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얼굴을 비볐는데 나른한 아기고양이 같았다. 육성현은 그곳에 서서 걸어가지 않고 넋을 잃고 보며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엄혜정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이게 사랑일까? 사랑이 대체 뭘까?’ 아무도 빈민가에서 자란 육성현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육성현은 엄혜정과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함을 당해 감옥에 들어갔었다. 엄혜정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자신에게 큰 놀라움을 주었다. 그러면서 날 사랑한다고? 누가 믿겠어? 엄혜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려보니 육성현이 서서 이상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육성현은 엄혜정에게로 걸어갔다. “일 다 했어?” 육성현은 엄혜정의 곁에 앉아 텔레비전을 한 눈 보고 물었다. “뭘 보고 있어?” “그냥 아무거나 보고 있었어.” 엄혜정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일 다 했으면 자자.” “날 기다린 거야?” 엄혜정은 조용히 육성현을 3초 보더니 말했다. “예전에도 내가 널 이렇게 기다렸잖아. 기억 안 나?” “기억나.” 육성현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가끔씩 수하들과 밤까지 술을 마셨는데 매번 돌아갈 때마다 엄혜정이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육성현은 엄혜정에게 편안한 소파를 사주었다. “난 진심으로 너와 살기로 마음먹었으니 일반 부부들처럼 해야지.” “동영상 때문 아니고?” 육성현이 물었다. 엄혜정은 육성현을 2초 보더니 담담하게 시선을 거두고 말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어쩔 수 없어.” 말을 마치고 발을 디뎌 신을 신으려고 했다. 하지만 발이 슬리퍼에 들어가기도 전에 육성현에게 안겼다.엄혜정은 본능적으로 육성현의 목을 껴안았다. 그러자 자세가 엄청 친밀해졌다. “그럼 수작 부릴 생각 하지 마.” 육성현은 말을 하고 엄혜정을 안고 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엄혜정은 육성현의 핍박에 못 이겨 결국 같이 샤워를 했다. 방의 불빛이 어두워지자 엄혜정은 육성현의 품에 안겼다. 하지만
육성현은 일부러 풀어줬던 천애조직 사람을 따라 외딴섬을 찾았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순 없었으니까. 펑펑펑하는 총소리에 놀라 엄혜정 등인은 모두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나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근육남 몇 명이 총을 들고 들어와 소리쳤다. “모두 나가!” 두 달 가까이 훈련받으면서 그들은 여러 번 잠에서 깨워 임무를 완수하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원수는 점점 줄어들고 빈 침대도 갈수록 많아졌다. 원유희는 이미 이곳의 법칙을 철저히 받아들였다. 애초에 살인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엄혜정이 이젠 마음이 강해져 적어도 놀라서 벌벌 떨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살아서 나가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지금의 원유희에게 아이들이 살아갈 힘이고 동력이었다. “오늘의 임무는 서로 죽이는 거야.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이 당신의 사냥감이 될 거야.” 근육남은 큰소리로 말했다. 임무를 말하자 전원이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장난해? 친구를 죽이라는 거야?” 누군가가 화가 나서 불평했다. 예전의 흉악한 임무는 그렇다고 쳐도 이건 완전히 인간성을 도발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같이 성장했는데.’ 근육남은 꿈쩍도 하지 않고 말했다. “그럼 넌 죽고 싶어? 아님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어?” 그 질문의 답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누가 다른 사람에게 죽임당하고 싶겠어? 살아서 나가고 싶으면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겠지.’ 사실 이건 섬 밖의 생활과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다만 하나는 피를 보고, 하나는 피를 보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죽이지 않을 거야!” 누군가가 화가 나서 반항했다. 그러자 근육남은 계속 말했다. “너희들은 숲에 흩어져서 자신의 사냥감을 찾아야 해. 그리고 10분 후에 집합이야. 만약 사냥감을 죽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손에 죽을 거야.” 말을 마치가 또 사격하기 시작했다. 열몇 명의 여자들은 어쩔 수 없이 도망치듯 숲 속으로 들어갔다.원광등의 불
숨을 돌리기도 전에 선희가 달려들더니 매 발톱 같은 손가락으로 원유희의 급소를 공격했다. 원유희는 몸을 낮추고 손을 뻗어 선희의 팔을 지나 선희의 턱을 공격하고 목을 졸랐다. 그리고 몸을 돌려 나무에 내팽개쳤다. 그러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의 푸른 잎이 진동에 의해 떨어져 원유희와 선희의 얼굴에 스치고 곁에 떨어져 분위기가 칼날처럼 살벌했다. “난 널 죽이고 싶지 않아…….” 원유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특히 선희의 목을 잡고 있는 손을 심하게 떨었다. “그럼…… 그럼 날 풀어줘. 우리 각자 다른 사냥감을 찾으러 가자…….” 선희가 애걸했다. 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고 눈빛이 냉혈 해지더니 손에 대나무가지를 쥐고 선희의 관자놀이에 꽂았다. 그러자 선희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었다. 원유희는 선희의 목을 조르고 있던 손을 놓고 땅에 주저앉아 눈을 부릅뜬 채 죽은 선희를 보고 놀라서 뒤로 물러서며 손에 피와 뇌장이 묻은 꼬챙이를 땅에 던졌다. 아침 일출이 바다 위에 쏟아졌다. 원유희는 모래사장에 얼마나 앉아있었는지 몰랐다. 해가 뜨자 원유희는 빛을 견디지 못하고 시선을 떨구었다. 원유희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사람인 것 같았다. ‘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볼 자격도 없는 사람이야.’ 뒤에서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지만 원유희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 손이 원유희의 어깨에 살짝 놓이자 원유희는 움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을 위로하려는 것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원유희는 해면을 바라보며 물었다. “만약에 내가 만난 사람이 너였다면 넌 나를 죽였을까?” 유미는 말을 하지 않고 다가가 뒤에서 원유희를 안고 얼굴을 원유희의 목 뒤에 대고 맥박을 느꼈다. 원유희는 유미가 대답하지 않자 더 이상 묻지 않고 자기가 너무 감정적으로 굴었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아무도 미래를 예지할 수는 없었다. ‘우리 중 한 명이 다른 사람 손에 죽는다면 선택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냥 운명에 맡기는 것도 좋겠네…….
원유희는 그 대답에 불만스러웠다. ‘단지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뿐이잖아!’ “너도 이렇게 선택된 거야? 네가 제일 강한 거야?” 원유희가 물었다.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마.”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가 말했다. “이제 가봐.” 원유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돌아서 떠났다. ‘외적과 맞서는 것도 일종의 경험이긴 하지. 살아남은 열 명도 안 되는 사람에게 외적은 살해당한 여자들과 다를 게 없이 모두 적이니까.’ 여자들은 이런 실전이 너무 익숙해 바로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풀숲에 숨어 있던 남자가 총을 쏘자 원유희와 멀지 않은 동료가 직접 머리가 터졌다. 그 모습을 본 원유희는 표정이 굳어 총알이 다시 공격해 오기 전에 몸을 돌려 피했다. 그러자 총알이 나무와 땅에 떨어졌다. 원유희는 나무 뒤에 숨어 목표물의 은신처를 분별하고 있었다. 풀숲에 숨어있던 남자는 확실히 사람을 보지 못하자 몸을 숙이고 다가갔다.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머리 위가 이상한 것 같아 고개를 들자 대나무 꼬챙이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남자의 눈에 꽂혔다. “아!” 이어 대나무 꼬챙이가 남자의 목을 스쳐 남자는 즉사했다. 원유희는 멍해져서 바닥에 쓰러져 피를 콸콸 흘리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양복을 입고 있었고 총을 가지고 있어 일반적인 침입자 같지는 않았다. 원유희는 쪼그리고 앉아 남자의 몸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원유희는 총을 잡고 조준했다. 유미가 손을 들자 원유희는 총을 회수했다. “너 뭐 찾아?”유미가 물었다.“누군지 보려고 했어.”“이 사람 신분을 알고 싶어?”유미가 물었다.“우린 임무만 완성하면 돼.”원유희는 유미를 보고 말했다.“우리 이 틈을 타서 도망갈까?”유미는 멍해졌다.“내가 처음 왔을 때 도망가지 못하게 한 건 이해해, 그땐 우리의 실력에도 한계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 틈을 타서 도망갈 수 있잖아. 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만약
원유희는 유미가 이런 옷을 입는 것을 처음 보고 말했다. “너 이렇게 입으니까 멋있다.” “그럼 앞으로 이렇게 입지 뭐. 어차피 난 뭘 입어도 상관없어.” 유미가 말했다. 원유희가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온 건 그들의 동료들이었다. 동료들은 두 사람이 입은 양복과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들을 보고 물었다.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려고 이러는 거야.” 유미가 말했다. “너희들은 다른 쪽에 가서 수색하고 우린 왼쪽으로 갈게.” 그러자 두 동료는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 갔다. 유미와 원유희는 눈빛을 교환한 후 왼쪽으로 달려갔다. 계단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다락방 한 귀퉁이가 폭파되어 돌멩이가 마구 날아다니고 계단 전체가 무너졌다. 앞으로 달리던 원유희는 멈추지 못하고 이미 한쪽 발을 내디뎠다. 유미도 비슷했지만 한 손으로 옆의 창문을 잡고 한 손으로 원유희를 억지로 잡아당겼다. “괜찮아?” 유미가 물었다. “괜찮아…….” 원유희는 숨을 돌리고 똑바로 섰다. 그리고 뒤로 돌아 계단 아래의 큰 구멍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반응이 빨라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난 틀림없이 떨어져서 죽었을 거야.” 이때 아래에 양복을 입은 남자가 몇 명 나타나 두 사람을 보고 직접 위로 폭탄을 던졌다. 원유희와 유미는 뒤로 돌아 옆방으로 갔다. “젠장, 앞뒤가 막혀서 우리는 더 이상 도망갈 수가 없어.” 원유희는 눈살을 찌푸리고 방안을 살펴보니 탈출할 수 있는 창문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너무 높아서 뛰어내리면 죽지 않더라도 심한 부상을 입을 것 같았다. 유미는 창문을 열고 원유희에게 보라고 눈치 줬다.원유희는 벽에 설치되어 있는 탈출 사다리를 보고 갑자기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다. 밖에서는 이미 어수선한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유미는 원유희를 밀면서 말했다. “너 먼저 내려가.” “너는?” “나도 바로 따라갈게. 어서!” “너 먼
원유희는 발버둥 치지 않고 의식을 잃었다. 마치 철석처럼 바다밑으로 가라앉았다. 30분 후 침입한 사람들을 물리치고 인원수를 점검할 때 원유희와 유미가 없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시 가서 찾아!”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하지만 섬 전체를 뒤져도 두 사람을 찾아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체도 보이지 않았다. “바다에 빠진 거 아닐까?” 근육남이 추측했다. “아까 두 사람이 다락방에 숨어있는 걸 본 사람이 있는데, 그 후 다락방이 폭파되어 죽었을 거예요.” 이때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는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턱이 떨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훈련시킨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을 리 없어, 다시 찾아!” 세인시. 육성현이 없는 며칠 동안 엄혜정은 줄곧 염씨 저택에 있었다. 다만 조영순과 가족들이 너무 바빠서 매일 엄혜정과 함께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가족들이 출근하러 가면 엄혜정은 혼자 거리를 거닐었다. 길거리에서 한 할아버지가 각종 애니메이션의 풍선을 팔고 있는 것을 보고 이웃집 풍선을 파는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어렸을 때 내가 배고플 때 그 할아버지가 만두를 사줬는데.’ 엄혜정은 생각하며 다가가 물었다. “저 풍선 사려고 하는데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하나에 2500원이니까 마음대로 골라.” “제가 다 살게요.” 엄혜정이 말했다. “사 사겠다고?” 할아버지는 의아해서 물었다. “아가씨, 풍선을 그렇게 많이 사서 뭐 하려고?” “네. 집에 형제자매가 많아서요.” 엄혜정이 말했다. “그래.” 할아버지는 손에 쥐고 있던 풍선줄을 엄혜정에게 넘겨주었다. 엄혜정은 돈을 지불하고 떠났다. 거리를 걸으며 고개를 들어 알록달록한 풍선을 보니 마음이 만족스러웠다. ‘같은 할아버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다 비슷하겠지.’ 이때 벤틀리 한 대가 옆에서 멈췄다. 육성현이 차에서 내려오더니 엄혜정의 앞에 서서 풍선을 한 눈 보고 말했다. “이렇게 많이 샀어?” “너 언제 돌아왔어?” 엄
“내 허락 없이 죽으면 안 돼!” 육성현은 이를 갈며 말했다. 음험한 얼굴은 경련을 일으켰다. 엄혜정은 호흡이 미약해서 육성현의 위협을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육성현은 가장 빠른 속도로 엄혜정을 병원 응급실로 들여보낸 후 밖에 서서 기다렸다. 흰색 셔츠에 검은색 외투를 입었지만 옷과 손에 피가 묻어 온통 빨간색이었다. 육성현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더니 굳은 눈빛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부하가 앞으로 걸어왔다. 육성현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소식을 봉쇄하고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게 해.” “네.” 부하는 바로 처리하러 갔다. 육성현은 몸이 나른해지며 벤치에 기대고 앉아 눈빛이 흐트러져 피로 얼룩진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엄혜정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온도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다. 엄혜정이 달려들어 총을 막는 장면이 그를 놀라게 했다. ‘엄혜정이 왜 그랬을까? 그 여자는 분명히 날 미워하는데.’ 육성현은 엄혜정이 말을 잘 듣는 이유는 자신의 위협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돈의 힘과 의사의 기술이 마침내 엄혜정의 생명을 건졌다. 엄혜정은 병실로 옮겨졌지만 출혈이 너무 많아 아직 깨어나진 않았다. 병실에 누워있는 엄혜정의 얼굴, 입술, 손이 모두 혈색 하나 없이 창백했다. 의사는 총알이 조금만 빗겨갔어도 사람이 병원에 오는 도중에 죽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육성현은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 조각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깊은 호박색의 눈동자로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엄혜정을 바라보았다. 육성현은 엄혜정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엄혜정은 이튿날 오전에 깨어났다. 눈을 뜨니 눈앞이 온통 하얗고 마치 천국에 있는 것 같았다. 이때 시선 위에 검은색이 나타났다. 엄혜정이 초점을 맞추어 자세히 바라보니 육성현의 얼굴이었다. 엄혜정은 그제야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죽었으면 육성현을 볼 수 없을 테니까. 육성현은 면봉에 물을 묻혀 엄혜정의 입술을 적셨다. 물이 입술 사이로 스며들어와 엄혜정의
육성현은 명치가 맞은 듯 심장에 경련이 멈추지 않았다. “듣기 좋은 말을 하면 내가 믿을 것 같아? 내가 감옥에 갇히고 사형선고를 받을 뻔할 땐 네가 이렇게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는 걸 몰랐는데.” 육성현은 한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나는 단지 네가 잘못을 뉘우쳤으면 하는 마음에 이혼합의서로 널 자극한 거야. 나도 사형일 줄은 몰랐어. 미안해…….” 엄혜정은 참회하며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육성현의 손가락을 잡고 말했다. “오빠가 나한테 잘해준 거 나 다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지금 말한 거 모두 진심이야. 나는 오빠가…… 평생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 육성현은 엄혜정을 주시하며 그녀의 영혼 속으로 파고들 것 같았다. 기나긴 1분이 지난 후 육성현은 손을 빼 일어나 병실을 나갔다. 병실의 압력이 사라지자 엄혜정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머릿속이 복잡해 얼굴을 돌려 닫힌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힘없이 베개에 기댔다. 엄혜정이 한 말은 가짜였다. 이런 위험하고 극단적인 방식으로 육성현의 마음을 약하게 하는 게 엄혜정의 계략이었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엄혜정은 자신이 죽지만 않으면 성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내가 너무 무섭게 느껴져. 이러면 육성현과 다를 게 뭐가 있어? 혹시 육성현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가? 아니야, 난 육성현과 같을 수가 없어. 나는 단지 자신의 결백을 지키려는 거야. 그 동영상과 사진들이 유출되면 난 정말 붕괴할 거야.’ 부하들이 병원에 도착하자 육대표님이 병실 밖의 벤치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정서가 이상한 것 같았다. “육대표님?” 부하가 불렀다. “알아냈어?” “외딴섬에서 따라온 사람인데 도망갔어요. 아직도 조사 중이에요.”부하가 말했다. “천라지망을 쳐서라도 사람을 찾아내!” 육성현은 음험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네.” 음식을 가져오자 육성현은 침대 옆에 앉아 엄혜정에게 한 입 한 입 먹여주었다. 엄혜정은 반쯤 먹자 먹기 싫어졌다.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