 떠났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렇게 불필요하게 신경 쓸 일이 생기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는 귀신이라도 홀린 듯 그의 곁에 남고 싶었다.
문소남은 진지한 얼굴로 훈아를 바라보았다. 불빛에 비친 아들의 앳된 얼굴에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아빠에게는 아내가 한 명뿐이야, 너희에게도 엄마가 한 명뿐이고, 바로 원아 한 사람!”그의 마음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원아에게만 향해 있었다. 함께 있지 못할 때라도 그는 그녀를 생각했다. 쌍둥이가 태어난 후, 원아는 A시를 떠나 유학을 갔지만, 소남은 다른 여자를 만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평생 그 한사람만 바라고 사랑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아빠, 엄마를
장민찬의 말에도 문소남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장민찬 부부를 바라보았다. “집사님, 서재에 가서 책상 위에 놓인 검은 서류 파일을 갖다 주세요.”소남은 침착한 얼굴로 집사에게 지시했다. “네.”집사는 영문을 몰랐지만, 그의 지시대로 위층으로 향했다. “소남아…….”문 노인은 손자의 당돌한 행동에 당황했다. “할아버지, 저는 장나라 씨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에요. 뭔가가 있다면 장나라 씨가 제 몸에 해를 끼친 것뿐이에요.”소남은 냉담한 얼굴로 훈아를 품에 꼭 안았다.어른들의 대화를 들으면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