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전체적으로 거칠고 딱딱하며 조금 무서운 인상을 주었다.몇 년 동안 내가 만났던 남자들은 모두 피부가 하얗고 잘 다듬었으며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양복과 코트를 입는 그런 부류였다.눈앞의 남자가 나에게 준 첫인상은 방금 그런 곳에서 풀려난 사람 같았다.나는 무의식적으로 가방을 꽉 쥐었다. 떠나기 전에 안리영이 내 가방에 넣어준 호신용 스프레이와 호신용 칼이 생각났다.하지만 내가 이것들을 만지기도 전에 남자는 아무 말 없이 택시의 시동을 걸고 떠났다.방금 왜 날 쳐다본 거지?나는 그 영문을 몰랐지만 방금 이 도시에 와서 치유된 마음이 다시 불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했다.경계심 때문에 나는 도시의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했다. 택시가 목적지에 이르자 나는 계산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 택시가 떠나는 것을 보자,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저녁 10시가 되었다. 이 시간에 여기에 온 것은 확실히 적절하지 않았다.예전에 부모님이 살던 곳을 찾고 싶다면 사실 대낮에 찾아와도 되었다. 어쨌든 지금은 이미 왔으니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지금 있는 이곳은 매우 허름해 보였다. 벽은 너덜너덜해졌고 바닥도 망가져서 울퉁불퉁하였으며 길에는 물이 고여 있다.나는 이런 길에서 캐리어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없어서 힘겹게 손으로 들고 갈 수밖에 없었다.아버지가 남겨 주신 주소는 옛골목 42호였다. 옛 거리의 집 건물 입구에 붙어 있는 문패를 보고 찾으니 정말 찾아냈다. 입구에 ‘임대’라는 글자가 씌어 있다.이런 집을 임대할 수 있다고?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곳에 와서 집을 구한 사람이 있겠어?나는 속으로 투덜대면서 들어갔다. 이곳은 작은 마당이 있고 사면은 모두 방이 있으며 마당 중간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어두워서 무슨 나무인지 알아볼 수가 없다.아버지는 이 나무가 은행나무이고 자라나는 것을 지켜봤다고 알려준 적이 있었다.“사람을 찾으러 왔어? 아니면 숙박하러 왔어?”어떤 노인의 목소리가 전해왔다.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였다. 손
“꼬맹이.”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매우 매력적이고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내 눈앞에 익숙한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진혁 오빠.”원래 핸드폰 번호를 바꾸면 강씨 집안의 사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강유형의 형인 강진혁이 이 번호를 알고 연락까지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내 번호를 저장해서 날 잊지 않았나 봐.”강진혁은 조롱 섞인 말투로 말하였다.그는 강유형보다 두 살 위였고 출국하지 않을 때는 나를 많이 챙겨주었으며 늘 ‘꼬맹이’라고 불렀다.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의 말투에 불만이 들어 있다.그가 방금 떠난 2년 동안에 나는 가끔 그와 연락하면서 그쪽에서 잘 지냈는지 물어보곤 했는데 나중에는 점점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강진혁은 원래 소극적인 성격이라 가족들과의 연락도 적었고 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지금 갑자기 이런 전화를 하는 것은 아마 나와 강유형의 결혼이 무산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강진혁은 가족과 연락이 뜸하지만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서로 정보를 주고받았다.“진혁 오빠는 이 번호를 어떻게 알았어요?”나는 직설적인 사람이라 궁금한 점이 있으면 추측하기 싫어하고 바로 묻는다.“예전에 통화요금을 내겠다고 나한테서 돈을 빌려 간 적이 있었잖아.”강진혁의 말을 듣고 나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공부의 신이야. 통화요금을 한번 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전화번호를 기억했고 그것도 10년 동안 기억했다니!당시 부모님이 사고가 난 후 아버지의 핸드폰은 나에게 남긴 유품으로 되었다. 갑자기 어느 날에 핸드폰이 정지된 것을 발견했다. 통화요금을 내고 싶었지만 당시 돈이 없었다. 김희연과 강두식에게 말하기가 어려워서 나는 강진혁을 찾아갔다.그는 내가 돈을 가지고 다른 용도로 쓸까 봐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물었다. 내가 통화요금을 낸다고 하자 그는 믿지 않고 나를 따라갔다.마지막에 그는 통화요금을 지불했고 이 번호까지 기억한 것이다.당시 그가 낸 통화요금은 내가 갚는 것을 까먹었다. 그래서 그의 전화를
원래 이런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았는데 강진혁의 말이 마치 기억의 스위치를 눌러버린 것처럼 지나간 일들이 머릿속에서 오래된 영화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유형이가 무슨 짓을 했어? 오빠한테 말해줄 수 있어?” 내가 침묵하자 강진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내가 말하지 않으면 그들은 의아해할 것이고, 강유형은 내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며칠 뒤에 내가 돌아가면 강유형 부모님도 물어볼 게 뻔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금 얘기해서 나중에 다시 이 문제를 마주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강유형 다른 여자랑 얽혀있어요.” 내 말에 강진혁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가 믿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난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 여자는 강유형 친구 아내예요. 두 사람 사이의 소문은 아저씨 아주머니께서도 알고 계시고요.”강진혁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오빠도 알고 있죠, 그렇죠?”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다. 나와 강유형은 이미 결혼식을 올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의 부모님이 이 문제를 물어보거나 조사할 것은 당연하고, 강진혁이 아버지께 묻지 않을 리도 없었다.“유형이는 너를 정말 많이 좋아해. 뭔가 오해가 있는 거 아닐까?” 강진혁은 내가 강유형을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와 똑같이, 이제는 강유형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의외는 아니었다. 그 몇 년 동안 강유형은 자주 나를 아내라고 부르며 다른 남자들이 가까이 오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강진혁과 조금 가까이 지내면 강유형은 항의하곤 했다.“오빠, 사람은 변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문 밖에서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우람진 남성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이내 집주인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우야, 돌아왔니?”내가 이사하려고 했던 집의 세입자인 것 같았다.잠시 후, 할머니의 말소리로 그 결론을 확정 지을 수
“정우야, 내가 말했지? 방을 바꾸고 싶어 하는 그 아가씨야. 두 사람 서로 얘기해볼래?” 집주인 할머니가 입을 열자 서로 마주보고 있던 우리는 서로 눈을 돌렸다.나는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윤지원이에요. 저기, 지금 살고 있는 방 저랑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싫습니다.” 그의 거절은 방금 머리를 감던 동작만큼이나 단호하고 깔끔했다.내 입가가 살짝 떨리며 속에서 불쾌함이 일었고, 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안 되죠?” 남자는 나를 한 번 흘끗 보더니 대답 없이 군복색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는 내 옆을 지나쳐갔다. 차가운 수돗물 냄새가 스치면서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했다.“지원이 맞지?” 집주인 할머니가 다가와서 말했다. “화내지 마. 정우는 여자를 어떻게 대하는 지 잘 몰라. 내가 나중에 다시 얘기해볼게.” 나도 기분이 언짢아 일부러 크게 말했다. “됐어요. 그 방에 산다고 인생이 활짝 피는 것도 아니고, 살고 싶은 사람이 실컷 살라고 하세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집주인 할머니가 나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렇게 화내지 마. 정우는 군인 출신이라서 훈련도 많이 받았거든. 진짜 화나면 너를 번쩍 들고 밖에 내던질지도 몰라.”헛... 나는 실소했다.영광스러운 인민의 군인을 마치 범죄자처럼 여긴 게 우습기도 했다.“이봐, 아가씨. 웃지 마. 장난치는 게 아니야. 진짜라니까... 저기 길 건너 ‘오향설’이라는 이름의 과부 있지? 그 여자가 자꾸 정우 집 문을 두드리더라고. 결국 정우가 침대 시트로 그 여자를 싸매서 그냥 던져버렸어. 이 동네 사람들 다 봤지.” 또 과부라니. 나는 참 과부와 인연이 있나 보다.“그래요? 그럼 둘이 잤어요?” 나는 궁금해져서 물었다.“올라가려고 했지만 결국 올라가지 못하고 던져졌지. 망신만 당했지 뭐야.” 집주인 할머니가 혀를 차며 말했다.나는 입가를 살짝 비틀며 웃었다. “걱정 마세요. 저는 과부들이 마음에 들어 한 남자에게는 관
딱딱한 침대 위에 누웠을 때 머릿속은 혼란스러우면서도 텅 비어있지만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어 카카오톡을 열었고, 이소희와 고준석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이소희는 이렇게 보냈다. [지원 언니, 오늘 하루 정말 바쁘게 지나갔어요. 그래도 언니가 시킨 일은 다 끝냈으니까 내일은 결혼 기념 사탕으로 저 보상해 주세요! 언니, 신혼 축하드리고 영원히 행복하시길 바랄게요.]이 메시지를 보며 나는 비웃으며 입가를 살짝 올렸지만, 답장은 하지 않았다.그 다음은 고준석의 메시지였다. [윤 비서님, 대표님을 오해하지 마세요. 두 분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면 제 잘못이 커집니다.”이 메시지에도 답하지 않고 나는 SNS를 열었다. 앨범에서 놀이공원에서 찍은 그림자 사진을 찾아 올린 뒤 이렇게 적었다. [연차 휴가, 즐겁게 보내기!] 그리고는 그동안 강유형과 관련된 모든 게시물을 삭제했다. 내가 하는 짓이 이혼하거나 헤어진 연예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더 이상 부부나 연인이 될 수 없으니 사랑에 관한 것들은 다 지워버리는 게 낫다. 괜히 마음만 상하고 스스로도 더럽히게 될 테니까.이렇게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 3시가 되었고 눈이 조금 피곤했던 나는 핸드폰을 옆에 던져놓고 눈을 감았다. 그때 밖에서 또 발소리가 들려왔다. 내 방 앞을 지나가는 소리였고, 이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정우가 돌아온 걸 알 수 있었다.늦게 잠들었지만 나는 외부 소음 때문에 일찍 깼다. 눈꺼풀이 뻑뻑하고 무거워 도저히 뜰 수가 없어서, 깨어있으면서도 일어나지는 않았다.“정우야, 오늘 저녁에 좀 일찍 돌아올 수 있겠니? 새로 온 세입자랑 같이 밥을 먹고 싶어서.” 집주인 할머니의 말이 꿈결 속에서도 나를 웃게 만들었다.‘이 할머니 참 열정적이시네, 나를 식사에 초대하다니.’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마치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오늘은 안 돼요. 두 분이 드세요.” 진정우의 목소리는 성격대
나는 할머니가 나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해주겠다고 한 게 너무 뜻밖이었다. 머릿속에 차가운 표정의 무심한 얼굴을 한 진정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방을 바꿔달라는 내 부탁을 단번에 거절하던 차가운 태도가 떠오르자, 장난기가 발동해 나는 가볍게 ‘좋아요’라고 대답했다.그렇다고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냥 흘려보낸 말일 뿐, 마음에 두지는 않았다. 아침을 먹고 난 후, 나는 할머니 댁에서 자전거를 빌려 이 작은 마을을 두루 돌아다녔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고, 나의 손에는 아침에 나갔을 때 없던 화판이 하나 더 들려 있었다.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부모님 덕분에 춤, 미술, 서예 수업을 들었고, 심지어 가야금까지 배웠다. 하지만 부모님이 떠나시면서 그 모든 것들은 중단되었고, 유일하게 계속된 것은 그림 그리기였다. 그것은 너무 간단했기 때문이다. 종이 한 장과 펜 하나면 충분했으니까.오늘 하루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옛날과 사뭇 다른 청평군의 풍경을 하나 그렸다. 부모님의 가장 큰 소원은 이곳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청평군을 그려서 그들에게 태워 보내드리기로 했다.“지원아, 이제 돌아오니?” 할머니가 나를 보자마자 다가오더니 눈을 찡긋거렸다.나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정우가 돌아왔단다. 내가 이미 그 얘기를 했어.” 할머니가 진정우의 방 쪽을 입으로 가리키며 말씀하셨다.나는 그제서야 아침에 할머니가 나한테 진정우를 소개시켜주겠다는 이야기를 한 걸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할머니, 정말로 얘기하신 거예요? 저 그냥 장난친 거였는데요.”“이런 걸 장난으로 하면 안 돼. 난 이미 말했어.” 할머니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그럼 뭐라고 하던가요?” 자전거를 주차하면서 나는 무심코 물었다.“정우가 직접 너랑 이야기하겠대.” 할머니가 나를 슬쩍 밀며 얼
할머니의 부름에 나는 핸드폰을 던지며 대답했다. “다 됐어요.” 그리고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문을 열자, 마당에서 물을 받고 있는 진정우가 눈에 들어왔다.하얀 물통 몇 개가 줄지어 있었고, 물이 가득 차자 그는 힘들이지 않고 그것을 들어 올렸다. 그의 어깨 근육이 옷 너머로도 선명하게 드러났다.‘참, 근육과 힘이 모두 공존하는 남자구나.’“물은 왜 이렇게 많이 받아요? 물이 끊기기라도 하나요?” 나는 다가가 물었다. 할머니는 내 슬리퍼를 흘낏 보더니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진정우는 대답하지 않았고 할머니가 대신 말씀했다. “혹시 물 끊길까 봐 그러는 거지.” 말을 마치고는 진정우의 등을 툭 치며 말씀하셨다. “저녁에 생선국 끓여줄 테니 가서 붕어 몇 마리 사 와. 야생으로. 그리고 고수랑 마늘쫑도 좀 사오고.”이건 분명 장을 보라는 핑계로 우리 둘을 나가게 하려는 심산이었다. 내가 이런 큰 슬리퍼를 신고 나가는 것도 좀 어색했지만 굳이 들어가서 갈아입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았다.“신발 갈아 신어요.” 진정우가 말했다.이 타이밍에 신발을 갈아 신는 건 더 민망해서 나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고 할머니는 내게 눈짓을 하며 얼른 따라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큰 소리로 말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우아, 지원이 기다려.”나는 슬리퍼를 끌며 밖으로 나섰다. 신발이 좀 부적절하긴 했지만 발은 편했다. 몇 걸음 가지 않았을 때 진정우가 갑자기 멈추더니 물었다. “나랑 사귀고 싶다고 했다고요?”나는 순간 당황했다.‘할머니가 도대체 뭐라고 하신 거야?’‘그리고 이 남자, 참 직설적이네.’“그쪽은 싫어요?” 나는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처음으로 그를 이렇게 제대로 쳐다본 것 같다. 똑 부러지는 이목구비, 깊은 눈매. 입술은 두껍지도 얇지도 않았다. 이 남자의 얼굴은 꽤 단정했고, 외모는 강유형에게 뒤지지 않았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은
내가 평생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두 번 밖에 만나지 않은 남자가 나와 혼인신고를 하자고 한다니. 그런데 10년 동안 사랑한 남자는 나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났다. 잠시 충격을 받은 후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진정우 씨, 이건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닌가요?” 진정우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 “연애는 결국 결혼하기 위한 거잖아요. 그쪽이 연애할 생각이 없다니까 그냥 결혼하자는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말을 한 사람 쪽이 좀 이상했다. 보통 사람이면 낯선 사람과 이렇게 쉽게 혼인신고를 하자고 하진 않을 텐데. 물론 소설 속에서는 이런 일이 유행하긴 한다. 하지만, 그건 소설일 뿐이다. 나는 살짝 눈을 찡긋하며 입가에 비웃음을 띄웠다. “진정우 씨, 모든 맞선 상대에게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세요?” 마침 저녁노을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고, 진정우의 그림자는 나를 완전히 덮고 있었다. 그는 무심하게 말했다. “처음인데요.” 목구멍이 약간 간지러웠다. “우리... 서로 잘 모르잖아요.” 진정우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 마주 선 채로 가만히 있었다. 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몸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심지어 코끝에 땀이 맺히는 듯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뒤의 벽을 긁고 있을 때, 진정우가 입을 열었다. “난 생선 사러 갈게요.” “어, 나 고수 안 먹어요.” 왜 이런 말을 갑자기 해버렸는지 나도 모르겠다. 진정우는 간단하게 대답한 후 큰 걸음으로 떠났다. 나는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키가 180cm는 넘을 텐데 허리는 곧게 펴져 있었고, 태양 아래에서 강한 신뢰감을 주었다. 문득 이런 사람과 갑작스럽게 결혼해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게다가 그는 군인이었다. 국가에서 검증된 사람이라면 생활에서도 충분히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주인 할머니는 없었다. 만약 계셨다면 분명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