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떠난 후 그는 주치의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 괜찮습니다. 오실 필요 없습니다."의사는 약간 당황했다. "박 대표님, 이미 가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가서 살펴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그는 전화를 끊었다.손을 들어 이마의 온도를 만졌다. 조금 뜨거웠다.진아연이 오기 전까지 그는 자신이 열이 나고 있는 것을 몰랐다.몸이 조금 불편하긴 해도 업무에 지장은 없었다.그러나 그녀가 온 후 그는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그는 침대에 누워 아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오늘 밤 일어난 일을 잊으려고 할 때마다 지성의 작은 얼굴이 떠올랐다.지성의 작은 얼굴과 밝고 호기심에 가득 찬 눈은 눈 부신 빛처럼 어두운 구름을 뚫고 안개를 흩어 버렸다.의사가 박시준의 집에 도착했을 때 박시준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의사는 그의 이마를 만져보고 체온이 너무 높다는 것을 확인한 뒤 곧바로 전자 체온계를 꺼내 그의 이마에 비추었다.디스플레이에 숫자가 나타났다. 38.9℃.일반적으로 체온이 38.5도를 초과하면 해열제를 복용해야 한다.박시준은 지금 자고 있어서 의사는 그에게 링거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다음 날 아침, 박시준은 눈을 떴다.그의 열은 내렸다. 몸의 무거움도 사라졌고 머리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시은의 사건 후 그는 매일 슬픔에 잠을 못 이뤘고, 긴 시간의 휴식 부족으로 두통을 앓았다.이번 감기는 그가 제대로 잠을 잘 수 있게 해주었다.잠을 잘 자고 나니 정신이 훨씬 맑아졌다. 기분도 이전처럼 우울하지 않았다.그는 이불을 젖히고 앉았다.침대 옆 탁자에는 주치의가 남긴 약과 메모가 있었다.메모를 집어 드니 위에는 약 복용 설명과 당부하는 글이 적혀있었다.그는 메모를 내려놓고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 커튼을 열었다.오늘은 눈이 내리지 않았다.마당의 눈도 곧 녹을 것처럼 보였고 황금빛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그는 몸을 돌려 욕실 쪽으로 걸어갔다. 샤워를 마친 그는 루즈한 가
이 아이가 박시준을 닮았기 때문이다.시은이가 아직 살아 있어 지성을 보게 된다면 지성이를 매우 이뻐해 줄 것이다.시은처럼 착한 사람이 어떻게 자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이 멀어지는 것을 참을 수 있을까?홍 아줌마는 이 말을 한 뒤 다이닝 룸에서 나왔다.박시준의 손에 든 숟가락이 죽 그릇에 떨어졌다.진아연은 오늘 지성을 데리고 B국으로 갔다.이렇게 급히 간 걸 보면 정말 화가 난 모양이다.그녀는 어젯밤 그에게 혼자서도 지성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지성을 데리고 B국에 간 것이다. 보지 못하면 심란해질 일도 없을 테니까.안도의 한숨을 쉬어야 하는데 왜 조금도 기쁘지 않을까?그의 마음속에는 심지어 바로 B국에 가 그녀를 찾고 싶은 충동까지 생겼다!다만 그는 이 생각을 금세 접어버렸을 뿐이다.그녀가 아이를 데려간 것도 어쩌면 좋은 일이다. 그러면 그에겐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식힐 시간도 충분해지니까....진아연이 지성을 데리고 B국에 간 건 일시로 결정한 일이었다.지성이는 아직 너무 어려 장거리 비행에 적합하지 않았다.그러나 그녀는 밤새 뒤척였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계속 박시준의 차가운 눈빛이 떠올랐다.그녀는 억울하게 비난을 받아도 되지만, 지성이까지 비난을 받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홧김에 올해는 B국에서 온 가족과 함께 구정을 보내기로 했다.그녀는 먼저 지성을 B국으로 데려간 다음, 구정 전에 마이크에게 한이와 라엘을 데려오게 해 모이기로 했다.집에서 한이든 라엘이든, 그리고 마이크까지 모두 그녀의 결정을 존중해줬다.그녀는 그들이 따라주는 것에 매우 감사했다. 그녀가 때때로 제멋대로일지라도 그들은 그녀를 너그러이 받아주었다.이번에 이렇게 갑자기 떠난 건 화가 났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환자를 다시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바로 그 시은과 혈액형도 같고 병도 같을 뿐만 아니라 외모도 조금 비슷한 남자였다.이 남자의 이름은 최운석이었다.구름 운자에 돌 석자. 이 두 글자를 조합하니 모순되면서
전에 미행을 당한 적이 있기에 한이는 바로 경계심을 높였다.그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김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이 휴대폰은 김세연이 선물한 것이다. 어린이 맞춤형 휴대폰이었고, 연락처에는 김세연의 개인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한이가 김세연에게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고 말하자 김세연은 즉시 경호원을 불러 한이가 차에서 내리는 곳에 보냈다.한이의 뒤를 따라오던 검은색 세단은 그가 차에서 내리자 그의 옆을 빠르게 지나쳤다!마치 미행이 아니라 그냥 같은 길이었던 것처럼."혼자 왔어? 경호원은 왜 안 데려왔어?" 김세연은 그의 손을 잡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김세연은 라엘을 데리고 회사의 연습실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다."곧 구정이라, 경호원 아저씨에게 휴가를 줬어요." 한이가 말했다."네 엄마가 알면 분명 걱정하실 텐데." 김세연은 잠시 생각한 뒤 그와 상의했다. "널 미행하던 사람은 네 옆에 지금 경호원이 없는 걸 알고 미행한 걸 거야. 네 옆에 경호원 2명 붙여줄게. B국에 가서 엄마랑 만나기 전까지 무슨 일도 생기면 안 되니까."한이는 경호원이 따라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가 지금 동생을 돌보느라 많이 힘든데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엄마가 얼마나 힘들지를 고려했다.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라엘이 오늘 춤을 배웠는데 그렇게 좋지 못할 수도 있어. 이따가 라엘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칭찬해주는 게 어때?" 김세연이 세심하게 물었다.정신을 딴 데 팔고 있던 한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자신을 미행하던 사람을 누가 보낸 건지 생각하고 있었다.강진인가? 하지만 강진은 지금 겁에 질려 모습을 드러낼 엄두조차 못 낼 건데.아니면 왕은지? 묘비 일은 그녀가 한 것이다. 그녀는 지성이 죽기를 간절히 바랐으니 그와 그의 여동생이 죽기도 바랐을 것이다.왜 박시준은 그녀를 처리하지 않았을까?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엄마가 어젯밤에 지성을 데리고 그를 찾아갔다가 오늘 아침 일찍 B국에 가기로 결정한 건 분명
한이는 라엘의 단호한 눈빛에 힘겹게 입을 열었다. "힘내."한편.박우진은 사무실 창가에 서서 현란한 불빛으로 물들어진 도시를 보고 있었다.사람으로 가득 찬 번화한 도심은 밤의 시작을 알렸다.평소라면 이미 퇴근하고 신나게 놀고 있을 그였지만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삼촌에 의해 회사가 파산되고 거액의 빚까지 짊어지게 된 지금자신의 어리석음에도 후회하지만, 더 많은 건 그에 대한 증오였다.박시준 조카라는 명의하에 아무 생각 없이 놀고 마음 편히 살아온 그를 죽이는 건 박시준한테 너무나도 손쉬운 일이었다.그래도 하나뿐인 아들이기에 아버지는 며칠 동안 계속 박시준에게 연락해 혈육의 정을 봐서 용서를 구하려 했지만, 박시준은 그의 전화를 실장에게 맡기고 끝까지 연락받지 않았다.박우진은 박시준의 무정함에 마음속은 오로지 증오로 가득했다!그를 위해 어머님도 돌아가신 마당에 잘 살아보려 했지만, 왜 이런 거액의 빚까지 짊어지게 하는 거지?이는 그를 죽이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웠다.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의 문이 열리면서 박한이 들어왔다."가자! 내일부터 이곳은 네 회사가 아니야. 네 삼촌이 무정한 것도 무정한 거지만, 넌 양심도 없는 어리석은 바보 자식이야! 내 아들만 아니었으면 나까지 이런 꼴이 되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너 같은 살인범도 감싸주지 않았을 거라고!" 박한은 차가운 모습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아빠, 저도 제 죄를 알고 있어요. 그래도 이미 엎이진 물이잖아요. 인제 와서 저를 원망해 봤자 무슨 소용일까요? 제가 이런 지경이 된 건 아빠의 잘못된 교육에도 책임 있어요." 박우진은 뒤돌아서서 박한을 보며 말했다.이에 박한은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부자 두 사람은 붉어진 눈시울로 회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고가정부는 이미 식사를 차려놨다.다만 입맛이 없는 박한은 그저 술만 마셨다."집이라도 팔자! 이건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이야. 집을 팔고 빚을 갚자. 그리고 네가 어떻게 살든 더는 신경 쓰지
박우진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그럼 삼촌이 진짜 정신병에 걸렸었어요?"박한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정신 질환에도 경증과 중증이 나뉘어. 네 삼촌이 진짜 병을 앓았어도 그때 이후로 단 한 번도 발작하지 않았어.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아무리 사업에 성공하셨어도 감정적인 측면을 보면 성공했다고 보기 힘들죠. 아연이는 삼촌과 이혼하고 아이의 입양권을 넘기지 않았어요. 두 사람 아무 감정 없을 리가 없잖아요? 혹시 모르지만 아연이는 삼촌이 병을 앓고 있는 걸 전부터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헤어진 게 분명해요!" 박우진은 자기의 추측을 알렸다.박한은 박우진 말에 깊은 생각에 잠겼다."아빠, 이제 저희한테 잃을 것도 없어요. 저희가 강주승 씨의 편을 든다고 삼촌이 저희한테 뭘 어쩌겠어요? 아무 재산도 없는 저희한테 더는 뺏어갈 것도 없잖아요! 저는 강주승 씨에게 협력할 생각입니다." 증오에 눈이 먼 박우진은 자기 결정을 알렸다.이에 박한은 술잔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강주승 씨한테 알려주고, 그리고 어찌할 생각이야? 네 삼촌이 자기 아버지를 죽였다는 걸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뭐 어쩌자는 거야? 그때 일이 벌어지고 네 할머니는 바로 나서서 보호했어. 할머니도 책임을 묻지 않았는데 누가 감히 이 일로 그의 죄를 묻겠어?" 박한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리고 너무 오래된 일이야!" 박한은 덧붙여 말을 이었다."아빠, 삼촌보다 약한 이유는 그만큼 마음을 독하게 먹지 않아 그런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박우진은 술을 따라주면서 말을 이었다. "지금 이런 추문이 터지면 강한 타격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강주승 씨도 삼촌의 약점을 찾으려 애쓰지 않았겠죠.""그래도 시준이는 내 친동생이야!""그래도 아빠의 아내를 죽이고 아들의 회사 파산까지 이르게 만들었어요! 그래도 친동생으로 여길 겁니까? 나중에 임종까지 지켜줄 거라 생각하세요?" 박한은 박우진의 말에 당황했다.30분
휴대폰을 보니 웬 낯선 번호로 문자가 왔다.그는 바로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시은 씨를 보내드렸습니다. 그녀의 요구대로 유골을 바다로 뿌렸어요. 박시준 씨에게 상처를 안겨줘서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전 속죄의 뜻으로 국내에 있는 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겠습니다. 위정 보냄.이를 악문 박시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한동안 가라앉힌 마음도 눈앞의 메시지에 전부 허투루 날아갔다!시은이가 죽었다. 이제 진짜 그의 곁을 떠났다!지성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걸었다!남에게 헌혈하라고 수년 동안 심혈을 다해 보호해줬던 동생이 아니란 말이다!휴대폰을 쥐고 있는 그의 손가락 마디는 하얘졌고 휴대폰 화면이 어두워지자 다시 밝게 눌렀다.그는 부보를 받아들이기 싫었지만, 위정이 보낸 메시지는 자꾸 눈에 거슬렸다.B국.진아연은 아이들과 지낼 곳을 마련하고 바로 최운석의 가족에게 연락해 빨리 만나려고 했다.이에 최운석의 가족은 그녀만 가능하다면 언제든지 집에서 만날 수 있다고 알렸다.진아연은 아이들을 이모님에게 맡기고 바로 최운석의 집으로 향했다.전에 최운석에 관해 자세히 묻지 않았지만지금은 꽤 관심이 많았다.최씨 저택에 도착하자, 최운석의 동생이 그녀를 대접했다."윤 아가씨, 혹시 가족분들이 전부 B국 사람이신가요? 혹시 A국은 가보셨나요?"이에 최운석의 동생은 어리둥절했다. "아버님이 A국 분이세요. 그리고 어머님은 B국 사람입니다.""그렇군요. 그럼 최운석 씨는요? 아가씨와 같나요?""진 선생님, 혹시 치료에 도움이 돼서 묻는 질문이신가요?" 최운석의 동생은 아무래도 사적인 일들을 알리기 싫은 듯했다."도움이 됩니다. 치료를 진행하려면 환자의 질병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병을 앓기 전에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진아연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버님이 답해드릴 겁니다. 저는 오빠의 일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최운석의 동생은 말을 마치자, 바로 아버지한테
왠지 모르겠지만, 최운석 부자와 시은이, 박시준 사이에 남모를 관련이 있는 듯했다.이런 관계는 사회적이 아닌 의학적인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진아연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에 깜짝 놀랐다!요즘 너무 피곤했나? 왜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는 거지? A국과 B국은 가까운 나라가 아니고, 최운석의 아버님이 A국 사람이라고 해도 박씨 가문과 관계있다는 걸 증명할 수 없었다.박씨 가문은 A국에서 가장 유명한 재벌 가문으로 가족 내의 관계가 복잡하지만, 박시준의 곁에 오랫동안 있었던 그녀로서 만약 이런 일이 있었다면 들어봤을 거다.하지만 시은이에 관한 것 외에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이때, 차가 별장 앞에서 멈추자 그녀는 바로 문을 열고 내려왔다.차에서 내리자 웬 익숙한 그림자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아연아!" 그녀는 진아연을 보자 바로 인사하며 뛰어왔다.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자 진아연도 얼굴에 미소를 보였다.다름 아닌 바로 여소정이었다.여소정은 퇴원 후 어머니와 함께 B국으로 왔고진아연이 지성이와 B국으로 왔다는 소식에 바로 그녀를 찾아왔다."내일 온다고 하지 않았어?" 진아연은 갑작스레 나타난 여소정 때문에 조금 놀란 듯했다.여소정이 오늘 찾아올 줄 알았으면 최운석의 집에 가지 않았을 거였다."난 지성이가 보고 싶어서 왔지. 우리 지성이, 정말 잘생겼잖아. 나중에 아주 여자들을 홀리고 다닐걸." 여소정은 그녀의 팔을 끌어안고 거실로 들어갔다.이에 진아연은 웃으면서 말했다. "여자를 홀리고 다녀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안색도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괜찮을 거야." 여소정은 아기침대 옆에 서서 지성이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아연아, 구정에는 다시 돌아갈 거야?""그럴 생각이야. 너는?" 진아연은 그녀에게 물었다."난 내년 봄에 계절 학습이 있어서 당분간 돌아갈 계획이 없어." 여소정은 아무렇지 않게 말한 듯했지만 눈빛 속의 슬픔은 감출 수 없었다.아무래도 전에 받은 상처 때문에 사람이 완전히
시은이가 살아있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대중에게 이들의 관계를 공개하지 않았다.박시준은 단지 그녀가 바깥세상의 방해를 받을까봐 이런 선택을 했을 뿐이다.진아연도 그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해 박시준은 시은이의 지적장애가 부끄러워 남한테 알리기 싫었다고 생각했었다.다만 그는 시은이를 싫어한 적이 없었고 조금이라도 그런 감정이 있었다면 시은이는 아마 오래전에 죽었을지도 모른다.이제 시은이가 세상을 떠났으니 누가 그녀를 해치고 괴롭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시은이의 장례를 차리려고 결정한 박시준은 모든 일에 직접 나서서 준비했다.소식을 들은 한이는 마이크한테 시은이의 장례식에 가고 싶다 알렸고마이크는 바로 조지운에게 연락해 갈 수 있는지 물었다."손님 리스트는 대표님이 직접 작성한 겁니다. 마이크 씨와 한이의 이름이 없어요." 조지운은 마이크의 부탁에 난처한 모습을 보였다.이에 마이크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연이의 이름은요? 혹시 아연이의 이름이 있으면, 저와 한이가 아연이를 대신해 갈게요.""없어요." 조지운은 단칼에 거절했다. "대표님은 회사 임원 몇 분과 오랫동안 협력해 온 고객 몇 분만 초대했어요. 진아연 씨뿐만 아니라 친구, 동창들도 초대하지 않았어요.""아... 한이가 마지막으로 시은 씨를 보고 싶어 하는데, 혹시 물어봐 주면 안 돼요? 혹시 안된다면 한이가 그를 아버지로 인정할 부분에 대해 꿈도 꾸지 마시라고 알려주세요. 시은 씨가 지성이 때문에 돌아갔어도 한이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 마이크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버럭 했다."알겠어요.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제가 지금 바로 물어볼게요."조지운은 전화를 끊고 물 한 모금 마시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한참 고민하다 그제야 박시준에게 연락했다.박시준이 전화를 받자 조지운은 한이가 시은이의 장례식에 참가하고 싶다는 의사를 알렸고 한이를 도와 입을 열었다."대표님, 시은 아가씨도 생전에 한이 도련님과 사이좋은...""그래." 박시준은 조지운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바로 동의했다
3년 후.A국, 공항.현이는 둘째 오빠와 함께 공항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3년이야 3년! 남자친구라는 사람 드디어 너 찾으러 오는 거야!" 박지성은 현이를 놀리며 얘기했다. "설마 너랑 헤어지러 오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3년 동안 못 만났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현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째 오빠, 저 지금 저주하시는 거예요? 비록 3년 동안 못 만났지만 매일매일 영상통화 하면서 서로 얼굴 봤거든요!"박지성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사이버 연애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현이: "어쨌든 이번에 A국에 와서 정착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제부터 다시는 떨어져 지내는 일 없을 거예요."박지성: "네 남자친구도 자존심이 너무 강해. 이따 아버지 만나고 얘기 얼마 나누지도 않고 다시 티켓 사고 도망치는 거 아니야?"현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현이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서은준이 캐리어를 끌며 출구에서 나오고 있었다.현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준을 향해 달려가 서은준의 품에 안겼다.이때 박지성은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진아연이 물었다. "아직 못 만났어?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박지성: "엄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에요. 금방 나왔어요, 지금 현이랑 껴안고 있어요! 우리 이제 곧 집에 갈 거니까 엄마랑 아빠도 마음의 준비 잘 하고 계세요."박 씨 저택.진아연은 통화를 마친 후 박시준에게 전달했다.박시준은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용모를 검사했다.진아연은 화장실 문 앞에서 지켜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거울 그만 비춰요, 충분히 멋있어요!"박시준: "여보, 좀이따 은준이한테 좀 엄격해야 할까?"진아연: "현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은준이도 현이 위해서 A국에 있겠다고 한데다 엄격하게 해서 뭐하려구요? 굳이 두 아이의 기분을 망쳐야겠어요? 은준이도 지금 어엿한
서 어르신은 진지한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꺼낼 줄 예상치 못했기에 차마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냐하면 진지한에게 돈을 달라고 할 계획이긴 했지만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어쨌든 진지한은 엄청난 부자였고, 적게 달라고 하니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였고 많이 달라고 하자니 거절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서 어르신은 한동안 망설인 후 진지한에게 말했다. "진 대표님 집이 A국에서 엄청난 부자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가 적당한지는 대표님께서 정하시죠! 저와 우리 아들에게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진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배유정은 그것을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금액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가 적당할지 가늠이 안 가네요. 굳이 저희더러 정하라면 돌아가서 저희 시아버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네요."서 어르신: "혹시 박시준 씨 말하는 겁니까?"배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희 시아버님 저희 남편보다 더 까다로울 겁니다. 입장 바꿔서 아버님이라도 따님을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 보내진 않을 거잖아요?"서 어르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해요. 그럼 그냥 우리끼리 얘기하죠!"배유정: "지금부터 고민해 보셔도 괜찮아요. 저희 요 이틀 동안은 여기 있을 거거든요."서 어르신: "알겠어요! 그럼 우선 연락처 먼저 교환하죠! 나중에 일이 있을 때도 서로 연락하기 편하잖아요."배유정은 진지한을 흘끗 보았고 그제서야 진지한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서 어르신과 연락처를 교환했다.병원.현이는 서은준의 곁에서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했다.서은준은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시신을 옮겨달라고 했다.현이가 서은준에게 물었다. "장례식 간단하게 치를 생각이에요?"서은준: "엄마 켠에도 친척들이 별로 없어."현이: "네. 그럼 어머니 계실 묘지부터 골라야죠?"서은준: "엄마가 전에 유골을 엄마 고향 연못에 뿌려달라고 했어."현이: "..."서은준: "엄마는 내
진지한: "그래요 그럼! 근처에 가까운 카페라도 갈까요."서 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요! 사실 우리 집이 바로 병원 근처에 있는데 한 번 가보실래요? 현이도 우리 집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었고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사이가 아주 좋았거든요."진지한은 배유정을 보며 말했다. "그럼 한 번 가볼래?"배유정: "좋아요!"서 어르신은 즉시 진지한과 배유정을 자신의 차로 안내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서 어르신의 집에 도착한 후 서 어르신은 즉시 하인들을 분부하여 과일과 디저트를 올리라고 했다.서 어르신은 집사를 가리키며 진지한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집 집사입니다. 예전에 현이 할머니도 집사가 뽑고 집에 들였죠."진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서 어르신은 집사에게 말했다. "이 분은 수수 친 오빠야, 유명한 대기업의 대표 진지한 씨."집사: "진 대표님, 안녕하세요! 수수 정말 괜찮은 아이였어요, 그때 우리 모두 수수를 많이 좋아했답니다. 전에 수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많이 속상했는데 사실이 아니라니 참 다행이에요! 수수는 정말 철도 들고 씩씩한 아이였어요, 제가 봤던 아이들 중 가장 씩씩한 아이에요. 수수가 잘 지내고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진지한: "전에 우리 동생 잘 챙겨줘서 고마웠어요."집사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별 말씀을요! 수수는 정말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어요. 매번 적극적으로 맡아서 일도 잘하고 정말 괜찮은 아이에요. 우리는 그때부터 수수가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나면 꼭 잘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진지한은 집사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서 어르신이 집사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내려가."집사는 즉시 물러났다.서 어르신은 진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현이가 우리 은준이랑 사이가 좋았다는 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현이를 은준이 곁에 안배했거든요, 그때 두 아이 나이가 비슷했기도 했고 서로 얘기도 잘 통할 거
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은준 씨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저 요 며칠 동안 언니 오빠랑 놀러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진지한: "괜찮아. 은준이 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우리도 놀 기분 아니야. 은준이 어머님 장례식 참석하고 돌아갈게."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지?" 진지한을 물었다.서은준은 현이의 남자친구자 현이 또래기도 하니 현이의 오빠로서 왠지 모르게 서은준을 도와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현이: "국내랑 비슷해요. 돈 많은 사람들은 거창하게 치르고 보통 사람들은 그냥 간단하게 치르곤 해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식은 따로 안 치르고 직접 무덤에 묻기도 하구요."진지한: "좀 거하게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해?"현이: "오빠, 은준 씨 어머님 장례식 치르는 거 도와줄려고요? 은준 씨 친척들도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거하게 안 치러도 돼요."진지한: "그래. 그럼 은준이랑 어떻게 할 건지 상의해 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현이: "고마워요, 오빠. 근데 안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장례식 치르는데 돈 많이 들진 않을 거예요. 은준 씨도 저희가 자기 어머님 장례식 도와주겠다고 하면 받지 않을 거예요."진지한: "그래 그럼! 가서 은준이 옆에 있어줘!"현이: "오빠, 그럼 오빠랑 새언니는...""우리 걱정은 안해도 되. 나 너희 새언니랑 밖에 나가서 좀 걸을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알았어요, 오빠."현이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병동을 나섰다.서 어르신은 병원 건물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지한과 배유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진 대표님, 저희 아들이 저한테 깊은 오해가 있어 현이까지 절 싫어하나 보네요. 사실 저 예전에 현이한테 정말 잘해줬어요." 서 어르신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현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집에서 일했었거든요. 그때는 현이를 키우던 할머니와 같이 우리 집 주방에
전화를 끊은 후 서은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현이는 서은준의 곁에 서서 물었다. "은준 씨, 왜 그래요?"서은준: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대.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 형님이랑 시간 보내야 될 것 같아! 난 병원으로 가야 될 것 같아."현이: "같이 가요! 어머님 방금까지 멀쩡하셨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두 사람은 진지한과 배유정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차를 잡으러 길가로 향했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두 사람이 급하게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당황스러웠다.배유정: "여보, 우리도 병원에 가봐요! 은준 씨 어머님이 돌아가셨나봐요."진지한: "그래."두 사람은 택시 한 대를 세우고 서은준이 탄 차를 쫓았다.병원.빠른 속도로 병원에 도착한 서은준은 함께 서있는 의사 선생님과 서 어르신을 보았다.서 어르신은 아첨하는 말투로 말했다. "은준아, 원래는 너희 엄마 보러 병원에 온 건데 내가 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 너무 안타깝구나!"서은준: "당신이 오기 전에 사망한 거 확실해요? 저도 오늘 왔었어요, 제가 왔을 땐 분명 아주 멀쩡했다고요!"서 어르신: "물론 다 사실이지! 못 믿겠으면 의사한테 물어봐!""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요!" 서은준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간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우리 엄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저 사람 오기 전에 돌아가신 거예요, 아니면 오고 나서 돌아가신 거예요?"겁에 질려 있는 간호인들 부들부들 떨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서 어르신은 분노에 가득 찬 어조로 간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묻고 있잖아요. 말해 보세요! 제가 여기 왔을 때 당신 어디 있는지 그림자도 못 봤는데 혹시 밖에서 놀고 있던 거 아니에요?"간호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오셨을 때 물 받으러 잠깐 병실에 없었어요. 아버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어머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번 달 비용은 받지 않을게요!"간호인은 말
서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당신 나 지금 무시하는 거야? 우리 서씨 집안이 지금 좀 상황이 안 좋긴 해도 T국에서 여전히 명망있는 가족 기업이라고! 은준이가 철이 없다고 당신까지 이렇게 무식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은준이 뒤에 내가 없었다면 박씨 집안에서 우리 은준이 거들떠 보기나 할 것 같아?"서은준의 어머니: "그 입 다무세요! 박씨 집안에는 당신처럼 속좁은 사람 없어요! 현이 가족들은 우리 은준이를 무시하지 않는다고요! 그니까 괜히 쓸데없이 그분들 귀찮게 하지 마세요!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괜한 짓 하지 말라고요!"서 어르신: "정말이야? 박씨 집안에서 정말 은준이를 반대 안 해? 어떻게 반대 안 할 수가 있지? 설마 은준이더러 A국에 가서 데릴사위라도 하라는 건가?"서은준의 어머니: "그러든 말든 당신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당신 여태껏 은준이 돌본 적 없잖아요. 이젠 은준이도 독립했으니 당신 도움 더 필요 없어요! 만약에 은준이 여자친구가 현이가 아니었다면, 현이가 박씨 집안 딸이 아니었다면 당신 이렇게 부지런히 저 찾아오지 않았을 거잖아요... 당신이 어떤 마음 품고 있는지 제가 모를 것 같아서 그래요?"서 어르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은준이 18살 때 당신이 내 곁으로 보냈잖아? 당신은 못 키우겠다고 나더러 키우라고 했잖아? 내 도움이 없었다면 은준이 저렇게 유학 다녀올 수 있었을 것 같아? 만약에 유학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능력있을 것 같아? 지금 저렇게 사업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덕분이라고!"서은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올라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은준이더러 대학 등록금 다 갚아주라고 할게요!"서 어르신: "이건 대학 등록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은준이 내 아들이야, 엄연한 내 피가 흐르고 있는 내 아들이라고!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은준이가 나중에 잘 지내던 못 지내던, 이 애비 떨쳐낼 생각은 꿈도 꾸지
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 지금은 안 가요. 저 신경쓰지 말고 당신 할 거 하면 되요."서은준: "여기 있어봤자 너한테 시간낭비일 뿐이야."현이: "저 그동안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생활도 열심히 했다고요, 잠깐 쉬겠다는데 뭐가 어때서요."잠시 후 진지한과 배유정은 호텔로 돌아왔고 네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서은준의 어머니는 현이의 오빠와 새언니가 오는 것을 몰랐기에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서은준의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으나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었다.현이는 전동으로 서은준 어머니의 병실 침대머리를 올려 주었다. "어머님, 저희 오빠랑 새언니 신혼여행 겸 여기 놀러 왔다 어머님이랑 은준 씨 보러 여기 들른 거예요."서은준의 어머니: "아이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현이를 알게 된 건 정말 우리 아들의 행운이에요..."배유정: "어머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은준 씨도 얼마나 훌륭한데요. 그렇지 않으면 현이도 은준이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서은준의 어머니: "듣기론 현이 집이 엄청난 부자라던데... 혹시 우리 은준이 반대하는 건 아니죠?"배유정: "어머님, 저희도 사람 됨됨이와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은준이랑 현이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두 아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라면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거예요."서은준은 어머니: "네... 정말 고마워요! 유일하게 걱정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게 바로 제 아들이에요. 현이네 집에서 우리 아들 너무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우리 아들이 자존심이 강하거든요..."진지한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서은준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어머님 아들 무시하는 일 없을 겁니다."현이는 오빠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깊은 감동을 받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서은준의 손을 꼭 잡았다.진지한은 병실에서 잠시 머물다 나갔다.현
현이는 긴장감에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서은준과 큰 오빠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얘기들을 다 꺼냈고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큰 오빠도 화를 내지 않았고 서은준 역시 화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사실상 이미 그녀의 걱정과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였다.하지만 현이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은준 씨, 좀이따 저희 남편이랑 병원에 가서 어머님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식사를 마친 후 배유정이 서은준에게 물었다.서은준: "좋아요."현이: "어머님께 미리 말씀 드릴까요?"서은준: "괜찮아. 이따 가서 직접 소개해 드리면 돼."서은준 어머니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고 휴대폰을 안쓴지 이미 오래 되었다.보통 간호인이 매일매일 서은준에게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보고하곤 하였다.배유정: "사업도 하느라 어머님도 챙기느라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텐데."서은준: "현이의 예전 생활은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어요. 현이도 무너지지 않고 씩씩하게 잘 버텼는데 저도 잘 이겨낼 겁니다."배유정: "하하! 둘 다 씩씩한 사람이라 좋네요. 지금이든 나중이든 어떠한 곤난도 두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예요."현이: "언니 정말 너무 좋아요! 언니는 정말 제가 봤던 사람들 중 저희 엄마 제외한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에요."배유정은 현이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진지한: "너희 언니가 이 말 들으면 서운했을 거야."현이: "언니는 당연히 다르죠! 제 마음속 언니는 부드러운 성격이 아닌 용감하고 씩씩한 슈퍼 히어로같은 존재니까요."배유정: "라엘이 성격에 슈퍼 히어로가 되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현이: "아무튼 언니는 절대 저와 이런 걸로 다투지 않을 거예요."배유정: "당연하지. 다들 배 부르게 먹었어? 다 먹었으면 오빠한테 계산하라고 할게."이 말을 들은 진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서은준도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계산할게요."현이는 애원하듯
현이가 말을 마친 후 서은준도 입을 열었다. "우선 열심히 일하고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될 때 다시 책임지고 싶습니다."진지한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사업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 그럼 사업이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혹은 계속 미지근하게 아무런 진전도 없으면?"서은준: "형님이 말하신 것처럼 사업에 실패하거나 아무런 성과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현이 고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진지한: "자기 분수는 잘 알고있네."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큰 오빠, 은준 씨 사업이 실패하거나 아무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다고 해도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돈 때문에 은준 씨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배유정은 다시 한 번 진지한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의 말이 심했다고 일깨워 주었다.다른 사람에게 차갑고 날카롭게 공격적일 순 있어도 현이에게 이렇게 공격적이진 못했다.현이 역시 자신의 말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느꼈는지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큰 오빠, 전 그냥 돈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그리고 저희 집 이미 충분히 돈 많잖아요. 아무리 돈 많은 상대를 찾는다고 해도 저희 집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예요. 어차피 우리 집보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면 돈이 많은 사람을 찾든 좀 적은 사람을 찾든 다 똑같잖아요."배유정: "현이 말이 맞아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고 두 사람의 감정이에요. 만약에 상대방이 서은준 씨보다 돈이 더 많지만 현이한테 잘하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에게 현이를 억지로 시집 보내는 건 아무 의미 없잖아요."진지한: "우리 집 조건만 봐도 현이한테 잘해주지 않을 남자는 없어."배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진지한이 말한 것 역시 사실이였기 때문이다.현이가 누구에게 시집을 가든 함부로 현이를 건들지 못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친정이 재력가인 힘이었다.현이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잘해주는 이유가 저희 집안 때문이라면 서은준 씨는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