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답을 물었으니, 스스로 굴욕을 자초한 꼴이라 그녀는 묻자마자 후회했다. 그래도 자존심을 지키려고 우격다짐을 펼쳤다.“나도 한마디 할게. 임채원도 당신의 좋은 배필이 못 돼. 인품도 인품이지만, 당신이 평생 반신불수 된다는 말에 싫은 티 팍팍 내는 것만 봐도 그녀는 당신과 동락은 해도 동고 못 할 사람이야. 그녀가 사랑하는 건 진짜 당신이 아니라 완벽함으로 수식된 당신의 배경이니까.”파란도 일지 않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하는 성도윤이었다.“채원이가 나를 사랑하든 아니든 상관없어. 아이만 건강하고 평안하면 되니까.”“하! 도윤 씨 정말 대단해. 당신의 진짜 사랑을 이제 알았어.”마음이 모질게 치인 차설아는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낭패를 봤다.‘허허. 그렇게도 임채원을 사랑한다는 거지? 그녀가 사랑하든 안 하든 상관없을 만큼. 둘의 아이만 행복하면 된다고?’그녀는 쌍둥이를 얘기하려 했던 자신이 한심했고, 그 사실을 꺼내 보이지 않은 거에 대하여 다행스러웠다. 말했다면 쪽팔린 건 본인의 몫이었기에. 보통 사랑의 열매를 결실이라고 하면 욕망의 열매는 부담일 것이다. 부담을 안고 싶어 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구청 주무관은 두 사람에게 수리된 서류에 사인하게 하고 도장을 찍었다.“성도윤 님, 차설아 님, 접수된 이혼 신고는 이로써 수리되었습니다. 이시간 부로 두 분 이혼신고 효력이 발생함을 알려드립니다. 여기 서류 받으시고요. 혼인관계증명서를 발급 받아서 보시면 됩니다.”차설아는 수리된 이혼서류를 받아 들고 눈을 내리 드리우면서 찬찬히 훑어보았다.숙려기간 후 법원에서 확인받은 합의 이혼 확인서를 구청에 신고하는 절차였다. 그 외이혼 신고는 혼인 신고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혼인 신고는 두 사람이 한 가족이 되기 위한 시작이었고 이혼 신고는 그 두 사람이 다시 남남이 되기 위한 마침표였다. 혼인과 이혼이 한 곳에서 신고되는 구청 이곳에서 그녀는 문득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미련 없이’라는 글귀가 적힌 책의 문구가 떠올랐다. 이젠 미련을 깡그
말하는 사이에 성주혁이 붓을 내려놓고는 책상 서랍에서 자단나무 상자 하나를 꺼내더니 차설아에게 건넸다.“설아야, 이걸 열어보거라.”차설아는 건네받은 나무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봤다. 그 안에는 훈장이 하나 들어있었다. 훈장 위에는 평화의 비둘기와 날카로운 검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녀는 의문스러운 얼굴로 성주혁을 보며 물었다.“할아버지, 이건 ...”“얘야, 이건 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한테 남긴 소중한 물건이란다. 이 훈장은 네 할아버지께서 얼마나 대단하신 사람인지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지. 이제 이 훈장을 너한테 넘겨주도록 하마.”성주혁은 의형제를 맺었던 차무진의 비범했던 일생을 떠올리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널 많이 걱정하셨어. 너와 도윤이가 결혼한 지 4년이 지난 후에 이 훈장을 너에게 주라고 나에게 거듭 당부했었다...”“이제 너와 도윤이가 결혼한 지 4년이 되었으니 네 할아버지의 축복이 담긴 이 훈장을 너에게 주도록 하겠다. 두 사람이 영원히 행복하고 백년해로하길 바란다.”차설아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훈장을 손에 꽉 쥐었다.마치 생사를 넘나든 것처럼 거칠지만 따뜻한 할아버지의 큰 손이 느껴지는 것 같아 눈시울을 붉혔다.“할아버지는 살아계실 때도 저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었는데, 세상을 떠나시고도 영혼으로 저를 지켜주시려고 하네요. 할아버지의 손녀로서 정말 면목이 없네요, 할아버지께 폐만 끼치고요...”할아버지가 임종하기 전에 그녀의 손을 잡고 거듭 당부했던 장면은 여전히 잊을 수 없었다. 차무진은 그녀에게 복수하지 말고, 다시는 그 험난하고 복잡한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는 유능할 필요도 없고, 차씨 가문의 재기를 위해 힘쓸 필요도 없으니 평생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여자, 그리고 성씨 가문의 사모님의 역할만 잘해내길 바랐다. 아니면 세상을 뜨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을 것이다.하지만...‘내가 정말 못났네, 못났어. 할아버지의 소원도 들어주지 못하다니.’이 세상에서 사람
두 사람은 구청에서 이별한 후 한 사람은 왼쪽으로, 다른 한 사람은 오른쪽으로 향했다.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한 두 사람은 남은 평생 다시는 서로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기세였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하지만 진짜 이혼을 경험하게 되니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씩 달라졌다.성주혁은 두 사람을 엇갈아 보더니 주름이 가득 잡힌 눈으로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두 사람이 같이 휴가 다녀왔다더니, 하루 종일 붙어만 있어도 못할망정 왜 따로따로 나를 찾아온 것이냐? 너희 둘, 싸운 것이냐?”“저희...”차설아는 어금니를 깨물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도대체 솔직하게 사실을 고백해야 할지, 아니면 계속 성주혁을 속여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이혼을 하기 전에는 성주혁을 속여도 그녀는 양심에 찔리지 않았었다. 진정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하지만 지금은...그녀와 성도윤은 결국 이혼 증명서까지 떼게 되었으니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더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우리는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는데 왜 싸우겠어요?”성도윤이 덤덤하게 말하고는 긴 팔로 차설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마치 평소에도 이러듯이 자연스럽게 말이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두 사람을 정말 서로 끔찍이 사랑하는 사이라고 착각할 것이다.차설아의 얼굴은 살짝 빨개졌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성도윤을 맞춰주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그럼요, 우리가 왜 싸우겠어요.”‘이혼을 했으면 했지!’차설아가 속으로 중얼거렸다.“그럼 다행이네.”성주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도윤을 향해 물었다.“도윤아, 네가 말해봐 봐. 이번 휴가 즐거웠어? 어떤 곳으로 간 거야?”곧 거짓말이 들통날 것 같아 차설아는 먼저 대답하려고 했는데 성주혁은 엄숙한 얼굴로 그녀를 제지했다.“설아야, 도윤이에게 물었다. 넌 아무 말도 하지 마.”성도윤은 테이블 위에 놓인 특산물을 힐끔 보더니 유독 커피 원두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그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거짓
“암시요?”차설아는 어리둥절했다.그녀는 성주혁에게 흑진주를 선물한 건 그저 할아버지가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기를 바란 것뿐이었다.‘내가 뭘 암시했다는 거지? 오해하신 건 아닐까?’“진주를 보자마자 나는 아이를 생각해냈어...”성주혁의 얼굴이 한껏 어두워지더니 더 엄숙한 목소리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성도윤에게 따져 물었다.“네 이놈, 솔직히 말해봐. 밖에 돌아다닌 소문이 사실이야? 네가 설아를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가졌다는 게 사실이냐고?”성도윤은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더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허리를 곧게 펴고는 차갑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께서 다 아셨다면 저도 더는 숨길 것 없네요. 그 아이는 제 아이가 맞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품위 있는 신분과 책임감이 있는 아버지가 필요하지요.”“너!”성주혁은 가슴을 움켜쥐더니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는 지팡이를 세게 성도윤의 등에 내던지며 말했다.“너 제정신이야!”“그 아이에게 품위 있는 신분과 책임감이 있는 아버지가 필요하다면, 설아는 어떻게 해? 너 설아 생각은 한 번이라도 해봤어? 설아야말로 네 아내라고. 지금까지 설아는 너나 나를 포함한 성씨 가문의 모든 사람에게 최선을 다했어.”“너는 설아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야. 아껴주고 예뻐해 주지는 못할망정 그런 짓이나 하며 설아 가슴에 못을 박아?”성주혁은 얘기하면 얘기할수록 울화가 치밀어 올라 단호하게 말했다.“난 절대 허락 못해. 당장 그 염치없는 여자를 병원으로 보내서 그 더러운 아이를 지워버려!”“너랑 설아의 아이만이 성씨 집안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어. 다른 그 어떤 아이도 난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성도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합니다만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이 말은 성주혁의 노여움을 샀다.“그래, 너 다 컸다 이거지? 얼토당토않은 여자에 홀리더니 이젠 내 말도 우습게 들려? 그럼 오늘 제대로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하겠구나!”말을 마친
시간이 멈춰버린 듯이 장내는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그들은 모두 바닥에 떨어진 흰 종이를 바라봤다.‘맙소사!’차설아는 재빠르게 몸을 웅크려 앉아 종이를 주우려고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종이에 ‘이혼 증명서’라는 글이 크게 적혀 있었다.그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바닥에 떨어진 이혼 증명서는 마치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성도윤과 차설아가 이혼하는 것을 알리는 것 같았다.“너희... 너희 둘...”성주혁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할아버지!”성도윤과 차설아는 동시에 성주혁을 향해 달려갔다.하지만 성주혁은 성도윤의 손을 세게 뿌려치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날 할아버지로 부르지 말거라, 난 네놈의 할아버지가 아니다. 이제 다 컸다고 내 말은 전혀 듣질 않고, 감히 내 허락도 없이 설아랑 이혼을 해? 내가 화병이 나서 죽길 바란 모양이로구나!”“그럼, 네 뜻대로 내가...”이때 성주혁은 갑자기 서랍을 열더니 총알이 담긴 권총을 꺼내고는 슬픈 얼굴로 말했다.“이 총은 설아 할아버지께서 나한테 선물하신 거다. 설아 할아버지는 옛날에 내 목숨도 구해주셨는데 네가 이러면 내가 무슨 낯짝으로 계속 살아간단 말이냐! 이참에 얼른 설아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사죄를 할란다.”말을 마친 성주혁은 곧바로 총을 자기 이마에 겨누고는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다.“할아버지, 안 돼요!”이를 본 차설아와 집사는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성도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덤덤하게 말했다.“할아버지, 장난은 그만하세요. 제가 잘못했으니 어떻게 벌하셔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본인 몸으로 장난치지 마시라고요. 할머니에게나 먹힌 방법이었지, 할아버지도 참... 유치하시네요.”성도윤은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었다. 그래서 그는 두 사람과 유난히 애틋한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또 두 사람의 성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게 장난 같더냐?”성주혁은 엄숙한 얼굴로 또박또박 말했다.“너한테 사흘의
성씨 집안의 사당에는 조상들의 명패가 놓여 있었다. 사당에서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비는 것은 성씨 집안에서 가장 엄중한 벌이었다.성도윤은 회초리 상처를 그대로 안은 채 허리를 곧게 펴고 명패 앞에 묵묵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차갑고 딱딱한 바닥 때문에 그의 무릎에서는 깨질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사람 보내서 잘 지키라고 해. 사흘 동안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주지 말고. 언제까지 버티는지 한 번 봐야겠어.”성주혁은 위엄 있는 얼굴로 집사에게 명령을 내렸다.집사는 피범벅이 된 성도윤의 등을 보고는 걱정이 앞서 용기를 내어 말했다.“어르신, 도련님께서는 회초리에 맞아 엄중한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기계도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무릎을 꿇고 있으면 버티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사람은 버텨낼 수 있겠습니까!”“잘못을 하면 벌을 달게 받겠다고 도윤이가 말하지 않았더냐?”성주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면서 성도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하, 하지만 아까 사모님께서도 말씀하셨지요. 이혼은 본인이 제안하셨다고요. 사모님에게도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생겼는데 어찌 모두 도련님 탓으로 돌릴 수 있단 말입니까?”“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성주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성도윤에게는 벌을 내렸지만 유독 차설아는 편애하는 그였다.“설아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도 이유가 있겠지. 저놈이 평소에 얼마나 심하게 굴었다는 거야. 그래서 설아가 마음을 접었겠지. 그러니 저놈은 더 반성해야 해.”“그리고 불륜을 저지르고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가진 건 명백한 사실이잖아. 그것만으로도 도윤이는 죽을죄를 지었어.”‘어르신의 성격으로는 절대 마음이 약해지시지 않을 거야. 괜히 큰사모님에게 알려지면 이 일은 더 커지게 될 거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련님을 구할 수 있는 건 사모님밖에 없는 것 같은데...’식사 자리는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설아야, 이 생선 좀 먹어보렴. 네가 생선을 제일 좋아하는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 셰프를 바꿨으니 입맛에 맞는지 한번
“저도 진짜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차설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솔직하게 말했다.“아까 저도 도윤 씨를 위해 사정했어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저에게 말을 할 기회도 주지 않으셨어요. 제가 한 마디만 더 하면 도윤 씨랑 같이 벌을 받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저도 달리 방법이 없다고요.”차설아는 전처로서 이미 할 만큼 했다.그렇다고 쓰레기 전 남편을 위해 자기까지 희생할 생각은 없었다. 성도윤을 향한 그녀의 감정은 그 정도로 깊지 않았으니.차설아가 마음이 약해진 것 같자 집사는 마음이 조금 놓였고 이내 서둘러 말했다.“어르신께 사정하실 필요 없어요. 사모님은 그냥 도련님을 잠깐 도와주시면 됩니다.”“어떻게요?”“그러니까 우리 도련님을 몰래 돌봐주시겠어요? 이건 사모님밖에 할 수 없어요. 이 일이 어르신께 들켰더라고 해도 어르신은 사모님을 예뻐하시니 벌을 내리시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라면 얘기가 달라지죠.”집사는 미리 준비해둔 약과 저녁이 담긴 바구니를 차설아에게 건네고는 말을 이었다.“사모님, 도련님께서 이번 일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는 모두 사모님에게 달렸습니다. 제가 먼저 성씨 집안 대신 감사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네? 이건 좀...”차설아는 거절해야 할 걸 알면서도 손은 다른 사람에게 통제된 것처럼 저도 모르게 바구니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두 다리도 저절로 집사를 따라 성씨 가문의 사당으로 향했다.이게 바로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인다는 증거가 아닐까?‘정말 못 났어, 나 자신!’깊은 밤.사당은 성씨 가문의 본가 옆에 지어졌는데 하나의 독립된 건물이었다.낮에는 청소를 책임지는 청소부가 있었는데 저녁에는 오직 켜진 흰 등불 두 개만 있었다. 그래서 유난히 한산하고 음산해 보였다.차설아는 멀리서 허리를 곧게 펴고 성씨 가문 사당 중앙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성도윤을 발견했다.흰 셔츠는 피로 물들여졌는데 집사가 찍은 사진보다 고통이 더 생생히 전해졌다.“바보 아니야? 그걸 진짜 다 맞은 거야? 허리는 왜 또
“정말 은혜도 모르는 놈, 피해망상 있는 거 아니야?”차설아는 씩씩거리며 사당을 나서고는 불만을 토로했다.‘내가 정말 정신이 나가서 저런 놈을 도와줄 생각이나 했지. 괜히 사서 고생이나 하고 말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 돌아갔지.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드라마 보는 내 시간을 다 낭비했잖아.’집사는 사당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차설아가 사당을 나서는 것을 본 그는 다급하게 쫓아와 물었다.“사모님, 왜 이렇게 빨리 나오셨어요?”“음식을 갖다주는 내 좋은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할망정 나를 원망하니 내가 계속 거기에 남을 필요가 있겠어요?”“그럴 리가 있나요!”집사는 계속 불쌍한 얼굴로 사정했다.“도련님의 성격을 사모님도 잘 아시잖아요. 모진 말을 내뱉지만 속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한 번 도와주기로 하셨으면 끝까지 책임지셔야죠. 도련님에게 음식을 주고 상처에 약도 발라주세요. 아니면 분명 오늘 밤을 버티지 못할 겁니다.”“싫어요!”차설아가 벌컥 역정을 내고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도윤 씨가 그랬어요, 자기가 죽든 말든 나랑 관계없다고요.”“아이고, 큰일 났습니다. 도련님께서 쓰러지셨습니다...”집사가 다급하게 불렀다.“사모님, 사람 살리세요... 이러다가 도련님께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차설아는 눈을 질끈 감고는 발을 동동 구르더니 다시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성도윤, 내가 전생에 너한테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왜 나를 이렇게 괴롭혀!’성도윤이 바닥에 쓰러진 건 사실이었다. 그는 회초리에 맞은 상처 때문에 식은땀을 뻘벌 흘리고 있었다.“왜 또 돌아왔어? 당장 꺼져!”성도윤은 몸이 허약했지만 여전히 차가운 말로 차설아를 쏘아붙였다.“닥쳐, 입만 살아가지고.”차설아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성도윤의 옷을 벗겼다.남자의 등은 태평양처럼 넓었다. 힘이 넘치는 근육에 완벽에 가까운 각선미, 그리고 구릿빛 피부에 더해진 회초리 상처 자국은 유난히 매혹적으로 보였다.“쿨럭쿨럭.”차설아는 몸이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