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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방문이 열리자 박 사모님이 문 앞에 서서 방안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방안에는 진아연이 무릎을 두 손으로 꼭 껴안은채 고개를 숙이고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녀는 망연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문쪽으로 돌렸다.

"아, 아연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니?!"

박 사모님은 진아연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아연아... 상태가 왜 이러니? 설마... 시준이가... 이렇게 만들었니?"

박 사모님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진아연은 며칠 전보다 많이 말라있었다.

얼굴에는 핏기가 조금도 없었고 입술은 메말라 거칠어 보였다.

오랜만의 사람의 온기가 느껴져서 그런가 가슴속부터 벅차올랐지만 소리를 낼 힘이 없었다.

이모님이 바로 따뜻한 우유 한 잔을 가지고 와서 건넸다.

"사모님... 어서 마시세요... 이제 박 사모님께서 오셨으니 다 괜찮으실 거예요. 얼른 음식을 가져다드릴게요..."

박 사모님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게 다 무슨 일이니? 시준이가... 설마 아연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고 한 거야? 어쩐지... 아연이가 갑자기 너무 말랐다고 했어! ... 아연이를 굶겨 죽일 셈인 거야?!"

진아연의 모습은 박 사모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녀는 재빨리 거실로 나가 아들에게 말했다.

"시준아. 아연이는 내가 어렵게 데려온 네 아내야. 근데... 네가 이렇게 아연이를 괴롭히면 엄마 마음은 어떻겠니?"

"잘못을 했다면 벌을 받아야죠.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제가... 그녀를 제 집에 두지 않았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함 그 자체였다.

"이틀 굶는 건 저 여자가 한 짓이 비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 여자는 마음대로 집안을 돌아다녔고. 선을 넘었는데 어떻게 그냥 둡니까?"

"뭐라고? 아연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박 사모님이 알고 있는 진아연은 착하고 눈치빠른 아이여서 절대 어리석은 행동으로 박시준을 화나게 만들고 그럴 사람이 아니였다.

박시준은 어머니의 말에 아무 대답 없이 가만히 있었다.

"... 시준아. 그래. 결혼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낳고 싶지 않다는 거 안다... 하지만 엄마로서 그런 널 그냥 둘 수 없어... 아연이는 착한 아이야. 네가 아연이를 좋아하라는 말은 아니야. 그저 너희 둘... 명의상 부부라도 좋으니 그냥 함께 있어주면 좋겠어!"

박 사모님은 이 말을 마치며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흘렸다.

말을 하면 할수록 숨이 가빠져 왔다.

박시준은 어머니에게 변명을 하려 했지만 어머니의 상태가 다시 안 좋아진 것을 느끼고 바로 경호원에게 어머니를 부축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 시준아,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한... 아연이를 내보낼 생각은 하지 말거라! 이혼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야... 아니면 네가 좋아하는 여자를 내앞에 데려오든가...엄마는 네가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꼴을 두고 볼수 없어! "

박 사모님은 부축을 받고 소파에 앉았지만 점점 더 어지러워졌다.

이 말을 끝으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30초 후, 박 사모님의 고개는 천천히 한쪽으로 기울었고 끝내는 소파에 털썩하고 쓰러졌다.

오늘 아침에 퇴원한 박 사모님은 다시 급하게 병원에 실려갔다.

박시준은 어머니의 태도가 이렇게 강경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화를 낼 줄은 예상도 못 했다.

진아연과의 이혼 문제는 빨리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진아연이라서 싫은 게 아니라 다른 여자라도 똑같이 대했을 것이다.

그래서 진아연과 이혼을 하기 위해 굳이 다른 여자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

방 안에서 진아연은 우유를 마신 뒤,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거실에서 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다 들었다.

박시준은 별말을 하진 않았지만 사모님은 그때문에 열받아서 쓰러지셨다.

이모님은 그녀에게 얼른 죽을 만들어 가져왔고 빗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빗겨주었다.

"사모님, 들으셨죠? 대표님께서도 사모님을 바로 내쫓으실 수는 없으실 거예요." 이모님은 그녀를 위로했다.

진아연은 이틀 동안 방 안에서 갇혀있으면서 생각들을 정리했다.

"전... 이혼할...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제는... 그가 싫다고 하더라도. 제가... 반드시 이혼할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일분일초라도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박시준! 악마 같은 사람!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이모님은 당황해하며 "사모님, 우선 먼저 뭐라도 먹고 이야기해요. 제가 나가서 상황을 보고 올게요."

이모님이 방을 나가려던 찰나, 거실에서 경호원을 밀치고 이쪽으로 오는 박시준의 모습이 보였다.

"대, 대표님. 사모님께서 지금... 상태가 좋지 않으세요."

박시준은 평소와 같은 무표정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보는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모님이 자리를 비키자, 경호원들이 휄체어에 앉은 그를 모시고 방문어구까지 갔다.

진아연은 고개를 들어 올리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둘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불꽃이 타닥-하고 튀었다.

"좋아요! 이혼해요! 박시준씨!" 진아연은 죽 그릇을 내려놓고 자신의 캐리어를 끌고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이미 그녀는 언제든 떠날수 있도록 만단의 준비를 했었다.

"당신이 좋아하는 여자랑 결혼하세요!" 그녀는 흥분하며 말했다.

박시준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 이 태도는 지금 네가 잘못한 게 없다?"

"아니요! 있죠! 잘못한 거라고는 제가 당신 컴퓨터를 사용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거죠!"진아연은 거친 숨을 고르며 "그래서 지금 이렇게 벌받았잖아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이혼 합의서는 준비되어 있겠죠? 없다면 제가 당장 가서..."

갑자기 자신에게 함부로 말하는 그녀를 보고도 박시준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내가 언제 벌이 끝났다고 했지?"

진아연은 마치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내 곁에 있는 게 고통스럽다면. 그래. 계속 박 사모님 소리 듣고 살게 해주지!" 박시준은 그녀와 상의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명령조로 이야기했다. "아, 물론 이혼은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는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진아연은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가 이혼하자고 하면 하는 거고, 안한다면 아닌 게 되는 거야?

설마 그녀 혼자 이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면서 땅이 거꾸로 움직이는 거 같았다.

그녀는 바로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오랜만에 침대에 누워서 그런지 흥분된 감정은 편안함에 쉽게 진정되었다.

아무리 박시준이라 할지라도 지금은 자신과 이혼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의 어머니 때문에 참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녀 역시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 사모님을 위해서라도 조금 기다려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일주일 후.

그녀의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

아침 식사 후, 혼자서 재검사를 하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어떤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의 아이가... 사라졌을 거란 예감 말이다.

박시준 때문에 이틀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스트레스 역시 엄청나게 받았기 때문이다.

분명... 아이 역시 극심한 스트레스와 영양 부족으로 버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의사는 그녀에게 다시 초음파 검사를 하자고 했다.

검사를 받는 진아연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 아기는... 잘못된 거죠...?"

의사: "왜 그렇게 말씀하시죠?"

"사실... 요즘 극심한 스트레스에...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질 못 했거든요... 그래서 아기도..."

의사: "아, 이틀 정도 안 먹는다고 해서 큰 문제될건 없습니다. 사실 입덧이 심한 경우에는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진아연은 긴장했다. "그럼 아기는..."

의사: "축하드려요! 자궁에 아기집 두 개가 보이네요. 쌍둥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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