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문예성은 문을 열고 책상 앞에서 서류를 열심히 뒤적거리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바로 그의 형 문소남. 난방이 켜져 있는 서재 안에서 그는 검은 셔츠만 입고 있었다. 검은 셔츠가 그의 성숙함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교차된 긴 두 다리가 매혹적이다. 문예성은 새삼 사람 간의 차이가 크다고 느꼈다. 자신이 남자가 아니었다면, 그도 형에게 반했을 것이다. 형은 일벌레여서 휴가 기간에도 여전히 일 처리를 하고 있다. 책상 앞에 30분만 있어도 괴로운 문예성과는 참 다르다. 과연 존경할 만한 우상.복잡한 시선을 감지한 듯 문소남은 고개
원아는 생일파티에서 한창 다른 사모님들과 잡담을 하는 주희진을 보았다. 머리를 올리고 군청색 비단 자수가 수놓아진 치파오를 입은 채 속삭이는 그녀는 우아함의 대명사 같았다. 솔직히 원아는 주희진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여성을 본 적이 없다. 고상하게 보이지만 다른 사모님들처럼 오만함이 없고, 친절과 부드러움 속에 위엄을 갖추고 있다.주희진이 임영은의 일로 자신과 날카롭게 대립한 적이 있지만, 왠지 모르게 원아는 마음 속으로 그녀를 싫어할 수 없었다. 오히려 알 수 없는 가까운 느낌마저 들었다.“임 사모님은 정말 복이 많으세요,
임영은의 도발에 원아는 다소 긴장하며 손에 식은땀을 흘렸다. 피아노를 전혀 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원아가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문소남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냉정한 표정이었다. 문소남은 원아의 손바닥을 주무르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 후, 임영은을 향해 눈썹을 치켜뜨고 말했다.“죄송합니다, 제 여자친구가 어제 손을 다쳐서 연주해 줄 수가 없네요.”말하면서 원아의 손을 잡고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어젯밤 원아가 쌍둥이에게 과일을 깎아주다가 실수로 검지 손가락을 베었고,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어젯밤의 사고가 마침 피아노를 벗어나는
원아에게 쏟아지는 홀 안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들으며, 임영은은 뻣뻣하게 하이힐을 밟고 화장실로 갔다. 도중에 몇몇 부잣집 자식들이 그녀에게 인사를 했지만 보지 못하고 오만하게 걸어가던 그녀는 그들의 잡담을 듣지 못했다.“임 도지사의 수양딸 주제에, 오만하기는!”화장실에서 임영은은 손을 뻗어 차가운 물로 자신의 뺨을 치며 정신을 차리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고, 거울 속의 이 험상궂은 여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눈물이 그녀의 눈가에 흘러내리는 순간, 갑자기 거울 속에 또 다른 거
홀 안의 고급스러움과 교양있는 말들. 상류사회의 우아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임영은은 한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소남의 냉엄한 잘생긴 외모는 신비로움을 띠고 있으며, 어머니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중앙에 서 있다. 글고 임문정 부부의 곁에 함께 있는 문소남과 원아. 이들이 마치 행복한 ‘네 식구’처럼 보인다.그 장면이 임영은의 눈을 괴롭게 했다. 그녀는 줄곧 문소남이 자신을 한번 봐주기를 기대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눈에는 원아만 있었고 그 다정한 시선은 옮겨진 적이 없었다.분명히 떠들썩한 분위기인데, 임영은은 오히려
이때, 근처에서 임문정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시로 이쪽 상황을 주시하던 문소남이 원아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대화를 마치고 왔다.슬림한 수제 양복을 입은 비교할 데 없는 완벽한 몸매를 보고, 임영은은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지금까지 본 어떤 남자도 그처럼 양복이 잘 어울리지는 않았는데…….문소남이 원아의 허리를 감싸고 이마에 뽀뽀를 하며 부드럽고 친절하게 물었다.“왜 그래요?”원아는 지금 이 순간 물에 빠졌다가 부목 하나를 발견한 사람처럼 즉시 마음이 안정되어 사실대로 말했다.“제가 몸이 좀 불편한데,
섣달 그믐날 밤, 문소남과 원아, 두 아이, 이렇게 네 식구는 설날 음식을 먹으면서 저녁 파티를 했다.사실 아까 문씨 가문 저택에서는 둘 다 많이 먹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 설날 축하 메시지로 둘의 휴대폰이 계속 울렸는데, 원아는 친지들과 동료들, 고객들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모든 사람에게 답장했다. 이런 것도 일종의 예의니까.귀찮았던 문소남은 친한 몇 명에게만 답장하고, 다른 아첨꾼들 및 자신과 억지로 친해지려는 사람들의 메시지는 무시했다.온 가족이 즐겁게 야식을 먹은 후 두 아이는 졸려서 일찍 자고, 문소남은 원아를 침대로
방송국 사회자는 A시에 겨우 10살인 딸이 백혈병에 걸린 늙은 부부가 있다는 사연을 소개했다. 한때 외동아들을 키우던 부부는, 소방관이었던 아들이 일을 하다가 목숨을 희생한 이후로 온종일 눈물로 지새웠다. 남편은 아들을 잃고 실성할 뻔한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의논하여 또 딸을 낳았으나, 평온할 줄 알았던 딸은 불행히도 백혈병에 걸렸다.오늘이 정월 초하루인데 노부부는 집에서 마른 식빵을 뜯을 수밖에 없었다. 쌀이 없어 죽도 해 먹지 못하는 상황이 이미 반년도 넘었다. 식빵도 할머니가 구걸해 온 것.연로한 노인들의 눈물을 머금은 소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