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씨 가문.안예지는 가디건을 걸치고 서재에서 시안을 그리고 있었다.밖에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지만 조금도 방해되지 않았다.그때, 1층 전화기에서 벨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안예지는 바로 일층으로 내려갔다.이 시간에 전화를 걸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다는 예감이 들었다.그녀는 활짝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아빠..."전화를 받은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병원.안예지는 김수혜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 앞에 있는 여자의 얼굴을 본 김수혜는 깜짝 놀랐다.여자는 고개를 돌려 안예지를 바라보았다. '저 여자는 바로 지난번에 아버지를 만나러 온...'그 여자가 웃으며 안예지에게 다가오자 김수혜가 안예지의 앞을 막아섰다."선희수 씨, 아가씨한테서 떨어지세요."안예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김수혜를 쳐다보았다.선희수의 곁에 있던 경호원이 그녀를 막으려고 했다.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데, 아직도 회장님의 곁에서 일하고 있어? 혹시 회장님이 당신 친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김수혜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때, 의사가 수술실에서 황급히 달려나와 말했다."피가 필요합니다. 혈액형 B형이신 분 계신가요?""저요."안예지가 앞으로 나섰다.그러자 의사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환자와 무슨 사이...""딸입니다."의사는 바로 고개를 끄덕거렸다."따라오세요.""잠시만요." 그때, 선희수가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그녀를 돌아보자 그녀는 자신의 셔츠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제 피를 사용하세요. 저도 B형이에요."안예지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선희수는 의사를 따라 나섰다. 선희수는 떠나기 전 안예지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야."안예지는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3시간 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안지성이 수술실 밖으로 나왔을 때, 시간은 벌써 새벽 5시 반이 되었다.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아 그는 잠에서 깨어나질 못했다.안예지가 그의 침대 곁에 엎드려
반지훈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점심시간에 우리도 병문안 갈까?""네, 저도 같이 가요."강성연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른 아침 화장을 하지 않은 강성연은 아주 청순했다.반지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겨우 맨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강성연은 깜짝 놀라 그를 살짝 밀쳤다."지훈 씨, 회사 출근..."반지훈은 그녀의 입술을 머금고 셔츠를 벗어 내렸다."30분 만."*병원.안지성은 10시가 넘어서야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곁에 있는 안예지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예지야."안예지는 안지성이 눈을 뜬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빠."그리고 그의 품에 안겼다."아빠, 저 진짜 많이 걱정했어요."그녀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아버지밖에 없었다. 아버지마저 잃을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다시는 주위 사람을 잃는 고통은 느끼고 싶지 않았다.그가 안예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아버지가 미안해. 우리 예지를 걱정시켜서."그때, 병실 문 앞에 나타난 여자의 얼굴을 본 안지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 안지성을 본 안예지도 뒤를 돌아봤다.선희수가 도시락을 들고 나타났다."일어났어요?""당신이 여긴 어쩐 일이야."안지성의 태도는 매우 쌀쌀맞았다. 안예지는 자신의 아버지와 여자의 관계가 매우 궁금했다."아빠, 어제 저 아주머니께서 헌혈해 주셨어요."안지성은 대답이 없었다.선희수는 안예지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예지지? 예지라고 불러도 될까?"안예지는 선희수가 자신을 다정하게 부르자 깜짝 놀랐다. 아버지와 아는 사이인 것 같으니 싫어도 하는 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선희수는 도시락을 내려놓고 말했다."점심이라도 함께 할래?"안예지는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 안지성이 그녀를 대신해 대답했다."당신이랑 밥 먹을 이유 없어. 예전에 기회가 많았을 땐 뭐하고?"안지성의 말에 선희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도 나만의 사정이 있었어요."안지성은 그저 피식 웃었다."당신 이제는 잘
안예지는 사실을 듣고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뭔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병실 밖으로 나갔다."아빠, 저 수혜 아주머니 찾으러 갈게요."병실을 나선 그녀는 바로 점심밥을 들고 병실로 향하고 있는 김수혜를 만났다."아가씨, 어르신 깨어나셨어요?""네."김수혜는 안예지의 어두운 기색을 보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 무슨 일이에요?""선희수가 내 엄마라는 사실, 아주머니도 알고 계셨어요?"김수혜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병실을 가리키며 물었다."어르신이 알려주셨어요?"안예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김수혜는 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선희수 씨가 아가씨 친모 맞아요. 예전에는 잘나가는 인기 스타였어요. 제2의 한미영이라 불리울 만큼요. 한미영이 반씨 가문에 시집을 가고 어르신께서 선희수 씨를 케어했어요.""선희수 씨는 아주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어요. 어르신과 함께 다니며 자연스레 두 사람 모두 좋은 감정으로 5년동안 비밀 연애를 했어요. 어르신은 그런 선희수를 바로 톱스타로 만들어 줬죠."김수혜는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인기와 돈을 손에 넣으면 쉽게 변하는게 사람 마음이랬죠. 그렇게 선희수 씨는 어르신이 건네는 돈과 명예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돈을 원했죠. 상류사회 사람들이랑 어울리면서 어르신이 더 이상 눈에 차지 않았던거죠.”"그 시점에사 아가씨를 임신하게 됐어요."안예지는 묵묵히 김수혜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제일 잘나가는 톱스타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은 선희수 씨 본인한테도 큰 타격이였겠죠. 선희수 씨는 아가씨를 낳지 않겠다고 했고, 어르신은 다 책임지겠다며 그렇게 남몰래 선희수 씨를 외국으로 보냈어요. 물론 임신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말이죠. 그렇게 외국에서 남몰래 아가씨를 낳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연예인 생활을 이어나갔죠.""연예계에 다시 복귀하는 동안 어르신께서 아가씨를 책임지셨어요. 물론 선희수 씨는 아이를 낳는 순간 부터 단 한번도 아가씨를 안아본 적도 없고요 그렇게 일년이 지나고
선희수는 입술을 깨물었다.“당신이 무슨 마음을 품고 예지를 찾아왔는지 관심 없어, 애당초 당신이 예지를 버린 거잖아. 예지는 지금 내 딸이야, 당신과 조금도 관계도 없다고.”안지성의 모진 말에 선희수는 반문했다.“예지가 생모인 절 원하지 않을 거라 단언할 수 있어요?”“전 싫어요.”안예지가 어느새 문 앞에 나타났다. 지금 그녀는 더 이상 공손한 태도로 선희수를 대하지 않았다.선희수는 안예지가 이렇듯 단호하게 거절할 걸 예상하지 못했는지 멈칫했다.안예지는 아버지 곁으로 걸어가더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저에게는 아빠만 있고, 엄마는 없어요. 저에게 있어 이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예지야, 네가 어떻게......”“아빠가 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죠.”안예지의 말에 선희수는 표정이 좀 변했다. 그녀는 문밖에 나타난 김수혜를 바라보았다.“네가 알려준 거냐?”김수혜는 무표정으로 대답했다.“전 그저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당신은 확실히 아가씨의 어머니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선희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안예지는 아버지를 자리에 눕혔다.“아빠, 떠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안지성은 그녀의 말을 듣고 빙긋 웃었다.“난 선희수가 다른 마음을 품고 접근했을까 걱정돼서 그런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놓이는구나.”점심에 반지훈은 강성연과 함께 안지성 병문안을 왔다. 안지성이 반지훈과 할 말 있어 보여 강성연은 안예지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안예지는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강성연 대표님, 오늘 휴가 주셔서 고마워요.”강성연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 예지 씨 아버님 일이니 휴가를 내는 것도 당연하죠.”반지훈이 병실에서 나오자 강성연은 웃으며 물었다.“이야기가 끝났어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안예지가 말했다.“그럼 전 먼저 들어갈게요.”강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안예지가 병실에 돌아간 후 강성연은 반지훈을 바라보았다.“안지성 대표님이 무슨 일로 당신을 찾
반이 나뉘기 전에 강유이는 리사, 오빠와 놀 수 있었다. 강유이는 예전이 그리워 한숨을 내쉬었다.“조심해!”강유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농구공이 그녀의 뒤통수를 때렸다. 강유이는 “아야”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쓰러졌다.농구 유니폼을 입은 남학생 몇 명이 달려와 농구공을 주웠다. 강유이보다 2학년 높은 학생들이었다.“저기, 미안해. 괜찮아?”강유이는 뒤통수를 문지르면서 고개를 들더니 환하게 웃었다.“괜찮아요!”남학생들은 모두 같은 표정으로 제자리에 굳어졌다. 엄마, 저 천사를 본 것 같아요!이때 눈이 부실 정도로 피부가 희고 준수하게 생긴 남학생이 걸어오더니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정말 미안해, 저들은 고의가 아니었어. 어디 불편한 곳 있어?”강유이는 고개를 저었다.농구 유니폼을 입은 남학생들은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천사 같은 이 아이가 우리를 탓하지 않아 다행이야.그들은 다시 농구하러 떠났다. 고개를 돌린 강유이는 흰 피부의 소년이 남아있는 걸 발견했다.“오빠는 농구하러 가지 않아요?”소년은 빙긋 웃었다.“난 아파서 농구 못해.”강유이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어디 아파요?”“나도 모르지만 꽤 됐어.”소년은 강유이를 바라보았다.“넌 4학년이지? 왜 친구들이랑 놀지 않는 거야?”강유이는 아직도 놀고 있는 같은 반 친구들을 보며 말했다.“저랑 노는 걸 싫어해서 저도 같은 반 애들과 놀고 싶지 않아요.”소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웃음을 터뜨렸다.“그럼 우리랑 놀러 와.”강유이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런데 전 오빠 이름도 몰라요.”“난 6학년 A반이야. 아까 얘들은 모두 같은 반 친구들이고.”그는 말한 후 갑자기 돌멩이로 바닥에 글을 썼다.강유이도 다가가 보자 소년이 말했다.“이건 내 이름이야.”소년은 이름을 쓴 후 이렇게 말했다.“난 민서율이라고 해.”강유이는 눈을 깜빡거렸다.“민 씨는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아요.”민서율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강유이는 그의 이
안예지는 긴장을 풀려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반크에게 물었다.“어때요?”반크는 턱을 괴며 말했다.“주얼리에 조선 시대의 무늬를 넣는 건 확실히 괜찮은 아이디어야.”첫 번째 목걸이는 옥을 연꽃, 목화 무늬로 조각했고 중간에는 크기가 다른 기타 꽃잎들로 이뤄졌다. 꽃술과 꽃잎은 모두 진주로 되어 액세서리로 만들려면 확실히 목걸이가 가장 어울렸다.두 번째 설계도는 정교하게 생긴 반지였다. 반지의 디자인은 활짝 핀 국화무늬를하고 있는데, 길고 가는 국화 꽃잎의 끝부분은 살짝 휘어져 있었다. 꽃술 중간에 박힌 다이아는 색상이 화려했고, 투명도가 높은 토파즈를 사용해야 그 아름다움을 모두 살릴 수 있었다.국화를 주로 하는 주얼리는 적지 않으나 국화 중에서도 꽃잎이 길고 가는 종류를 사용하는 건 정말 적었다.마지막 설계도도 반지였는데 디자인이 더 교묘했다. 이 디자인의 영감은 조선 시대의 용 무늬였는데 반지의 내부와 외부는 모양이 다르며 에메랄드를 사용해 우아하고 귀해 보였다.강성연은 안예지를 바라보았다.“당신의 고전풍 주얼리에 대한 재능을 알고 있었어요.”반크도 웃었다.“한주만에 이런 수준의 설계도를 내다니, 확실히 대단해요.”안예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고마워요.”강성연은 설계도를 그녀에게 주었다.“CAD 부문에 보내 왁스 카빙과 모델링을 하라고 해요. 제가 그들더러 전력을 다해 당신의 요구에 맞추라고 지시할게요. 이 세 가지 주얼리는 이번 시즌 soul 주얼리 브랜드의 메인이니 실수하면 안 돼요. 제가 직접 감독하고 도울게요.”안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안예지가 나간 후 반크는 웃으면서 말했다.“동림 회사의 아가씨인데 고생도 마다하지 않네. 이 일에 익숙해지면 독자적으로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글쎄요.”“왜?”반크는 의아했다.“지금 안예지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피하는 것 같아요.”이건 확실히 심리 문제로 인한 게 아니었다. 필경 그녀는 10년 동안 병상에 누워
“강성연 대표님.”이율이 조급한 얼굴로 강성연에게 다가왔다.“한 여자가 안예지 씨를 찾으러 왔습니다. 지금 로비에 있어요.”이율의 말을 들은 강성연은 미간을 찌푸렸다.“나이가 어떻게 돼 보여?”이율이 대답했다.“서른 남짓해 보여요. 우아하고 명품을 두르고 있어 일반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강성연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안예지의 생모.반지훈은 안지성이 선희수 때문에 영황 엔터에서 나온 거라 말해줬다. 안지성과 선희수는 비밀리에 연애했고 지금도 아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선희수는 안예지를 낳았고, 두 사람의 연애는 선희수가 민준혁을 만남에 따라 끝이 났다.안지성은 홀로 안예지를 키웠고 업계의 사람들은 그의 “부인”을 본 적이 없으며 딸 하나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심지어 누구도 안지성이 미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반크에게 말했다.“좀 오래 기다리게 될 것 같으니 제가 가 볼게요.”반크는 고개를 끄덕였다.선희수는 로비의 소파에서 주얼리 잡지를 읽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힐 소리가 가까워져서야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강성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선희수 사모님.”아마 강성연이 그녀를 알고 있다는 게 의아한지 선희수는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잡지를 내려놓았다.“당신은?”“전 soul 브랜드 창시자 강성연입니다.”그녀는 눈을 내리깔면서 웃었다.“선희수 사모님은 오랫동안 서울에 계시지 않아 제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 거예요.”선희수는 천천히 일어섰다.“당신이 바로 반지훈 대표님의 사모님이군요.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익히 들었어요.”“안예지 씨를 찾으러 오신 건가요?”강성연은 그녀를 바라보았다.선희수는 역시 70년대 연예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배우였다. 지금 마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매력이 넘쳤다.“예지가 절 만나려고 하지 않나요?”선희수는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일하고 있어요.” “안지성 딸이 주얼리 회사에서 출근한다고요?”강성연은 그녀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안예지는 동림
강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을 하려고 막 로비를 지나던 안예지는 그녀가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로비 직원들은 오후 내내 그러고 있는 그녀를 수상하게 여기면서 수군거리고 있었다.안예지의 모습을 확인한 선희수가 그제야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앉아 있어서 다리가 저려던 걸까? 걸어오는 그녀의 걸음걸이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예지야.”안예지가 뒤로 물러서면서 그녀를 피했다.“저를 왜 찾으시는 건데요?”“난…”안예지가 확실히 자신을 경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눈치챘지만 그녀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선희수는 철면피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안예지와 가까워져야 했다.“예지야, 네가 나를 원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선희수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땐 나한테도 사정이 있었어.”안예지의 시선이 선희수의 손으로 향했다. 그녀의 손은 거친 일 한번 못 해본 것처럼 곱고 보드라웠다.그녀는 곧바로 선희수의 손을 뿌리쳤다.“그런 사정 따위가 절대 당신이 저랑 아빠를 버리고 떠난 이유가 될 순 없어요.”선희수가 당황했다.안예지가 돌아서자 그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예지야, 나도 알아. 내가 너랑 너희 아버지한테 큰 빚을 졌다는걸. 넌 날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돼. 하지만 네 아버지는 나한테 이기적이지 않았는 줄 알아?”안예지가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선희수가 그녀의 가까이로 다가가며 말했다.“너를 가진 건 순전히 사고였어. 그때 난 애를 낳을 준비가 안 됐었다고.”그녀가 안예지 앞으로 돌아가서 말을 이었다.“그때의 난 한창 승승장구하고 있었어. 그런데 어떻게 내 커리어를 다 포기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생각이 들었겠어. 네 아버지는 나한테 아이를 낳을 것을 강요했어.”안예지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그러니까 난 당신이 원치 않았던 아이였다는 말이네요.”그녀는 아무런 답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