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방송 이후, 성도윤은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다. 게다가 의분이 가득 찬 네티즌들이 작성한 저주 글들이 봇물 터지듯 넘쳐났다. 그리고 네티즌들은 ‘상간녀’ 임채원과 그의 큰형 성도현이 교제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를 끄집어냈다.네티즌들은 성도윤의 도덕성을 지적하며 그를 친형님의 여자를 탐하는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고 욕했다.성대 그룹도 비난받았다. 고객 시스템 해킹 소동에서 벗어나자마자, CEO가 실검에 오르며 욕을 먹고 있으니, 주가는 또 한 번 대폭 하락했다.“도윤아, 라이브 방송은 뭐야! 설아한테 잘 좀 해... 어쩌다 나 성명원에게서 너 같은 자식이 나온 건지... 바람피운 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이제 온 세상이 다 알게 됐더구나! 게다가 설아한테 가정폭력을 가하다니! 할아버지께서 심장이식 때문에 외국에 나와 있지 않았다면 반드시 네 다리를 부러뜨렸을 것이야!”이른 아침부터 성도윤은 그의 아버지 성명원의 핀잔에 짜증이 났다.그는 잘생긴 얼굴을 찡그리며 길쭉한 손가락으로 짜증스럽게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모두 그 여우 같은 여자한테 속고 있는 거라고요.”“X소리 집어치워!”성명원은 화를 참지 못하고 바로 욕설을 퍼부으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설아가 어떤 성격인지 내가 몰라? 그렇게 착하고 참한 애가... 네가 몰아붙이지 않았다면 설아가 집안 사정을 밖에 알리려 했을까?”‘착하고 참한 애?’성도윤은 화가 치밀어올라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고 싶었다.물론 예전의 차설아라면 착하고 참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저 계략만 많은 교활한 여우 한 마리 같았다.“아니면 정말 아직도 설아에게 미련이 남아서 놓아주지 못하는 거야?”성명원은 호탕하게 웃으며 물었다.“아직 사랑한다면 잘못을 인정해야지, 여자는 어르고 달래야 하는 거야. 아빠가 다 경험이 있으니 돌아가는 대로 제대로 전수해 줄게. 여자는 말이야...”“사랑이라니요? 절대로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될 일은 없을 거예요.”얼음같이
성도윤은 인내심이 바닥나 언짢은 얼굴로 다그쳤다.“할 말이 있으면 얼른 하지? 계속 우물쭈물하면서 뭐 하는 거야!”“홍보팀에서 각종 자료를 분석한 결과, 현재 네티즌 10명 중 9명은 사모님 편에 서서 대표님께 불만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대표님께서 나서서 사모님한테 용서를 빈다면 소동을 가장 빨리 잠재울 수 있으리라 예측합니다. 사모님과 다시 라이브 방송을 켜고 네티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한다면 여론은 완전히 뒤집힐 것입니다.”예서는 조심스럽게 말을 마쳤다. 그녀는 감히 성도윤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녀도 성도윤이 얼마나 도도하고 오만한 사람인지 알고 있었기에 홍보팀에서 전달한 먼저 꼬리 내리기 방안에 큰 기대를 품지 않았다.“말도 안 되는 소리!”역시나 성도윤은 단칼에 거절했다.“할 일 없이 집에 처박혀 키보드 두드리는 맛에 사는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둬. 그리고 성대 그룹을 보이콧해?”성도윤은 콧방귀를 뀌며 차갑게 웃고 나서 말을 이었다.“순진한 녀석들!”이 말은 결코 성도윤의 거만함에서만 나온 말이 아니었다.성대 그룹은 셀 수 없이 많은 산업에 발 담고 있었다. 요식업, 부동산, 의류, 전자, 자동차 제조는 물론, 군용기 제조에까지 발 담고 있었기에 일개 네티즌들이 보이콧하고 싶다고 해서 보이콧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그럼 더 많은 인력을 동원해서 지워!”성도윤은 독기 어린 눈동자로 예서를 쳐다보며 말했다.“3일 내로 나에 관한 그 어떤 언급도 남아있지 않게 만들어.”“그건...”예서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섣불리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 없었다.“그럼... 홍보팀에 연락해서 홍보비용을 더 추가하라고 하겠습니다.”그녀도 이렇게 하는 것은 일시적인 조치일 뿐이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체면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도하고 오만한 대표님이 버티고 있으니 별다른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예서가 막 나가려던 그때, 성도윤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네, 대표님. 더 하실
성도윤은 이 커플 팬덤의 규모가 30여만 명이라는 것에서 한 번 놀랐고 활약이 모든 팬덤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동네 구멍가게 일 줄 알았더니 거대한 상가였다.어쩐지, 라이브 방송 한 번으로 ‘쓰레기' 라고 실검에 오르더라니...성도윤은 마우스를 내리며 노트북 화면에 집중했다.“핑크빛 썸! ‘차성윤설’ 한 앵글에 들어오다!”“달달함이 극치에 달하다! 성도윤 왕자를 바라볼 때 나오는 설아 공주의 꿀 떨어지는 눈빛!”“서로를 마주 보다! 도윤 도련님이 아내를 바라보는 꿀 떨어지는 순간 모음!”“...”이 팬덤의 활약에 성도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게시물을 업로드했고 오래된 게시물 아래에 댓글을 달아 열띤 토론을 했다. 이제 보니 차설아와 같은 앵글에 담긴 사진이 꽤 많았다. 그리고 이 사진들 속에서, 그를 몰래 바라보는 차설아의 눈빛은 그렇게나 애틋했다.이 게시물 중 조회수가 가장 많고 댓글 수가 가장 많은 게시물은 ID가 ‘차성커플 바라기' 인 네티즌이 쓴 팬 픽션이었다.“첫 만남, 한여름날 어느 오후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모두가 허둥지둥 비를 피하느라 바빴다. 그때 그와 그녀가 운명처럼 마주쳤다...”성도윤도 홀린 듯 팬 픽션을 읽다 보니 어느새 404페이지까지 읽었고 새로 고침하자마자 글이 삭제되었다고 알림이 떴다.“빌어먹을!”성도윤은 나지막하게 짜증 나는 마음을 털어놓았다.그제야 이 팬덤의 규모가 크고 활약이 뛰어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런 팬 픽션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울 정도였다.성도윤은 침착하려고 애쓰며 홈페이지를 닫았다. 더 보다가는 그마저도 팬클럽 일원이 될 것 같았다.어느덧 밤이 되었다. 성도윤은 분명 바쁜 하루를 보냈는데, 어쩐지 마음이 허전했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그는 휴대전화를 들고 이리저리 뒤적이며, 무슨 생각에 빠졌는지, 골똘히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다.같은 시간, 차설아는 소파에 누워 육아책을 뒤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뜻밖에
“푸읍!”마시던 레모네이드를 뿜는 차설아.좀처럼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던 차도남 성도윤이었기에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돌직구였다.“나르시시즘 아니야? 사랑은 무슨.”차설아는 날카로운 그의 시선을 피하며 딱 걸린 도둑처럼 자신감 없게 대답했다.“사람들이 그러는데, 당신이 나를 많이 사랑했었다고.”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꼬리가 올라간 성도윤, 여자들이 막 들이대면 귀찮아하고 느낌 없는 모습이었다면, 유독 차설아의 애정은 왠지 모르게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처럼 즐기는 모양새였다.“사람들은 몰라도, 그거 다 생방송이라 연기라는 걸 본인이 더 잘 알면서.”차설아은 손을 내저으며 소탈한 척 행동했다.그녀는 자신이 성도윤을 많이 사랑했다는 지난 사실을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야만 그의 앞에서 고개를 들고 얘기할 수 있고, 알량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성도윤은 범죄를 캐는 조사관처럼 그녀의 위선을 벗겨내려는 듯 한발 한발 몰아붙였다.“사랑하지 않은 거라면 나 몰래 챙겨준 건 뭐고? 우리 투 샷 사진들에서 나를 다정하게 쳐다본 건 뭐고? 또... 사랑하지 않은 거라면 임채원을 적대시 한 건? 질투를 한 게 아니면 뭔데?”성도윤의 연이은 질문에 차설아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속이 훤히 다 비친 듯한 상황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그래서?”‘지금 뭐 하자는 거지? 굳이 밝혀서 내 마음을 저당 삼아 날 마음대로 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이러나? 아니면 울며불며 바짓가랑이 잡고 매달리는 모습이 보고 싶은 걸까? 허세를 부리는 거야, 뭐야? 웃겨, 정말!’차설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성도윤, 당신은 정말 내가 본 사람 중 제일 야박하고, 제일 나르시시즘에 꽉 찬 사람 같아. 여기서 당신을 사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지금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과 앞으로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지. 굳이 이 야심한 밤에 사람을 불러내서 이런 대화를 하는 것도 참시답지 않네. 사랑했다
“...”차설아는 멍하니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고 꼼짝하지 않고 굳은 채 서 있었다.비록 둘이 하룻밤 잠자리는 했다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키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녀가 상상했던 대로 그의 입술은 극도로 차가웠다. 하지만 그와의 키스는 너무 간질간질했고 뜨거웠다.갑자기 훅 들어온 성도윤의 애틋한 감정에 휘감긴 그녀는 꽉 쥐었던 손에 힘이 풀렸고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말았다. 몇 분이 흐른 뒤.“자, 이제 끝났어요.”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레스토랑의 불이 다시 켜졌다.차설아도 순간 제정신이 돌아왔고 재수 없는 물건을 피하듯 재빨리 성도윤과 거리를 두고 섰다.‘정신 나간 거야? 당장 이혼할 남편이랑 키스한다는 게 말이 돼?’그녀는 서둘러 손등으로 입술을 닦는 행동을 보였고, 도도하고 고고하신 성대표가 보기엔 어딘가 모르게 기분 나쁜 제스처였다.“뭘 닦기까지 해? 그렇게 몰입하신 분이?”차설아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한 대 치고 싶은 충동을 참아냈다. 그녀는 이 수치스럽고 어이없는 상황에 화를 내며 따져 물었다.“도윤 씨,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미친 거 아니야?”성도윤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는 사악한 미소를 짓더니 약간은 의미심장한 뉘앙스로 답했다.“글쎄.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성도윤은 붉게 활짝 핀 장미같이 유혹스러운 그녀의 입술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뚫어지게 보았다.그쯤 카메라를 든 뚱뚱한 남자가 활짝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성 대표님, 방금 장면은 너무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찍혔습니다. 마치 환상적인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같이 말입니다. 라이브를 본 네티즌들 반응이 폭발적이에요. 전에 욕하던 건 감쪽같이 사라졌고 하나같이 긍정적인 반응들뿐이고, 댓글 창은 축하 댓글로 도배되었어요. 이번 위기는 라이브 홍보가 제대로 먹혀서 효과가 죽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방금 키스를 너무 오래 딮하게 해서 타임 오버했다는 점에서 일부 누리꾼들이 둘이 쇼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 거 빼
“아니면?”차설아가 뒤돌아섰고, 자기 손목을 잡은 성도윤의 손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침착한 표정으로 물었다.“설마 뭐, 뺨을 되돌려 주기라고 할 건가?”“...”성도윤은 말없이 우주같이 깊은 눈길로 차갑게 그녀를 쳐다만 보았다.차설아가 되려 성도윤에게 가까이 서서 하얀 얼굴을 그의 눈앞에 갖다 대며 화를 돋우듯이 말했다.“당한 건 반드시 되갚아 준다고 익히 들어 알고 있어. 불쾌하면 나 한 대 쳐.”성도윤은 당연히 손을 대지 않았고 고개를 들어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가라는 신호를 줬다. 곧, 큰 레스토랑에는 홀연히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성도윤은 그녀의 손목을 놓으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을 이용만 하려던 건 아니야. 사랑의 장면은 거짓이지만, 미안한 마음은 진짜니까.”눈 부신 불빛 아래에 선 남자는 실루엣마저 잘생기고 완벽했다. 그럼에도 그녀와는 너무 멀고 너무 비현실적이었다.“당신... 지금 나한테 사과하는 건가?”차설아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단 한 번도 성도윤이, 저밖에 없는 안하무인격의 성도윤이 고귀한 자태를 내려놓고 사과할 줄은 생각도 못 했었다.“아니, 잘못 들었어.”성도윤은 가볍게 기침 두 번 하며 멋쩍게 부인했다. 그의 차갑고 준수한 얼굴엔 보통 때와는 다른 정서를 담은 채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성대 그룹이 당신의 그 장난질, 라이브로 인해 많은 영향을 받았어. 당신이 만든 일이니,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아까 쇼에 맞춰 줬으니 내 책임은 다하지 않았어? 당신 이미지까지 챙겨갔잖아. 더 할 게 뭐 있어?”차설아는 자기는 이제 할 만큼 다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여자들 같았으면 그의 이미지에 똥칠하고도 모자라 엄청 다 뜯어냈을 것이다. 그러기엔 그녀는 착했고 성도윤을 사랑했던 자신의 4년이 애틋했다.“지금 라이브를 본 사람들이 이제 우리 커플 팬이 될 거야. 이혼은 해도 되지만 대외적으로는... 우리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을 보여줘야 해.”성도윤은 너무도 당당하게 심지어 당연하게 말을 했고 차설아의 사
“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거야?”차설아는 당최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했다. 게다가 항상 호들갑 떠는 성격인 배경윤이 하는 얘기라 조금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성도윤이랑!”배경윤이 큰 소리로 외쳤다.“언니! 만약 정말 성도윤과 그런 거라면, 난 다시 볼 거야. 내가 예전엔 둘의 팬이었다지만 그놈이 언니한테 어떻게 했는데! 헤어지는 마당에 그 인간이랑 잤다는 게 말이 돼?”그녀가 이렇게 흥분한 이유는 단지 자기가 좋아하는 언니가 다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었다.“누가. 내가. 그 인간이랑 잤대?”차설아는 어제저녁 방송이 언뜻 생각났고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어제는 쇼였어. 키스를 당했고 대가로 그 인간 뺨을 한 대 쳤고.” 성도윤을 후려치고 느낀 쾌감 대신이라고 생각하면 사실 그 키스는 차설아가 손해 본 것 같지도 않았다.“뺨을 쳤다고? 언니, 대단해!”배경윤은 바로 이어서 얘기했다.“그런데, 그게 둘이 잠자리를 한 이유로는 설명이 안 되잖아. 솔직히 말해. 어제 라이브 끝나고 앞뒤로 집에 간 게, 혹시 같이 간 거야? 설마... 지금 그 인간 거기 있는 건 아니겠지?”“너무 갔다. 브레이크!”차설아는 성도윤과 앞뒤로 집에 돌아온 기억이 전혀 없었다.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배경윤이 보낸 찌라시 기사 캡쳐본을 보고서야 깜짝 놀랐다.기사 사진은 어제저녁 성도윤과 그녀는 놀랍게도 ‘샘천 레지던스’로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둘의 투 샷은 아니었지만, 앞뒤 간격이 10분도 안 되는 시간 차였다.‘샘천 레지던스’는 그녀가 현재 묵고 있는 리버 뷰 아파트고, 한 층에 두 가구가 들어사는 대평층이었다. 배경수가 직접 골라서 찾아 준 곳이 바로 여기였고 아무에게도 주소를 알려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성도윤이 그녀를 미행했을 거라는 오직 한 가지 가능성만 있을 법했다. “아우, 변태!”차설아는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이었고 배경윤과의 전화를 끊고 성도윤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당신이야?”성도윤의 나른한 목소리에서 약간의 의외라는 감정이
“막장 드라마 적당히 좀 봐. 나 요 앞에 4년째 살고 있는데, 미행이라면 당신이 날 미행했다고 봐야지 않겠어?”성도윤이 쌀쌀맞게 말을 하더니 긴 다리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곧장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뭐? 앞... 앞에 산다고?”그러고 보니 맞은편 저택의 문이 한 뼘 열려있는 게 보였다. 차설아는 무안함에 귀를 만지작거렸고 한참 헛발질을 했던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떠올라 민망함이 허를 찔렀다. 따라다닐 의사가 없는 사람을 앞에 두고 스토커라고 버럭버럭 화를 냈다는 사실이 혼자 김칫국 한 사발 마신 것 같아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었다.성도윤은 날렵한 눈매로 집안을 무심하게 훑어봤고 시선 끝에는 그녀의 침실에 멈춰 섰다.“당신 안방 구조가 나랑 아주 다르네.”성도윤은 그녀의 안방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했고 차설아는 서둘러 안방 문 앞에서 막아섰다.차설아는 언뜻 침대 위에 놓인 육아 책이 생각났고, 그걸 성도윤이 본다면 임신 사실이 들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쏜살같이 움직였다.“안 돼!”“안 되는 나도 안 돼.”성도윤의 캐릭터상 하고 자 하는 일을 꼭 해야 할뿐더러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진짜 안 돼!”차설아는 두 팔을 벌린 채 성도윤이 방안으로 못 들어가게 막아섰고 때려 막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당신이 뭔데! 나랑 무슨 사이라고 내 침실을 함부로 들어가려 해?”“남편이라는 이유.”키 차이로 인해 성도윤은 아담한 그녀를 내려다보았고 그의 깊은 눈매엔 서늘한 기운이 담겼다.“아님, 뭐 딴 남자라도 숨겼어?”“성도윤!!!”차설아는 손에 힘을 다해 주먹을 꽉 쥐었다.‘좋은 말로 할 때 좀 듣지. 거 참 힘쓰 게 만드네.’어차피 그녀의 솜씨면 3할의 공력으로도 성도윤을 회의가 들게 만들 수 있었다.“움직이면, 다 보여.”성도윤은 유유자적하게 또 한 번‘가슴꼴 주의’를 줬다.“아! 미친!”차설아는 급하게 두 팔로 감싸면서 앞을 단단히 단속했다. 성도윤은 큰 장신을 옆으로 비껴가면서 설아의 빈틈을 치고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