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야, 내가 말했지? 방을 바꾸고 싶어 하는 그 아가씨야. 두 사람 서로 얘기해볼래?” 집주인 할머니가 입을 열자 서로 마주보고 있던 우리는 서로 눈을 돌렸다.나는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윤지원이에요. 저기, 지금 살고 있는 방 저랑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싫습니다.” 그의 거절은 방금 머리를 감던 동작만큼이나 단호하고 깔끔했다.내 입가가 살짝 떨리며 속에서 불쾌함이 일었고, 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안 되죠?” 남자는 나를 한 번 흘끗 보더니 대답 없이 군복색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는 내 옆을 지나쳐갔다. 차가운 수돗물 냄새가 스치면서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했다.“지원이 맞지?” 집주인 할머니가 다가와서 말했다. “화내지 마. 정우는 여자를 어떻게 대하는 지 잘 몰라. 내가 나중에 다시 얘기해볼게.” 나도 기분이 언짢아 일부러 크게 말했다. “됐어요. 그 방에 산다고 인생이 활짝 피는 것도 아니고, 살고 싶은 사람이 실컷 살라고 하세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집주인 할머니가 나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렇게 화내지 마. 정우는 군인 출신이라서 훈련도 많이 받았거든. 진짜 화나면 너를 번쩍 들고 밖에 내던질지도 몰라.”헛... 나는 실소했다.영광스러운 인민의 군인을 마치 범죄자처럼 여긴 게 우습기도 했다.“이봐, 아가씨. 웃지 마. 장난치는 게 아니야. 진짜라니까... 저기 길 건너 ‘오향설’이라는 이름의 과부 있지? 그 여자가 자꾸 정우 집 문을 두드리더라고. 결국 정우가 침대 시트로 그 여자를 싸매서 그냥 던져버렸어. 이 동네 사람들 다 봤지.” 또 과부라니. 나는 참 과부와 인연이 있나 보다.“그래요? 그럼 둘이 잤어요?” 나는 궁금해져서 물었다.“올라가려고 했지만 결국 올라가지 못하고 던져졌지. 망신만 당했지 뭐야.” 집주인 할머니가 혀를 차며 말했다.나는 입가를 살짝 비틀며 웃었다. “걱정 마세요. 저는 과부들이 마음에 들어 한 남자에게는 관
딱딱한 침대 위에 누웠을 때 머릿속은 혼란스러우면서도 텅 비어있지만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어 카카오톡을 열었고, 이소희와 고준석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이소희는 이렇게 보냈다. [지원 언니, 오늘 하루 정말 바쁘게 지나갔어요. 그래도 언니가 시킨 일은 다 끝냈으니까 내일은 결혼 기념 사탕으로 저 보상해 주세요! 언니, 신혼 축하드리고 영원히 행복하시길 바랄게요.]이 메시지를 보며 나는 비웃으며 입가를 살짝 올렸지만, 답장은 하지 않았다.그 다음은 고준석의 메시지였다. [윤 비서님, 대표님을 오해하지 마세요. 두 분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면 제 잘못이 커집니다.”이 메시지에도 답하지 않고 나는 SNS를 열었다. 앨범에서 놀이공원에서 찍은 그림자 사진을 찾아 올린 뒤 이렇게 적었다. [연차 휴가, 즐겁게 보내기!] 그리고는 그동안 강유형과 관련된 모든 게시물을 삭제했다. 내가 하는 짓이 이혼하거나 헤어진 연예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더 이상 부부나 연인이 될 수 없으니 사랑에 관한 것들은 다 지워버리는 게 낫다. 괜히 마음만 상하고 스스로도 더럽히게 될 테니까.이렇게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 3시가 되었고 눈이 조금 피곤했던 나는 핸드폰을 옆에 던져놓고 눈을 감았다. 그때 밖에서 또 발소리가 들려왔다. 내 방 앞을 지나가는 소리였고, 이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정우가 돌아온 걸 알 수 있었다.늦게 잠들었지만 나는 외부 소음 때문에 일찍 깼다. 눈꺼풀이 뻑뻑하고 무거워 도저히 뜰 수가 없어서, 깨어있으면서도 일어나지는 않았다.“정우야, 오늘 저녁에 좀 일찍 돌아올 수 있겠니? 새로 온 세입자랑 같이 밥을 먹고 싶어서.” 집주인 할머니의 말이 꿈결 속에서도 나를 웃게 만들었다.‘이 할머니 참 열정적이시네, 나를 식사에 초대하다니.’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마치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오늘은 안 돼요. 두 분이 드세요.” 진정우의 목소리는 성격대
나는 할머니가 나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해주겠다고 한 게 너무 뜻밖이었다. 머릿속에 차가운 표정의 무심한 얼굴을 한 진정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방을 바꿔달라는 내 부탁을 단번에 거절하던 차가운 태도가 떠오르자, 장난기가 발동해 나는 가볍게 ‘좋아요’라고 대답했다.그렇다고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냥 흘려보낸 말일 뿐, 마음에 두지는 않았다. 아침을 먹고 난 후, 나는 할머니 댁에서 자전거를 빌려 이 작은 마을을 두루 돌아다녔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고, 나의 손에는 아침에 나갔을 때 없던 화판이 하나 더 들려 있었다.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부모님 덕분에 춤, 미술, 서예 수업을 들었고, 심지어 가야금까지 배웠다. 하지만 부모님이 떠나시면서 그 모든 것들은 중단되었고, 유일하게 계속된 것은 그림 그리기였다. 그것은 너무 간단했기 때문이다. 종이 한 장과 펜 하나면 충분했으니까.오늘 하루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옛날과 사뭇 다른 청평군의 풍경을 하나 그렸다. 부모님의 가장 큰 소원은 이곳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청평군을 그려서 그들에게 태워 보내드리기로 했다.“지원아, 이제 돌아오니?” 할머니가 나를 보자마자 다가오더니 눈을 찡긋거렸다.나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정우가 돌아왔단다. 내가 이미 그 얘기를 했어.” 할머니가 진정우의 방 쪽을 입으로 가리키며 말씀하셨다.나는 그제서야 아침에 할머니가 나한테 진정우를 소개시켜주겠다는 이야기를 한 걸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할머니, 정말로 얘기하신 거예요? 저 그냥 장난친 거였는데요.”“이런 걸 장난으로 하면 안 돼. 난 이미 말했어.” 할머니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그럼 뭐라고 하던가요?” 자전거를 주차하면서 나는 무심코 물었다.“정우가 직접 너랑 이야기하겠대.” 할머니가 나를 슬쩍 밀며 얼
할머니의 부름에 나는 핸드폰을 던지며 대답했다. “다 됐어요.” 그리고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문을 열자, 마당에서 물을 받고 있는 진정우가 눈에 들어왔다.하얀 물통 몇 개가 줄지어 있었고, 물이 가득 차자 그는 힘들이지 않고 그것을 들어 올렸다. 그의 어깨 근육이 옷 너머로도 선명하게 드러났다.‘참, 근육과 힘이 모두 공존하는 남자구나.’“물은 왜 이렇게 많이 받아요? 물이 끊기기라도 하나요?” 나는 다가가 물었다. 할머니는 내 슬리퍼를 흘낏 보더니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진정우는 대답하지 않았고 할머니가 대신 말씀했다. “혹시 물 끊길까 봐 그러는 거지.” 말을 마치고는 진정우의 등을 툭 치며 말씀하셨다. “저녁에 생선국 끓여줄 테니 가서 붕어 몇 마리 사 와. 야생으로. 그리고 고수랑 마늘쫑도 좀 사오고.”이건 분명 장을 보라는 핑계로 우리 둘을 나가게 하려는 심산이었다. 내가 이런 큰 슬리퍼를 신고 나가는 것도 좀 어색했지만 굳이 들어가서 갈아입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았다.“신발 갈아 신어요.” 진정우가 말했다.이 타이밍에 신발을 갈아 신는 건 더 민망해서 나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고 할머니는 내게 눈짓을 하며 얼른 따라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큰 소리로 말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우아, 지원이 기다려.”나는 슬리퍼를 끌며 밖으로 나섰다. 신발이 좀 부적절하긴 했지만 발은 편했다. 몇 걸음 가지 않았을 때 진정우가 갑자기 멈추더니 물었다. “나랑 사귀고 싶다고 했다고요?”나는 순간 당황했다.‘할머니가 도대체 뭐라고 하신 거야?’‘그리고 이 남자, 참 직설적이네.’“그쪽은 싫어요?” 나는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처음으로 그를 이렇게 제대로 쳐다본 것 같다. 똑 부러지는 이목구비, 깊은 눈매. 입술은 두껍지도 얇지도 않았다. 이 남자의 얼굴은 꽤 단정했고, 외모는 강유형에게 뒤지지 않았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은
내가 평생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두 번 밖에 만나지 않은 남자가 나와 혼인신고를 하자고 한다니. 그런데 10년 동안 사랑한 남자는 나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났다. 잠시 충격을 받은 후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진정우 씨, 이건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닌가요?” 진정우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 “연애는 결국 결혼하기 위한 거잖아요. 그쪽이 연애할 생각이 없다니까 그냥 결혼하자는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말을 한 사람 쪽이 좀 이상했다. 보통 사람이면 낯선 사람과 이렇게 쉽게 혼인신고를 하자고 하진 않을 텐데. 물론 소설 속에서는 이런 일이 유행하긴 한다. 하지만, 그건 소설일 뿐이다. 나는 살짝 눈을 찡긋하며 입가에 비웃음을 띄웠다. “진정우 씨, 모든 맞선 상대에게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세요?” 마침 저녁노을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고, 진정우의 그림자는 나를 완전히 덮고 있었다. 그는 무심하게 말했다. “처음인데요.” 목구멍이 약간 간지러웠다. “우리... 서로 잘 모르잖아요.” 진정우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 마주 선 채로 가만히 있었다. 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몸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심지어 코끝에 땀이 맺히는 듯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뒤의 벽을 긁고 있을 때, 진정우가 입을 열었다. “난 생선 사러 갈게요.” “어, 나 고수 안 먹어요.” 왜 이런 말을 갑자기 해버렸는지 나도 모르겠다. 진정우는 간단하게 대답한 후 큰 걸음으로 떠났다. 나는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키가 180cm는 넘을 텐데 허리는 곧게 펴져 있었고, 태양 아래에서 강한 신뢰감을 주었다. 문득 이런 사람과 갑작스럽게 결혼해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게다가 그는 군인이었다. 국가에서 검증된 사람이라면 생활에서도 충분히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주인 할머니는 없었다. 만약 계셨다면 분명 나를
“음, 괜찮은 조언이네. 생각해볼게”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꼭 진지하게 생각해봐.” 안리영이 말끝을 맺고 잠시 멈추더니 덧붙였다. “지원아, 누군가와의 기억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사람과 빨리 시작하는 거야.” “알겠어, 전문가님. 잘 알겠어요.”전화를 끊고 나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나는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한 번에 알아챘다. 진정우였다. 그의 걸음은 무겁고 힘이 있었다. 곧이어 물 틀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집주인 할머니의 잔소리가 들렸다. “어째서 혼자만 왔어? 지원이는 어디 갔니?”진정우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잠시 후,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생선국에 고수 넣지 마세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었고 점점 눈물로 바뀌었다.이 몇 년간 강유형 집에 있는 동안 나는 고수를 먹었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는 한 번도 먹지 않았다. ‘타향에 가면 그곳의 풍습을 따르라’는 말처럼, 나는 강유형의 약혼녀 신분으로 그 집에 들어갔을 때 강유형의 어머니는 나를 딸처럼 여기겠다고 했지만 나는 결국 강유형의 가족이 아니었다. 나는 이 사실을 마음 깊숙이 알고 있었고 사소한 부분에서조차 내가 까다롭게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내 취향을 억누르며 살았다. 고수를 싫어했지만 억지로 먹었던 것처럼. 할머니가 나를 불러 국을 먹으라고 했을 때 나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진정우와 혼인신고를 하려는 꿈. 막 서명하려던 찰나에 누군가가 나를 깨웠다. “정우랑 잘 안됐어?” 할머니가 식탁에서 물었다. 꿈이 깨진 생각에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혼인신고하려다가... 할머니가 깨워서 못했어요.” “뭐라고?” 할머니는 이해하지 못한 듯 물었다. “벌써 혼인신고를 하려는 거야? 이렇게 빨리? 며칠은 연애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니?” 나는 그저 말을 잇지 못했다.“지원아, 네가 안목이 있구나. 정우 같은 남자를 놓치면 후회할 거다. 내가 나이가 많아서 그렇지
그날 밤 나는 깊게 잠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푹 자고 있었는데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이 깼다. 말하는 사람은 진정우가 아니었고, 지방 사투리가 섞인 여성의 목소리였다. 소리만 들어도 그 여자가 젊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린 소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청아하지만 중년 여성의 목소리는 대개 무겁고 거칠다. 나는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한 편이지만, 10년을 사랑했던 남자가 사실은 쓰레기였다는 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람을 잊는다는 건 더 이상 그를 떠올리지 않는 거라는데, 아직 나는 그게 안 된다. 강유형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원망 때문인지 자꾸 그가 생각난다.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귀를 기울여 밖의 소리를 들었다. “할머니, 정우 씨는 어디 있어요?” 여자가 물었다. “갔어. 아침 일찍 나갔지.” 할머니는 무언가를 씻고 있는 듯, 물소리가 흘러나왔다. “갔군요. 아직 자고 있는 줄 알았어요.” 여자의 목소리엔 웃음이 섞여 있었다. “오향설, 정우가 일어났는지 안 일어났는지 너랑 무슨 상관이야? 정우는 널 좋아하지 않으니 괜한 헛수고하지 마.”할머니는 정말 직설적이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버티지 못했을 텐데 문밖의 그 과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남자는 밀당을 좋아해요.” 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 여자 꽤 자신만만하네.’“난 정우가 너를 낡은 헝겊처럼 내팽개쳤다는 것만 알아.” 할머니는 정말 한 치의 여유도 없었다. “할머니, 나이 드시더니 뭘 모르시네요.” 오향설은 약간 화가 난 듯했다. “난 부끄러움을 알고, 사람은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아.” 할머니의 말에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할머니, 우리 이웃끼리 왜 이러세요? 제가 그동안 할머니도 많이 도와드렸잖아요. 도와주지 못할 망정 왜 저를 몰아붙이세요?” 오향설은 도덕적 압박을 시도했다. 할머니는 그런 그녀에게도 전혀 개의치 않
나는 컵에 물을 받아 양치질을 했다. 오향설을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지만 그녀는 단 한순간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다시 발끝에서 머리까지 나를 샅샅이 훑었다. “지원아, 이분은 오향설이라고 해.” 할머니가 그녀를 소개했다. 나는 입안에 치약 거품을 가득 머금고 오향설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둥근 얼굴을 가졌지만 뚱뚱하진 않았고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얼굴에는 정성 들여 화장을 한 흔적이 뚜렷했다. “향설아, 이 사람이 네가 궁금해하던 지원이야. 내 말이 맞았지? 정말 피부가 물기 어린 것 같지 않니?” 할머니는 손으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오향설이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는 나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듯 살짝 주눅 든 표정을 지었지만 입으로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나도 저 나이 때는 피부 좋았어요. 나이 들어서야 이렇게 된 거죠.” 할머니는 입을 삐죽거렸고 오향설은 그런 할머니를 흘겨보며 눈싸움을 했다. 두 사람의 묘한 신경전이 마치 코미디 한 편을 보는 듯했다. 내가 양치질을 마치자 오향설이 입을 열었다. “지원 씨, 여긴 친척 댁에 온 건가요, 아니면 놀러 온 건가요?” “놀러 왔어요.” 나는 물을 틀고 칫솔을 헹구었다. “혼자 왔어요? 남자친구는 없고요?” 오향설의 질문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네, 솔로예요!” 내 대답에 그녀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정우가 지원이한테 반해서 나한테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했어. 오향설, 너도 인정해야 하지 않겠어? 두 사람 정말 잘 어울린다고.” 할머니는 여전히 힘이 넘쳤다. 오향설의 입꼬리가 살짝 떨리더니 결국 이렇게 말했다. “개구리가 아무리 천상계의 백조를 꿈꿔도, 백조가 거들떠봐야죠.” 그녀는 질투심에 차서 말하긴 했지만 내가 백조라는 것을 인정했다. 할머니는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지원아, 네가 꿈에서 진정우랑 결혼하려고 했다고 했잖아, 그치?”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