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는 주차장으로 향했고 걸을수록 머리가 핑핑 돌고 발걸음이 무거워졌다.“자, 배우들, Standby, action!”뒤에서 감독이 슬레이트 치는 소리가 들렸다.윤설은 휴식처를 떠나 벼랑 끝에 선 채 촬영을 시작했다.이때 긴 생머리에 흰 치마를 입은 윤설을 보니 마치 3개월 전에 그녀의 실수로 절벽 아래로 떠밀어 보낸 임채원을 보는 것 같았다.윤설과 임채원의 얼굴이 하나로 어우러졌고 스태프 사이를 지나 그녀를 보며 음산하게 웃는 것 같았다. 웃다가 입가와 눈가에서 피를 흘린다...“아, 싫어, 오지 마!”차설아는 눈앞이 하얘지며 쓰러지고 말았다.얼마나 지났는지, 살아 있는지 아니면 죽었는지도 몰랐다. 이때 차가운 물 한 대야가 자신의 얼굴에 쏟아졌다.그녀가 눈을 번쩍 떠보니 자신은 어둡고 축축한 작은 창고에 누워 있었고, 목은 개처럼 쇠사슬에 묶여 시뻘건 자국이 났다.“악한 년, 드디어 깼구나!”창고의 높은 곳에서 쌀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차설아의 시선에 나타난 소영금, 그 옆에는 독사처럼 짙은 원한을 품은 서은아가 서 있었다.“영금 이모, 이 악한 년이 깨어났으니 본때를 보여줘요!”서은아는 소영금을 꼬드겼고 차설아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그녀는 자신이 그 남자들에 의해 땅에 엎드려 굴욕을 받은 고통을 잊을 수 없었고, 차설아가 장본인인 차상철의 동생으로서 가장 먼저 응보를 받게 하려 했다.소영금은 두 손으로 난간을 잡고는 매서로운 눈빛으로 바닥에 쓰러진 차설아를 째려보았다. 눈썹을 찡그린 채 목소리는 실망에 가득 찼다.“차설아, 무슨 할 말이 있어?”그녀가 차설아에 대한 감정은 복잡했다.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다가 나중에는 볼수록 맘에 들었지만, 이제는 한이 뼛속까지 사무쳐 더는 접수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깊이 사랑하는 여인이 이렇게 독할 수 있다니 믿기 어려웠다.그래서 이미 ‘확증’된 증거가 있더라고 전환될 가능성이 있기를 바랬다.적어도 차설아가 직접 그녀의 죄악을 고백하는 것을 듣고서야 단념하려 했다.차설아는
"…"소영금은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차설아의 머리는 예전과 다름없이 똑똑했고 그녀도 이런 차설아를 마음에 들어 했다.“허허. 남을 탓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탓해. 백설의 억울한 연기에 마비되었어? 역시백설은 연기대상 수상자로서 연기력이 끝내주는군.”차설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쓴웃음을 지었고, 감탄한 듯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그러니 네가 지은 죄를 다 인정했다는 말이니?”소영금은 두 손으로 난간을 꽉 잡은 채 연신 몸을 떨며 물었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어요?”고개를 들어 높이 서 있는 소영금을 바라보는 차설아의 눈빛은 한결같이 날카로웠다.“네가 보기엔? 도윤과 은아가 너의 변태 오라버니 때문에 망가졌어. 넌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어?”“나를 모욕하는 것은 그나마 참아주겠지만 오빠를 욕해서는 안 돼요. 내가 성도윤 씨를 함정으로 끓어드렸기에 그 결과에 대해서는 나 홀로 감당할 겁니다.”오빠의 성질로는 성도윤과 서은아에게 과분한 짓을 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만약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해 반드시 설명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녀는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차설아에게는 오빠가 한 분밖에 없었다.“좋아!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억지 부리는 것을 보니 조금도 고칠 기색이 없군!”소영금은 차설아의 강인한 태도에 화가 나 몸을 떨며 하마터면 등을 돌릴 뻔했다.“모두 나의 잘못이야. 내가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를 착한 아이로 생각하여 딸처럼 여겼어. 도윤에게도 천하를 저버려도 널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지만 인제 보니... 넌 피도 마음도 차가운 독사야! 전혀 따뜻해지지 않아!”“영금 이모,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마세요. 이 년이 꾀가 많아서 도망이라도 가면 더 힘들어져요. 빨리... 빨리 시작하셔야죠!”서은아는 무슨 변수가 있을까 봐 두려워 소영금더러 조속히 차설아를 수습하라고 재촉했다.어쨌든 성도윤은 이 일을 전혀 몰랐고, 만약 그가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이 여자에게 마음이 약해질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다시 일어
차설아는 얼굴에 두려운 기색도 없이 웃으며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천한 년, 죽음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웃음이 나오다니!”서은아는 화를 참지 못하고 차설아의 뺨을 때리며 물었다.“뭐가 웃겨요? 하나도 무섭지 않나봐요?”차설아의 하얀 얼굴에는 즉시 다섯 손가락의 선명한 지문이 나타났고 입가에는 핏발이 섰다. 그녀는 몹시 아파했지만, 미간도 찡그리지 않았고 도리어 더욱 무정하게 웃었다.“하하하, 당신이 우습게 생각되어 웃은 것 뿐이죠. 죽음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으스대고 있으니 우습지 않겠어요?”“너, 무슨 뜻이죠? 말짱한 사람에게 감히 죽음이 임박했다고 저주하는 거예요?”서은아는 원래 안절부절못했는데 차설아의 말을 듣고 마음이 더욱 약해졌다. 그녀는 다시 뺨을 때리려 했지만, 반응이 빠른 차설아는 그녀를 발로 걷어차며 멀리 내던졌다.으악!서은아는 흉악한 모습으로 배를 움켜쥐고 있었는데 오장육부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차설아를 가리키며 말을 잇지 못했다.“너, 너...”“서은아, 난 당신과 원한이 없기에 남자를 위해 나를 죽일 필요가 없어요. 내가 만약 일이 생긴다면 오빠는 제일 먼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나의 친구인 배경윤과 배경수도 대가를 치르더라도 널 산산조각낼 거고요! 이것이 죽음이 임박한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요?”차설아는 고통스러워하는 서은아를 차갑게 쏘아보았다. 비록 개처럼 목에 쇠사슬이 묶여있었지만 그 차갑고 패기 있는 분위기는 오히려 섬뜩함을 자아냈다.서은아는 뒷걸음질 치며 차설아가 그녀를 해치지 못하게 물러난 후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예전의 우리는 아무런 원한도 없었어요. 비록 나와 연적이지만 난 너를 죽일 생각이 없었어요. 그러나 그날 밤 후로 나는 너와 함께 죽더라도 꼭 지옥에 보낼거라고 담짐했어요.”“아니, 날 죽일 수 없어요.”차설아는 자신 있게 말했다.“나의 목숨을 살려두라고 소영금이 경고했어요!”“소영금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 당신을 나에게 맡긴 거예요! 즉 네가 죽든 말든 내
“다 말했잖아요, 이 지경에 이르면 더는 시치미를 뗄 필요가 없어요. 당신이 아무리 무고한 척해도 난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내가 받은 상처는 평생 회복할 수 없으니 당신이 수백 배 더 큰 고통을 받아야 만 내 마음이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서은아는 말을 마친 후 손뼉을 치더니 고개를 기울이며 입구를 향해 말했다.“들어오셔도 돼요.”말이 끝나기도 바쁘게 일렬로 늘어선 남자들이 들어섰는데 족히 백 명은 되었다.통일된 옷을 입은 이들은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눈빛이 매서워 해안 시 사람 같지 않았다.“뭐 하는 짓이야?”차설아는 쌀쌀하게 물었다.“당신처럼 똑똑한 사람이 어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를 수 있겠어요?”서은아는 옆에 있는 키가 큰 남자를 만지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이 사람들은 내가 특별히 외진 농촌에서 찾아온 사나이예요. 모두 튼튼하고 건장하니 당신을 편안하게 모실 수 있어 지옥에 가더라도 만족스러워 할 거예요... 보세요, 나 친절하죠?”“서은아 씨, 당신이 믿든 안 믿든 난 당신이 겪은 그 일들을 전혀 몰라요. 난 그저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어요.”차설아는 두려움이 없었으나 미안해했다.그녀는 오빠가 피바람을 맞으며 일을 할 때 항상 잔인하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지경까지 잔인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서은아처럼 교만한 아가씨에게는 이런 불행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서은아가 이렇게 자신을 미워하며, 이렇게 앙갚음하려고 애쓰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허허, 미안?”서은아는 차갑게 웃었다.“이제야 미안하다고 하는 게 의미가 있어요? 정말 몰랐다고 해도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당신 오빠가 뿌린 죗값은 여동생이 책임져야 해요.”“당신 말이 맞아요. 나는 미안하다고 말할 자격도 없어요. 보복하고 싶으면 시작하세요.”차설아는 눈을 감으며 죽음을 기다렸다.역시 인과보응이 있는 것처럼 원인이 있는 만큼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마치 그녀가 실수로 임채아를 절벽에서 밀어뜨린
“잠깐만!”서은아는 갑자기 그 남자를 불러세운 뒤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이렇게 멋진 장면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 모든 사람이 반복해서 볼 수 있도록 해야 죠.”“서은아 씨, 당신의 불행한 처지를 동정하지만, 당신은 호락호락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독하네요. 탄복해요!”차설아는 더는 발버둥 치지 않고 하늘의 뜻을 따르려 했다.두렵지는 않았으나 유감이 많았다. 많은 일을 말하지 못한 채 이렇게 헛되이 죽게 되니 아마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네 모습을 보니 여전히 내키지 않아 하니 내가 다른 일도 알려줄게요.”서은아는 카메라로 초라한 차설아의 모습을 찍으면서 차분하게 말했다.“도윤 씨가 왜 당신이랑 사랑하면서 갑자기 헤어지고는 나와 함께 있었는지 아세요?”차설아는 쌀쌀하게 웃으며 불쌍한 눈빛으로 서은아를 바라보았다.“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이 순간에도 사랑을 생각하세요? 왜일까요? 아마 당신과의 죽마고우 같은 사랑에 깊이 빠졌기에 나와 헤어졌겠죠.”“쯧쯧쯧, 내가 감히 차설아의 질투를 받다니! 그런데... 안타깝게도 난 그런 능력이 없어요.”서은아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실말을 했다. “도윤 씨가 불쌍해요. 목숨 걸고 지킨 여자가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차설아는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예사롭지 않음을 알아차리고는 침착하게 물었다.“무슨 뜻이에요?”“도윤 씨가 나와 3개월 동안 연애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서씨 집안과 계속 협력하기 위서가 아니에요. 솔직히 도윤 씨는 서씨 가문에서 성씨 가문을 구할지, 심지어 성대 그룹이 파산할 수 있는지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요. 그가 유일하게 신경 쓰는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당신뿐이에요.”서은아는 차설아가 이미 죽어가는 사람이기에 어떤 일은 알아도 상관없을뿐더러 더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어 남김없이 모든 일을 있는 대로 말했다.“나는 3개월 전에 익명으로 된 영상을 받았어요. 이 영상에는 당신이 어떻게 임채원을 살해했는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어요. 이 영상을 경찰에
“하하하. 고맙다고요?”서은아는 머리를 저으며 쌀쌀하게 말했다.“난 선남선녀가 아니에요. 내가 이 사실을 알려준 것은 당신이 얼마나 나쁜 사람이고 또 얼마나 좋은 남자를 놓쳤는지 알려주기 위해서죠... 이 남자는 내 것이에요. 앞으로 내가 그를 돌보고 보호하고 도와줄 거예요!”“그럼 네가 먼저 당신에게 감사를 드려야겠네요. 제발 그를 잘 보살펴주고 보호해주고 도와주세요. 나와 그이는 물과 불처럼, 물고기와 새처럼 어울리지 않아요.”차설아는 진심으로 서은아와 성도윤이 잘 지내기를 바랬다.서은아가 성도윤에 대한 사랑은 자신보다 순수했고 확고했으며 깊었다. 만약 자신이 정말 이 재앙을 피할 수 없다면 성도윤에게는 서은아보다 더 잘 어울리는 여자가 없을 것이다.“흥, 여기서 착한 척할 필요가 없어요. 아무리 공평무사한 척해도 난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 거예요. 난 할 말을 다 했으니 당신들은 서둘러 시작해요!”서은아는 현장에 남아있고 싶지 않아 전반 과정을 촬영할 수 있는 휴대폰만 남겨놓은 채 이 창고를 떠났다.창고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차설아와 혈기왕성한 우람진 남자들만 남게 되었다.앞장선 그 남자는 손가락을 움직이며 차설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동생, 미안해요. 우리도 돈 받고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어요. 우린 변태가 아니기에 이상한 짓거리는 하지 않겠지만 감당할 수 있는지는 너의 능력에 달렸어요.”절망한 차설아는 눈을 감았다.“가능하다면 그냥 나를 죽여줘요.”“그건 안돼요. 서은아 씨가 ‘굴욕스럽게 죽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냥 죽이면 우리도 편해요.”남자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말했다.“그럼 누워서 협조하시겠어요?”“내가 협조하지 않으면요?”“그럼 폭력을 쓰는 수밖에 없어요!”그러자 남자는 금세 안색이 변하며 포악한 몸짓으로 차설아를 향해 덤볐다.차설아는 목만 묶였을 뿐 손발은 움직일 수 있어 죽을힘을 다해 싸우려 했다.찰나, 남자는 심상치 않은 소리를 내며 물었다.“동생, 당, 당신은 민씨 가문의 후손이에요?”차
의심할 바 없이 차설아는 재난을 면했다.그러나 그녀는 서은아에게 보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 여자가 가련하다고 생각했다.이 일은 오빠가 잘못한 것이고 또 서은아에게 빚진 것이니 오빠를 대신해 방법을 대여 보상할 것이다.성도윤에 관해서는... 그녀는 그와 작별인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함께 있지 않더라도 서로 후회하지 말고 나중에 떠올리면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나를 놓아줘요, 잔인한 년! 능력 있으면 나를 놓아봐요!”차설아에 의해 창고 기둥에 묶인 서은아는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으며 몸부림쳤다.“긴장하지 마세요. 나는 너를 잠시 묶어둘 뿐이에요. 내가 하는 일을 마치면 풀어줄 거예요!”차설아는 차분한 어투로 서은아의 정서를 돌보려 했다.“내가 미안한 거 알아요. 당신의 그런 상처를 헛되이 당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악한 년, 능청 부리지 마세요! 날 단칼에 죽이든지 아니면 풀어줘요. 운도 좋게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도망갈 수 있다니 아마 이것이 운명인가 봐요! 나 서은아는 당신에게 패배할 운명이니 망설이지 말고 서둘러 손을 써요! “차설아는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믿거나 말거나 난 당신을 해칠 생각이 없어요. 아까 내가 말한 것처럼 당신이 도윤 씨에게 대한 사랑은 나보다 더 깊고 확고하니 난 당신이 앞으로 나 대신 그를 돌보고 아껴주고 도와주길 바래요. 앞으로 난 그이와 더는 아무런 연결이 없을 거예요!”“능청 떨지 마세요! 내가 모를 줄 알아요? 또 도윤이를 꼬시려고 하는 짓이죠? 아쉽게도... 그는 절대로 널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이미 너를 죽도록 미워하니 찾아간다 해도 헛수고일 뿐이예요!”서은아는 차설아와 성도윤이 다시 사랑에 빠질까 봐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만약 이 두사람이 재결합할 수 있다면 더는 서은아가 좋아하는 그 성도윤이 아닐 것이다.한 남자가 이토록 미천하다는 것은 길가의 개와 뭐가 다를까?“생각대로 하세요!”차설아는 서은아와 더는 말하지 않았고 백매의단 사람
“아직 졸리지 않으니 저를 상관하지 말고 먼저 주무세요.”성도윤은 전혀 화를 내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혼자서 찬 바람을 쐬는 게 무슨 재미가 있어? 방으로 돌아가. 안은 좀 따뜻해.”“혼자 있고 싶어.”“하지만 도윤아...”소영금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그 여자한테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 못 잊은 건 아니겠지?”“...”“바보 같은 우리 아들, 난 네 엄마인데 내가 널 모를 수 있겠어? 넌 그렇게 훌륭하고 뭐든 만점인데 왜 사랑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하는 거야. 그 여자만 아니었다면 네 인생은 순탄했을 거고 너도 전혀 고생도 하지 않았을 텐데. 너도...”“엄마, 제가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잖아요.”성도윤의 목소리는 점점 분노가 쌓였고 그는 긴 손가락을 살짝 조였다.“그래. 알았어. 엄마가 그만할게. 필요한 게 있으면 벨을 눌러.”소영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며 말없이 뒷마당을 떠났다.차설아는 구석에 잘 숨어있었기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그녀는 돌기둥 뒤에 숨어서 한참이나 성도윤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도윤 씨, 정말 살이 많이 빠졌네. 이 정도로 약했어? 단지 뱀에게 물렸을 뿐인데 왜 이렇게 풀이 죽어있는 거야? 정신 차리라고. 한밤중에 잠도 안 자고 왜 슬퍼하고 있는 거야. 분명히 말하는데 난 작별 인사를 하러 왔어. 도윤 씨가 목숨이 위태로울 때, 난 하느님과 거래했어. 도윤 씨가 살 수만 있다면 난 평생 당신에게 다가가지 않고 매달리지 않겠다고 했지. 도윤 씨가 날 미워하고 싶다면 마음껏 미워해도 돼. 날 사랑하는 것보다 날 미워하는 게 더 행복할 거야...”“앞으로 도윤 씨는 서은아 씨와 함께 행복하게 살면 돼. 은아 씨는 당신을 정말 사랑해. 당신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큰 모욕을 당했어. 은아 씨가 했던 희생은 나도 할 수 없었어. 당신이 그녀와 함께 있으면 나와 함께 있을 때보다 훨씬 행복하고 편할 거야...”차설아는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줄곧 중얼댔
성도윤이 진심 어린 충고를 건넸다.“???”사도현은 남자의 말을 듣고는 눈살을 찌푸렸다.“형, 이게 정말 형 입에서 나온 말이야? 여자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그럼 그게 완전 ‘호구’랑 뭐가 달라? 그렇게 냉정하고 도도하던 형이 어쩌다... 이제는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한다고? 이건 형답지 않아...”사도현은 여자를 쫓아다니긴 하지만 성도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여자에게 돈을 쓰고 달콤한 말을 하긴 해도 어떤 여자도 그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그의 사고를 지배할 수 없었다.어떤 여자가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순간, 그는 단호하게 다른 여자를 찾았다.배경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원칙이 걸린 문제라면 절대 양보하지 않았기에 오늘도 이렇게 끝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나도 오랜 시간 고민해서 얻은 결론이야.”성도윤이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사도현에게 연애 철학을 설파했다.“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과 일들을 만나게 되지. 그 중요도를 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없어. 중요한 건, 네 마음속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아는 거야.”“네가 스스로의 자아를 지키는 것이 그 여자와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다면, 그 여자를 포기하면 되는 거고.”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네가 여자를 유혹하는 데 능숙한 건 알지만 결국 진정성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야. 나는 아내의 말을 듣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혹시 네가 그렇게 못하는 건, 단순히 네가 상대방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성도윤은 날카롭게 바라보며 정확한 지적을 했다.“나는...”사도현은 그런 게 아니라고 바로 반박하려 했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내뱉으려 하자 말문이 막혔다.그는 다른 사람을 속일 수도 있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속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성도윤만큼은 속일 수 없었다.성도윤은 누구보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자신의 마음속 가장 솔직한 감정을 그가 단번에 꿰뚫어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형은 내가 좀
“내가 왜 경윤이한테 뭐라고 해야 하죠?”차설아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사도현에게 물었다.“만약 내가 도현 씨라면 이 일이 윤설과 관련이 있든 없든, 나는 단번에 배경윤을 위해 나섰을 거예요. 좋아하는 여자가 이렇게 큰 모욕을 당했는데 괴롭힌 사람을 찾아서 따지기는커녕 내 여자에게 참으라고 한다면, 그건 도현 씨가 그 여자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겠죠.”“지금 이간질하려는 건 아니지? 사람마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무턱대고 화를 내고 일이 커지면 더 큰 소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그게 과연 좋은 방법일까?”사도현은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떠받들던 차설아가 자기편을 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배경윤과의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아직도 이해를 못 하시네요.”차설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 일에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도현 씨의 태도예요. 그런 태도라면 어떤 여자라도 상처받을 수밖에 없어요.”“그게 아니라...”사도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좋아하는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설아야, 역시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너뿐이구나!]배경윤은 타자한 후, 서러운 마음에 바로 차설아를 껴안았다.[이런 마음은 여자만이 이해할 수 있어! 도현 씨는 그저 내가 징징거린다고만 생각하겠지!]“도현 씨, 3일 안에 경윤이한테 사과할 기회를 줄게요. 하지만 어떻게 사과할지는 도현 씨가 알아서 해야 해요. 경윤아, 우리 오늘 같이 자자. 할 얘기가 정말 많을 것 같아!”차설아의 말에 배경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팔을 잡고 계단을 올라갔다.아래층에서는 두 남자가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있었다.성도윤은 왜 남의 커플 문제에 자신이 이렇게 끼어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반대로 사도현은 왜 이해심 많던 차설아가 갑자기 이렇게 고집불통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형, 우리 커플 일에 형수가 너무 과하게 간섭하는 거 아니야? 원래 하루이틀이면 해
“그때는 그때고, 사람은 성장하는 법이잖아.”샤워를 마친 차설아가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2층에서 사도현과 배경윤이 성도윤을 둘러싸고 다투는 소리를 듣고 성도윤 대신에 반박하며 나선 것이다.세 사람은 고개를 들어 목욕 가운을 입고 나온 차설아를 보고 급하게 다가갔다.“설아야, 너 혼자 내려왔어? 움직이지 마, 잠깐만.”성도윤이 제일 먼저 달려가 아기를 돌보듯 세심하게 챙기며 말했다.배경윤과 사도현도 마치 공주를 대하듯 신중하게 행동했다.[괜찮아? 기분 나쁘거나 불편한 거 없어?]성도윤이 차설아를 거실 소파에 앉히자 배경윤이 그녀의 옆에 앉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난 괜찮아. 기분도 나쁘지 않고 아픈 곳도 없어. 내가 전에 겪은 일에 비하면 몇 명 애들이 장난친 정도인데 뭐가 대수겠어.”차설아가 배경윤의 손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안심시키려 했다.“경윤아, 네가 더 걱정이야. 기분 잡치게 하는 사람들을 마음속에 담아두지 마. 그러면 오히려 너 자신이 힘들어져. 그냥 흘려보내. 신경 쓸 필요 없어.”그 말을 들은 배경윤은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했다.[맞아, 맞아. 어떤 사람은 정말 마음에 두지 않더라고. 그 사람 때문에 화내는 내가 진짜 등신이지.]그녀는 당연히 차설아가 말한 ‘기분을 잡치는 사람’이 사도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도현은 오히려 차설아가 배경윤에게 작은 일로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더 관대해지라고 충고하는 것으로 이해했다.“들었어? 역시 형수가 마음이 넓어.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너도 같이 물려고?”사도현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사도현은 배경윤이 절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 센 여자인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차설아의 말만큼은 예외라는 걸 알고 있었다.차설아는 배경윤의 정신적 지주이자 인간적 우상이었기 그녀의 말이면 배경윤은 무엇이든 믿었다.[도현 씨가 그 미친개라는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배경윤이 분노를 담아 타자기를 두드리며, 마치 사도현을 죽일 듯 차가운 눈빛
사도현은 배경윤이 적은 글을 보고 낮게 한숨을 쉬었다.“윤설 씨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면 더 큰 사이버 폭력이 일어날 수도 있어. 난 그냥 소란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연예인 본인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어.”[흠, 당연히 연예인 본인까지 끌어들이지 않길 바랄 거야. 그 사람들 도현 씨 팬들이잖아. 게다가 윤설 씨까지 얽혀서 그 여자가 곤란해질까 봐 그런 거지?]배경윤은 그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신경을 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윤설이 첫 번째이자 아마 유일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에 그녀는 눈앞의 이 남자를 더 용서할 수 없었다.‘이런 바람둥이!’“조금만 머리 쓰면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알 텐데.”사도현은 배경윤의 ‘모함’을 듣고 이 오명을 씻을 수 없다는 생각에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차갑게 말했다.“네가 뭐라고 생각하든, 나는 이 사건에 연예인 본인을 끌어들이는 걸 절대로 허용하지 않아.”그도 어쨌든 윈스 엔터테인먼트의 CEO였고 연예계의 돌아가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때로는 하나의 루머가 칼날처럼 되어 사람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을 수 있다.연예계에서 온라인 폭력에 의해 처참하게 망가진 스타들이 많았고 배경윤과 차설아 같은 일반인은 그 악플의 고통을 더 견디기 힘들 것이다.[헐, 이제 나를 협박하겠다는 거야? 도현 씨가 그렇게 말할수록 난 더 윤설을 찾아갈 거야. 날 어떻게 할 건데?]배경윤은 분노를 담아 빠르게 타자를 했다. 소리 없이 치는 타자 소리만으로도 그녀의 분노가 느껴졌다.성도윤은 그들 옆에서 분위기를 살피며 처음으로 연애 문제가 이렇게 복잡하고 피곤할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이 두 사람은 분명 서로에게 감정이 있었지만 계속해서 상처가 되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망쳐가고 있었다.‘내가 보기엔 차설아와 내 관계가 훨씬 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 같아. 내가 정말 운이 좋아.’차설아를 떠올리며 성도윤은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지금 2층으로
“오늘 소란을 일으킨 사람 중에 내 팬도 있었던 거 확실해?”사도현은 사실 명성과 노출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배경윤 때문이 아니라면 절대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어색한 연애 프로그램 같은 것도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그가 이렇게 많은 팬을 얻게 된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조용한 성격이라 팬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팬들이... 오물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충격을 받았다.“믿을 수 없지?”배경윤이 오늘 자신과 차설아가 괴롭힘을 당한 영상 파일을 사도현에게 보여주었다.“봐봐, 그 팬이라는 여자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도현 씨가 잘생기고, 부유하고, 성격도 좋고, 완벽한 남자라며 윤설과 천생연분이라고 하더라. 도현 씨가 윤설의 왕자인데 내가 그 악녀가 되어 두 사람의 관계를 망쳤다고 하면서, 심지어 설아까지 모욕했어.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뭐, 우리 설아까지 욕했다고?”옆에서 무표정하게 싸움을 구경하던 성도윤은 배경윤의 말을 듣고 나서 차설아에게 더 한없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그는 사도현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빼앗 분노에 차서 영상을 확인한 뒤 싸늘하게 말했다.“이 사람들, 이런 짓을 할 용기가 있다면 그 자만과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어떻게 할 건데?”배경윤이 성도윤에게 물었다. 이전과 달리 이제는 거부하는 태도가 없었다.“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이 사람들 다 찾아낸 뒤, 두 사람 앞에서 머리 조아려 사과하게 해야지.”성도윤이 이를 갈며 한 글자씩 뱉어냈다.이 말은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끝까지 추궁할 수 있는 말이었다.“그나마 다행이네...”배경윤이 사도현을 보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저것 봐, 사랑하는 여자가 괴롭힘을 당했으면 정상적인 반응은 저런 건데, 도현 씨는... 아니지. 도현 씨한테는 사랑하는 여자가 괴롭힘을 당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의 팬이 그냥 길 가던 사람을 괴롭힌 정도잖아. 이제야 왜 이렇게 무관심한지 알
[무슨 소리야, 그건 옛날얘기지. 지금은 완전히 아니라고! 나도 한때 도현 씨를 내 ‘남신’이라고 했었잖아? 그런데 그 결과가 어땠어?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형편없더라!]배경윤이 가차 없이 쏘아붙였다.[두 사람, 완전 끼리끼리야. 나랑 설아는 이제 두 사람이랑 거리를 둬야 해. 안 그러면 우리도 불행해질 거야. 봐, 오늘 내가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을 겪은 것도 다 네 탓이야.]“아니, 이게 왜 또 내 탓이야?”사도현은 어이없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죄인처럼 배경윤의 분노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당연히 도현 씨 탓이지! 오늘 나랑 설아에게 똥물을 뿌린 사람들이 누구인 줄 알아?]배경윤이 팔짱을 끼고 사도현을 노려봤다.“누군데?”사도현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아무리 세상이 험악해졌다고 해도 앞을 못 보는 여자랑 말을 못 하는 여자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할 정도면 정말 제정신 아닌 인간들 아니야?’[한쪽은 도현 씨 팬들이고, 다른 한쪽은 윤설의 광적인 팬들이야.]“뭐?”사도현의 표정이 얼어붙었다.[내가 도현 씨를 알지 않았으면 윤설이랑 엮일 일도 없었을 거고, 그 여자의 팬들에게 이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리고 당신 팬들도 마찬가지야. 윤설 팬들이랑 다를 게 뭐야? 둘 다 극성맞고 정신 나간 사람들뿐이야.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도현 씨 탓이라고!]배경윤은 흥분해서 글을 계속해서 쳐냈다. 사도현은 그녀가 쓴 긴 글을 읽고 머리가 핑 돌 지경이었다. 글에는 온통 그에 대한 비난이 가득했다.사도현은 억울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근데 말이야, 팬들이 한 행동을 내가 어떻게 책임져? 사람마다 다 성격이 다르고 수천, 수만 명의 팬을 내가 어떻게 다 통제해?”[핑계 대지 마!]배경윤은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팬들의 행동은 결국 본인이 책임지는 거야. 팬덤 문화 몰라? ‘팬들의 행동은 본인이 책임진다.’ 이게 기본 원칙이야! 팬들이 왜 그렇게 극성인지 알아? 그건 본인이
성도윤은 묵묵히 참다가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배경윤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너는 아무것도 몰라. 나랑 차설아의 관계는 너 같은 외부인이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리는 지금 행복해. 네가 보기 불편하면 그냥 나가면 되잖아.”“...”배경윤이 성도윤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손목이 붙잡히자 이번엔 발을 들어 그를 걷어차려 했다.성도윤은 체격이 크고 힘도 센 편이었지만 배경윤의 저돌적인 공격에 살짝 밀리는 기분이 들어 결국 긴 팔을 뻗어 그녀의 목을 단단히 옭아맸다.“형, 지금 뭐 하는 거야?”바로 그 순간, 사도현이 들어와 이 장면을 목격하고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상황이라니,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성도윤과 배경윤도 순간 굳어버렸다.“오해하지 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성도윤이 가볍게 헛기침하며 배경윤을 놓아주었고 배경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성도윤의 발을 힘껏 밟았다.“너 진짜 끝까지 이럴 거야?!”성도윤은 발끝이 부러질 것 같은 고통에 이를 악물었지만 차설아를 떠올리며 꾹 참았다.차설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했는데 그녀의 절친인 배경윤까지 보니 정말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그리고 슬쩍 사도현을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너, 보험 많이 들어둬.”“무슨 뜻이야?”사도현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무슨 뜻이긴? 저 호랑이 같은 여자를 네가 감당할 수 있겠냐고.”성도윤이 배경윤에게 얻어맞은 부위를 문지르며 투덜댔다.그러자 사도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지, 우리 경윤이는 원래 이렇게 폭력적인 애가 아니야. 분명 형이 선을 넘었으니까 그런 거겠지.”그는 중요한 순간에 배경윤 편을 들기로 했다.사실 예전에는 서로 의견이 다를 때마다 배경윤과 말다툼이 잦았다.배경윤은 성도윤을 두고 철저히 쓰레기라고 욕했고 사도현은 차설아가 너무 까다롭다고 반박하며 두 사람은 끝없는 논쟁을 벌이곤 했다.하지만 이
“그만 좀 해요, 너무 닭살 돋아요.”차설아는 예전 같았으면 이런 사랑 고백을 들으면 쑥스러웠지만, 이제는 쑥스럽기보다 오히려 닭살이 돋아 참을 수가 없었다.처음엔 성도윤이 차갑고 말수가 적은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건 전부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꾸민 모습이었고 실제로는 입만 열면 온갖 달콤한 말을 쏟아내는 사람이었다.성도윤이 손으로 물 온도를 확인한 뒤 말했다.“물 받아놨어. 들어가서 몸 좀 풀고 와.”“좋긴 한데... 좀 나가주겠어요?”차설아가 고개를 푹 숙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그건 안 되지. 당신이 미끄러지거나 수건이 필요하거나 옷을 입어야 할 때 누가 도와줘?”“괜찮아요,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잠깐만 나가 있어 줘요. 도윤 씨가 여기 있으면 부담스러워서 못 하겠어요.”차설아는 아직 성도윤과 그렇게까지 오픈된 관계는 아니었다.게다가 자신만 벗고 그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니. 상상만 해도 얼굴이 뜨거워졌다.“알겠어. 그럼 욕조까지만 데려 줄게. 다 끝나면 전화해.”성도윤이 한발 물러나며 휴대폰을 욕조 옆 선반에 올려놨다.“여기 핸드폰 놔뒀어. 손만 뻗으면 닿을 거야.”“알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제발 가요!”차설아가 손을 휘저으며 성도윤을 재촉했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후, 차설아는 그가 정말 나갔다고 확신하고서야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차설아는 원래 몸매가 좋은 편이었다. 곡선이 부드럽게 이어졌고 피부는 우유처럼 부드럽고 하얬다. 실루엣만 봐도 누구든 넋을 놓을 정도였다.그런데, 옷을 벗다가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거칠고 낮은 숨소리가 문가에서 들려오자 차설아는 순간 얼굴이 새빨개졌다.“도윤 씨, 변태예요?!”“들켰네.”성도윤의 목소리가 낮고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그는 아쉬운 듯 차설아를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불만 지르고... 알겠어, 나 간다.”그는 투덜거리며 재빨리 문을 닫고 나갔다.더 있다가는 차설아가 진짜로 그를 때려눕힐지도 몰랐다.성도윤은 자
“와, 대박! 이런 주제에 감히 남자를 뺏으려고 했다고?”그 여자들은 비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차설아와 배경윤을 마구 찍어댔다. 조롱과 비아냥이 섞인 웃음소리가 이어졌다.“으...”배경윤은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 한편으로는 차설아를 보호해야 했고 동시에 그 여자들과 맞서야 해서 허둥지둥했다.“꺼져!”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성도윤이 험상꿎은 얼굴로 난동을 부리던 여자 하나를 단숨에 잡아채 거침없이 밀쳐버렸다. “설아야!”그는 온몸에 더러운 물을 뒤집어쓴 채 힘없이 서 있는 차설아의 모습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주저 없이 배경윤을 밀어내고 차설아를 와락 끌어안았다.“도윤 씨?”차설아가 손을 더듬어 그의 손을 잡았다가 순간 움찔하며 한 발짝 물러났다.“가까이 오지 마요. 나 더러워요.”“상관없어.”성도윤은 단호하게 대답하며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아 두 손을 꼭 쥐고는 후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너무 늦게 왔지.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그 모습을 본 여자들은 겁에 질려 황급히 도망쳤다.하지만 이 장면은 누군가에 의해 영상으로 찍혀 인터넷에 퍼졌고 각종 편집과 조롱으로 도배되었다.온라인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세상에 공평한 법은 있구나. 이게 바로 업보지!][아무리 그래도 팬들이 너무 폭력적이야.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그리고 바로 이 영상을 통해 차설아가 실명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한편, 성진의 차 안.성진은 무료한 듯 핸드폰을 스크롤내리며 영상을 보고 있었다.최근 권력 싸움에서 그는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허전했다. 승리를 코앞에 두고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그러다 우연히 영상 속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선글라스를 낀 채,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쓰고 초라하게 서 있는 차설아.그 순간, 그의 심장이 조여들었다.“설아의 눈이...”모든 게 퍼즐처럼 맞춰졌다.그가 가지고 있는 이 눈은 바로 차설아가 준 것이었다.여러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