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금은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차설아의 머리는 예전과 다름없이 똑똑했고 그녀도 이런 차설아를 마음에 들어 했다.“허허. 남을 탓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탓해. 백설의 억울한 연기에 마비되었어? 역시백설은 연기대상 수상자로서 연기력이 끝내주는군.”차설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쓴웃음을 지었고, 감탄한 듯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그러니 네가 지은 죄를 다 인정했다는 말이니?”소영금은 두 손으로 난간을 꽉 잡은 채 연신 몸을 떨며 물었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어요?”고개를 들어 높이 서 있는 소영금을 바라보는 차설아의 눈빛은 한결같이 날카로웠다.“네가 보기엔? 도윤과 은아가 너의 변태 오라버니 때문에 망가졌어. 넌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어?”“나를 모욕하는 것은 그나마 참아주겠지만 오빠를 욕해서는 안 돼요. 내가 성도윤 씨를 함정으로 끓어드렸기에 그 결과에 대해서는 나 홀로 감당할 겁니다.”오빠의 성질로는 성도윤과 서은아에게 과분한 짓을 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만약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해 반드시 설명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녀는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차설아에게는 오빠가 한 분밖에 없었다.“좋아!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억지 부리는 것을 보니 조금도 고칠 기색이 없군!”소영금은 차설아의 강인한 태도에 화가 나 몸을 떨며 하마터면 등을 돌릴 뻔했다.“모두 나의 잘못이야. 내가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를 착한 아이로 생각하여 딸처럼 여겼어. 도윤에게도 천하를 저버려도 널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지만 인제 보니... 넌 피도 마음도 차가운 독사야! 전혀 따뜻해지지 않아!”“영금 이모,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마세요. 이 년이 꾀가 많아서 도망이라도 가면 더 힘들어져요. 빨리... 빨리 시작하셔야죠!”서은아는 무슨 변수가 있을까 봐 두려워 소영금더러 조속히 차설아를 수습하라고 재촉했다.어쨌든 성도윤은 이 일을 전혀 몰랐고, 만약 그가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이 여자에게 마음이 약해질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다시 일어
차설아는 얼굴에 두려운 기색도 없이 웃으며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천한 년, 죽음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웃음이 나오다니!”서은아는 화를 참지 못하고 차설아의 뺨을 때리며 물었다.“뭐가 웃겨요? 하나도 무섭지 않나봐요?”차설아의 하얀 얼굴에는 즉시 다섯 손가락의 선명한 지문이 나타났고 입가에는 핏발이 섰다. 그녀는 몹시 아파했지만, 미간도 찡그리지 않았고 도리어 더욱 무정하게 웃었다.“하하하, 당신이 우습게 생각되어 웃은 것 뿐이죠. 죽음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으스대고 있으니 우습지 않겠어요?”“너, 무슨 뜻이죠? 말짱한 사람에게 감히 죽음이 임박했다고 저주하는 거예요?”서은아는 원래 안절부절못했는데 차설아의 말을 듣고 마음이 더욱 약해졌다. 그녀는 다시 뺨을 때리려 했지만, 반응이 빠른 차설아는 그녀를 발로 걷어차며 멀리 내던졌다.으악!서은아는 흉악한 모습으로 배를 움켜쥐고 있었는데 오장육부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차설아를 가리키며 말을 잇지 못했다.“너, 너...”“서은아, 난 당신과 원한이 없기에 남자를 위해 나를 죽일 필요가 없어요. 내가 만약 일이 생긴다면 오빠는 제일 먼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나의 친구인 배경윤과 배경수도 대가를 치르더라도 널 산산조각낼 거고요! 이것이 죽음이 임박한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요?”차설아는 고통스러워하는 서은아를 차갑게 쏘아보았다. 비록 개처럼 목에 쇠사슬이 묶여있었지만 그 차갑고 패기 있는 분위기는 오히려 섬뜩함을 자아냈다.서은아는 뒷걸음질 치며 차설아가 그녀를 해치지 못하게 물러난 후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예전의 우리는 아무런 원한도 없었어요. 비록 나와 연적이지만 난 너를 죽일 생각이 없었어요. 그러나 그날 밤 후로 나는 너와 함께 죽더라도 꼭 지옥에 보낼거라고 담짐했어요.”“아니, 날 죽일 수 없어요.”차설아는 자신 있게 말했다.“나의 목숨을 살려두라고 소영금이 경고했어요!”“소영금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 당신을 나에게 맡긴 거예요! 즉 네가 죽든 말든 내
“다 말했잖아요, 이 지경에 이르면 더는 시치미를 뗄 필요가 없어요. 당신이 아무리 무고한 척해도 난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내가 받은 상처는 평생 회복할 수 없으니 당신이 수백 배 더 큰 고통을 받아야 만 내 마음이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서은아는 말을 마친 후 손뼉을 치더니 고개를 기울이며 입구를 향해 말했다.“들어오셔도 돼요.”말이 끝나기도 바쁘게 일렬로 늘어선 남자들이 들어섰는데 족히 백 명은 되었다.통일된 옷을 입은 이들은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눈빛이 매서워 해안 시 사람 같지 않았다.“뭐 하는 짓이야?”차설아는 쌀쌀하게 물었다.“당신처럼 똑똑한 사람이 어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를 수 있겠어요?”서은아는 옆에 있는 키가 큰 남자를 만지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이 사람들은 내가 특별히 외진 농촌에서 찾아온 사나이예요. 모두 튼튼하고 건장하니 당신을 편안하게 모실 수 있어 지옥에 가더라도 만족스러워 할 거예요... 보세요, 나 친절하죠?”“서은아 씨, 당신이 믿든 안 믿든 난 당신이 겪은 그 일들을 전혀 몰라요. 난 그저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어요.”차설아는 두려움이 없었으나 미안해했다.그녀는 오빠가 피바람을 맞으며 일을 할 때 항상 잔인하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지경까지 잔인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서은아처럼 교만한 아가씨에게는 이런 불행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서은아가 이렇게 자신을 미워하며, 이렇게 앙갚음하려고 애쓰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허허, 미안?”서은아는 차갑게 웃었다.“이제야 미안하다고 하는 게 의미가 있어요? 정말 몰랐다고 해도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당신 오빠가 뿌린 죗값은 여동생이 책임져야 해요.”“당신 말이 맞아요. 나는 미안하다고 말할 자격도 없어요. 보복하고 싶으면 시작하세요.”차설아는 눈을 감으며 죽음을 기다렸다.역시 인과보응이 있는 것처럼 원인이 있는 만큼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마치 그녀가 실수로 임채아를 절벽에서 밀어뜨린
“잠깐만!”서은아는 갑자기 그 남자를 불러세운 뒤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이렇게 멋진 장면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 모든 사람이 반복해서 볼 수 있도록 해야 죠.”“서은아 씨, 당신의 불행한 처지를 동정하지만, 당신은 호락호락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독하네요. 탄복해요!”차설아는 더는 발버둥 치지 않고 하늘의 뜻을 따르려 했다.두렵지는 않았으나 유감이 많았다. 많은 일을 말하지 못한 채 이렇게 헛되이 죽게 되니 아마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네 모습을 보니 여전히 내키지 않아 하니 내가 다른 일도 알려줄게요.”서은아는 카메라로 초라한 차설아의 모습을 찍으면서 차분하게 말했다.“도윤 씨가 왜 당신이랑 사랑하면서 갑자기 헤어지고는 나와 함께 있었는지 아세요?”차설아는 쌀쌀하게 웃으며 불쌍한 눈빛으로 서은아를 바라보았다.“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이 순간에도 사랑을 생각하세요? 왜일까요? 아마 당신과의 죽마고우 같은 사랑에 깊이 빠졌기에 나와 헤어졌겠죠.”“쯧쯧쯧, 내가 감히 차설아의 질투를 받다니! 그런데... 안타깝게도 난 그런 능력이 없어요.”서은아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실말을 했다. “도윤 씨가 불쌍해요. 목숨 걸고 지킨 여자가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차설아는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예사롭지 않음을 알아차리고는 침착하게 물었다.“무슨 뜻이에요?”“도윤 씨가 나와 3개월 동안 연애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서씨 집안과 계속 협력하기 위서가 아니에요. 솔직히 도윤 씨는 서씨 가문에서 성씨 가문을 구할지, 심지어 성대 그룹이 파산할 수 있는지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요. 그가 유일하게 신경 쓰는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당신뿐이에요.”서은아는 차설아가 이미 죽어가는 사람이기에 어떤 일은 알아도 상관없을뿐더러 더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어 남김없이 모든 일을 있는 대로 말했다.“나는 3개월 전에 익명으로 된 영상을 받았어요. 이 영상에는 당신이 어떻게 임채원을 살해했는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어요. 이 영상을 경찰에
“하하하. 고맙다고요?”서은아는 머리를 저으며 쌀쌀하게 말했다.“난 선남선녀가 아니에요. 내가 이 사실을 알려준 것은 당신이 얼마나 나쁜 사람이고 또 얼마나 좋은 남자를 놓쳤는지 알려주기 위해서죠... 이 남자는 내 것이에요. 앞으로 내가 그를 돌보고 보호하고 도와줄 거예요!”“그럼 네가 먼저 당신에게 감사를 드려야겠네요. 제발 그를 잘 보살펴주고 보호해주고 도와주세요. 나와 그이는 물과 불처럼, 물고기와 새처럼 어울리지 않아요.”차설아는 진심으로 서은아와 성도윤이 잘 지내기를 바랬다.서은아가 성도윤에 대한 사랑은 자신보다 순수했고 확고했으며 깊었다. 만약 자신이 정말 이 재앙을 피할 수 없다면 성도윤에게는 서은아보다 더 잘 어울리는 여자가 없을 것이다.“흥, 여기서 착한 척할 필요가 없어요. 아무리 공평무사한 척해도 난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 거예요. 난 할 말을 다 했으니 당신들은 서둘러 시작해요!”서은아는 현장에 남아있고 싶지 않아 전반 과정을 촬영할 수 있는 휴대폰만 남겨놓은 채 이 창고를 떠났다.창고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차설아와 혈기왕성한 우람진 남자들만 남게 되었다.앞장선 그 남자는 손가락을 움직이며 차설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동생, 미안해요. 우리도 돈 받고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어요. 우린 변태가 아니기에 이상한 짓거리는 하지 않겠지만 감당할 수 있는지는 너의 능력에 달렸어요.”절망한 차설아는 눈을 감았다.“가능하다면 그냥 나를 죽여줘요.”“그건 안돼요. 서은아 씨가 ‘굴욕스럽게 죽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냥 죽이면 우리도 편해요.”남자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말했다.“그럼 누워서 협조하시겠어요?”“내가 협조하지 않으면요?”“그럼 폭력을 쓰는 수밖에 없어요!”그러자 남자는 금세 안색이 변하며 포악한 몸짓으로 차설아를 향해 덤볐다.차설아는 목만 묶였을 뿐 손발은 움직일 수 있어 죽을힘을 다해 싸우려 했다.찰나, 남자는 심상치 않은 소리를 내며 물었다.“동생, 당, 당신은 민씨 가문의 후손이에요?”차
의심할 바 없이 차설아는 재난을 면했다.그러나 그녀는 서은아에게 보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 여자가 가련하다고 생각했다.이 일은 오빠가 잘못한 것이고 또 서은아에게 빚진 것이니 오빠를 대신해 방법을 대여 보상할 것이다.성도윤에 관해서는... 그녀는 그와 작별인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함께 있지 않더라도 서로 후회하지 말고 나중에 떠올리면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나를 놓아줘요, 잔인한 년! 능력 있으면 나를 놓아봐요!”차설아에 의해 창고 기둥에 묶인 서은아는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으며 몸부림쳤다.“긴장하지 마세요. 나는 너를 잠시 묶어둘 뿐이에요. 내가 하는 일을 마치면 풀어줄 거예요!”차설아는 차분한 어투로 서은아의 정서를 돌보려 했다.“내가 미안한 거 알아요. 당신의 그런 상처를 헛되이 당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악한 년, 능청 부리지 마세요! 날 단칼에 죽이든지 아니면 풀어줘요. 운도 좋게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도망갈 수 있다니 아마 이것이 운명인가 봐요! 나 서은아는 당신에게 패배할 운명이니 망설이지 말고 서둘러 손을 써요! “차설아는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믿거나 말거나 난 당신을 해칠 생각이 없어요. 아까 내가 말한 것처럼 당신이 도윤 씨에게 대한 사랑은 나보다 더 깊고 확고하니 난 당신이 앞으로 나 대신 그를 돌보고 아껴주고 도와주길 바래요. 앞으로 난 그이와 더는 아무런 연결이 없을 거예요!”“능청 떨지 마세요! 내가 모를 줄 알아요? 또 도윤이를 꼬시려고 하는 짓이죠? 아쉽게도... 그는 절대로 널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이미 너를 죽도록 미워하니 찾아간다 해도 헛수고일 뿐이예요!”서은아는 차설아와 성도윤이 다시 사랑에 빠질까 봐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만약 이 두사람이 재결합할 수 있다면 더는 서은아가 좋아하는 그 성도윤이 아닐 것이다.한 남자가 이토록 미천하다는 것은 길가의 개와 뭐가 다를까?“생각대로 하세요!”차설아는 서은아와 더는 말하지 않았고 백매의단 사람
“아직 졸리지 않으니 저를 상관하지 말고 먼저 주무세요.”성도윤은 전혀 화를 내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혼자서 찬 바람을 쐬는 게 무슨 재미가 있어? 방으로 돌아가. 안은 좀 따뜻해.”“혼자 있고 싶어.”“하지만 도윤아...”소영금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그 여자한테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 못 잊은 건 아니겠지?”“...”“바보 같은 우리 아들, 난 네 엄마인데 내가 널 모를 수 있겠어? 넌 그렇게 훌륭하고 뭐든 만점인데 왜 사랑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하는 거야. 그 여자만 아니었다면 네 인생은 순탄했을 거고 너도 전혀 고생도 하지 않았을 텐데. 너도...”“엄마, 제가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잖아요.”성도윤의 목소리는 점점 분노가 쌓였고 그는 긴 손가락을 살짝 조였다.“그래. 알았어. 엄마가 그만할게. 필요한 게 있으면 벨을 눌러.”소영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며 말없이 뒷마당을 떠났다.차설아는 구석에 잘 숨어있었기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그녀는 돌기둥 뒤에 숨어서 한참이나 성도윤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도윤 씨, 정말 살이 많이 빠졌네. 이 정도로 약했어? 단지 뱀에게 물렸을 뿐인데 왜 이렇게 풀이 죽어있는 거야? 정신 차리라고. 한밤중에 잠도 안 자고 왜 슬퍼하고 있는 거야. 분명히 말하는데 난 작별 인사를 하러 왔어. 도윤 씨가 목숨이 위태로울 때, 난 하느님과 거래했어. 도윤 씨가 살 수만 있다면 난 평생 당신에게 다가가지 않고 매달리지 않겠다고 했지. 도윤 씨가 날 미워하고 싶다면 마음껏 미워해도 돼. 날 사랑하는 것보다 날 미워하는 게 더 행복할 거야...”“앞으로 도윤 씨는 서은아 씨와 함께 행복하게 살면 돼. 은아 씨는 당신을 정말 사랑해. 당신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큰 모욕을 당했어. 은아 씨가 했던 희생은 나도 할 수 없었어. 당신이 그녀와 함께 있으면 나와 함께 있을 때보다 훨씬 행복하고 편할 거야...”차설아는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줄곧 중얼댔
성도윤이 그런 말을 하자 차설아는 자기 생각을 확신했다.‘도윤 씨는... 정말 실명했어.’차설아는 성도윤의 바로 앞에 서 있는 데도 전혀 알지 못했다.“말을 안 하는 것을 보니 은아가 맞네.”성도윤은 별다른 생각 없이 옆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오늘 밤 달빛이 좋을 것 같아. 밤바람도 살살 불고 있으니 말이야. 내 옆에 있어 줘.”“알았어.”차설아는 서은아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나지막이 대답했다.성도윤은 아무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에서 어머니와 서은아 외에 다른 사람이 쉽게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기에 그는 당연히 다른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차설아는 그가 손으로 뭔가를 더듬는 것을 보고 아마 커피를 찾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얼른 커피잔을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두 사람의 손가락이 잠시 닿았다.성도윤은 먹물처럼 짙은 눈썹을 찡그리며 무언가를 발견한 듯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두 사람은 그렇게 조용히 앉아 있었고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성도윤은 말하기 싫었고 차설아는 감히 말할 수 없었다.밤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꽃향기가 그윽했다. 오히려 말할 수 없는 낭만이 흘렀다.한침이 지나서야 성도윤이 입을 열었다.“은아야, 그래도 네가 옆에 있으니 참 좋아. 엄마처럼 그렇게 시끄럽지도 않고 내가 이런 핸드드립 커피를 제일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으니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난 예전에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어. 특히 밤에 커피를 마시면 그날 밤은 도저히 잘 수가 없었지. 하지만 내 전처는 커피를 너무 좋아했어. 어디서 커피콩과 커피 머신을 사 왔는지도 모르겠어. 게다가 그녀는 어떻게 커피콩을 그렇게 곱게 갈았는지도 몰라. 아무튼 그녀가 타 준 커피는 특별한 매력이 있어서 한 모금 마시면 중독이 되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생겼어.”“그랬구나.”차설아는 계속하여 서은아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얼버무리며 대답했다.차설아는 성도윤이 자기가 탄 커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 그게...”배경윤은 입술을 깨물면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배경윤은 사도현을 아직도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감정이 드는지도 몰랐다.‘내가 아직 좋아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설레는 순간은 있었어.’배경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매일 마음을 졸여야 하는 사도현보다 잔잔한 물결 같은 진찬영이 더 좋았다. 진찬영은 다정하고 친절해서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진찬영과 진지하게 만나서 결혼할 생각도 있었다.만약 이 프로그램을 통해 두 사람이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면 그대로 진찬영한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었다.사도현은 빛이 나는 태양이라 열정적이고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치는 건 결국 배경윤이었다.진찬영은 차가워 보이지만 어둠으로 모든 것을 품어주는 달이었다. 달을 바라보고 가까이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도현아, 사실 나는...”배경윤은 심호흡하고는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데 사도현은 이미 대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배경윤의 입을 막아버렸다.“읍!”배경윤은 또다시 사도현과 입을 맞추게 될 줄 몰랐다. 요트 위에서 나눴던 키스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부드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입맞춤이었다.가볍게 부딪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사도현은 두려워했고 비굴하게 보이더라도 배경윤한테 떠나지 말라고 빌고 싶었다.화가 나서 밀치려고 했던 배경윤은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쳐다보다가 더 가까이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이 세상에 불쌍하고 가엾은 강아지 같은 남자를 마다할 여자는 없을 거야. 그저 불쌍해 보여서 어쩔 수 없었어.’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사랑을 퍼부었다. 몸이 달아올라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너의 대답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아. 네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사도현은 배경윤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도현아, 혹시 아까 그것도 작정하고 그런 거야?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 나는 네가 미워!”배경윤의
당장이라도 별이 쏟아질 것처럼 몽환적인 순간이었다. 배경윤은 사도현의 어깨에 기대고는 조용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알 수 없는 기류가 흘렀고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별을 볼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 몇 년 전에 보고 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었는데 말이야...”배경윤은 제일 빛나는 별 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슬픔이 가득 묻어나는 눈으로 사도현을 바라보았다.“마지막으로 별을 본 건 대학교 시절에 나, 우리 오빠와, 설아까지 셋이 외국에 여행 갔을 때야. 높은 산과 낮은 산 사이에 있는 구역에 차를 세우고 텐트를 쳤어. 밤만 되면 두 설산 사이로 반짝이는 별들이 얼마나 예뻤는지... 그 별을 따라 가면 이 은하의 끝에 닿을 것만 같아서 손을 뻗어보기도 했어.”“네 말을 들으니까 상상이 돼.”사도현은 아름다운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원지대에서 보는 별을 사뭇 다르다고 들었기에 늘 가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바삐 돌아치는 바람에 가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배경윤의 말을 들은 사도현은 마치 고원지대에 간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그때의 우리는 걱정할 것도 없이 행복하게 지냈어. 시간이 나면 운전해서 바람 쐬러 갔고 등산도 자주 갔었어. 바다를 많이 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지. 별들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제 자리를 잘 지키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변했을까?”배경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행복했던 대학 시절을 돌이켜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도현은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평소에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긍정적인 여자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진지하고 우울한 면이 있었네?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었어.”배경윤은 사도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별똥별이 한 획을 긋고 떨어지는 것처럼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너는 모든 사람이 너처럼 겉만 화려하고 속은 텅 빈 줄 알아? 사람은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는 말도 모르냐고!”“공주님이 웬일로 울고 있어? 그렇게 슬
“응. 보고 싶어. 그게 어딘데?”배경윤은 진지한 표정을 한 사도현을 바라보았고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그래서 겨우 진정하고 태연하게 물었다.“그럼 나랑 같이 가볼래?”사도현은 배경윤한테 손을 내밀면서 부드럽게 물었다.“이 시간 때에 가야 볼 수 있어. 너만 괜찮다면 같이 가고 싶어. 네가 싫다면 강요하지 않을게.”배경윤은 사도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가자! 혼자서 심심했었어.”“나의 공주님한테는 최고의 선물이 될 거야.”사도현은 눈이 휘어지게 웃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자신만의 아지트로 달려갔다.두 사람이 멀어진 뒤로 배경윤이 처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날이었다.사도현은 자신이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준 모습에 배경윤이 감동했을 것이라고 여겼다.몇 분 후, 두 사람은 섬의 다른 한 끝에 도착했다. 그곳은 사도현이 지내는 초가집이었고 마당에서 게스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모여 앉아 해산물을 구워 먹고 기타를 쳤다. 남성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 사이에 핑크빛 기류가 흘렀고 분위기가 한층 더 무르익어갔다.“설마 제일 예쁜 풍경이 저 사람들이 해산물을 구워 먹는 모습은 아니겠지?”배경윤은 멀리서부터 한곳에 모여 놀고 있는 게스트들을 발견했다. 사도현한테 속은 것 같아서 화가 솟구쳐 올랐고 배신감이 들었다.‘이럴 줄 알았어. 진지한 척만 하고 항상 나를 놀리고 싶어 했지. 내가 또 속을 줄 알아?’“그쪽 말고 여기로 가자.”사도현은 배경윤을 데리고 아무도 모르게 뒷문으로 초가집 안에 들어갔다. 배경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사도현을 노려보았다.“고작 초가집을 보여주려고 데리고 온 거야? 그럴 바에는 나가서 다른 사람들이랑 노는 게 낫겠어. 너는 왜 항상 나를 놀리는 건데?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지할 수는 없어?”“잠깐만 기다려 줘. 곧 보게 될 거야.”사도현은 배경윤의 두 눈을 손으로 가리고 불을 껐다.“사도현,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또 허튼수작을 부렸다가는 소리 질러서 너를
[재벌가 도련님과 암컷 돼지의 은밀한 관계!][사도현의 정신 상태 우려스러워...]사도현의 부드러운 노랫소리 덕분에 암컷 돼지는 첫 번째 새끼 돼지를 순리롭게 낳았다.“드디어 아기를 낳았어! 돼지야, 너는 정말 멋진 엄마야. 다른 아기도 힘내서 낳자!”사도현은 새끼 돼지 몸을 수건으로 닦아주고는 낡은 옷에 감싸안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마음이 뭉클했다.예전부터 사도현은 딩크족이었다. 아이는 그저 악마 같은 존재일 뿐, 절대 가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갓 태어난 새끼 돼지를 보면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경윤이랑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거야. 경윤이를 닮은 아이면 얼마나 예쁠까?’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출산이 마무리되었다. 다섯 마리의 암컷 돼지는 순리롭게 몇십 마리의 새끼 돼지를 낳았고 장은학은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사도현이 빨리 달리고 용기를 낸 덕분에 다른 게스트를 제치고 먼저 1000점을 획득했다. 장은학은 마을 이장과 함께 꽃다발을 건넸고 ‘돼지 출산 전문가’라는 글이 적힌 상장도 주었다.사도현의 하얀 셔츠가 더럽혀졌지만 꽃다발과 상장을 안고 있으니 무척 행복했다.사도현은 배경윤 쪽으로 다가가서 환하게 웃더니 상장을 보여주면서 말했다.“경윤아, 내가 결국 해냈어. 네가 후회할 날이 올 거라고 내가 말했었지? 이제는 그렇게 여유롭지 못할 거야. 기대해도 좋아.”배경윤은 싱글벙글 웃는 사도현을 바라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고 슬며시 엄지를 내밀었다.“네가 진짜 해낼 줄은 몰랐어. 진짜 대단해.”날이 어두워지자 사도현은 게스트들을 불러 해산물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게스트들은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도현은 사람을 시켜 진찬영이 파티에 참가하지 못하고 업무 전화만 받게 했다.사도현은 배경윤이 지내는 숙소로 걸어갔다.배경윤은 해산물 바비큐 파티에 참가하지 않고 혼자 별장의 베란다에 기대 넓은 바다를 내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날이 어두워
암컷 돼지들은 괴로워하면서 소리를 질렀고 허공에 대고 발길질했다. 그러면서 몸에 붙어있던 배설물이 사방으로 튀어서 접근하기 어려웠다.사도현은 토하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고 천천히 다가갔다.“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 봐! 난산이어서 이러다가 죽을지도 몰라.”장은학은 급한 마음에 목청을 높여 말했다.“확실히 할 줄 아는 사람 맞아? 할 줄 모르면 당장 나와. 자네 말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어.”“잠시만요. 제가 할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사도현은 코를 막고 겨우 말했다.‘이 세상에 내가 해내지 못하는 일은 없어. 고작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는 걸로 겁먹지 말자. 나는 할 수 있어.’고민하던 사도현은 휴대폰을 꺼내 암컷 돼지의 출산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첫째, 산후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깨끗한 출산 공간을 만들어주고 괴망간산칼륨으로 암컷 돼지의 온몸을 한 번 닦는다.][둘째, 가위를 소독하고 새끼 돼지의 탯줄을 자른다.][셋째, 낡은 수건이거나 옷으로 새끼 돼지의 몸을 닦아주고 감싸안는다.][그리고 출산 과정에서 암컷 돼지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부드러운 말투로 다독이거나 노래를 불러서 암컷 돼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암컷 돼지의 출산 절차를 보고 난 사도현은 당장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재벌가 도련님, 유명한 회사의 대표가 이제는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어야 했기 때문이다.황당한 일이 연속 벌어지니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사도현 씨, 할 수 있는 거 맞아요? 못 하겠으면 빨리 나오세요. 대학교 때 배웠던 적이 있어서 제가 더 잘할 것 같거든요.”하늘은 돼지우리 밖에서 목을 빼 들고 말했다. 하늘은 사도현 다음으로 제일 초라한 별장을 선택한 사람이었기에 별장을 바꾸고 싶었다.“할 수 있으니 들어오지 마세요. 이건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사도현은 심호흡하고는 가만히 누워있는 암컷 돼지를 괴망간산칼륨으로 닦아주었다.암컷 돼지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면서 버둥거렸
암컷 돼지가 새끼 돼지를 낳는 것을 도와주면 1000점을 얻을 수 있었다. 사도현이 그 점수를 얻게 되면 다른 참가자의 별장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것이다.그때가 되면 사도현은 배경윤이 선택한 바다 별장을 빼앗을 것이고 배경윤이 어떤 반응일지 몹시 궁금했다.사도현은 제일 빠른 속도로 달려 마을 안쪽에 있는 장은학의 집에 도착했다. 장은학은 국가의 정책에 따라 도움을 받을 정도로 아주 가난했다.집에서 암컷 돼지를 다섯 마리 기르면서 돈을 벌려고 했다. 장은학이 정성스럽게 보살핀 덕분에 암컷 돼지들은 출산을 앞두게 되었다. 하지만 장은학이 까막눈이라서 어떻게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야 할지 몰랐다. 그때 > 제작진이 이 섬에 오게 되었고 장윤태는 장은학을 만나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은 장윤태는 무르팍을 치면서 무척 좋아했다.“그럼 게스트들이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면 되겠어. 새끼 돼지가 태어난다는 건 새 생명을 맞이한다는 거잖아. 남성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가 같이 출산을 도와주면 기묘한 분위기가 이루어질 거야.”이때 제작진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장 감독님, 출산을 도와주는데 어떻게 기묘한 분위기가 생긴단 말이에요?”제작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윤태는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는 일에 높은 점수를 걸었다. 이 에피소드는 시청률을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암컷 돼지의 출산 장면이 나가기도 전에 이미 시청률은 정상을 찍고 있었다.사도현과 배경윤의 키스 장면 덕분이었다. 장윤태는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을 하고 말했다.“괜찮아. 암컷 돼지의 출산 장면은 이 프로그램의 두 번째 하이라이트가 될 거야.”장은학은 돼지우리 앞에 서서 미간을 찌푸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사도현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다가가서 말했다.“자네가 바로 출산을 도와주러 온 사람인가?”“저, 저는...”사도현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비록 제일 일찍 도착했지만 암컷 돼지의 출산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웃기지 마!”배경윤은 사도현을 밀어내고는 목청을 높였다.“너는 어쩌면 날이 갈수록 뻔뻔해지는 거야? 내가 선택한 바다 별장에 너 같은 사람은 절대 들어올 수 없어. 미안하지만 나가줄래? 앞으로 내 집에 들어오지 말아줘.”배경윤은 사도현이 어떤 남자인지 잘 알고 있었다. 미쳐 돌아서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 수위 높은 행각을 벌이려고 든다면 감당할 수 없었다.지금으로서 제일 좋은 방법은 사도현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그러면 사도현의 음험한 계획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조각 같은 사도현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피어올랐다.“경윤아, 지금 네가 한 말 후회하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나한테 울면서 빌어도 소용없어.”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게스트들이 일부러 두 사람을 놀려댔다.“유명한 회사 대표가 경윤 씨만 바라보고 직진하는데 왜 자꾸 내빼는 거예요? 솔직히 마음 있잖아요.”“프로그램의 이름을 >이 아니라 >이라고 바꾸는 게 낫겠어요.”“사도현 씨, 경윤 씨가 지내는 별장에 들어오세요. 어차피 곧 가족이 될 사람들인데 초가집에 살든, 별장에 살든 상관없잖아요.”배경윤은 미간을 매만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여러분, 놀리는 것도 적당히 하세요. 사도현은 시한폭탄 같은 존재예요. 요트에서 저를 제압하고 그런 짓을 했으니 여성 참가자를 쉽게 보고 함부로 대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저랑 같은 편에 서서 사도현과 맞서 싸워야 하는 거 아닌가요?”“그런 사람이라서 더 무섭다는 말이에요.”소수민은 웃음을 겨우 참으면서 사도현을 힐끔 쳐다보았다.“저는 차라리 사도현 님처럼 완벽한 남자가 다가와 주길 바랐어요. 그런데 이미 마음은 정해진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죠. 유빈 씨, 이나 씨. 제 말이 맞죠?”장유빈과 양이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사도현 씨처럼 멋진 남자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기회가 왔을 때 잡으세요.”명문대 학생 장유빈은 사도현을 지그시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차갑기
소수민이 숙소를 선착순으로 정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올림픽 금메달 선수 하늘과 더 얘기하지 않고 재빨리 달려갔을 것이다.“장 감독님이라면 그럴 줄 알았거든요. 장 감독님이 촬영한 예능을 보면서 어떤 스타일인지 알게 되었어요. 혹시나 해서 먼저 뛰었더니 진짜 선착순이더라고요.”“아까 경윤 씨가 사도현 씨랑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부러웠는지 알아요? 게다가 바다가 보이는 별장까지 선택했으니 정말 모든 걸 다 가졌네요.”소수민은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수민 씨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요? 저랑 사도현을 보고 있었나요?”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배경윤은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실시간 방송이라 진작에 소문이 났는걸요. 두 사람이 키스하는 장면을 네티즌이 편집해서 올린 모양인데 그게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어요.”“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어! 망신당했으니 어쩌면 좋아.”배경윤은 바다를 쳐다보면서 소리를 질렀고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영상이 퍼졌다는 건, 진찬영도 그 영상을 보게 되었다는 뜻이다.‘사도현, 너 일부러 그런 거지? 나랑 찬영 오빠를 갈라놓으려는 수작이잖아.’배경윤은 저 멀리서 진찬영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진찬영의 두 눈은 오로지 배경윤을 향해 있었다.“찬, 찬영 오빠...”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발끝만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 모습은 바람이 난 아내가 남편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경윤 씨는 운이 참 좋은 것 같아요. 그전에 나한테 얘기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별장이네요. 바다를 마주 보고 있고 날씨가 따뜻하잖아요.”진찬영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네. 정말 좋아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물었다.“찬영 오빠는 어디에서 지내요?”“아주 운 좋게도 경윤 씨랑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내게 되었어요. 경윤 씨만 괜찮다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식사해요. 이래 보여도 요리 하나는 자신 있거든요.”“저야 너
배경윤은 제일 빨리 달려갔고 여섯 채의 별장 중에서 가장 근사한 별장을 선택했다.반대로 사도현은 느긋하게 걸어서 마지막으로 남은 별장을 선택했다. 별장이라 하기에는 한없이 누추한 초가집이었고 지붕도 없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지낸단 말이에요? 다른 집으로 안내해 주세요.”사도현은 재벌가 도련님으로서 어릴 적부터 큰집에서 자랐다. 그런데 갑자기 초가집에서 지내라니 기가 찼다.“사도현 씨, 정말 죄송하지만 이곳의 규칙을 준수해야 해요. 숙소는 선착순으로 결정되지만 합산 점수가 가장 높은 참가자에게는 숙소를 바꿀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요. 며칠 동안 힘내서 점수를 얻으세요.”사회자 최빈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도현은 윈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지만 연애 프로그램에 참가했으면 규칙을 잘 준수해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시청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숙소를 바꿀 수 있다고요?”사도현은 턱을 매만지더니 씩 웃으면서 물었다.“어떻게 하면 점수를 얻을 수 있어요?”“밭일을 하거나 가축에게 먹이를 주면 돼요. 바닥에 널린 소똥과 개똥을 치워도 되고요. 아무튼 이곳은 할 일이 아주 많으니 일을 찾아서 하면 점수를 드려요.”그러자 사도현의 표정이 삽시에 굳었다.“연애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을 부려 먹는 프로그램 아니에요? 자꾸 힘든 일만 하라고 부추기는 것 같아요.”최빈은 어색하게 웃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시다시피 장윤태 감독님이 >을 찍은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사랑을 찾으러 온 이곳에서 직접 일하면서 성취감도 느끼고 호감을 느끼는 상대의 마음을 얻으라는 취지라고 했어요.“하! 소똥이나 주우면서 매력을 발산하라는 말이네요? 궂은일만 하는데 어떻게 로맨틱한 분위기가 이루어지겠어요. 감독님도 참 대단해요.”사도현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그러고는 주먹을 꽉 쥔 채 말했다.“합산 점수가 제일 높으면 된다는 뜻이죠? 내가 이런 승부욕은 또 있거든요. 다른 남성 참가자한테 뒤처지지 않을 거예요.”사도현은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