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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임공
병실 안.

우주는 환자복을 입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이미 국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머리카락과 얼굴에도 밥반찬과 국물이 묻어 이목구비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중년의 간병인이 숟가락을 들어 우주의 입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먹어! 빨리 먹으라니까?! X신 같은 놈, 입도 못 벌리다니! 이 개돼지만도 못한 X! 아...”

갑자기 머리카락이 힘껏 뒤로 당겨진 그녀가 돼지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내었다.

그녀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어떤 정신 나간 새X야?! 너, 내가 누구인지 알아?!”

“허, 당신이 누군데요?!”

눈이 빨갛게 달아오른 시연은 온몸에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당신이 뭔데 내 동생을 때려?! 입만 열면 천박한 말을 내뱉는 주제에 왜 어린아이를 괴롭히냐고! 이 아이의 가족이 다 죽고 없는 줄 아는 거야?!”

시연이 더욱 팽팽하게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자, 그 간병인은 두피가 벗겨질 것 같았다.

“아파, 아프다고! 이거 놔!”

간병인은 전형적으로 약자를 업신여기고 강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벌벌 떨며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그래요, 잘못했어요, 잘못했다고요!”

시연은 손을 놓으며 간병인을 바닥에 내동댕이쳤고, 닥치는 대로 도시락을 들고 간병인의 입에 음식을 쑤셔 넣었다.

“당신, 이렇게 억지로 먹이는 거 좋아하잖아? 당신도 당해봐!”

“아, 아...”

철제 숟가락은 간병인의 입을 거의 베어버릴 지경이었다.

간병인은 말하지 못하고 손짓으로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연이 어떻게 그녀를 가만히 둘 수 있겠는가.

찰싹!

시연이 손을 들어 간병인의 뺨을 한 대 때렸다.

“방금 내 동생을 이렇게 때렸지? 때리니까 속이 시원했니? 그런데 어쩌지? 이제 내가 배로 돌려줄 건데!”

찰싹, 찰싹, 찰싹!

몇 번의 따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간병인이 숨을 채 고르기도 전에 시연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가자, 당장 병원장님을 만나야겠으니까!”

“안 돼요, 제발!”

간병인이 부은 얼굴로 용서를 빌었다.

“아가씨, 이번만 용서해 주세요!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큰돈을 준다고 해서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요!”

이 말을 들은 시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누가 사주한 거야?”

“장... 장미리 씨요.”

‘그 여자였어!’

시연은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내가 도망쳤기 때문에, 몸을 팔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 거야... 장미리의 보복이 이렇게 빨리 시작될 줄이야!’

‘하지만 보복하려면 나한테 해야 하는 거잖아?’

‘우리 우주는 왜 괴롭히느냐고! 우주는 겨우 14살이고 자폐증을 앓는 아이란 말이야!”

“당장 여기서 꺼져!”

“아이고!”

간병인이 줄행랑을 쳤다.

엉망진창이던 방을 하나하나 정리한 시연이 지우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주야, 누나랑 씻을까? 응?”

하지만 우주는 예전과 같이 대답하지 않았다.

시연이 익숙하다는 듯 우주의 손을 잡으려 하자, 그가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우주야!”

시연이 기뻐했다.

“이제 네가 먼저 누나 손을 잡네? 누나를 알아보는 거야?”

하지만 우주는 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시연은 여전히 매우 기뻤다.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 드디어 반응을 보이는구나! 비록 작은 반응이긴 하지만...’

‘이번 치료가 효과가 있는 게 분명해!’

우주를 데리고 욕실로 들어간 시연은 그제야 흩뿌려진 음식과 국물 이외에도, 그의 바지가 소변으로 완전히 젖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간병인은 이걸 보고도 갈아 입혀주지 않고, 매정하게 무시했던 거구나!’

“우주야, 누나가 잘못했어.”

시연이 눈물을 참으며 목욕을 마친 우주의 옷을 갈아 입혀 줬다. 그러자 소년은 시원스럽고 준수한 이목구비를 뽐내기 시작했다.

소년이 조용히 의자에 앉자, 시연은 다시 밥을 지어 먹였다.

우주는 순순히 입을 벌리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시연의 옷을 잡아당겼다.

이 아이는 겁에 질려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글썽이던 시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주야, 무서워할 거 없어, 누나가 너를 지켜줄 거니까.”

시연은 요양병원을 떠나기 전에 그 간병인을 고발했는데, 돈을 받으며 사람을 해치는 사람을 남겨두면 다른 환자에게도 해를 끼칠지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곧이어 시연은 차를 타고 지씨 저택으로 향했다.

‘장미리가 이렇게 잔인하게 우주를 괴롭히다니,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어!’

...

어둠이 내린 시각.

고유건은 차를 몰고 지씨 저택으로 가는 길에 장소미의 전화를 받았다.

[유건 씨, 어디까지 왔어요?]

유건이 말했다.

“차가 막혀서 좀 늦을 것 같아요.”

[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요. 안전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알겠어요.”

...

“시연 아가씨, 오셨어요?”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가 문을 열었으나, 시연은 가정부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시연은 부엌에서 물 주전자를 들고 다시 거실로 갔다.

그때, 장미리와 장소미는 서로의 손을 잡은 채 계단 입구에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

‘흥.’

옅은 미소를 지은 지시연이 빠른 걸음으로 두 사람을 향해 돌진했다.

“지시연.”

장미리가 잠시 멈칫했다.

“낯짝이 참 두껍구나.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다니...”

순간, 비명이 울려 퍼졌다!

시연이 물 주전자를 기울여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끼얹은 것이었다.

소미가 놀라서 소리쳤다.

“아! 지시연, 너 미쳤어?!”

시연은 악랄한 눈빛으로 둘을 노려보며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미쳤냐고? 아니, 이건 고작 물일 뿐이잖아? 너희들이 간병인을 사서 우리 우주에게 끼얹은 건 뜨거운 음식과 국이었고!! 게다가 너희는 우주를 소변에 찌들어 냄새나게 했잖아!”

“엄마...”

장미리가 소미를 밀어내며 말했다.

“너는 상관할 거 없어. 시간이 늦었으니, 어서 올라가서 옷부터 갈아입어!”

“아, 알겠어요, 엄마.”

소미는 중요한 약속이 있는 듯 급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장미리는 시연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 역겨운 듯했다.

“그래! 내가 간병인더러 네 X신 같은 동생을 좀 괴롭히라고 했다, 왜?! 진 사장의 지시를 무시하고 도망가는 큰 사고를 저지르면서도, 네 동생이 보복당할 거라는 생각은 못했던 거니?!”

장미리는 시연이 우주의 치료비를 지불했다는 사실도 간병인에게 들어서 알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가 시연을 보는 눈빛은 경멸과 욕설로 가득 차 있었다.

“돈은 어디서 구한 거야? 대체 어떻게 구한 거냐고! 아, 몸이라도 판 건가? 어차피 몸을 팔고 있었으면서, 집에 도움이 되기는 싫었던 거니? 천박한 X, 양심은 지나가던 개한테 먹이로 준 거야?!”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시연은 오히려 미소를 지은 채 장미리를 거세게 때렸다.

“당신은 그 입이 문제야, 그런 입은 없애 버려야 한다고!”

“허?”

장미리는 헛웃음을 지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박한 X, 네가 감히 나를 때려?!”

그녀는 곧바로 일어나 시연을 때렸다.

순간, 두 사람은 뒤엉켜 몸싸움을 벌였으나, 시연은 곧 장미리를 눌러서 자신의 몸 아래에 두었다.

그녀가 손을 들어 좌우로 폭행하니, 장미리는 당해낼 힘이 없었다.

“장미리, 내가 아직도 어린애인 줄 알아?! 네가 때리고 욕해도 가만히 있는 어린애인 줄 아냐고!”

지난 십여 년 동안, 시연은 단 한 번도 반항한 적이 없었다.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이 너무 어렸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동생 우주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연은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었다!

시연이 눈시울을 붉히며 노발대발했다.

“나는 이제 다 컸지만, 당신은 늙었어! 한 번만 더 우리 우주를 괴롭히면, 우주가 당한 그대로 갚아줄 거야! 알겠어?!”

“아아...”

장미리가 소리를 치며 울부짖었다.

“살려줘!”

그녀가 구석에 숨어 있는 가정부를 한 번 보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뭐 하고 있어? 당장 신고하지 않고! 이러다 죽겠어! 큰일 나겠다고!”

“무슨 일이야?”

가정부가 경찰에 신고하기도 전에 지동성이 돌아왔고, 급히 달려들어 시연을 잡아당겨 바닥에 넘어뜨렸다.

“지시연! 어디서 못 배워먹은 짓이야? 새엄마는 네 윗사람이야! 그런데 감히 어른한테 손찌검을 해?!”

장미리 미소를 지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

“저 정신 나간 X, 때려죽여 버려요!”

“해볼 테면 해봐!”

시연이 지동성을 노려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당신은 결혼 생활 중에 바람을 피운 걸로도 모자라, 애인에게 재정적인 도움까지 주면서 친자식은 돌보지도 않았어! 그리고 당신! 당신은 내연녀인 주제에 남의 자리를 차지했고, 어린아이를 학대했지!”

“당신들은 절대 좋은 말로를 맞이할 수 없을 거야!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당신들은 벌을 받지 않는 게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야!”

할 말을 마친 시연은 붉어진 눈으로 몸을 돌려 뛰어나갔다.

지씨 저택의 대문을 나서자, 검은색 벤틀리 뮬산 시연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두 걸음 나아가던 시연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방금 지나간 그 차, 왜 이렇게 눈에 익지?’

‘최근에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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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시연을 놔줘.”한 글자 한 글자 내뱉는 유건은 말투는 부드러웠으나, 지한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넘쳐흘렀다. “예, 형님.”지한이 황급히 손을 놓았다.하지만 이런 소란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시연은 깨어나지 않았다. 순간, 유건이 눈살을 찌푸렸다.‘설마 이 여자한테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어쨌든 지시연은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여기 온 거잖아. 나중에 할아버지께 일러바치기라도 하면 재수가 없는 건 내가 될 거라고.’ ‘정말 귀찮은 여자 같으니라고!’ 표정이 굳은 유건은 허리를 굽혀 시연을 가로로 안았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히려 했다. 그가 시연을 옮기던 찰나, 그녀의 치마가 무릎 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무릎에 있는 두 개의 멍이 드러났다. ‘이게 뭐야?’ 유건은 멍해졌다.‘이래서 어젯밤에 아프다고 한 건가? 근데 이건 어떻게 생기게 된 거지?’ 그의 포근한 가슴에 기댄 시연이 놓지 못하겠다는 듯 유건의 목덜미를 감싸 안고 중얼거렸다.“은이야...” 유건은 또 한 번 멍해졌다.‘은이? 사람 이름이잖아? 여자 이름인 것 같은데...’ ‘지시연이 왜 잠결에 여자애 이름을 부르는 거지?’ 유건은 그제야 시연의 길고 볼륨감 있는 속눈썹, 모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끈한 얼굴, 그리고 분홍빛 도는 입술이 살짝 내밀어진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마치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 이를 본 유건은 잠시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깨어난 시연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고... 유건 씨?” 유건은 마치 감전된 것처럼 손을 풀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선 채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일부러 무섭게 말했다.“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내 방문 앞에서 죽지 말고!”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두 걸음 세 걸음 멀어져갔다. 시연은 의아했다.‘목숨을 저주할 정도로 내가 싫은 거야?’ 지한 또한 그녀에게 말했다.“밤새 많이 추웠을 텐데, 샤워로 추위를 좀 몰아내는 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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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건이 가문?’‘정말 재미있는 아가씨군.’한강우는 웃겨서 고유건을 힐끗 바라보았다. “오, 그럼 오늘 유건이랑 뭐 하러 온 거지?” ‘상훈이의 손자인 유건이는 다 좋은데, 인간미가 별로 없다니까? 그런 사람이 모처럼 나를 웃겼군.’ 시연이 솔직하게 말했다.“할아버지께서 저도 유건 씨와 함께 한 회장님의 생신을 축하하러 가라고 하셔서 왔습니다.”“내가 아가씨한테 고마워할 일이 다 생기는군.”한강우가 말했다.“좋아, 내 생일을 축하해주러 왔다면, 준비한 선물은 있는 건가?” 이 말을 들은 유건은 흠칫 놀랐다.‘큰일이다, 지시연이 무슨 선물을 준비할 수 있었겠어?’‘가뜩이나 저 노친네는 흥미도 없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야!’ 그러나 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있습니다.” ‘정말 준비했다고?’유건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는 미소를 띠고 있는 듯했으나, 실제로는 시연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나한테 민폐되는 짓은 하지 마!” 그의 손을 뿌리친 시연은 가방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고, 몸을 굽히며 한강우의 앞에 놓았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그날 천음사에 다녀온 이유였다. “조그마한 제 성의입니다. 한 회장님께서 늘 오늘처럼 행복한 날을 맞이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덕담 고맙네.” 비단 상자를 열어본 한강우는 정신이 멍해졌다.“이건...” 한강우의 얼굴에서는 기쁨과 노여움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저 여자가 한 회장님의 미움을 산 건 아닐까?’ 특히 유건은 더욱 불안해했다. 시연이 설명하기 시작했다.“천음사의 평안줄인데, 대단한 값어치가 있는 건 아니에요.” 이 말을 마치자, 사방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들의 눈빛은 모두 시연에게 쏠렸다. “좋군, 좋아.”한강우의 말과 표정에서는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유건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강우를 바라보았다. “천음사의 평안줄은 외부에서 판매하지 않는 걸로 아는데... 행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4화

    “목숨이 걸린 문제라고!” ‘시간이 생명이야!’ ‘3분이라는 골든 타임을 놓치거나, 1초라도 시간을 더 지체한다면, 한 회장님은 여기서 돌아가시고 말 거야!’ 시연이 다급하게 말했다.“지금 바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간다고 해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체되겠어요? 저한테 2분만 주세요! 한 회장님께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게요!” 1초, 그리고 2초...시연이 다급해하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어서요! 시간이 없다고요!” 일촉즉발의 순간, 유건은 시연을 믿기로 결정했다.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는 그 자신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래.”유건이 손을 놓았다.시연이 기뻐하며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칼이요! 책상 위에 있어요!” “알겠어.”유건은 즉각적으로 시연의 조수가 되어 테이블 위의 과일 쟁반에 있던 칼을 챙겨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고 대표님, 제 정신입니까?” 두려움을 느낀 학운의 얼굴빛이 변하기 시작했고, 유건을 붙잡으며 말했다.“한 회장님이 어떤 분이신데요? 고작 이런 여자가 함부로 손을 댈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요! 혹시라도 한 회장님께 이러쿵저러쿵 하는 일이 생기면...” “비켜요!”유건은 학운의 쓸데없는 말을 들을 겨를이 없어서 팔을 뿌리치며 그를 따돌렸고, 바로 시연에게 칼을 건넸다.“자.” “만년필도 주세요!” 시연은 유건이 만년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건은 두말없이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비록 시연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만년필을 받아 든 시연은 신속하게 그것을 분해했고, 펜 뚜껑을 꺼내어 다른 한쪽을 막고 있던 부분도 제거했다. 그래서 만년필은 이내 양쪽이 뚫린 튜브가 되었다.시연은 한강우의 목덜미를 만지며 빠르게 위치를 잡았고, 손에 들고 있던 칼로 그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베인 상처에 만년필을 꽂아 넣었다. 학운과 이 자리에 있던 고용인들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등을 돌릴 뿐이었다. “구급차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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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23화

    “은범이?”진짜 노은범이었다!“시연아, 괜찮...”은범이 갑자기 신음을 내뱉었다. 잘생긴 얼굴이 순간 일그러지며 고통에 찬 표정을 지었다.시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머릿속이 순간 하얘졌다.“형수님!!”기환은 구조 요청 소리를 듣자마자 빛처럼 달려왔다. 화살처럼 뛰어 들어와 단숨에 칼을 든 남자를 제압했다.“가만있어! 움직이지 마!”기환은 순식간에 그 남자를 바닥에 눌러 제압했고, 피 묻은 칼이 남자의 손에서 떨어졌다.기환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단 몇 분,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형수님 다쳤다니?!’“형수님, 어디 다치셨어요?”“아, 아니에요. 난 괜찮아요.”시연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은범에게 돌렸다.은범은 왼쪽 허리를 부여잡고 있었고, 손가락 사이로 선홍빛 피가 흘러내렸다.시연은 즉시 판단을 내렸다.“은범아, 너 당장 응급실로 가야 해! 기환 씨, 도와줘요!”“네! 알겠습니다!”순식간에 병원 내부는 분주해졌고, 은범은 긴급히 응급실로 실려 갔다.마침 응급실 당직 중이던 의사는 시연의 동창인 김현진이었다.“상황은 좀 어때?”“허리에 자창이 있어. 개복 수술로 내부 확인이 필요해.”현진은 은범이 시연과 아는 사이라는 걸 알고,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방금 상처를 확인했는데 깊지는 않아. 심각한 문제는 없을 거야.”“고마워.”“별거 아닌데, 뭐. 바로 수술실로 옮길게.”시간을 지체할 틈도 없이, 은범은 응급실에서 바로 수술실로 이송되었다.시연도 은범을 따라 수술실로 향했다....한편, 구석에 있던 기환은 시연을 주시하며 유건에게 전화를 걸어 방금 벌어진 일을 보고했다.[칼을 든 남자?]유건의 이마가 깊게 주름졌다.[기환아, 너 요즘 너무 태만해진 거 아니야? 내가 뭐라고 했어? 한순간도 떨어지지 말라고 했잖아.]이 말에 기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옆에서 지한이 나서서 기환을 두둔했다.“형님, 기환이도 사람입니다. 모든 순간을 감시할 순 없죠.”즉, 실수할 수도 있다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22화

    “미안해. 내 잘못이야. 벌 받을게.”...다음 날 아침.시연은 몽롱한 상태에서 손에 간지러운 느낌을 받았다.“뭐 하는 거예요?”그녀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내가 깨운 거야?”유건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제 곧 나가야 해서 가기 전에 약 한 번 더 발라주려고. 다 바르면 다시 자. 깨어나서도 꼭 스스로 바르고. 하루 네다섯 번 정도.”“귀찮아 죽겠어요!”시연은 이불을 확 댕겨 얼굴을 덮어버렸다.유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하지만 다정하게 웃었다.시여의 성격은 그다지 까다로운 편이 아니었지만, 함께 지내다 보니 그녀가 기상 후 심한 짜증을 부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잠을 충분히 잤을 때는 괜찮지만, 덜 잤을 때는 아주 예민했다.“안 건드릴게. 푹 자.”...시연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오늘은 별다른 업무가 없었고, 강울대병원에 가서 서류만 제출하면 되는 날이었다.그녀는 준비를 마치고 기환의 차에 올라 강울대병원으로 향했다.서류를 제출한 후, 같은 팀 펠로우인 서성안이 그녀에게 근무 스케줄을 건넸다.“이게 우리 과 다음 주 야간 근무 일정이야. 가는 길에 외래 수간호사님께 전해줘.”“알겠어요.”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받아서 들었고, 외과 건물을 나와 외래 진료실로 향했다.그녀는 수간호사에게 스케줄을 전달한 후, 외과 진료실을 한 번 힐끗 바라보았다.오늘은 오준수와 김현진이 외래 근무 중이었다. 역시나 환자들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그때, 기환이 시연에게 달려왔다.“형수님,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금방이에요. 1분이면 돼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주시거나, 그냥 소리치시면, 제가 바로 달려올게요.”“알겠어요. 빨리 다녀와요.”기환은 늘 시연을 보호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심지어 식사나 화장실 가는 일조차 마음대로 못 할 때가 많았으니 말이다.“나 괜찮아요. 여긴 사람도 많잖아요.”“금방 다녀올게요!”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환을 기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21화

    유건은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시연을 침대에 눕혔다.그리고 그녀를 자기 품속에 가두어, 다시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내 말 안 들려? 내가 절대 아내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왜 날 믿지 않는 거야?”시연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고 대표님, 당신이 도덕적 기준을 지킬 거라고 믿어요. 당신의 몸은, 나에 충실할 거라고요.”유건은 좋은 교육을 받았고, 도덕성과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이런 유건을 오래 봐왔기에 시연도 확신할 수 있었다.“하지만, 배신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에요. 마음의 배신도, 배신이에요.”뭔가 어색한 듯, 그녀는 말을 고쳐 잡았다.“아니, 내가 잘못 말했네요. 사실 당신의 마음도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었죠.”유건이 시연의 말을 끊었다.“지금 그렇게 말하는 거, 양심에 찔리진 않아?” ‘내가 이 여자에게 쏟아온 모든 진심이, 헛것이었단 말이야?!’“그래요.”시연은 솔직히 인정했다.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찔리는 것 같기도 하네요. 당신 마음은 나를 향하긴 했어요.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유건은 아무 말 없이 잠시 생각에 잠겼고, 한참을 머뭇거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어떻게 해야 내 마음이 완전히 당신을 향한다고 생각할 건데?” ‘나는 진심으로 이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고, 함께 살아가려 했고...’ ‘이 여자와 배 속의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했어...’‘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거야?’“몰라요.”시연은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절호의 순간이 오면, 당신이 다른 이유로 나와의 약속을 저버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 말이 틀렸나요?” 결국, 그녀는 오늘 밤 유건이 약속을 어긴 것을 원망하고 있었다.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바꿀 수는 없었다.유건은 시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베인 손가락을 바라보았다.“그런 얘긴 나중에 하고, 약부터 바르자.”그는 그렇게 말하며, 시연의 손을 놓고 침대에서 내려왔다.잠시 후, 약을 들고 돌아왔다.“칼에 베인 거야?”시연은 살짝 찡그리며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20화

    ‘애초부터 장소미와 함께 보낼 생각이었겠지.’ 시연은 씁쓸하게 웃었다. ‘앞으로는 괜히 헛수고하지 말자.’‘괜히 마음 쓰고 노력해 봤자, 정작 본인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결국 나만 바보 되는 거잖아.’ 불필요한 감정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녀는 조용히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조용했던 방 안, 문 쪽에서 철컥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시연은 즉시 몸을 돌려,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불빛이 환하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방 안으로 들어온 유건은, 손에 쥐고 있던 열쇠를 소파 위에 툭 던졌다. ‘맞네, 여기... 저 사람 집이었지?’ ‘내가 문을 잠근다고 해서 이 사람이 못 들어올 리가 없잖아.’ 시연은 순간적으로 잊고 있던 현실을 떠올렸다. 유건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더니, 침대 위에 편하게 앉았다. “날 못 들어오게 해? 그럼 난 어디서 자라고?” 그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이 방은 우리 방이야. 반반씩 나눠 써야지.” 시연은 남자를 몇 초 동안 바라보다가, 곧장 침대에서 내려와 일어섰다. “그럼 당신이 여기서 자고, 난 다른 방에서 잘게요.” 그러고는 바로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손목이 단단히 붙잡혔다. “손님방은 안 치웠어.” 유건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설마, 이 시간에 성애 이모를 깨울 생각이야?” 그 말에, 시연은 순간 망설였다. ‘하긴, 나도 남한테 폐 끼치는 걸 싫어하긴 하는데.’ 하지만 바로 대안을 찾았다. “그럼 서재에서 잘게요.” “안 돼.” 그 순간, 유건이 팔을 당겨 그녀를 품 안에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가슴팍에 파묻힌 시연. 남자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여보, 오늘 내 생일이야. 그냥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될까?” ‘지금 이걸... 핑계라고 하는 거야?’ 시연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이런 말... 다른 사람한테는 통할지 몰라도, 나한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19화

    “알 필요 없어요.” 시연은 아픈 손을 조심스럽게 뺐다. ‘알 필요 없다고?’ 유건의 예리한 눈매가 가늘어졌다. “당신은 내 아내야. 아내가 손을 다쳤는데, 내가 몰라도 된다고?” “그게 뭐 대수인가요?” 시연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하지만 명확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당신이 전 여자 친구와 생일을 함께 보낸 것도 몰랐는데요?” ‘뭐...? 생일을... 함께 보냈다고?’ 유건은 순간 당황했다. 그보다 더한 기분은, 놀라움이었다.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러나,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시연은 이미 팔을 빼내고 2층으로 올라갔다. ‘생일...?’ 유건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가, 곧바로 깨달았다. ‘맞다, 오늘 내 생일이었지.’ 시연이 저녁 약속을 잡았던 이유, 그녀가 오늘 내내 기다렸던 이유. ‘시연이는... 나를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 유건은 짧은 탄식을 내뱉으며, 곧장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형님.] 전화기 너머로 기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알고 있었어?” 유건은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시연이가... 내 생일 챙기려고 했던 거.” [네, 알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왜 말 안 했어?” 유건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기환은 짧은 침묵 후, 솔직하게 답했다. [형수님께서 형님께 직접 깜짝선물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굳이 말하지 않았던 거죠.]유건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기환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런데요 형님... 혹시... 선물 이야기는 들으셨나요?]“선물?” [아... 형수님께서 직접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제가 말하면, 그 마음을 망치는 거 아닐까요?]유건은 그 말을 듣자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기환은 한 가지 더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형수님께서 정말 정성을 다해서 준비하셨습니다. 직접 손으로 만든 거예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18화

    시연은 계속해서 국수를 먹었지만, 전혀 유건을 쳐다보지 않았다. 유건은 속이 쓰렸다. 그리고 시연을 한밤중까지 기다리게 한 자기 잘못을 확실히 인정했다. “내일 저녁은 어때? 내가 직접 예약하고 먼저 가 있을게.” “괜찮아요.” 시연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마지막 남은 매운 단무지 한 조각을 집었다. “마지막 하나네.” “더 가져다줄게.” 유건은 기회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반찬을 가지러 갔다. 하지만 곧바로 깨달았다. 자기는 반찬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걸. 잠시 냉장고를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이모님 부를게.” “됐어요.” “아니야.” 유건은 고집스레 말했다. “당신이 먹고 싶다며?” “그러니까, 됐다고요.” 시연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서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항상 왜 그래요? 내가 원하는 대로 결정할 수 있게 해줘요.” 여자의 말속에 분명한 불만이 묻어 있었다. ‘많이 화났구나...’ 유건은 결국 빈 그릇을 내려놓았다. “알겠어. 당신 말대로 할게.” 시연은 다시 젓가락을 들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왜 계속 쳐다봐요? 배고픈 거예요? 저녁 안 먹었어요?” 유건은 짧게 고개를 저었다. “먹었어.” “먹었군요.” 시연이 잠시 멈칫하더니, 작은 웃음을 흘렸다. 유건은 순간 깨달았다. ‘아차, 또 실수했어!’ 그렇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 “미안해.” 그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사과하는 것 외에는. 그러나, 그 사과조차도 공허할 뿐이었다. 시연은 가볍게 눈썹을 들어 올리더니,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면을 다 먹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살 것 같네요.” 말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유건은 얼른 의자를 뒤로 빼주었다. 그녀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17화

    그런 유건을 보면서 소미는 바로 눈치챘다. 지금 남자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소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응.” 유건은 짧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소미 씨. 지금 당장 가봐야 해.” “미안하긴요.” 소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우린 오랜 친구인데, 그런 걸로 사과할 필요 없어요. 급한 일 있으면 얼른 가요.” 유건은 그녀의 배려에 감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마워.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조심해서 가요!” 소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건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이어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손안에 쥔 나비 머리핀을 서서히 꽉 쥐었다. ...차 안. 지한은 운전석에서 전화를 걸었다. “기환아, 형수님을 꼭 붙잡아 둬. 형님, 지금 가는 중이야.” 기환이 난감한 목소리로 답했다. [최대한 노력해 볼게.] 그러나 통화를 끝내기가 무섭게, 시연은 이미 문을 열고 나갔다. 기환은 순간 당황하며 급하게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형수님, 형님 곧 도착하십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시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너무 늦었어요. 식사 시간도 훌쩍 지났으니, 저도 이제 들어가 봐야죠.” 기환은 속수무책이었다. ‘형수님을 강제로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결국, 한숨을 삼키며 시연을 따라 차에 올랐다. ‘형님이 실수하신 건 맞지...’‘아무리 바빴다고 해도, 임신 중인 형수님을 두 시간이나 기다리게 하다니...’ 기환은 차를 몰며 지한에게 전화를 걸까 고민했지만, 마땅한 변명이 없었다. ‘오늘은... 형님이 잘못하신 거야.’ 두 사람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건이 도착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건 텅 빈 테이블, 아직 꺼지지 않은 촛불, 치우지 않은 식기들.그리고... 텅 빈 의자.유건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고, 바로 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16화

    그날, 지한이 다녀온 후, 직접 유건에게 보고했다.유건이 남긴 선물이 이미 ‘나비 공주'의 손에 무사히 전달되었다고.그 말을 듣고 나서야, 유건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해외로 나가 치료받았다. 그는 반년 동안 앞이 보이지 않았고, 또다시 반년을 걸려 치료받고서야 성공했다. 유건은 그렇게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는 그것이 ‘나비 공주’가 가져다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 여자아이가 날 지켜준 덕분에 시력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거야.’ 그래서 시력을 되찾자마자,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나비 공주’를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비 공주’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그녀가 살던 집은 텅 비어 있었고, 그 후로도 ‘나비 공주’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소미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걸 보며, 유건의 눈가가 뜨겁게 붉어져 왔다. ‘설마... 정말 유건 씨가...?’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손에 쥐고 있던 나비 머리핀을 소미 앞에 내밀었다. 소미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애린 언니가 잃어버렸다고 했는데, 이걸 왜 유건 씨가...?”유건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원래 내 것이었어.” ‘만약 장소미가 진짜 나비 공주라면,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거야.’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공기마저 조용해진 듯했다. 소미의 눈에 혼란과 충격이 스쳐 지나갔다. 입술이 떨리면서도 몇 번이나 말하려다 멈추었다. “유건 씨... 당신...!” 그녀는 숨이 가빠진 듯, 겨우 말을 꺼냈다. 유건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여자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소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다려 달라고... 다시 돌아올 거라고...?” 그 순간, 유건의 숨이 멎었다. ‘그때 내가 남겼던 말을 장소미가 기억하고 있어.’ ‘그렇다면... 맞아.’ ‘진짜 ‘나비 공주’가... 장소미인 거라고.’ 유건은 미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15화

    과거의 기억이 순식간에 유건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그것은 유건이 아직 어리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해, 그는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충격으로 두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때 유건은 정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고상훈은 세계적인 명의들을 불러 치료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누구도 극 시력을 완전히 되찾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평생 앞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의 세상이 영원히 어둠뿐일 거라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그 사실은 소년이던 유건에게 아주 가혹한 선언이었다...그 시절의 유건은 극도로 예민하고 난폭했다.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고상훈을 제외한 모든 사람과의 소통을 거부했다. 누군가 말을 걸어도 무시했고,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화를 냈다. 그저 모든 것이 짜증 났다.간병인과 가사 도우미들에게도 끊임없이 신경질을 부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점점 더 어두운 사람이 되어 갔다. 고상훈은 그런 손자를 안타까워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결국 최대한 그의 뜻을 존중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유건은 조용한 회복을 위해 도심에서 떨어진 별장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나비 공주’와 처음 만났다. ‘나비 공주’는 유건의 옆집에 살고 있었다. 두 집은 높은 담장을 두고 연결되어 있었고, 그녀는 자주 그 담장을 넘어오곤 했다. 두 사람과의 첫 만남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유건은 비가 오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원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이지도 않는데, 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걸까...?’ 그때, 익숙하지 않은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비 오는데 왜 거기 앉아 있어? 감기 걸릴지도 몰라!” 유건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상관없잖아. 어차피 나는 볼 수도 없는데.’ 그가 반응하지 않자, 소녀는 다급한 듯 담장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지?’ 잠시 후, 소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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