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희를 안고 있던 남자의 팔은 원유희를 몸속으로 비벼 넣을 것처럼 조였다. 평소라면 원유희는 진작에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겠지만 지금은 감히 움직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한 방울의 눈물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김신걸이 운다고?’ 원유희의 기억 속에 김신걸은 포악하고 지독한 남자였다. 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어 다른 사람이 눈물과 피를 흘리게 할 뿐 본인이 우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유희야, 나 너무 보고 싶어. 네가 돌아온 지 며칠이나 되었는데도 여전히 네가 보고 싶어. 어떡하지……?” 김신걸은 눈으로 보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독점하려는 마음이 너무나도 강렬해 통제력을 잃을 정도였다. “김신걸, 넌 왜 항상…….” ‘내가 분명히 몸에 손대지 말라고 했는데 왜 계속 이러는 거야?’ “알아, 알아.” 김신걸은 목소리가 쉬고 눈시울이 빨개졌다. “날 불쌍히 여긴다고 생각하면 안 돼?” 원유희는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았다. ‘왜 굳이 이래야 되는데? 밖에 있는 여자가 만족시키지 못해서 그러는 건가?’ 원유희는 자신이 김신걸 마음속에서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과거 원유희에 대한 상처, 그리고 짐승처럼 대했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했다. ‘그게 어딜 봐서 좋아하는 거야? 그런데 난 왜 김신걸을 밀어내지 못하는 걸까?’ 원유희는 차라리 김신걸이 예전처럼 자신을 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자신도 좀 더 모질게 김신걸을 대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김신걸은 몸은 여전히 튼튼한데 예전의 포악함은 사라지고 갈망뿐이었다. “늦었으니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 너무 오래 안겨있어서 원유희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김신걸이 원유희를 놓아주자 원유희는 김신걸의 안색과 눈을 보니 이미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일찍 자. 무서우면 나한테 전화하고.” 김신걸이 당부했다. 원유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김신걸은 원유희의 이마
원유희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앉아서 김신걸과 마주 앉아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이렇게 늦게 먹으면 점심은 언제 먹지?’ “오전에 깊은 곳에 가서 잠수할 거야.” 김신걸이 말했다. 원유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곳에서 잠수하는 건 소모가 커서 12시 전에 틀림없이 배고플 거야.’ 김신걸은 원유희의 안색을 보더니 어젯밤에 잘 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신걸은 돌아간 후 아주 늦게 잠이 들었고 아침에도 일찍 깼다. 김신걸의 머릿속엔 온통 원유희뿐이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지금의 원유희는 경각성이 높아서 내가 방에 들어오기만 해도 깬다.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이렇게 변한 걸까?’ 추측만으로도 김신걸은 마음이 아팠다. ‘언젠가는 내가 조사해 낼 거야.’ 식사하고 있을 때 김신걸의 손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원유희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물러났다. 반응이 매우 민첩했다. 앞으로 뻗은 손이 잠깐 멈추자 원유희는 자신의 반응이 과분했다는 걸 알아차리고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방금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손이 다가와서 놀랐어.” 김신걸은 경직된 손을 거두고 말했다. “너 얼굴에 크림 묻었어.” 원유희가 옆에 있는 티슈로 닦자 정말로 크림이 묻었다. “그럼 말하지 그랬어. 나 혼자 닦으면 돼.” 원유희가 말했다. “응.” 김신걸은 깊고 예리해서 마치 영혼을 파고들 것 같은 눈빛으로 원유희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분명히 함께 있는데 왠지 중간에 천산만수가 있는 것 같았다. 원유희는 김신걸을 알고 싶지도 않고 김신걸에게 간파당하기도 싫었다. 김신걸도 더 이상 원유희를 강요하지 않고 요트에서 즐겁게 원유희와 아이들이랑 놀았다. ‘적어도 살아있다는 걸 알았고 지금 내 눈앞에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 오전에 깊은 잠수를 할 때도 예진과 비슷했다. 바다 밑의 세계는 진실하고 아름다웠다.유일하게 다른 점은, 이젠 원유희가 혼자 바닷속에 있어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두렵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아
차가운 입술과 뜨거운 혀가 교체되어 마치 피가 몸에서 서서히 소생하는 느낌이었다. 원유희가 김신걸을 밀어내자마자 김신걸에게 의해 다시 밀착되었다. 김신걸은 더욱 흉악하게 키스를 했다. 마치 바닷속의 괴물처럼 원유희를 뱃속으로 삼키려는 것 같았다. 바다에서 올라가 동영상을 볼 때 김신걸과 껴안고 있는 사진을 보았는데 촬영사가 바다에서 빛을 발해서 사진이 화보같이 나왔다. “너무 예뻐요!” 유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얼굴이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예요!” 조한이 어른스럽게 말했다. “맞아요!” 상우도 찬성했다. 두 아들에게 칭찬받으니 원유희는 쑥스러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신걸도 말했다. ‘맞아, 네들 엄마가 제일 예뻐!’원유희는 눈빛이 흔들리더니 입술을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끊임없이 동영상과 사진을 뒤적거리자 원유희는 속으로 김신걸과 키스하는 사진이 나올까 봐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다행히 끝까지 키스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원유희는 찍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점심을 먹고 세 쌍둥이는 낮잠을 잤다. 원유희도 방으로 돌아가 낮잠을 자려는데 노크소리가 들려와 문을 열어보니 문밖에는 김신걸이었다. ‘김신걸이 노크를 다 하다니, 오래 살고 볼 일 일세. 예전엔 방이든 욕실이든 불쑥불쑥 잘만 들어오더구먼.’ “일 있어?” “응.” 김신걸이 일이 있다고 하자 원유희도 더 이상 문 앞에 막아설 이유가 없어서 몸을 옆으로 비켜 김신걸을 들여보냈다. 방문이 닫히자 갑자기 조용해졌다. 왠지 두 사람이 한 공간에만 있으면 가슴이 설레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야?” “이리 와.” 김신걸은 침대 옆에 앉아서 노트북을 켰다. “뭐 보여줄 거 있어.” 원유희는 김신걸이 자신의 침대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며 자기 침대에 앉은 것처럼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김신걸은 원유희가 걸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자 고개를 들어 검은 눈동자로 원유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서워
“네가 생각하는 대로 대답하면 돼.” 김신걸은 마치 아무리 봐도 부족한 것처럼 원유희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눈앞의 사람은 여전히 나의 유희야. 변한 건 아무것도 없어.” 노기를 띠고 있는 원유희의 얼굴은 김신걸의 마음을 간지럽게 했다. 원유희는 고개를 돌려 김신걸을 노려보며 화를 냈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넌 못 알아듣는 거야…… 윽!” 김신걸은 한 손으로 원유희의 뒤통수를 잡고 한 손으로는 원유희의 허리를 감금하고 포악한 입술로 원유희의 작은 입술에 키스했다. 원유희는 질식할 것 같은 느낌에 미간을 찌푸렸다. ‘김신걸은 전혀 내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어.’ “너…… 윽.” 원유희의 작은 입은 꽉 막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고 몸이 침대에 눌려 천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으음…….” 원유희가 몸부림칠수록 키스는 더욱 깊어졌다. 김신걸의 늘씬한 몸매가 원유희를 꽉 누르고 있었다. 원유희는 지금 김신걸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화가 난 원유희는 온 힘을 다해 김신걸을 세게 깨물었다. 그러자 입에서 피비린내가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신걸은 원유희를 놓아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게 키스를 했다. 원유희는 외딴섬에서 각종 훈련을 받았지만 격한 키스 때문에 산소 부족으로 머리가 어지러워져 발버둥 치는 동작도 없어졌다. 김신걸은 한참 후에야 키스를 멈추고 무서운 괴물 같은 눈빛으로 원유희를 바라보았다. 원유희는 비틀거리며 물안개가 낀듯한 눈을 뜨고 몸이 나른해져 호흡을 가쁘게 쉬었다. “너…….” “더 심한 짓은 하지 않을게.” 김신걸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원유희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윽한 눈빛으로 원유희를 바라보았다. 원유희는 꼼짝도 하지 않고 김신걸을 째려보다가 참다못해 손으로 김신걸의 갈비뼈를 힘껏 쳤다.그러자 김신걸은 신음소리를 내며 한쪽으로 기울었다. 원유희는 아직 회복되지 않아 일어서자마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원유희는 한숨을 크게 쉬고 나서
어전원으로 돌아온 후 세 쌍둥이는 즐겁게 학교로 갔다. 아침에 원유희와 김신걸이 함께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원유희가 실종된 후 세 쌍둥이는 스스로 차를 타고 학교에 갔었다. 가끔씩 김신걸이 데려다주었는데 분위기가 너무 저압적이어서 아이들은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아이들은 항상 엄마 아빠가 함께 학교에 보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2년 후인 지금 그들의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세 쌍둥이를 보내고 원유희는 김신걸의 차를 타고 자신의 별장으로 돌아갔다. 김신걸은 원유희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았고 어디 가든 상관하지 않았다. 이 점은 원유희도 만족스러웠다. 적어도 예전처럼 사람을 숨 막히게 하지는 않았다. 한 잠을 자고 일어나서 원유희는 어전원으로 갔다. 마치 일부러 자신을 데리러 오는 김신걸을 피하려는 것 같았다. 어전원에 도착하자 원유희는 너무 일찍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세 쌍둥이를 학교에 데려다줄 때 저녁에는 스스로 오겠다고 데리러 오지 말라고 했다. 원유희는 아이들이 철들었다고 생각하고 잔디밭에 서서 먼 곳을 보고 있을 때 해림이 걸어왔다. “사모님…….” 원유희가 고개를 돌리자 해림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부르는 게 불편하게 느끼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미래의 사모님이 들으면 불편해할 거예요.” 원유희가 일깨워주었다. “정말 그런 여자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김 대표님은 어전원으로 여자를 데리고 온 적이 없어요.” 해림이 말했다. “아이들 때문이 아니에요. 어차피 아이들은 낮에 학교에 있으니 누구를 데리고 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당신이 못 봤다고 해서 밖에 여자가 없는 건 아니에요.” 원유희가 담담하게 말했다.” “어떤 남자는 능력이 없어서 결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유희 씨가 밖에서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2년 동안 곁에서 지켜봤던 제가 당신이 떠난 후 김 대표님이 얼마나 큰 충
아이들이 돌아오기도 전에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김신걸의 차였다. 원유희는 멍하니 베란다에 앉아있었다. 테이블에 과일과 간식이 놓여 있었지만 원유희는 손을 대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베란다로 왔고 검은색이 원유희의 시선에 나타났다. 그건 김신걸의 검은색 양복바지를 입은 긴 다리였다. 원유희는 차마 다리의 주인을 볼 수 없었지만 참지 못하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위로 올라가 김신걸의 백발을 보았을 때 가슴이 떨려왔다. 김신걸은 원유희의 곁에 앉으며 말했다. “왜 그래? 백발 보기 싫어? 그럼 저녁에 검은색으로 염색할 게.” 원유희는 입술을 오므리고 생각했다. ‘검은색으로 염색한다고? 전엔 일부러 흰색으로 염색한 줄 알았는데.’ 원유희는 시선을 거두고 가드레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찍 돌아왔네.” “바쁜 일이 없어서.” 원유희는 생각했다. ‘정말 바쁜 일이 없어서야?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일찍 돌아온 건 아니고?’ 원유희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다리 위에 놓여있던 손이 누군가에게 잡혀 마음이 떨렸다. 하지만 원유희는 손을 빼려고 발버둥 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온몸에 힘이 없었다. “무슨 일 있어?” 김신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유희는 심장박동이 부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나…… 출국해야 할 것 같아.” “자세히 말해봐.” 원유희는 고개를 떨구었다. 원유희는 단지 마음이 혼란스러워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해림의 말을 들은 원유희는 김신걸이 지금도 여전히 편집이 강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다만 알아볼 수 없을 뿐이다. 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친구가 외국에 있어서 원래 일찍 돌아간다고 했는데 아직도 돌아가지 않아서 날 걱정할까 봐…….” 말을 마치자 김신걸은 원유희의 턱을 잡고 고개를 들어 자신의 그윽하고 깊은 눈동자와 마주했다.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얼굴에 내뿜은 숨결마저 또렷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너무 뜨거워서 피부가 데
“같이 일 봐.” “…….” 순간 원유희는 표정이 멍해져서 이게 무슨 악취미인지 몰랐다. ‘화장실을 같이 가는 게 어디 있어? 고등학생도 아니고. 그리고 중요한 건 김신걸은 여자가 아니잖아! 여자가 화장실 가는데 따라가는 남자가 어디 있어?’ “그럼 너 여기 써. 나는 다른 데 갈게…….” 원유희는 화장실을 김신걸에게 양보하고 고개를 숙이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에 도착하려고 하자 손목이 조여오더니 김신걸에게 잡혔다. “다른 쪽은 수리 중이야.” “그럼 위층으로 갈게.” 원유희는 어전원에 방이 그렇게 많은데 화장실이 모두 수리 중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김신걸은 검은 눈동자로 원유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뭘 그렇게 무서워해? 난 아무것도 안 할 텐데.” 그러자 원유희는 힘껏 손을 빼내면서 말했다. “넌 할 일 없냐?” 원유희는 말을 하고 나갔다. 김신걸은 더 이상 원유희를 막지 않았다. 원유희의 반응이 기분 좋게 했는지 김신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돌아와서 원유희는 줄곧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밥을 먹은 후 아이들은 엄마와 계속 놀려고 해서 김신걸과 단둘이 있을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저녁에 아이들이 잠든 후에는 원유희도 방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원유희가 욕실로 들어가려고 하자 김신걸이 노크도 하지 않고 들어왔다. 김신걸도 자신의 잘못을 인식한 듯 말했다. “내가 다시 노크하고 들어올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의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원유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김신걸을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네 친구한테 말했어?” 김신걸이 다가와 원유희와 두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다. 원유희는 마음속으로 망설였다. 원유희는 유미가 김신걸과 접촉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김신걸은 똑똑해서 유미를 보면 뭔가를 알아낼 것 같았다. 원유희는 자신이 외딴섬에서 함께 고생을 겪던 사람이 제성의 사람과 엮이는 게 싫었다.그래서 아무렇게나 핑계를 댔다. “내 친구는 줄곧 외국에
원유희는 김신걸의 헛소리를 믿지 않았다. “어전원엔 방이 많으니 네 방이 무너졌다고 해도 잘 곳은 있잖아.” 원유희는 말을 한 후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 “난 다른 방에서는 잠이 안 와.” 어두운 등불아래에서 김신걸의 눈빛이 잘 보이지 않았다. 원유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가정부들을 데리고 방을 정리하던 해림이 소리를 듣고 와서 말했다. “유희 씨가 없을 때 김 대표님께서 항상 유희 씨의 방에서 주무셔서 습관 되어서 그런 거예요.” 원유희는 멍해졌다. ‘김신걸이 왜 내 방에서 자?’ 김신걸이 하룻밤에 백발이 된 것을 생각하니 원유희의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김신걸과 한 방에서 잘 수 없어.’ “그럼 내가 돌아갈게. 네가 내 방에서 자.” 원유희가 말했다. 입구에까지 가자 뒤에서 김신걸의 목소리가 전해왔다. “너 대체 뭐가 무서운 건데?” 김신걸의 말을 들은 원유희는 발걸음을 멈추고 등이 경직되었다. 하지만 입으로는 부인했다. “내가 무서울 게 뭐 있어?” 저쪽에 있던 해림은 가정부에게 눈치를 줘서 모두 물러나게 했다. 가정부들이 모두 물러가는 것을 본 원유희는 공기 중의 압박감이 갑자기 자신에게 집중된 것 같았다. 심지어 김신걸이 다가오는 것까지 느껴졌다. 위험을 등지는 것은 훈련된 킬러가 하면 안 되는 짓이었다. 원유희가 돌아서자 이미 앞으로 다가온 남자와 마주했다. 김신걸은 깊은 눈동자로 원유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개의치 않는다면 왜 나와 부딪치는 것을 피하려고 해? 유희야, 네 마음속엔 내가 있어.” “뭐?” 원유희는 김신걸의 논리에 심장이 떨렸다.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자기와 자지 않으려고 한다고 이런 억지를 부려?’ “그래?” 김신걸은 압박적인 눈빛으로 원유희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너의 반응이 너무 강력해.” 원유희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내 반응이 강력하다고?’ 원유희는 마치 김신걸에게 모든 걸 들킨 것처럼 제 발 저렸다. 순간, 원유희는 모든 판단력을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