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대로라면 그는 성도윤을 강물에 던져넣어 악어를 먹였어야 했지만 지금은 그를 죽이고 싶은 욕망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동생의 체면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이렇게 오랫동안 잠자코 있었으니 어쩌면 그때만큼 때리고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걱정 마, 뱀독이 다 풀리면 성가로 보내줄게.”"정말 날 놔줄 거야?”성도윤은 너무 의외라 눈썹을 찡그렸다.기억 속의 자정 살인마는 철두철미한 마귀이며 어떠한 인간성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뜻밖에도...그를 가만 놔두려 하다니?설마 오늘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건 아니겠지?하지만 아쉽게도 해가 어느 쪽에서 뜨든 그는 볼 수 없었다..."나는 너를 놓아주는 것이 아니라 잠시 너의 목숨을 살려주는 것일 뿐이야, 전당포와 성가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차성철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다음에 네가 다시 내 손에 들어오면 이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다시는 나한테 지지 않는 게 좋을 거야!”이날 이후 성도윤은 갑자기 실명 사실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의사의 치료에 협조했다.차성철은 성도윤이 협조하는 것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그를 자극하는 일이 드물었다.이 녀석은 비록 눈이 멀었지만 뱀독이 깨끗이 제거되었고 목숨도 건졌으니 그는 마침내 차설아한테 미안하지 않게 되었다.이날 성도윤은 한 번에 약을 다 마셨다.의사는 그의 맥을 짚어보고 기뻐하며 말했다. "성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체내의 뱀독은 이미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이제 정말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성도윤의 얼굴은 차갑고 깊은 눈은 여전히 마비되어 있었다. "그럼 내 눈은 회복할 수 없는 건가요?”"그건...”의사는 희끗희끗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뱀독이 망막 조직과 안구 신경에 미치는 피해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100% 맞는 안구를 찾지 않는 이상 시력을 회복하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그래, 알았어요. 내려가 봐요.”성도윤은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더듬거리며 나가
성도윤은 더듬거리며 경계하는 기색으로 방문을 닫았다.전체 전당포에서 그가 유일하게 신뢰하는 사람은 바로 장재혁이었다.4년 동안의 감정을 그는 모두 연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성 대표님, 무엇을 묻고 싶으십니까?”장재혁은 한숨을 내쉬며 성도윤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차설아는 좀 어때? 다치지는 않았어?”"걱정하지 마세요, 차설아 씨는 지금 괜찮아요. 형님은 자신이 다치더라도 차설아 씨는 다치게 하지 않을 거예요.”장재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그러면 진짜 남매인 거야?”"그래요.”"어쩐지 그 변태가 나를 죽이지 않더라니!”비록 차설아와 그 변태의 관계가 꽤 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진짜 확인을 한 이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원래 세간의 소문들은 모두 헛소문이 아니었다. 그해 차가에 확실히 아들딸 쌍둥이를 낳았고 태어나자마자 죽었다던 아들이 아직 살아있다니!"그렇다면 차설아는 왜 나를 보러 오지 않는 거야? 설마...”성도윤은 마음이 급해졌다.그의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차설아가 물에 뛰어들어 그를 구해줬는데 그것은 여자도 독사에 물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만약 그녀가 무사하고 변태의 친동생이라면 전당포에서 출입이 자유로울 것인데 그러면 진작에 그를 보러 와야 했지 않았을까?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그녀가 나타나지 않으니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걱정하지 마세요, 그분은 괜찮으십니다. 지금은 전당포에 없어요.”"여기 없다고?""네, 오래전에 떠났어요. 혼미해 있으실 때 떠나셨죠. 대표님의 생사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닐까요.”장재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그분은 형님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명석한 사람이었고 사사로운 정 때문에 계획을 그르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이 있는데 사실대로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성도윤은 심장이 멎는 통증을 느꼈다."뭔데?”"바로 당신을 물 감옥으로 유인한 일 말인데요. 사실은 사장님의 생각이 아니라 차설아 씨의 생각입니다. 그녀는
성도윤의 정신력은 마침내 무너졌다.아무리 강인한 정신력을 지녔다고 해도 이 명백한 사실 앞에서 어떻게 자신을 설득해야 할까?"제가 말하려는 것은 그게 다예요. 당신은 이제 뱀독에서 벗어났고 우리 형님은 그의 말을 지키는 사람이시니 누군가 곧 당신을 본가에 데려다줄 것입니다. 그 사이 자신을 잘 돌보길 바랍니다. "장재혁은 말을 마친 후 성도윤을 향해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깊이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고는 방을 나갔다.긴 침묵이 흐른 후 방 안에는 성도윤의 상처 입은 짐승처럼 미친 듯이 쉭쉭 거리는 소리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차설아,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 "장재혁은 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손가락을 계속 문지르며 속으로 매우 괴로워했다.그 옆에는 체격이 큰 차성철이 서 있었다.남자의 입꼬리는 만족스러운지 서서히 올라갔고 장재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잘했어, 이번 일은 네가 실수를 만회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성심 전당포에서 잘해, 그러면 이전의 일은 더는 묻지 않지."장재혁의 표정은 슬픔에 잠긴 채 끊임없이 성도윤의 방 방향을 보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형님, 저분의 감정이 너무 흥분한 것 같은데 아까부터 계속 치고 부수고 너무 위험한 거 아닐까요? 지금 앞이 보이지 않는데 잘못하다가 도자기 파편이나 무언가를 밟았을 경우...""걱정하지 마, 성도윤은 매우 교활해, 그냥 화를 배출하는 것뿐이야. 어떻게 그가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겠어? 좀 이따 사람을 보내서 돌려 보낼 거야.""..."장재혁은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감히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차성철의 눈빛이 차가워지며 그를 노려보았다. "잊지마, 저자가 우리 성심 전당포와 너희 세 형제를 전멸시킬 때 얼마나 냉혈 했는지. 세 사람 중 이제 너만 남았는데 지금 적을 위해 애도하는 건가?""아니, 아닙니다!"장재혁은 당황하여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죽어 마땅합니다. 형님께서 그의 생명을 살려 주신 것만으로
차성철은 성도윤을 성씨 집안으로 돌려보내려고 사람을 보내려던 찰나 그의 부하들이 당황하며 보고를 해왔다."형님, 큰일 났어요. 문밖에 깡패들이 몰려와서 성도윤을 넘겨달라고 하는데 내놓지 않으면 전당포를 불태우겠다고 합니다!""흠, 꽤 대담하네. 자정 살인마의 영토에 감히 와서 문제를 일으키다니?""그들은... 그들은 특별해 보이는데 모두 총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핵심리더의 배경이 매우 든든한 것 같아 저희가 감히 행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형님이 직접 나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좋아, 누가 이렇게 죽고 싶어 안달인지 한번 보자!"차성철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사복 차림으로 성심 전당포의 문으로 향했다.성심 전당포의 문은 매우 웅장했는데 녹색 돌판으로 뒤덮인 앞마당은 수백 제곱피트 되고 양쪽에는 곧은 소나무가 심겨 있으며 입구에 사나운 얼굴의 큰 돌사자 두 마리가 서 있고 정문 위에는 푸른 바탕에 금박 문자가 새겨진 큰 현판이 걸려 있는데 '성심 전당포' 다섯 글자가 크게 적혀 있었다.낙수 부두 전체에서 '성심 전당포'는 마치 한 가문의 문중 사당처럼 절대적인 위엄과 권력을 상징하며 부두 전체의 상황을 지켜주는 존재였다.보통 '성심 전당포' 앞마당에는 두 줄의 보안 요원이 배치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낙수 부두의 다른 장소의 붐비고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환경과는 매우 달랐다.하지만 오늘 성심 전당포의 정문 앞은 사람들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고 사람들은 손에 진짜 무기를 들고 높이 흔들며 끊임없이 외쳤다."사람들을 넘겨라! 넘겨라!"높은 곳에 서 있던 지도자는 손에 무기를 들지 않고 횃불을 들고 있었는데 크게 외쳤다."사람을 넘기지 않으면 불을 지를 거다! 사람을 넘기지 않으면 불을 지를 거다!”차성철은 밖으로 걸어 나와서 시선을 고정하고 나서야 그 선두에 선 사람이 여자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리고 그는 이 여자가 서씨 가문의 후계자 서은아며, 서씨 가문과 성씨 가문이 련인할 것이라는 소문이 외부에 퍼지
서은아처럼 곱게 자란 아가씨는 당연히 감당하기 버거웠는데 그녀는 긴장스레 침을 삼키며 몇 발자국 물러서며 물었다."그럼 당신이 원하는 게 뭔데? 이렇게 하는 목적은 어차피 돈 아니야? 얼마면 사람을 풀어줄 건데? 우리 서가 돈 많거든.""조용히 돈 받고 사람 풀어주는 게 좋을 거야. 지금의 성심 전당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성가에서 사람 보낼 필요 없이 서가에서 사람을 보내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하하!"차성철은 더욱 대놓고 웃으며 눈 밑의 무자비함도 깊어졌다."정말 세상 물정을 모르는 젊은 아가씨군요. 매우 어리석고 순진하네... 나는 수년 동안 충분한 돈을 벌었으니 돈이 필요하지 않아요. 남겨두고 혼자 쓰시는 게 더 나을 듯하네요."남자는 천천히 서은아 쪽으로 다가가면서 말했다.그가 편안하고 여유로울수록 분위기는 더욱 위험하고 이상해졌다."당신... 원하는 게 뭐야?"서은아는 횃불을 들고 있었지만 맨눈으로 보기에도 그녀의 기세는 분명히 줄어들었다.성심 전당포의 군대는 아주 위협적이었는데 팔대 가문의 누구도 감히 그들의 사업에 쉽게 손을 댈 수 없었다.그리고 그녀가 고용 한이 전사들은 전쟁에 참여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소수만 참여했고 나머지는 쪽수를 채우는 작용이었다.따라서 처음부터 그녀는 돈을 사용하여 해결하려고 했고 그녀가 쓸 수 있는 방법도 돈뿐이었다.두 쪽이 진짜 싸우게 되면 그녀는 죽을 목숨일 것이다."난 돈을 원하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것은 존엄이나... 성도윤을 발아래에 짓밟는 성취감을 원하죠."차성철은 차갑게 미소 지으며 자신의 진심을 말했다.어렸을 때는 돈 같은 것을 갈망했지만 지금은 그저 그런 것이라고 느껴졌다.성도윤 같은 소위 말하는 하느님이 편애하는 자를 짓밟는 게 더 재밌다고 느꼈다."넌 정말 변태적이야!"서은아는 이를 갈았다."시궁창에 사는 당신 같은 사람은 성도윤과 비교할 수 없을뿐더러 발로 짓밟을 수도 없어!""지금 내가 그를 밟고 있지 않나요?"차성철은 높은
"지금 성도윤의 여자친구라고 들었는데 곧 결혼할 거라고요?”차성철은 복잡한 눈빛으로 서은아를 보며 모호한 표정으로 물었다."맞아, 나와 성도윤은 죽마고우이고 우리 두 집안은 더더욱 한 집안 같은 관계이니 결혼은 시간문제지. 당신이 눈치껏 빨리 사람을 풀어주지 않으면 두 집안 모두의 미움을 사게 될 거야. 끝이 아주 비참할 거라고!”"내가 성도윤의 여인을 농락하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요...”"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감히 나를 건드리려고!”서은아는 화가 나서 입술이 하얗게 질렸는데 손을 들어 차성철의 뺨을 향해 때렸다.그러나 차성철은 민첩하게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당신은 약혼자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고 목숨도 버릴 수 있지 않나요? 당신이 내 시중을 고분고분하게 들어 준다면 성도윤을 풀어줄게, 어때요?”남자는 느끼한 표정으로 손은 그녀의 곡선을 따라 만지작거렸다."그때가 되면 당신이 내 시중을 드는 비디오를 대중에게 공개할 거고 그때가 되면 성도윤이 패자라는 것을 전 세계 사람들이 알게 될 거에요. 생각만 해도 짜릿하네!”"아니, 싫어!”서은아는 몸부림치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성도윤의 여자친구가 아니야. 그는 나와 결혼할 생각도 없어, 그의 여자는 차설아야. 차설아도 그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자야. 네가 시중을 들 사람을 찾으려면 그 여자를 찾아서 시중을 들게 해...”"그 여자는 온 가족이 다 죽었으니 당신이 그녀를 놀려 죽여도 아무런 대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성도윤에게 복수할 목적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거야!”차성철의 안색이 차갑고 무섭게 변했다.그는 서은아의 목을 움켜쥐고 말했다."그 여자가 누구라고? 다시 한번 말해봐.”"차, 차설아라고. 난 널 속이지 않았어, 성도윤은 정말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의 집안사람들도 정말 다 죽었어!”서은아는 놀란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자신의 말이 어디가 틀렸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성도윤과 차설아가 진짜 부부라는 건 해안이 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천천히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들려오는 목소리는 점점 더 맑아지고 처량해졌다."분명 차설아일 거야, 그들이 차설아를 괴롭히고 있는 거야. 장재혁이 말한 것들은 모두 거짓이다. 차설아는 자정 살인마의 동생일 수 없어. 더더욱 나를 이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고!”감정이 격해진 성도윤은 문을 열려고 허둥대다가 계단에 걸려 넘어지면서 손바닥과 무릎이 까졌다.그는 더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재빨리 일어나 몇 걸음 걷다가 또 걸려 넘어졌는데 낭패의 극에 달했다."살려줘, 살려줘, 날 건드리지 마. 다들 꺼져!”도움을 청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더 분명해지고 남자의 마음은 점점 더 졸여졌다."병신, 병신, 성도윤 이 병신아!”다급해진 성도윤은 자신을 계속 두드려대며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고 미칠 지경이었다.자신의 여자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느낌이 그를 더 괴롭게 했다."차설아, 기다려. 내가 곧 구하러 갈게!”성도윤은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고 몇 번이고 넘어지고 부딪히면서 마침내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에 점점 가까워져 마치 자신의 앞에 있는 것 같았다.도움을 청하던 소리가 점차 그쳤다.서은아는 건장한 남자에 눌려 몇 차례 발버둥을 쳤지만 결과는 뻔했다.머리칼이 헝클어지고 볼과 손과 허벅지가 찢어져 피가 났는데 그녀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하하하, 역시 부잣집 아가씨네. 이 피부, 이 몸매 정말 일품인데?”"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일을 끝내, 아직 기다리는 사람이 많잖아.”“...”이들의 욕설을 듣고 있는 서은아의 얼굴은 무표정했다.침울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가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마치 힘없이 누군가의 손에 놀아나는 장난감 같았다.하지만 갑자기 이 남자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전전긍긍하며 한쪽으로 흩어졌다."왜들 그래?”그녀의 몸을 만지던 남자는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뒤를 돌아보았다.그리고 혼이 다 빠져버려서는 곧바로 일어나 바지를 들어 올리고 머리를
"도윤아, 그게 무슨 뜻이야? 난 당연히 은아지. 설마 날 못 알아보겠어?”서은아는 찢어진 옷을 정돈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수줍은 듯 성도윤을 바라보았다.“그 짐승들이 날 만졌다고 내가 너무 더러워서 더 이상 날 아는 척하고 싶지 않은 거야?”"너였구나!”성도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도움을 청한 사람이 차설아인 줄로만 알았던 그의 머릿속엔 온갖 잔학무도한 그림들이 저절로 그려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하지만 차설아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뭐... 무슨 뜻이야?”서은아의 눈빛은 더욱 절망적이었다.아까 당한 능욕보다 만 배나 더 고통스러웠다."설마 내가 차설아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년이 너를 구하려고 이딴 새끼들한테 능욕을 당했다고 생각해? 그리고 나였다는 걸 알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니... 나라면 넌 전혀 상관없는 거야?”성도윤은 굳은 얼굴로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네가 어떻게 여기 있어, 도대체 무슨 일이야?”서은아는 뒤로 두 걸음 물러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남자를 바라보았다.남자의 태도가 그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성도윤, 방금 내가 당한 일을 못 봤어? 눈멀었어? 아니면 네 마음은 무쇠로 만든 거야? 널 구하러 달려온 내가 바보지!”"은아야, 진정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봐.”성도윤은 여인의 방향으로 손을 뻗어 잡아당기려 한참을 더듬어봤지만 잡히는 건 없었다."너, 너 왜 그래? 너 뭐 찾고 있어? 너 눈이 왜 그래...”서은아는 드디어 성도윤의 이상을 알아냈다.그녀는 손을 내밀어 성도윤 앞에서 흔들었는데 그의 날카롭고 그윽한 두 눈이 조금도 반응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난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성도윤은 처음에는 무너지고 절망하다가 지금의 무감각해지고 냉담해지기까지 너무 많은 심리적 고통을 겪어서 담담하게 말했다."넌 오지 말았어야 했어, 여긴 위험해. 이리 와... 내가 널 데리고 떠날게.”그는 여자에게 손을 내밀며 차분하게 말했다.서은아는 이미 이런 수모를 겪었는데
민이 이모가 원이를 데리고 차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각이었다.차설아는 원이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문 앞에서 맴돌면서 안절부절못했다.일찍 자야 할 달이는 혼자 쉬기가 미안해서 차설아 곁에 꼭 붙어있었다.“엄마, 앞이 보이지 않으면 무섭지 않아요? 배고프면 과자를 가져다줄게요. 아니면 물이라도 마실래요?”달이는 주방으로 달려가서 따뜻한 물을 컵에 받았고 좋아하는 간식을 한 아름 안고 와서 책상 위에 놓았다.“우리 달이는 참 착해. 엄마는 배고프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날이 이미 어두워진 거 아니야? 먼저 방에 들어가서 자.”차설아는 허공에 팔을 허우적거리다가 달이를 발견하고는 꼭 껴안았다.달이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차설아를 올려다보면서 울먹였다.“엄마, 정말 곧 낫는 거 맞아요? 만약 엄마가 달이를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되면 어떡해요?”“걱정하지 마. 엄마처럼 강한 사람은 빨리 나을 거야. 그리고 영원히 앞을 보지 못하게 되더라도 엄마한테는 너랑 원이가 있잖아. 달이는 엄마의 눈이 되어줄 거야?”“좋아요! 제가 엄마의 오른쪽 눈이 될게요.”달이는 작은 손으로 차설아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달이는 오늘부터 엄마의 눈이에요. 엄마가 가고 싶은 곳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고 엄마의 곁에 꼭 붙어있을 거예요. 엄마가 원하는 건 전부 가져다줄 거예요!”“고마워, 우리 달이가 최고야.”차설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차설아는 달이를 꼭 안고 흐느꼈다.의사는 수술받은 뒤에 상처가 회복될 때까지 눈물을 흘리거나 자극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가 덧나서 더 아플 수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울지 않을 엄마는 없을 것이다.이때 원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엄마, 드디어 돌아왔네요!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원이는 차설아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면서 달려갔다.“원, 원이야?”차설아는 원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원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
서은아는 손으로 얼굴을 막고 서럽게 울면서 말했다.“발이 미끄러져서 물에 빠졌다든지, 도윤이를 너무 그리워하다가 쓰러져서 입원했다든지... 지어낼 수 있는 이야기는 많잖아요. 왜 하필 그 아이를 언급한 거예요? 그 아이는 성씨 가문의 보물이라고요. 감동적인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면 나를 용서해 줄지도 모르는데, 그 아이를 언급했으니 어떻게 기회가 차려지겠어요? 아주머니와 도윤이는 나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이제는 전부 끝이에요...”마음 아파하던 서태원은 서은아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은아야, 진정하고 아빠 말 잘 들어. 성도윤과 결혼할 방법은 그것 하나뿐인 게 아니잖아. 아빠가 생각해 놓은 게 있는데 좀 극단적이긴 해. 하지만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어. 한번 들어볼래?”“그게 정말이에요?”서은아는 붉어진 두 눈으로 서태원을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연하지. 아빠가 언제 너한테 거짓말한 적 있어?”“어떤 방법인지 어서 알려주세요. 도윤이를 못 본 지 너무 오래되어서 미칠 것 같단 말이에요.”“성도윤은 성씨 가문의 도련님이라 바로 만날 수가 없어. 하지만 거만하던 도련님이 비굴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쉽게 접근할 수 있지.”서태원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비굴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지난번에 성대 그룹이 위기에 놓였을 때, 우리 가문이 투자금을 내어준 덕분에 해결했잖아. 문제가 해결되니 성도윤은 여유가 생겼고 은혜도 모르고 너를 차갑게 대했지. 내 생각에는 더 큰 위기를 조성해서 성대 그룹을 날려버리는 거야. 완전히 추락해서 밑바닥에 떨어지면 서씨 가문에 기대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네가 성도윤이 기댈 수 있는 나무가 되어줘. 그럼 너랑 결혼할 수밖에 없을 거야.”서태원은 솔직하게 말했다.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법칙대로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강한 자는 선택권을 얻고 약한 자는 탈락하거나 강한 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우리 은아는 생각보다 똑똑하지 못
서태원은 소영금을 한바탕 욕한 뒤, 서은아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서은아는 물에 빠져서 의식을 잃고 쇼크 상태가 이어졌다가 다시 회복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입원하면서 계속 지켜봐야 했다.“아빠, 어떻게 되었어요? 아주머니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이제는 도윤이를 만날 수 있는 거예요?”서은아는 서태원이 오기 전까지 병실에서 안절부절못하면서 손을 덜덜 떨었다. 서은아가 입원한 뒤부터 매일 서태원한테 울면서 성도윤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서은아는 서태원의 힘을 빌려 성도윤의 마음을 얻고 싶었다.“이제는 만날 수 없을 거야. 성씨 가문과의 협력은 더 이상 없어! 진작에 그래야 했는데 말이야.”서태원은 팔짱을 낀 채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사실 서태원은 예전부터 성씨 가문을 완전히 끊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서은아의 체면을 생각해서 지금까지 꾹 참았던 것이다.앞으로 성씨 가문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뭐, 뭐라고요? 가서 성도윤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성씨 가문과의 협력을 중지하면 어떡하냐고요!”“은아야, 정신 좀 차려. 성도윤을 비롯한 성씨 가문 사람들은 서씨 가문을 업신여겼어. 무시당하면서 그 가문과 혼약을 맺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서씨 가문의 사업 규모가 성씨 가문보다는 작아도 괜찮아. 혼약을 파기하면서 성씨 가문은 해안시의 웃음거리가 될 테니 말이야. 그동안 너 때문에 참았었는데 이제는 끊어내는 게 맞아. 우리 가문이 왜 성씨 가문의 시종처럼 끌려다녀야 해? 너는 평생 그렇게 살고 싶어?”서씨 가문은 이 혼약을 위해 굽신거리면서 부르면 달려가는 강아지 노릇을 했다. 서태원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기에 불만이 아주 많았다.그러면서 성씨 가문에 악감정이 생겼고 성씨 가문이 파산하길 바랐다.“아빠,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다른 남자를 마음에 담은 적이 없어요.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남자는 성도윤뿐이라고요. 도윤이랑 겨우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성씨 가문과의 협력을 중지하면 나는 어쩌라고요? 내
진무열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서 물었다.“나는 괜찮아. 이 바닥에 저런 미친놈이 한둘이야? 하도 봐서 이제는 신경 쓰지도 않아.”소영금은 흩어진 머리를 정리했고 우아한 사모님의 자태를 뽐냈다. 미친개가 달려들면 같이 물어뜯지만 해결한 후에는 여전히 해안시 4대 미인 중 한 명으로서 품위를 유지했다.“서씨 가문이 처음부터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우리 가문과 혼약을 맺기 위해 막대한 투자금을 선뜻 내놓았지만 이제는 두 아이가 결혼할 수 없다는 걸 알았던 거지. 그래서 발을 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 이제라도 발을 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소영금은 서태원 때문에 화난 것보다 성도윤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다.“도윤이가 성대 그룹의 자금에 대해서 말한 적 없었어? 분명 턱없이 부족했을 텐데 말이야.”성도윤은 2년 동안 성대 그룹의 투자 영역을 몇 배 넓혔다. 투자금이 몇십 배 더 늘어났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수익이 아주 적었다.그리고 많은 일이 벌어지면서 경쟁자들의 실력이 늘었고 회사 경영은 점점 힘들어졌다.“자금이 부족하긴 해요. 성대 그룹에서 맡았던 프로젝트가 갑자기 줄어들면서 다른 경쟁자들한테 시장을 빼앗겼어요. 대표님은 인공지능 영역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어 하지만 신흥산업이라 연구개발 비용만 해도 몇억, 몇십억이 필요해요. 하지만 다른 사업의 수익은 계속 줄어드니 경영이 어려워진 상태예요.”진무열은 성도윤의 유능한 오른팔로서 성대 그룹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영역을 계속 확장한 바람에 관리가 힘들어졌고 자금이 부족해서 언제든지 파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도윤은 소영금이 걱정할까 봐 회사의 상황을 비밀에 부쳤다.“그동안 도윤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나도 잘 알아. 게다가 감정 문제마저 도윤이를 힘들게 하니 기댈 곳도 없이 혼자서 버텼겠지. 불쌍한 우리 도윤이를 어쩌면 좋아...”소영금은 울먹이면서 말했다.성도현이 살아있었을 때, 성도윤은 그저 관심이 있는 영역만 책임지면서 편하게 지냈었다.“내가
서태원의 말을 들은 소영금은 원이가 더 마음에 들었다. 원이의 성격은 차설아와 소영금을 닮아서 똑똑하고 과감했다. 성도윤처럼 답답한 성격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나중에 원이가 성대 그룹을 이어받는 것이 소영금의 소원이었다.원이는 성도윤보다 훨씬 멋진 어른으로 자라서 성대 그룹을 이끌 것이다.“지, 지금 말 다 했어요? 우리 은아가 당신 손주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요.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웃음이 나와요?”서태원은 소영금을 궁지로 몰고 나서 성도윤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할 생각이었다.하지만 소영금은 미안한 기색이 하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놓고 비웃으면서 서태원의 심기를 건드렸다.소영금은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이렇게 웃긴 상황에 울어야 하나요? 성인이 5살 된 어린아이한테 당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그래요.”소영금은 서태원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면서 진지하게 말했다.“그리고 내 손주가 어떤 아이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요. 누군가가 위협하지 않는 이상, 절대 아무 이유 없이 먼저 다른 사람을 공격할 아이가 아니에요. 당신 딸이 왜 내 손주한테 밀려서 호수에 빠졌는지 직접 물어보세요. 알지도 못하면서 피해자인 척하지 말고요.”“소영금 씨! 지금 말 다 했어요?”서태원은 소영금을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씩씩거렸다.“예전부터 당신 같은 여자랑 결혼하고 싶었던 내가 더 우스워요. 당신은 생각보다 더 미친 여자였군요. 우리 은아가 성도윤한테 간이고 쓸개고 다 바쳤지만 결국 이렇게 버려졌네요.”“아무도 당신 딸을 버린 적 없어요. 만약 억울하다면 알아서 다른 남자를 찾으라고 전하세요. 도윤의 곁에 계속 남아있다는 건 얻을 게 있다는 뜻이겠죠.”소영금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이제는 서씨 가문이 안중에도 없다는 거네요. 오늘부터 우리 서씨 가문과 성씨 가문의 협력은 여기까지예요. 혼약대로 결혼할 수 없다면 원수 사이로 지내는 게 맞아요!”서태원은 독기 서린 눈으로 소영금을 바라보았다.사실 서태원은 진작에 다른 계획이 있었다. 그러
성씨 가문은 여전히 해안시 8대 가문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다. 서씨 가문이 아무리 사업을 발전시켜서 막대한 부를 얻었다고 해도 성씨 가문에 밉보이면 안 되었다.“이렇게 소란을 피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요.”소영금은 차갑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태원 씨, 한밤중에 부하들을 데리고 온 건 나를 겁주기 위함이 아니었어요? 갑자기 불쌍한 척하는 건 태원 씨답지 않아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우리 은아가 자꾸 도윤이를 보고 싶어 해서 그러죠. 두 가문에서 혼담이 오가고 결혼 날짜까지 정해서 청첩장을 돌렸는데... 은아는 도윤의 약혼녀잖아요. 적어도 은아는 도윤이를 만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은아가 도윤이를 얼마나 걱정하고 그리워하는지 아세요?”서태원은 차분하게 말했지만 솟구쳐 오르는 화를 참기 위해 주먹을 꽉 잡았다.“그건 그렇지만 예전과 상황이 달라요. 은아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나 보죠? 은아는 도윤이가 수술받지 못하게 하려고 주치의를 죽이려고 했어요! 그런데 은아가 기어코 수술을 받은 도윤이를 만나면 심정이 어떻겠어요? 도윤이한테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아냐고요.”소영금은 서태원의 체면이 구겨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서은아의 만행을 떠들어댔다.반년 동안 서은아가 성도윤을 정성껏 보살피고 사랑해 주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소영금은 서은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이대로 아무 일 없이 잘 지낸다면 두 가문의 혼약대로 결혼하게 할 생각이었다.서은아와 성도윤은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친구였기에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었다. 두 가문의 실력 차이도 크지 않았으니 이 혼약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래였다.그러나 고분고분 말을 듣던 서은아는 아무도 모르게 음험한 짓을 저지르고 다녔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소영금은 더 이상 서은아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우리 은아가 그럴 리 없어요. 무슨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조금 더 조사해 보는 게 어
소영금은 손을 내저으면서 성도윤의 말을 끊어버렸다.“됐어! 수술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애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엄마가 생각이 짧았어.”소영금은 성도윤이 어떤 대답을 할지 알고 있었다. 성도윤이 무슨 말을 하든 차설아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소용없었다.“만약 너랑 차설아의 사주가 상극이라서 걱정이 된다면 당장 사주를 봐준 사람을 찾아갈게. 그분이라면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는 기운을 없애줄 수 있을 거야.”소영금의 말에 진무열이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면서 말했다.“역시 모성애는 위대해요. 너무 멋지세요.”진무열은 성도윤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대표님, 아무 생각 말고 푹 쉬세요. 차설아 씨에 관한 일이든 회사 일이든 저희가 해결할게요. 대표님한테 가장 중요한 건 얼른 낫는 거예요.”이때 보디가드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와서 다급히 말했다.“저... 말씀을 나누는 중에 죄송하지만 보고할 것이 있어서요. 나오시면 따로 보고드릴게요.”소영금은 미간을 찌푸린 채 보디가드를 노려보고는 성도윤을 향해 말했다.“도윤아, 먼저 쉬고 있어. 무슨 일이기에 호들갑을 떠는지 직접 나가봐야겠어.”보디가드는 소영금이 병실을 나서자마자 재빨리 보고했다.“서씨 가문에서 부하들을 모아 이곳으로 왔어요. 병실 앞까지 오겠다는 걸 겨우 말렸더니 사모님과 대표님이 직접 해명하라면서 협박했고요. 사모님이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서씨 가문이라고?”소영금은 별생각 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당장 한 대 칠 기세였고 씩씩대면서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환자들과 의사는 멀찍이 떨어져서 지나갔고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영금 씨, 드디어 나를 만나주러 내려왔군요. 계속 내려오지 않으면 병실을 쳐들어갈 생각이었거든요.”인파속에서 씩씩대던 서태원은 소영금을 보자마자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왔다.“태원 씨, 여기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는 건 선을 넘은 거 아닌가요? 도윤이가 수술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온 거예요?”소영금도
소영금은 기쁜 마음을 감추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네. 기억났어요...”성도윤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정확히 말하면 행복한 기억만 떠올랐어요. 슬프고 아팠던 기억은 흐릿해져서 잘 생각나지 않아요.”불행한 기억은 흐릿해진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잊으려고 애쓰는 것이었다.성도윤과 차설아는 많은 일을 함께 겪었다. 행복한 추억, 잔인한 장면과 복잡한 기억이 머릿속에 축적되면서 과부하가 되었다.그래서 성도윤은 스스로 슬프고 아팠던 기억을 잊고 행복한 기억만 간직하려고 했다.“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소영금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성도윤이 자극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물어보지 않으려 했지만 원이를 만나게 되어 기뻤던 소영금은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소영금은 성도윤이 차설아의 마음을 얻게 되면 매일 원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성도윤은 차분하게 대답했다.“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차설아랑 화해할 마음이 없다는 뜻은 아니지? 네 아이가 다른 남자를 아빠라고 부르는 걸 지켜만 볼 셈이야? 너는 원래 정이 없어서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절대 용납할 수 없어!”소영금은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성도윤은 아버지처럼 어설프고 여자의 마음을 하나도 몰랐다.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도 않고 시간만 끌면서 여자를 괴롭혔다.‘도윤이가 나의 성격을 조금이라도 닮았다면 진작에 차설아랑 화해하고 셋째, 넷째까지 낳았을 거야. 차설아가 그동안 먼저 다가와 주었으니 이제는 도윤이가 나설 차례인데 어쩌려고 그러는지...’“대표님이 차설아 씨와 화해하고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세요?”곁에 있던 진무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당연한 걸 왜 물어?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는데 그것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잖아.”소영금은 팔짱을 끼면서 당당하게 말했다.“하지만 예전에 차설아 씨와 대표님의 사주가 상극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두 분이 함께 있으면 불행한 일만 생긴다면서 엮이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진무열은 계
성도윤의 말을 들은 원이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어린아이 특유의 순진함은 숨길 수가 없었다.“약속대로 꼭 와야 해요. 저랑 엄마를 보러 오지 않으면 또 100점을 깎을 거예요.”“걱정하지 마. 이제부터 아빠는 너랑 한 약속을 지킬 거야. 이리 와, 손가락 걸고 약속하자.”성도윤도 웃으면서 손가락을 내밀었다.“흥! 손가락 걸고 약속하는 건 어린아이들이 하는 짓이거든요? 정말 유치해서 못 봐주겠어요.”원이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투덜거렸지만 재빨리 달려가서 성도윤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이렇게 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다음에 손바닥을 이마에 대면 도장을 찍는 거예요.”원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손바닥을 이마에 갖다 댔다. 민이 이모는 원이를 데리고 병원을 나섰다. 그 뒤로 소영금이 따라오면서 말했다.“벌써 가시는 거예요? 조금 더 얘기를 나누다가 가시지 그래요. 원이는 아빠랑 잘 얘기했어? 원이를 기억해 냈대?”소영금은 어렵게 만난 원이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일초라도 더 눈에 담고 싶어서 두 사람의 뒤를 계속 따라왔다.“네! 그래서 1점을 주기로 했어요.”원이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사실 소영금과 같이 있은 시간이 많지 않아서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게다가 차설아의 편에 서면서 소영금과 성도윤을 전부 적이라고 생각했었다.소영금과 성도윤이 차설아를 괴롭혔기에 점수를 많이 깎였고 점수를 더하려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정말 다행이야. 너한테 말하지 않았지만 네 아빠는 예전부터 아팠었어. 그래서 너랑 네 엄마를 잊은 것이니 네 아빠를 탓하지 말아 주렴. 네 아빠를 용서해 줄 수 있겠어?”소영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도윤과 원이가 잘 지내게 되면 소영금은 앞으로 원이를 더 자주 볼 수 있었고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용서할지 말지는 제가 정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엄마가 용서한다고 하면 저도 생각해 볼게요. 그리고 마이너스 99점에서 점수를 더 깎을지 아니면 더할지는 그분이 알아서 할 거예요.”원이는 팔짱을 낀 채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