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날 밤, 문소남과 원아, 두 아이, 이렇게 네 식구는 설날 음식을 먹으면서 저녁 파티를 했다.사실 아까 문씨 가문 저택에서는 둘 다 많이 먹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 설날 축하 메시지로 둘의 휴대폰이 계속 울렸는데, 원아는 친지들과 동료들, 고객들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모든 사람에게 답장했다. 이런 것도 일종의 예의니까.귀찮았던 문소남은 친한 몇 명에게만 답장하고, 다른 아첨꾼들 및 자신과 억지로 친해지려는 사람들의 메시지는 무시했다.온 가족이 즐겁게 야식을 먹은 후 두 아이는 졸려서 일찍 자고, 문소남은 원아를 침대로
방송국 사회자는 A시에 겨우 10살인 딸이 백혈병에 걸린 늙은 부부가 있다는 사연을 소개했다. 한때 외동아들을 키우던 부부는, 소방관이었던 아들이 일을 하다가 목숨을 희생한 이후로 온종일 눈물로 지새웠다. 남편은 아들을 잃고 실성할 뻔한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의논하여 또 딸을 낳았으나, 평온할 줄 알았던 딸은 불행히도 백혈병에 걸렸다.오늘이 정월 초하루인데 노부부는 집에서 마른 식빵을 뜯을 수밖에 없었다. 쌀이 없어 죽도 해 먹지 못하는 상황이 이미 반년도 넘었다. 식빵도 할머니가 구걸해 온 것.연로한 노인들의 눈물을 머금은 소
좁은 방에서 원아는 노부인에게 말했다.“아이가 치료를 받는 게 먼저에요. 병은 일찍 치료할수록 좋잖아요. 더디면 병세가 전혀 나아질 수 없어요. 오늘은 정월 초하루이니 어쨌든 좀 가족끼리 즐거운 설날 보내셔야죠.”노부인이 감동하여 눈물을 줄줄 흘렸다.“사연이 나가고, 당신들만 와줬어요. 원래 아무도 안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세상에 이렇게나 선량한 사람이 있다니, 신이 당신들의 일생을 편안하게 돌봐주시길…….”노부부는 끊임없이 원아와 문소남에게 감사를 표했고, 원아도 몸둘 바를 몰라 끊임없이 그들을 위로했다.반대편 작은
송씨 가문 저택문소남은 소파의 등받이에 기대어 왼손으로 평온한 표정의 원아를 껴안고 오른손으로 길다란 잔을 든 채 나른한 모습이었다.연홍색의 술이 스며드는 석양빛 아래서 더욱 눈부시고, 그의 백옥 같은 손을 더욱 희게 보이게 한다.송현욱은 술꾼으로, 특히 와인을 좋아해서 전 세계 각지에서 와인을 수집하는 걸 좋아했다. 최근 영국의 백작친구에게서 상급 포도주 한 상자를 가져와서 맛보게 해주려고 문소남, 사윤 등 친구들을 초대한 것이다.하지만, 문소남은 술에 별 생각이 없었다. 술을 마시면 일을 그르친다고 생각하기 때문. 하지만
원아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문소남을 바라보았다. 원래 송재훈의 교통사고는 그저 천재지변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위적으로 발생한 거라니?옥처럼 정갈하고 겸손한 외모를 가진 이 남자가 모질게도 뒤에서 이렇게 행동할 줄이야.원아는 원래 문소남의 인맥과 힘을 빌어 송재훈에게 법의 처벌을 받게 하려고 했다. 그렇게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가 직접 사람을 고용해서 교통사고를 내다니. 방금 그가 송현욱을 대하는 침착한 태도를 떠올리자 원아는 불가사의했다. 송재훈은 송현욱의 친동생인데, 문소남은 그의 앞에서 예전과 다름없이 아무
송재훈의 절망적인 표정이 한순간 약간 놀람으로 변하며 사윤을 대하는 태도가 약간 좋아지긴 했지만, 이 허여멀건한 얼굴에 대해서 약간의 의심도 남아있었다.“너 의사야?”송재훈은 줄곧 옷을 바꾸듯이 여자를 바꿔가며 놀았다. 고급 외제차, 요트, 나이트클럽, 술집에서 어느 여자애가 더 잘 놀고 예쁜지, 그것 말고 그의 관심사가 또 있었던가?당연히 의학계에서 자자한 사윤의 명성을 몰랐을 것이다. 사윤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그를 내려다보았다.“그럼 가짜겠니?”“만약 네가 진짜 나의 병을 치료한다면, 어떤 조건이든 들어주지.”“어
하지윤은 원아쪽을 쳐다보다가, 원아의 청순하고 작은 얼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걸 느끼고 주먹을 꽉 쥔 차가운 얼굴에 질투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하 총감독님, 무슨 일로 저를 찾으세요?”원아가 미소를 지으며 우아하고 대범하게 인사했다. 무표정한 얼굴에 거만하게 치켜든 턱. 하지윤은 말없이 침착하게 원아를 훑었다. 이 여자, 뭔가 위험해.일찍이 문소남의 곁에 얼마나 많은 꾀꼬리와 제비가 둘러싸든,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문소남이 신체와 정신상의 이중 결벽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정복하려 하는 여자들
VIVI그룹과 합작한 도시 건설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후로, 원아는 매일 바쁘다. 원아를 걱정한 문소남이 혹시라도 너무 바빠서 몸이 견딜 수 없을까 봐 특별히 가장 쉬운 일을 주었지만, 기어코 자신의 본분을 다하여 수중에 쌓인 일을 완수하려는 그녀. 자신과 문소남의 특별한 관계가 공식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설계팀 직원들은 모두 속으로 알고 있었다. 원아가 반년 넘게 일하면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그녀를 그저 예쁜 꽃병이라고 여긴다. 그녀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일하는 것도 자신의 능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