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겠어요!”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칠색 유리병과 신선한 방울토마토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저택 거실로 들어섰다.성도윤의 침실은 2층에 있었다. 보통 그의 방에 함부로 접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차설아는 방울토마토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남자의 침실로 갔다.처음에는 방문 앞에 놓고 가려 했지만, 이렇게 귀중한 물건을 밖에 두면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몇 번을 망설인 끝에 그녀는 결국 방에 가져다 놓기로 했다.그녀는 문손잡이를 비틀어 보았다. 뜻밖에도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쉽게 스르륵 열렸다.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비틀어 연 것이 아니라, 누군가 안에서 연 것이다.방 안에서는 우뚝 서 있는 성도윤이 보였다. 머리가 촉촉한 그는 윗옷을 입지 않아 근육이 한눈에 보였다. 아래에는 대충 회색 캐주얼 바지를 걸친 그의 모습은 섹시하면서도 소탈한 느낌을 주어 그야말로 매력적이었다.차설아는 목까지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즉시 돌아서고는 말을 더듬었다.“미, 미안해. 당신이 집에 있는 줄 몰랐어. 난 아무것도 못 봤어!”금방 샤워를 마친 남자는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있었다. 차설아의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잘생긴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고, 여전히 빙산처럼 차가웠다.“왜 왔어?”남자는 퉁명스럽게 물었다.여전히 차설아에게 화가 나 있고, 그녀가 눈에 거슬리는 모양이다.그도 그럴 것이지, 어딜 가나 오만하고 당당하던 프린세스 성도윤이 그런 비굴한 고백을 하고, 또 무자비하게 거절당했으니 마음이 불편한 건 당연했다. 가능하다면 눈앞의 여자를 묶어 우주로 영원히 보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오해하지 마. 칠색 유리병을 돌려주려고 왔으니까. 마침 당신이 집에 있으니 직접 돌려줄게. 앞으로 당신이 후회하고 날 찾아와서 내놓으라고 하면 어떡해.”차설아는 여전히 성도윤에게 등을 돌리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당당하게 말했다.그의 건강을 걱정해서 이 보물을 돌려준다는 것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다.성도윤은 덤덤한 눈빛으로 별말
남자의 소중한 부위는 가장 취약했기에 상처를 입으면 그 심각성은 상황에 따라 달랐다.만약 성도윤이 이거로 인해 생육 능력이 저하된다면 반드시 자기를 찾아 따질 것이니 차설아는 절대 그 책임을 질 수 없었다. 방심하면 자칫 성도윤에게 당할 수 있으니 반드시 단단히 정신을 차려야 했다.그 모습을 본 성도윤은 얼굴까지 붉으락푸르락해지며 여자의 손목을 꼭 잡고는 차갑게 말했다.“차설아, 그만하지? 나를 언제까지 능욕할 셈이야?”“뭐? 내가 언제 당신을 능욕했다고 그래? 방금 세게 맞았으니 혹시나 모를 경우를 대비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면 좋잖아. 본인이 자기 몸을 아껴야지. 내가 좋은 마음으로 의사를 불러주겠다는데 왜 화를 내? 정말 나의 호의를 몰라주네. 나도 당신이 유명한 회사 대표님이라는 걸 알고 있어. 체면을 차리고 싶겠지. 병원에서 그 부위를 검사받는 게 얼마나 쪽팔리겠어. 그래서 내가 익명으로 도와주겠다는데 왜 내가 당신을 능욕하고 있다고 생각해? 난 분명을 당신을 생각해서 그러는 거라고.”차설아가 씩씩거리며 말했다.“허, 나를 생각해서 그러는 거라고?”분노의 성도윤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그는 손쉽게 여자를 방으로 끌어들인 다음 방문을 걸어 잠갔다.차설아는 일이 생각 밖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느껴 어색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왜 이래? 둘밖에 없는데 문은 왜 잠가? 다른 사람이 알게 된다면 우리를 오해할 거라고.”“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면 뭐 어때. 크게 달라질 거 있을까?’성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깊은 눈망울로 품 안에 안긴 여자를 바라봤다.“도윤 씨 그만해. 내가 오늘 당신에게 칠색 유리병을 준 것도 당신이랑 거리를 두기 위해서야. 그런데 이러면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냐고. 당신...”“너무 늦었어.”성도윤은 인내심을 잃었다. 그는 평소의 도도한 모습과는 다르게 거칠게 차설아를 끌어안고는 2미터가 넘는 큰 침대로 곧장 향했다.“당신 나
“앞으로 정말 거기를 쓰지 않아도 되는 생각이면, 어디 한 번 해봐.”차설아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발로 성도윤의 그 부위를 향해 걷어차려고 했다.“내가 못 할 줄 알아?”성도윤은 차설아의 협박에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깊은 눈망울의 그는 차설아의 빨간 입술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당장이라도 키스를 퍼부을 셈이었다.“안돼!”차설아는 괴로운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지만 성도윤의 입술은 끝내 다가오지 않았다.“나 성도윤이 여자라면 안 가리고 다 덮치는 사람인 줄 알아?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강요하는 걸 제일 싫어하니까 이제 가.”성도윤이 시큰둥하게 말하고는 차가운 표정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차설아에게 더는 눈길을 주지 않았는데 마치 그녀를 한 번이라도 더 쳐다보면 스스로 치욕을 떠안는다는 것처럼 말이다.차설아도 드디어 그의 품에서 벗어났지만 왠지 모르게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그녀도 침대에서 일어나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옷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떠나기 전, 그녀는 남자의 도도한 뒷모습을 보더니 뭔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아무 말도 내뱉지 않았다.“설아야, 물건은 잘 갖다줬어?”차설아가 계단을 내려가자 마침 정원에서 돌아온 성주혁과 마주쳤다. 그리고 옆에는 그를 부축하고 있는 서은아도 있었다.“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요? 도윤이랑 이혼한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여기가 어디라고 와요?”서은아는 성도윤의 방에서 나온 차설아를 보더니 마치 남편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한 아내처럼 마구 화를 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녀가 이 집 여주인인 줄 알 것이다.차설아도 전혀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그녀는 계단 위에서 아래층에 있는 서은아를 내려다봤다.“이혼한 사이면 서로 방에 드나들 수 없다는 규정이 있나요?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이혼한 남자와 거리를 둬야 하는 거 아니에요?”“뭐?”서은아는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어 성주혁의 팔을 꼭 잡고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 저 사람 좀 봐요. 어떻게 저렇게 매너가 없을 수 있죠? 저게
“뭐? 정말 차설아 씨에게 고백을 한 거야? 재결합하자고?”서은아의 얼굴은 일그러졌다.성도윤에게서 직접 그 말을 들으니 서은아는 마음이 괴로울 뿐이었다.“진짜야.”성도윤이 스스럼없이 인정했다.“하지만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야. 다시는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 않을 거야.”말을 마친 그는 무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차설아의 옆을 지나갈 때도 여전히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차설아는 멍한 채 제자리에 서 있었고, 얼굴도 빨개졌다.그녀가 방금 일부러 서은아를 도발하기 위해 우쭐거리며 그 말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사자인 성도윤이 그 말을 듣게 될 줄이야.‘나 진짜 없어 보이네. 여자애가 자랑하는 것처럼 더 보이지 않을 텐데 말이야. 왜 나는 나도 모르게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으로 되었지?’성도윤의 말을 들은 서은아는 잔뜩 신이 났다. 눈이 사라질 만큼 활짝 웃으면서 예전처럼 똑같이 성도윤을 끌어안고는 친구인 척 스스럼없이 행동했다.“이게 맞지. 네가 정말 차설아 씨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린다면 내가 제일 먼저 너에게 실망할 거야. 넌 성도윤이라고. 해안에서 아무도 쉽게 다가올 수 없는 일인자야. 그러니까 정신을 차려, 알겠어?”잘생긴 성도윤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고, 그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됐어. 쓸데없는 말은 이만하고. 내가 오늘 왜 너를 찾아왔는지 알아?”서은아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성도윤에게 말했다.“대충 짐작은 가지.”성도윤이 거실에 있는 소파 위에 앉고는 덤덤하게 대답했다.“역시 내 친구야. 똑똑해!”서은아는 남자를 더 꼭 끌어안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 생각은 어때? 그냥 어르신들이 마음을 놓으실 수 있게 결혼을 하는 건 어때?”그 말을 들은 성주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은아야, 뭐가 그렇게 성급해? 네가 네 할아버지보다 더 급해하는 것 같은데? 네 할아버지가 저번 주에 그 얘기를 꺼낸 게 아니야? 왜 도윤이랑 벌써 결정을 내리려고 해?”서은아가 대답했다.“할아버지께서
차설아의 말에 서은아와 성주혁도 궁금한지 성도윤을 쳐다보면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성도윤의 표정에는 그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았다.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덤덤하게 대답했다.“서로 윈윈하는 비즈니스 정략결혼이라고 생각하는데?”차설아는 조금 흠칫했다.성도윤이 이렇게 솔직하게 대답할 줄은 몰랐다.그래서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씁쓸하기도 했다.‘실패한 결혼 경험과 서로 윈윈하는 정략결혼. 정말 나를 끝까지 무시하는 발언이네.’서은아는 행복에 겨워 두 눈을 반짝였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성도윤에게 다시 한번 확인했다.“도윤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정말 우리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야?”성도윤은 서은아가 아닌 차설아를 빤히 쳐다보면서 도발하듯 씩 웃으며 말했다.“적어도 실패했던 그 결혼 경험보다는 낫지. 우리 엄청 잘 어울릴 거야.”“그래? 잘 생각했어!”서은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성도윤의 손을 잡고는 기대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더 기다릴 것도 없겠네. 오늘 당장 가서 혼인신고부터 하자. 우리가 워낙 오랫동안 서로 알고 지내왔잖아. 나 좋은 아내로 될 자신이 있어.”“안돼!”차설아는 자신의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뺏긴 듯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눈길을 돌렸다.특히 깊은 눈망울의 성도윤은 마음이 복잡했다.그는 무정한 차설아가 자기를 신경 쓰지도 않으면서 왜 여자 문제에는 간섭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서은아의 얼굴색은 확 어두워졌다. 그녀는 적의가 가득한 눈빛으로 차설아를 노려보며 쏘아붙였다.“차설아 씨 혹시 경찰인가요? 별일에 다 참견하네요. 나랑 도윤이가 혼인신고를 한다는데 차설아 씨와 무슨 상관이에요? 당신이 반대할 자격도 없고요.”성주혁은 서은아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정색을 하고는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은아야, 우리 설아에게 화를 내지 마. 만약 네가 정말 도윤이와 결혼하고 싶다면 너에게 내려진 첫 번째 과제는 바로 설아를
차설아가 떠난 후 서은아 얼굴에 띤 미소는 더 깊어졌다.“설아 씨 드디어 떠났네. 이제 우리 둘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그녀는 고개를 들어 성도윤을 바라보고는 그의 팔을 꼭 안으며 말했다.“가자, 도윤아. 우리 혼인 신고하러 가자.”성도윤은 그녀에게서 팔을 빼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장난으로 말한 걸 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야?”방금까지 밝았던 서은아의 얼굴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녀는 이 잔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조심스럽게 성도윤을 향해 물었다.“도윤아,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장, 장난이라니?”“내가 혼인 신고를 하겠다는 거. 장난이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성도윤이 싸늘하게 말하고는 선을 명확하게 그었다.“방금까지 서로 윈윈하는 정략결혼이라며? 우리 두 사람 잘 어울릴 거라며?”“그것도 장난이야. 난 우리 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쉽게 눈치챘을 줄 알았는데.”“아니, 그걸 어떻게 알아.”서은아는 깊은 모욕감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다른 장난은 몰라도 이런 일로 장난을 치면 안 된다는 거 몰라? 결혼이 장난이야? 네가 입 밖으로 뱉은 말이니 나는 당연히 그렇게 믿었다고. 난...”“너도 말했다시피 다른 건 몰라도 유독 결혼은 장난칠 수 있는 거 아니잖아. 그래서 서로 잘 어울린다고만 해서 결혼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해. 서로에게 책임감 없는 일이기도 하고, 결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해.”성도윤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는 차갑고 도도한 사람이었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아주 신중했다. 차설아를 도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절대 이런 장난도 치지 않았을 것이고.“하하하, 이거야말로 장난 아니야? 나와 결혼하는 게 결혼에 대한 모독이라면 그때 차설아 씨랑은 왜 결혼했어? 두 사람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거 아니잖아. 두 사람 전에 알던 사이도 아닌데 3일 만에 결혼식 잡았어. 그런데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온 나와 결혼하는 건 결혼에 대한 모독이야?”서은아는 격앙된 목소리로 성도윤에게 따져 물었다
차설아는 성씨 가문 저택을 떠난 후 성도윤과 서은아가 혼인 신고를 하기 전에 한발 먼저 미스터 Q와 혼인 신고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좀 너무 갑작스럽긴 했다. 게다가 미스터 Q와 혼인 신고를 했다가 후회하게 되면 그녀는 이혼을 두 번이나 한 여자로 될 수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두 아이의 양육권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녀는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다.차설아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타이어에 나사가 박혀 바람이 빠졌고 차는 도로 옆에 멈췄다.스포츠카를 운전하던 서은아가 클랙슨션을 울리더니 뒤에서부터 천천히 차설아의 차 옆에 멈춰 섰다.“차설아 씨, 타이어 펑크 났어요? 정말 안됐네요. 내가 태워다줄까요?”서은아는 머리를 창문에 기대면서 입꼬리를 올리더니 도발의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 이제 보험 회사 부를 거예요.”차설아는 서은아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 그녀의 말에 대답하고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보험 회사 부르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데요. 내 차에 견인고리가 있거든요. 수리센터까지 끌고 갈 수 있어요. 돈도 안 받고요...”서은아는 똑 클랙슨션을 울리고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신세 진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요. 어떻게 보면 차설아 씨는 내 선배라고도 할 수 있잖아요. 이 정도 도움은 줄 수 있죠, 안 그래요?”차설아가 고개를 들고는 우쭐거리는 서은아를 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선배요?”“차설아 씨는 도윤이의 전처잖아요. 나는 곧 도윤이의 아내가 될 사람이고. 굳이 따지자면 선배 아니겠어요?”“...”차설아는 어이가 없었다.서은아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겉으로는 덤덤한 척하지만 사실 엄청 화가 났죠? 나랑 도윤이가 언제 결혼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아요? 우리의 결혼식에 어디에서 열릴지 알고 싶지 않아요?”차설아는 눈썹을 치켜들더니 솔직하게 대답했다.“뭐, 사실 궁금하긴 하네요. 두 사람 혼인 신고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도윤 씨는 따라오지 않은 거죠? 아까는 당장이라도 구청에 갈 기세더니.”서은아의
뒤에서 차 한 대를 끌고 있는데도 커브 길에서 차 몇 대나 앞질렀는데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레이싱 좋아해요?”조수석에 앉은 차설아가 물었다.“나랑 도윤이는 모두 F-C1 레이싱 클럽에서 유명한 레이서예요. 내가 레이싱을 잘하는 건 맞지만 그래도 도윤이보다는 조금 못하죠. 이는 내가 도윤이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 녀석은... 못 하는 것 없는 천재예요. 무슨 일을 하든 탑 클래스를 선보이니 어떻게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요?”말하는 사이에 서은아는 또 한 대의 차를 앞질렀다.차설아는 깜짝 놀라 다급하게 손잡이를 쥐었다.“세상에, 좀 천천히 몰아요. 여기 커브가 60도는 되는 것 같은데 죽으려고 작정했어요?”“걱정하지 말아요. 고작 60도 커브로 안 죽어요. 내가 알아서 운전할게요.”서은아가 자신있게 말했지만 속도는 여전히 줄이지 않았다.차설아는 어이가 없어 눈을 희번덕거렸다.“서은아 씨야 안전하겠죠. 이런 커브에 이런 속도까지. 자칫하면 조수석에 앉은 내가 목숨을 잃을 거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차설아는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듯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리고 그녀는 복잡한 눈빛으로 서은아를 바라봤다.운전대를 잡고 있던 서은아는 고개를 돌려 차설아를 힐끔 바라봤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짧은 순간의 눈빛이었지만 차설아는 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었다, 서은아는 일부러 이런 속도로 달리고 있다는 것을. 경고일 수도 있고, 작정하고 그녀를 죽이려는 속셈일 수도 있다.“서은아 씨, 아직도 많은 걸 숨기고 계시네요.”차설아는 서은아의 차분한 옆모습을 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방금까지 그녀는 서은아가 말은 날카롭게 하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명문 가문의 그녀가, 심지어 성도윤 무리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결코 만만하진 않을 것이다. 서은아가 아닌 그녀야말로 ‘순진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사실 나는 엄청 단순한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이 나를 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