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어요. 잠깐만 하다가 넣을 거예요.”“네.”그때 뭔가 생각난 듯 원유희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저기…… 혹시 휴대폰 한 번 쓸 수 있을까요? 그게…… 사실 업무 시간에는 사적인 통화는 금지되어 있는데 급하게 가족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서…….”“네, 쓰세요.”다행히 고객은 흔쾌히 휴대폰을 건넸다.“감사합니다!”휴대폰을 받은 원유희는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엄마, 오후에 시간 되면 새 휴대폰 하나 사줄래요? 비싼 거 말고 가장 싼 거면 돼요. 시간 되면 내가 가지러 갈게요.”통화를 마친 원유희가 휴대폰을 고객에게 돌려주었다.퇴근 후, 저녁 11시.샤워를 마친 원유희가 조용히 아파트 뒷문으로 나섰다.하지만 그 순간, 김신걸을 태운 롤스로이스가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썬팅된 창문을 통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김신걸의 눈동자는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처럼 번뜩였다.“탁. 탁.”김신걸의 긴 손가락이 손잡이를 규칙적으로 두드렸다.심장을 내리치는 듯한 섬뜩한 소리에 운전기사도 괜히 숨을 죽였다.한편, 아이들을 만나려는 생각뿐인 원유희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택시에 올랐다.잠시 후, 여채아의 집 앞에서 내린 원유희가 빠르게 계단으로 올라갔다.저번에 엄마가 건넨 열쇠로 들어온 원유희는 테이블 위에 놓인 새 휴대폰을 발견하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먼저 아이들 방으로 발걸음을 옮긴 그녀는 이미 잠든 아이들의 포동포동한 볼에 뽀뽀를 한 뒤에야 만족한 얼굴로 거실로 나왔다.그녀가 새 휴대폰 포장을 뜯으려던 그때.“똑똑똑.”음산한 노크소리가 울렸다.고개를 홱 돌린 원유희의 가슴이 미친 듯이 쿵쾅대기 시작했다.‘누구지? 이 야심한 밤에 도대체 누가…….’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소파 밑에 숨긴 원유희가 현관으로 다가갔다.“누구세요?”“문 열어.”위압감 가득한 익숙한 목소리에 원유희의 몸이 굳어버렸다.불안한 예감이 확신으로 이어지고 눈앞이 캄캄해졌다.‘김신걸…… 김신걸이 왜 여기에…… 설마 아이들 존재를 눈치챈 건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들어가 보면 알게 되겠지.”하지만 김신걸은 이대로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이때 안쪽에서 문이 열리고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깬 듯한 여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희야?”“안 돼!”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원유희가 본능적으로 김신걸의 탄탄한 허리를 끌어안았다.그 충격에 뒤로 살짝 물러선 김신걸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문틈으로 바깥 상황을 확인한 여채아 역시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그녀가 깜짝 놀란 이유는 다름이 아닌 조한과 상우와 똑같게 생긴 남자의 얼굴 때문이었다.저 남자가 바로 세쌍둥이의 아빠라는 건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하지만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음산한 눈빛에 여채아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엄마, 얼른 들어가세요!”혹시나 김신걸이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까 두려웠던 원유희가 그의 허리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하지만…….”“괜찮아요. 괜찮아.”여채아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원유희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텔레파시를 보냈다.‘아이들부터 지켜주세요…….’그 눈빛을 읽은 걸까 말없이 문을 닫은 여채아가 부랴부랴 아이들 방문부터 걸어잠근 뒤 다시 현관문에 귀를 바짝 가져다댔다.“남자 품에 안기는 게 그렇게 좋아?”정수리 쪽에서 들리는 음침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원유희가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미…… 미안. 우, 우리 엄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무서워서…….”솥뚜껑 같은 손을 뻗어 원유희의 뺨을 움켜쥔 김신걸이 말했다.“너희 집 사정 따위에는 관심없어. 하지만 내가 하려는 일에 방해된다면 가만히 안 있을 거니까 알아서 해!”턱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원유희의 가슴이 다시 불안감으로 뛰기 시작했다.“알, 알겠어.”“휴대폰은?”“휴대폰…….”주머니를 더듬거리던 원유희가 대답했다.“집에 두고 나왔나 봐…….”다음 순간 그녀의 가녀린 팔목을 움켜쥔 김신걸이 그녀를 계단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악!”잔뜩 겁에 질린 원유희는 반항 조차 할 수 없었다.“살살 좀
멈칫하던 김신걸이 묘한 눈동자로 원유희의 배에 있는 흉터를 바라보았다.다급하게 손으로 흉터를 가린 원유희가 말했다.“아, 1년 전에 맹장수술 받았었거든…….”흉터는 복부 중앙이 아닌 살짝 옆으로 비껴나간 곳에 자리잡고 있었고 여전히 탄탄하고 하얀 피부는 아무리 봐도 아이 셋 엄마라고는 볼 수 없었다.제왕절개 수술 자국으로 보일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원유희의 심장은 터질 듯 콩닥거렸다.김신걸이 살짝 멈칫하던 그 순간, 아파트 아래에서 펑 하는 굉음이 들려왔다.그리고 다음 순간 건물 전체에 귀청이 째질듯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미간을 찌푸린 김신걸의 눈동자에 순간 살기가 스쳤다.“내가 김명화를 너무 과소평과했네.”이때 바닥에 벗어둔 재킷 주머니에 든 휴대폰이 울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소파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원유희를 힐끗 바라본 김신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여보세요.”“대표님, 명화 도련님께서 차로 복도를 들이받으셨습니다. 그 충격으로 차 앞 범퍼에 불이 났고 그래서 경보음이 울린 것 같습니다. 명화 도련님께서는 의식을 잃으신 상태입니다.”전화를 끊은 김신걸이 차가운 눈동자로 원유희를 바라보다 코웃음을 쳤다.“너 때문에 목숨까지 걸 줄은 몰랐어. 언제까지 이렇게 나올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갑작스러운 사고에 흥미가 사라진 걸까 말을 마친 김신걸이 집을 나섰다.문이 닫히고 나서야 잔뜩 긴장하고 있던 원유희는 힘없이 소파에 드러누웠다.떨리는 손으로 흉터를 만지던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휴, 다행이야.’사실 김신걸과 관계를 가지는 건 별로 두렵지 않았다.뭐든 처음이 가장 어려운 법이니까.하지만 2년 전 그날 밤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만은 막을 수 없었다.게다가 지금 김신걸은 미친 듯이 그녀를 증오하고 있는 상태. 악마 같은 김신걸이 어떤 식으로 그녀를 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한참을 누워있던 원유희가 벌떡 일어났다.‘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지? 명화가 뭘 어떻게 했길래 경보음
“이 정도 다쳐서 형을 막은 거면 싸게 먹힌 거지 뭐.”그녀를 위로하려는 듯 밝은 김명화의 목소리에도 원유희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어제는 왜 왔어?”“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지. 내가 가서 다행이었지 뭐. 아, 여권은 어떻게 됐어? 정말 내가 안 도와줘도 되겠어?”“여권은 이미 재발급 신청했어. 이틀 뒤면 나올 거야.”“하루라도 빨리 형한테서 벗어났으면 좋겠다.”“꼭 그렇게 될 거야.”‘꼭 그렇게 될 거야. 아이들이랑 김신걸이 찾을 수 없는 먼 곳으로 숨어버릴 거야.’“언제 떠날 거야? 내가 비행기 티켓 알아봐줄게. 걱정하지 마. 형이 알아낼 수 없는 안전한 티켓으로 구할 테니까.”“그래, 고마워.”통화를 마친 원유희는 기대감에 부풀었다.끝없는 터널을 걷다 드디어 빛 한 줄기가 들어오는 듯한 기분이었다.오후쯤, 여채아는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틈을 타 다급하게 원유희의 아파트로 향했다.원유희가 미리 알려준 비밀번호로 아파트에 들어간 그녀는 딸이 부탁한 휴대폰을 남기고 조용히 아파트를 나섰다.그녀가 아파트를 나서던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여자의 그림자가 보였다.‘원수정?’여기서 원수정을 만나게 될 거라 생각지 못한 여채아가 다급하게 덤불 뒤로 몸을 숨겼다.장을 봤는지 식재료를 잔뜩 든 기사와 함께 아파트로 들어가는 원수정을 바라보던 여채아가 굳은 얼굴로 돌아섰다.‘원수정과 만나는 건 아직 안 돼…….’얼마 후, 퇴근하고 아파트로 돌아온 원유희는 문을 열자 왠지 이상함을 느꼈다.맛있는 음식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자극하고 곧이어 주방에서 원수정이 달려나왔다.“고모?”“왔어? 마침 잘 왔네. 식사 준비 다 끝났으니까 얼른 손 씻고 와.”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향해 원수정이 미소를 지었다.고모가 아파트를 찾아온 것도 모자라 식사까지 차려줄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원유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을 씻고 식탁 앞에 앉았다.원유희가 상다리 부러질 듯한 진수성찬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자 그녀의 맞은
“유희야.”원수정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원유희는 수심으로 가득한 고모와 시선을 마주했다.“다들 내가 재벌가 며느리가 됐다고 남 부럽지 않게 사는 줄 알지만 지금의 삶을 위해 난 많은 걸 포기했어. 평생 아이는 낳지 않기로 그이랑 약속했거든.”‘두 분 재혼한 지도 꽤 오래 되셨는데 왜 아이가 없나 했더니…… 그런 거였구나?’“그러니까 유희야, 여기 남으면 안 되겠니? 어떻게든 여길 떠나려고 하는 거 알아. 이기적인 거 알지만…… 고모 곁에 있으면 안 될까? 너까지 떠나면 내 곁에는 정말 아무도 없어.”원수정의 애원 섞인 눈빛에 원유희도 난처할 따름이었다.“고모, 저도……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거예요. 세월이 흐르고 신걸이 마음이 풀리면 다시 돌아올게요. 네?”아이만 없었다면 원유희도 기꺼이 고모 곁에 남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가 있는 한 김신걸이 고모를 괴롭힐 일은 없을 테니까.하지만 그녀에게는 지켜야 할 세 아이가 있다.‘그러니까 고모 죄송해요…….’“그래. 네가 무슨 자격으로 너한테 이런 부탁을 하겠니. 나 때문에 지금 네가 기도 제대로 못 펴고 살고 있는데……”원수정이 고개를 숙이자 원유희가 다급하게 부정했다.“아니에요. 고모 잘못이 아니에요…….”‘이 비극은 전부 김신걸 그 자식 때문이에요.’’원유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쓰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던 원수정이 말했다.“그래. 고모 걱정은 하지 말고 멀리 떠나. 떠나서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 그 악마 같은 애한테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고모는 만족이야.”“고마워요.”식사를 마친 원수정이 떠나고 원유희는 바로 욕실로 향했다.욕실 서랍, 새 휴대폰을 확인한 원유희가 미소를 지었다.도망갈 때 사용할 휴대폰까지 챙겼지만 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내가 아이들이랑 떠나면 엄마는 어쩌지? 여기서 혼자 외롭게 지내시게 두는 게 맞는 건가?’그녀의 어머니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다는 걸 알고 있는 원유희였기에 말년에라도 편하게 지내시게 하
“나 못 믿어?”수화기 저편에서 김명화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니, 그럴 리가…… 명화는 지금까지 날 도와줬잖아…….’결국 원유희는 김명화의 제안에 응했다.모든 준비는 김명화가 대신 한다고 했으니 원유희는 바로 엄마에게 자세한 계획을 알렸다.그리고 행여나 김신걸이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챌까 이틀 내내 아이들을 만나러 가지고 않았다.김명화가 예약한 항공편은 밤 12시. 최대한 김신걸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밤 시간대로 정한 것이기도 했다.드디어 디데이.저녁 10시쯤. 원유희는 최대한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핸드백 하나만을 챙겼다.위치 추적 장치가 들어있는 휴대폰은 집에 남겨둔 채 원유희는 비상 계단으로 아파트 뒷문을 나섰다.먼저 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김명화를 바라본 순간, 벅차오르는 기분에 원유희의 발걸음도 빨라졌다.김명화가 조수석 문을 열고 고개를 끄덕인 원유희가 차에 탔다.두 사람을 태운 포르쉐는 그렇게 공항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긴장 풀어.”김명화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원유희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사실 전에…… 공항에서 신걸이한테 다시 잡힌 적도 있어서…… 아직은 좀 불안해.”“오늘은 그럴 일 없을 거야. 형 지금 회사에서 야근 중이라 너한테 관심도 없을 걸?”김명화의 말에 원유희가 고개를 끄덕였다.‘이번에는…… 이번에는 제발…….’차량은 빠르게 달려 한산한 도로로 들어섰다. 어차피 공항은 교외에 위치해 있으니 원유희도 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눈 좀 붙일래? 도착하면 깨워줄게.”“이 상황에서 내가 잠이 올 리가 없잖아?”고개를 끄덕인 김명화는 다시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차창에 기댄 원유희는 검은 어둠 속에서 멀어지는 나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가는 나뭇가지들이 지금 이 순간은 그녀를 위협하는 악마의 손가락처럼 느껴졌다.‘왜 분명 떠나는 건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이유없는 불안감에 원유희의 숨이 점점 가빠지기 시작했다.그리고 잠시 후, 빠르게 달리던 포르쉐가 천천히
발끝부터 올라오는 한기에 원유희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나…… 나한테 왜 이래?”“왜 이러냐고? 재밌잖아? 너 설마…… 내가 정말 널 위해 형을 배신할 거라 생각했던 거야?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김명화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충격으로 커다래진 원유희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항상 그녀에게 친절한 김명화를 보며 김신걸과는 참 다르다고 생각했는데…….‘그게 아니었어. 두 사람 전부 악마였다고!”“아이고, 우는 거야? 가여워라…….”김명화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던 순간, 거칠게 손을 쳐낸 원유희가 차문을 거칠게 열었다.“으악!”문에 부딪힌 김명화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그리고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와 원유희를 차에서 끄집어냈다.그가 원유희의 뺨을 날리려던 그때, 누군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고개를 돌린 김명화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물었다.“형?”“벌은 내가 직접 줄 거야.”김신걸이 거칠게 손목을 뿌리쳤다.“형, 이거 토사구팽이야. 나 아니었으면 원유희 이 계집애 꼼짝없이 도망쳤다고.”김명화가 억울하다는 듯 입을 삐죽거렸다.“내가 정말 몰랐을 거라 생각해?”차가운 눈빛으로 김명화를 노려보던 김신걸이 차 앞에 서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원유희를 향해 말했다.“타.”이미 차에 포위된 원유희가 도망칠 곳 따위는 없었다.이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마 잔혹한 고문이겠지.하지만 그녀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건 바로 믿었던 김명화의 배신이었다.‘나에게 했던 말들, 그 미소들…… 전부 가짜였다고?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믿었던 김명화가 그녀의 마지막 탈출 계획을 짓밟아 버렸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에 손에 끌려가 듯 롤스로이스에 타고 차량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구석에 웅크린 채 줄 끊어진 인형처럼 앉아있던 원유희는 턱에서 느껴지는 거센 힘에 의해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동자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가 마주쳤
그를 건드린 어떤 사람도 가만둘 그가 아니었다.원유희는 부들부들 떨며 한쪽에 앉아 있었다.그녀는 돌아가면 벌을 받을 마음의 준비를 했다.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였다.지금 그녀의 엄마와 아이들이 공항에서 그녀의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여채아는 병아리 같은 아이들을 거느리고 공항에서 음식을 먹으며 기다리고 있었다.세쌍둥이는 조그마한 입속에 음식을 볼이 미어지도록 넣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외할머니, 엄마는 언제 와요?”조한이 물었다.“너무 오래 기다렸어요.”상우가 말했다.“외할머니, 엄마가 안 오는 거 아니에요?”유담이 걱정스레 물었다.“아니야, 엄마 곧 오실 거니까 우리 조금만 더 기다리자.”여채아는 마음대로 원유희에게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원유희가 전화를 기다리라고 했기 때문이다.40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이미 두 시간이 다 돼간다.설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롤스로이스가 어전원에서 멈추자 원유희는 어둠 속에서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그림자를 보며 불안감에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김신걸이 몸을 돌리더니 음침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도와줘?”“아…… 나 혼자 내릴 수 있어…….”원유희는 황급히 차에서 내리다가 발을 삐끗하는 바람에 넘어질 뻔했다.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요염하게 차려입은 손예인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신걸 오빠, 왔어? 한참이나 기다…….”뒤에 있는 원유희를 본 그녀는 말을 삼켰고 눈빛에 적의로 변했다.손예인을 본 원유희는 이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김신걸이 자신을 향한 벌을 면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하지만 익숙한듯한 손예인의 모습을 보니 처음 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그럴지도 몰랐다. 그녀는 지금 김씨 가문의 며느리 신분이니 자연스럽게 이런 장소에 드나들 수 있었다.“누가 오라고 했어?”김신걸은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손예인은 곧 나긋나긋한 태도를 보였다.“신걸 오빠. 방금 남월만을 지나다가 오빠 생각이 나서 와봤어. 오빠가 없길래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