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병원 1층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두 눈이 퀭한 채 온몸이 떨려왔다.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으니 이젠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그녀는 박시준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박시준에게 알려준다면 그는 정말 박한 부자를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가 살인범이 되는 걸 원치 않았다.하지만 박시준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그녀는 최운석과 시은이가 잇달아 죽는 걸 지켜봐야 했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법은 하나뿐이었다.그녀는 병원에 한동안 앉아 있아 있고 난 뒤 박우진의 번호를 눌렀다."고민 끝났어?" 박우진이 전화를 받고 그녀의 대답을 기대했다."만나서 얘기해!" 그녀가 병원에서 걸어 나왔다. "주소를 보내줄 테니 빨리 와.""나한테 허튼수작 부리는 거 아니지? 진아연. 미리 얘기하는데 최운석이 우리 손에 있어. 네가 만약 허튼수작 부린다면 최운석은 반드시 죽게 될 거야." 그가 긴장하며 말했다."알아." 그녀는 한 마디를 뱉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40분 뒤 두 사람은 병원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의 룸에서 만났다.박우진은 조심스럽게 룸을 둘러보았다."우리가 만나는데 룸은 왜? 룸에 사람이라도 숨겼어?" 그는 말을 하면서 테이블 밑을 살펴보았다.진아연은 그의 이런 겁먹은 행동에 피식 웃어버렸다. "간이 콩알만 해서 나쁜 일을 다 하고 다니는 거야? 사람답게 나온다면 나한테 해코지당할 걱정은 안 해도 됐잖아.""나한테 그런 말을 하면 내 마음이 바뀔 줄 알아? 간 큰 놈은 배불러 죽고 간 작은 놈은 굶어 죽는다잖아, 내가 예전에 실패했던 게 다 간이 작아서였어. 그래서 이젠 좀 간 크게 놀려고."박우진은 의자에 앉은 후 주전자를 들고 물 한 컵을 따랐다."박우진, 내가 좋다고 따라다니던 때 했던 달콤한 말들이 기억나?" 진아연이 가벼운 주제로 말을 돌렸다. "나한테 잘해줄 거라 했잖아. 이미 과거가 된 일이지만 난 그래도 착하던 그때의 네가 그리워."박우진은 눈썹을 찌푸리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진아연, 제발 부탁하는데 옛날 일은 떠올리지
부릅뜬 그의 두 눈이 충혈돼 있었다."아빠, 최운석을 풀어주지 말아요!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이자들의 마음대로 하게 놔두진 않을 거예요!" 그가 소리를 질러댔다.박한은 울먹이며 말했다. "우진아... 너 어디야? 내가 구하러 갈게...""안 돼요! 오지 말아요! 최운석을 잘 지켜요. 우리한테 돈을 주지 않으면 절대 최운석을 보내주면 안 돼요!" 박우진이 심하게 발버둥 치는 바람에 칼끝이 목을 찔렀다.상처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진아연은 스며 나오는 피를 바라보며 칼을 잡은 손에서 힘을 살짝 뺐다.그녀가 정말 박우진을 죽일 수 있을까?그녀가 정말 그럴 수 있을까?그녀는 마음속으로 여러 번 자신에게 물었다.마음속의 대답을 들은 그녀의 감정이 무너졌다.그녀는 가혹한 말을 뱉을 수는 있지만 사람을 죽일 수 없었다.의사인 그녀는 칼이 어느 부위를 찌르면 박우진의 목숨을 앗아가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겐 그럴 용기가 없었다."진아연. 그냥 날 죽여. 만약 네가 정말 날 죽인다면 넌 박시준과 똑같은 악마야. 두 사람은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 거야. 하하!" 박우진이 미친 듯이 웃어댔다.칼을 잡은 그녀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눈빛을 짓고 언제라도 죽을 준비가 돼 있는 듯했다.그녀는 그가 이렇게 나올 줄 예상치 못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가? 왜 갑자기 이렇게 변한 거지?"못하겠지? 내가 간이 콩알만 하다고 하지만 사실 간이 작은 사람은 너야!" 박우진은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칼을 잡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그녀는 뼈가 부서질 것 같았고 손에 든 칼을 땅에 떨어뜨려 '쨍그랑' 소리를 냈다.박우진은 차갑게 웃으며 그녀의 얼굴에 따귀를 날렸다. "날 죽이려고? 그럴 능력이나 돼? 박시준이 날 위협하는 것으로 모자라 너까지 이러는 거야?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따귀를 맞은 그녀는 멍해졌다. 몇 초 후 그녀는 분노의 불꽃이 이글거렸다.그녀는 재빨리 허리를 숙여 땅에 떨어진
그녀의 시선이 갑자기 흐려졌고 가슴이 조여왔다.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고통을 억눌렀다."아연아, 왜 말이 없어?" 위정은 그녀의 호흡이 거칠어지는 걸 들으며 물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시은이는 아직 네가 날 찾아냈다는 걸 몰라. 자신이 박시준의 동생이 아니라는 것도 모르고. 최운석이 자신의 친오빠라는 건 더더욱 몰라. 너무 많은 걸 알게 하고 싶지 않아.""위정 선배, 난 시은이를 구하고 싶어요... 꼭 구해야 해요. 하지만 누군가 최운석을 숨겼어요." 그녀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전 계속 방법을 찾아볼 거예요.""최운석을 숨겨두고 돈을 요구하는 거야?" 위정이 예리하게 문제를 찾아냈다. "얼마를 원하는데?"그 돈을 위정이 구할 수 있는 금액이라면 그가 주려고 했다."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내 모든 재산을 다 준다고 해도 만족하지 못할 거예요."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박시준의 돈을 달라고 했어요."그녀의 말을 들은 위정이 곧 말을 끊었다. "그럼 포기해. 아연아, 여기까지만 하자. 만약 시은이가 박시준이 협박당한 걸 알게 되면 죽더라도 그런 모습을 보려 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신장 이식수술을 받았다고 해도 거부반응이 있을지도 몰라. 이런 불확실한 결과에 박시준의 돈을 걸 필요는 없어.""위정 선배. 정말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녀는 위정이 이런 말을 할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내 모든 재산을 걸라고 한다면 한 번 해볼 거야. 하지만 박시준의 돈은 안 돼. 네가 박시준에게 이 일을 말하지 않은 건 박시준이 난감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잖아. 그렇다면 이 일로 자신을 괴롭힐 필요 없어." 위정이 분석했다. "죽는다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무서운 게 아니야.""그런 말이 있잖아. 죽는다는 건 생명을 잃는 게 아니라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거라고." 위정이 말을 이었다. "아연아, 박시준과 잘 살아. 애들도 잘 돌보고. 시은이의 일은 마음에 두지 마.""위정 선배. 선배는 늘 그랬어요. 제가 힘
박우진이 때린 따귀는 힘이 조금 셌다.만약 얼굴에 난 자국을 가리지 않았다면 집에 돌아올 수 없었다.그녀가 맞았다는 걸 박시준이 알게 되면 따져 물을 것이고 그녀를 위해 복수하려 할 것이다.지금 최운석이 아직 박한 부자의 손에 있으니 그녀는 그들 사이의 갈등을 심화할 수 없었다.저녁 식사 후 박시준은 두 아이를 데리고 마당에서 놀았다.마이크와 진아연은 뒤뜰에서 천천히 산책했다."낮에 말했던 걸 고민해 봤어?" 마이크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이미 프로 킬러를 찾아놨어. 박한 부자가 사는 곳은 지난번에 가본 적이 있으니 네가 허락하기만 하면 오늘 밤 해결할 수 있어."진아연은 놀라 되물었다. "최운석을 어디에 숨겼는지도 모르는데 그들 부자를 죽여버리면 최운석을 어떻게 찾아?"마이크는 이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그는 별로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들 부자를 죽인 뒤 박시준의 힘을 빌려 이 도시를 샅샅이 뒤지면 최운석을 찾아내지 않을까?""찾지 못한다면? 박시준도 사람이야, 신이 아니라고. 최운석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최운석은 굶어 죽을 거야." 진아연은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그렇게 다 따지면 이 일을 해결할 수 없어." 마이크가 어깨를 으쓱하고 멀리 있는 박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이 일을 박시준에게 말해. 그 자식이 머리가 아픈 게 너 혼자 끙끙 앓기보단 낫지 않겠어?""오늘 밤 날 찾아온 게 이것 때문이야?" 진아연은 지금 기분이 아주 안 좋았지만 티 낼 수 없었다. "마이크가 알려줄 필요 없어."그녀는 자신이 거의 버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오늘 뺨을 맞았을 뿐만 아니라 박우진이 매일 최운석의 피를 보내주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오늘 받은 스트레스를 버텨냈다고 해도 내일이 있고 모레도 있고... 언젠가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지금 네 모습을 봐." 마이크가 입술을 깨물고 말을 잇지 않았다.그는 그녀를 다그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걱정되었다."마이
하지만 그는 예전처럼 화를 내며 따져 묻지 않을 것이다.그녀가 말해주지 않으니 그도 따져 물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아가, 두려워하지 마." 그녀는 지성이의 손을 놓으려 했다. "누나한테 갈 수 있는지 한번 보자. 넌 해낼 수 있어."지성이의 조그마한 얼굴이 두려움으로 가득했지만 그는 용기 있게 팔을 활짝 펴고 조그마한 발을 옮겨 라엘이를 향해 아장아장 걸어갔다.그는 여전히 비틀거리며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지만 아주 용감했다.그는 라엘이의 앞에 다가가 라엘이를 꼭 안았다."동생, 대단하구나! 이젠 엄마한테 가." 라엘이는 그를 돌려세우더니 진아연에게 걸어가라고 했다.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용감했다.그는 자신이 넘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안 듯 빠른 걸음으로 진아연의 앞에 다가갔다."시준 씨, 봤어요? 우리 아들이 걸음마를 뗐어요!" 그녀가 행복에 도취하였다. "와서 지성이랑 좀 걸어요. 동영상 찍을 거예요."박시준은 곧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지성이에게 라엘이를 찾아가라고 했다.진아연은 휴대폰을 들고 동영상 기능을 켜고 행복한 이 모습을 담았다.영상을 찍은 후 그녀는 동영상을 박시준에게 보여줬다."웃을 때 아주 잘 생겼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녀가 저도 몰래 중얼거렸다. "이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돼요?""그래."그녀가 이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많은 사람이 '좋아요' 를 누르며 지성이가 대단하다고 칭찬했다.동시에 박시준에게 아부하는 사람도 많았다.조지운: 대표님 점점 더 젊어지는 것 같은데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겠죠?마이크: 당신 대표가 예전엔 아주 나이 들어 보였다는 말이죠?성빈: 시준이가 집에서 애랑 같이 있더니 표정이 한결 자애로워졌어. [잘했어요 이모티콘]조지운: 성빈 형, 자애롭다는 표현은 노인들에게 사용하는 거야. [어색 이모티콘]성빈: 너 방금도 나이 들어 보인다고 했잖아. 자애로운 게 뭐 어때서?조지운: 난 대표님이 나이 들어 보인단 말을 한 적이 없어. 마이크
다음날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얼굴에 난 손바닥 자국을 컨실러로 가렸다.박시준의 섹시한 목소리가 갑자기 침대에서 들려왔다. "아연아,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못 잤어?""어젯밤에 일찍 잤더니 일찍 일어났네요." 그녀가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직 일곱 시도되지 않았다.그는 그녀가 화장한 걸 보고 의아하게 말했다. "오늘 외출할 거야?""오늘부터 출근하려고요. 집에 있으려니까 답답해요."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자꾸 헛생각한다고 했었잖아요. 출근하면 괜찮아지겠죠.""출근한다고 해도 이렇게 일찍 일어날 필요는 없잖아. 와서 나랑 좀 더 자자." 그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그녀는 그를 거절할 수 없어 침대 옆에 앉았다.그의 깊숙한 눈빛이 얼굴에서 멈추더니 그녀를 살펴봤다."예전에 출근할 때도 화장하지 않았잖아." 그녀가 화장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에 오늘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무슨 원인이 있을 거라 추측했다."제가 산 파운데이션이 수분감이 너무 좋아요. 크림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아요." 그녀가 이유를 만들어 말했다. "해볼래요?"그는 급히 거절했다."시준 씨, 왜 그렇게 항상 의심이 많아요?" 그녀가 가볍게 웃었다. "설마 제가 화장하고 나가서 다른 이성이라도 만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죠?""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그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속마음을 말했다. "널 소중히 생각하니 네가 안 하던 행동을 하면 의심하게 되는 거야."그녀는 그가 속마음을 이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그녀는 코끝이 찡해와서 그의 얼굴에 가볍게 키스했다. "시준 씨, 사랑해요. 아무리 말해도 모자란 것 같아요.""나도." 그녀의 고백에 그가 답했다."우리 둘 뭐 하는 거예요? 곧 생이별이라도 할 것처럼 말이에요." 그녀가 웃으며 그의 품에 기댔다. 그는 그런 그녀를 꼭 껴안았다. "요즘 회사의 신제품 연구개발이 마지막 단계를 달리고 있어요. 테스트가 통과되면 출시할 거예요.""넌 사업을 중요시 여기는 여자라는 걸 알고
그녀가 이만큼 괴로웠던 건 지난번에 박시준의 가슴에 칼을 꽂았을 때였다.그녀는 도망치는 것을 싫어했지만 이 순간 충동으로 인해 그녀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그녀는 박우진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그녀의 오장 육부를 헤집어 놓는 것 같아서 아주 고통스러웠다.전화기 너머로 박우진이 '쾅' 하는 소리를 들었고 곧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그는 통화가 중단되었다는 문자가 뜬 화면을 힐끗 보았다.진아연이 화를 못 이겨 전화기를 부쉈다고 생각한 그의 입가에 음침한 미소가 떠올랐다.진아연의 멘탈로 며칠을 버틸 수 있을지 몰랐다.그는 전화를 끊고 나서 아버지한테 말했다. "진아연이 얼마 못 버틸 것 같아요.""우진아, 우리 이사하자." 박한이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어젯밤 꿈을 꿨는데 박시준이 우릴 죽이려고 쫓아오더라고. 난 돈도 못 가지고 죽임을 당할까 무서워.""이 문제에 관해 나도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진아연이 우릴 도와 박시준의 지분을 갖다주면 곧 외국으로 나가요. 그다음 지분으로 배당금을 받을지 매각할지 다시 고민해 봐요. 전 파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해요. 손에 들고 배당금을 받는 것보다 많이 받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다른 일이 일어날 우려가 없잖아요.""그래, 우리 먼저 이사부터 하자. 박시준이 찾아낼 수 없는 곳으로 말이야." 박한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어디로 갈지 이미 생각해 놨어.""그럼 당장 이사해요. 진아연이 박시준에게 지분을 달라고 말만 하면 박시준이 화를 못 이겨 죽이려 들 거예요. 하지만 최운석이 우리 손에 있는 한 진아연은 최운석의 생사를 걱정하고 있으니 박시준이 우리에게 손을 쓰게 하지 못할 거예요." 박우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만약 이번에 우리가 순조롭게 돈을 가질 수만 있다면 앞으론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요.""일단 보증금은 빼지 말고 물건도 다 그대로 놔둬. 우리가 여기에 살고 있다고 오해하게 해야지." 박한이 계획을 말했다."그래."그들은 곧 짐을 정리하고 전세방을 나섰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그녀는 책상에 엎드려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누군가 노크하고 들어왔다가 그녀가 책상에 엎드려 우는 걸 보고 어리둥절한 채 나갔다.문을 두드린 사람은 연구개발부 팀장이었다.팀장은 진아연에게 신제품 건에 대해 의논하러 왔다가 그녀가 우는 걸 보았다. 순간 당황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못 본 척하기로 했다.팀장은 휴대폰을 꺼내 마이크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는 자신이 본 상황을 마이크에게 말한 뒤 마이크더러 좀 있다 찾아가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어보라고 했다.지금 그녀의 사무실에 들어간다면 그녀가 분명 비참한 모습으로 있을 것이다.30분 후 마이크는 더는 기다릴 수 없어 그녀의 사무실 문을 열었다.그녀는 이미 울음을 그친 뒤였고 컴퓨터 화면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가까이 가보지 않는다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눈치채지도 못할 것이다.가까이 가보면 그녀의 두 눈이 울어서 벌겋게 부었다는 걸 볼 수 있었다."오늘 회사에 일찍 왔다고 들었어." 마이크는 준비한 간식을 그녀의 책상에 올려놓았다.그때 그는 그녀의 휴대폰 화면이 깨진 걸 보았다."화면이 왜 깨졌지?"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실수로 떨어뜨렸어. 점심때 가서 수리 맡기려고." 그녀는 그가 가져온 간식을 힐끗 보고 나서 말했다. "웬 간식?""비서가 줬는데 다 못 먹을 것 같아서 너한테 갖다 준 거야." 그는 의자에 앉아서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눈이 왜 부었어? 어젯밤 제대로 못 잤어?"그녀는 간식을 책상 서랍에 넣으면서 대답했다. "잠을 좀 설쳤어. 아침에 일찍 일어났더니 눈이 부었네.""힘들면 일찍 돌아가 쉬어."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걸 본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알았어.."마이크는 사무실에서 나와 엄숙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자신의 부서로 돌아온 그는 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계속 이렇게 나가다간 진아연이 쓰러질 것 같았다.그는 더는 그녀 혼자
3년 후.A국, 공항.현이는 둘째 오빠와 함께 공항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3년이야 3년! 남자친구라는 사람 드디어 너 찾으러 오는 거야!" 박지성은 현이를 놀리며 얘기했다. "설마 너랑 헤어지러 오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3년 동안 못 만났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현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째 오빠, 저 지금 저주하시는 거예요? 비록 3년 동안 못 만났지만 매일매일 영상통화 하면서 서로 얼굴 봤거든요!"박지성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사이버 연애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현이: "어쨌든 이번에 A국에 와서 정착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제부터 다시는 떨어져 지내는 일 없을 거예요."박지성: "네 남자친구도 자존심이 너무 강해. 이따 아버지 만나고 얘기 얼마 나누지도 않고 다시 티켓 사고 도망치는 거 아니야?"현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현이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서은준이 캐리어를 끌며 출구에서 나오고 있었다.현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준을 향해 달려가 서은준의 품에 안겼다.이때 박지성은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진아연이 물었다. "아직 못 만났어?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박지성: "엄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에요. 금방 나왔어요, 지금 현이랑 껴안고 있어요! 우리 이제 곧 집에 갈 거니까 엄마랑 아빠도 마음의 준비 잘 하고 계세요."박 씨 저택.진아연은 통화를 마친 후 박시준에게 전달했다.박시준은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용모를 검사했다.진아연은 화장실 문 앞에서 지켜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거울 그만 비춰요, 충분히 멋있어요!"박시준: "여보, 좀이따 은준이한테 좀 엄격해야 할까?"진아연: "현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은준이도 현이 위해서 A국에 있겠다고 한데다 엄격하게 해서 뭐하려구요? 굳이 두 아이의 기분을 망쳐야겠어요? 은준이도 지금 어엿한
서 어르신은 진지한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꺼낼 줄 예상치 못했기에 차마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냐하면 진지한에게 돈을 달라고 할 계획이긴 했지만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어쨌든 진지한은 엄청난 부자였고, 적게 달라고 하니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였고 많이 달라고 하자니 거절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서 어르신은 한동안 망설인 후 진지한에게 말했다. "진 대표님 집이 A국에서 엄청난 부자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가 적당한지는 대표님께서 정하시죠! 저와 우리 아들에게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진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배유정은 그것을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금액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가 적당할지 가늠이 안 가네요. 굳이 저희더러 정하라면 돌아가서 저희 시아버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네요."서 어르신: "혹시 박시준 씨 말하는 겁니까?"배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희 시아버님 저희 남편보다 더 까다로울 겁니다. 입장 바꿔서 아버님이라도 따님을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 보내진 않을 거잖아요?"서 어르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해요. 그럼 그냥 우리끼리 얘기하죠!"배유정: "지금부터 고민해 보셔도 괜찮아요. 저희 요 이틀 동안은 여기 있을 거거든요."서 어르신: "알겠어요! 그럼 우선 연락처 먼저 교환하죠! 나중에 일이 있을 때도 서로 연락하기 편하잖아요."배유정은 진지한을 흘끗 보았고 그제서야 진지한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서 어르신과 연락처를 교환했다.병원.현이는 서은준의 곁에서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했다.서은준은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시신을 옮겨달라고 했다.현이가 서은준에게 물었다. "장례식 간단하게 치를 생각이에요?"서은준: "엄마 켠에도 친척들이 별로 없어."현이: "네. 그럼 어머니 계실 묘지부터 골라야죠?"서은준: "엄마가 전에 유골을 엄마 고향 연못에 뿌려달라고 했어."현이: "..."서은준: "엄마는 내
진지한: "그래요 그럼! 근처에 가까운 카페라도 갈까요."서 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요! 사실 우리 집이 바로 병원 근처에 있는데 한 번 가보실래요? 현이도 우리 집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었고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사이가 아주 좋았거든요."진지한은 배유정을 보며 말했다. "그럼 한 번 가볼래?"배유정: "좋아요!"서 어르신은 즉시 진지한과 배유정을 자신의 차로 안내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서 어르신의 집에 도착한 후 서 어르신은 즉시 하인들을 분부하여 과일과 디저트를 올리라고 했다.서 어르신은 집사를 가리키며 진지한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집 집사입니다. 예전에 현이 할머니도 집사가 뽑고 집에 들였죠."진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서 어르신은 집사에게 말했다. "이 분은 수수 친 오빠야, 유명한 대기업의 대표 진지한 씨."집사: "진 대표님, 안녕하세요! 수수 정말 괜찮은 아이였어요, 그때 우리 모두 수수를 많이 좋아했답니다. 전에 수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많이 속상했는데 사실이 아니라니 참 다행이에요! 수수는 정말 철도 들고 씩씩한 아이였어요, 제가 봤던 아이들 중 가장 씩씩한 아이에요. 수수가 잘 지내고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진지한: "전에 우리 동생 잘 챙겨줘서 고마웠어요."집사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별 말씀을요! 수수는 정말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어요. 매번 적극적으로 맡아서 일도 잘하고 정말 괜찮은 아이에요. 우리는 그때부터 수수가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나면 꼭 잘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진지한은 집사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서 어르신이 집사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내려가."집사는 즉시 물러났다.서 어르신은 진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현이가 우리 은준이랑 사이가 좋았다는 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현이를 은준이 곁에 안배했거든요, 그때 두 아이 나이가 비슷했기도 했고 서로 얘기도 잘 통할 거
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은준 씨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저 요 며칠 동안 언니 오빠랑 놀러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진지한: "괜찮아. 은준이 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우리도 놀 기분 아니야. 은준이 어머님 장례식 참석하고 돌아갈게."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지?" 진지한을 물었다.서은준은 현이의 남자친구자 현이 또래기도 하니 현이의 오빠로서 왠지 모르게 서은준을 도와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현이: "국내랑 비슷해요. 돈 많은 사람들은 거창하게 치르고 보통 사람들은 그냥 간단하게 치르곤 해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식은 따로 안 치르고 직접 무덤에 묻기도 하구요."진지한: "좀 거하게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해?"현이: "오빠, 은준 씨 어머님 장례식 치르는 거 도와줄려고요? 은준 씨 친척들도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거하게 안 치러도 돼요."진지한: "그래. 그럼 은준이랑 어떻게 할 건지 상의해 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현이: "고마워요, 오빠. 근데 안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장례식 치르는데 돈 많이 들진 않을 거예요. 은준 씨도 저희가 자기 어머님 장례식 도와주겠다고 하면 받지 않을 거예요."진지한: "그래 그럼! 가서 은준이 옆에 있어줘!"현이: "오빠, 그럼 오빠랑 새언니는...""우리 걱정은 안해도 되. 나 너희 새언니랑 밖에 나가서 좀 걸을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알았어요, 오빠."현이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병동을 나섰다.서 어르신은 병원 건물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지한과 배유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진 대표님, 저희 아들이 저한테 깊은 오해가 있어 현이까지 절 싫어하나 보네요. 사실 저 예전에 현이한테 정말 잘해줬어요." 서 어르신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현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집에서 일했었거든요. 그때는 현이를 키우던 할머니와 같이 우리 집 주방에
전화를 끊은 후 서은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현이는 서은준의 곁에 서서 물었다. "은준 씨, 왜 그래요?"서은준: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대.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 형님이랑 시간 보내야 될 것 같아! 난 병원으로 가야 될 것 같아."현이: "같이 가요! 어머님 방금까지 멀쩡하셨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두 사람은 진지한과 배유정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차를 잡으러 길가로 향했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두 사람이 급하게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당황스러웠다.배유정: "여보, 우리도 병원에 가봐요! 은준 씨 어머님이 돌아가셨나봐요."진지한: "그래."두 사람은 택시 한 대를 세우고 서은준이 탄 차를 쫓았다.병원.빠른 속도로 병원에 도착한 서은준은 함께 서있는 의사 선생님과 서 어르신을 보았다.서 어르신은 아첨하는 말투로 말했다. "은준아, 원래는 너희 엄마 보러 병원에 온 건데 내가 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 너무 안타깝구나!"서은준: "당신이 오기 전에 사망한 거 확실해요? 저도 오늘 왔었어요, 제가 왔을 땐 분명 아주 멀쩡했다고요!"서 어르신: "물론 다 사실이지! 못 믿겠으면 의사한테 물어봐!""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요!" 서은준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간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우리 엄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저 사람 오기 전에 돌아가신 거예요, 아니면 오고 나서 돌아가신 거예요?"겁에 질려 있는 간호인들 부들부들 떨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서 어르신은 분노에 가득 찬 어조로 간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묻고 있잖아요. 말해 보세요! 제가 여기 왔을 때 당신 어디 있는지 그림자도 못 봤는데 혹시 밖에서 놀고 있던 거 아니에요?"간호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오셨을 때 물 받으러 잠깐 병실에 없었어요. 아버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어머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번 달 비용은 받지 않을게요!"간호인은 말
서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당신 나 지금 무시하는 거야? 우리 서씨 집안이 지금 좀 상황이 안 좋긴 해도 T국에서 여전히 명망있는 가족 기업이라고! 은준이가 철이 없다고 당신까지 이렇게 무식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은준이 뒤에 내가 없었다면 박씨 집안에서 우리 은준이 거들떠 보기나 할 것 같아?"서은준의 어머니: "그 입 다무세요! 박씨 집안에는 당신처럼 속좁은 사람 없어요! 현이 가족들은 우리 은준이를 무시하지 않는다고요! 그니까 괜히 쓸데없이 그분들 귀찮게 하지 마세요!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괜한 짓 하지 말라고요!"서 어르신: "정말이야? 박씨 집안에서 정말 은준이를 반대 안 해? 어떻게 반대 안 할 수가 있지? 설마 은준이더러 A국에 가서 데릴사위라도 하라는 건가?"서은준의 어머니: "그러든 말든 당신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당신 여태껏 은준이 돌본 적 없잖아요. 이젠 은준이도 독립했으니 당신 도움 더 필요 없어요! 만약에 은준이 여자친구가 현이가 아니었다면, 현이가 박씨 집안 딸이 아니었다면 당신 이렇게 부지런히 저 찾아오지 않았을 거잖아요... 당신이 어떤 마음 품고 있는지 제가 모를 것 같아서 그래요?"서 어르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은준이 18살 때 당신이 내 곁으로 보냈잖아? 당신은 못 키우겠다고 나더러 키우라고 했잖아? 내 도움이 없었다면 은준이 저렇게 유학 다녀올 수 있었을 것 같아? 만약에 유학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능력있을 것 같아? 지금 저렇게 사업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덕분이라고!"서은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올라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은준이더러 대학 등록금 다 갚아주라고 할게요!"서 어르신: "이건 대학 등록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은준이 내 아들이야, 엄연한 내 피가 흐르고 있는 내 아들이라고!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은준이가 나중에 잘 지내던 못 지내던, 이 애비 떨쳐낼 생각은 꿈도 꾸지
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 지금은 안 가요. 저 신경쓰지 말고 당신 할 거 하면 되요."서은준: "여기 있어봤자 너한테 시간낭비일 뿐이야."현이: "저 그동안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생활도 열심히 했다고요, 잠깐 쉬겠다는데 뭐가 어때서요."잠시 후 진지한과 배유정은 호텔로 돌아왔고 네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서은준의 어머니는 현이의 오빠와 새언니가 오는 것을 몰랐기에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서은준의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으나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었다.현이는 전동으로 서은준 어머니의 병실 침대머리를 올려 주었다. "어머님, 저희 오빠랑 새언니 신혼여행 겸 여기 놀러 왔다 어머님이랑 은준 씨 보러 여기 들른 거예요."서은준의 어머니: "아이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현이를 알게 된 건 정말 우리 아들의 행운이에요..."배유정: "어머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은준 씨도 얼마나 훌륭한데요. 그렇지 않으면 현이도 은준이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서은준의 어머니: "듣기론 현이 집이 엄청난 부자라던데... 혹시 우리 은준이 반대하는 건 아니죠?"배유정: "어머님, 저희도 사람 됨됨이와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은준이랑 현이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두 아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라면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거예요."서은준은 어머니: "네... 정말 고마워요! 유일하게 걱정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게 바로 제 아들이에요. 현이네 집에서 우리 아들 너무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우리 아들이 자존심이 강하거든요..."진지한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서은준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어머님 아들 무시하는 일 없을 겁니다."현이는 오빠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깊은 감동을 받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서은준의 손을 꼭 잡았다.진지한은 병실에서 잠시 머물다 나갔다.현
현이는 긴장감에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서은준과 큰 오빠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얘기들을 다 꺼냈고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큰 오빠도 화를 내지 않았고 서은준 역시 화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사실상 이미 그녀의 걱정과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였다.하지만 현이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은준 씨, 좀이따 저희 남편이랑 병원에 가서 어머님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식사를 마친 후 배유정이 서은준에게 물었다.서은준: "좋아요."현이: "어머님께 미리 말씀 드릴까요?"서은준: "괜찮아. 이따 가서 직접 소개해 드리면 돼."서은준 어머니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고 휴대폰을 안쓴지 이미 오래 되었다.보통 간호인이 매일매일 서은준에게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보고하곤 하였다.배유정: "사업도 하느라 어머님도 챙기느라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텐데."서은준: "현이의 예전 생활은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어요. 현이도 무너지지 않고 씩씩하게 잘 버텼는데 저도 잘 이겨낼 겁니다."배유정: "하하! 둘 다 씩씩한 사람이라 좋네요. 지금이든 나중이든 어떠한 곤난도 두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예요."현이: "언니 정말 너무 좋아요! 언니는 정말 제가 봤던 사람들 중 저희 엄마 제외한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에요."배유정은 현이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진지한: "너희 언니가 이 말 들으면 서운했을 거야."현이: "언니는 당연히 다르죠! 제 마음속 언니는 부드러운 성격이 아닌 용감하고 씩씩한 슈퍼 히어로같은 존재니까요."배유정: "라엘이 성격에 슈퍼 히어로가 되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현이: "아무튼 언니는 절대 저와 이런 걸로 다투지 않을 거예요."배유정: "당연하지. 다들 배 부르게 먹었어? 다 먹었으면 오빠한테 계산하라고 할게."이 말을 들은 진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서은준도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계산할게요."현이는 애원하듯
현이가 말을 마친 후 서은준도 입을 열었다. "우선 열심히 일하고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될 때 다시 책임지고 싶습니다."진지한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사업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 그럼 사업이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혹은 계속 미지근하게 아무런 진전도 없으면?"서은준: "형님이 말하신 것처럼 사업에 실패하거나 아무런 성과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현이 고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진지한: "자기 분수는 잘 알고있네."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큰 오빠, 은준 씨 사업이 실패하거나 아무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다고 해도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돈 때문에 은준 씨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배유정은 다시 한 번 진지한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의 말이 심했다고 일깨워 주었다.다른 사람에게 차갑고 날카롭게 공격적일 순 있어도 현이에게 이렇게 공격적이진 못했다.현이 역시 자신의 말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느꼈는지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큰 오빠, 전 그냥 돈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그리고 저희 집 이미 충분히 돈 많잖아요. 아무리 돈 많은 상대를 찾는다고 해도 저희 집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예요. 어차피 우리 집보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면 돈이 많은 사람을 찾든 좀 적은 사람을 찾든 다 똑같잖아요."배유정: "현이 말이 맞아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고 두 사람의 감정이에요. 만약에 상대방이 서은준 씨보다 돈이 더 많지만 현이한테 잘하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에게 현이를 억지로 시집 보내는 건 아무 의미 없잖아요."진지한: "우리 집 조건만 봐도 현이한테 잘해주지 않을 남자는 없어."배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진지한이 말한 것 역시 사실이였기 때문이다.현이가 누구에게 시집을 가든 함부로 현이를 건들지 못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친정이 재력가인 힘이었다.현이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잘해주는 이유가 저희 집안 때문이라면 서은준 씨는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