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아이들과 며칠 더 있으면 엄마가 언제든지 떠난다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겠지.’ 학교는 예전의 피노키오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피노키오를 생각하니 원유희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 때문에 표원식이 피노키오를 잃었어. 지금 제성에서는 유희귀족학교가 피노키오를 대체했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야. 왜냐하면 김신걸은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강자니까.’ “엄마, 우리 교실 보여줄게요.” “그래.” 원유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신걸이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왜 계속 날 보는 거야? 이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면 사람이 불편하다는 거 모르나?’ 김신걸이 미리 분부한 건지 학교에 들어와서도 아무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다. 다만 몇 명의 아이들이 계속 이쪽을 보자 세 쌍둥이는 뛰어가서 그들과 놀았다. 순간 원유희의 곁엔 김신걸만 남았다. 원유희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노는 세 쌍둥이를 바라보았다. “내일 바다로 나갈까?” 김신걸이 원유희에게 시간을 물었다. “다음에 가!” 원유희는 거절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았다. 사실 지금은 원유희가 강해져서 바다에 나가는 것에 대해 별로 두려운 건 없었다. “그래.” 김신걸이 흔쾌히 승낙하자 원유희는 약간 의외였다. 하지만 바로 자신의 생각을 부인했다. ‘김신걸 곁에는 다른 여자가 있어.’ 2 년 동안 변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았다. 학교에서 나올 땐 이미 한 시간 후였다. 다섯 식구는 다른 곳에도 놀러 가고 외딴곳에 가서 자연을 접하기도 했다. 김신걸은 인내성 있게 모든 과정을 동반했다. 길에서 어떤 부부를 만났는데 여자가 부러운 말투로 말했다. “다섯 식구가 참 행복해 보여요! 우린 딩크인데 이 모습을 보니 우리도 아이를 낳고 싶네요.” 원유희는 웃으며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유담이 말했다. “맞아요. 우린 아주 행복해요.” “그럼 계속 행복하길 바랄게요.” “네.”세 쌍둥이가 대답했다. 세 쌍둥이가 앞에서 잠자리를 잡고 있을 때 옆에 있던 김신걸이 말했다
하지만 원유희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빛은 여전했다. 그리고 원유희의 생활에 각별한 관심을 쏟는 것 같았다. 뭔가 예전과 다른 것 같으면서도 본질적으로 같은 것 같고, 아무튼 형용하기 어려웠다. 원유희는 최대한 무시하고 자신에게 느슨한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애들은 집에서 엄마와 이틀 동안 있다가 학교로 갔다. 원유희는 혼자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원유희가 길가의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때 맞은편에 사람이 앉은 것 같아 고개를 들어보니 김명화가 웃으며 자기를 보고 있었다. “상태 좋아 보이네. 아이들 만났어?” “네. 아이들은 오늘 학교에 갔어요.” “아이들도 즐거웠겠다.” 김명화가 말했다. 원유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즐거우면 나도 즐거워.’ “언제 떠날 거야?” 김명화가 물었다. 김명화가 알고 싶은 건 원유희가 떠나는 시간이 아니라 원유희와 김신걸의 관계였다. “아이들이 내가 간다는 말만 하면 반응이 커서 좀 더 있으려고요.” 원유희가 말했다. 김명화의 눈빛에 이상한 빛이 스치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래야지. 그런데 김신걸 곁에 있는 여자 봤어?” 원유희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말했다. “나와 상관없어요.” “김신걸이 그 여자 때문에 너에게 잘 대하지 않을까 봐 물어본 거야.” “난 세 쌍둥이의 엄마예요. 아이들을 보아서라도 그렇게 까진 하지 않을 거예요.” “정말 아이들 때문이야?” 김명화는 탐구적인 눈빛으로 원유희를 바라보았다. “그럼요.” 김명화와 헤어진 후 원유희는 예전부터 고민했던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떠나지 않는다고 해도 어전원에선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집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원유희는 엄마의 별장으로 가서 아이들이 하교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별장을 나갔다.하지만 나가자마자 발걸음을 멈추었다. 눈에 띄는 롤스로이스가 눈앞에 있었고 김신걸이 차에서 내려 날카롭고 깊은 검은 눈동자로 원유희를 바라보았다. 김신걸이 이쪽으로 다가와서 원유희 앞에 서자 늘씬한 몸매가
원유희가 우울하게 창 밖을 보고 있을 때 공기 중의 위험을 느꼈다. 이어 김신걸이 원유희의 곁으로 가더니 그녀를 누르고 키스를 했다. “너…… 윽!” 원유희는 갑자기 김신걸에게 키스를 당해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호흡기에 온통 김신걸의 기운으로 파고들었다. 원유희는 손으로 김신걸을 밀쳤지만 김신걸의 튼튼한 가슴에 닿자 팔이 나른해졌다. “김신걸…… 우…….” 원유희는 말을 하자마자 다시 키스를 당했다. 한참을 키스하고서야 원유희를 놓아주었다. 김신걸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키스 때문에 표정이 황홀해진 원유희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달다.” 왠지 원유희가 조금만 경계심을 놓으면 김신걸이 야수가 되어 덮칠 것 같았다. “너…… 내 몸에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원유희는 화가 나서 몽롱한 눈으로 김신걸을 째려보며 말했다. “약속을 어기면 나 지금이라도 떠날 거야.” 김신걸은 원유희를 안고 있던 손이 경직되더니 바로 원유희를 놓고 말했다. “안 건드릴 게.” 말을 마친 김신걸은 바로 멀리 떨어졌다. 원유희의 빨갛게 부어오른 입술이 아니었다면 방금 아무 일도 없었다고 착각할 정도로 담담했다. 원유희는 자리에 앉아 옷을 정리했다. “한입으로 두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한 번만 더 이러면 난 당장 떠날 거야. 농담 아니야.” “어디 가려고?” 김신걸은 원유희의 말에 화가 났지만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건 말해줄 수 없어.” 원유희는 안 좋은 말투로 대답했다. 누구든지 이렇게 강제로 키스를 당하면 기분 나쁠 것이었다. 게다가 원유희는 이 방면에서 더욱 예민했다. 김신걸은 아랫입술에 묻은 액체를 핥고 더 이상 원유희에게 묻지 않고 검은 눈동자로 원유희의 차가운 얼굴을 쳐다보았다. 김신걸은 원유희가 오후에 누구를 만났는지 알고 있었다. ‘원유희가 제성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김명화와 마주쳤어. 이건 불정상이야.’핸드폰이 진동하자 김신걸이 꺼내서 보았다. 문자내용은 고건이 보내온 김명화와 원유희가 같은 비행기
김신걸에게 전화를 한 사람은 바로 임지효였다. 김신걸의 차가운 목소리를 들은 입지효는 자신의 행동에 후회하기 시작했다. “고건 씨는 협의가 종료되었다고 했어요. 하지만 난 이해할 수 없어요. 혹시 내 생일에 당신을 귀찮게 해서 그런 건가요? 그런 거면 사과할게요.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면 안 돼요? 앞으로는 말 잘 들을게요.” “너 선 넘었어.” 김신걸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전 이미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네 사랑 따위 필요 없어. 나한테 전화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 김신걸은 전화를 끊었다. 임지효는 끊긴 전화를 바라보며 속상했다. 지난 2 년 동안 임지효는 이미 김신걸을 자신의 목표, 마음속의 신으로 여기고 살았다. ‘가족들도 모두 나에게 돈 많고 권세 있는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이제 어떡하지? 김신걸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닐 텐데. 무엇보다도 난 이미 김신걸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저녁, 다섯 식구는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 일요일에 바다로 가요?” 조한이 격분돼서 물었다. “나 바다 갈리요!” “엄마, 바다 가도 돼요?” 세 쌍둥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원유희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바다로 가는 거 엄청 기대하고 있었나 봐.’ 원유희는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김신걸도 원유희의 대답을 기다리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아이들 앞에서 거절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이러는 거잖아. 이건 협박이나 다름없어.’ “그래.” 원유희는 결국 승낙했다. 세 쌍둥이는 기뻐서 환호했다. 유담은 의자에서 내려와 엄마의 품으로 달려들어 애교를 부렸다. 원유희는 유담의 말랑말랑하고 작은 몸을 안고 강제로 바다로 끌려가는 거긴 하지만 이 순간만은 만족한다고 생각했다. 김신걸은 말을 하지 않고 깊고 검은 눈동자로 고개를 숙이고 웃는 원유희를 바라보았다.그리고 일어나 원유희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혀 원유희에게 접근했다. 원유희의 심장이 빨리
원유희는 학교 앞에서 밀당하는 건 좀 보기 싫은 것 같아서 순순히 차에 탔다. 원유희가 차에 오른 후 김신걸도 뒤따라 오르더니 롤스로이스는 학교 앞을 떠났다. 구석에 숨어있던 임지효는 롤스로이스가 사라질 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방금 그 여자…… 원유희야?’ 임지효는 감히 김신걸에게 전화를 걸지 못해 혼자 어떻게 된 건지, 김신걸이 왜 갑자기 자신이 필요 없다고 하는 건지 조사하려고 했다. ‘그게 원유희 때문이었구나. 그런데 예전에 원유희가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내가 사람을 보내 바다에 가서 건져보았는데 시체조차 찾지 못했어. 설마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만약 원유희가 죽었다면 방금 그 여자는 누구지?’ 임지효는 자신의 얼굴이 생각나서 추측했다. ‘설마 저 여자도 원유희 따라 성형한 건가? 방금 잘 보진 못했지만 확실히 원유희와 닮았어. 내가 가서 잘 알아봐야겠어.’ 원유희는 처음엔 주의하지 않았는데 정신 차려보니 차가 이상한 노선으로 가고 있었다. “이건 별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잖아.” 원유희는 감정을 억누르고 말했다. “널 데리고 갈 곳이 있어.” “나 안가. 내려줘.” “유희야, 너도 그곳을 좋아할 거야.” 원유희는 김신걸의 깊은 눈동자와 마주치자 입을 오므리고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내가 꼭 좋아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지? 내가 제성으로 돌아온 건 아이들 때문이지 뭔가 특별히 좋아하는 게 있어서가 아니라고.’ “곧 도착해.” 김신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하듯 말했다. 원유희는 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기왕 왔으니 무엇인지 구경이나 하지 뭐! 김신걸이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지도 보고!’하지만 원유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 경계심은 예전과 달라 바로 알아챌 텐데 거의 다 와서야 노선이 잘못되었다는 걸 발견하다니.’ 원유희는 안색이 어두웠다. ‘김신걸의 카리스마가 너무 강해서 창 밖의 환경변화를 소홀히 했나 봐. 이건 너무 나쁜 경험이야.’ 차가 목적지와 점점 가까워지자
“몇 개월인데? 일할 수 있어?” “이제 4 개월이에요. 당연히 일할 수 있죠.” 원유희는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몰랐다. 회사도 그대로였고 예전 직원들도 그대로였다. “원 대표님, 김 대표님, 사무실 가시려는 거예요? 제가 커피 타드릴까요?” 해비서가 물었다. “응.” 원유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에 들어간 후 해비서는 재빨리 커피 두 잔을 가져와 탁자 위에 놓고 나갔다. 원유희는 익숙한 사무실을 보고 물었다. “이게 바로 네가 보여주겠다는 거야?” “넌 예전처럼 이 회사를 관리하고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긴 원해 내 것이었어. 애초에 김신걸이 빼앗아간 거고. 이제 와서 뭐 하자는 거지? 회사를 돌려주고 용서를 구하고 보상을 받겠다는 거야? 당시 텅 빈 회사를 보는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어. 정말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지.’ “그럼 피노키오는?” 원유희가 물었다. 김신걸의 검은 동공이 약간 흔들리더니 말을 하지 않았다. 원유희는 김신걸을 보며 말했다. “나 때문에 표씨 가문의 학교를 망친 것이니 그것도 돌려줄 수 있겠어?” 김신걸은 안색이 차가워지더니 압박적인 공기가 사람을 당황하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할게.” 원유희는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의외, 놀라움과 동시에 전방에 위험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김신걸은 원유희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조건이 있어?” 원유희는 김신걸의 검은 눈동자를 보며 물었다. “내 곁으로 돌아와. 실질적으로.” 원유희는 김신걸이 손해를 볼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고분고분 승낙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김신걸, 너도 그건 비현실적이라는 걸 알잖아.” 김신걸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너도 표원식을 위해 말할 때 내가 얼마나 불쾌할지 알 텐데? 너만 승낙하면 난 모든 걸 다 줄 수 있어.”원유희는 깊은 무력감에 빠져 김신걸
그때도 다섯 식구가 갑판 위에 있었는데 김신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얼굴이 찍혔다. 화면 속은 즐거운 웃음소리와 행복으로 가득 찼다. 촬영사도 대단했고 그땐 확실히 즐거웠었다. 동영상을 다 보자 조한이 손가락으로 밀어 다른 영상이 나왔다. 바닷속에서 찍은 건데 앞부분은 아이들이 있었고 뒷부분은 원유희와 김신걸뿐이었다. 원유희가 산호 위에서 아래로 헤엄치며 김신걸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 원유희를 넋을 잃게 했다. 세 쌍둥이는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 언제 기대 왔는지 김신걸도 옆에서 보고 있었다. 원유희는 태블릿을 뒤집었다. “아, 엄마, 우리 아직 다 못 봤어요.” 아이들은 투정하며 다시 태블릿을 뒤집었다. 원유희는 거절할 수도 없고 방법이 없어 먼 곳을 보며 말했다. “그만 봐! 바다에 돌고래가 있는데.” “어디?” “어디?” “어디?” 원유희의 말에 세 쌍둥이는 동영상을 잊고 모두 가드레일을 행해 달려가 바다를 보며 돌고래를 찾았다. 멀리서 돌고래가 갑자기 바다 위로 뛰어오르더니 다시 바다로 떨어졌다. 그 장면은 말도 못 하게 웅장했다. 세 쌍둥이는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원유희가 가려고 하는데 김신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없을 때 애들이 집에만 오면 동영상을 보며 널 그리워했어.” “넌 애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지 말고 방에도 걸어놓지 말았어야 했어. 만약 내가 죽었다면 어쩌려고?” 원유희가 눈앞에 있지만 죽는다는 말은 여전히 김신걸의 마음을 찔러 지옥 변두리로 보낸 것 같았다. 김신걸은 2 년 동안 이렇게 지내왔다. 수시로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으면서 말이다. “난 네가 살아있을 것 같았어.” 원유희는 이해할 수 없는 눈빛으로 김신걸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뜻이지? 살아있을 것 같은 거지 살아있다고 확신하는 것도 아니잖아.’ 김신걸은 엄청난 자제력으로 원유희를 품에 안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검은 눈동자는 햇빛 아래에서 더욱 깊어 보여 마치 눈앞의 사람을 몸에 새
다섯 식구가 별빛 아래에 놓인 탁자 위에서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물론 바다에 와서도 해산물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원유희와 아이들만 해산물을 먹을 수 없지 김신걸은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매번 함께 식사할 때 마치 자기도 해산물을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조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수영은 언제 배운 거야?” 김신걸은 마치 잡담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단번에 원유희의 정곡을 찔렀다. 그러자 원유희가 대답했다. “작년에 배운 거야.” “어떤 상황이길래 굳이 수영을 배웠어야 했어?” 원유희는 외딴섬에서의 훈련이 생각났다. 거긴 무섭다고 피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무서워할수록 죽음으로 몰아붙였고, 도중에 죽어도 그저 탈락된 거라고 생각하고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거기와 비교하면 김신걸이 나에게 했던 짓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마가 수영을 할 줄 아니까 이제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어요.” 유담이 말했다. 원유희는 유담을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얼른 먹어.” 아이들이 낮에 노느라 너무 지쳐서 밤에 일찍 잠이 들었다. 원유희는 김신걸과의 접촉을 피면 하기 위해 일찍 방으로 돌아갔다. 창 밖의 해역은 잘 보이지 않고 요트의 불빛이 비친 가까운 곳만 볼 수 있었다. 리모컨을 누르자 커튼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원유희는 몸을 돌려 욕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반쯤 씻었을 때 배가 살짝 흔들렸다. 원유희는 잠깐 멍해졌다가 생각했다. ‘바람이 불어서 그런가 보다.’ 바다에서는 약간의 파도가 밀려와도 배에서 느낄 수 있다. 샤워를 마친 원유희는 욕실에서 나와 방에 서 있는 남자를 보자 몸이 굳어버렸다. 원유희가 나오자 김신걸의 시선은 원유희에게 쏠렸다. 방금 샤워를 한 원유희는 불그스름한 얼굴에 잠옷의 허리띠는 가는 허리를 졸라매고 있었다.김신걸의 검은 눈동자는 더욱 깊어져 마치 수시로 달려들 것 같이 위험했다. 경각성이 높은 원유희는 공기 속의 위험을 느끼고 심장박동이 혼란해졌지만 애써 침착한 말투로 물었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