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남의 냉혹한 눈빛과 하객들의 수군거리는 소리에 영은은 그제야 이것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그 누구도 감히 자신의 약혼식에서 이런 시시한 농담을 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약혼식의 행복한 주인공이라고 여겼던 자신이 지금은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절망도 깊었다. 영은은 치맛자락을 힘주어 움켜쥐고는 소남의 앞에 섰다.“소남 씨, 우리 사이에는 갈등이나 다툼이 없었잖아요.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다 제 잘못이에요. 마음
호텔 예식장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사람들의 시선은 문소남과 임영은 두 사람에 쏠려 있었다. 표정에는 놀라움, 조롱, 동정, 분노 같은 것들이 섞여 있었다. 그때, 갑자기 임문정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빠르게 무대 중앙으로 걸어갔다.그는 화가 난 얼굴로 소남을 바라보며 날카롭게 말했다.“문소남 대표님, 당신이 정말 우리 딸에게 마음이 없었다면 미리 말하면 되지 않았습니까? 파혼에 대해서 따로 만나 상의하면 될 일을 이렇게까지 키우다니, 도대체 왜 그런겁니까? 무슨 다른 뜻이라도 있는 겁니까? 혹시 우리 임씨 집안과 우리 딸
임씨 일가가 떠난 후, 언론 기자들이 문소남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각종 질문이 이어지며 플래시가 끊임없이 터졌다.“문 대표님, 오늘 약혼식 취소가 문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우호적인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시나요?”“문 대표님, 임영은 씨와 대표님은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합니다. 약혼을 취소한 진짜 이유는 무엇입니까?”“문 대표님, T그룹은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늘 약혼식 취소로 차질을 빚을 염려는 없나요?”기자들은 손에 든 마이크를 소남에게 가까이 내밀려고 필사적이었다. 카메라는
소남은 검찰청에서 나온 기세가 등등한 검찰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그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남은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 “잠시만요! 문 대표님, 지금 당신은 초대형 뇌물 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 저희와 함께 검찰청에 들러 수사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젊은 검사 하나가 재빨리 소남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그러자 소남의 옆에 서 있던 동준이 나섰다.금테 안경을 쓴 동준은 부드럽게 웃고 있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날카로웠
“불효막심 한 놈 같으니라고! 이 나쁜 놈!” 병상에 있는 문 노인은 정신이 들자마자 TV에서 소남에 관한 부정적인 뉴스 보도가 쏟아지고 있는 것을 봤다. 그는 화가 치밀어 올라 간호사의 손에 든 약그릇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새까만 약물이 바닥에 엎질러졌다. 어린 간호사는 깜짝 놀란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다. “아버님, 의사 선생님께서 흥분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며느리 채은서는 시아버지를 달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를 비웃고 있었다.문씨 집안에 시집와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그
그런 대단한 집안에는 아무나 시집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권모술수를 쓸 줄 모르면 총알받이 인생을 피할 수 없어 보였다.채은서는 장인숙의 파렴치함에 치를 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분명히 자신은 문소남이 약혼을 거부한 것을 비꼬았지만, 그녀는 겨우 두세 마디 말로 주제를 자기 아들의 잘난 것으로 옮겨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는 정말 뻔뻔스러웠다. 채은서는 시아버지 침대 머리맡에 앉아 아이패드로 게임을 하는 아들을 보며 화를 냈다.“예성아, 너 지금 시장님 둘째 딸이랑 사귀고 있다면서? 내일 그 아가씨를 우리 문씨 고택
석양이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처럼 호수를 붉은빛으로 뒤덮으며 우뚝 솟은 고급 전원주택을 환상적으로 만들었다.원아는 인공 호숫가에 앉아 턱을 괴고는 호수에서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었다.간병인은 그 곁을 조용히 지키고 있었다.그때 익숙한 발소리가 들리며 고요를 깨뜨렸다. 원아는 키가 큰 소남이 역광을 받으며 다가오는 것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아직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못한 말투였다.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어요?”그는 최근 일이 바빠 한밤중이나 되어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접대하느라 술에 잔뜩
일행은 곧 회의실에 있는 남자가 T그룹 대표인 문소남이 아닌 중간 규모 회사의 책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살다 보니 이런 희한한 일도 있었다!어떻게 똑같이 생긴 남자가 이름까지 같을 수가 있을까?하지만 눈앞에 증거가 있으니 믿고 싶지 않아도 믿어야 했다.약 삼십 분 후, 경찰은 수갑을 찬 사 위원장을 회의실로 데려왔다.사 위원장은 오십 대 중반의 남자로 고위 간부로서의 기세는 여전했지만, 얼굴은 초췌했다. 눈에 생기가 없는 데다 살도 빠져 감옥에 있는 동안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은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