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주는 눈을 부릅뜨고 곧장 테이블로 향하려는 한성우를 잡았다. “네가 말해봐. 송가람이 팔짱 끼고 있는 저 남자, 누구야?”“뭐?”어리둥절한 한성우는 차미주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순간 마음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제기랄.’“송가람? 송가람이 어딨는데?”차미주의 입가가 떨려왔다. “너 이 개자식. 강한서에게 넌 정말 지X 맞게도 좋은 친구네. 감히 내 앞에서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이네. 이러고도 내가 널 받아줄 것 같아? 꿈 깨는 게 좋을 거야.”말하며 한성우를 밀어버린 차미주가 송가람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그러자 한성우가 얼른 차미주의 뒤를 따라갔다. “나 농담한 거잖아. 왜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래? 내가 장님도 아니고 멀쩡히 서 있는 사람이 왜 안 보이겠어?”‘강한서 네 발등은 네가 찍은 거야. 나도 이젠 못 감싸줘. 일단 우리 집안일부터 해결해야지.’차미주는 굳은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방금 현진이가 전화 와서는 딸기 푸딩 어떻게 하냐고 물었어. 강한서가 좋아한다면 말이야. 하지만 이게 뭐야? 현진이는 임신까지 하고도 집에서 현모양처처럼 푸딩이나 만들고 있고 강한서 저 개 같은 자식은 손가락과 팔짱 끼고 다른 사람 약혼식에나 참석하다니.”“쟨 기억을 잃은 거야, 아니면 빼앗긴 거야? 강한서는 정말 손가락의 저런 수준 없는 수법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거야? 아니면 너희 남자들은 애초부터 저런 순진한 척하는 여우짓을 좋아하는 거야?”차미주가 한성우를 노려보았다. “넌 강한서보다도 못한 놈이야. 강한서는 눈이라도 높아서 현진을 좋아하기라도 했지. 넌? 넌 그저 몸매만 좋으면 눈을 떼지 못하잖아. 인성이고 뭐고 보지도 않고 아무 여자나 막 만나잖아.”한성우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날 욕하는 것까진 그렇다 쳐. 왜 너까지 욕하고 그래?”차미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녀가 손을 뻗어 한성우의 목을 조르려 하자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차미주의 허리를 끌어안더니 나지막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던 차미주가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그럼 만약 강한서가 기억을 잃었던 그 시간 동안 정말 송가람을 좋아하게 됐다면?”그 말에 한성우는 피식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자기야, 송가람과 강한서는 죽마고우나 마찬가지야. 정말 강한서가 송가람을 좋아했다면 애초에 강한서 인생에 형수님은 없었겠지. 그리고 그 자식이 정말 그런 쓰레기 같은 일을 저질렀다면 네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강한서를 처리할 거야.”“...”한성우의 입은 정말 말 하나는 똑부러지게 잘했다. 분노로 가득 찼던 차미주는 한성우의 말발에 넘어가 어쩐지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결국 입술을 앙다물더니 한참 만에야 대답했다. “만약 네가 입만 놀리고 행동으로 못 옮기면—”“난 대가 끊기고 외롭게 늙어죽게 될 거야.”한성우가 바로 차미주가 하려던 대사를 가로챘다. 화가 풀린 차미주는 한성우를 보는 눈빛마저도 부드러워졌다. 한성우가 차미주의 손을 잡았다. “가자. 마침 강한서가 왜 송가람과 왔는지도 알아보고.”송가람이 강한서에게 와인을 건넸다. “한서 오빠, 이 술 마셔봐요. 이건 제 친구가 일부러 해외 와이너리까지 가서 가져온 거예요. 향이 정말 진해요.”와인잔을 받은 강한서는 슬며시 잔을 흔들었다. 그러자 와인의 달콤한 향이 서서히 풍겨왔다. “향은 좋은 것 같네요.”강한서가 와인을 평가하며 말했다. 송가람이 웃으며 와인잔을 들어 강한서의 잔에 살짝 부딪혔다. “마셔봐요.”시선을 내린 강한서는 와인잔을 들어 입에 가져가려는데 옆에서 한성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가람 씨, 한서야. 어떻게 여기서 만나냐.”송가람이 뒤돌자 한성우가 차미주의 손을 잡은 채 미소 지으며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한성우는 송가람 옆에 놓인 와인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 와인. 제 기억이 맞다면 와인 향은 깔린느에서 제조한 거죠? 당시 와인 경매에도 나왔었던 것 같은데.”송가람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
와인잔을 받은 강한서는 먼저 한 모금 마시더니 곧 단숨에 들이키고는 옆에 있던 휴지로 살며시 입가를 닦았다. 그리고 차미주는 서서히 젖어가던 휴지가 강한서에 의해 휴지통에 버려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도 괜찮네요.”강한서가 평가했다. 송가람은 자기 잔에 담긴 술을 마시며 미소 지었다. “예비 신랑이 술을 좋아하거든요. 이번 약혼식의 술을 전부 직접 골랐대요. 테이블마다 다른 술을 올렸어요. 하지만 모두 맛 하나는 일품이죠.”말하며 송가람은 직원을 불러 또 강한서에게 와인을 건넸다. “한서 오빠, 이것도 드셔볼래요? 비록 과일주이긴 하지만 일반 과일주보다는 도수가 조금 높아요. 향도 더 깊고요.”송가람이 건네는 과일주를 받아 든 강한서가 향을 음미하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향이 좋네요. 과일 향이 풍겨요.”송가람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이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술이에요.”강한서가 잠시 멈칫하더니 곧 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러더니 옆에 있던 물컵에 들어 입가에 가져갔다. 그는 컵을 내려놓더니 말했다. “이건 조금 쓴 것 같아요. 전에 마셨던 와인만큼의 매력은 없네요.”송가람이 웃으며 말했다. “오빠가 너무 단숨에 들이켜서 그래요. 이런 과일주는 조금씩 음미하면서 마셔야 그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요.”그러더니 그녀는 강한서에게 시범을 보였다. 차미주는 송가람의 가식적인 연기를 볼 마음 따위는 없었다. 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강한서의 컵을 슬쩍 쳐다보았다. 여시나, 방금까지 절반 정도 채워져 있던 물이 강한서가 “마신 후”에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아져 있었다. ‘입에 있던 술을 뱉은 거겠지?’차미주는 확신할 수 있었다. 한현진이 강한서에게 남몰래 술을 버리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 분명했다. 이런 꼼수는 한현진이 학창 시절 애용하던 방법이었다. ‘강한서는 기억을 잃었잖아? 어떻게 이런 걸 기억하는 거지?’‘게다가 왜 송가람이 건네는 술을 뱉어 버리는 거야?’차미주의 눈빛이 그녀의 복잡한 심경을
차미주도 바보가 아니었으니 만약 평소였다면 그 말을 듣고 바로 불같이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방금 한성우가 귀띔해 준 덕에 지금의 차미주는 이미 냉정함을 되찾았다. 만약 이런 장소가 아니었다면 이딴 식으로 말을 내뱉은 송가람을 그녀는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패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현진의 지인이 많은 장소에서 차미주는 성질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체면이고 뭐고 차미주는 그딴 걸 신경 쓰지 않았지만 한현진이 창피할 일은 만들지 않아야 했다. 그러니 차미주는 송가람의 말에 웃으며 받아쳤다. “송가람 씨 안목도 독특하시죠. 제 친구들은 남자친구를 만날 때 솔로에 미혼인 남자들만 찾던데, 전 송가람 씨처럼 이혼도 했었고 여자친구도 있는 남자를 좋아하는 경우는 처음 봤거든요.”송가람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차미주는 큰 눈을 깜빡였다. “송가람 씨는 그런 사람들만 좋아하시는 거예요? 사실 제 주변에 이혼남이 꽤 많이 있거든요. 혹시 제가 소개해 드릴까요? 하지만 제 지인분들은 기본적인 매너는 지키자는 주의라 여자친구 있는 분들은 안 될 것 같아요. 물론 가끔 그런 취향이 있는 인격 파탄자도 있긴 하지만요.”송가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차미주는 차라지 송가람이 옆에 있는 컵을 들어 자기에게 물을 퍼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송가람의 진면모를 알아차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송가람은 그저 주먹을 꽉 움켜쥐고 애써 분노를 억누르더니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차미주 씨가 왜 저에게 이렇게까지 악의를 품고 계시는지 모르겠네요. 혹시 현진이 때문인가요? 만약 현진이가 저에게 불만이 있어서 그러는 거라면 저에게 직접 얘기하면 될 텐데, 이렇게 친구 입을 빌려서 저에게 이런 말을 할 건 없잖아요. 전 줄곧 뭐가 어떻든 한서 오빠의 안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현진이가 이 일로 이렇게까지 물고 늘어질 줄은 몰랐네요.”안 그래도 사람이 많이 모여 있던 데다 송가람의 말까지 더해지자 주변엔 곧 쑥덕거
말하며 한성우는 차미주 등에 뛰어오르는 척했고 그 모습을 본 차미주가 얼른 도창갔다. 송가람은 굳은 얼굴로 멀어지는 두 사람을 쳐다보며 손가락을 하나씩 굽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송가람의 시야에서 멀어지자 차미주가 한성우는 쿡쿡 찔렀다. “오빠, 강한서 이상한 것 같지 않아?”한성우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좀 이상한 것 같아.”차미주가 두 눈을 반짝였다. “어디가?”“이상하게 잘생겼어.”차미주가 바득 이를 갈았다. 그녀는 한성우의 옆구리 살을 꼬집었다. “개자식. 내가 지금 그걸 묻는 것 같아? 하루라도 그 말장난 안 하면 죽기라도 해? 죽냐고?”“아파, 아파...”한성우가 차미주의 손을 잡아당겨 허리를 쓸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농담이야. 왜 이렇게 폭력적이야?”차미주가 그를 노려보았다. 한성우는 항복한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상하든 말든, 봤어도 못 본 척해.”차미주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너—”한성우가 차미주의 입을 틀어막으며 씩 미소 지었다. “자기야, 일단 밥부터 먹자. 나 배고파서 배가 등에 붙을 것 같아.”차미주는 하려던 말을 다시 삼키고는 중얼거렸다. “밥밥밥, 하루 종일 밥밖에 모르지. 이렇게 많이 먹는데 대체 왜 살이 안 찌는 거야?”“그건 말이야, 우리 집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이야.”차미주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비밀도 있어?”“당연하지. 이 세상에 살이 잘 빠지는 체질이 그렇게 많을 리가 없잖아. 당연히 뭔가방법이 있어야지. 어쨌든 난 움직이긴 싫고 많이 먹기도 하니까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어떻게 이렇게 좋은 몸매를 유지할 수 있겠어?”그 말에 차미주는 마음이 혹했다. 운동을 할 필요도 없고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건 모든 여자들의 꿈이었다. 차미주의 두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대체 그게 무슨 방법인데. 나한테 말해봐. 나도 날씬해지고 싶어.”한성우가 차미주를 놀리며 말했다. “사실 우리 한씨 집안 자손들 몸에는 기생충이 있거든. 이
“23번 유현진 씨, 가족분께 연락하셨나요?“이제 간호사가 몇 번째로 유현진을 재촉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흘긋 확인해보았으나 강한서에게 건 전화는 여전히 응답이 없는 상태였다.한주시 북부 환형 육교에서 연속 차량 충돌 사고가 발생하며 버스 한 대가 옆으로 기울다 강에 빠져버렸다. 그로 인해 수십 명의 부상자가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들의 가족들이 하나둘씩 병원에 도착했지만 오직 그녀의 남편은 늦도록 연락되지 않았다.처참했던 사고 현장이 여전히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사고 당시 느꼈던 공포보다 이 순간 밀려오는 서운함에 마음이 더 아팠다.“유현진 씨?”간호사의 부름에 유현진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셔츠는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는데 그 덕분에 새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 보였다. 그녀는 목소리가 갈라지고 몰골이 처참했으나 여전히 품위 있게 대답했다.“죄송합니다. 연락되지 않는 것을 보니 지금 좀 바쁜 것 같아요. 제가 직접 사인해도 될까요?”“안타깝지만 그럴 수 없어요. 만약 가족분께서 사인할 수 없다면 병원에 남아 좀 더 지켜봐야 할 거예요. 뇌진탕은 빠른 진단을 내릴 수 없으니까요. 병원에선 당신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해요.”유현진은 입술을 꾹 닫고 망설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제가 다시 전화를 걸어 볼게요.”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의료 기기를 담은 플라스틱 카트를 들고 지나가던 두 간호사를 만나자 그녀가 몸을 살짝 움직여 길을 비켜줬다. 그때, 간호사 중 한 명이 말했다.“16번 환자, 누군지 알아요?““아뇨. 누구죠?““송민영 몰라요? 엄청나게 유명해요! 얼마 전에 찍은 핫한 드라마 ’비밀의 연인‘에서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분이에요.““저런! 그분, 많이 다치셨어요?““조금 늦게 오셨어요. 그리고 팔에 스친 상처가 있긴 한데 그때 이미 약간 아문 상태였어요. 하지만 연예인들 얼굴이 간판이잖아요. 당연히 우리 같은 일반인과 비길 수 없죠. 내가 만약 송민영과 같은 얼굴과 몸매
뜨거운 열기가 귓가에 뿜어지고 달아오른 체온까지 더해 유현진의 귓불을 뜨겁게 달구었다. 다만 그녀는 복부에 난 멍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며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다행히 불이 꺼져있어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의 목젖에 키스했다. 강한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짙은 눈빛으로 머리를 숙이고 그녀의 목덜미를 한입 물었다. 곧이어 유현진이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나 오늘 배란기야, 할 때가 됐어.”강한서는 몸이 굳어지더니 눈가에 스친 욕망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살짝 분노에 찬 말투로 물었다.“네 머릿속엔 온통 이 생각뿐이야?”유현진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뜨거웠던 귓불도 서서히 열기가 식었다.“너희 엄마가 계속 날 다그치잖아.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차라리 너 정자 기증할래? 그럼 내가 시험관시술 할게.”강한서가 비난 조로 되물었다.“엄마가 재촉한 게 아니라 네가 사모님 자리를 지키지 못할까 봐 아이라도 낳으려는 거 아니야?”유현진은 가슴을 후벼 파듯 아팠지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옅은 미소만 지었다.“맞아, 네가 날 버리면 어떡해?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 둘 사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지.”강한서는 단추를 채우고 짜증 섞인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이런 데 신경 쓰지 마. 난 아이 안 가질 거야.”유현진의 미소 짓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그녀는 문밖을 나서려는 강한서를 불러세웠다.“강한서, 넌 대체 아이를 갖기 싫은 거야 아니면 내 아이를 갖기 싫은 거야?”강한서는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쏘아붙였다.“뭐가 다른데?”유현진은 주먹을 꽉 쥐고 대답했다.“같은 뜻이라면 결혼도 아무 의미 없겠지. 이혼해 그냥.”“네 마음대로 해.”강한서는 이 한마디를 내뱉은 후 문을 박차고 나갔다.유현진은 베개를 문에 힘껏 내던졌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다음 날 아침, 조깅을 마치고 돌아온 강한서는 식탁 앞에 앉아 메일을 확인했다.아침을 준비한 지 반나절이 됐지만 그는 도통 수저를
차미주는 꿈속에서 헤매다가 노크 소리를 듣고 잠이 깼다. 문을 연 순간 유현진이 한 손에 캐리어를 들고 떡하니 서 있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청아한 목소리로 물었다.“숙박 좀 할 수 있을까?”차미주는 그녀에게 아이스 콜라 한 병 건넸다. 유현진이 콜라를 건네받자 그녀는 불쑥 제 머리를 툭 쳤다.“내 정신 좀 봐. 너 탄산음료 안 마시지? 우유 갖다 줄게.”“아니야, 괜찮아.”유현진은 캔 뚜껑을 따고 한 모금 마셨다.“못 마시는 게 어디 있어?”전에는 임신 준비 때문에 술과 담배, 음료 및 자극적인 것들을 싹 다 멀리했지만 이혼을 앞둔 지금은 이런 것 따위 전혀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기분이 내키는 대로 하면 그만인 것을.‘임신 준비? 그딴 건 무능한 강한서더러 하라고 해!’“너 정말 강한서 씨랑 이혼할 생각이야?”차미주는 소파의 반대편에 앉으며 확실치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응.”유현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그 사람 또 송민영이랑 만나.”차미주는 대뜸 욕설을 퍼부었다.“그 여잔 대체 왜 이렇게 뻔뻔한 거야? 애초에 결혼할 때도 찾아와 소란을 피우더니 3년이 지난 후 또다시 나타나? 세상에 남자가 없대? 아니 왜 유부남을 물고 늘어지는 거냐고? 강한서 그 자식도 한심해. 놀다 버린 장난감에 아직도 미련이 남은 거야?”유현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지금 대체 누굴 욕하는 거지?’차미주는 마른기침을 하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너 지금 이런 사소한 것에 연연할 때가 아니야. 그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넌 그냥 빠지려고? 왜 그런 비겁한 인간들을 봐줘? 끝까지 맞서 싸우란 말이야! 그 여자가 온갖 청순한 척을 다 떨잖아. 사람들 앞에서 그 가면을 확 벗겨버려! 청순은 개뿔, 유부남이나 만나는 뻔뻔스러운 년인 주제에!”“그래서? 내 결혼생활이 파탄 났다는 걸 온 세상에 알려? 남편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가여운 여자로 남아?”유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이 결혼은 이미 실패야. 떠날 때까지 비참하게 굴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