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안.우주는 환자복을 입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이미 국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머리카락과 얼굴에도 밥반찬과 국물이 묻어 이목구비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중년의 간병인이 숟가락을 들어 우주의 입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먹어! 빨리 먹으라니까?! X신 같은 놈, 입도 못 벌리다니! 이 개돼지만도 못한 X! 아...” 갑자기 머리카락이 힘껏 뒤로 당겨진 그녀가 돼지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내었다. 그녀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어떤 정신 나간 새X야?! 너, 내가 누구인지 알아?!” “허, 당신이 누군데요?!”눈이 빨갛게 달아오른 시연은 온몸에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당신이 뭔데 내 동생을 때려?! 입만 열면 천박한 말을 내뱉는 주제에 왜 어린아이를 괴롭히냐고! 이 아이의 가족이 다 죽고 없는 줄 아는 거야?!” 시연이 더욱 팽팽하게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자, 그 간병인은 두피가 벗겨질 것 같았다. “아파, 아프다고! 이거 놔!”간병인은 전형적으로 약자를 업신여기고 강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벌벌 떨며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그래요, 잘못했어요, 잘못했다고요!” 시연은 손을 놓으며 간병인을 바닥에 내동댕이쳤고, 닥치는 대로 도시락을 들고 간병인의 입에 음식을 쑤셔 넣었다. “당신, 이렇게 억지로 먹이는 거 좋아하잖아? 당신도 당해봐!” “아, 아...”철제 숟가락은 간병인의 입을 거의 베어버릴 지경이었다. 간병인은 말하지 못하고 손짓으로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연이 어떻게 그녀를 가만히 둘 수 있겠는가. 찰싹!시연이 손을 들어 간병인의 뺨을 한 대 때렸다.“방금 내 동생을 이렇게 때렸지? 때리니까 속이 시원했니? 그런데 어쩌지? 이제 내가 배로 돌려줄 건데!” 찰싹, 찰싹, 찰싹!몇 번의 따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간병인이 숨을 채 고르기도 전에 시연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가자, 당장 병원장님을 만나야겠으니까!”“안 돼요, 제발!
강렬한 직감을 느낀 시연이 되돌아가자, 지씨 저택 앞에는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곱게 한 장소미가 나와 있었다. 차 문이 열리고, 차에서 내린 고유건이 손에 든 꽃다발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붉은색의 아름다운 장미는 남자의 열정적인 사랑을 대신하는 듯했다. “너무 예뻐요.” 꽃다발을 받은 소미가 환하게 웃으며 유건의 팔을 잡았다. 유건은 신사처럼 차 문을 열어 소미를 조수석에 태웠고, 그렇게 두 사람은 지씨 저택을 떠났다. 차가 지나가자, 등을 돌린 시연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듯했다.‘장소미가 오늘 밤에 있다던 중요한 약속이 고유건과의 약속일 줄이야!’ ‘고유건은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말했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던 거야?’ ‘게다가 그의 여자 친구가 장소미인 거고?!’ ‘장소미한테 고유건 씨 같은 남자 친구가 있다는 걸 알면, 지씨 일가는 꿈에서도 웃음이 나겠지?’‘그런데 어쩌지? 내가 먼저 알게 되었는걸.’ ‘이건 하늘이 내게 준 기회나 다름없어!’ 시연이 말없이 두 손을 꼭 쥐었다.‘왜 지씨 일가는 잘만 사는데, 나랑 우주는 진흙 속에서 발버둥 쳐야만 하는 거야?!’‘절대 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두지 않을 거야!’ 가로등 아래, 시연의 그림자가 매우 길게 뻗어져 있었다. ...나무 식탁 위의 촛불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고급 도자기 식기, 은으로 된 나이프와 포크는 어느 것 하나 정교하지 않았고,병풍 뒤에서는 악단이 잔잔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유건과 소미는 마주 앉아 있었는데, 유건이 먼저 소미에게 와인 한 잔을 따라 주었다.“상황이 좀 달라져서 곧바로 이혼할 생각이에요. 절차는 이틀 후에 진행할 것 같아요.” “!”갑자기 고개를 들어 올린 소미의 눈동자에서는 기쁨의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그녀는 곧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흘리려 했다. 유건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왜 울어요? 기분이 안 좋은 거예요?” “아니요.”소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울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려고 애썼
시연은 진아의 집에 하루 종일 머무르다가 저녁에 시간을 확인하고서야 가방을 메고 외출했다. 오늘 밤, 그녀는 해야 할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18세가 된 이후, 장미리는 시연에게 일절 돈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시연은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스스로를 책임져야만 했다. 비록 그녀는 고유건이 준 카드로 우주의 치료비를 지불했으나, 그 외의 비용은 지출할 생각도 없었고, 지출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연이 아르바이트하는 곳은 ‘BLUE’였다.‘BLUE’은 G시의 유명한 재벌 마사지 클럽으로서 재벌들의 사치스러운 유흥업소라고 할 수 있었다. 시연은 이곳에서 안마사와 침구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임상의학이 전공인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하여 특별히 한의학의 안마와 침구에 대한 과목을 선택하여 이수했고, 자격증까지 수료한 바 있었다. 하지만 실습의 자체가 바쁘기 때문에 임시직으로 아르바이트했으며, 손님의 수와 서비스 시간에 따라 임금을 계산하고 정해진 출퇴근 시간조차 없었다. 정규직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입이었지만, 시연은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있었다. 물론 호의적이지 않은 손님을 만난 적도 있었지만, 시연은 늘 유연하게 대처했다. 시연은 출근할 때 찍어야 할 직원 카드를 스캔한 후,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그 순간, 매니저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시연아, 손님 오셨다!” “네, 바로 갈게요!”그녀는 서둘러 안마와 침술에 필요한 도구를 가지고 나와 객실로 달려갔다. 한 명의 손님에게 서비스를 마친 시연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배웅했다. “손님, 안녕히 가세요. 오늘 밤에는 푹 주무실 수 있을 거예요.” 복도의 다른 한쪽 끝,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고유건은 주지한을 따라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그가 앞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지한이 물었다.“형님, 왜 그러십니까?” “지한아, 봐봐, 저게 누구야?” 유건의 어조는 마치 ‘오늘 날씨가 참 좋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낯빛
“지한아, 비켜.” 지한을 밀쳐낸 유건은 조금 전의 분노를 가라앉힌 채, 다시 평소와 같은 무덤덤하고 고고한 모습을 회복한 상태였다. 그가 담담히 말했다.“무슨 일이야?” “고유건 씨가 절 해고하게 시킨 거예요?” “그래, 맞아.” 그가 시연을 힐끗 쳐다보았다.“대답이 됐니? 지한아, 가자.” “예, 형님...”“잠시만요!”시연이 재빨리 두 걸음 뛰어서 유건의 앞을 가로막았다. “제가 잘못했어요!”시연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비굴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 다 내 잘못이야.’ ‘결혼으로 저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건 맞지만, 내가 고유건을 건드릴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건 간과했으니까!’‘내가 주제넘은 짓을 한 거야!’ “제발요, 해고는 없던 일로 해주세요. 이 일은 제게 정말 중요한 거예요!”그녀는 의과대학 마지막 학기의 실습 과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습의는 급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 아르바이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시연이 짙은 안개가 낀 눈빛으로 간청했다. “제가 이랬다저랬다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이혼할게요, 동의할게요. 고...”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유건이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힘껏 움켜쥐었다. “네가 이혼을 원하면 하고, 원하지 않으면 안 하는 거야?” 분노가 극에 달한 유건이 온몸에서 포악한 기운을 발산하며 말했다. “네까짓 게 감히 몇 번이나 날 건드려?! 겁은 지나가던 개나 줘버린 거야?!” 이 말을 마친 그가 손을 뿌리쳤다. “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 하지만 시연이 다시 그를 막았다.“고유건 씨!”유건이 눈살을 찌푸렸다.“꺼지라니까? 사람 말 못 알아들어?!”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괜히...”시연은 그를 쳐다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발, 이번만 용서해 주세요. 저는 사는 것만으로도 힘든 사람이에요. 저는 정말 이 일이 필요해요...” 음침하고 냉담한 얼굴의 유건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르바이트가 없어졌으니, 지시연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야 했으며, 가능한 한 빨리 아르바이트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시연이 예상한 바와 같이, 그녀는 실습 업무 자체로도 매우 바빴고, 시간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시연은 일주일간 틈틈이 일자리를 찾았는데, 배가 고프면 빵을 두 입 먹을 뿐이어서 눈에 띄게 야위어 갔다. 그녀는 오늘도 야근하고 나서 일자리를 찾으러 가려고 했다. “시연아.”같은 실습의인 주하은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오준수 선생님께서 사무실로 오라고 하셨어.”시연은 멍해졌다.“무슨 일로 부르셨는지 알아?” “모르겠어.”주하은이 고개를 저었다. “난 이만 채혈하러 가봐야 해. 너도 얼른 가봐.” “그래, 알겠어.”시연이 눈살을 찌푸렸다.‘그날이랑 상황이 비슷한 것 같은데...’ 그녀는 곧바로 오준수의 사무실로 갔다. 오준수는 전문의이자 의대 실습의의 총책임자였다. 시연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오 선생님,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녀를 한 번 바라본 오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약간의 의혹을 품은 채 입을 열었다.“시연아, 병원 행정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너더러 실습이 중지됐으니까 내일부터 안 나와도 된다고 하더라.” 시연이 온몸을 떨며 눈동자를 움츠렸다. “왜... 요?”오준수가 고개를 저었다.“글쎄다, 학교 측에 물어보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만 돌아오더라고.” 총책임자이던 그는 시연이 실습의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론이든 수술 실습이든, 흠잡을 데가 없는 학생이었는데...’오준수도 곤혹스러워했다.“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감도 안 오는 거야?” ‘제가 무슨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겠어요?’ 곰곰이 생각하던 시연은 갑자기 심장이 꽉 조이는 듯했다. ‘틀림없이 고유건의 짓이야!’ 시연이 눈물을 글썽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선생님, 정말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병원에 말씀
병실에 들어선 시연은 침대 옆에 앉았다. 고상훈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시연아,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니? 짐은 다 챙긴 게야?” ‘준비? 짐을 챙긴다는 건 또 무슨 말씀이시지?’ 시연은 정신이 멍해져서 대답할 수 없었다.곧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고상훈이 말했다.“설마 유건이가 너한테 말을 하지 않은 게야? 이 자식이! 이럴 줄 알았어, 성의 없이 한 대답일 줄 알았다고!” 사실, 조만간 고상훈의 오랜 친구가 생일을 쇨 예정이었는데, 그는 직접 갈 수 없어서 고유건에게 지시연과 함께 가라고 한 것이었다. 이는 고상훈이 좋은 뜻을 가지고 한 말이었다.이 나이까지 살아온 그가 어떻게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유건과 시연을 붙여 놓으려 했다. “시연아, 이 할아비의 말을 좀 듣거라.” 고상훈은 두 젊은이 때문에 마음을 졸였다. “유건이가 다른 사람한테 지시를 받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이미 결혼한 이상, 감정을 잘 가다듬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니?” “네.”지시연은 반박할 수 없어서 순순히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착한 아이구나.”고상훈이 흐뭇하게 웃었다.“시연아, 유건이는 너한테 맡기마.” 병실에서 나온 지시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실습이 중단된 일을 겪은 그녀는 유건을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고상훈의 뜻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시연은 어려서부터 그 누구의 귀여움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고상훈은 늘 시연에게 잘해주었고, 그녀는 이를 감사하고 소중히 여겼다.‘그래, 다녀오자. 다 어르신을 위한 일이잖아.’ ‘어차피 이미 실습을 정지당했기 때문에 휴가를 낼 필요도 없어. 하지만... 생신을 축하하는 자리면 선물은 준비해야겠지?’ ‘돈이 없어서 비싼 걸 살 수는 없으니까, 마음을 담은 선물을 준비하자.’ 마침 시간이 있었던 시연은 천음사로 향하는데... 그녀는 저녁에 기숙사에 돌아와 짐을 싸고 유건에게 전화를
“지시연을 놔줘.”한 글자 한 글자 내뱉는 유건은 말투는 부드러웠으나, 지한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넘쳐흘렀다. “예, 형님.”지한이 황급히 손을 놓았다.하지만 이런 소란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시연은 깨어나지 않았다. 순간, 유건이 눈살을 찌푸렸다.‘설마 이 여자한테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어쨌든 지시연은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여기 온 거잖아. 나중에 할아버지께 일러바치기라도 하면 재수가 없는 건 내가 될 거라고.’ ‘정말 귀찮은 여자 같으니라고!’ 표정이 굳은 유건은 허리를 굽혀 시연을 가로로 안았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히려 했다. 그가 시연을 옮기던 찰나, 그녀의 치마가 무릎 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무릎에 있는 두 개의 멍이 드러났다. ‘이게 뭐야?’ 유건은 멍해졌다.‘이래서 어젯밤에 아프다고 한 건가? 근데 이건 어떻게 생기게 된 거지?’ 그의 포근한 가슴에 기댄 시연이 놓지 못하겠다는 듯 유건의 목덜미를 감싸 안고 중얼거렸다.“은이야...” 유건은 또 한 번 멍해졌다.‘은이? 사람 이름이잖아? 여자 이름인 것 같은데...’ ‘지시연이 왜 잠결에 여자애 이름을 부르는 거지?’ 유건은 그제야 시연의 길고 볼륨감 있는 속눈썹, 모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끈한 얼굴, 그리고 분홍빛 도는 입술이 살짝 내밀어진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마치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 이를 본 유건은 잠시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깨어난 시연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고... 유건 씨?” 유건은 마치 감전된 것처럼 손을 풀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선 채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일부러 무섭게 말했다.“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내 방문 앞에서 죽지 말고!”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두 걸음 세 걸음 멀어져갔다. 시연은 의아했다.‘목숨을 저주할 정도로 내가 싫은 거야?’ 지한 또한 그녀에게 말했다.“밤새 많이 추웠을 텐데, 샤워로 추위를 좀 몰아내는 게 좋겠어요.
‘유건이 가문?’‘정말 재미있는 아가씨군.’한강우는 웃겨서 고유건을 힐끗 바라보았다. “오, 그럼 오늘 유건이랑 뭐 하러 온 거지?” ‘상훈이의 손자인 유건이는 다 좋은데, 인간미가 별로 없다니까? 그런 사람이 모처럼 나를 웃겼군.’ 시연이 솔직하게 말했다.“할아버지께서 저도 유건 씨와 함께 한 회장님의 생신을 축하하러 가라고 하셔서 왔습니다.”“내가 아가씨한테 고마워할 일이 다 생기는군.”한강우가 말했다.“좋아, 내 생일을 축하해주러 왔다면, 준비한 선물은 있는 건가?” 이 말을 들은 유건은 흠칫 놀랐다.‘큰일이다, 지시연이 무슨 선물을 준비할 수 있었겠어?’‘가뜩이나 저 노친네는 흥미도 없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야!’ 그러나 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있습니다.” ‘정말 준비했다고?’유건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는 미소를 띠고 있는 듯했으나, 실제로는 시연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나한테 민폐되는 짓은 하지 마!” 그의 손을 뿌리친 시연은 가방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고, 몸을 굽히며 한강우의 앞에 놓았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그날 천음사에 다녀온 이유였다. “조그마한 제 성의입니다. 한 회장님께서 늘 오늘처럼 행복한 날을 맞이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덕담 고맙네.” 비단 상자를 열어본 한강우는 정신이 멍해졌다.“이건...” 한강우의 얼굴에서는 기쁨과 노여움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저 여자가 한 회장님의 미움을 산 건 아닐까?’ 특히 유건은 더욱 불안해했다. 시연이 설명하기 시작했다.“천음사의 평안줄인데, 대단한 값어치가 있는 건 아니에요.” 이 말을 마치자, 사방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들의 눈빛은 모두 시연에게 쏠렸다. “좋군, 좋아.”한강우의 말과 표정에서는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유건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강우를 바라보았다. “천음사의 평안줄은 외부에서 판매하지 않는 걸로 아는데... 행