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희는 김신걸의 헛소리를 믿지 않았다. “어전원엔 방이 많으니 네 방이 무너졌다고 해도 잘 곳은 있잖아.” 원유희는 말을 한 후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 “난 다른 방에서는 잠이 안 와.” 어두운 등불아래에서 김신걸의 눈빛이 잘 보이지 않았다. 원유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가정부들을 데리고 방을 정리하던 해림이 소리를 듣고 와서 말했다. “유희 씨가 없을 때 김 대표님께서 항상 유희 씨의 방에서 주무셔서 습관 되어서 그런 거예요.” 원유희는 멍해졌다. ‘김신걸이 왜 내 방에서 자?’ 김신걸이 하룻밤에 백발이 된 것을 생각하니 원유희의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김신걸과 한 방에서 잘 수 없어.’ “그럼 내가 돌아갈게. 네가 내 방에서 자.” 원유희가 말했다. 입구에까지 가자 뒤에서 김신걸의 목소리가 전해왔다. “너 대체 뭐가 무서운 건데?” 김신걸의 말을 들은 원유희는 발걸음을 멈추고 등이 경직되었다. 하지만 입으로는 부인했다. “내가 무서울 게 뭐 있어?” 저쪽에 있던 해림은 가정부에게 눈치를 줘서 모두 물러나게 했다. 가정부들이 모두 물러가는 것을 본 원유희는 공기 중의 압박감이 갑자기 자신에게 집중된 것 같았다. 심지어 김신걸이 다가오는 것까지 느껴졌다. 위험을 등지는 것은 훈련된 킬러가 하면 안 되는 짓이었다. 원유희가 돌아서자 이미 앞으로 다가온 남자와 마주했다. 김신걸은 깊은 눈동자로 원유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개의치 않는다면 왜 나와 부딪치는 것을 피하려고 해? 유희야, 네 마음속엔 내가 있어.” “뭐?” 원유희는 김신걸의 논리에 심장이 떨렸다.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자기와 자지 않으려고 한다고 이런 억지를 부려?’ “그래?” 김신걸은 압박적인 눈빛으로 원유희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너의 반응이 너무 강력해.” 원유희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내 반응이 강력하다고?’ 원유희는 마치 김신걸에게 모든 걸 들킨 것처럼 제 발 저렸다. 순간, 원유희는 모든 판단력을
원유희는 눈이 뜨거워지고 호흡이 흐트러져 말했다. “내가 앞으로는 사라지지 않겠다고 했잖아.” “확실해?” “응.” 원유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때 옆에 있던 김신걸이 이불속에 있는 원유희의 손을 잡았다. 작은 손이 김신걸의 큰 손에 잡혔다. “자자.” 원유희가 움직이려고 하자 김신걸이 말했다. ‘그냥 자면 아무 일도 없겠지?’ 그래서 원유희는 발버둥 치지 않고 김신걸에게 손을 잡힌 채 눈을 감았다. 그 온기와 탄탄함이 마치 혈액 속에 스며들어 원유희의 심장을 설레게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원유희는 그런 설렘 속에서 서서히 잠이 들었다. 고른 숨소리가 들려오자 김신걸은 감았던 눈을 떠 지척에 있는 작은 얼굴을 보며 다른 한 손으로 원유희의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원유희의 얼굴은 마침 김신걸의 손바닥에 들어갔다. 이번이 원유희가 돌아온 후 두 사람이 처음으로 동침하는 것이었다. 김신걸은 원유희를 밤새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원유희는 나의 피와 같아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야.’ 이튿날, 원유희는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다. 벌떡 일어나 보니 옆에는 김신걸이 없었다. 원유희는 어제 김신걸과 함께 잔 걸로 기억하는데, 사람이 언제 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깊이 잠들 줄은 몰랐다. ‘이게 어딜 봐서 특훈 받은 킬러야? 잠결에 죽임을 당해도 모르겠어. 만약 밖에서 이랬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야.’ “깼어?” 김신걸이 거실에서 방으로 들어왔다. 아직 잠옷을 입고 있는 걸 봐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김신걸은 침대에 앉아 검은 눈동자로 원유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깊이 잠들었길래 깨우지 않았어.” 원유희는 아직도 자긴의 경각심이 급감한 데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잘 못 잤어?”김신걸이 물었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자지 마.” 사실 원유희는 어젯밤 꿀잠을 잤지만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내려와 김신걸을 피해 갔다. 김신걸의 시선은 원유희가 욕
“얼굴 들어.” 김신걸은 낮은 목소리로 원유희에게 요구했다. 원유희는 마치 현혹된 듯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들었다. 나중에야 정신을 차린 원유희는 얼굴이 굳었다. ‘내가 왜 김신걸에게 협조하지……?’ 거울에 비치지 않은 김신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김신걸은 일부러 시간을 끌지 않고 원유희의 이를 꼼꼼히 닦은 후 말했다. “뱉어.” 그러자 원유희는 허리를 굽혀 입안의 하얀 거품을 뱉었다. 원유희가 거울 속의 자신을 다시 보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얼른 물을 한 모금 마셔 입을 가시고 냉수로 세수를 했다. 다 씻은 후 김신걸의 표정과 눈빛을 상관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방에서 나온 원유희는 손으로 왼쪽 가슴을 눌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원유희는 자신과 김신걸의 사이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엔 냉담했다가 몸에 손대지 말라는 조건까지 걸었는데 키스했을 뿐만 아니라 이젠 같이 하룻밤을 잤다니. 왠지 점점 통제가 안 되는 느낌이야. 중요한 건 나도 화가 나서 제성을 떠나지 않았다는 거야.’ 김신걸이 위층에서 내려오자 해림이 와서 말했다. “사모님께선 아침도 드시지 않고 갔어요.” 김신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숲 속의 맹수 같이 편집적인 눈빛으로 거실을 보았다. 원유희는 별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목적 없이 거리를 걸었다. 이 시간엔 모두 출근하러 가는 사람들이라 바삐 걸어갔는데 원유희만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원유희는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원유희도 인정하기 싫지만 지금 자신이 김신걸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건 아이들 때문이 아니었다. ‘김신걸은 나한테 지옥과 같은 존재였어. 예전에 사랑했었다고 해도 버티기 힘들 정도였지. 그런데 지금은 나도 어느 정도 강해졌으니까 그런 고통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김신걸과 함께 있으면 영원히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도 있고.’원유희는 그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유희는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해 망설이
“너 어디 갔었어?” 임지효가 물었다. “외국에 있었어.” “그러니까 사고가 난 게 아니라 외국에 있었던 거야? 그럼 지금 돌아온 건 신걸 씨와 재결합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임지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원유희는 임지효가 자신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되물었다. “너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만약 신걸 씨와 재결합하려고 돌아온 거라면 내가 곤란할 것 같아.” 임지효는 괴로워하는 표정을 짓더니 계속 말했다. “네가 없는 2 년 동안, 신걸 씨 곁에 있던 사람은 나야. 사람들도 내가 김신걸의 여자라는 걸 알아. 그리고 나도 신걸 씨를 사랑하게 됐어. 유희야, 너는 날 받아줄 거지?” 임지효가 김신걸의 이름을 부를 때부터 이미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김신걸 곁에 생겼다는 여자가 임지효일 줄은 몰랐다. “두 사람…… 만나고 있다고?” 원유희는 목이 말라왔다. 가슴이 시큰한 것이 마치 황산이 스며들어 부식되는 것같이 아팠다. “응. 네가 사라진 지 얼마 안 돼서 그렇게 됐어.” 임지효는 말한 후 원유희가 침묵하자 원유희의 손을 잡고 사이좋은 친구처럼 말했다. “유희야, 넌 우리가 만나는 걸 허락할 거지?” 원유희는 손이 데인 것처럼 잽싸게 빼냈다. “그건 너희 두 사람의 일이니 내 의견을 거칠 필요 없어.” 원유희의 말을 들은 임지효는 표정이 밝아지더니 말했다. “다행이다. 나는 네가 신걸 씨와 화해하고 싶은 거라면 묵묵히 물러나려고 했는데. 우린 친구니까 상대방을 난처하게 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별일 없으면 나 먼저 갈게.” 원유희가 말했다. “너 지금 신걸 씨 집에서 살아?” 임지효가 황급히 물었다. “아니.” 원유희는 대답하고 몸을 돌려 떠났다. 몸을 돌리자 임지효 얼굴의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임지효는 일부러 원유희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임지효의 목적이 바로 기회를 노려 자신과 김신걸이 만나고 있다는 것을 원유희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임지효는 그렇게 말하면 원유희가 알아
옆에 서 있던 고건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신경이 곤두섰다. 원래는 업무를 보고하러 왔는데, 김 대표님이 전화를 한 통 받더니 이렇게 되었다. 사실 생각하지 않아도 김 대표님과 통화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통화할 때 비행기 티켓 얘기가 나온 것 같은데 원유희가 가려는 건가?’ “비행기 티켓 구매해.” 김신걸은 질투심을 억누르고 차가운 말투로 말하고 더 이상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네, 지금 구매하겠습니다.” 고건은 핸드폰을 꺼내 웹사이트에서 1분도 안 돼서 구매완료했다. “사모님께 보내드릴까요?” “나한테로 보내.” 김신걸은 외투를 들고 사무실을 떠났다. “네.” 고건은 김 대표님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다. 원유희는 김신걸이 언제 나타나서 자신을 배웅해주려고 하는지 몰라 일단 별장으로 돌아갔다. 택시에서 내려 별장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검은색 롤스로이스를 보고 가슴이 떨렸다. 특히 걸어 나오는 김신걸을 보자 마음이 더욱 씁쓸했다. 원유희의 심정은 임지효를 만나기 전과 전혀 달랐다. 김신걸 곁의 여자가 임지효라는 사실이 원유희를 역겹게 했다. ‘임지효는 내 친구야. 김신걸은 임지효를 곁에 두고 찝찝하지도 않나?’ 원유희가 잠깐 정신을 판 사이에 김신걸은 이미 원유희의 앞에 도착해서 예리하고 검은 눈동자로 원유희를 직시하며 말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원유희는 정신을 차리고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아니야. 내가 지금 떠나면 아이들은…….” “걱정 마. 비행기에서 내린 후에 아이들에게 전화해서 언제 돌아오는지 알려주면 돼. 괜찮을 거야.” 김신걸이 원유희를 위로했다. 사실 김신걸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었다. ‘만약 아무 일도 없었다면 왜 서둘러 가려는 거지? 어젯밤에도 같이 자서 여기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혹시 어젯밤에 내가 무례하게 굴어서 화난 거야?” 김신걸이 물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굳이 날 배웅해야 해? 공항까지만
원유희는 순간 경직되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뒤에 나타난 남자를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너도 가려고?” “너 비행기 타는 거 보려고.” 김신걸은 편집적인 검은 눈동자로 원유희를 바라보았다. 원유희는 침착한 표정으로 김신걸의 손에 쥐어진 티켓을 보았다 ‘그러니까 김신걸이 내가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을 보기 위해 티켓을 샀다고? 정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김신걸의 말이 사실이기 바랄 수밖에.’ 원유희는 다시 자리에 앉아 핸드폰 시간을 보았다. ‘30분만 더 있으면 돼. 비행기에 탑승하면 김신걸을 보지 않아도 돼.’ 김신걸은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원유희의 옆에 앉았다. “그렇게 내가 보시 싫어?” 원유희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어 창밖의 비행기를 보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됐어.” 김신걸은 검은 눈동자로 원유희의 옆모습을 보며 말했다. “돌아올 때 내가 데리러 갈게.” “넌 할 일이 없어?” 원유희는 기분 나쁘게 말했다. 김신걸은 손을 뻗어 원유희의 작은 손을 자신의 손바닥에 놓게 가볍게 주물렀다. “나한테 사업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원유희는 입을 오므리고 김신걸에게 잡힌 손을 바라보았다. 원유희는 손을 빼내려고 애쓰면 김신걸이 더욱 조여서 도망갈 곳이 없게 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원유희는 주위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싶지 않았다. ‘사업이 중요하지 않으면 뭐가 중요한데? 설마 나? 정말 물어보고 싶다. 이미 곁에 임지효가 있으면서 왜 날 놓아주지 않는 건지.’ “김신걸, 나 없는 2 년 동안 다른 여자를 만난 적 있어?” 원유희도 자신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몰랐다. 어쩌면 그냥 김신걸을 곤란하게 해서 물러나게 하려는 것일지도 몰랐다.연극은 더 이상 소용이 없으니 김신걸이 자신을 똑똑히 보게 하고 싶었다. 원유희의 말을 들은 김신걸은 멍해졌고 공기 속엔 압력으로 가득 찼다. 원유희의 심장박동은 마치 무거운 물건에 눌린 것처럼 엉망진창이 되었
원유희는 시선을 떨구었다. 호흡 속엔 온통 김신걸의 숨결로 가득 차 원유희의 의식을 황홀하게 했다. 원유희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절대로 여기에 계속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김신걸에게 내가 그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착각을 줘서는 안 돼.’ 이때, 방송에서 탑승하라는 안내음이 들려오자 원유희는 정신을 차리고 김신걸을 밀치며 말했다. “나 가야 돼.” 말을 마친 원유희는 김신걸 곁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VIP는 줄 서지 않아도 되어서 원유희는 바로 탑승했다. 관문을 넘을 때 원유희는 김신걸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원유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뒤에 김신걸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비행기까지 따라오지도 않았다. 원유희는 좌석에 기대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기분이 좋지 않은 거지? 나와 김신걸은 미래가 없어. 예전이라면 몰라도, 임지효의 존개를 안 이상 우린 가능성이 없어.’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올라서야 원유희는 김신걸이 정말 따라오지 않았다는 걸 확신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원유희는 눈을 감고 긴장을 풀어야 할지 실망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10시간을 비행해서 목적지에 도착하니 마침 밤이었다. 원유희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유미에게 전화를 했다. “유미야, 어디야?” “집에 있어. 너 돌아왔어?” “응. 거기에 너무 오래 있었어. 나도 내 삶을 살아야지.” 원유희는 통화하며 택시를 잡았다. ‘내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잖아. 내 삶에 김신걸이 있어서는 안 돼. 우린 아이들의 엄마와 아빠일 뿐이야.’ “나 지금 밥 하고 있어. 얼른 와서 같이 먹자.” 유미가 말했다. “난 방금 택시를 타서 너한테까지 가려면 한 시간 넘게 걸려. 그러니까 너 먼저 먹어.” “아니야. 어차피 나도 별로 배고프지 않아, 영화도 못 다 봤는데 네가 도착해서.” “알았어, 그럼 얼른 갈게.”원유희는 한 시간이 넘어
“유미야, 너 혹시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거야?” 원유희가 물었다. 유미는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흔들며 원유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니야. 너에게 폐 끼칠까 봐 그러지.” “내가 너한테 폐 끼친 적도 적지 않잖아. 그리고 나는 네가 오는 게 폐 끼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원유희는 진심으로 말했다. ‘내가 말한 건 모두 사실이야. 내가 외딴섬으로 끌려갔을 때 경험이 풍부한 유미가 날 도와주지 않았다면 벌써 죽었을 거야. 그렇게 되면 아이들도 다시 볼 수 없을 것이고 내가 떠난 후 아이들이 얼마나 슬퍼했는지 모를 거야.’ “그래.” 유미는 원유희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져서 승낙했다. ‘원유희와 함께라면 난 어디든 갈 수 있어.’ 밤은 점점 짙어져 갔다. 이런 외딴 마을은 도시처럼 밝지 않아서 몸을 숨기는데 아주 적합했다. 원유희는 가드레일로 걸어가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손에는 다 마시지 못한 와인을 들고 있었다. “무슨 걱정 있어?” 유미도 와인잔을 들고 다가와 원유희의 맞은편에 앉았다. 원유희는 정신 차리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야.”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나는 못 속여. 거기에서…… 즐겁지 않았어?” 유미가 물었다. 원유희가 유미에게 자세히 말하지 않았지만 유미도 대충 알고 있었다. “나한테 털어놔. 그럼 마음이 좀 편해질 거야.” 유미가 말했다. “나에겐 세 쌍둥이가 있어. 정상적으로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게 아니라 뜻밖의 임신이었어. 그리고 그 후에 나도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나에게 그 남자는 다가가고 싶지만 두렵고 실망스러운…… 그런 존재였어.” 원유희는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그 사람은 널 좋아해?” “아니.” 원유희는 계속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유미는 원유희를 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2 년 동안 그 사람이 아이들을 잘 돌본 것 같아. 그리고 내가 거기에 남기를 원했는데 내가 거절했어.”“왜 거절했어?”“왜냐하면…… 그 사람 곁엔 다른 여자가 생겼어.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