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베개는 반재언에게 그 어떤 충격도 가하지 못했고 오히려 남우가 그의 밑에 눕혀지게 되었다.그 이상한 자세에 남우는 금방 꼬리를 내렸다."이, 이상한 짓 하지 마."하지만 반재언은 점점 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남 도련님 겁 따위 없잖아.""아니, 나 겁 아주 많은데.""뭘 무서워해, 연서한테는 나 사람 안 잡아먹는다고 했잖아."반재언이 일부러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남우는 입술을 꾹 다물고 눈을 감았다.심장이 곧 터질 듯 쿵쾅거려 그녀는 견딜 수 없었다.반재언은 그런 남우의 얼굴을 보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만졌다. 좁은 공간 안에 열이 올라 순식간에 후끈거렸다.반재언이 다가오자 남우는 얼른 다시 눈을 꼭 감았다.하지만 머지않아 반재언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더니 말했다."일어나."반재언은 말을 마치자마자 남우의 몸 위에서 일어났다.남우는 눈을 떠 멍청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봤다.저렇게 간다고?남우가 이마를 만지며 아직 남아있는 그의 온기에 부끄러움에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남우, 정신 차려. 저 얼굴에 홀리지 말라고."남우가 내려가니 반재언은 이미 슈트로 갈아입고 앉아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머리를 넘긴 그를 보게 되었다. 지금의 반재언은 성숙하고 날카로운 차가움을 뿜어내고 있었다.남우는 반재언이 자신이 배상해 준 와이셔츠를 입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오늘도 연서랑 같이 있어 줘야 하잖아, 일단 아침부터 먹어."반재언이 그녀를 대신해 죽을 떠 남우에게 건네줬다."오늘 어디 중요한 데 가?"남우가 의자를 끌어내 앉더니 죽을 먹으며 물었다."주주 회의 있어.""그래.""왜, 내가 어디 가서 여자 홀릴까 봐 걱정돼?""누가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가 네가 집에도 못 들어오게 하면 어떡해?"반재언이 웃으며 물었다."내가 어떻게 너를 감히 속박할 수나 있겠어?""그러고 싶어?"반재언이 두 손을 맞잡아 턱에 갖다 대며 물었다."누가 그러고 싶대
"그 심리 의사를 말하는 건가요?"반재언은 반재신도 문제를 발견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대표님께서 왜 갑자기 조사하라고 한 건지 저도 모르겠어요."양우빈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반재언이 웃었다."그래서 조사해 낸 건 있으세요?""아직은 없는데, 최근에 심 선생님께서 툭하면 회사로 찾아왔거든요, 그게 이상하긴 했어요.""언제부터 회사에 예은이 관련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겁니까?"반재언의 말을 들은 양우빈이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그게… 대표님께서 직원들에게 물어봤는데 반년 전부터 소문이 돌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대표님이랑 제 앞에서 말을 못 했대요. 그런데 그건 왜 갑자기 물으시는 거예요?"양우빈의 대답을 들은 반재언이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심윤의 씨 제대로 조사해 봐야겠네요, 조용하게 진행하세요."그 말을 들은 양우빈도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반재언이 사무실로 들어서자 반재신이 팔꿈치를 무릎에 올린 채 두 손을 맞잡고 굳은 얼굴로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반재언이 가까워지고서야 반재신이 고개를 들었다."형.""이제 그 여자를 의심하기 시작한 거야?"반재언이 반재신의 앞에 자리를 잡고 물었다.반재신은 할 말이 없었다."네 탓 아니야, 너도 그냥 연서 치료해 주고 싶었을 뿐이잖아. 의사는 경험이 중요한 거지, 사람이 어떤지 누가 조사해 보겠어."반재언이 테이블 위의 찻잔을 보며 말했다."형, 내가 잘못한 일 때문에 모든 게 이렇게 된 것 같아.""누구나 다 실수를 하는 법이야, 적어도 아직 되돌릴 수 있잖아."반재언이 반재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곤 말했다.하지만 반재신은 그의 눈빛을 피했다."연서가 나를 너무 무서워해."그 말을 들은 반재언이 웃었다."아이한테 사과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너 이제 곧 아빠 될 사람인데 아이도 못 달래면 큰일인데.""나 비웃으러 온 거지?"반재신이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예전에 유이 달래던 방법으로 달래 봐. 연서도
진예은이 집을 나서는 두 사람을 바라봤고 옆에 있던 아주머니께서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연서 아가씨께서 남우 씨랑 노는 게 너무 재밌나 봐요.""저 남우 씨가 우리 연서 마음을 열게 할 거라고 믿어요."진예은이 대답했다.남우와 진연서가 마당을 나서 차에 올라탔을 때,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던 차 한 대가 그들이 탄 차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남우는 동요를 틀어놓고 미리 준비해 뒀던 인형까지 진연서에게 줬다.뒷좌석에 앉아있던 진연서는 예쁘게 생긴 인형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남우는 그런 진연서를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연서 인형 좋아해?""네, 좋아요.""좋아한다고 하니 다행이네, 그럼 연서 오늘 언니네 집에 가서 잘까? 언니가 인형 아주 많이 사놓았는데."진연서가 있으면 반재언도 마음대로 자신에게 손을 대지 못할 것이라고 남우는 생각했다."저 고모한테 물어봐야 해요."진연서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그래, 그럼 우리 이따 돌아가서 연서 고모한테 물어보자."마침 우회전하던 남우는 백미러로 자신이 탄 차를 바짝 쫓아오고 있는 차를 보곤 엑셀을 밟았다.그녀는 반재언의 차를 끌고 나왔다. 혹여나 아이가 놀라지 않게 하려고 조심스럽게 운전하던 남우는 그 차가 확실히 자신을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남우가 앞에서 차 머리를 돌려 터널 안으로 들어서자 그 차도 속도를 줄이고 그녀의 뒤를 쫓았다.남우는 그 모습을 보곤 재밌다는 듯 웃었다."연서야, 이따 연서는 차에서 인형이랑 좀 놀고 있어. 언니가 올 때까지 얌전하게 차 안에만 있어야 해, 언니가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진연서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곧 터널 옆에 차를 세운 남우는 볼륨을 조금 높이고 깜빡이를 켜더니 차에서 내렸다.뒤따라오던 차도 멈추더니 안에서 껄렁한 청년들이 내렸다. 그들은 남우의 차가 고장 나 그녀가 도움을 청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예쁜이, 차 고장 났나 봐. 오빠들이 고쳐줄——"하지만 남자가 말을
노란색 머리를 한 남자가 다급하게 휴대폰을 뒤져보더니 전화번호를 찾아냈다.그리고 남우가 그의 휴대폰을 받아 전화번호를 확인하려던 그때, 다른 한 남자가 등 뒤에서 급습했다. 하지만 남우는 얼른 반응하고 다리를 들어 남자의 머리를 차 저 멀리 날려 보냈다.급습하려던 남자는 순간 힘을 잃고 감히 일어나지 못했다.노란색 머리를 한 남자도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우가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전화번호를 기억한 남우가 다시 노란색 머리를 한 남자를 바라봤다."내가 판치고 다니고 있을 때 너희는 아직 흙 가지고 놀고 있었어, 그깟 실력으로 나한테 덤비겠다고?"남우의 말을 들은 노란색 머리를 한 남자가 무릎을 꿇었다."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다시는 이런 짓 안 하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남우가 휴대폰을 남자에게 돌려주려다 다시 회수했다."지금 시간 있어?""네… 왜요?"남자가 멍청하게 물었다."시간 있으면 오늘 남아서 내 부하가 되어라, 거절하면…"남우가 말을 하며 주먹을 쥐자 주먹에서 무서운 소리가 났다.그러자 노란색 머리를 한 남자가 얼른 일어서서 말했다."시간 있습니다, 언제든지 불러주세요.""가라."말을 마친 남우가 몸을 돌려 떠났다.노란색 머리를 한 남자가 바닥에 누워있는 형제들을 한 눈 바라봤다. 그들은 죽은 척을 하며 노란색 머리를 한 남자의 행운을 빌었다.진연서는 남우가 차로 돌아올 때까지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운전석에는 낯선 노란 머리를 한 남자가 올라탔고 남우는 진연서의 옆에 앉았다. 남자는 차를 본 순간 손에 땀이 났다. 그는 이런 외제 차를 처음 운전해 보는 것이었다."운전 똑바로 해, 네 목숨 내 손에 달려있으니까."남우가 남자에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안전하게 모셔다드리겠습니다."남자가 억지웃음을 지어내며 말했다."그런데 어디로 갈까요?""KK 파크""네, 알겠습니다."두 사람이 나누는 얘기를 듣던 진연서가 의아하게 고개를 돌려 남우에게 물었다."언니, 저 사람은
"맞아요, 심윤의 우리 간호사들 앞에서 엄청나게 잘난 척했잖아요. 우리랑 같이 있기도 싫어하고, 외과 의사들이랑 사이가 좋았던 걸로 기억해요."그 말을 들은 양우빈은 생각에 잠겼다.간호사들은 심윤의를 얕잡아 보고 있는 것 같았다."그럼 심윤의 씨가 왜 일을 그만뒀는지는 알아요?"그 말을 들은 간호사 하나가 웃었다."당연히 장 선생님 때문이죠, 심윤의 씨 장 선생님 전 여자친구거든요. 두 사람 한 반년 만났나, 장 선생님께서 심윤의랑 결혼하기 위해서 여기에서 집까지 샀는데 심윤의가 임신한 게 들통 났거든요. 저희한테는 장 선생님 아이라고 했는데 그동안 장 선생님께서 야간 당직 서고 바빠서 두 사람 만나지도 못했다는 거 다 아는데 누가 그 말을 믿겠어요? 장 선생님께서 그 사실을 알고 대판 싸웠고 심윤의가 찔렸는지 주동적으로 그만뒀어요.""그럼 평소 진료할 때는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진료할 때는 문제가 없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심윤의를 찾아가 상담하는 분들도 많았거든요. 대부분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가정주부였던 걸로 기억해요."그때 다른 한 간호사가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내가 듣기론 그중에 서울에서 온 한 여자가 있었는데 남편이 요식업을 하는 사람이라 돈이 좀 많았는데 여자가 남편이 바람피우고 있다고 생각해서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았거든요. 그분이 심윤의를 여러 번 찾아왔는데 사이도 괜찮아 보였고 올 때마다 팁도 몇십만 원씩 주고 그랬어요.""그 여자분 이름 기억하고 계세요?""이름은 몰라요, 그런데 심윤의가 그 여자한테 서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거 들었어요."양우빈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병원을 나섰다. 그는 차 안에 앉아 간호사들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심윤의가 반년 전 이 병원을 그만뒀다는 건 그녀가 일을 그만두자마자 서울로 갔다는 걸 의미했다. 그리고 반재신이 심리 의사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간호사는 심윤의가 임신했다고 했지만, 그동안 그녀는 임신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심윤의가 아이를 지웠을
진연서는 아이들이 부모님을 따라 떠나는 모습을 보더니 시무룩해졌다.그리고 가까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보니 낯선 여자가 무서운 표정을 하고 아이 옆에 서 있었다. 진연서는 두려움에 몸을 일으켰다.하지만 진연서가 피할 새도 없이 여자가 아이의 뺨을 내려쳤다. 그리고 미친 것처럼 아이의 머리를 잡아당겼다."이 못된 계집애 같으니라고, 너 잘 만났다. 어린 게 남자나 꾀고 제 어미랑 똑같이 뻔뻔하네, 내가 오늘 널 죽여버려야 성이 풀릴 것 같아."여자가 진연서를 걷어차자 아이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할머니에게 맞을 때처럼 절망 가득한 눈에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여자는 아이를 걷어차는 걸로 부족하다는 듯 진연서 몸 위에 올라타 아이의 목을 졸랐다.순간 진연서는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다는 느낌을 느꼈다.마침 남우가 돌아와 그 모습을 보곤 놀라 여자를 진연서 몸에서 떼어냈다.진연서는 목이 쉬도록 울어대며 몸을 떨었다."연서야."남우가 진연서를 일으켜 세웠다.그때 여자가 다시 남우를 가리키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네가 내 남편 꼬신 불여우구나, 저런 잡것까지 낳아서 내 남편이랑 이혼하게 하려고 한 거지? 오늘 내가 너희처럼 남의 가정 파탄 내는 것들 다 죽여버릴 거야”"여자가 남우에게 달려들었지만, 남우는 여자의 어깨를 잡고 바닥으로 업어 메쳤다. 여자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지만, 남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여자를 걷어찼다. 그리곤 여자의 옷깃을 잡고 뺨을 내려쳤다."아프면 병원에 가, 네 남편 바람난 거랑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래?!""감히 나를 때려?"여자의 입가에 순식간에 피가 맺혔다. 여자가 어깨를 떨며 남우를 바라봤다. 그러자 남우가 다시 그녀의 뺨을 내려쳤다."이제 정신이 좀 들어?"여자는 남우의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어오른 뺨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남우가 휴대폰에 저장한 전화번호를 여자에게 보여주며 다시 물었다."이 전화번호 알아?"여자는 한 눈 보더니
남우는 노란 머리 남자를 협박해 그 남자에게 연락해 내일 만날 장소를 정하라고 했다. 그리고 전화번호의 주인을 알아냈다.진연서가 아이들과 놀고 있을 때, 잠시 떠나는 건 별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그 틈을 노렸을 줄이야.진연서 몸의 멍과 목 졸린 자국을 보며 남우는 자책했다.그때,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내렸고 반재언과 경호원들이 남우에게 다가왔다."연서는 어때?"반재언이 미간을 찌푸리고 남우 앞에 서서 물었다."아직 몰라. 미안해, 내 소홀함 때문이야."남우가 몸을 바로 세우더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지금 이런 말 해봤자 바뀌는 건 없어, 의사 말 들어보자."반재언의 남우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머지않아 의사가 병실에서 나왔고 남우가 얼른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어때요?""심각하게 다치지는 않았어요, 부모님께서 아이를 잘 보고 있었어야죠, 무슨 일이 생긴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의사가 두 사람에게 당부했다.그 말을 들은 남우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일단 연서 어떤지 들어가 보자."의사가 떠난 뒤, 반재언이 남우를 보며 말했다.남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병실로 들어갔다.침대 위에 누운 진연서의 이마에 멍이 들었다.그 모습을 본 남우가 진연서의 손을 잡고 사과했다."연서야, 미안해. 내 잘못이야, 내가 좀 더 일찍 돌아왔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남우는 무척 괴로웠다."언니, 저 괜찮아요. 그냥 조금 아픈 거예요, 할머니는 그 아줌마보다 훨씬 아프게 때렸어요."남우는 그 말을 들으니 더욱 안타까워 눈시울을 붉혔다."연서야, 앞으로 그 누구도 연서한테 손 못 댈 거야."남우가 심호흡하며 멍이 든 진연서의 이마를 조심스럽게 만졌다."앞으로 누가 연서 때리면 연서도 같이 때려, 주동적으로 다른 사람 괴롭혀도 안 되지만 다른 사람한테 괴롭힘당해도 안 돼.""하지만 사람 때리는 건 나쁜 거라고 했어요."진연서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다른 사람 괴롭히는 게 나쁜 거야, 연서는 괴롭힘을 당했잖아. 괴
"당연하지, 연서 내 소홀함 때문에 입원한 거잖아. 그러니까 내 책임이 커."남우가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반재언이 그녀를 안았다."걱정하지 마, 나 여기 있잖아.""네 도움 필요 없어."남우가 이마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느끼며 시선을 옮겼다."생각 잘해, 예은이 아이도 가지고 있는데 연서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 알면 너 정말 그거 감당할 수 있어?"반재언이 그녀의 턱을 들고 물었다.반재언의 말을 들은 남우가 멈칫했다. 그녀는 이런 것까지 생각하지 못했다.임산부는 자극받는 것을 가장 금기시했다. 그리고 진예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반재신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그럼 어떻게 도와줄 건데?""가족이잖아, 뭐 어려운 일도 아니지."반재언이 웃으며 말했다.남우가 반재언을 보다 그의 손을 치워냈다."또 나 가지고 놀려고 그러는 거지?""내가 너 가지고 놀고 있는 것 같아?""예은 씨 언젠가는 연서 일 알게 될 거잖아, 어떻게 속일 수 있을 것 같아?""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연서 마음을 열었다는 거야. 이걸로 퉁 치는 거지."그 말을 들은 남우가 팔짱을 끼더니 웃었다."그럼 내가 연서 데리고 전경으로 갈게, 우리 연서 다 나은 다음에 예은 씨한테 돌려줘야지.""응."반재언이 웃으며 대답했다."맞다, 서준수라는 사람 조사 좀 해줘, 그 사람 뒤에 누가 있는지도 알아봐 주면 좋고."다시 병실로 돌아가려던 남우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등을 돌렸다."찾아주면 상 주는 거야?"반재언이 개구진 얼굴로 물었다."있겠니?"남우가 도도하게 말을 하곤 병실로 들어갔다. 반재언은 그런 그녀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저녁 9시 반, 빈해 별장.반재신의 차가 마당에 도착했을 때, 방의 불이 모두 켜져 있었다. 그는 마당에서 한참 서성이다 안으로 들어섰고 아주머니께 진예은이 이미 잠들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반재신이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방으로 들어서자 진예은이 남겨준 무드등이 켜져 있었다.반재신이 침대 옆에 앉자마자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