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쳤다고?그럴 리가!부진환은 미간을 구겼다. 그는 낙월영을 부경리의 품속으로 밀치더니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박찼다.그런데 바로 그 순간 불길이 방문까지 옮겨붙으면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통째로 뜯겨 나갔다.온몸이 시커멓고 치맛자락에 불이 붙은 사람이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낙청연은 낙운희를 반쯤 업고 반쯤 끌면서 문을 박차고 나왔다.그러나 충격이 너무 컸는지 방문이 뜯겨나가는 순간 위쪽에 있던 대들보가 위에서 떨어졌고 낙청연은 이를 악물고 밖으로 뛰쳐나갔다.순간, 억센 힘이 그녀를 붙잡았고 발이 허공에 떴다.그 순간, 큰 불길이 밖으로 터져 나왔고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듯하더니 낙청연은 부드러운 몸 위로 쓰러졌다.눈을 떠보니 그녀의 아래에 부진환이 깔려 있었다.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방 안에 사람이 있을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부경리는 재빨리 낙운희를 일으켰고 그녀를 옆에 뉜 뒤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했다. 숨을 쉬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그는 곧 화가 난 얼굴로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누가 안에 사람이 없다고 했소?”사람들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들도 안에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낙월영은 안색이 아주 좋지 않았고 얼마나 긴장했는지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했다.부설이 도망치다니!게다가 낙운희까지 살리다니!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 낙청연은 부진환의 가슴팍에 기댄 채로 오래도록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녀는 몸 군데군데에 화상을 입었고 대량의 연기를 흡입한 터라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녀는 그곳을 빠져나오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그녀의 호흡 소리를 듣자 부진환은 마음이 아렸다.그런데 바로 그때 낙월영이 어깨의 상처를 누르며 걸어왔고 걱정스레 물었다.“부설 낭자, 괜찮소? 왜 방 안에 있던 것이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낙청연은 눈빛이 차가워져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녀는 낙월영의 어깨에 입은 상처를 보더니 냉소를 흘렸다.그녀는 이내 손을 들어 낙월
낙청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지금 이자를 감싸시려는 겁니까?”낙청연은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으면서 굳이 물었다.그리고 그녀가 얻은 답은 부진환의 따귀였다.갑작스러운 따귀에 낙청연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부진환은 낙청연을 안아 들더니 미간을 구기며 낙월영을 보았다.“얼른 의원을 부르거라!”말을 마친 뒤 낙청연은 몸을 돌려 떠났다.“왕야!”낙월영은 마음이 급했는지 다리에 힘이 빠졌고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그래도 정신을 잃었다.옆에 있던 사람이 그녀를 다급히 부축했고 연신 놀란 소리를 했다.부진환은 고개를 돌려 그 장면을 보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낙월영을 구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그는 자신의 이성에 기대어 품 안에 안긴 낙청연을 보았다.그녀의 가면에는 금이 나 있었다. 만약 지금 그녀를 데려가지 않는다면 그녀의 신분이 발각될 것이었다!부진환의 걸음이 아주 잠깐 멈췄지만 이내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부경리는 그 모습을 보더니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낙운희를 안아 들었다.관청의 사람들이 왔고 빠른 속도로 마당으로 향해 불을 끄고 있었다.부진환은 마차에 오른 뒤 말했다.“난 우선 부설을 데리고 돌아갈 것이다. 넌 운희 낭자를 태부부로 보내거라.”“알겠습니다.”부경리는 대답을 마친 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품 안에 안긴 사람을 보았다.낙청연은 부설루의 방 안에 정신을 차렸고 미약한 약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간질였다.“낭자, 일어나셨군요!”진 어멈은 흥분한 얼굴로 다급히 그녀를 부축했다.“낭자, 얼른 약을 드세요.”낙청연은 아픈 목을 어루만지면서 쓰러지기 전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녀는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누가 날 데려온 것이오?”“섭정왕입니다!”진 어멈은 입꼬리가 귀에 걸릴 것 같았다.“왕야께서 아주 초조한 얼굴로 오셔서 옷을 갈아입혔습니다. 저희는 손도 못 대게 하더군요.”그 말에 낙청연의 안색이 흐려졌다.“옷을 갈아입히다니?”낙청연은 고개를 숙인 뒤 자신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음을
바로 그때, 안에서 아역(衙役) 한 명이 시체 두 구를 들고나왔다. 흰 천이 바람에 휘날리자 안에 까맣게 탄 시체가 보였다.아마도 낙청연에게 맞아서 기절한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인 듯했다.“어머나, 세상에. 내 집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이냐? 내 상무원이!”다급하면서도 허둥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화려한 의복을 입은 사내 한 명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엉망진창이 된 상무원을 보는 순간 그 사내는 바닥에 주저앉더니 통곡하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은 그를 위로했다.“휴, 류 장궤는 운이 정말 좋지 않소.”“류 장궤, 다시 새로 고쳐보시오. 원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낙청연은 주위 사람들의 말을 통해 그 사람이 상무원의 주인인 류흥화(劉興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상무원은 그가 18명의 수재를 모셔서 설계도를 만들고 3년에 걸쳐 지은 것이었다. 그 안의 크고 작은 경치에 그는 자신의 모든 심혈을 기울였다.상무원은 신분이 높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만 빌려줬었다. 평범한 백성들이 들어간다면 그 경치를 아낄 줄 모를까 걱정되어서 말이다.그런데 상무원은 이번에 처참히 파괴됐다. 류흥화는 큰 충격을 받고 바닥에 주저앉았고 낙청연은 그에게 상무원을 빌린 것이 낙월영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 후원의 방에 어쩌다가 불이 붙게 됐는지 물을 생각이었다.그러나 많은 사람이 류흥화를 둘러싸고 그를 위로하고 있었기에 낙청연은 기회를 찾지 못했다.어쩔 수 없이 그녀는 류흥화가 주동적으로 상무원을 떠날 때 몰래 그의 뒤를 쫓았다.그러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물을 질질 짜던 류흥화는 돌아서자마자 표정이 달라졌다. 그는 전혀 슬퍼 보이지 않았다.낙청연은 곧장 그에게 다가갔다.“류 장궤.”류흥화는 살짝 당황하더니 몸을 돌렸다.“날 찾은 것이오?”낙청연이 물었다.“류 장궤는 이 불이 어쩌다 붙은 것인지 알고 계십니까?”류흥화는 그 말에 손을 내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 얘기는 듣고 싶지 않소. 더는 내 앞에서 상무원 얘기를 꺼내지 마시오.”말을 마
그 말에 낙청연은 놀랐다.“낙월영입니까?”그녀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낙월영뿐이었다. 낙월영이 오히려 억울하다고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하 대인이 말했다.“가면 알게 될 것이오.”낙청연과 하 대인의 관계를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좋을 게 없었다. 그렇기에 낙청연은 관청으로 끌려갔다.관청에 도착하니 많은 행인이 둘러싸고 있었고 인기척이 아주 컸다.공무를 보는 곳에 들어서자 낙월영이 보였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한 초췌한 얼굴로 의자 위에 앉아있었다. 얼마나 허약한지 사람들은 큰 소리도 내지 못했다.그러나 놀라운 것은 낙월영을 제외하고 다른 한 사람이 있었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낙운희였다.낙운희는 이미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하지만 그녀의 미간에 검은 기운이 있었고 마치 칼처럼 날카로웠다.하 대인은 자신의 위치에 앉아 위엄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누가 관청에 고한 것이오?”낙청연의 시선은 줄곧 낙월영에게 멈춰있었다. 낙월영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그러나 날카로운 소리는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저입니다! 오늘 상무원에 큰불이 붙어 저는 하마터면 상무원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부설이 살인하려 했다고 고했습니다!”그 말에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고개를 돌린 그녀는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낙운희를 바라보았다.하 대인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증거는 있소?”낙월영은 원수를 보듯 증오 가득한 얼굴로 낙청연을 쏘아보며 화를 냈다.“오늘 전 상무원에서 부설이 남몰래 낙월영을 해치려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부설은 절 발견하고는 절 기절시켰습니다. 비록 불을 지른 것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아마도 부설일 겁니다! 그녀는 저와 월영 낭자를 같이 죽이려 했습니다!”낙청연은 속으로 충격을 받았다.낙운희는 미친 것일까? 낙운희를 해치려 했던 사람은 낙월영이었는데 왜 낙월영을 위해 진실을 감추고 부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일까?하 대인은 곤혹스러웠다. 그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불에 갇힌 사람
그녀는 고개를 돌려 하 대인을 보며 말했다.“대인, 오늘 제가 겪은 일은 그와 완전히 상반됩니다.”낙청연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전부 얘기했고 낙운희는 불같이 화를 냈다.“말도 안 되오! 월영 낭자가 당신을 해치려고 했는데 내가 그 장면을 보아서 월영 낭자가 날 죽이려 했다니! 분명 당신이었소! 작당하고 있던 건 당신이란 말이오!”낙운희는 얼마나 화가 난 건지 발을 동동 굴렀다.낙처연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낙운희를 자세히 살폈다. 그녀의 미간에 있던 칼날처럼 날카로운 검은 기운이 점점 더 세졌고 눈빛 또한 많이 혼탁해졌다.낙청연은 평온하게 얘기했다.“저한테 증거가 있습니다! 낙월영은 절 후원의 정자로 불러서 저에게 백화소를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 안에는 예사롭지 않은 약이 있었지요. 계화소 안의 약과 더해진다면 몇 시진 동안 깊은 잠에 빠지게 됩니다. 대인, 확인해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수는 제가 후원에서 찾은 것입니다. 낙월영을 다치게 했다는 그 비수겠지요. 어떤 범인이 월영 낭자를 비수로 한 번 찌른 뒤 도망가겠습니까? 게다가 무기까지 아무 데나 버리고요. 이 비수가 어디에서 왔는지 대인께서 한 번 조사해 보시지요. 아마 조사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피가 묻은 비수를 본 순간 낙월영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범인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소?”하 대인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증거물을 보니 부설 낭자의 말이 그 당시 상황과 더욱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군. 만약 부설 낭자가 범인이었다면 왜 자신을 방 안에 가두었겠소? 그리고 월영 낭자가 말한 그 검은 옷을 입은 살수는 당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본 적 없소. 게다가 흉기를 현장에 버리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혹시나 두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솔직히 얘기하시오. 그렇다면 벌을 줄여줄 수 있소!”낙월영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얼굴을 가리고 기침하기 시작했다.낙운희는 극도로 분노
또 증인이 있다니?오늘은 증인들이 전부 제 발로 직접 찾아온단 말인가?곧이어 한 여인이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대인, 저는 부설루의 왕월청(王月清)이라고 합니다.”“무슨 증언을 할 생각이오?”하 대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고 왕월청이 대답했다.“대인, 전 죽은 두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부설루의 후문에 나타난 적이 있었는데 부설 낭자와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듣지 못했습니다.”그 말에 하 대인과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두 사람은 새까맣게 탔는데 어떻게 알아봤다는 말이오? 헛소리하지 마시오. 누구를 세 살짜리 애로 보는 것도 아니고.”낙청연이 싸늘하게 말했다.왕월청은 확실히 부설루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낙청연은 그녀를 본 적만 있을 뿐 그녀와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에야 그녀의 이름을 알았다.하지만 왕월청은 단언했다.“밖에 시체를 찾는 포고를 보았습니다. 가서 보니 아는 얼굴이었습니다. 부설루 후문에 나타났던 그 두 사람이 맞습니다!”낙운희가 코웃음을 쳤다.“진실이 밝혀졌군요. 부설 낭자가 월영 낭자를 해치려고 했다는 증언들이 이렇게나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큰불이 붙었던 것이지요! 두 사람이나 죽었는데 목숨으로 그 죄를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낙청연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증거도 없이 겨우 당신들의 말로 진실이 밝혀졌다고 하셨습니까? 끝없이 쏟아지는 사람들의 증언 자체가 아주 비정상적인 일인데 말이죠. 제가 상무원에 죽지 않았으니 다들 두려운 것이겠지. 그래서 이렇게 급급히 저에게 죄를 물어 절 죽이려는 것이 아닙니까?”하 대인은 미간을 구겼다. 자꾸만 찾아오는 증인들은 확실히 의심스러웠다.“당신들이 한 말은 전부 다 조사할 것이오! 증언이 진실이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그때 죄를 묻겠소! 부설과 조대표를 옥으로 끌고 가거라.”그렇게 낙청연과 조대표는 옥으로 끌려갔다.그것은 낙청연이 두 번째로 옥에 갇히는 것이었다.그것도 예전에 갇혔던 곳이라 아주 익숙했다.
하 대인이 대답했다.“신분은 문제가 없었소. 하지만 오늘 접촉해봤던 사람들은 지금 조사하고 있소.”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막 걸음을 옮기려는데 누군가 떠올랐다.“참, 상무원의 주인 류흥화를 조사해 보세요.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절대 놀라게 하지는 마시고요.”하 대인은 눈을 반짝였다.“알겠소.”낙청연은 옥에서 나온 뒤 하 대인 저택의 후원으로 향한 뒤 후문에서 조용히 나왔다.늦은 시각이라 거리는 아주 조용했고 낙청연은 몰래 태부부로 향했다.낙 태부가 돌아가신 뒤로 태부부는 많이 적막해졌다. 태부부는 대문이 잠겨 있었고 다들 쉬러 간 듯했다.낙청연은 아주 순조롭게 내원에 도착했다.환한 방을 보자 그녀는 조심스레 다가갔다. 방 안에서는 낙운희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어머니! 예전에는 낙청연 때문에 절 벌하시더니 이제는 청루 여인의 편을 들어주시려는 겁니까? 대체 왜 그러십니까? 전 잘못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속에서 저는 청루 여인만도 못합니까? 왜 제가 그녀를 일부러 해친다고 생각하십니까? 전 어머니의 딸입니다. 어머니가 보기에 제가 그런 사람 같습니까?”낙운희는 아주 억울해 보였다.낙용은 불같이 화를 냈다.“청루의 여인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내가 신경 쓰는 건 네 안위다! 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네 언니도 수도를 떠났다. 이렇게 많은 일들이 벌어졌는데 아직도 모르겠느냐? 승상부의 흙탕물에 왜 제 발로 들어가려 하는 것이냐? 내가 낙월영과 왕래하지 말라고 했지. 내 말을 듣기는 했느냐? 내가 화병으로 죽었으면 좋겠느냐?”오늘 낙운희는 상무원에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고 낙용은 그 일을 알고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낙월영과 관련된 일이라면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낙용은 조바심이 났고 또 무력했다. 그녀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낙운희가 철이 들지는 알지 못했다.그녀가 죽는다면 누가 낙운희를 지켜주겠는가?“어머니, 어머니가 자꾸 훈육하시니 언니가 그렇게
낙운희는 몸을 움찔 떨었다. 그녀는 겁에 질린 듯 보였다.몸을 돌려 부설을 보는 순간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다급히 탁자를 붙잡았다.“세상에! 옥에서 도망친 것입니까?”깊은 밤, 부설이 소리 없이 그녀의 방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가면을 본 낙운희는 이상하게 두려웠다.낙청연은 서서히 걸음을 옮겨 앞으로 걸어갔고 낙운희는 겁을 먹고 연신 뒷걸음질 쳤다.“뭘 하려는 것입니까? 오지 마세요! 여기는 태부부입니다. 감히 허튼짓한다면...”“아!”낙운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낙청연이 그녀의 목을 졸랐다.힘이 얼마나 센지 낙운희는 짧게 비명을 지른 뒤 다시는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녀는 손발을 이용해 벗어나려고 힘껏 발버둥 쳤다.죽음의 공포에 낙운희는 덜덜 떨었다.낙청연은 다른 한 손으로 낙운희의 손목을 붙잡은 뒤 그녀의 손목 안쪽에 붉은 점이 있는 걸 발견했다.“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 오늘 상무원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한번 얘기해 보거라!”낙청연이 차가운 어조로 낙운희를 위협했고 목을 조르던 손에 힘을 살짝 풀었다.낙운희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자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차라리 죽이십시오! 전 절대 말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처럼 악랄한 여인의 죄를 벗기기 위해 거짓을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낙운희는 당당하게 말했고 낙청연은 미간을 구겼다.“멍청하긴.”낙청연은 낙운희의 어깨와 팔을 붙잡더니 그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고 극심한 통증에 낙운희는 온몸을 벌벌 떨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지만 너무 아파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사람 살려! 사람 살려!”낙운희는 다급히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낙청연이 그녀를 잡아 일으켜세웠고 낙운희의 복부를 힘껏 때렸다.어마어마한 힘에 낙운희는 멀리 날아가 침상에 등을 부딪쳤고 왈칵 피를 토했다.극심한 통증에 낙운희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부설은 날카로운 비수를 들어 그녀를 찌르려 했다.칼날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살기가 그녀의 코앞까지 당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