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엔 등 어멈이 관사 영패(令牌)를 가지고 가서야 약방에서 약을 얻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내상을 치료하는 데 쓰이는 진귀한 약재들은 전혀 받지 못했고 흔히 볼 수 있는 약재들만 챙길 수 있었다.지초는 이를 통해 왕야의 태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명백히 느꼈다.하루 동안 정양하고 난 뒤 낙청연은 간신히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아직 몸이 많이 허했지만 고통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아침 일찍 낙청연은 등 어멈과 지초, 그리고 몇몇 종복들을 데리고 정원에서 바삐 돌아쳤다.“여기 물속에 있는 비휴(貔貅)를 옮기거라.”낙청연은 개울가 옆에 서서 말했고 두 종복이 앞에 나서 그것을 들어보았다.“너무 무거워서 옮길 수가 없사옵니다.”등 어멈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옮기지 못하겠으면 사람을 더 불러서 옮기거라.”두 사람은 그녀의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고 사람을 부르러 갔다.개울가 안에 있던 비휴를 옮기고 난 뒤 낙청연은 위험한 기운이 가득한 석상까지 해결했다. 그렇게 온종일 쉬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정원 안에 있는 풍수지리에 좋지 않은 물건들을 대부분 다 정리하게 됐다.왕부의 많은 이들은 낙청연이 뭘 하고 있는지 몰랐고 그저 등 어멈이 관사가 돼서 낙청연이 일부러 저택 안에서 위세를 부리려고 하인들을 괴롭힌다고 생각했기에 그녀의 명성은 더더욱 나빠졌다.그러나 다들 새로 부임한 관사의 눈 밖에 날 생각은 없었으므로 대놓고 왕비의 뒷담화를 할 수는 없었다.그렇게 날이 저물고 밤이 깊어져서야 낙청연은 부진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문 앞에 도착하니 소서가 그녀를 막았다.“왕비 마마, 여기까지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소서가 싸늘한 음성으로 물었다.“왕야께서 약속을 이행해주셨으면 해서 왔다.”낙청연도 차가운 목소리로 받아쳤다.소서는 잠깐 멈칫했지만 서방 안에 있는 왕야가 대답하기도 전에 딱 잘라 거절하며 말했다.“날이 어두워졌으니 왕비 마마께서는 내일 다시 오시지요.”낙청연은 조금 언짢은 얼굴로 방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아
낙청연은 고집스레 말했다.“거래라고 했으니 제가 먼저 성의를 보였습니다. 그러면 왕야께서도 성의를 보여야지 않겠습니까? 지금 당장 제 어머니의 유물을 달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낙월영의 손에서 먼저 가져와야지 않겠습니까? 왕야께서 먼저 보관하고 계시다가 제가 취살대진을 해결하면 그때 건네주시지요.”부진환은 대답하지 않았고 여전히 차가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낙청연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저희 거래가 끝나게 되면 수세를 써주세요. 다시는 왕야를 귀찮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그 말에 부진환의 눈동자에 빛이 감돌았고 눈동자에는 티 나지 않게 놀라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수세를 써달라니? 웃기는 소리였다. 모친의 유물이 그토록 중요하단 말인가? 이렇게 될 것이었으면 애당초 왜 온갖 수단을 써서 낙월영 대신 시집을 와 그의 모든 계획들을 망쳐 놓았던 것일까?낙청연이 한 말 중 진심이 담긴 말이 있는 걸까?부진환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낙청연은 화를 참으며 최대한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말했다.“왕야께서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시다면 제가 되면 그만이죠. 수세는 제가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부진환은 미간을 찡그리며 더욱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네가 수세를 써서 나와 연을 끊겠다는 말이냐?”낙청연은 그의 말에 점점 더 화가 치밀어 올라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치더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부진환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그러면 어떻게 하고 싶으신 겁니까? 혹시 약속을 어기시려는 것입니까? 천궐국을 뒤흔드는 당당하신 섭정왕이 약속조차 지키지 않으시는 비겁한 사람이란 말입니까?”그녀는 낯짝 두껍게 부진환에게 계속 매달릴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낙청연이 아니었고 부진환을 죽도록 사랑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그녀는 단지 낙청연 어머니의 유물을 되돌려 받아 자신의 의문을 풀고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를 알고 싶은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 사이에 이미 약속된 일이었다.그녀의 말에 부진환의 눈빛이
낙청연의 체중은 내리지 않고 오르기만 했다.지초는 낙청연의 시중을 들어 환복할 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옷이 더 끼는 것 같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왕비 마마, 음식을 조금이라도 덜 드시는 게 어떻습니까?”낙청연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단순하긴. 적게 먹으면 체력도 떨어지는데 상처가 어떻게 낫는단 말이냐? 차라리 소처럼 건장해지는 게 낫지, 너무 약하면 사람들이 주먹 한 번 휘둘러도 쓰러진단 말이다. 알겠느냐? 그러니 너도 좀 많이 먹거라.”지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심하게 말했다.“하지만 왕비 마마께서는 부종이시지요. 그리고 소처럼 건장한 정도는 아닙니다.”낙청연은 잠시 흠칫하다가 당당하게 말했다.“적어도 겉보기에는 소처럼 건장하지 않으냐? 그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을 겁에 질리게 할 수 있지.”“알겠습니다.”옷을 다 입은 뒤 낙청연은 조금 팽팽한 허리띠를 느슨하게 만들더니 문턱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정원에서 무공을 연습할 생각이었다.그런데 등 어멈이 빠른 걸음으로 정원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왕비 마마, 오황자께서 오셨사옵니다.”낙청연은 살짝 놀라더니 연신 손을 저으며 말했다.“안 만날 것이다. 자고 있다고 전해라.”그러고서 낙청연은 곧바로 방 안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부운주가 정원 입구에서 그 모습을 때마침 목격했고 한 걸음 더 나서지 못한 채로 무안한 듯 웃으며 말했다.“제가 느닷없이 찾아왔나 봅니다. 오늘 만나는 게 불편하다면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낙청연은 머쓱하게 서 있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그에게 다가갔다.“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저…”부운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괜찮습니다. 왕비께서 왜 그러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형님이 난처하게 만들었나 보지요? 저는 오늘은 왕비께 약을 전해주려 찾아온 것입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등 관사가 약방에 가서 약재를 가지려 했는데 약방에서 주지 않았다면서요? 고 신의가 내 병을 치료하는데 때마침 그에게 약재가 있다고 하더군요.
같은 시각.서방.소유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서방 안으로 들어갔다.“왕야, 조금 전 오황자께서 또 왕비 마마를 찾아가셨습니다.”서책을 읽고 있던 부진환의 손이 잠시 멈칫했지만 그는 곧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평온하게 대꾸했다.“아주 정상적인 일이지.”그들은 원래 한패였으니 말이다.소유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오황자께서 왕비 마마께 금당운문복(金棠雲紋服)을 선물하셨다고 합니다. 추석 궁중연회 때 입으시라면서요.”그 말에 부진환은 미간을 구겼지만 여전히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안색이 좀 어두워졌을 뿐이었다.“왕야, 추석 궁중연회는 왕비 마마께서도 참가하셔야 합니다. 왕비 마마의 외양만으로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수 있는데 만약 오황자께서 선물하신 옷까지 입으신다면 다른 이들이 뒤에서 얼마나 왕야를 비웃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왕비 마마께서 연회 때 입을 옷은 왕야께서 준비하셔야 마땅하다고 봅니다.”소유는 진지한 얼굴로 분석하며 말했다.섭정왕비인데 오황자가 옷을 선물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부진환의 눈동자에 한기가 감돌았다. 그는 더없이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그럼 네가 준비하거라. 난 낙청연의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앞으로 이와 비슷한 일로 날 귀찮게 하지 말거라.”그는 부운주와 낙청연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소유가 대답했다.“네.”“최근 들어 운예각(雲霓閣)의 유염복(流焰服)이 단정하고 대범해 보이며 화려하다고 합니다. 추석 궁중연회에서 입는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부진환은 짜증스레 대꾸했다.“네가 알아서 처리하려무나.”“네.”소유는 짧게 대답하고는 몸을 돌려 나갔다.—소유는 운예각에 가서 유염복을 주문했다.유염복을 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섭정왕부의 체면을 고려해야 했기에 주인장은 냉큼 대답했다.“소 대감님,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내일 아침 유염복이 도착하면 곧바로 사람을 시켜 섭정왕부에 보내도록 하겠습니다.”“알겠소.”소유가 운예각에서 나올 때 계집종 하나가 다급히 승상부로 뛰어
낙청연, 이 못된 것을 혼쭐 내줄 것이다!낙월영의 눈동자에 한기가 감돌았다.—소유가 옷을 가져왔을 때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 부진환이 소유더러 옷을 가져다주게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탁자 위에 놓인 빨간색의 화려한 의복을 바라보며 지초는 아주 기뻐했다.“왕비 마마, 한 번 입어보시지요.”지초는 낙청연의 옷시중을 들었고 옷을 입어보니 크기가 그 전과 다름없었기에 품이 좀 작아서 입으면 불편했다.“왕야께서는 왕비 마마가 살이 오르신 걸 모르나 봅니다. 옷은 아름답지만 왕비 마마께서 이 옷을 입고 크게 움직이시면 실밥이 터질지도 모릅니다.”지초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면서 말했다.“됐다. 이만 벗는 게 좋겠다. 너무 불편하구나.”낙청연은 곧바로 옷을 벗었고 지초는 옷을 가지런히 개인 뒤 비단함에 넣었다.“그럼 왕비 마마께서는 궁중연회 때 어느 의복을 입으실 예정이시옵니까?”“두 벌 다 예쁘지만 하나는 품이 넉넉하고 하나는 품이 작구나. 하지만 이것은 왕야께서 주신 것인데.”낙청연은 그것을 한 번 보더니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이걸 입어야겠다. 혹시나 트집을 잡을까 두렵구나.”보내지 않았으면 몰라도 옷을 보내왔으니 반드시 입어야 했다.이렇게 대조해보면 부운주는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났다. 자신이 살이 오른 것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반대로 부진환은 소유에게 분부해 이 일을 전적으로 그에게 맡긴 것이 분명했다.낙청연은 하필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입어야 했다.—추석 궁중연회를 위해 낙청연은 오후부터 구리거울 앞에 앉아 얼굴을 꾸미고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하인이 모시러 와서야 낙청연은 출발하려 했다.그러나 방문을 나서고 계단을 밟으려는데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고 지초와 등 어멈이 부리나케 달려와 그녀를 부축했다.“왕비 마마, 조심하시옵소서.”몸을 일으켜 세운 뒤 발밑을 보니 아주 작은 청과 하나가 있었다.“이건 어디서 온 것이랍니까? 저희 정원에는 나무도 없는데, 제가 얼른 쓸어서 치우겠습니다.”등 어멈은
허리를 숙여 마차 안으로 들어가려던 낙청연은 그 목소리에 몸이 굳었다.고개를 들자 낙청연은 혐오 가득한 부진환의 눈빛을 마주하게 됐고, 칼날처럼 서슬 퍼런 눈빛에는 불쾌함과 노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낙청연은 답답한 기분에 남몰래 주먹을 꽉 쥔 채로 부진환을 힐끗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마차에서 내렸다.낙청연이 마차에서 내려온 순간 부진환은 마부에게 명령을 내렸다.“출발하거라.”마차는 훌쩍 떠나버렸고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하마터면 낙청연을 칠 뻔했다. 낙청연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서야 간신히 몸의 중심을 잡았다.“왕비 마마!”지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낙청연은 중심을 바로잡고는 마차가 골목 어귀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쳐다봤다.그녀는 그곳에 남겨졌고 그 착잡한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소유는 심각한 얼굴로 다시 마차 한 대를 불러왔고 마부에게 궁으로 가라는 말만 전하고 다른 얘기는 하지 않은 채 곧장 떠났다.그는 낙청연과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고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지초는 마음이 아프고 또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낙청연을 부축해 마차에 올라타면서 말했다.“소유마저도 이렇게 태도가 돌변하다니, 왕비 마마께서는 왜 이 의복으로 갈아입으신 것입니까? 왕야께서 좋아하시지 않을 거란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낙청연은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괜찮다. 그냥 가자꾸나.”조금 전 점괘를 쳤을 때 불을 멀리해야 하며 피를 볼 수도 있다는 점괘가 나왔다. 어쩐지 문을 나서자마자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는데, 잘 생각해보니 유염복 전체에 불이 가득했다.피를 볼 수도 있는 재앙이라면 큰 재앙일 수도, 작은 재앙일 수도 있지만 낙청연은 궁에서 그런 재앙을 겪을 바에야 부진환의 미움을 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몸조리했지만 그런데도 완전히 낫지는 못했다. 게다가 비만증을 치료할 방법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더는 다치면 안 됐다.그렇기에 그녀는 과감하게 유염복을 벗어던지고 부운주가
유염복을 산 것은 부진환이었으니 그가 낙월영에게 가짜 유염복을 선물했을 리가 없었고 그렇다면 낙청연의 것이 가짜였다.천면길에서 모조품을 만드는 일을 조사하면서 가짜 유염복을 그녀에게 주다니, 심보가 고약했다.낙청연이 그토록 애절하게 사랑했던 남자는 매사에 그녀를 음해하려 했다.낙월영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정말 엄벌에 처해진다는 말입니까?”그녀는 갑자기 당황한 내색을 하며 말했다.“그럼 얼른 저희 언니를 찾아가야겠습니다. 저희 언니를 본 적 있으십니까?”사람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언니를 찾는다니요? 언니를 찾아서 뭐 하시려는 겁니까? 설마 청연 부인이 천면길에 가서 모조품을 산 것입니까?”낙월영은 안색을 달리하면서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고 주위에 있던 이들은 깜짝 놀라면서 낙월영을 살펴봤다.“설마 오늘 그 모조품을 입고 온 것은 아니겠지요?”낙월영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아닙니다. 멋대로 추측하지 마세요.”그러나 그들은 그녀의 말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저마다 의논하기 시작했다.“오늘 같은 자리에서 그 옷을 입으면 엄벌에 처해질 것입니다. 게다가 천면길의 모조품 사건은 섭정왕께서 맡으셨지요. 청연 부인은 참으로 겁이 없습니다. 오늘 같은 날에 공공연히 모조품을 입고 오다니.”낙월영은 그들의 얘기에 속으로 우쭐했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바란 효과였다.이제 그들은 곧 자신과 똑같은 유염복을 입은 낙청연을 보게 될 것이고 반드시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면 낙청연은 아주 큰 망신을 당하게 된다.그들의 의논에 낙월영은 속으로 웃었다. 바로 그때 맑고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바로 여기 있잖니, 동생아.”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여기저기서 수많은 시선이 쏟아졌고 수다를 떨던 아씨들은 깜짝 놀란 얼굴로 낙청연을 쳐다보았다.그리고 낙월영은 그녀가 유염복을 입지 않은 걸 보고는 얼굴에 놀란
예전의 낙청연이 이런 얘기를 들었다면 수치심에 당장 그 자리에서 도망쳐 사람들을 피해 숨었겠지만, 지금의 낙청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면전에 대고 욕하는 사람들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다들 제 얘기는 충분히 하셨습니까? 귀한 집 아씨들이라더니 진짜와 가짜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여기에 앉아 헛소리만 늘어놓고 남을 손가락질하다니, 다들 교양은 어디 두고 오셨습니까?”그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다들 깜짝 놀라 얼이 빠졌다.낙청연은 지금껏 이런 얘기를 하지 못했었고 지금처럼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은 더욱더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경멸 어린 시선은 마치 사람들을 산 채로 잡아먹을 듯했다.몇몇 수치를 아는 사람들은 낙청연의 말을 듣고 곧바로 얼굴을 붉혔고 어떤 이들은 오히려 얼굴이 벌게서 화를 냈다.“청연 부인은 모조품을 입었고 월영 낭자가 그 사실을 증명했는데 저희가 얘기하지 못할 게 뭐가 있습니까?”낙청연은 코웃음을 치더니 살벌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다들 혀가 참 길군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을 취미로 삼으며 끝없이 세 치 혀를 놀리는 것을 보니, 사서오경을 읽어서 배운 것이 사람을 모욕해 즐거움을 얻는 것이었습니까?”만약 그들이 낙청연의 앞에서 그녀를 조롱하는 얘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낙청연도 큰 충격을 받지 않았을 터였다.몸의 원래 주인은 한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었고 이참에 낙청연은 제대로 화풀이할 생각이었다.누군가 성을 내며 말했다.“우리가 뭘 얘기하든지 그건 우리 마음이지, 청연 부인이랑은 상관없는 일이지요. 제가 청연 부인이었으면 이렇게 사람들의 미움을 살 바엔 집에 숨어서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낙청연은 고개를 돌려 평온한 얼굴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여인을 보면서 담담하게 대꾸했다.“그래요. 그 입은 당신들 몸에 달린 것이니 무슨 얘기를 떠들던 제가 상관할 바가 못 되지요. 예전에는 성격이 좋아서 참았지만 지금은 성질머리가 더러우니 어디 한 번 마음대로
부소는 깜짝 놀라 다급히 부원뢰를 업으려 했다.“아버지를 데리고 도성에 가서 의술이 더 뛰어난 의원을 찾겠습니다!”“분명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부원뢰는 부소의 손을 잡아당겼다.“콜록... 내 몸은 내가 잘 알고 있다. 난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사람은 결국 죽을 테니, 그렇게 걱정하지 말거라.”부원뢰는 힘없이 말하며 그를 위로하려 억지 미소를 지으며 부소의 손등을 두드렸다.“어떻게 이럴 수가...”부소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부원뢰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나도 생각지 못했다.”“네가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 아쉬움을 품고 가야 할 것 같구나.”말을 마치고 그는 옆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옥교를 보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가씨, 하나만 묻겠네. 부소가 마음에 드느냐?”옥교는 멈칫하다 저도 몰래 고개를 돌려 부소를 바라보았다.부원뢰가 말했다.“너에게 물은 것이니, 부소를 보지 말거라.”“내가 곧 죽는다고 해서 듣기 좋은 말로 위로하려 하지 말거라. 난 그저 사실을 듣고 싶을 뿐이다.”옥교는 조금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부원뢰는 그녀의 손을 잡고 품에서 피로 물든 옥팔찌 하나를 꺼내 꼼꼼히 닦은 후 옥교에게 건네주었다.“이 팔찌는 부소 어머니의 혼수다. 이번에 이곳으로 온 것도 부소 어머니의 임무를 받고 온 것이다. 네가 참 마음에 드는구나. 앞으로 두 사람이 함께 있든 아니든 이 팔찌를 받기를 바란다.”“내 소원을 들어준다고 생각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도 부소 어머니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될 것이다.”옥교는 그 말을 듣고 놀라기도 했고 난처하기도 했다.그녀는 부소의 마음도 모르는데 어떻게 며느리의 신분을 의미하는 받을 수 있겠는가.게다가 이 옥팔찌는 너무도 귀하다.부소도 그녀가 난처한 것을 알고 말했다.“그냥 받으시오.”옥교는 그제야 팔찌를 받았다.그녀는 나중에 부소에게 돌려주기로 생각했다. 그녀는 부소가 아버지의 아쉬움을 달래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송천초의 모습을 보며 초경은 마음이 아프면서도 못내 기뻤다.그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뽀뽀했다.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가치가 있다고 하면 가치가 있는 것이오!”초경은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로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그의 확고한 눈빛에 송천초는 저도 몰래 팔을 들어 그의 목을 휘감고 더욱 적극적인 대답을 했다....송천초는 날이 밝자마자 깨어났다.그녀는 옆에 누워 있는 초경을 보고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려 하지 않았다.“뭘 그렇게 보는 것이오? 그렇게 좋소?”갑자기 눈을 뜬 초경이 입꼬리를 올렸다.“깨어나셨습니까?”“본디 잠이 많지 않소.”초경은 말하면서 얼굴을 쓰다듬고 있던 송천초의 손을 잡고 잡아당겼다.“왜 그러시오? 아침부터 왜 그리 걱정이 많은 것이오?”“다음 생에 당신처럼 잘해 주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송천초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다음 생에 꼭 일찍 저를 찾아오십시오.”“다음 생이 지나도 마찬가지입니다.”초경은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좋소. 다음 생에도 앞으로도 꼭 일찍 찾아 지켜줄 것이오.”“평생 지켜줄 것이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수명도 아껴야지 않겠습니까? 수명이 줄면 어찌 저를 평생 지켜줄 수 있습니까?”초경은 멈칫하다 마음이 따뜻해져 그녀를 꼭 안았다.“좋소. 자네의 말을 듣고 소중히 아끼겠소.”“하지만 동하국을 없애는 일은 이미 부진환에게 승낙했으니, 약속을 어길 순 없지 않소?”“걱정하지 마시오. 이 일은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오.”“앞으로 뭐든 자네의 말을 듣고 수명을 소중히 여기며 평생 당신을 지켜줄 것이오.”송천초도 그를 꼭 껴안았다.“좋습니다.”-며칠 후, 이한도 쪽에서 고강해를 미끼로 삼아 그를 구하려는 사람을 몇 명 잡았다.심문하자, 그들은 모두 왕자를 구하러
막사로 돌아간 후 부진환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는 고강해를 미끼로 삼으려고 이한도로 데려갔다.그리고 동하국에 소식을 전해 투항을 권했다.3일도 지나지 않아 동하국 선박이 이한도 부근에 와서 고강해가 정말 이한도에 있는지 알아보려 했다.그와 동시에 송천초와 초경도 청주를 찾아왔다.부진환은 소식을 듣고 직접 맞이하러 가서 열정적으로 접대했다.세 사람은 정원에 술과 안주를 준비했다.부진환은 술을 따르고 말했다.“여제께서 두 사람이 올 것이라 편지를 보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소. 왜 며칠 더 놀다 오지 않은 것이오?”송천초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이젠 여제라 부르는 것입니까? 괜히 낯설어 보이십니다.”부진환은 멈칫하다 웃으며 답했다.“보는 눈도 많은데 마음대로 여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예의가 아니지 않소. 이미 여제라 부르는 것이 익숙하오.”“하긴 여국의 부 태사시니, 여제께 무례를 범하며 안 되시지요. 이렇게 빨리 여국으로 오실 줄 몰랐습니다. 부 태사 같은 분은 정말 흔치 않습니다.”“자, 제가 한 잔 드리지요!”송천초는 술잔을 들고 단숨에 다 마셨고 부진환도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두 사람은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초경이 마음이 급한 듯 먼저 입을 열었다.“동하국과의 전쟁은 어떻게 되었소?”“동하국 위치는 알아낸 것이오? 내가 가서 그들을 죽일 것이오.”“절대 늦어서는 안 되오.”부진환은 살짝 당황했다.“그리 조급해하는 것이오?”초경은 천천히 음식을 먹으며 물었다.“빨리 없애는 것이 좋지 않소?”“일찍 끝내야 천초가 매일 같이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오.”부진환이 웃으며 답했다.“동하국의 위치는 이미 사람을 보내 알아보고 있소. 아마 곧 소식이 있을 것이오.”“하지만 자네는 이제 보통 사람이 아니오. 나라 사이의 전쟁에 끼어들면 수위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소?”사실 이 일은 초경이 나설 일이 아니다.평소 송천초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몇 명 죽이는 것은 괜찮지만, 나라 사이의 전쟁은 결코
고강해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열쇠요.”“하지만 다들 열쇠가 가짜라는 것을 모르고 있소.”부진환은 곰곰이 생각하다 또 좋은 계획이 떠올랐다.그가 물었다.“당신을 대신한 형제들과 고옥서 남매를 제외하고 몇 명의 성인 형제자매가 있는 것이오?”고강해는 생각하다 답했다.“아홉 명이 더 있소.”이 숫자에 부진환은 살짝 놀랐다.동하국 왕의 자식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아홉 명 전부 동하국에 있는 것이오? 왜 나타나지 않는 것이오?”고강해가 답했다.“우리는 서로 싸우는 사이라 아무도 서로 굴복하고 지휘받는 것을 원하지 않소.”“그래서 따로 병사를 통솔하고 있소. 그래야 공로를 세워도 다른 사람과 나눌 필요가 없소.”“내가 잡히자, 고옥서가 오지 않았는가?”부진환은 그 말을 듣고 가볍게 웃었다.“그렇게 서로 싸우면서 뿔뿔이 흩어져 어찌 여국을 상대하려는 것이오?”고강해가 말했다.“우리에게는 약사가 있소.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지 자네는 모르오.”“여국의 풍수사가 강하다고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 하나에도 비길 수 없소.”그 말을 듣고 부진환이 물었다.“전쟁을 오랫동안 했는데, 그 대단하다는 약사는 왜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오?”“정말 궁지에 몰리지 않은 이상 약사는 동하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오.”“약사는 스무살에 동하국으로 왔고 이미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소. 하지만 약사는 아직도 스무살 때의 얼굴을 유지하고 있소. 어찌 비긴다는 말이오?”“약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여국을 평정할 수 있소.”비록 부진환은 이런 허풍을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적을 얕볼 순 없다.“약사가 그렇게 대단하면 어찌 이렇게 많은 동하국 사람의 희생이 필요하오? 어차피 약사는 동하국 사람이 아니니, 동하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을 것이오.”부진환이 단번에 중점을 꼬집어 말하자 고강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부진환이 말을 이었다.“게다가 당신이 잡혀도 아무도 구하지 않을 것이오.”“형제자매들은 자네가 죽기를
“왜 계속 당신을 남겨두었는지 알고 있소?”부진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고강해는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동하국 왕자이기 때문에 남겨 두면 반드시 쓸모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소.”“하지만 동하국 사람이 당신을 죽이려 할 줄은 생각지 못했소.”고강해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오?”“자네는 이젠 아무런 가치가 없소.”고강해는 자신의 처지를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고 답했다.“사실 난 잡힌 순간부터 아무런 가치도 없었소.”“동하국에는 황자가 많으니, 나 하나 없다고 문제 될 것 없소.”“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나를 죽이려 할 줄은 몰랐소. 도망가는 와중에도 나를 쏘려고 했소.”“하지만 우리는 형제 사이의 정이 없었소. 그저 경쟁과 싸움뿐이었소.”부진환은 그가 많은 말을 하자, 계속 물었다.“그저 싸우는 사이라면 어찌 자네를 그렇게 미워하는 것이오? 구하지 않는 것도 망정이지, 왜 죽이려 하는 것이오?”고강해가 답했다.“그들은 나한테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오.”“만약 그것을 얻는다면 새로운 왕자가 될 수 있소.”부진환은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옥서가 고옥언을 구할 때, 그는 옆 방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고강해 시체에서 뭔가를 갖고 가겠다는 것을 들었다.“그게 무엇이오?”고강해는 대답하지 않고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우리 동하국에는 존경받는 약사가 있소.”“하지만 과거 그녀는 동하국의 제압을 받던 일반 의원이었소. 독을 만들 줄 알기에 우리의 핍박을 받고 독을 만들었소.”“그녀는 여국인이지만 진법으로 인해 밖으로 나와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소. 그렇게 떠돌다 그녀는 동하국으로 왔고 늘 여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소.”“그녀의 계획은 줄곧 실패했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홀로 바다에 갔소. 그날 그녀는 파도 때문에 배가 뒤집혔지만, 마침 바다 밑에서 보물을 발견했소.”“오래된 침몰선이 해저에서 거대한 궁전이 된 듯한 모습이었고, 그녀는 그 안에서 많은 보물을 얻었고 특
고강해는 절망에 휩싸여 눈을 감고 죽음을 맞이했다.하지만 이때, 옆에서 화살이 날아가 정확히 고옥서가 쏜 화살을 떨구었다.고옥서는 그 모습을 보고 화를 내며 활을 내던지고 재빨리 마차를 이끌고 그곳을 떠났다.이내 그 마차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병사들도 신속히 그들의 뒤를 쫓았고 성문에 걸린 고강해도 내려져 감옥으로 데려갔다.고옥서와 고옥언은 바닷가로 도망쳐 작은 배를 찾아 먼저 숨을 곳을 찾기로 했다.하지만 너무 빨리 쫓아온 병사들 때문에 두 사람은 숨을 곳 없이 훤히 모습을 드러냈다.두 사람은 힘껏 노를 저어 떠나려 했다.바다에서 힘에 부쳐 곧 쫓기려는 그때, 눈앞에 동하국의 배 한 척이 나타났다.그리고 배 위에는 동하국 깃발이 달려 있었다. 고옥서는 미리 계획한 배가 마침 인근에 왔다고 추측했다.두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본 듯이 배 위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했고 곧 배에 올랐다.“어서 돌아가거라! 병사가 쫓아왔다!”고옥서가 다급히 명을 내렸다.하지만 배는 바다에 멈춰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옥서는 눈살을 찌푸리고 배 위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무엇들 하는 게냐? 귀가 먹은 것이냐?”비록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동하국 병사였지만 이상하게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그녀의 말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옥서는 병사들이 곧 쫓아올 것 같아 조바심을 내며 그들에게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으며 배도 움직이지 않았다.고옥서는 어딘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고 고옥언을 끌고 배에서 뛰어내리려 했다.하지만 그때, 선실에서 청주군 병사들이 뛰어나와 단번에 그들을 포위했다.배에서 뛰어 내리려 해도 이젠 뛸 수 없었다.그리고 추격하던 병사들도 가까이 도착해 그들의 배를 겹겹이 에워쌌다. 그리고 배 위에는 부소가 서 있었다!그녀는 놀란 나머지 절망스러웠다. 고옥서는 화를 내며 동하국 사람을 붙잡았다.“적들을 도와 우리에게 함정을 파놓은 것이냐?”상대는 울먹이는 말
결국 다들 시선을 부소에게로 옮겼다.부소는 멍하니 자기를 가리키며 물었다.“나한테 가라는 것이오?”“그것도 아니지 않소?”부진환이 말했다.“주락과 계진 둘 다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미인계에 넘어가게 생겼소?”“자네의 연기가 비슷할 것 같소.”부소가 다급히 말했다.“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지 않소?”“다른 사람은 마음이 놓이지 않소.”부소는 한참 고민하다 잔에 담긴 차를 단숨에 다 마셨다.“가면 될 것 아니오!”“좋은 소식 기다리시오!”부소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부진환이 그를 불러 세웠다.“오늘 이미 심문을 받았으니, 지금 가는 것은 너무 티가 날 것이오. 급할 것 없이, 내일 다시 가시오.”-다음 날 저녁.부소는 부진환이 말한 대로 고옥서를 심문하러 갔다.부 태사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고옥서는 전쟁 때문에 그가 오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역시 부진환의 추측대로 고옥서의 계략 중 하나가 바로 미인계였다.부 태사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부소는 다르다.한바탕 유혹하고 난 후, 고옥서는 기회를 잡아 부소와 단둘이 있게 되었다. 그녀는 고옥언이 갇힌 위치를 알아내고 부소가 방심한 틈을 타서 독 가루를 뿌려 그를 쓰러트렸고 감옥 문 열쇠를 훔쳐냈다.그리고 그녀는 독으로 감옥을 지키고 있던 옥졸을 쓰러트리고 고옥언이 갇힏 곳을 찾아 고옥언을 구출했다.“누나!”고옥언은 감격에 겨웠다.“어찌 온 것입니까? 동하국이 청주성을 뚫은 것입니까?”고옥서는 사방을 경계하며 말했다.“아니다. 홀로 너를 구하려 들어온 것이다.”“일단 이곳을 떠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두 사람은 조용히 감옥을 떠나려 했다. 하지만 감옥 끝에 있는 철문을 보고 고옥언이 발걸음을 멈추었다.“누나. 고강해가 저곳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데리고 가실 겁니까?”고옥서는 바로 거절했다.“안 된다.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 우리도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누나. 저는 그저 고강해가 지니고 있는 열쇠를 말한 것입니다.”그 말을 듣고
“정말인 것이냐? 동하국에는 나를 거절할 수 있는 남자가 없다.”그 말을 듣고 부진환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동하국 사람들이 워낙 적으니, 그럴만하다.”고옥서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정말 단호하구나.”말을 마치고 고옥서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옷을 입었다.부 태사에게 미인계가 통하지 않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인내심이 없으니,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거라.”부진환이 천천히 몸을 돌려 불쾌한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고옥서는 어쩔 수 없이 답했다.“내 동생을 구하러 왔다.”“동하국 왕자, 고강해.”“너에게 잡힌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 살아 있는 것이냐?”부진환은 놀라지 않았다.“얼마 전에 그를 구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다들 실패했는데, 너라고 성공할 거라 생각한 것이냐?”고옥서가 가볍게 웃었다.“확신이 없다면 어찌 왔겠느냐? 청주성에서 순찰하는 청주군도 많지 않은 듯한데, 다들 바닷가로 갔나 보구나.”“동하국의 배가 부담을 준 것이냐?”부진환이 담담하게 그녀를 힐긋 보고 답했다.“쓸데없는 걱정이구나.”말을 마치고 부진환은 몸을 돌려 떠났다.부진환의 반응을 본 고옥서는 전쟁의 상황이 부 태사에게 큰 부담이 되었고 막사마저 사라졌을 것이라 추측했다.그렇지 않으면 부 태사가 어찌 안색을 바꾸었겠는가?그렇게 생각한 고옥서는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으며 철문을 바라보았다.감옥에서 나간 부진환은 눈살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부소가 와서 그를 부른 것도 듣지 못할 정도였다.부소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왜 그리 넋을 놓고 있소? 여러 번 불러도 도통 반응이 없었소.”“심문하러 간 동하국 여인은 어떻게 되었소? 안색이 좋지 않소.”부진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청주성에 들어와 동하국 왕자이자 그녀의 동생 고강해를 구하러 왔다고 순순히 말했소.”부소가 깜짝 놀랐다.“고강해 말이오?”“그런 뜻으로 말했소. 하지만 고옥서라는 이름을 들으니, 고옥언과의 관계가 궁금해졌소.”“나이를 보니
“모든 것이 예전처럼 회복될 것입니다.”차강남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황량한 이한도의 모습을 바라보며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다 잘될 것이다.”그는 이한도를 예전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이 시간문제일 것이라 믿는다.마음만 먹으면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다.-저녁이 되자 바닷가의 막사는 고요함을 되찾았다. 전쟁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깨끗이 청소되었다.옥에 갇힌 고옥서는 아직도 동하국의 병사들이 매복을 당해 전쟁에서 지고 도망친 것을 모르고 있다.그녀는 옥에 끌려간 후 동생의 모습을 보고 싶어 두리번거렸지만 계속 그를 찾지 못했다.지하 감옥의 가장 깊은 곳에는 철문이 하나 있었다. 엄격하게 지키는 것으로 보아 중요한 죄수를 수감하는 곳 같았다.그녀는 철문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옥에 갇혀 있었다.위치가 적합하니, 기회만 생기면 동생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이다.그녀는 늦게까지 누군가 오기를 기다렸다.하지만 감옥에 온 사람은 부진환이었다.고옥서는 입꼬리를 올렸다.“부 태사?”부진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네가 바로 동하국의 공주구나.”“몇 번 교전할 때, 네가 지휘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용기에 비해 계략이 부족하더구나.”“홀로 청주성에 들어오다니. 정말 청주군의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고옥서는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 문 앞까지 걸어가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는 역시 대단하구먼.”“중독된 사람들과 달리 아직도 멀쩡하게 기운이 남아도는구먼.”“바깥 상황은 어떠하냐? 부 태사의 막사는 지켜낸 것이냐?”고옥서는 일부러 그를 비웃으려 득의양양하게 비꼬았다.하지만 부진환은 표정 변화 없이 그냥 싸늘하게 그녀를 보고 있었다.하지만 고옥서는 그의 뜻을 지키지 못했다고 이해했다.하지만 청주성은 아직 뚫리지 않은듯하다.“이름이 무엇이냐? 동하국에 내세울 사람이 없는 것이냐? 어찌 여인을 보내 전쟁을 지휘하게 하는 것이냐?”부진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고옥서는 입꼬리를 올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