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에 글들은 그의 머리에 들어가지 못했고 그는 전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젠장…….’은수는 볼펜을 힘껏 탁자 위에 던지며 넥타이를 풀고 나가서 바람 좀 쐬려고 했다.밖으로 나가자 출근한지 며칠 되지 않는 인턴들이 작은 소리로 얘기를 하고 있었다.“너희들 그 영상 봤어? 영상에 나오는 여자 말이야, 어디서 본 거 같은데?”“예전에 우리 회사에 출근했던 그 차…… 차 뭐였더라?”“차수현? 근데 난 그 여자에 대한 인상이 꽤 좋았는데, 이렇게 파렴치한 사람일 줄이야. 그래서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거였어!”“하지만 그녀도 지금 참 불쌍하다. 앞으로 s시에서 살 면목이 없을 것 같은데. 나 같으면 아예 자살하고 말지.”은수는 원래 인턴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차수현의 이름과 불쌍하다느니 어쩌고저쩌고 말하는 것을 듣고 발걸음을 멈추었다.“너희들, 방금 누구 얘기를 하고 있었지?”“대표님, 저희는 그냥…….”인턴들은 은수가 그들이 한가해서 그냥 떠드는 수다를 들을 줄은 몰라 얼른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몇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며 은수가 화내길 기다렸다.“내가 지금 묻고 있잖아.”은수는 그들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것을 보고 원래 바닥난 인내심이 순식간에 바닥나며 말투가 싸늘해졌다.몇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결국 한 사람이 용기를 내었다.“저…… 저희도 그냥 인터넷에 올린 영상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 여자는 전에 회사에서 일했던 차수현 씨를 닮은 것 같다고 생각해서…….”은수는 이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그 직원의 손에 있는 핸드폰을 빼앗아 그녀들이 말한 그 영상을 보았다.영상 속의 수현은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마구 찍히고 있었고 화면은 아주 흔들렸지만 여전히 이 여자의 낭패한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입고 있던 옷은 누군가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졌고 머리카락은 어지러워졌으며 그녀는 끊임없이 그 사람들의 카메라를 피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
은수는 차에 탄 뒤 바로 가속페달을 밟았고 차는 쏜살같이 회사를 떠났다.속도는 엄청 빨랐지만 남자는 여전히 이를 악물고 도로를 주시했다.그가 도착하기 전, 그 여자한테 무슨 일이 생기지 말아야 할 텐데.……수현은 한 무리 사람들의 포위에 결국 어쩔 수 없이 공원의 한 벤치 아래로 숨었다. 그녀는 손과 발을 모두 벤치의 다리에 죽어라 매달리며 그 사람들이 자신을 끌고 갈 수 없도록 했다.구경하던 사람들은 그녀가 이런 곳으로 숨는 것을 보고 서서히 흥미를 잃으며 모두 흩어졌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현은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그녀에게 있어 가장 안전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행인들은 한 여자가 이런 곳에 몸을 이렇게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힐끗 바라보았다.그러나 수현은 지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넋이 나간 것처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니야, 난 그런 적 없어…….”은수는 광장에 도착한 후 사람들이 모두 흩어진 것을 발견하고 마음이 덜컹 가라앉았다.‘설마, 차수현은 이미 다른 곳으로 끌려갔단 말인가?’방금 전의 그 화면을 떠올리자 그는 참지 못하고 세게 차 문을 내리쳤지만 또 마음속의 화를 억누르고 이리저리 수현을 찾아 다닐 수밖에 없었다.수현을 찾다가 몇 사람이 걸어오며 방금 본 그 장면을 토론하고 있었다.“그 여자, 미친 거 아니겠지? 어떻게 이런 곳에 와서 숨었을까?”“내버려 둬 그냥, 그 여자가 뻔뻔스럽게 남자들 꼬신다고 들었어, 얼마나 더럽니.”“그래? 그럼 그녀도 정말 자업자득이네…….”은수는 이 몇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그들의 앞으로 걸어갔다.“당신들이 말한 그 사람, 지금 어디에 있지?”그들은 깜짝 놀라며 욕을 하려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은수의 핏발이 선 눈동자에 포악한 기운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갑자기 맥이 풀렸다.“그…… 그 여자는 저기, 저 벤치 아래에 숨어 있어요.”은수는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바라보니, 벤치 아래에 한
남자는 약간 충격을 받았고 그제야 현재 수현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비록 그녀는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지금 초점이 없었고 오로지 그의 그림자를 비췄을 뿐, 그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수현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다. 피비린내가 입안에서 퍼지자 그녀는 눈앞의 사람과 같이 죽으려는 충동이 생겼다.그들이 그녀를 이토록 핍박한 이상 그녀도 더는 가만있지 하지 않을 것이다. 너 죽고 나 죽고.수현은 갈수록 세게 물었고 은수는 심지어 여자의 송곳니가 자신의 피부를 뜯고 있는 것을 느꼈으며 통증이 점차 엄습하고 있었다.그러나 지금의 그는 이런 것들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수현의 무척 불쌍한 모습을 보고 은수는 어쩔 수 없이 다른 한 손을 내밀어 그녀의 눈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차수현 씨, 정신 좀 차려. 이제 누구도 감히 당신을 다치게 할 수 없으니 이제 그만 물어. 내가 당신 데리고 병원에 갈게.”수현은 눈앞이 캄캄했고 이때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척 익숙하고 또 무척 그녀를……. 안심시켰다.은수는 수현의 가늘고 긴 속눈썹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더 이상 발버둥 치지 않았고 그의 목소리에 아무런 저항도 없는 것 같았다.은수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수현은 점차 조용해졌고, 한사코 벤치를 안고 놓으려 하지 않던 손도 어느새 놓았다.은수는 얼른 그녀를 안았다.수현은 지금 온몸이 먼지와 진흙으로 뒤덮였고 무척 지저분해서 원래 깨끗했던 은수의 양복까지 더럽혔다.그러나 줄곧 심한 결벽증이 있던 남자는 이를 지각하지 못한 듯 자신의 외투를 벗어 수현의 몸에 덮었다.은수는 수현을 안고 차에 올라 품속의 여자를 조수석에 내려놓고 또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 주었다.수현은 말없이 눈을 감으며 마치 잠든 것 같았다.은수는 평온해진 그녀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도 더는 생각할 겨를이 없어 핸드폰으로 의사에게 연락한 뒤 차를 몰고 별장으로 돌아갔다.사람이 많은 병원으로 가기엔
은수는 온갖 방법을 다 써가며 수현을 달래고 있었고 하인은 깨끗한 옷을 들고 문을 두드렸다.“도련님, 제가 도와드릴까요?”은수는 미간을 찌푸렸다.“의사더러 진정제 가지고 오라고 해, 어서!”하인은 그의 말을 듣고 얼른 의사를 불러왔다.진정제를 맞자, 수현은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며 잠이 들었다.“도련님, 먼저 도련님 손에 있는 상처 부터 치료하세요. 아가씨께 샤워하고 옷 갈아 입혀 드리는 일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은수는 그제야 고개를 숙여 피가 멈추지 않는 손의 상처를 보았다. 방금 수현을 달래느라 그는 상처가 찢어지는 것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당신은 그녀와 함께 차수현의 상처를 잘 처리하고.”남자는 의사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는 밖으로 나갔다.은수는 소독제와 붕대를 찾아 스스로 간단하게 상처를 처리했다.그 깊은 이빨 자국을 보면 이 여자는 정말 독하게 자신을 깨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잠시 후, 은수는 상처를 다 치료했고 하인도 수현에게 샤워를 해준 뒤,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혔다.지금의 수현은 혼수상태에 빠졌기에 방금 전처럼 미친 듯이 날뛰는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졌다.“어떻게 됐어?”은수는 의사한테 물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아가씨의 몸은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저 찰과상과 멍이 좀 들어서 며칠 푹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하지만…….”의사가 말을 하려다 멈추는 것을 보고 은수는 안색이 어두워졌다.“하지만?”“아가씨한테 아마도 심리적인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큰 자극을 받은 후 나타난 스트레스 반응인 것 같습니다. 아가씨께서 깨어나신 후에야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은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수현의 잠자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비록 그녀는 지금 안전한 곳에 있었지만 여전히 고운 이마를 찌푸리고 있었고 때때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몸도 가능한 한 웅크리고 뻗지 못하고 있었다.이 여자는 꿈에서도 불안해하는 건가?은수의 마음은 말로 할 수 없이 아팠다.“먼저 나가봐.”은수가 입을 열자 하인과
그러나 수현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은수는 당황해 하며 어제 의사가 한 말을 떠올리며 재빨리 사람을 불렀다.의사는 와서 또 한참을 검사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가씨의 몸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도련님, 여전히 제가 어제 말씀 드린 그 상황입니다. 아가씨께서 지금 심리적으로 자극을 받아서 회복하려면 반드시 마음의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그럼 정신과 의사를 불러 치료할 수밖에 없습니다.”은수는 주먹을 불끈 쥐더니 어제 핸드폰에서 본 그 영상을 떠올렸다.바로 그 사람들이 그녀가 붕괴할 정도로 몰아붙였단 말인가?“알았어, 지금 당장 최고의 정신과 의사를 찾아 그녀에게 심리치료를 하도록 해.”은수는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정신과 의사가 오기를 기다렸다.정신과 의사는 수현과 대화를 하려고 시도했지만, 그녀는 시종 대답이 없었다. 마치 자신을 완전히 가두며 더 이상 누구와도 소통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한참 지난 뒤, 정신과 의사는 한숨을 쉬며 은수를 불렀다."환자분의 상태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습니다.”“뭐라고? 낙관적이지 않다니!”은수는 폭발하기 직전이었고, 이 말을 들은 순간, 더는 참지 못했다.그의 어두운 눈동자는 분노를 띠며 의사를 쳐다보고 있었고 마치 그를 찢어버리려는 것 같았다.“도련님, 진정하십시오.”정신과 의사는 은수의 질문에 무척 놀랐지만 그냥 떠나버릴 수도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말했다.“환자분은 지금 자기 보호 상태에 처해 있으셔서 외부와 소통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환자분의 잠재의식이 이렇게 하면 자신을 다치게 안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아무리 좋은 정신과 의사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환자분은 치료받을 생각조차 없기 때문입니다.”“그럼 어떡해야 하지?”은수는 화가 나서 한쪽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그는 여태껏 이런 상황에 부딪친 적이 없었지만, 한때 활발했던 수현이 이렇게 벙어리가 되어 다시는 그와 한마디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는
줄곧 결단력이 있던 남자는 지금 모처럼 진퇴양난의 선택에 빠졌다.“내가 생각을 좀 해봐야겠어.”은수가 손을 흔들자 정신과 의사도 얼른 자리를 떠났다.잠시 후, 하인이 와서 문을 두드렸다."도련님, 지금 시간도 늦었는데, 우선 아가씨에게 음식 좀 먹일까요?”은수는 하인이 가져온 담백한 죽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하인이 죽을 수현 앞에 놓자 은은한 향기가 방안에 퍼지며 사람의 입맛을 돋웠다. 그러나 침대에 앉은 수현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도 상대도 하지 않고 그곳에 앉아 멍을 때리고 있었다.하인은 숟가락으로 죽을 떠서 수현의 입가로 보냈지만 그녀는 고분고분 입을 벌리지 않고 오히려 하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하인은 마음이 좀 급해졌다. 그러나 수현이 협조하지 않은 이상, 그녀가 조급해해도 소용이 없었다.이를 본 은수는 눈살을 찌푸렸다."이리 줘, 내가 방법 생각해 볼게.”하인이 은수에게 죽을 건네자 남자는 수현 앞에 앉았다."차수현 씨, 내 말 들려? 밥 먹자.”은수는 수현이 다시 놀랄까 봐 인내심 있게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볍게 말했다.수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매우 멍한 상태에 처해 있었다.외부의 일에 대해 그녀는 듣고 싶지도 어떤 반응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그녀는 자신이 안전하고 다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은수는 그녀가 자신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을 보고 포기하지 않고 죽 한 숟가락을 떠서 가볍게 불었다. 그리고 뜨겁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현에게 먹여주려 했다.이 여자는 어제 돌아와서부터 줄곧 잠을 잤기에 오늘 아침까지 이미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다. 강철로 만든 인간이라도 지금쯤 굶주린 상태일 것이다. 비록 본인이 음식을 먹으려 하는 의식이 없어도 본능은 아닐 수 있었다.수현은 음식 냄새를 맡고 고개를 숙여 미적지근한 죽 한 숟가락을 바라보았다.은수는 그녀가 마침내 약간의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 계속 그녀를 달랬다."특별히 당신을 위해 만든 건데, 한번 먹
손에 든 그릇을 내려놓은 은수는 휴지로 세심하게 수현의 입가를 깨끗이 닦고서야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에 묻은 얼룩을 처리했다.수현은 음식을 먹은 후 또 그곳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을 때렸다.그러나 그녀는 이미 예전처럼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니 은수는 이것도 나름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했다.은수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할 때, 전화가 울렸고 어르신이었다.침대에 앉은 수현은 벨소리를 듣고 놀란 듯 다시 구석으로 움츠렸다.은수는 그녀가 또 놀랄까 봐 소리를 끄고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은수야, 너 지금 어디야? 새아가는? 너랑 같이 있는 게야?" 어르신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오늘 은비는 진수와 함께 아침 일찍 본가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어제 일어난 일을 그에게 말했다.어르신은 그제야 자신이 무심결에 지정한 혼사가 뜻밖에도 이렇게 큰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즉시 은수를 불러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하려고 했다.은수는 이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어제의 일은 인터넷에서 난리가 나서 그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해 즉시 사람더러 그 망할 뉴스와 영상을 처리하라고 했다.그리고 은수는 어르신이 될수록 이런 일로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어르신은 모든 것을 알게 됐다.“아버지, 이 일은 제가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은수가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할 필요가 없다니,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너 빨리 집에 한 번 들려라. 이 일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해."어르신도 비록 수현이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이 일은 온가네의 명예와 관계가 있었고 그가 가장 아끼는 두 사람과 관계가 있었으니 그는 일이 최악의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은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수현의 상황은 무척 심각했으니 그는 또 어찌 그녀를 혼자 여기에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네가 오지 않는다면, 나도 직접 너를 찾아갈 수밖에 없구나.”어르신은 은수가 내키지 않는 것을 보고
”아버님, 이번엔 더 이상 은수 편드시면 안 돼요. 우리 은서도 지금 그 불여우한테 홀려서 집에서 단식 투쟁까지 하고 있다고요. 만약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은비는 어르신이 서글퍼하는 것을 보고 재빨리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은수는 아버지의 아들이지만 저희 은서도 아버지의 손자잖아요. 집안의 재산도 이미 대부분 은수에게 준 마당에, 저도 아버지께서 이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리라 믿어요."진수도 뒤처지지 않고 얼른 재산에 관한 일을 꺼냈다.어르신은 원래 심란한 데다, 큰 아들네 식구가 머릿속에는 온통 돈과 이익만 있을 뿐, 어떻게 이 일을 처리할지 생각하긴커녕 오히려 재잘거리며 일을 크게 벌일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더욱 화가 났다.어르신은 은비를 매섭게 노려보았다."자네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나? 이 일을 알았으면 왜 나와 먼저 상의하지 않고 굳이 온 세상에 퍼뜨린 게야?”은비는 억울해하며 당당하게 말했다."그야 당연히 아버님께서 저희를 싫어하니까 그랬죠. 저는 아버님께서 무조건 은수 편들까 봐 걱정해서요. 그때 가면 고생은 저희 은서가 다 하는 거 아니겠어요? 저도 아들을 위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요!”“너...... 너…….”어르신은 은비가 당당하게 대꾸하는 말에 화가 나서 하마터면 숨이 넘어갈 뻔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은비를 가리키다가 결국 내려놓았다.요 몇 년 동안 어르신은 줄곧 진수와 은수의 관계를 평형하려고 노력했다.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아들이었으니 그는 또 어찌 형제가 원수로 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까.다만 애석하게도 진수와 은비는 그야말로 고집불통이었다. 그들은 종래로 자신의 지나친 행위를 반성하지 않고 오로지 그가 은수의 편만 든다고 불평만 늘어놓았다.예전 같으면 어르신은 틀림없이 지팡이로 그들을 쫓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가 안배한 액막이 신부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그도 은비의 억지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세 사람은 거실에서 저마다 다른 속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