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문은 국을 마신 후 곧바로 눈을 감았고김영아는 곁에 있는 봉민한테 다가가 말했다. "먼저 나가보세요! 저 잠깐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이에 봉민과 가정부는 김영아를 위해 자리를 비워줬고병실 문이 닫히자마자 더는 참을 수 없는지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방금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독살했다.사실 김영아는 병원으로 오는 도중 어찌해야 할지 계속 고민했었고보온병에 담은 국을 굳이 아버지한테 드릴 생각은 없었다.하지만 그녀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온전히그녀를 쓸모없는 자녀라고 여겼던 아버지의 말 때문이었다.물론 이 세상에서 자신을 쓸모없는 자라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이 때문에 김영아는 자기를 무시하는 아버지한테 굳이 마음 약하게 굴 필요 없다고 판단했을 뿐이다.둘째 형은 김영아의 연락을 받고 김형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껄껄거렸다."영아 씨,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잠깐 기다려봐요. 곧 시준이한테 데리러 가라고 할게요." 둘째 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시준아, 들었지? 영아 씨가 김형문을 처리했대." 둘째 형은 소파에 앉아 있는 박시준을 보며 말을 이었다. "영아가 아직 어려도 김형문의 딸이 맞긴 맞네요. 뼛속 깊이 숨어있는 게 바로 그 독기죠."전날 밤, 박시준은 둘째 형의 부름으로이곳에서 어쩔 수 없이 밤새 지내게 되었다.물론 둘째 형도 김형문이 오늘 퇴원한다는 소식에 이런 계략을 세웠던 거다.천성 의심 많은 김형문한테 손을 쓰는 건 거의 불가능했고유일하게 이를 이뤄낼 수 있는 거라곤 김영아뿐이었으며 또한 결과적으로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기 때문이었다."저도 함께 병원으로 가죠!" 둘째 형은 차가운 표정을 한 박시준에게 다가가 말을 이었다.병원.김영아는 전화를 마치고 병실 문을 열었다."봉민 씨, 잠시 들어오세요. 할 얘기가 있어요." 김영아는 빨간 눈을 하고 속상한 모습을 보였다.이에 봉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양아버지께서 쉬고 있지 않나요? 그냥 밖에서 얘기하죠!""일단
"그럼 저를 먼저 죽이세요!" 김영아는 그의 앞을 가로막고 말을 이었다. "봉민 씨, 제가 벌인 일입니다! 제가 독을 탄 국을 아버지한테 먹인 걸 똑똑히 보셨잖아요...""진짜 구제불능이네요! 어찌 그런 어리석은 짓을 벌인 거죠!" 기가 찬 봉민은 소리 높여 화를 냈다.김영아는 목 놓아 울면서 사과했다. "봉민 오빠... 진짜 죄송해요... 먼저 오빠와 얘기했어야 했는데...""오빠라고 부르지 마세요! 진짜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예요! 양아버지께서 어떻게 키우셨길래 이런 배은망덕한 짓을 한 거죠!" 봉민은 지금의 상황이 어이없는지 그녀를 혼냈고이처럼 그녀한테 소리 높여 꾸짖은 건 처음이었다.이에 김영아는 순간 몸이 나른해져 바닥에 주저앉았다."이 모두 제가 한 짓이에요... 탓하고 싶으면 저를 탓하세요... 절대 시준 씨를 탓하지 마세요...""왜 끝까지 그를 위해 사정하는 거예요! 도대체 그 사람이 당신한테 뭘 약속했길래 이러는 거예요? 영아 씨,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박시준 씨는 곧 A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진짜 모르는 거예요?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거예요? 양아버지께서 말리지 않으셨다면 이미 떠났을 거란 말이에요! 설마 양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영아 씨와 함께 행복한 삶을 이어갈 거라 생각해요? 그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꿈 깨세요!"김영아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이 떠날 리가 없어요. 전 그의 아이를 임신했으니까요..."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 형은 박시준과 함께 병원에 도착해 병실로 향했고김영아는 어두운 낯빛을 하고 있는 봉민 앞에서 무릎 꿇고 울먹이고 있었다. 수상한 분위기를 느낀 둘째 형은 박시준을 병실로 보내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김영아는 박시준을 보자 흐느끼며 말했다. "시준 씨, 아버지가 죽었어요. 저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어요."박시준은 다가가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를 일으켰고봉민은 김영아가 일어서자 박시준에게 다가가 그를 걷어차려 했다!"영아 씨를 이용해 제 양아버지를 죽이다니
"봉민 씨! 그만하세요!" 김영아는 소리 지르며박시준한테 달려가 앞서 그를 감쌌다.봉민은 김영아가 가로막자 동작을 멈췄지만, 여전히 진정할 수 없었다."만약 박시준 씨를 죽일 생각이라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김영아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봉민 씨는 그냥 남일뿐이에요! 우리 김 씨 집안의 일에 당신이 나설 필요는 없어요!"봉민은 '남' 이라는 그녀의 말에 가슴이 아팠다.그는 김영아의 얼굴을 바라봤지만, 그녀의 얼굴은 익숙한 듯하면서도 마치 낯선 사람 같았다.그녀는 박시준과 결혼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그녀의 마음속은 온통 박시준 뿐이었고 설령 그가 김 씨 가문을 원한다 하더라도 김영아는 군소리 없이 갖다 바칠 수 있을 정도였다.봉민은 남으로써 그녀가 벌인 어리석은 짓들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봉민이 병실을 떠나려 하자 김영아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흐느꼈다. "봉민 씨, 가지 마세요!"그녀는 단지 홧김에 말한 것뿐이지 진짜 봉민을 내쫓을 생각은 없었다.피범벅인 박시준의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봉민이 이대로 떠난다면 그녀 혼자서 어찌 남은 일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봉민은 그녀의 말에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물었다. "방금 저한테 남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홧김에 그리 말한 거예요!" 김영아는 눈물을 꾹 참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박시준 씨를 괴롭히지 마세요! 아버지를 죽이려고 결정한 건 저예요! 저도 이제 성인이에요. 제가 한 일은 스스로 책임질게요!"봉민은 그녀의 말에 바로 비웃었다. "그래요! 그럼 책임지세요!""봉민 씨, 가지 마세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김영아는 울먹이며 그한테 애원했다. "우리 그냥 예전처럼 지내요. 네?""그래요!" 봉민은 주먹을 꽉 쥐고 화를 억누르며 그녀한테 물었다. "그럼 제가 뭘 하면 되죠?""일단 의사를 불러주세요! 지금 바로요!"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린 김영아는 바로 소리 질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도착
라엘이는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말했다. "그건 우리 엄마한테 물어봐요!""아저씨가 직접 물어보면 좀 난처하잖니?" 임원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물어봤다가 네 엄마가 슬퍼하실까 봐서 그래.""근데 저한테 물어보시면 저도 슬프단 말이에요!" 라엘이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아빠가 많이 보고 싶지?" 임원은 조금씩 라엘이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네 아빠가 전에 아저씨한테 자주 얘기했었지. 널 아주 사랑한다고. 돈을 많이 벌어서 전부 너한테 쓸 거라고 말이야.""정말요?" 라엘이의 눈에서는 빛이 났다. "또 뭐라고 했어요?""사실 네 아빠는 감정 표현을 잘 안 하시는데, 네 얘기를 할 때마다 엄청 신나하셨어. 딸이 더 좋다고 하셨지."라엘이는 코가 약간 시큼해졌다."네 아빠에게 전화 걸어 볼래? 네가 먼저 전화를 걸면 무척 기뻐하실 텐데. 네 엄마는 동생을 돌봐야 하니까 엄마 휴대폰 빌려서 아빠한테 전화해 봐.""아저씨가 우리 아빠랑 통화하고 싶은 거죠?" 라엘이는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임원은 약간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귀국한 뒤로 네 아빠의 회사에 들어갔어. 네 아빠랑 아주 좋은 사이지.""그래요... 알겠어요. 엄마 휴대폰 빌려 올게요." 라엘이는 동의한 뒤 바로 진아연을 향해 걸어갔다.진아연은 지성을 데리고 아이를 돌보고 있는 다른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엄마, 휴대폰 잠깐 빌려줘요." 라엘이는 진아연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진아연은 별생각 없이 휴대폰을 꺼내 딸에게 건넸다."엄마 휴대폰으로 뭘 하려고?""아빠에게 전화할래요." 말을 마친 라엘이는 휴대폰을 들고 자리를 떴다.라엘이가 떠나자 진아연 옆에 서 있던 ST그룹의 여직원이 물었다. "라엘이랑 박 대표님 사이가 그렇게 좋아요?""시준 씨가 라엘이를 많이 이뻐하니까요. 비록 시준 씨와 제가 다툴 때면 제 편을 들긴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자기 아빠를 매우 좋아해요.""박 대표님의 카리스마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진아연?" 전화 너머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라엘이는 깜짝 놀랐다. 낯선 목소리의 여자가 전화를 받을 줄 전혀 몰랐던 것이다.이 여자가 바로 아빠의 새 아내인 건가?"누구세요?" 라엘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큰 소리로 물었다.전화 반대편의 김영아도 깜짝 놀랐다.진아연이 걸어온 전화인 줄 알았는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진아연과 박시준의 딸인 진라엘인가?김영아는 어수선한 마음을 재빨리 진정시킨 후 물었다. "너 라엘이 맞지? 난 네 아빠의 아내 김영아야. 네 엄마가 내 얘기를 한 적 있는지 모르겠네."추측이 확인되자 라엘이는 눈살을 더욱 찌푸렸고 안색도 어두워졌다."전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왜 아줌마가 아빠 전화를 받아요?!" 라엘이는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쳤다.진아연은 라엘이의 외침을 듣고는 즉시 지성을 안은 채 달려갔다.라엘이의 감정이 무너지는 것을 들은 김영아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설명했다. "라엘아, 네가 나란 사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걸 알아. 하지만 난 지금 네 아빠의 합법적인 아내야. 그리고 네 아빠의 아이도 가진 상태고. 내가 너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듯이 너도 나의 존재를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아니면 너만 괴로울 뿐이니까.""언제 우리 아빠 아이를... 지금 박시준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말이에요?!" 라엘이는 그 소식에 충격을 받아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흘러나왔다.결국 아이는 아이일 뿐 그들의 심리적 수용력은 그다지 강하지 못했다."그래. 임신한 지 두 달 됐어. 라엘아, 이 소식에 내가 매우 슬퍼할 걸 알아. 하지만 너도 네 아빠의 선택을 존중해야지. 네 아빠는 앞으로 나랑 Y국에서 살 거야. 너도 이젠 세 살짜리 아이가 아니니까 철들었을 거라 믿어. 네 엄마를 잘 설득해서 이 모든 걸 받아들이고 다른 남자를 찾길 바라."말을 마친 김영아는 이미 라엘에게서 이 소식을 접한 진아연이 얼마나 화를 낼지 상상할 수 있었다."라엘아! 왜 그래?" 진아연은 휴대폰을 들고 있는 라엘이가 눈물 범벅
그가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받아달라고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진아연 씨, 시준 씨가 전에 당신에게 계속 A국에 돌아가라고 한 건 당신의 안전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Y국에 있으면 우리의 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떠난 후에 바로 나한테 약속했어요. 앞으로 나와 우리 아이 옆에 계속 남아 지켜주겠다고. 더 이상은 우리의 삶을 방해하지 마세요. 양육비가 필요하면 나한테 연락하세요. 원하는 만큼 줄 수 있으니까요. 다만 시준 씨를 귀찮게 하지 마세요! 당신이랑 연락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김영아의 말투에는 점차 참을성이 없어졌다."핸드폰을 시준 씨에게 넘겨봐요! 그가 직접 나한테 그렇게 말한다면 다시는 당신들을 찾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진아연은 한 마디 한 마디 외치다시피 말했다!김영아: "미안하지만 그는 당신과 통화할 수 없어요. 다시는 당신과 말을 섞지 않겠다고 나와 약속했기 때문이죠! 난 지금 임신 중이라 감정적으로 불안정해서 시준 씨는 내 말이라면 다 듣는 중이에요. 내가 화를 냈다가 우리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누구도 책임질 수 없으니까요."진아연: "...""진아연 씨, 할 말은 다 했으니까, 이제 시준 씨와 자야겠네요." 김영아가 말을 마친 후 2초 동안 더 기다렸다가 진아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김영아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박시준을 바라보았다.박시준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의사는 그가 한동안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깨어난 후에도 몸이 정상으로 회복하려면 오랜 시간의 조리가 필요하다고 했다.봉민은 그를 반쯤 죽여놨던 것이다!김영아는 매우 화가 났다.하지만 지금 당장에 그녀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도와줄 봉민이 필요했다.그래서 그녀는 박시준이 퇴원한 후 봉민을 찾아 결판을 낼 계획이었다.그녀는 침대 옆에 앉아 거즈로 싸인 박시준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계획했다. 그가 입원하는 동안 그와 진아연의 관계를 끝내야겠다고!이 기회가
마이크의 질문에 그의 팔에 안겨있던 라엘이는 더 크게 울었다.진아연: "에이, 재수 없는 소리는 왜 해?"마이크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우리 라엘이, 그만 뚝 해야지. 별일 아니야." 진아연은 딸을 달랬다. "네 아빠가 엄마한테 분명히 말했거든. 김영아 배 속에 있는 아기는 그 여자랑 네 아빠의 아이가 아니라 시험관 아기라고. 그리니까 우린 네 아빠 말을 믿어야지? 응?"라엘이는 마이크의 목에 머리를 기대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아빠 말 안 믿어요! 다른 사람 말은 믿어도 아빠 말은 안 믿을래요!""아가야, 안 믿어도 괜찮아. 하지만 이 일 때문에 네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안 좋잖아. 예전에 아빠가 없을 때도, 매일매일 매우 행복했잖아?""그건 오빠가 같이 있었으니까...""네 오빠는 연말이면 돌아올 거야." 진아연은 계속 달랬다. "그리고 곧 연말이 되잖아. 비록 지금은 오빠는 네 곁에 없지만, 대신에 동생이 있잖니!""지성이는 너무 어려요." 라엘이는 투덜거렸다."하지만 지성이도 한이만큼 널 사랑하잖아! 방금 네가 우는 걸 보고 네 동생도 같이 울었어.""나 때문에 놀라서 그런 거예요!" 라엘이는 눈물 범벅이 된 눈을 뜨며 고개를 들었다.진아연은 괴로워하면서도 논리 가득한 말을 하는 딸을 보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엄마, 웃지 마요!" 라엘이는 얼굴을 붉혔다."알았어, 알았어. 웃지 않을게. 사실 엄마는 너의 슬픔을 다 이해해. 하지만 엄마는 네가 더 강해지길 바라. 엄마가 네 아빠랑 함께할 수 있으면 당연히 좋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우린 우리 삶을 살아가야겠지, 안 그래?" 진아연은 부드럽게 딸에게 설명했다.라엘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저 울지 않을게요.""어이구, 우리 딸 착하기도 해라. 방금 네가 그렇게 큰 소리로 우니까 연회장에 있던 모든 아저씨 아줌마들이 다가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어. 다들 너를 걱정하고 계셔. 우린 우리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을 더 많이 신경 써줘야지."라엘이는 몇 초 동
라엘이는 철부지 어린이가 아니었다. 공개석상에서는 누구보다도 더 체면을 차리려고 했다.라엘이는 정말 슬펐기에 연회장에서 울었던 것이다.라엘이는 아빠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밤 김영아는 라엘이에게 그녀의 아빠에게 새로운 아이가 생겼고, 그녀의 아빠는 더 이상 그녀만의 아빠가 아니라고 했다.마치 아끼던 장난감을 빼앗긴 것처럼 슬프지 않을 수 없었다.진아연은 샤워를 마친 라엘이를 재우고 아이 방에서 나왔다.지성이도 목욕을 마치고 한창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아연 씨도 가서 샤워하세요! 지성이가 우유를 먹고 나면 데리고 놀다가 재울게요." 이모가 말했다."응."진아연은 지성이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고는 방으로 돌아갔다.문을 닫은 후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박시준의 번호를 찾았다.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려다가 다시 망설였다.만약에 또 김영아가 받으면 얼마나 창피할까?여러번 다시 고민하다가 그녀는 배태준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통화연결음이 한참 울리고 나서야 통화가 연결되었다."산이 오빠, 저예요.""알아, 발신자 번호가 뜨거든!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 배태준이 조금 짜증 섞인 말투로 답했다. "금방 막 잠이 들었는데!""죄송해요! 제가 급해서 그쪽 시간을 깜빡했네요.""무슨 일인데 급해?""오늘 밤 시준 씨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김영아가 받았어요.""그래? 시준이가 얻어터졌거든. 아마도 꽤 다친 것 같아." 배태준은 정신을 차리며 앉아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물론 자세한 상황은 나도 몰라. 김영아가 그 자식을 잘 보호하고 있나 봐. 우리도 병문안을 가지 못하게 하고 있어!""무슨 일인데요?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바짝 긴장된 진아연은 가는 눈썹을 찌푸렸다."얘기하자면 길어... 우리가 판을 짰거든. 영아가 김형문을 죽이게 만들었지...""김형문이 죽었다고요?!" 진아연의 등에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다."맞아! 이 사건은 밖에 알려지지 않았고 장례식도 아주 조용하게 치러졌어. 영아는 자기 아버지를 죽였으니까
3년 후.A국, 공항.현이는 둘째 오빠와 함께 공항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3년이야 3년! 남자친구라는 사람 드디어 너 찾으러 오는 거야!" 박지성은 현이를 놀리며 얘기했다. "설마 너랑 헤어지러 오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3년 동안 못 만났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현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째 오빠, 저 지금 저주하시는 거예요? 비록 3년 동안 못 만났지만 매일매일 영상통화 하면서 서로 얼굴 봤거든요!"박지성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사이버 연애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현이: "어쨌든 이번에 A국에 와서 정착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제부터 다시는 떨어져 지내는 일 없을 거예요."박지성: "네 남자친구도 자존심이 너무 강해. 이따 아버지 만나고 얘기 얼마 나누지도 않고 다시 티켓 사고 도망치는 거 아니야?"현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현이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서은준이 캐리어를 끌며 출구에서 나오고 있었다.현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준을 향해 달려가 서은준의 품에 안겼다.이때 박지성은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진아연이 물었다. "아직 못 만났어?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박지성: "엄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에요. 금방 나왔어요, 지금 현이랑 껴안고 있어요! 우리 이제 곧 집에 갈 거니까 엄마랑 아빠도 마음의 준비 잘 하고 계세요."박 씨 저택.진아연은 통화를 마친 후 박시준에게 전달했다.박시준은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용모를 검사했다.진아연은 화장실 문 앞에서 지켜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거울 그만 비춰요, 충분히 멋있어요!"박시준: "여보, 좀이따 은준이한테 좀 엄격해야 할까?"진아연: "현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은준이도 현이 위해서 A국에 있겠다고 한데다 엄격하게 해서 뭐하려구요? 굳이 두 아이의 기분을 망쳐야겠어요? 은준이도 지금 어엿한
서 어르신은 진지한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꺼낼 줄 예상치 못했기에 차마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냐하면 진지한에게 돈을 달라고 할 계획이긴 했지만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어쨌든 진지한은 엄청난 부자였고, 적게 달라고 하니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였고 많이 달라고 하자니 거절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서 어르신은 한동안 망설인 후 진지한에게 말했다. "진 대표님 집이 A국에서 엄청난 부자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가 적당한지는 대표님께서 정하시죠! 저와 우리 아들에게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진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배유정은 그것을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금액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가 적당할지 가늠이 안 가네요. 굳이 저희더러 정하라면 돌아가서 저희 시아버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네요."서 어르신: "혹시 박시준 씨 말하는 겁니까?"배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희 시아버님 저희 남편보다 더 까다로울 겁니다. 입장 바꿔서 아버님이라도 따님을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 보내진 않을 거잖아요?"서 어르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해요. 그럼 그냥 우리끼리 얘기하죠!"배유정: "지금부터 고민해 보셔도 괜찮아요. 저희 요 이틀 동안은 여기 있을 거거든요."서 어르신: "알겠어요! 그럼 우선 연락처 먼저 교환하죠! 나중에 일이 있을 때도 서로 연락하기 편하잖아요."배유정은 진지한을 흘끗 보았고 그제서야 진지한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서 어르신과 연락처를 교환했다.병원.현이는 서은준의 곁에서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했다.서은준은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시신을 옮겨달라고 했다.현이가 서은준에게 물었다. "장례식 간단하게 치를 생각이에요?"서은준: "엄마 켠에도 친척들이 별로 없어."현이: "네. 그럼 어머니 계실 묘지부터 골라야죠?"서은준: "엄마가 전에 유골을 엄마 고향 연못에 뿌려달라고 했어."현이: "..."서은준: "엄마는 내
진지한: "그래요 그럼! 근처에 가까운 카페라도 갈까요."서 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요! 사실 우리 집이 바로 병원 근처에 있는데 한 번 가보실래요? 현이도 우리 집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었고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사이가 아주 좋았거든요."진지한은 배유정을 보며 말했다. "그럼 한 번 가볼래?"배유정: "좋아요!"서 어르신은 즉시 진지한과 배유정을 자신의 차로 안내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서 어르신의 집에 도착한 후 서 어르신은 즉시 하인들을 분부하여 과일과 디저트를 올리라고 했다.서 어르신은 집사를 가리키며 진지한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집 집사입니다. 예전에 현이 할머니도 집사가 뽑고 집에 들였죠."진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서 어르신은 집사에게 말했다. "이 분은 수수 친 오빠야, 유명한 대기업의 대표 진지한 씨."집사: "진 대표님, 안녕하세요! 수수 정말 괜찮은 아이였어요, 그때 우리 모두 수수를 많이 좋아했답니다. 전에 수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많이 속상했는데 사실이 아니라니 참 다행이에요! 수수는 정말 철도 들고 씩씩한 아이였어요, 제가 봤던 아이들 중 가장 씩씩한 아이에요. 수수가 잘 지내고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진지한: "전에 우리 동생 잘 챙겨줘서 고마웠어요."집사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별 말씀을요! 수수는 정말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어요. 매번 적극적으로 맡아서 일도 잘하고 정말 괜찮은 아이에요. 우리는 그때부터 수수가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나면 꼭 잘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진지한은 집사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서 어르신이 집사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내려가."집사는 즉시 물러났다.서 어르신은 진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현이가 우리 은준이랑 사이가 좋았다는 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현이를 은준이 곁에 안배했거든요, 그때 두 아이 나이가 비슷했기도 했고 서로 얘기도 잘 통할 거
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은준 씨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저 요 며칠 동안 언니 오빠랑 놀러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진지한: "괜찮아. 은준이 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우리도 놀 기분 아니야. 은준이 어머님 장례식 참석하고 돌아갈게."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지?" 진지한을 물었다.서은준은 현이의 남자친구자 현이 또래기도 하니 현이의 오빠로서 왠지 모르게 서은준을 도와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현이: "국내랑 비슷해요. 돈 많은 사람들은 거창하게 치르고 보통 사람들은 그냥 간단하게 치르곤 해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식은 따로 안 치르고 직접 무덤에 묻기도 하구요."진지한: "좀 거하게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해?"현이: "오빠, 은준 씨 어머님 장례식 치르는 거 도와줄려고요? 은준 씨 친척들도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거하게 안 치러도 돼요."진지한: "그래. 그럼 은준이랑 어떻게 할 건지 상의해 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현이: "고마워요, 오빠. 근데 안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장례식 치르는데 돈 많이 들진 않을 거예요. 은준 씨도 저희가 자기 어머님 장례식 도와주겠다고 하면 받지 않을 거예요."진지한: "그래 그럼! 가서 은준이 옆에 있어줘!"현이: "오빠, 그럼 오빠랑 새언니는...""우리 걱정은 안해도 되. 나 너희 새언니랑 밖에 나가서 좀 걸을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알았어요, 오빠."현이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병동을 나섰다.서 어르신은 병원 건물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지한과 배유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진 대표님, 저희 아들이 저한테 깊은 오해가 있어 현이까지 절 싫어하나 보네요. 사실 저 예전에 현이한테 정말 잘해줬어요." 서 어르신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현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집에서 일했었거든요. 그때는 현이를 키우던 할머니와 같이 우리 집 주방에
전화를 끊은 후 서은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현이는 서은준의 곁에 서서 물었다. "은준 씨, 왜 그래요?"서은준: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대.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 형님이랑 시간 보내야 될 것 같아! 난 병원으로 가야 될 것 같아."현이: "같이 가요! 어머님 방금까지 멀쩡하셨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두 사람은 진지한과 배유정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차를 잡으러 길가로 향했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두 사람이 급하게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당황스러웠다.배유정: "여보, 우리도 병원에 가봐요! 은준 씨 어머님이 돌아가셨나봐요."진지한: "그래."두 사람은 택시 한 대를 세우고 서은준이 탄 차를 쫓았다.병원.빠른 속도로 병원에 도착한 서은준은 함께 서있는 의사 선생님과 서 어르신을 보았다.서 어르신은 아첨하는 말투로 말했다. "은준아, 원래는 너희 엄마 보러 병원에 온 건데 내가 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 너무 안타깝구나!"서은준: "당신이 오기 전에 사망한 거 확실해요? 저도 오늘 왔었어요, 제가 왔을 땐 분명 아주 멀쩡했다고요!"서 어르신: "물론 다 사실이지! 못 믿겠으면 의사한테 물어봐!""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요!" 서은준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간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우리 엄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저 사람 오기 전에 돌아가신 거예요, 아니면 오고 나서 돌아가신 거예요?"겁에 질려 있는 간호인들 부들부들 떨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서 어르신은 분노에 가득 찬 어조로 간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묻고 있잖아요. 말해 보세요! 제가 여기 왔을 때 당신 어디 있는지 그림자도 못 봤는데 혹시 밖에서 놀고 있던 거 아니에요?"간호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오셨을 때 물 받으러 잠깐 병실에 없었어요. 아버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어머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번 달 비용은 받지 않을게요!"간호인은 말
서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당신 나 지금 무시하는 거야? 우리 서씨 집안이 지금 좀 상황이 안 좋긴 해도 T국에서 여전히 명망있는 가족 기업이라고! 은준이가 철이 없다고 당신까지 이렇게 무식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은준이 뒤에 내가 없었다면 박씨 집안에서 우리 은준이 거들떠 보기나 할 것 같아?"서은준의 어머니: "그 입 다무세요! 박씨 집안에는 당신처럼 속좁은 사람 없어요! 현이 가족들은 우리 은준이를 무시하지 않는다고요! 그니까 괜히 쓸데없이 그분들 귀찮게 하지 마세요!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괜한 짓 하지 말라고요!"서 어르신: "정말이야? 박씨 집안에서 정말 은준이를 반대 안 해? 어떻게 반대 안 할 수가 있지? 설마 은준이더러 A국에 가서 데릴사위라도 하라는 건가?"서은준의 어머니: "그러든 말든 당신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당신 여태껏 은준이 돌본 적 없잖아요. 이젠 은준이도 독립했으니 당신 도움 더 필요 없어요! 만약에 은준이 여자친구가 현이가 아니었다면, 현이가 박씨 집안 딸이 아니었다면 당신 이렇게 부지런히 저 찾아오지 않았을 거잖아요... 당신이 어떤 마음 품고 있는지 제가 모를 것 같아서 그래요?"서 어르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은준이 18살 때 당신이 내 곁으로 보냈잖아? 당신은 못 키우겠다고 나더러 키우라고 했잖아? 내 도움이 없었다면 은준이 저렇게 유학 다녀올 수 있었을 것 같아? 만약에 유학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능력있을 것 같아? 지금 저렇게 사업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덕분이라고!"서은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올라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은준이더러 대학 등록금 다 갚아주라고 할게요!"서 어르신: "이건 대학 등록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은준이 내 아들이야, 엄연한 내 피가 흐르고 있는 내 아들이라고!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은준이가 나중에 잘 지내던 못 지내던, 이 애비 떨쳐낼 생각은 꿈도 꾸지
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 지금은 안 가요. 저 신경쓰지 말고 당신 할 거 하면 되요."서은준: "여기 있어봤자 너한테 시간낭비일 뿐이야."현이: "저 그동안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생활도 열심히 했다고요, 잠깐 쉬겠다는데 뭐가 어때서요."잠시 후 진지한과 배유정은 호텔로 돌아왔고 네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서은준의 어머니는 현이의 오빠와 새언니가 오는 것을 몰랐기에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서은준의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으나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었다.현이는 전동으로 서은준 어머니의 병실 침대머리를 올려 주었다. "어머님, 저희 오빠랑 새언니 신혼여행 겸 여기 놀러 왔다 어머님이랑 은준 씨 보러 여기 들른 거예요."서은준의 어머니: "아이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현이를 알게 된 건 정말 우리 아들의 행운이에요..."배유정: "어머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은준 씨도 얼마나 훌륭한데요. 그렇지 않으면 현이도 은준이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서은준의 어머니: "듣기론 현이 집이 엄청난 부자라던데... 혹시 우리 은준이 반대하는 건 아니죠?"배유정: "어머님, 저희도 사람 됨됨이와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은준이랑 현이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두 아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라면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거예요."서은준은 어머니: "네... 정말 고마워요! 유일하게 걱정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게 바로 제 아들이에요. 현이네 집에서 우리 아들 너무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우리 아들이 자존심이 강하거든요..."진지한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서은준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어머님 아들 무시하는 일 없을 겁니다."현이는 오빠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깊은 감동을 받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서은준의 손을 꼭 잡았다.진지한은 병실에서 잠시 머물다 나갔다.현
현이는 긴장감에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서은준과 큰 오빠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얘기들을 다 꺼냈고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큰 오빠도 화를 내지 않았고 서은준 역시 화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사실상 이미 그녀의 걱정과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였다.하지만 현이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은준 씨, 좀이따 저희 남편이랑 병원에 가서 어머님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식사를 마친 후 배유정이 서은준에게 물었다.서은준: "좋아요."현이: "어머님께 미리 말씀 드릴까요?"서은준: "괜찮아. 이따 가서 직접 소개해 드리면 돼."서은준 어머니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고 휴대폰을 안쓴지 이미 오래 되었다.보통 간호인이 매일매일 서은준에게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보고하곤 하였다.배유정: "사업도 하느라 어머님도 챙기느라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텐데."서은준: "현이의 예전 생활은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어요. 현이도 무너지지 않고 씩씩하게 잘 버텼는데 저도 잘 이겨낼 겁니다."배유정: "하하! 둘 다 씩씩한 사람이라 좋네요. 지금이든 나중이든 어떠한 곤난도 두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예요."현이: "언니 정말 너무 좋아요! 언니는 정말 제가 봤던 사람들 중 저희 엄마 제외한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에요."배유정은 현이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진지한: "너희 언니가 이 말 들으면 서운했을 거야."현이: "언니는 당연히 다르죠! 제 마음속 언니는 부드러운 성격이 아닌 용감하고 씩씩한 슈퍼 히어로같은 존재니까요."배유정: "라엘이 성격에 슈퍼 히어로가 되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현이: "아무튼 언니는 절대 저와 이런 걸로 다투지 않을 거예요."배유정: "당연하지. 다들 배 부르게 먹었어? 다 먹었으면 오빠한테 계산하라고 할게."이 말을 들은 진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서은준도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계산할게요."현이는 애원하듯
현이가 말을 마친 후 서은준도 입을 열었다. "우선 열심히 일하고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될 때 다시 책임지고 싶습니다."진지한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사업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 그럼 사업이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혹은 계속 미지근하게 아무런 진전도 없으면?"서은준: "형님이 말하신 것처럼 사업에 실패하거나 아무런 성과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현이 고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진지한: "자기 분수는 잘 알고있네."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큰 오빠, 은준 씨 사업이 실패하거나 아무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다고 해도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돈 때문에 은준 씨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배유정은 다시 한 번 진지한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의 말이 심했다고 일깨워 주었다.다른 사람에게 차갑고 날카롭게 공격적일 순 있어도 현이에게 이렇게 공격적이진 못했다.현이 역시 자신의 말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느꼈는지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큰 오빠, 전 그냥 돈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그리고 저희 집 이미 충분히 돈 많잖아요. 아무리 돈 많은 상대를 찾는다고 해도 저희 집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예요. 어차피 우리 집보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면 돈이 많은 사람을 찾든 좀 적은 사람을 찾든 다 똑같잖아요."배유정: "현이 말이 맞아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고 두 사람의 감정이에요. 만약에 상대방이 서은준 씨보다 돈이 더 많지만 현이한테 잘하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에게 현이를 억지로 시집 보내는 건 아무 의미 없잖아요."진지한: "우리 집 조건만 봐도 현이한테 잘해주지 않을 남자는 없어."배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진지한이 말한 것 역시 사실이였기 때문이다.현이가 누구에게 시집을 가든 함부로 현이를 건들지 못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친정이 재력가인 힘이었다.현이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잘해주는 이유가 저희 집안 때문이라면 서은준 씨는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