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75화

Author: 배시아
차설아는 그제야 그를 놓아주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부터는 말 걸기 전에 먼저 거울을 한 번 봐봐, 알겠어? 이제 꺼져!”

“언니 완전 멋있는데!”

배경윤이 조수석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고는 재밌는 구경을 하는 듯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가 너무 쉽게 넘어간 거 아니야? 저런 찌질한 남자들이 매일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괴롭히는지 몰라? 손을 왜 끼워둬? 제대로 혼내줘야지!”

남자는 그 말을 듣더니 두려움에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아 허겁지겁 도망쳤다.

차설아는 다시 차에 올라타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대충 겁을 주면 되잖아. 나 이번에 돌아온 거, 너무 많은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돼.”

“알겠어! 언니 말이 다 맞아!”

스포츠카는 다시 출발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태양을 맞으며 굉음을 낸 채 도로를 질주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카메라에 잡힌 걸 두 사람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몇 시간 후, 차는 도심에 있는 배경윤의 개인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이 아파트는 산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배경윤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배경수도 이 아파트의 존재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당분간 여기서 지내. 보안이 엄청 잘 되어 있거든. 10년을 살아도 아무도 언니의 행적을 알아차리지 못할 거야.”

차설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괜히 무서운 마음이 드는데? 네 말은 내가 여기서 살해를 당한다면 10년이 지나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다는 거 아니야?”

“누가 언니를 살해할 수 있어야 말이지. 언니 싸움 실력이 대단한데 누가 감히 언니한테 손을 쓰겠어? 오히려 언니한테 당하겠지!”

“뭐야? 왜 네 말이 점점 이상하게 들리지? 솔직하게 말해봐. 너 무슨 꿍꿍이가 있어? 날 암살하려고 그래?”

차설아가 말하고는 배경윤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혔다.

배경윤은 그녀의 손길을 피하면서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두 사람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지만 함께 있으면 여전히 세 살짜리 아이처럼 유치하게 장난치곤 했다.

그러다가 차설아는 문득 뭐가 생각났는지 자리에서
Locked Chapter
Continue Reading on GoodNovel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선 이혼, 후 집착   제376화

    원이는 뭔가를 고민하는 듯 어른처럼 턱을 괴고는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엄마, 제가 생각해 봤는데요. 저는 엄마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보고 싶지도 않고요.”녀석은 겨우 4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완벽한 이목구비를 자랑했다. 그야말로 ‘리틀 성도윤’이었다.차설아는 겨우 웃음을 참으며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그래? 우리 원이는 엄마가 하나도 안 좋아? 엄마가 하나도 보고 싶지 않아? 그럼 내일은 엄마가 좋아질 거야? 모레는 엄마가 보고 싶을 거야?”“...”원이는 어이가 없는지 미간을 구겼다.“엄마, 제가 장난하는 것처럼 보여요? 엄마는 꼼꼼하지도 못하고 장난치기만 좋아하잖아요. 혼자 다른 도시로 가면 저는 엄마를 보호할 수도 없다고요. 그러다가 엄마가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이라도 당하면 어떡해요? 엄마가 많이 걱정된다고요.”차설아는 드디어 원이가 왜 시무룩한 얼굴로 있는지 알아차리고는 마음이 따뜻해졌다.“알겠어,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는 그냥 며칠만 와 있는 거야. 곧 돌아갈 거니까 원이는 걱정 마. 달이랑 엄마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있어!”두 아이는 하늘이 그녀에게 준 천사 같은 선물이었다.달이는 애교쟁이였다. 얼굴도 귀엽게 생기고 말도 예쁘게 해서 차설아를 즐겁게 하곤 했다.원이는 반대로 성숙한 어른 같았는데 어려서부터 차설아를 보호하려고 했다.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아도 날카로운 의견을 낼 때가 많았기에 가끔은 어른인 차설아마저 감탄을 자아내곤 했다.그리고 행동파였기 때문에 항상 조용히 해야 할 일을 잘 해냈다. 쓰레기 같은 그의 아빠와 닮았다고 할 수도 있었다.이어서 배경윤이 말했다.“그래, 원이야. 엄마는 걱정하지 마. 경윤 이모가 있으니까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경윤 이모가 잘 보호할게!”원이는 여전히 어른처럼 입을 삐죽 내밀고는 말했다.“경윤 이모를 어떻게 믿겠어요? 경윤 이모 자신이나 잘 챙겨요!”“뭐?”맞는 말이라 배경윤은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흥, 엄마는 거짓말쟁이예요. 어디를 가든

  • 선 이혼, 후 집착   제377화

    샤워를 끝낸 후, 차설아와 배경윤은 핑크색 잠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서로 속마음을 털어놨다.“언니, 솔직하게 말하면 언니가 너무 부러워요!”배경윤은 차설아의 몸에 기대 눕고는 감개무량한 얼굴로 말했다.“봐봐, 언니는 지금 얼굴 되지, 돈 많지.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이도 둘이나 있지. 무엇보다... 귀찮게 구는 남편이 없잖아. 수많은 많은 여자들의 워너비라고. 괜히 나도 시험관으로 쌍둥이를 낳고 싶네!”차설아는 어이가 없었다.“다시 잘 생각해 봐.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네. 한 번 낳으면 다시 못 집어넣는다고. 특히 아이들은 세 살이 되기 전에 엄마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아. 게다가 감기 걸리거나 열이 나면 정말 머리가 아프거든!”민이 이모와 함께 원이와 달이를 키운 4년을 되돌아보면 차설아는 마음이 찡했다.돈이 많다거나, 도울 사람을 몇 명 더 모신다고 해서 절대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엄마는 임신한 순간부터 아이에게 모든 관심을 쏟아야 하니 말이다. 아이가 아프거나, 장난을 치거나, 또는 기분이 안 좋다거나. 이 상황들은 모두 자신의 기분에 영향을 준다.“원이가 세 살 되던 해에 새벽 한 시에 갑자기 열이 거의 40도까지 나는 거야. 애가 막 경련을 일으키고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어. 대단한 의술을 가지고 있는 민이 이모가 온갖 방법을 다 썼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어!”“그때 마음이 조급해서 미칠 지경이더라고. 결국 바보처럼 모래에 무릎을 꿇고 캄캄한 하늘만 바라보며 밤새도록 하느님께 빌었었지. 목도 다 쉬고 무릎도 너무 오래 꿇은 나머지 부었어...”차설아는 지금도 절망스러웠던 그날 밤을 떠올리면 몸을 떨고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그런 일도 있었어? 난 원이랑 달이가 별 탈 없이 지금처럼 귀엽게 쑥쑥 큰 줄 알았지!”배경윤은 차설아의 팔을 꽉 끌어안고는 애틋한 얼굴로 말했다.“언니, 고생 많이 했구나. 왜 나랑 오빠한테는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어?”차설아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뭐가 자랑이라고 말해

  • 선 이혼, 후 집착   제378화

    “뭐야?”차설아는 아직 잠이 덜 깬 채로 느긋하게 하품을 하고는 힘없이 침대 머리맡에 기댔다.“언니 실검에 올랐어, 그것도 실검 1위야.”배경윤은 휴대폰을 든 채 차설아에게 다가가고는 실검에 뜬 동영상을 눌렀다.동영상에는 어제 차설아가 국도에서 허리 숙여 스포츠카를 수리하고, 또 패기 넘치는 모습으로 말을 걸어온 남자를 혼내는 내용이 담겼다.화면 속의 차설아는 뽀얀 피부와 늘씬한 다리, 아름다운 얼굴을 자랑하고 있었다. 동시에 당돌하고 자신 있는 모습, 섹시하고 굴곡 있는 몸매, 쉽게 건드릴 수 없다는 성격까지 모두 드러냈다.네티즌들은 그녀에게 제대로 반한 듯했다.인기 스타 못지않을 정도로 댓글은 쉴 새 없이 쏟아졌다.“뭐야? 저 당돌한 모습 너무 멋있는데? 완전 내 스타일이야.”“여자라고 다 힘이 약한 줄 알아? 저 남자 제대로 겁먹었겠는데?”“아, 너무 멋있잖아. 나 사랑에 빠진 것 같아. 1분짜리 동영상을 몇 번 돌려봤는지 몰라!”동영상은 수많은 플랫폼에 퍼졌고, 심지어 다시 재밌게 편집한 동영상까지 널리 퍼지게 되어 차설아는 어이가 없었다.“하하하, 네티즌들이 정말 대단한데. 언니가 모든 남자를 물리칠 수 있을 것 같대. 해안으로 와서 언니한테 제대로 당해보고 싶다는데?”배경윤이 깔깔 웃으면서 댓글들을 읽었다.동영상은 워낙 선명했고, 또 차설아의 얼굴은 모자이크되지 않았기에 벌써 그녀의 신상을 알아낸 네티즌들이 있었다.“언니,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겠다더니. 오자마자 실검에 올랐어! 어떻게 사람 눈에 띄지 않겠어?”배경윤이 이마를 짚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하지만 그녀는 곧이어 차설아의 팔을 꼭 끌어안더니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흔적 없이 사라졌던 언니가 갑자기 돌아온 걸 어떤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차설아는 콧방귀를 뀌더니 차가운 웃음을 짓고는 말했다.“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이.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주목하게 만들어야겠어!”“그래? 어떻게

  • 선 이혼, 후 집착   제379화

    배경수는 분노가 끓어올라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이구나? 도대체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어? 나한테 맞고 싶지 않으면 지금 어디 있는지 당장 말해!”“오빠, 그건 말해줄 수 없어. 언니와 약속을 했거든. 이번에 언니가 돌아오는 일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알리면 안 된다고 말이야.”“배경윤, 너 아직도 나랑 말장난을 해? 나한테 진짜 맞는다?”배경수가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동영상이 온 오전 실검에 올라서 네티즌들도 다 알아. 누가 보스가 지금 해안에 있는 걸 몰라?”배경윤은 더는 속일 수 없다고 생각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이고는 옆에 있는 차설아에게 말했다.“언니, 이것 좀 봐봐. 이게 바로 오빠가 날 평소에 대하는 모습이야. 이게 오빠 진짜 성격이라고. 완전 조증 환자라고. 언니 앞에서는 따뜻하고 인내심 있는 훈남인 척하는데 다 거짓이야...”“너 누구랑 말하는 거야? 보... 보스가 지금 바로 옆에 있는 거야?”배경수는 순간 긴장한 마음이 들어 목소리 톤을 갑자기 낮추고는 말했다.“보스, 이번에 해안으로 돌아오는 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혹시라도 나쁜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오래 있을 생각이 없어 너한테 말 안 했어.”차설아가 말하고는 또 배경수를 놀리기 시작했다.“원래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었어? 난 또 넌 화낼 줄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지. 오빠로서 동생을 그렇게 괴롭혀도 되겠어?”“그런 게 아니라!”배경수는 다급한 마음에 또 소리를 질렀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나야 원래 따뜻하고 침착한 사람이지. 하지만 이번에 경윤이가 너무 철없게 굴어서 내가 조급한 마음에 소리를 지른 거야...”“하하하!”배경윤은 참다못해 웃음을 터뜨렸다.“오빠, 좀 평소처럼 행동해. 목소리는 왜 그렇게 낮춰? 어디 정상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야? 제발 리얼하게 살자고!”배경수가 미소를 짓고는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경윤아, 이번 달 용돈 너무 많아서 정신을

  • 선 이혼, 후 집착   제380화

    실검 사건은 차설아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그녀는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옅은 화장을 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계신 산소로 가서 인사를 하려고 했다.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차설아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지 9주년이 되는 날이었다.“내가 같이 갈까?”배경윤이 따뜻한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아, 나 혼자 가도 돼.”차설아는 해안을 떠난 지 4년 만에 돌아왔고, 부모님께 드리는 첫인사이니 따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그녀는 어제 그 빨간색 페라리를 운전하고 산소가 있는 곳까지 질주했다.8월의 한여름이었지만 울창한 산소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아주 조용했다.차설아가 주차하고는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하얀 데이지꽃을 손에 든 채 부모님이 계신 산소 앞으로 다가왔다.그녀가 충분히 일찍 왔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 산소 앞에는 이미 꽃다발이 놓여 있어 차설아는 깜짝 놀랐다.누가 봐도 값비싼 꽃다발이었다. 몇 년 전에 그녀가 보았던 꽃다발과 똑같았다.‘그동안 누가 몰래 엄마 아빠를 찾아왔던 거야? 누가 이렇게 정성이지?’차설아가 생각했다.몇 년 전에도 누군가는 산소 앞에 정교한 엠버 펜던트 하나를 남겨두고 갔었다.공교롭게도 성도윤은 똑같은 엠버 펜던트가 있었다.그래서 차설아는 그동안 부모님을 찾아온 사람이 성도윤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또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생각했다.성도윤처럼 차가운 사람이 자기한테도 차갑게 굴었는데 왜 정성을 다해 그와 아무 상관 없는 부모님을 찾아뵈러 오겠는가?게다가 그녀는 성도윤과 이혼한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고,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아 그야말로 서로 남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 성도윤은 더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올 리가 없었다...“됐어!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자고!”차설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이 생각들을 떨쳐버리기로 했다.‘엄마 아빠가 좋은 분들이셨으니까 계속 그들을 그리워하고 걱정하는 친구가 있었던 걸로 생각하자고. 그래서 매해 엄마 아빠에게 찾아와 꽃을 선

  • 선 이혼, 후 집착   제381화

    “설아야, 역시 너구나. 드디어 만나게 되었네!”이 사람은 바로 차설아의 날라리 삼촌인 허광희였다.“또 당신이에요?”차설아가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왜 계속 이 주변을 맴도는 거예요? 엄마, 아빠에게 인사하러 찾아올 때마다 재수 없는 당신을 만나게 되는군요.”“휴, 설아야, 내가 욕을 먹을 만해. 나 허광희는 재수 없는 사람 맞아. 하지만 하느님도 내 정성에 감동하셨나 봐. 해마다 여기서 널 기다렸는데 오늘 드디어 널 만나게 되었네...”허광희가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넌 모르겠지? 그동안 삼촌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삼촌이 너를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그래?”차설아가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내가 보고 싶었어요? 내 돈이 보고 싶은 거겠죠.”“그게...”허광희는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왜요? 4년 전에 성도윤이 준 100억을 벌써 다 썼어요?”“그게, 진작 다 썼지!”허광희가 손을 휙 젓더니 쭈볏쭈볏 말을 이어갔다.“그 100억으로 주식이나 투자하려고 했는데 운이 안 좋았지 뭐야... 1, 2년 사이에 빈털터리가 됐어. 본전도 다 떨어졌다고!”“그래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죠?”차설아가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고는 말했다.“설마 내가 돈을 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한 건 아니죠?”그녀는 절대 허광희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그때 허광희는 차씨 가문을 도와주기는커녕 돌까지 던졌었던 일을 차설아는 똑똑히 기억해 뒀다.나중에 이 일을 다시 따지지 않은 것도 허광희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그건 아니고. 하지만 나 지금 개과천선해서 내 손으로 돈을 벌고 있어. 해마다 여기서 널 기다린 건 피를 나눈 우리의 정을 생각해서야. 과거의 원한은 제쳐두고 다시 서로 생각하고 챙기는 가족으로 되길 바라.”허광희는 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4년이라는 시간은 충분히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었다.적어도 지금의 허광희는 예전처럼 날라리 같아 보이진 않았다.차설아는 변화된 모습의 허광희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 선 이혼, 후 집착   제382화

    “성도윤 전화번호도 있어요?”차설아가 의외인 얼굴로 물었다.기억 속의 성도윤은 워낙 차갑고 인정사정없는 사람이라 함부로 남에게 전화번호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전처의 삼촌에게는 왜 ‘특별히’ 챙기는 거지?전화가 연결되자 허광희는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그럼, 내가 그래도 웃어른인데. 우린 모두 한집안 식구잖아. 전화번호쯤은 주지!”하지만 허광희는 곧바로 난감한 얼굴을 보였다.“뚜뚜뚜”한참 동안의 연결음이 이어졌지만 성도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허광희는 다시 한번 그에게 전화를 했는데 바로 끊기게 되었다.차설아가 팔짱을 끼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네, 제대로 체면을 살려주네요.”“캑캑!”허광희는 어색한 마음에 헛기침을 하고는 애써 괜찮은 척했다.“조카사위가 워낙 바쁜 사람이라 일이 많은가 보지. 점심때 다시 전화해 볼게. 평소에는 전화를 받는데 말이야. 나는 그렇다 쳐도, 너의 체면을 봐서라도 전화를 받아야 하지 않겠어?”“제가 다시 한번 말할게요. 저는 성도윤과 이혼한 지 오래되었어요. 자꾸 조카사위라고 하지 마세요. 그렇게 성도윤이 좋으면 혼자 잘 보이려고 노력하세요, 괜히 저까지 끌어들이지 말고요!”차설아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알겠어, 내가 주제넘게 함부로 지껄였네...”허광희는 자기 뺨을 때리더니 비굴한 자세로 말했다.“하지만 난 꼭 너와 성도윤 대표님에게 음식을 대접해야겠어. 오랫동안 너희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살았거든. 지금은 개과천선했고 착실하게 살아가려고 해. 좋은 아빠, 좋은 남편, 또 좋은 삼촌으로. 내가 오늘 두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지 못한다면 평생 이 짐을 떠안고 살아가야 할 거야. 엄마를 봐서라도 오늘 와주면 안 되겠어?”“...”차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허광희를 위아래로 살펴봤다.그녀는 적어도 철없던 삼촌이 정말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적어도 전처럼 가난하면서도 명품만 고집하던 그가 아니었다.지금의 그는

  • 선 이혼, 후 집착   제383화

    허민희는 허광희의 유일한 딸이었다. 어려서부터 차설아의 껌딱지였고, 차설아의 열성 팬이었다.만약 그때 허광희가 허민희에게 차설아를 연락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없었다면 지금 두 사람의 사이는 더 좋을지도 모른다.허광희의 집은 시내의 평범한 동네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방이 세 개 있는데 20여 평의 평범한 집이었지만 매우 아늑했다.차설아가 집에 들어설 때, 숙모 장희진은 주방에서 채소를 씻고 있었고, 사촌 동생 허민희는 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다들 나와봐, 누가 왔는지 한번 보라고!”허광희가 미소를 지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장희진과 허민희는 거실로 나와 차설아를 보더니 너무 놀라 입을 떡 벌렸다.“어머, 설아 언니. 정말 설아 언니 맞아요? 드디어 설아 언니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네요!”허민희는 차설아를 꽉 끌어안더니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설아 언니, 우리 7, 8년 정도 얼굴 못 본 거 아니에요? 그동안 어디 갔어요? 아빠가 해마다 산소로 가서 언니를 기다렸단 말이에요. 언니가 어디로 가든 언젠간 꼭 고모랑 고모부를 찾아갈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정말 그 일이 이루어졌네요!”차설아가 웃으며 말했다.“민희가 많이 컸네, 지난번에 봤을 땐 어린애였는데!”허민희는 올해 열여덟 살이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그녀는 생기발랄했고 활력이 넘쳤다.“숙모, 오랜만이네요.”차설아가 예의를 갖추며 장희진에게 인사를 건넸다.“그래!”장희진은 현모양처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었다.그녀는 황급히 앞치마에 손을 닦고는 말했다.“다행이야, 이렇게 돌아왔으니!”“됐어, 다들 인사치레 말은 그만해.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 얼른 좋은 술과 음식을 준비해, 오늘 설아뿐만 아니라 성도윤 대표님도 오기로 했거든!”허광희가 장희진을 재촉하며 말했다.“뭐요? 성도윤 대표님도 온다고요? 그게...”장희진은 긴장된 마음에 말까지 더듬었다.그들에게 있어서 성도윤은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높은 사람이 이런 누추한 곳에 오게 된다니!“뭘 말까지 더듬

Latest chapter

  • 선 이혼, 후 집착   제1513화

    성도윤은 차가워진 밤공기보다 소영금이 숨긴 사실이 더 궁금했다. 민이 이모는 젊었을 때부터 차씨 가문에서 일했기에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도 있었다.“조금 쌀쌀해지긴 했어요. 마침 추웠는데 가져다주셔서 감사해요.”성도윤은 문을 열면서 미소를 지었다.“도련님한테 괜히 제가 더 미안해져요. 설아 아가씨는 어릴 적부터 고집이 세고 뒤끝이 길거든요. 아직도 도련님한테 화가 났는지 계속 오두막에서 지내게 하네요. 이 이불을 덮으면 따뜻할 거예요.”민이 이모는 침대 위에 이불을 펴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이모님, 차씨 가문에서 일한 지 몇 년 되셨어요?”민이 이모는 멈칫하더니 어색하게 웃으면서 물었다.“갑자기 그런 건 왜 물으시는 거예요? 도련님이 궁금해할 줄은 몰랐어요.”“이모님처럼 한 가문에서 평생 일하시는 분은 드물잖아요. 게다가 진심으로 차씨 가문 사람들을 생각해 주고 보살펴주는 게 대단해서요.”“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회장님과 사모님이 저한테 아주 잘해주셨어요. 그래서 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는 거고요.”“설아한테서 들었는데 이모님은 대대로 의학을 전공했다면서요? 이모님 아버지는 이름을 날린 의사였고 이모님 실력도 훌륭하다고 들었어요. 사용인이 아니라 의학의 길을 걸으셨다면 더 큰 재부를 누리셨을 텐데, 미래를 포기하고 차씨 가문에 평생을 바쳤다는 게 정말 대단하고 멋져요.”“설아 아가씨가 과장해서 설명한 것 같아요. 저의 실력은 어디 내놓을 만큼 대단한 수준이 아니거든요. 긴급상황이 벌어지면 머리가 하얘져요. 그리고 누군가를 보살피는 게 더 적성에 맞고요. 설아 아가씨는 저를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셨어요. 설아 아가씨와 원이 도련님, 달이 아가씨를 보살피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해요.”민이 이모는 성도윤이 무언가를 물어보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말을 이었다.“도련님, 궁금한 것이 있으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알고 있는 건 전부 알려드릴게요.”“역시 이모님은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계시네요.”성도윤은 어색하게

  • 선 이혼, 후 집착   제1512화

    “무슨 사이냐고?”소영금은 성도윤이 이런 질문을 던질 줄 예상하지 못했는지 몹시 당황했다. 몇 초 후, 소영금은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무슨 사이긴, 사돈이지.”“엄마랑 설아 아버지는 그저 사돈 관계일 뿐이라고요?”성도윤은 소영금의 말을 믿지 않았다. 차설아의 아버지가 일기장에 기록한 내용을 보면 소영금과 차우진은 애틋한 사랑을 했던 사이였던 것이 분명했다.절대 단순한 사돈 관계가 아니었다.“도윤아, 지금 엄마를 의심하는 거야?”소영금은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목소리에 분노가 깔려있었다.“그저 엄마한테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서...”“불안하다고?”소영금은 피식 웃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불안해할 필요 없어. 차설아는 너의 배다른 동생이 아니야. 네 동생이었다면 내가 너랑 차설아가 잘되게 계속 도와주었을 것 같아? 너도 참 단순하다니까...”“엄마는 내가 왜 불안해하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네요. 엄마랑 설아 아버지는 예전에 연인 사이였던 거죠?”성도윤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소영금은 긴 한숨을 내쉬면서 지난날들을 떠올렸다.“그 사람은 이미 하늘나라로 떠나갔어. 나도 살면 얼마나 더 살까? 시간 앞에서 과거는 한없이 초라하고 보잘것없단다. 지나간 일은 그저 지나가도록 내버려둬야 해. 이 일에 대해서 더는 묻지 마.”“하지만...”“도윤아, 늦었으니 너도 일찍 쉬어. 엄마는 늙어서 일찍 자지 않으면 다음 날에 기운이 없어. 너는 그저 설아랑 잘 지내고 차씨 가문과 성씨 가문의 인연을 계속 이어 나가면 돼. 알겠지?”소영금은 성도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해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소영금은 차우진과 연관된 다른 얘기를 절대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몇십 년을 거쳐 겨우 아문 상처를 꺼내면 곪아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알겠어요. 엄마, 시간 될 때 원이랑 달이를 보러 오세요. 네 식구가 함께 지내니까 얼마나 행복

  • 선 이혼, 후 집착   제1511화

    그 뒤로는 전부 차씨 가문에서 벌어진 일이거나 소소한 일상이 담긴 내용이었다. 성도윤의 어머니가 언급되지 않은 일기에서 성도윤은 차설아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게 되었다.차설아의 부모님은 다정하고 상냥한 분이었고 차설아에게 모든 사랑을 퍼부으면서 행복하게 지냈다. 차씨 가문은 다른 재벌가보다 더 가족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문이었다.성도윤은 미소를 지으면서 일기를 읽었다.“오늘은 우리 설아가 3살이 되는 날이다. 내 자식이지만 이렇게 사랑스럽게 클 줄 몰랐다. 설아는 다른 아이들과 사뭇 달랐다. 세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블록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500조각이 되는 블록을 이용해 집을 만들었다. 무려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총명한 기질이 드러나서 얼마나 뿌듯한지 모르겠다.”성도윤은 몇 페이지를 넘기고는 계속해서 읽었다.“시간이 흘러 어느덧 설아의 12살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내는 설아가 더 이상 어린 여자아이가 아니라고 했다.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우리 설아에게도 그날이 찾아왔다. 설아는 여자라서 남자보다 더 많은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지금 느끼는 것보다 수백 배 강한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버지가 되어서 딸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 좋은 남자를 만나게 되면 그 남자에게 설아를 잘 부탁한다고 말해주고 싶다.”성도윤은 눈물을 흘리면서 읽어 내려갔다. 성도윤은 차설아에게 행복한 삶을 선물하지 못했고 차설아가 다치지 않게 보호해 주지도 못했다.성도윤은 자신이 좋은 남편이 아니라고 자책했다.“장인어른, 정말 죄송해요. 그동안 설아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지만 남은 생을 통해 반성하고 설아한테 모든 것을 쏟아부을 거예요. 설아를 보살피면서 행복하게 잘 살게요.”성도윤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두꺼운 일기장을 계속 펼쳐보았고 이상한 내용을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나 마지막

  • 선 이혼, 후 집착   제1510화

    차설아는 성도윤의 말을 듣더니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그럴 일 없으니까 꿈도 꾸지 말아요.”“알겠어. 이만 가볼게.”성도윤은 풀이 죽은 채 뒷마당에 있는 오두막으로 들어가서 휴식했다. 그리고 오전에 발견했던 그림 한 장이 계속 마음에 걸려서 뭐라도 찾으려고 했다.단서가 될 만한 것은 전부 차설아의 아버지가 쓰던 오두막 안에 있기 때문이다.만약 차설아의 아버지가 성도윤의 어머니를 사랑해서 그린 그림이라면 성도윤과 차설아가 한 가족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성도윤은 불안한 마음에 문을 안에서 잠그고 서재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낡은 일기장이 유독 눈에 띄었는데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성도윤은 일기장을 손에 든 채 어쩔 줄 몰라 했다.‘장인어른의 일기장을 내가 봐도 되는 걸까? 하지만 보지 않으면 그 그림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어. 설아에게 전부 얘기해주기로 했으니까 확인해야 해.’주저하던 성도윤은 결국 자물쇠를 풀고 단서를 꼭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자물쇠의 비밀번호는 소중한 사람의 생일로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성도윤은 차설아의 아버지, 어머니, 차설아의 생일을 순서대로 입력했지만 자물쇠가 열리지 않았다.“설마 어머니의 생일은 아니겠지? 그, 그럴 리가 없어.”성도윤은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약 일기장 자물쇠의 비밀번호가 성도윤의 어머니 생일이라면 드라마틱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 뻔했다.성도윤은 저도 모르게 손을 덜덜 떨었다.소영금의 생일은 3월 31일이었고 별자리는 전형적인 양자리였다. 솔직하고 화끈한 성격에 착한 마음씨를 지녀서 매력덩어리였다.성도윤이 소영금의 생일을 입력하자 자물쇠가 기적적으로 열렸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성도윤은 차설아와 한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하얘졌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채 일기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10월 17일, 날씨 맑음. 화창한 날씨와는 달리, 나의 마음속에 먹구름만 가득했다. 오늘은 나랑 영금이가 헤어진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나는 영금을 진작

  • 선 이혼, 후 집착   제1509화

    차성철은 차설아를 설득할 수 없었기에 차설아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었다.“설아야, 시간도 늦었으니 일찍 쉬어. 성도윤이 너한테 도움이 되면 이용해도 좋지만 계속 의지하고 기대면 결국 너만 힘들어져.”“그럼 도윤 씨랑 다시 만나도 간섭하지 않겠다는 뜻이야? 오빠는 역시 내 편이었어!”차설아는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차성철과 성도윤 사이의 원한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었다. 그래서 차설아가 성도윤과 다시 만나게 되면 차성철이 극구 반대할 줄 알았다.하지만 차성철은 두 사람을 응원하기로 했다.“내가 반대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잖아. 어차피 네 선택이니 나는 너를 믿어보기로 했어. 성도윤과 싸우면서 둘 다 크게 다쳤지만 성도윤은 결국 나를 구해주었지. 이제는 원한 따위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아.”차성철은 흉터 회복 수술을 받은 후부터 성도윤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사그라들었다.게다가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의식을 되찾았기에 생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차설아가 살아만 있다면 다른 건 더 바라지 않는 오빠의 마음이었다.“오빠, 고맙고 사랑해. 오빠가 나를 응원해 주니까 마음이 놓여. 정말 다행이야!”차설아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차성철이 반대할까 봐 성도윤을 다시 만난다는 소식을 차마 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차성철의 반응에 차설아는 감동했고 날아갈 듯이 기뻤다.“나는 응원해 준다고 한 적 없어. 성도윤이 믿음직스러운 남자인지 아닌지는 집으로 돌아가서 직접 보고 판단할 거야. 만약 내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한다면 집에서 내쫓을 테니까 각오하라고 전해. 내 동생이 좋아하는 남자라도 일단 내 눈에 들어야 해.”“알겠어. 오빠가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 오빠, 얼른 끝마치고 집으로 와.”차성철은 가라앉은 보물과 배를 찾고 당당하게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야만 성도윤과 대면했을 때 기죽지 않을 것이다.전화를 끊은 뒤, 차설아와 성도윤 사이에 오묘한 기류가 흘렀다. 차설아는 성도윤의 표정을

  • 선 이혼, 후 집착   제1508화

    차설아는 성도윤이 대답하기도 전에 휴대폰을 재빨리 빼앗았다.“오빠도 얼른 쉬어. 나중에 또 연락할게.”차설아가 전화를 끊으려 하자 차성철은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그래. 상처가 아무니까 다쳤던 기억을 잊은 거겠지. 지금은 성도윤을 감싸고 돌아도 예전처럼 후회하게 될 거야.”“오빠, 그동안 도윤 씨랑 나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어. 하루라도 더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내 마음이 과연 욕심일까? 그저 잠시라도 도윤 씨랑 함께하고 싶어. 도윤 씨 덕분에 요즘 정말 즐겁고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어.”차설아의 말에 슬픔이 가득 묻어있었다. 실명하고 나서 뒤바뀐 인생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런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도 없다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나았다.차설아는 어둠 속에 갇혀있기보다 성도윤의 손을 잡고 같이 행복해지고 싶었다.“성도윤과 네가 계속 이대로 같이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요즘 조사하면서 차씨 가문을 망하게 하려고 연합한 가문에 대한 자료를 찾아냈어. 우리가 상대할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고!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말이야.”차성철의 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차성철은 차설아한테 가문의 복수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매일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내다보면서 아무런 수확도 없이 외롭게 견디던 차성철은 지쳐갔다. 그래서 차설아에게 전부 털어놓으려고 했었다.“어느 가문인지 알아냈다는 뜻이야? 그 자료를 나도 한 번 봐야겠어. 상대가 누구든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주먹을 꽉 쥔 채 격동된 어조로 말했다. 차설아는 실명했지만 부모님을 죽게 만든 원수를 두 손으로 직접 죽이고 싶었다.잘 나가다가 다른 가문의 함정에 빠져 몰락한 차씨 가문을 위해 목숨 걸고 복수하고 싶었다.“자료만 보고 알 수 있는 게 아니야. 집으로 돌아가서 천천히 설명할게. 이 일은 성도윤도 알아야 해.”차성철은 머뭇거리면서 말끝을 흐렸다.“도윤 씨도 알아야 한다고? 그럼 성씨 가문과 연관되어

  • 선 이혼, 후 집착   제1507화

    성도윤은 일부러 특별한 호칭으로 차설아를 부르면서 다가갔다.“주인님,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어요?”“장난하지 말고 잘 들어요. 지금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요.”차설아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조금 전에 오빠랑 통화하면서 부지런한 사용인을 구했다고 자랑했어요. 그런데 오빠는 당신이 나를 해칠까 봐 걱정하는 모양이더라고요. 다시 전화를 걸면 당신이 알아서 잘 대처하고 절대 신분을 들키면 안 돼요. 오빠의 심기를 건드리면 우리 둘 다 끝장이에요.”“나랑 다시 만나는 게 그렇게 부끄러워? 나를 당신의 남자라고 소개하기 싫어?”“그런 게 아니라 말하기 민망해서 그래요. 당신이랑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또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하면 오빠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요?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큰소리쳐서 내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어요.”차설아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었다.재벌가 아가씨로서 인간관계의 원칙을 칼같이 지켰었지만 성도윤을 만나고부터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차설아는 성도윤 앞에만 서면 원칙을 어겼고 선을 넘었다.했던 말과 다르게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게 되었다.“내 목소리를 들으면 바로 들통날 텐데...”“그럼 일부러 가늘고 예쁜 목소리로 대화해봐요. 젊은 여자인 줄 알면 오빠도 더 의심하지 않을 거예요. 몇 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으면 돼요.”차설아는 말하면서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성도윤이 차성철을 속이길 바랐고 성도윤이 여자의 목소리를 따라 한다면 얼마나 웃길지 기대하고 있었다.“알겠어.”성도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차설아가 전화를 건네자 곧바로 차성철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그쪽이 설아가 새로 들인 사용인이에요?”차성철은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맞아요.”성도윤은 약속대로 여자의 목소리로 대화하지 않았다.“안녕하세요. 성도윤이에요.”“누, 누구라고요?”차성철은 기가 막혀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차설아는 깜짝 놀라서 성도윤을 툭툭 쳤다.“도윤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오빠한

  • 선 이혼, 후 집착   제1506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차설아는 차성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차성철이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핑계를 대며 다급히 끊었다.그러나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은 지금, 차설아는 차성철과 덤덤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몇 초 후, 차성철이 전화를 받았다.“설아야,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너답지 않게 먼저 연락해서 놀랐어. 별일 없지?”차성철은 남부 지역에서 인력과 물자를 모아서 보물과 함께 가라앉은 배를 찾으려고 했었다. 배에 있던 보물은 하나도 찾지 못했고 차성철은 점점 지쳐갔다.차성철은 차설아가 해안시에서 혼자 지내다가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당장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그래서 차설아의 연락을 받고 마음이 더 무거워졌던 것이다. 차성철은 먼저 연락한 차설아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차설아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지 않은 이상, 먼저 차성철에게 연락할 리 없었다.“오빠, 그렇게 진지하게 물을 필요 없어. 기쁜 일이 생겨서 오빠한테 알려주려고 용기 내서 전화한 거야.”차설아는 소파에 편하게 누워서 다리를 꼬았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면서 애교 섞인 어조로 말했다.“들어보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네. 무엇이 우리 설아를 기쁘게 했는지 들어나 볼까?”차성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음... 우리 집에 일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는 사용인이 한 명 들어왔어. 월급을 적게 주는데도 군소리하지 않고 아주 부지런하게 일해. 오빠, 이런 사용인이 있어서 얼마나 편한지 몰라.”차설아는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수줍어했고 다른 사람에게 자꾸만 자랑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차성철과 성도윤은 원수 사이였기에 성도윤을 사용인이라고 둘러댔다.“그래? 네가 편하면 돼.”“너무 편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쩌다가 이런 사용인이 우리 집에 오게 된 건지...”“사용인을 쉽게 믿지 말고 계속 지켜봐. 집에서 너를 보살피는 사람인데 만약 겉모습에 속아서 경계하지

  • 선 이혼, 후 집착   제1505화

    차설아는 깨어난 척하면서 기지개를 켜고는 성도윤이 떨어진 방향을 향해 말했다.“도, 도윤 씨? 도윤 씨가 어떻게 저의 방에 들어온 거예요?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변태 같아요. 그리고 장난감이라고 한 건 뭐죠? 도윤 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겠어요.”성도윤은 차설아가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자존심을 되찾는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고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당신 말대로 나는 뻔뻔스러운 변태 같은 남자야. 그래서 아이가 있는 여자의 방에 가만히 들어가서 장난감 역할을 자처하곤 했어. 주인님이 깨어났으니 이제는 주인님을 모시고 내려가서 음식을 대접해야지.”“음... 그래요. 푹 자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요. 당신의 상황극에 맞춰줄 테니 어서 옷부터 갈아입혀 줘요.”차설아는 긴 팔을 뻗고는 성도윤이 옷을 갈아입혀 주기를 기다렸다. 성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의 불을 켰고 편안한 잠옷을 찾아서 갈아입혀 주었다.두 사람은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이 붙어 섰고 애틋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차설아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옷을 입은 뒤, 성도윤은 차설아의 가는 허리를 감싸면서 귓가에 속삭였다.“나를 유혹해 놓고 혼자 발 빼는 게 어디 있어? 당신이 모르는 척한다는 걸 다 알아. 나중에 우리 둘 다 몸이 회복하면 오늘 진 빚을 제대로 갚아야 할 거야. 알겠어?”“흥! 변태 같은 당신을 다시는 방 안에 들이지 않을 거예요. 이 손 치워요.”차설아는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성도윤의 팔을 툭 쳤다. 어릴 적부터 독하게 마음먹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른스럽게 행동했던 차설아는 여린 면을 내보이지 않았다.그러나 성도윤 앞에서는 마음이 편해져서 연약한 모습이거나 귀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예전에 사도현이 차설아를 보면 ‘사랑스러운 여왕’이라고 불렀던 것도 그래서였다.차설아는 성도윤만 보면 저도 모르게 거만한 모습 대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그래서 부끄럽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했다.두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