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준이 술잔을 받아 들고는 차분하게 말했다. "괜찮아. 내가 술을 마신 걸 아연이가 알게 되더라도,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거야."조지운이 그의 옆에 앉아 물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보이세요.""오늘 아침에, 어떤 여자에게서 전화가 왔었어. 자기가 내 생모라더군." 박시준이 술 한 모금을 홀짝이고는, 기분이 가라앉은 이유를 꺼냈다. "최경규가 죽기 전에 그러더군. 내 생모는 무대 회장에서 술이나 따르는 술집 여자라고."조지운이 매우 놀라며 물었다. "그 여자가 왜 대표님께 연락한 거예요?""아직까지 최경규를 기억하고 있더군. 게다가 내 사진을 봤는데, 내가 자기가 젊었을 때와 많이 닮았다더군." 박시준이 술잔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열었다.통화를 마친 후, 그 여자는 그에게 자신이 젊었을 적의 사진을 보내왔다.사진 속의 여인은 수려한 이목구비에, 선명하고 아름다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이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정말로 박시준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조지운이 깊게 심호흡한 뒤 물었다. "대표님, 그분이 대표님께 연락한 이유가 도대체 뭐랍니까? 돈이 필요하대요? 아니면 대표님과 만나고 싶답니까?""나에게 연락한 이유를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어. 다만 내가 자기 아들일지 모르니, 친자 확인 검사를 하고 싶다더군." 박시준이 또다시 술 한 모금을 홀짝였다. "그리고 난 그러겠다고 했어.""그러셨군요. 그 여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친자 확인 검사를 해보시는 게 좋겠어요. 사진을 보면 정말로 대표님과 이분이 조금 닮긴 했지만, 그래도 과학적인 증거가 필요하죠." 여기까지 말하고는, 조지운이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떠올렸다. "그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무슨 일을 한대요?""물어보지 않았어. 최대한 빨리 귀국해서 나와 친자 확인 검사를 하러 가겠다고 하더군.""지금 해외에 있대요?" 조지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댄서가 어떻게 해외에 나가요?""보통 사람도 해외에 나가는 건 어렵지 않아. 해외에
진아연은 이 문제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생모에 대한 박시준의 태도가 어떠하던, 그녀는 그의 결정을 존중하고 받아들일 생각이었다.그가 그런 선택을 했을 때는, 분명 신중하게 고민한 후에 내린 결정임이 틀림없다고 믿기 때문이었다.연회장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여전히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최은서는 호텔에서 묵고 있었기 때문에, 연회장에 남아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그녀가 혼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 성빈이 그녀의 앞에 다가갔다."지금 나 기다리는 거야?"성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최은서가 곧바로 고개를 들고는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제가 뭣 하러 당신을 기다려요?""농담이야. 네가 인상 쓸 줄 알았어." 성빈이 혼자 즐거워하며 말했다."저를 화나게 하는 게 그렇게 즐거워요?" 최은서가 휴대폰을 집어넣고 의자에서 일어났다."진짜 화난 건 아니지? 정말 농담이었어!" 성빈이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했다. "어디서 지내? 내가 데려다줄게.""됐어요. 이 호텔에서 지내는데요, 뭘.""아, 그래서 서두르지 않은 거였구나." 성빈이 그녀를 따라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돌아온 지 얼마나 됐어? B국에는 언제 돌아갈 거야? 그 큰 오빠라는 사람이 당신이 B국에 있는 걸 알고서 찾아오지는 않았고?""궁금한 게 뭐가 그렇게 많아요?" 최은서가 곁눈질로 그를 흘끗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밥 많이 먹고 배가 부르니 괜히 쓸데없는 소리 하는 거예요?""당신이 며칠 더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말이지." 성빈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리고 당신을 유산시킨 사람이 당신 앞에서 직접 사과했으면 해서...""됐어요! 정말로 그럴 필요 없어요! 어차피 처음부터 원했던 아이도 아니었던걸요. 오히려 그 여자가 저를 도와준 셈이에요. 그 덕에 저도 제 일에 전념할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오히려 그 여자한테 고마운 마음이에요." 최은서는 전혀 지난 일에 연연해하지 않았다.그녀가 유산했을 때, 아이가 이제 막 생겨난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와 아이 모두 피해
두 사람은 차례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최은서가 가방에서 카드 키를 꺼냈고, 성빈은 그런 그녀의 뒤를 천천히 따라왔다."은서야, 난 너의 성격이 정말 좋아...""아, 제가 한이의 고모가 아니었을 땐 저를 그렇게 못마땅해하고 무시하더니, 이제 한이의 고모가 되고 나니 제 성격이 좋아졌어요?"성빈: "..."최은서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계속 제 원망을 듣고 있어도 상관없다면 들어와요." 그녀가 방 안에 서서 도발적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성빈은 몇 초 동안 망설이더니, 이내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쾅' 소리와 함께 최은서가 방문을 닫았다."내가 무섭지 않아?"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성빈이 웃으며 말했다."무서울 게 뭐 있어요?" 최은서가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고는, 작은 냉장고 안에서 물 한 병을 꺼내 열며 말했다. "우리가 정말로 싸우기라도 하면, 당신은 내 상대가 안 될걸요."성빈은 어쩐지 굴욕적이었다.그가 그녀와 띠동갑이긴 하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최은서가 혼란스러워하는 그를 보고는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가방에서 냉큼 호신용 스프레이를 꺼내 들었다."이 스프레이,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알아요?" 최은서가 호신용 스프레이를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B국에 있을 때, 어떤 늙은 변태가 제 엉덩이를 만지길래, 이 스프레이를 꺼내서 얼굴에 뿌려버렸어요. 그랬더니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이리저리 구르면서 대성통곡을 하더라고요."성빈은 표정이 급격하게 변하며, 뻣뻣하게 굳은 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하하하하! 놀란 것 좀 봐. 허튼짓하지 않으면, 저도 이 스프레이를 쓰는 일 없을 거예요." 그녀가 스프레이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침대 옆에 앉아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제 성격 말고, 또 찾아낸 제 장점 있어요? 아니면 저의 어떤 점이 좋은 거예요?" 최은서는 이 어르신한테서 자신감을 되찾고 싶었다.성빈은 지금 그녀가 자신을 외로울 때 찾는 심심풀이 장난감 정도로 대하고 있다는 게 느
그가 휴대폰을 집어 들자, 어제 그 번호가 보였다.그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시준아, 나 벌써 A국에 도착했는데, 언제 시간 되니? 우리 만나자꾸나!" 전화기 너머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어디세요?" 박시준이 시간을 확인했다.오전 10시였다."호텔이야. 점심에 같이 식사 어떠니?" 여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냥 바로 감정센터에서 만나죠." 박시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위치를 보내 드리겠습니다."전화기 너머의 여성은 2초간 침묵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알았어."그녀는 '알았다'라는 말 외에, 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마치 그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렵기라도 한 것처럼.전화를 끊은 후, 박시준은 감정센터의 위치를 전송한 뒤, 몸을 일으켜 서재에서 나와 외출 준비를 했다.그가 외출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이모님이 물었다. "대표님, 어디 가세요? 아연 씨가 집에서 쉬고 계시라고 하지 않았던가요?""이따가 제가 얘기할게요." 박시준이 신발장 앞에서 신발을 갈아 신으며 대답했다. "이따 가족들을 만나러 갈 겁니다.""네, 알았어요."박시준이 나간 후, 이모님은 곧바로 진아연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외출했음을 알렸다.이모님의 마음속에 진아연은 이 집의 여주인이므로,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네, 그렇군요. 아직 연락 없었어요. 점심에 연락이 올지 기다려 보죠." 진아연은 옷 가게에서 두 아이가 옷을 입어보는 것을 보고 있었다."응."통화를 마친 후, 진아연은 두 아이가 있는 쪽을 향해 사진을 찍은 뒤, 박시준에게 보냈다.그녀는 박시준이 외출한 이유를 바로 그녀에게 이야기할지 알고 싶었다.사진을 보낸 다음 그녀는 두 아이에게 다가갔다."엄마, 누구랑 전화했어요?" 라엘이 물었다."이모님한테서 온 전화였어. 아빠가 외출하셨대." 진아연이 사실대로 말했다."아빠는 왜 외출하신 거래요? 엄마가 집에서 쉬라고 했잖아요! 아
그의 마음속에 강렬한 예감이 차올랐다. 어쩌면 이 여자가 정말로 자신의 생모일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예감이.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와 함께 친자 확인 검사를 하겠다며 감정센터에 나타나지도 못했을 것이다.여자가 빠르게 로비 안으로 들어왔다.박시준을 보자마자 그녀는 곧바로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 시준아. 난... 하수연이라고 한단다. 최경규한테서 얘기를 들었을지 모르겠구나."박시준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정확하게 말했다. "아니요. 들은 적 없습니다."최경규는 수많은 여인과 놀아나며 수많은 사생아를 낳았다.그런 그가 그 많은 여자들의 이름을 어떻게 다 기억할 수 있겠는가.그가 최운철과 최은서를 키운 것이 오히려 그에게는 큰 자비를 베푼 셈이나 마찬가지였다."그럴 만도 하지, 그 사람한테는 여자가 정말 많았으니까. 기억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야." 하수연이 자조적으로 말했다. "그 사람이 밉지? 그가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 그를 돕기 위해 나서지 않더구나. 네 능력이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하수연의 질문에 박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해외에서 지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하수연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하수연이 안절부절못하며, 떨리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나, 나는... 네가 내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후부터 그 사람의 상황을 알아보고 있었단다...""우선 검사부터 하러 가죠!" 박시준이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하수연은 이목구비가 아주 아름다웠다. 젊었을 때 분명 굉장한 미인이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녀가 현재 몇 살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얼굴의 주름은 약간 깊었고, 명품 옷을 입고 명품 가방을 들었지만, 어딘가 아파 보였다.일반적으로, 부유한 여성들은 자기 관리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하수연은 에르메스 가방을 들고 있기는 했지만, 얼굴에는 관리받은 흔적이 전혀 없었다.하수연은 박시준의 뒤를 따라 검사 샘플을 받으러 갔다.샘플 채취는 금방 끝났다. 직원이 그들에게 결과는 3일
오늘 그가 하수연을 만나 짧게나마 시간을 보내본 결과, 하수연은 그가 상상한 것과는 다른 사람이었다.그녀는 속셈이나 꿍꿍이와는 거리가 먼, 그저 순박한 노부인 같았다. 그녀가 그를 찾아온 것은 어쩌면 돈 때문이 아닌 가족애 때문일지도 몰랐다.그녀가 젊은 시절에 그를 찾아오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최경규가 그녀에게서 그를 강제로 빼앗아 갔거나, 당시 그녀에게는 그를 양육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그녀가 최경규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면, 그가 그녀를 그렇게까지 적대시할 이유가 없었다.점심시간, 그는 진아연과 하수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이들에게 이번 일에 대해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식사를 마친 후, 집에 도착해 두 아이가 낮잠에 빠진 뒤에야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그 여자 사진 가지고 있어요? 너무 궁금해요. 두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닮았는지." 진아연이 귤의 껍질을 벗겨 그에게 절반을 나누어주며 말했다."지금 모습의 사진은 없어." 그는 하수연이 젊었을 적의 사진을 열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사실 젊었을 때의 사진을 보면 더 와닿아."진아연은 사진을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한눈에 봐도 두 사람이 닮았네요. 당신 눈과 코가 그녀와 정말 닮았어요.""맞아." 박시준이 휴대폰을 내려놓고는, 진아연이 건네준 귤을 먹으며 대답했다. "오늘 검사 샘플을 받은 후에, 검사비를 내고 싶어 했는데 내가 이미 내고 난 후라 그러지 못했어.""잘 됐네요, 그럼 돈 때문에 당신을 찾아온 게 아닐지도 모르잖아요.""알 수 없지. 오랜 시간 함께 지내본 다음에나 그 사람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어." 박시준이 귤을 두 입 만에 다 먹어 치우며 대답했다."이 귤, 새콤달콤하니 정말 맛있네요. 하수연이 정말 당신 어머니이고, 사람도 괜찮다면, 서로 알아가는 것도 괜찮죠. 당신이 말은 안 해도, 혈육 간의 정을 그리워하는 거 알고 있어요. 시은 씨를 대하는 태도
"참, 전에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 적이 있었다고 했잖아, 최근에 또 그런 적은 없어?" 그는 그 일을 줄곧 마음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 후로 그녀가 달리 말을 꺼내지 않자, 그 역시 묻지 않았다.이제 그녀가 다시 출근하기로 한 만큼, 그는 그녀의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정확히 해야 했다."최근에는 그런 적이 없었어요. 지난번엔 너무 피곤해서 그랬나 봐요!""재검사를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박시준이 그녀에게 넌지시 제안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우선 재검사부터 받으러 가보는 게 어때!""재검사는 이미 예전에 한걸요. 괜찮아요." 진아연이 대답했다. "난 병원은 별로 안 가고 싶어요. 비록 내가 의사이긴 하지만,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작은 이상은 최대한 덮어두고 싶어요. 어딘가 아픈 곳이 있지 않은 이상, 최대한 미루고 싶어요.""그렇지만 통증이 없는 전조증상도 있어.""맞아요. 하지만 매년 건강 검진을 받잖아요."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올 상반기에 건강 검진을 했다고요. 우리 같이 했잖아요!""그래." 그가 마음을 놓으며 말했다. "낮잠 자러 나랑 같이 갈 거야?""먼저 가 있어요! 아이들 옷장을 정리해야 해요." 그녀가 탁자 위의 쇼핑백을 흘긋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새 옷을 둘 공간이 없을 거예요.""도우미한테 시켜도 되잖아.""내가 무료해서 그래요." 그녀가 어쩔 수 없이 진심을 털어놓았다. "가서 자고 있어요! 난 이따 졸리면 올라갈게요.""알았어." 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잠시 생각하더니,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한이는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당신 얘기 한 적 없어요. 한이가 먼저 당신 얘기를 꺼내지 않는 이상, 혹시라도 한이의 반발심을 일으킬까 봐 나로서도 먼저 꺼낼 엄두가 나지 않고요." 그녀가 귤을 다 먹은 뒤 일어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한이가 지금 해외에 나가 있는 것도 아니니, 매일 만날 수 있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한이도 아빠라고 부를 거예요."그녀의 위로에 그의 불안했던
여소정: "젠장! 10년 후라니... 그럼 됐어! 어디 기부해! 버리면 너무 낭비잖아.""응, 정리해서 기부하려고." 진아연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물었다. "준기 씨와 네가 너희 집으로 돌아가 살겠다고 하니, 시어머니 반응은 어떠셔?""우리 시어머니는 그 귀한 아들내미를 보지 않고는 못 사는 분이잖니." 여소정이 웃으며 대답했다. "어젯밤에 너한테 얘기한다는 걸 깜빡했네. 우리 시어머니, 아직 퇴원도 하지 않으셨으면서, 어디서 준기 씨가 우울해한다는 말을 들으시자마자 곧장 우리 집으로 달려오셨지, 뭐야. 담판이라도 지으시려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막상 준기 씨가 시어머니 앞에서 자기는 정말 우울하다고 했더니, 그건 또 안 믿으시더라, 하하하하!""하하하! 아주머니는 준기 씨가 낙천적인 성격이라는 걸 잘 아시니까...""맞아, 하늘이 무너져도 하준기는 전혀 우울해하지 않을 사람이야. 준기 씨와 함께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난 준기 씨가 잠을 뒤척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매번 싸우고 난 뒤에, 나는 화가 나서 잠도 안 오는데, 준기 씨는 머리가 침대에 닿자마자 잠이 든다니까.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이야. 딱 한 번, 유일하게 잠을 못 이뤘던 게 내가 처음으로 이혼 얘기를 꺼냈을 때였대. 준기 씨 말로는 그때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병원에 가서 수면제를 타왔다고 하더라고. 이 인간은 자기 몸에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조르르 병원으로 달려간다니까. 이렇게 죽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이 우울할 겨를이 어디 있겠어?"진아연이 그녀의 말을 정정했다. "불면증과 우울증은 달라.""내가 보기엔 거의 비슷한 것 같아. 우울증의 증상은 기분이 가라앉고, 비관적인 거잖아. 그런데 사람이 잠만 잘 자도, 정신 상태가 그 정도까지 이르진 않을 거라고 봐.""그 말도 일리는 있어. 많은 우울증 환자가 불면증 증상을 보이거든." 진아연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옷들을 정리하면서 여소정과의 영상 통화를 이어 나갔다."우리 시어머니가 준기 씨가 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