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형의 모습은 누가 봐도 질투하는 것이었다.정말 어이가 없었다. 과부와 썸 타면서도 나를 위해 질투한다니 말이다. 소유욕도 욕심도 어처구니없이 많았다.나는 화장실에 잠시 있다가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마침 조나연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아주 처량하게 말했다.“유형 씨 아직도 지원 씨 좋아하는 거지? 그런 거지?”“지원이는 내 약혼녀야.”강유형의 말은 내 추측을 검증하는 셈이었다. 그는 아직도 나에게 미련이 있었다.“근데 둘은 이미 헤어졌잖아.”조나연의 목소리는 아주 나른했다. 남자 하나 꼬시겠다고 목소리까지 조절하는 것은 꽤 대단했다.“헤어진다는 말은 나왔지만, 난 허락 안 했어. 그리고 지원이는 나랑 헤어지지 못해. 지금도 잠깐 화가 났을 뿐 풀리면 괜찮아 질 거야.”강유형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나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내가 헤어지자고 했던 말을 잠시 화내는 거로 생각했던 것이다.“남자들은 다 그래. 익숙한 건 소중한 줄 모르고 잃고 나서야 아쉬워하지.”조나연의 말에 강유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조나연이 말을 이었다.“지원 씨랑 계속 만날 거면 나한테 왜 잘해줘? 나한테 잘해줘서 지원 씨가 오해한 거 몰라?”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도 궁금한 문제였다.오늘 이 대화를 듣기 전에, 나는 강유형과 조나연이 정말 서로를 사랑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강유형이 이런 식으로 말할 리는 없을 것 같았다.강유형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서 몸을 숨겼다. 그곳에서는 마침 복도 끝의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어두운 안색으로 고개를 숙인 강유형은 발끝만 바라봤다.“지원 씨를 좋아한다면 왜 나랑 키스까지 했어?”조나연의 말을 듣고 나는 몸을 흠칫 떨었다.‘둘이 키스까지 한 거야?’나의 마음이 쿵 하고 울리더니 무언가 끊어져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유형 씨, 빨리 대답해!”조나연이 흥분해서 강유형의 옷을 잡아당겼다.“왜 나랑 키스했
나는 오후 3시부터 저녁 9시까지 술집에 있었다. 많이 마신 건 아니지만 그래도 꽤 오래 마셨다. 마지막쯤에는 몸에 힘이 풀리며 머릿속이 창백해졌다.술집 사장은 나와 아는 사이였다. 그래서 혼자 늦게까지 마셔도 사고가 생길 걱정은 없었다.“오늘 언제 가요? 데리러 올 사람은 있어요?”사장은 지 씨였다. 이름이 뭔지는 나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를 지 사장이라고 불렀다.지 사장은 50대 정도 되어 보였다. 만약 내 아버지 살아있었다면 비슷한 나이대였을 것이다.“지금 갈 거예요.”사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 또 할 일이 있는 관계로 빨리 돌아가서 쉬어야 했다.오늘 마신 술은 강유형과의 완전한 이별을 선고했다.내가 의자를 짚고 일어날 때 지 사장이 와서 막아섰다.“지원 씨 혼자 가는 건 걱정돼서 안 되겠어요. 사람 보내서 지원 씨 데려다주라고 할게요.”지 사장은 아주 세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몇 년째 골목길에서 운영하는 이 술집은 장사가 아주 잘 되었다.이곳 손님 중 대부분이 단골이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이곳을 알았다. 처음에는 강유형이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와 가까이 지내서 질투하는 마음에 온 것이었다.그날 술에 취해 기절한 나는 아침까지 술집에 있었다. 고요한 술집에는 나 혼자만 있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일어난 나한테 지 사장은 해장국을 건네줬다. 술 마시고 싶으면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자신에게 오라며 말이다. 그는 다른 곳에서 나쁜 사람이라도 만나면 큰 일이라고 했다.그 이후 나는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이곳에 방문했다. 지 사장은 내가 고주망태가 되어도 말리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안전만 보장해 줄 뿐이다.지 사장에게는 딸이 있었다. 그의 딸은 17살쯤 되던 해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술을 마셨다가 나쁜 사람을 만났다. 후에는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다가 자살했다고 한다.그렇게 지 사장은 이 술집을 열어서 술의 위로가 필요한 여자들을 보호해 줬다.“좋아요.”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괜히 지 사장을 걱정시키고 싶지
나는 자전거를 안 탄 지 한참 된 것 같았다.“자전거 탈래요.”나는 한쪽에 있는 따릉이를 가리켰다. 강진혁이 먼저 큐알 코드를 스캔했고 나도 뒤따르려고 했다.이때 강진혁이 나를 말리며 말했다.“넌 술 마셨으니까 안 돼.”“자전거도 음주 운전에 속해요?”“그건...”강진혁은 내 팔을 잡았다. 강유형이 늘 그랬듯 아프게 잡은 것이 아닌 아주 살며시 잡았다.“술 마시고 자전거 타는 건 위험하잖아.”그는 정말 물같이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오빠도 같이 있잖아요.”“자전거 타고 싶으면 다음에 같이 타자. 오늘은 내가 데려다줄게.”강진혁은 나를 자기 자전거의 뒷좌석에 앉혔다.“넘어지지 않게 꽉 잡아.”나는 그의 허리를 잡으며 대답했다.“네.”저녁 바람 속에서 자전거를 타는 소년이라... 이는 강진혁이 나에게 남겨준 추억이다. 강유형은 다르다. 그는 오토바이만 탔다.두 사람은 너무나도 달랐다. 분명히 형제인데도 성격이 정반대였다.“오늘 기분 안 좋을 일 있었어?”강진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니요.”“유형이 때문에 그러지? 아직도 포기 못 했어?”강진혁이 또 물렀다.나는 콧방귀를 뀌며 그를 콕 찔렀다.“누가 포기 못 했다고 그래요? 진작 포기했거든요. 오늘부로 다시는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완전히 다른 길을 갈 거라고요.”강진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앞으로 갈 뿐이었다.이때 무언가 떠오른 나는 말을 보탰다.“호텔에 데려다줘요. 내일 출근해야 해요.”“지원아.”강진혁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왜 너한테는 유형이 밖에 안 보일까? 나도 여기 있는데, 왜 알아주지 않아?”나는 그의 옷을 더욱 꽉 잡았다. 심장은 쿵 하고 크게 울렸다.나도 바보가 아니다. 강진혁이 나를 좋아하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그저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진짜 날 동생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었구나.’“약혼했으니까, 사람들이 다 그래야 한다니까, 더 눈에 띌 수밖에 없죠.”“둘이 이제 헤어졌으면... 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사실 꽤나 난처한 상황이었다. 한 여자가 두 남자 사이에 끼어 있다니 말이다.나는 이 어색함을 깰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와 강진혁은 절대 불가능했다. 만약 두 사람 중 한 명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진정우를 선택할 것이다.어찌 됐든 나와 강유형은 거의 혼인 신고를 할 뻔한 사이다. 그와 끝을 내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형과 얽힐 수는 없었다.“오빠, 저 피곤해요.”오빠라는 말은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강진혁은 결국 내 손을 먼저 놓았다.진정우는 나를 잡고 호텔에 들어갔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서도 강진혁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내 마음이 어지러워서인지, 나는 호텔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뎌버렸다. 순간 몸이 가벼워지며 진정우가 나를 안아 들었다.“이거 놔요.”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진정우의 옷을 꽉 붙잡았다.“저 사람 때문에 난감한 거 아니었어요? 빨리 벗어나고 싶으면 가만히 있어요.”진정우는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강진혁이 한 말을 떠올리며 나는 조용히 안긴 채 움직이지 않았다.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강진혁과는 절대 엮여서 안 된다. 나는 정말 그를 친오빠로 생각했기 때문이다.나는 한 번도 그를 다른 시선으로 본 적 없었다. 그리고 이 관계는 나에게 아주 소중했다. 망가지게 두고 싶지 않았다.강진혁은 내성적인 사람이다. 그는 쉽게 고백하지 않았고 집착하지도 않는다.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오해한다면 무조건 물러날 것이다.결국 나는 진정우의 품에 안긴 채 호텔 로비에 들어섰다. 그는 나를 방 앞까지 안아서 데려다줬다.나는 강진혁의 마음을 알아챈 것처럼 진정우의 마음도 알아챘다. 오늘 강진혁과의 관계를 정리한 참에 그와의 관계도 확실히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그가 나를 내려놓은 다음에도 나는 그의 옷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가슴팍을 응시하며 솔직하게 말했다.“정우 씨는 되게 잘생겼어요.”“네.”내 말에
“네.”진정우가 단호하게 대답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저도 통제할 수가 없어요. 자꾸 팀장님한테 다가가고 싶고, 잘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 유혹이라는 것도...”사랑이란 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라면 인생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입을 다물었다. 진정우는 조용히 나를 놓아주었다.“들어가서 물 많이 마셔요. 필요한 게 있으면 전화하고요.”그는 말을 마치고 내 가방을 가리켰다.“카드 이리 줘요. 문 열어줄게요.”“아니에요.”나는 정신을 차리며 그와 거리를 벌렸다.“제가 할게요.”급히 카드를 꺼내 안으로 들어간 나는 문에 기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잠시 후 이소희가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내가 깰까 봐 조심스레 움직였다.나도 눈을 뜨지 않았다. 말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혼자서도 잘 자고 있었네.”이 말을 듣고 나는 이불 속에서 주먹을 쥐었다. 아무래도 진정우가 이소희에게 나를 부탁한 모양이다.‘진정우...’나는 도대체 어쩌다 그와 얽히게 된 걸까?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또 꿈을 꿨다.꿈은 혼란스러웠다. 나는 꿈속에서 부모님을 보았다. 그들이 사고를 당했던 장면을 말이다.비록 사고 현장을 본 적은 없지만, 나중에 경찰서에서 몰래 사건 파일을 뒤져서 사진을 본 적 있다. 그 끔찍한 장면은 내 기억 속에 깊이 새겨져 악몽이 되었다.나는 강씨 가문에 간 초반에 악몽을 자주 꿨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거의 꿈을 꾸지 않았다. 그런 꿈을 오늘 다시 꾼 것이다.일어나 보니 해는 아직 뜨지 않았다. 현재 시각은 새벽 5시였다.최근 들어 항상 이 시간에 일어났다. 아무리 늦게 자더라도 말이다.어제 술을 많이 마셨지만 다행히 머리도 아프지 않고 정신이 말끔했다. 핸드폰에 부재중 통화와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전화가 무음으로 되어 있어 몰랐던 것이다.안리영에게서 두 번의 전화
김희연은 전화가 통하자마자 집에 돌아와서 밥 먹으라고 했다. 밥은 핑계고 나한테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아주머니가 만들어주신 만두 잘 먹었어요. 요즘 집에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놀이공원 쪽 일이 바빠서 쉬는 시간도 없어요. 언제 여유가 생기면 돌아갈게요.”나는 완곡하게 거절했다.“유형이도 참, 왜 너한테 급한 일을 맡겼다니? 내가 단단히 혼내주마.”김희연은 화난 척 말했다.“유형이 탓 아니에요. 이미 정해진 일이었어요.”그래도 강유형은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개인적인 원한으로 나를 힘들게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그래, 알았다. 일이 더 중요하지.”김희연은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일이 바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 바쁘다고 해도 이제 그곳에 돌아갈 명분은 없었다.김희연도 자주 실망하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별이 전제되어 있기 마련이다. 마치 나와 부모님, 그리고 나와 강유형처럼 말이다.나와 이소희는 조식을 먹으러 갔다. 그때도 진정우는 보이지 않았다.“진 기사님 저희랑 같이 출근하는 거 아니었어요? 왜 또 먼저 갔죠?”이소희가 투덜댔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내 어깨를 톡톡 치면서 말했다.“근데 진 기사님 언니한테 특별한 것 같아요. 어제도 저한테 언니 취한 것 같으니까 잘 부탁한다고 했거든요. 두 사람 어제같이 술 마셨어요?”“아니요!”“그럼 진 기사님은 어떻게 알았어요?”이소희는 참 궁금한 게 많았다.“만났어요, 호텔 아래에서.”“아, 그렇구나.”이소희는 여전히 의심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그렇게 보지 마요. 저랑 진 기사님 그런 사이 아니에요.”나는 이소희가 미처 묻지 못한 질문에 답을 해줬다. 그러자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그런 사이라고 해도 괜찮아요. 제가 비록 진 기사님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냥 단순히 얼굴을 좋아하는 느낌이랄까요? 연예인 좋아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요.”“저희같이 연예인
“네, 전등에 문제가 생겨서요.”내가 설명할 때 김희연은 이미 진정우가 일하고 있는 사다리 아래로 갔다.“안전장치도 없이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안전이 제일이에요, 기사님.”역시 사모님다운 순간이었다. 김희연은 한눈에 문제점을 찾아냈다.사실 진정우는 계속 안전장치를 하고 있었다. 조금 전 내려왔다가 잠깐만 올라간다고 지금은 안 한 모양이다.“제가 주의시킬게요.”나는 곧 진정우에게 말했다.“왜 안전장치 없이 올라갔어요. 빨리 내려와요.”진정우는 순순히 내려와서 말했다.“앞으로 조심할게요. 죄송합니다.”잘못을 인정하는 초등학생과 같은 모습이었다. 순간 내가 너무 거칠게 말했나 싶었다.김희연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기사님을 보호하자고 있는 안전장치예요. 먼저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사랑하죠.”직장인이 아니라고 해도 재벌가 사모님은 사모님이었다. 하는 말의 기세가 남달랐다.하지만 나는 어딘가 의미심장한 느낌이 들었다.“네, 사모님.”진정우가 대답했다.“오전 내내 힘들었죠. 제가 식사를 가져왔으니 얼른 드세요.”김희연은 다시 부드러운 태도로 말했다. 진정우는 인사를 하고 나서 밥 먹으러 갔다. 김희연은 그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몸 튼튼하니 일 잘하게 생겼네.”나는 김희연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강유형과 똑같이 진정우를 얕보고 있었다.오늘 김희연이 찾아온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강유형에게서 진정우에 관해 전해 들은 모양이다.“저희 엔지니어예요. 전등을 담당한.”내가 설명을 보탰다.김희연은 재벌가 사모님이다. 대단한 사람이라면 수없이 만났기에, 지금도 그냥 싱긋 웃기만 했다.“배고프지? 사무실에 가서 밥 먹자. 우리 밤 먹으면서 얘기해.”나에게는 다시 부드러운 태도로 돌아왔다. 나도 거절하지 않고 따라갔다.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기사는 이미 음식을 펼쳐 놓았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음식들은 전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먹는 것과 이소희 등이
김희연은 잠깐 멈칫하다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유형이 이 자식 때문에 남자라면 지긋지긋해진 거니? 세상에 나쁜 남자도 있겠지만, 좋은 남자가 훨씬 많아.”김희연은 성격이 좋고 말도 잘했다. 50대가 됐는데도 젊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쓸 줄 알았다.나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좋은 남자라고 해도 아직은 생각 없어요. 조금은 숨을 돌리고 나서 다시 생각하려고요.”김희연이 소개해 주는 걸 막기 위해 한 말이었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서로 어색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하긴.”이 두 글자를 듣고 나는 시름을 놓았다. 하지만 곧이어 반전이 찾아왔다.“그래도 연애는 빨리해야지. 안 그러면 좋은 남자 다 뺏긴다?”나는 피식 웃었다. 김희연도 따라 웃었다.“우리 지원이처럼 착하고 예쁜 애를 누가 만날까? 웬만한 복으로는 안 될 거야.”김희연이 또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칭찬만 들으면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도 이제는 받아 치는 방법이 생겼다.“아주머니 말대로 최고의 남자랑 만날 거예요. 최고라는 생각이 안 들면 차라리 기다릴래요.”“맞아, 그 말은 나도 동의해. 아무나 대충 만나는 건 절대 안 돼. 상처받았다고 해서 이상한 사람이랑 어울리며 복수하는 것도 안 되지.”이상한 사람이란 곧 진정우일 것이다.나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안 그래요. 제가 누군가 만난다고 해도 최고라고 생각해서 만난 걸 거예요.”나는 신중하게 선택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려고 한 말이다. 강유형을 포기한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김희연은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그녀와 10년의 세월을 함께 보냈다. 내가 커가는 것을 곁에서 본 사람이 나의 성격을 모를 리가 없었다.“그러면 다행이고.”이 말을 마지막으로 화제는 끝났다.나는 조용히 밥을 먹었다. 거의 다 먹어갈 때 김희연이 갑자기 물었다.“너 얼마 전 본가에 돌아갔다며?”나는 고개를 들어서 그녀를 바라봤다.“유형이한테서 들었어. 유형이가 그래도 널 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