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취식?”김신걸의 담담한 말투와 검은 눈은 헤아릴 수 없다.“그렇습니다! 온몸에 싸구려 옷을 입고 저희 레스토랑에 와서 무전취식을 하다니, 매우 이상한 사람입니다! 하긴, 저희 레스토랑의 음식은 제성에서 손에 꼽히니 가난한 사람들이 한 끼를 먹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지요!”지배인이 말하자, 김신걸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안으로 걸어갔다.“김 선생님, 룸은 이쪽에 있습니다…….”지배인이 다급하게 말을 건넸지만 그는 듣지 못한 듯 긴 다리로 걸음을 옮겼다.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한 손은 의자를 당긴 뒤 앉아 차가운 눈으로 원유희를 바라보았다.원유희는 입술을 오므리고 얼굴을 약간 기울이며 시선을 피했다.지배인은 눈치가 매우 빨랐고, 그렇지 않으면 지배인의 직위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채자 안색이 매우 어수선해졌다, 설마…… 두 사람이 아는 사이는 아니겠지? 하지만 이 여자가 입고 있는 옷은…….“얼마지?”김신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아닙니다! 이 분은 돈이 부족하지도 않고, 무전취식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아가씨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옷을 입고 계시고 제 눈이 어둡고 안목이 천박했습니다!”지배인은 쩔쩔매며 말을 했다.김 선생님이 어떤 신분인가? 그의 앞에서 자신은 한낮 개미 새끼에 불과했다.원유희는 순식간에 다른 얼굴로 바뀐 지배인을 보며, 속으로 그가 안목이 천박한 것이 아니고 자신이 비싼 옷을 입은 것은 더더욱 아닌, 존재감이 강한 김신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지배인은 김신걸이 말이 없자 급히 눈짓으로 종업원에게 테이블의 식기를 치우라고 하며 물었다.“김 선생님, 오늘은 어떤 음식으로 준비를 해드릴까요?”“늘 먹던 대로.”“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지배인은 허리를 급격히 굽혔고, 그가 멀어지는 것을 보자 비로소 허리를 곧게 펴고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원유희는 김신걸이 여기서 식사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오히려 재수가 있는 건지 없는 건
손예인이 차갑게 웃었다.눈치는 있네, 빨리 자리에서 꺼져서 나랑 신걸 오빠와의 재회를 방해하지 말라고! “내가 가라고 했어?”김신걸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원유희는 일어서려던 몸을 다시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레스토랑 밖에 있는 좌석은 모두 2인용이었고, 원유희가 가지 않는다면 가야 할 사람은 손예인이다. 손예인은 아무리 체면을 차리지 못하더라도 억지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밤은 내가 원유희랑 약속을 했는데 방금 일이 있어서 잠시 나갔다가 와서 다시 돈을 내려 했어. 근데 이렇게 오빠를 만난 거고.”사실, 그녀는 돌아와서 원유희가 어떻게 망신을 당했는지 보려고 한 것이었다.“그럼 오빠, 난 이만 갈게, 우리는 다음에 보자.”“그래.”그가 손예인을 붙잡지 않자 돌아섰을 때 그녀의 얼굴 표정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하지만 떠나기 전, 그녀는 밥값을 지불했고 원유희는 돈을 지불한 것을 알아차리자 김신걸에게 빚진 것이 더 이상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그녀는 이미 배불리 먹었지만 김신걸이 그녀를 보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감히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마치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듯했고, 김신걸이 밥을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원유희는 은근히 김신걸을 관찰했는데, 그의 볼록 솟은 이마와 곧은 콧날부터 얇은 입술까지 선이 뚜렷하여 차갑고 딱딱한 아름다움에 속하며, 날카로운 무기처럼 사람을 기를 꺾는다.여기에 강한 카리스마까지 더해지면서 숨이 막힐 정도로 압박감이 강했으며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설령 그가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한다 해도 언제든 위험은 도사리고 있었다. 손예인은 이런 남자를 좋아한다. 팔자가 상팔자여서 그런가?하지만 이런 일은 그녀와 상관없었고, 그녀는 이 남자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검은 롤스로이스에 앉은 원유희는 호사스러움과 압박감에 긴장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차창 밖 동선이 자신의 아파트로 가는 것을 보고 억누르던 긴장감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아!”원유희가 방심하던 찰나에 그녀는 김신걸 옆 좌
사실 그녀가 앞트임을 한 것은 맞았고, 예전엔 눈이 크지 않아 카메라 안에서의 눈매가 선명하게 나오지 않아 영향을 줬다. 원유희의 말은 그야말로 그녀의 마음 한구석을 찔렀다. “노선생님한테 돈 봉투를 줬지? 이 일이 폭로되면 파장이 더 커질 것 같은데.”원유희가 말했다.“너!”손예인은 화가 치밀어 올랐고,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능력이 있으면 어디 한 번 의사한테 내 일을 폭로 해봐, 지금 난 반드시 널 이 성형외과에서 해고하게 할 거니까! 난 스타라는 직업을 잃어도 우리 집에는 돈이 차고 넘치거든!”그녀는 말을 마친 뒤 화를 내며 방을 나섰고, 원유희는 미간을 찌푸렸다.“당신들 반드시 원유희를 해고해야 할 거예요!”손예인이 밖에서 소란을 피웠고, 담당 책임자가 오자 간호사들도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무슨 일이죠?”“원유희라는 직원 말버릇이 왜 그러죠? 당장 그 사람을 해고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이 일을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 손예인이 계속해서 소란을 피웠다.“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책임자가 잠자코 있는 원유희를 한 번 보더니 다시 물었다.“말버릇이 안 좋다고 말했는데,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손예인이 비아냥거렸다.“원유희, 당장 사과해!”책임자가 시비를 가리지 않고 말했고, 손예인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저 사람을 당장 자르라니까? 하기 싫다 이거야? 내가 당신들 성형외과에 불리한 내용을 인터넷에 올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한 번 보여줘?”다른 사람들의 얼굴빛이 굳어졌다.퍼펙트 성형외과는 서비스도 좋고 품질도 좋기로 소문나 있는데, 직원이 세 번 이상 경고를 당하면 간호사는 바로 잘리거나 의사는 임금을 낮추는 등 매우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손예인은 유명 스타인데, 이렇게 되면 문제는 더욱 커지게 된다! 책임자는 직원을 직접 해고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고, 수습 기간도 지나지 않은 직원 때문에 성형외과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없었다.“인사부로 가죠.”원유희는
“원유희, 감히 내 뒤에서 수작을 부리면 하루도 살지 못하게 될 걸 알고 있어야 할 거야.” 원유희는 두피가 저리고 한기가 몸에 스며들어왔다.“알아, 하지만 내 말은 사실이야. 손예인이 성형외과에서 가서 나를 난처하게 만들고 책임자에게 날 해고하라고 강요해서 그런 거야, 네가 직접 가서 물어봐도 돼…….”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는 자신이 한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겁에 질린 말투와 약한 자세가 마치 수년 동안 박해당한 피해자처럼 보였고, 김신걸이야말로 악랄한 가해자였다. 그녀는 불안이 엄습했고, 휴대폰 벨이 다시 울렸을 때 깜짝 놀라서 휴대폰을 떨어트릴 뻔했다.휴대폰을 보자, 낯선 번호가 찍혀 있었다.“여보세요?”“저는 퍼펙트 성형외과 인사부 직원입니다. 원유희 씨, 당신에게 여러 번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더군요. 왜 출근을 안 하신 거죠?”원유희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을 했다, 월급을 정산하러 갔을 때 이미 상황을 다 알고 있던 것 아니었나? “알겠습니다, 오후에 갈게요.” 전화를 끊자, 원유희는 그제야 김신걸의 전화를 받기 전에 여러 통의 전화가 인사부에서 걸려온 것을 발견했다. 점심을 먹고 성형외과로 출근하고 나서야 그녀가 없는 사이에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그녀를 해고했던 그 책임자는 제명되었고 상사가 재배치 된것이 라고 하는데, 이유인즉슨 이유 없이 직원을 해고하고 직원을 무시하며 오히려 생떼를 부리는 손님의 비위를 맞춰줬다는 것이다. 매우 타당한 이유였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일의 정황은 원유희만이 알고 있었고, 이는 김신걸의 권력이 뒷받침되어 있었다. 원유희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와 일을 하면서 임시 신분증을 받기 위해 기다렸다.그녀가 안심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 영희 이모의 전화가 왔다. 그녀는 일할 때 음소거 상태로 해놔야 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 전화를 보지 못했고, 점심시간에 휴대폰을 꺼내어 보았을 때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시간을 계산해 보니, 영희 이
원유희가 눈물을 머금은 눈을 치켜떴다.“생리통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그녀가 배를 움켜쥐고 있는 걸 본 안가희가 물었다.“심각해? 병가 내고 병원 가보는 게 어때?”그러자 뒤에 있던 장인영이 입을 삐죽거렸다.“어이가 없네. 생리통 때문에 휴가를 다 내고. 나도 생리 때마다 아프지만 단 한 번도 휴가 낸 적이 없었잖아요?”“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안가희가 목소리를 낮추며 눈살을 찌푸렸다.“내 말이 틀렸어요? 여자라면 다들 생리통쯤은 가지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걸로 일일이 병가 내고 그럼 되겠어요?”“딱 봐도 심각해 보이잖아요.”“어차피 죽는 것도 아니잖아요?”장인영의 적반하장에 안가희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장인영은 전 팀장과 워낙 사이가 좋았던 동료였고, 전 팀장은 원유희 때문에 해고된 거나 마찬가지니 그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원유희가 벽을 짚고 힘겹게 일어섰다.“괜찮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화장실을 나섰다.물론 생리통이라고 말한 건 어디까지나 핑계일 뿐, 그렇다고 진짜 이유를 말할 수는 없었다.게다가 성형외과 전체는 김신걸의 주관이나 마찬가지, 병가든 월차든 내면 바로 그가 알게 될 것이다.마치 그녀가 해고된 지 12시간도 되지 않아 득달같이 전화를 걸어왔던 것처럼 말이다.김신걸의 감시하에서 신분증이며 여권을 가지고 있다 한들 제성을 떠나기는 쉽지 않을 터.하지만 딸이 아프다니 모든 걸 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설령 다시 김신걸에게 잡힌다 해도 말이다.원유희는 최대한 아무 일도 없다는 표정으로 일을 했지만 속은 타들어갔다.30분 정도가 지나고 결국 초조한 마음을 못 이긴 원유희는 화장실로 들어가 영희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발신음이 울리는 1분 1초가 고통스럽게 느껴지던 그때, 드디어 영희 이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모님, 애는 좀 어때요?”“방금 병원에 도착했어요.” 영희 이모가 숨을 헐떡였다.원유희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을 거예요
“오늘이 첫 날인 거야!”상우의 말에 유담이 중얼거렸다.“아직도 14일이나 남았잖아. 아직도 오래 기다려야 해…….”시무룩한 유담의 모습에 영희 이모가 아이들의 포동포동한 손을 꼭 잡았다.“할머니랑 같이 기다리면 곧 오실 거야. 엄마도 최선을 다하고 계시니까 우리도 여기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거야? 응?”“네!”비록 아이의 상태가 안정됐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지만 하루 종일 유담이 생각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자식이 잘 지낸다 해도 항상 걱정이 끊이지 않는 게 엄마 마음인데 자식이 아프다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엄마가 곁에 없어도 항상 씩씩한 유담이었지만 아플 때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가 넘어지기만 해도 마음이 찢어지는데 아프기까지 하니…… 너무 걱정되네.퇴근해 집으로 돌아온 원유희는 바로 영희 이모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하지만 연결음이 울리기 바쁘게 화들짝 놀란 듯 바로 끊어버렸다.영상 통화를 해도 되는 걸까? 아이들 얼굴을 보고도 침착할 수 있을까? 행여나 이성을 잃고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려다 김신걸에게 걸리진 않을까?아이들이 아픈 것도 걱정됐지만 김신걸에게 아이들을 빼앗기는 게 더 두려웠다.고통스러운 얼굴로 주저앉은 원유희가 손바닥을 붉어진 눈시울을 감싸 쥐었다.이 모든 일의 원흉인 김신걸이 죽도록 증오스러웠다.이때 다리 옆에 둔 휴대폰 알림음이 울렸다. 문자 알림이었다.휴대폰을 확인한 원유희가 미간을 찌푸렸다.김신걸이 보낸 문자의 내용은 단 두 글자, “나와”였다.나오라는 문자는 김신걸의 차가 아파트 단지 앞까지 도착한다는 걸 의미했다.감히 거역할 수 없는 명령조에 원유희는 극도의 혐오감을 느꼈다.홧김에 휴대폰을 소파에 던졌지만 쿠션에 통통 두 번 튀길 뿐이었다.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도 휴대폰 하나 차마 제대로 던지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한심했다.잠깐 망설이던 원유희가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지금은 나가고 싶지 않아. 다음에 봐.”한편 답장을 확인한 김신걸의 표정이 차갑게 굳더니 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이제는 이런 상황 정도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스스로의 모습이 원유희도 놀라울 따름이었다.그녀가 말없이 조 대표 곁으로 다가가자 조 대표의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김신걸 여자인 줄 알았는데…… 왜 나한테…….’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이런 접대에 나름 익숙해진 원유희는 자연스럽게 조 대표의 잔에 술을 따랐지만 그는 바로 만류하며 술병을 받아들었다.“아니에요. 제가 직접 하죠.”자신의 잔에 술을 가득 따른 조 대표는 예상외로 원유희의 잔에는 조금도 따르지 않았다.김신걸의 손에 이끌려 이런 자리에 참석한 것도 벌써 여러 번. 하지만 조 대표처럼 젠틀한 남자는 처음이었다.그제야 고개를 들어 조 대표의 얼굴을 자세히 살핀 원유희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어딘가 낯이 익은데…… TV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하긴 김신걸과 함께 술자리를 할 수 있는 사람들 중에 평범한 사람이 있을 리가.’조 대표는 나름 김신걸의 체면을 생각해 원유희에게 젠틀하게 대하는 듯했지만 그 모습이 원유희는 우스울 따름이었다.‘어차피 김신걸이 원하는 건 내가 수모를 당하는 모습일 텐데.’알아서 잔에 술을 따른 원유희는 조 대표와 술잔을 부딪힌 뒤 쓰디쓴 액체를 원샷했다.‘내가 만약 취하면 어디로 데리고 갈까? 어전원으로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 신분증이랑 여권 좀 챙기게. 그럼 어떻게든 아이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한참 동안 술잔이 오고 가고 조 대표가 살짝 놀란 눈으로 물었다.“술…… 잘 마시시네요?”살짝 고개를 끄덕인 원유희는 말없이 또 한 잔 술을 들이켰다. 한쪽에서 원유희를 뚫어져라 관찰하던 김신걸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송곳처럼 원유희의 몸을 꿰뚫는 듯했다.술자리가 무르익고 원유희는 아예 조 대표는 내팽개치고 혼자 자작을 하기 시작했다.어떻게든 집에 들어가 여권을 챙기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오늘 하루 정말 기분이 엉망이었던 그녀는 알코올로 정신을 마비시키고 싶었다.‘필름만 안 끊기면 돼…….
김신걸이 다행히 살인충동을 잘 참아낸 것인지 다음 날, 원유희는 무사히 눈을 뜰 수 있었다.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을 느끼며 일어난 원유희는 자신이 계단 근처의 카펫 위에서 자고 있었음을 눈치챘다.마치 버려진 쓰레기처럼 말이다…….뭐 누구 짓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이 됐다.자리에서 일어선 원유희가 익숙한 인테리어를 둘러보았다.‘어전원이네. 역시…… 하늘이 날 아직 완전히 버린 건 아니야.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셨으니까!”욕실에서 엉망진창인 얼굴을 대충 정리한 원유희가 1층으로 내려갔다.그녀를 발견한 해림이 다가왔다.“아가씨 식사 준비 다 됐습니다.”“김신걸은요?”“대표님은 나가셨어요.”고개를 끄덕인 원유희가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음식물을 씹으면서도 그녀의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김신걸이라면 내 여권을 어디에 숨겼을까? 방? 아니면 서재? 운에 맡겨보는 수밖에.’식사를 마친 원유희는 주방에서 나온 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서재로 향했다.다행히 문은 열려있는 상태였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을 연 원유희는 쏙 하고 안으로 들어간 뒤 급히 문을 닫았다.심플한 분위기의 큰 서재는 어딘가 차갑고 압박감마저 느껴졌다. 김신걸의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은 느낌에 원유희는 숨이 턱턱 막혔다.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멍하니 서 있을 시간은 없었다.원유희는 숨을 죽이고 조심조심 걸어가 책상 위의 파일이며 서랍을 전부 뒤졌지만 그 어디에도 여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살짝 실망하던 원유희는 책장으로 시선을 옮겼다.책들을 하나하나 뒤져보던 그때, 두터운 책 한켠에 짙은 푸른색 작은 수첩이 그녀의 시선을 끌어당겼다.‘역시…….’뭐에 홀린 듯 꺼낸 수첩의 정체는 여권이었다. 신분증까지 여권 사이에 끼어있는 걸 발견한 원유희는 기쁨의 환호를 내지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물었다.휴대폰은 버리고 도망치는 거야. 휴대폰 위치 추적이 없으면 아무리 김신걸이라도 날 잡을 순 없을 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